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77화 (177/345)

177화

16장 4화 귀향(歸鄕)

파브르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이하응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들이 겪은 일을 정리하였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스승 조일준의 생각도 알 수 있었다.

조일준은 이들이 지나친 자신감만 앞세워 훗날 큰 실수를 저지를 것이라 판단했으리라. 그러니 자금 손해를 감수하고 이들에게 교훈을 안겨주었다.

물론 세상 경험이 많은 이하응이 보니 조금 덜 실패하거나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그는 둘에게 조언을 하였다.

“본래 통조림은 백 개를 만들면 열다섯 개 정도는 봉입 불량으로 망가지게 마련 아닌가?”

“그런 물건은 미리 제거하였습니다. 공정이 워낙 좋아서 초기 불량품이 거의 없고 물에 한 번 넣어서 내용물 유출을 확인하였지요.”

“그 정성을 조금만 더 쏟아서 통조림 내용물의 변화를 확인했어야지. 나라면 삼 일 간격으로 하나를 개봉해서 내부의 변질 유무를 확인했을 거야.”

험한 세상을 돌아다닌 이하응의 경험은 많고도 많았다. 멍한 표정으로 이하응을 쳐다보는 파스퇴르와 파브르에게 그는 아낌없는 조언을 하였다.

“또한 색이 변질된 것을 거짓말로 덮을 수 있지 않은가?”

“거짓말이라뇨? 맛은 멀쩡해도 거무죽죽한 색상으로 변질되었는데 방법이 있습니까?”

“간장을 조금 넣어서 색이 검게 변했다고 말하게. 그리고 다음 공정에는 정말 소금 대신 간장을 첨가하는 거야.”

이하응의 말은 파스퇴르와 파브르에게 뼈와 살이 되는 조언이었다. 이런 말재주가 있었으면 매출 타격 수준으로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파스퇴르는 무릎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당시의 굴욕을 되새겼다. 앞으로 이런 일이 없을 것이라 중얼거리고 이를 부득부득 갈아대는 그에게 이하응이 다시 조언을 하였다.

“물론 과학자로서 할 일은 아니지. 논문을 조작하고 사료를 자기 멋대로 취사편집하면 될 일도 아니 되는 법이니까.”

“그래도 지식도 상식도 없이 입방정만 떠는 멍청이들을 현혹시킬 수 있겠군요.”

“현혹이 아니지! 지금이야 자네가 국립이학대학으로 돌아왔으나 사업을 할 때에는 고객들일세. 여론은 언제나 예의주시하고 관리, 아니야 그냥 이 말은 잊게.”

이하응은 다시금 정치의 ‘ㅈ’ 자도 생각하지 않으려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더니 아직도 의자에 앉아 멍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둘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 박사학위 논문이나 도와줄 수 있겠나? 자료 정리가 제법 많아서 문제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예전처럼 함께 일해봅시다!”

이하응의 논문은 열흘의 밤샘 과정으로 완성되었다. 다시 의기투합한 셋은 완벽한 논문을 작성하였고 조일준은 이를 검토하고 박사 논문 심의까지 통과시켰다.

1847년의 한가위와 국립이학대학 졸업식이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고향을 떠난 대한제국 사람들이 귀향 행렬에 올랐다.

그리고 가장 먼 곳에 있는 사람들도 대한제국에 돌아왔다.

* * *

1846년부터 진행된 미국과 멕시코의 전쟁은 미국이 주도권을 잡았다. 한 번 기세를 잡은 미군은 총사령관을 윈필드 스콧 소장(少將)으로 변경하여 쐐기를 박았다.

윈필드 스콧은 이번 전쟁을 미군의 전략과 전술을 끌어올리기 위한 시험대로 삼았다. 그는 공세를 취한 순간부터 모든 병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하달하였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멕시코의 주 전력을 격퇴한다.>

두 개의 육군 군단과 두 개의 해군 함대가 멕시코의 전역을 타격하였다. 이 네 개의 군단은 합동 작전을 펼쳤으며 첫 대상은 멕시코의 주요 방어거점인 베라크루즈(Veracruz) 요새였다.

멕시코군은 베라크루즈가 보급이 끊기더라도 한 달 이상 버틸 것이라 자부하였다. 이러한 예상과 달리 윈필드 스콧은 육군 1개 사단과 함대를 동원하여 합동 작전을 펼쳤다.

지상에서는 윈필드 스콧이 지휘하는 육군이 공성용 참호를 구축하며 공세를 퍼부었다. 메튜 페리 제독이 통솔하는 함대는 포격으로 항구 일대를 압박하며 손발을 맞추어나갔다.

이 과정에서 이최응이 이끄는 포병대도 화력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거대 성형요새 베라크루즈는 고작 일주일 만에 백기를 올리고 항복 의사를 밝혔다.

멕시코는 베라크루즈에서 적을 돈좌시킬 계획을 세웠으나 그 자체가 무산되었다. 미군은 이후 병력을 제대로 집결할 시간도 벌지 못한 멕시코군을 끝없는 파상공세로 몰아쳤다.

이 과정에서 멕시코의 저항은 날이 갈수록 격렬해졌다. 지금까지 중립적인 태도로 전쟁을 방관하던 지방의 마을들도 낫과 쟁기를 들고 미군에 저항하였다.

처음에는 약탈과 폭력에 심취하던 민병대는 이러한 저항에 직면하자 모두 도주하였다. 윈필드 스콧은 모든 민병대가 계약 중단 혹은 탈영에 가까운 도주를 택하였음을 확인하고 다음 명령을 하달하였다.

<멕시코의 국교인 가톨릭에 손대지 마라. 이들을 존중하고 보호하라.>

<각 지방 관리들에게 보급품의 일부를 할당하며 이들과 평화 협정을 실시하라.>

이후 1847년 5월 26일, 멕시코의 수도이자 최후의 방어선인 멕시코시티에서 열흘에 걸친 전투가 벌어졌다. 대통령 산타 안나는 최전선에 나와 병사를 독려하려 하였다.

“미국의 공세를 여기서 막아내지 못하면 우리 멕시코는 다시금 식민지가 될 것이다!”

-산타 안나 각하 만세!

멕시코시티 인근의 세로 고르도(Cerro Gordo) 요새가 최후의 방어선이 되었다. 요새 인근의 옥수수밭과 잡목림은 일주일 전에 모조리 철거되어 황량한 붉은 땅과 잡풀만 자라났다.

병사들은 산타 안나와 장성들을 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여태껏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높으신 분들이 친히 전선에 나서니 기세등등하여 산타 안나를 연호하기까지 하였다.

반면 장성들은 산타 안나의 주변을 에워싸고 호위하였다. 그들도 전선에서 병사를 독려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으나 셔먼과 어재연의 저격 부대의 표적이 되어 하지 못했을 뿐이다.

“대통령 각하! 미군은 대한제국의 도움을 받아 명사수를 전선에 투입했습니다. 병사들의 사기가 올라갔으니 어서 후방으로 피신하시지요.”

“수풀 속에 숨어서 육백 야드를 저격하는 놈들 말인가? 여기서 매복 가능한 장소까지는 천 야드가 넘을 거야. 이 정도 거리라면 코끼리는 되어야 적중시키겠다!”

산타 안나의 전방 시찰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하였다.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주변 수풀을 모조리 철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성들은 초조한 눈빛으로 주변을 살폈다.

주변을 순시하는 보초들의 깃발이 펄럭이며 ‘문제없음’이라는 신호를 보내오자 조금 안심이 되었다. 자신이 안전하다고 확신한 산타 안나는 손짓을 하여 명령을 내렸다.

“소구경 예포 몇 발을 쏘아 흥을 돋우도록.”

그 명령이 화근이 되었다. 요새 곳곳에 배치된 화포가 발사되었고 포연이 치솟았다. 포성이 요새에서 퍼져나가는 가운데 장성 한 명이 팔뚝에서 피를 뿜으며 휘청거렸다.

“저격이다!”

“각하! 어서 피하십시오!”

산타 안나와 장성들은 즉시 말을 돌려 줄행랑을 쳤다. 이후 여러 발의 탄환이 날아들어 땅을 스치거나 주변 병사와 장성들의 몸에 쑤셔 박혔다.

안전한 거리까지 도주한 산타 안나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망원경으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저 멀리, 천이백 야드 거리에 있는 수풀에 포격 명령을 내렸다.

“당장 포격 준비해! 놈들이 천 야드 밖에서 저격을 실시한다! 유산탄으로 날려버려!”

“놈들의 관측병이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포연으로 인해 후방의 포병 위치가 노출됩니다!”

“지휘관들의 머리통이 날아가는 꼴을 눈 뜨고 보란 말인가! 포격 개시!”

포탄이 폭발하며 포성과 파편이 애꿎은 산과 들을 강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격이 날아들어 병사들 혹은 하급 장교들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이 판단이 산타 안나의 최악의 실책이었다. 멕시코 포병대에서 흑색화약 연기가 솟구쳤다. 이는 인근 산을 장악한 미군의 관측병에게 노출되었고 대포병 사격이 실시되었다.

미군의 포격이 포병대를 강타하자마자 윈필드 스콧은 명령을 하달하였다.

“이번에도 셔먼 소령의 부대가 일을 잘하였군. 전군 진격! 포화를 쏟아내라!”

미군의 대포병 사격이 적중한 순간 전투의 승패가 갈렸다. 지난 4일 동안 산 위에 야포 진지를 구축한 로버트 리 대위는 온갖 고생 끝에 마침내 보상을 얻게 되었다.

“후방으로 산타 안나가 도주한다! 야포 재방열!”

6파운드 소구경 야포의 사격이 산타 안나를 노렸다. 동시에 전장에 구축된 임시 전신으로 명령을 받은 미군이 세 방향에서 세로 고르도 요새를 공격하였다.

포격으로 인하여 낙마한 산타 안나는 부러진 의족을 수습하지도 못한 채 재차 도주하였다. 요새는 다음 날 함락되었으며 대통령 휘하 제장 모두가 포로 신세가 되었다.

산타 안나는 넋이 나간 채 미군 병사들에게 사로잡혀 윈필드 스콧 앞으로 끌려왔다.

의족을 잃어 한 발로만 서 있는 그를 본 윈필드 스콧은 한숨을 내쉬고 명령을 하달하였다.

“멕시코의 대통령이니 정중히 모시도록. 의족은 새 의족으로 갈아 드리고.”

“한 가지 물어볼 것이 있네. 저격수, 저격수들은 도대체 어디 있었나?”

산타 안나는 여전히 저격수 하나 때문에 전투에 패배하였다고 생각했다. 반면 윈필드 스콧 입장에서 저격수를 동원해 아군이 입을 피해를 줄인 것이 전부였다.

산 위에 야포 진지를 구축하였으며 세 방향에서 동시에 공격할 수 있도록 전신망을 갖춰두어 싸우기도 전에 이긴 전투이다. 그래도 적국의 지도자를 배려하는 마음에 이를 설명해 주었다.

“소이여 소위를 불러, 모든 장비를 갖추고 나오라 하게.”

잠시 뒤 등장한 저격수를 확인한 산타 안나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이 더운 날씨에 온몸에 수풀을 엮어 만든 옷을 입었으며 노출된 부위에 흙먼지를 묻혀두었다.

“이러니까 못 볼 만하지. 혹시나 최전방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었나?”

“대통령 각하를 기준으로 삼으면 팔백 야드 정도 떨어져 있었습니다. 본래 대통령 각하의 가슴을 노렸는데 탄도가 빗나가서 장성에게 적중하였지요.”

“그 거리면 어제부터 관측병이 돌아다녔잖아!”

산타 안나는 자신이 저격에 노출되었음을 알아차리고 공포에 사로잡혔다. 반면 소이여는 담담하게 당시의 일을 이야기하였다.

“이 복장을 입고 이틀 동안 숨어 있었습니다. 관측병이 오십 야드까지 접근하였음에도 저를 알아차리지 못하였지요.”

“그럼 총성은 어떻게 숨겼나? 근처에 있다면 총성을 듣고도 남는데!”

“총성은 대통령 각하께서 발사 명령을 내린 예포 소리와 맞추어 숨겼습니다.”

산타 안나는 가만히 서 있는데도 진흙 땀을 줄줄 흘리는 소이여 소위를 보고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런 독한 병사들이 수십 명이 아니라 수백 명이면 전장의 흐름을 뒤바꿀 수 있으리라.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이 말하였다.

“우리도 언젠가는 저격수를…….”

“운영해 보십시오. 저희가 더 많은 저격수를 더 철저히 교육해서 전선에 투입할 겁니다.”

윈필드 스콧을 쏘아본 산타 안나는 이를 갈며 자신에게 배정된 막사로 향하였다. 이후 멕시코시티가 순식간에 함락 당했고 최종 협상 과정이 남았다.

전쟁의 승패가 결정된 순간부터 병사들은 대기 상태에 들어갔다. 이최응은 이 휴식기간 동안 전쟁에 참여해 얻은 모든 교훈을 휘하 지휘관들과 함께 정리하였다.

“이번 전쟁에서 많은 것을 배우는군. 이토록 훌륭한 합동작전이 또 있을까.”

“가설 전신 또한 쓸 만합니다. 모든 명령을 즉각 보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포병입니다. 로버트 리 대위의 전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대한제국은 미국을 통하여 병력 운용, 진군 계획 그리고 제병합동전술을 경험하였다. 처음에 파병을 보낼 때에는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였으나 세상은 넓고 배울 것은 참으로 많았다.

이최응과 지휘관들이 정리한 전쟁 보고서는 2,000페이지가 넘는 막대한 양이었다. 그리고 단 한 명의 장교인 어재연이 자신이 정리한 600페이지의 보고서를 추가하였다.

“어 정위(正尉 - 대위)에게는 언제나 미안하네. 내가 올려줄 수 있는 계급이 정위가 끝이니 참령(參領 - 소령) 계급은 황제 폐하에게 수여받도록 하게.”

“계급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 경험을 휘하 병사들이 받아들이는 것이지요.”

어재연과 셔먼의 저격수 운영은 일종의 공동 과제였다. 양 국가의 병사들이 서로 머리를 맞대 적을 유린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아냈다.

총성이 노출되지 않게 벼락, 폭음 그리고 포성으로 숨기는 방식. 몸을 노출시키지 않게 호랑이의 위장무늬처럼 몸에 흙먼지를 칠하는 방식. 심지어 수풀 자체로 위장하는 방법까지 터득하였다.

이 과정에서 수백 명의 장교를 저격하였고 60명의 병사 가운데 7명이 목숨을 잃고 4명은 불구가 되거나 중상을 입어 퇴역하였다.

어재연은 다시금 이최응에게 인사를 올리며 말하였다.

“진식 소총의 보급과 대한제국에서 들어온 추가 분량을 보내주시지 않았다면 제가 이런 성과를 낼 수 없었습니다. 이 모두가 산향공 대감이 절 믿어주셔서 이룩한 성과입니다.”

“믿지 않았다 해도 이룩한 성과가 하나 있는 것 같은데?”

밖에 있는 미군 병사들에게서 거센 함성이 들려왔다. 왜 저런 함성을 지르는지 알고 있는 어재연은 피식 웃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미군에 전파된 파울스 치킨, 현대의 양념치킨과 흡사한 요리는 모든 장병들의 사랑을 받았다. 노예 신세였던 폴은 셔먼의 지원을 받아 마차를 타고 전선을 돌아다니며 진정한 파울스 치킨을 판매하였다.

어설프게 만든 가짜 대신 진짜 파울스 치킨을 맛본 미군은 이를 ‘황금마차’라 칭송하였다.

심지어 폴과 네 명의 흑인 요리사들을 칭송하는 노래까지 불러댔다.

“폴 쉐프가 온다! 모두 배는 비워 두었나!”

“진짜 파울스 치킨을 먹을 수 있으니 당연히 비워두었지!”

“온다! 폴 쉐프의 황금마차가 온다!”

자신들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폴이 다가오자 병사들은 군침을 흘리면서도 야유를 시작하였다. 평상시의 야유가 아닌 억지로 욕하는 수준에 불과한 야유였다.

“야! 기름 냄새 난다! 놈들이 기름 튀기러 온다!”

“이번에는 마늘 치킨을 만들어 냈다면서? 그 냄새나는 향신료를 어떻게 먹어!”

“이 시커먼 놈들을 보았나! 먹물 치킨을 만드는 건 어때!”

평상시에는 흑인을 목화 따는 기계로 보던 미군 장병들은 억지로 욕을 내뱉으며 황금마차로 다가갔다.

폴은 이들이 입으로는 욕을 내뱉어도 눈이 웃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반갑게 외쳤다.

“여러분들을 위해 치킨을 튀겨 드리겠습니다! 미리 만든 치킨이 많이 있으니 어서 오시지요!”

마차에서 미리 튀겨낸 치킨이 산더미처럼 내려왔다. 여기에 파울스 소스와 각종 소스를 담은 통, 그리고 치킨을 계속 튀겨낼 수 있도록 닭고기가 산더미처럼 쌓였다.

미군 병사들은 군침을 흘리며 접시를 들이밀었다. 다시 튀겨낸 치킨에 파울스 소스가 적셔지고 폴이 인사를 올리며 말하였다.

“뜨거울 때 드십시오!”

“오냐! 알았다 이 검…… 검둥아!”

억지로 윽박지르던 미군 병사는 몸을 돌리자마자 함박웃음을 지으며 뒤로 돌아갔다. 다음 병사는 당당하게 접시를 내밀며 말하였다.

“나는 마늘 치킨으로!”

“여부가 있겠습니까!”

파울스 치킨 다음으로 인기 있는 치킨은 마늘 치킨이었다. 튀김옷 위에 걸쭉하고 새콤달콤한 소스를 끼얹고 이 위에 으깬 마늘을 한 줌 얹어주었다.

다들 억지로 욕을 하면서 치킨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폴과 동료들은 정신없이 큰 닭의 살을 발라 닭고기를 얇게 잘라내 염지하고, 튀김옷을 입히고 마지막으로 튀겨내 소스를 발라주었다.

그러던 중 병사들이 모세의 기적처럼 대열을 열어주었다. 명목상으로는 노예 주인이며 실질적으로는 동업자 관계인 셔먼이 방문하여 폴에게 반갑게 인사하였다.

“폴! 요즘 온몸에 기름이 번질번질 한데?”

“셔먼 소령님 아니십니까!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어 대위 덕분에 잘 지내고 있지.”

1년 동안 저격 소대로 수많은 전과를 세운 셔먼은 부와 명예 그리고 출세를 모두 거머쥐었다. 파울스 치킨의 판매 수익이 삼만 달러가 넘어가 사만 달러에 육박하였다. 이마저도 어재연과 폴에게 상당수의 수익을 떼어준 결과물이었다.

셔먼은 기름으로 범벅된 폴과 거리낌 없이 악수를 나누며 말하였다.

“정말 대한으로 갈 생각인가? 여기 남아서 파울스 치킨을 더 판매해보지?”

“언제까지 치킨만 튀기고 살 생각은 없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대한제국에서 더 많은 요리를 만들 생각이 가득하니까요.”

“대한제국의 전통 음식 가운데 자네들의 음식과 겹치는 게 있기는 하지. 그러면 대한제국에 가서 꼭 성공하게.”

이미 폴은 흑인들이 즐겨 먹는 내장요리를 많이 창조해 냈다. 매운맛과 많은 마늘을 넣은 내장 요리는 미국에서는 흥행하기 힘든 요리라도 대한제국에서는 통할 것 같았다.

이후 항복 협상이 진행되며 파울스 치킨이 더더욱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마침내 미국과 멕시코의 조약이 체결되기 직전, 대한제국은 그토록 원하던 사과의 뜻을 담은 국서를 전달받았다.

“이런 굴욕을 겪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그러기에 말을 조심하셨어야 합니다.”

대한제국은 공식적으로 멕시코의 사과 문서를 받아들였다. 아직 포로 신세인 산타 안나의 서명을 마지막으로 의원들과 각지의 귀족들이 사죄의 뜻을 담은 서신을 작성하였다.

이제 대한제국이 전장에 머무를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최응은 마지막으로 윈필드 스콧 장군과 악수를 하며 말하였다.

“참으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미국의 강대함도 우리 대한제국이 아직 열강으로 자리매김할 수 없다는 사실조차 알게 되었지요.”

“제가 보기에는 대한제국이 더더욱 강대해질 것 같아서 염려됩니다.”

윈필드 스콧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최응을 째려보았다. 그러자 이최응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답하였다.

“그러면 저와 함께 상륙작전에 참가한 메튜 페리 제독이 함대를 이끌고 침공할 것 같군요.”

“농담 한번 잘하시는군요. 가는 길이 제법 머니 단단히 준비하고 돌아가십시오.”

1847년 7월 귀향길에 오른 대한제국의 군대는 두 달 뒤인 9월 20일 제물포에 도착하였다. 대부분 한양 출신인 장병들은 제물포에 모인 가족들과 포옹하며 해후를 나누었다.

세상 반대편에 떨어져 지내던 남연군의 가족들도 한자리에 모였다.

박현상과 조일준 또한 소의 뼈를 담은 가짜 묘지에 제사를 올렸고 모두가 한가위를 맞이하여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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