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16장 3화 과학적 실패
본래 역사의 흥선대원군, 여기서는 흥선군 이하응이라 불리는 종친은 오랜 유럽 방문 끝에 1847년 8월 말 대한제국에 귀환하였다.
그는 아일랜드를 떠나 대한제국으로 향하는 중 영국, 프랑스 그리고 벨기에를 거쳐 연구 성과를 공유하고 감자 역병에 대한 논문을 작성하였다.
이 동안 칭제건원을 달성한 조선은 대한제국이 되었고 그의 신분 또한 군(君)에서 공작(公爵)으로 올라갔다. 한양으로 돌아온 이하응을 효명제가 맞이하였다.
“내가 과학에 대한 지식은 그리 많지 않으나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하였구나. 부여왕 또한 흥선공의 방문을 애타게 기다렸다.”
예전 작위는 남연군이며 봉왕(封王)되어 부여지방, 요동의 동북쪽 일대를 통솔하는 부여왕이 된 이구도 이하응을 맞이하는 자리에 있었다.
효명제는 이하응에게 친히 작위를 수여하였다.
“종친의 일원이자 막대한 공훈을 세운 이하응을 공작의 자리에 봉한다.”
작위 수여 예식이 진행되고 이하응에게 사망 이후 국가로 환수될 일천 결의 봉토(封土)가 주어졌다. 모든 예식이 끝나자 이하응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뜻을 밝혔다.
“신의 능력은 보잘 것 없사옵니다. 그저 밀려오는 재앙을 피하여 몸부림을 쳤사옵니다. 신을 이토록 어여삐 보아주시어 부끄러울 따름이옵니다.”
“몸부림이라 하지 말거라. 각국의 군주들과 귀족들 심지어 수많은 서역의 백성들이 대한제국에 감사의 뜻을 전하였다.”
효명제는 수 없이 전달된 국서를 보여주었다. 국서는 물론이고 대한제국의 자금 지원으로 곡식을 사들인 아일랜드의 시민들마저 어떻게든 편지를 보내 감사를 표시하였다.
이하응은 물론 부여왕 이구의 눈에서 한 줄기 눈물이 떨어지고 모두가 박수갈채를 보냈다.
효명제는 이하응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의 업적에 대해 평가하였다.
“자고로 재화(災禍)가 밀려올 때 피해가 커지는 이유가 있다. 재앙의 징후를 포착하지 못하거나 재앙이 일어난 직후 대처를 하지 않으면 심대한 피해를 입는 법이다.”
“신이 재앙을 알리기 위하여 사력을 다하였으나 결국 막아내지 못하였사옵니다.”
“사람이 만들어 낸 재앙은 막아낼 수 있어도 천재(天災)를 막아낼 수 있더냐? 하늘의 재앙을 만나면 재앙이 밀려옴을 공표하고 백성을 깨우치는 것이 가장 합당하다.”
이하응의 머릿속에서 수많은 생각이 교차하였다. 말을 죽어도 안 듣는 서양의 군주들과 관료들, 굶주려 피골이 상접해 가는 와중에 자신만 바라보던 순박한 아일랜드 사람들.
옆 동네에서 사람이 굶어 죽어가는데 자신의 손해를 두려워하여 손을 벌리지 않던 영국의 부유층들, 이들에게 지지율을 확보하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던 정치인들.
그 모든 사람들을 만난 이하응은 울분을 쏟아냈다. 그는 오로지 눈물을 쏟으며 고개를 숙였고 효명제는 다 이해하였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일전에 흥선공이 보낸 서신을 읽은 적이 있다. 학문에 발을 들였으나 성과는 미진하고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은 남을 가르치는 것이라 하였지.”
“신의…… 신의 재주가 부족하여…… 억지로 찾았을 뿐이옵니다.”
“얼마나 좋은 일이더냐. 짐이 태자를 가르치려 하여도 재주가 없어서 다른 이들에게 교육을 일임하지 않더냐? 훌륭한 일이니 마음에 새겨 두겠노라.”
이하응은 눈물을 멈추고 효명제를 바라보았다. 얼마나 호된 생활을 하였는지 그의 통통하던 볼이 쏙 들어가고 십 년은 나이를 먹은 외모로 돌변하였다.
효명제는 이하응에게 새로운 대학의, 일본의 덴노가 설립하는 가쿠슈인(学習院)의 총장 자리를 추천하려 하였다. 그러다 이하응에게 부족한 점을 떠올린 다음 권고하였다.
“여독을 모조리 해소하고 구월에 실시되는 국립이학대학 졸업식에서 학위를 받도록 하여라. 박사 학위를 이수하면 흥선공에게 새로운 자리를 추천할 것이다.”
“신을 이토록 어여삐 보아주시니 반드시 학위를 이수하겠사옵니다!”
효명제는 그동안 덴노가 보낸 요청을 완수하기 위해 많은 종친들에게 질문을 하였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종친도 가쿠슈인 총장 자리에 오르려 하지 않았다.
정치적 자살이며 종친으로서의 권위만 남을 뿐 영향력도 상실한다. 심지어 발달하지 않은 일본에 오랜 기간을 머물러야 하니 모두가 거절하였다.
반면 이하응처럼 경험을 쌓은 종친이라면 응할지도 몰랐다. 이러한 효명제의 기대에 부응하듯 이하응은 이틀 동안 남연군을 만나 여독을 해소한 뒤 바로 국립이학대학에 들어왔다.
“흥선공 이하응 총장님께 인사를 드립니다. 유럽에서 여러 사소한 일을 처리하였습니다.”
“사소한 일? 제가 직접 방문하여도 불가능한 일 같은데 너무 겸손하시군요.”
조일준은 공작의 자리에 오른 이하응에게 존댓말을 하였다. 이 존댓말에 잠시 넋이 나간 이하응은 손사래를 치면서 말하였다.
“아닙니다! 총장님께서 제자인 저에게 굳이 존댓말을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총장님이 유럽에 방문하셨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듣고 바로 움직였을 겁니다.”
“제가 방문하였다면 프랑스는 몰라도 영국 과학자들이 질시를 했겠지요.”
“제가 견딜 수 없습니다! 아무려면 좋으니 제발 존댓말은 하지 말아 주십시오.”
“알겠네. 아무려면 좋으니 자네의 치적은 대단하다 못하여 월등하다네. 내가 아일랜드에 있었다면 아무도 설득할 수 없어서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었을 거야.”
이하응은 억지로 웃으며 조일준의 반말을 받아들였다. 스승과 제자 사이라면 이래야 마땅한 법이라 생각하던 이하응은 반쯤 완성된 논문을 보며 눈을 크게 뜨고 조일준을 바라보았다.
“총장님! 이건 제 감자역병 논문이 아닙니까?”
“자네가 바쁠 줄 알고 미리 자료를 취합하였지. 졸업식은 한가위를 열흘 앞둔 다음 달 13일이야. 고작 보름이 남았는데 그동안 논문을 완성할 수 있겠나?”
거의 서재 하나를 가득 채울 자료의 핵심이 20페이지 내외의 논문으로 간추려져 있었다. 추가할 자료는 수집한 역병의 전파와 품종별 저항력 차이가 전부이다.
심지어 이하응이 가까스로 생각해 내던 논문의 맺음말도 조일준이 대략적으로 작성해 두었다. 조일준이 자신의 연구를 꾸준히 지켜보았음을 알아차린 이하응은 고개를 숙이고 말하였다.
“완성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열흘 이내에 완성 가능합니다!”
“그러면 삼 일 정도는 시간이 비는군. 교수들과 인사를 올리고 자네들과 친한 사이였던 이파(二坡)를 비롯한 친구들도 만나도록 하게.”
“이파라 하시면 파스퇴르와 파브르군요. 어느새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친구들이 미국에서 사업체를 경영하였는데 파스 앤 파브(Pas & Fab)였거든. 영어로는 파스팹이라 부르던가? 아무튼 돌아왔으니 한번 만나보게.”
이하응은 바로 몸을 돌려 두 학부생을 만나러 갔다. 자신이 연구에 전념한 동안 기업을 만들어 성공하였다니 가슴이 뛰었다.
연구실 한구석에 마련된 휴게실에 파스퇴르와 파브르가 있었다. 둘은 줄담배를 피우며 이하응과 눈이 마주치더니 부끄러운 듯이 고개를 숙였다.
“왜 그러나? 미국에서 사업체를 경영하였다면서?”
“완벽히 실패해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파브르는 파이프 담배에서 재를 털어내고 다시 담뱃잎을 꾹꾹 눌러 담았다. 이하응이 계속 바라보자 파브르는 다시 피어오르는 담배연기와 함께 당시의 일을 이야기하였다.
“완벽히 부패 방지 처리를 한 통조림을 판매해 보았습니다. 저와 루이가 철저히 관리했는데 원료 자체가 부패하였으면 아무 의미가 없더군요.”
조일준이 주장한 세균 이론은 국립이학대학의 핵심 이론이었다.
가열, 살균 그리고 각종 화학처리를 통해 물질을 부패시키는 ‘세균’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세균을 제거해도 이들이 남긴 독성 물질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하응도 이를 떠올리고 기초적인 사항을 지키지 못한 파스퇴르와 파브르를 질책하듯 혀를 차며 말하였다.
“당연한 일 아닌가? 상한 밥을 다시 끓인다고 배탈이 안 나는 줄 아는가? 세균 이론에 의하면 모두 소멸된 세균도 독성을 남기네. 당연히 배탈이 나지.”
“어제 갓 잡은 생선이 부패하다니 말이나 됩니까? 애초에 그 문제 하나도 아니고 많은 문제가 있었지요.”
파브르는 깊게 담배연기를 빨아들였다. 독한 연기와 함께 파브르의 머릿속에서 당시의 일이 떠올랐다.
* * *
국립이학대학, 당시에는 그랑제콜 조선 분원이라 불리던 대학에서 학위를 이수한 파스퇴르와 파브르는 졸업 이전부터 여러 사업체에 사업 제안서를 제출하였다.
[새로운 개념의 통조림을 개발하였습니다. 기존의 통조림과 달리 장기 보관이 가능하며 맛 또한 우수합니다. 대량의 면실유와 신형 캔 기술의 도입이 필요합니다.]
세계 각국의 기업체는 물론 부호들에게 보낸 제안서에 모두가 다른 반응을 보였다. 먼저 이 둘의 고국인 프랑스는 보수적인 성향이 강해 통조림이라는 말에 질색하였다.
-통조림은 군인들이 억지로 배를 불리기 위해 먹는 음식에 불과하네. 더군다나 수입품인 면실유를 사용한다고? 단가가 얼마나 올라갈지 모르겠군.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그나마 긍정적으로 답한 국가는 영국이었는데 이들은 파스퇴르와 파브르를 통해 다른 이득을 얻어내려 하였다.
-영국 본토에서 제조하면 단가가 너무 올라갑니다. 벵골 식민지에서 기르는 목화로 면실유를 만들고 통조림 제조공장도 만들어보시겠습니까?
1만 파운드, 조선 신냥으로 25만 냥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 지원도 들어왔다. 물론 면실유 제조공정의 특허료가 5만 파운드이니 아예 후려치는 수준이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완벽한 대답이 돌아왔다. 미국 남부의 유대인 사업체는 파스퇴르와 파브르에게 아무런 조건도 제시하지 않고 몸만 오라 답변하였다.
파스퇴르와 파브르는 젊은 혈기를 앞세워 사업을 추진하였다. 미국으로 건너간 둘은 조지아 주에서 면실유, 비누 그리고 쇼트닝을 만드는 유대인 사업가에게 인사를 건넸다.
“루이 파스퇴르라 합니다. 그랑제콜 조선 분원에서 학사 학위를 이수하였습니다.”
“장 앙리 파브르라 합니다. 저 또한 루이와 함께 학위를 이수하였습니다.”
“훌륭한 청년들이로군. 듣자 하니 닐슨 조 아래에서 학문을 익혔다면서?”
“저희는 프린스 흥선의 휘하 연구생이었습니다. 제자의 제자지요.”
유대인 사업가 카우프만은 둘과 악수를 나누고 계약을 체결하였다. 1만 달러의 투자를 실시할 예정이며 이 자금 중 절반은 통조림 공장 설립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우리 조지아 주를 돌아보고 어떤 통조림을 만들지 알아보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미국인의 식생활을 체험해 보겠습니다!”
미식의 선구자인 프랑스 사람들에게도 미국의 식생활은 엄청난 수준이었다.
둘은 며칠 동안 시장을 조사한 다음 레스토랑에서 생굴 수십 개를 쌓아놓고 대화를 나누었다.
“장, 미국은 풍족하다 못해 자원이 넘쳐나는 나라야. 미국 서민보다 우리 프랑스의 귀족들의 식사가 부족할걸?”
“나도 봤어. 일개 공장 노동자가 스테이크에 탄산수를 마시고 입가심으로 베이컨과 칠면조 햄을 마구잡이로 먹어치우지.”
“그런 사람들이 금요일 날 지켜야 하는 금육(禁肉)에는 뭘 먹고 사는지 알지?”
“루이 내가 바본 줄 알아? 당연히 알지. 바닷가라면 신선한 생선을, 내륙의 사람들은 억지로 절인 청어나 말린 대구를 먹잖아.”
미국인 대다수는 독실한 개신교 혹은 가톨릭 신자였다. 이들은 쉴 새 없이 고기를 먹어치우다 금요일에는 교리에 따라 고기를 입에도 대지 않았다.
대신 절인 청어나 훈제 청어 혹은 말린 대구로 음식을 해 먹었다. 파스퇴르는 굴을 하나 먹은 뒤 위스키를 한 모금 들이켜고 그 독한 맛에 눈을 찌푸리고는 말하였다.
“장, 이 사업 무조건 성공할 거야. 다른 나라에서는 너무 비싸서 먹지도 못하는 통조림을 이 나라에서는 금육을 지키기 위해 아무나 뚜껑을 열 테니까.”
“사실 더 성공할 수 있는데 성공 못 해서 아쉬울 뿐이야. 훈제 굴 통조림을 만드는 회사가 여럿 있는데 이 생각을 먼저 할 줄이야.”
“굴 통조림? 나중에 사업을 더 확대해서 굴 통조림 공장도 접수하면 어떨까? 굴을 닥치는 대로 통조림으로 만들어 프랑스에 수출하면 떼돈을 벌 거야!”
“그러면 스승님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파스퇴르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었고 파브르가 이를 맞잡았다. 혈기에 넘치는 두 청년은 다음 날부터 수많은 해산물을 통조림으로 만들며 맛을 평가하였다.
“흰 살 생선을 통조림으로 만들면 맛이 아예 없어지거나 말린 생선과 다를 게 없네.”
파브르는 부풀어 오른 배를 쓰다듬으며 결론을 내렸다.
대구를 비롯한 하얀 살 생선은 기본적으로 맛이 부족하여 소스와 조리 중에 추가된 조미료로 맛을 돋운다. 통조림에서 맛을 내려면 건조나 염장을 통해 수분을 응축해야 한다. 결국 햇볕과 바람에 말린 건조 생선보다 먹기 불편하고 비싼 물건이 되었다.
조개 종류는 지나치게 향이 강하여 캔을 뜯은 순간 역겨운 비린내가 밀려왔다.
새우와 게는 그나마 쓸 만한 녀석이지만 다른 문제가 있었다.
“새우 껍질을 까내다가 열 받아서 죽겠네! 이건 게 보다 더하잖아!”
파스퇴르는 통조림에 들어가는 것과 동일한 가공을 거친 새우 껍질을 까다 분통을 터트렸다. 기름이 묻은 껍질이 계속 손에서 미끄러져 몇 번이고 실패하였다.
파스퇴르 앞에는 수많은 새우 껍질과 껍질을 까다 뭉개진 새우가 있었다. 심지어 손이 미끄러져 잔가시에 찔리기까지 하였다.
파브르는 소독약을 가져와 파스퇴르에게 건네주며 말하였다.
“루이, 그럼 껍질을 미리 깐 새우 통조림은 어때?”
“인건비 문제가 있잖아. 더군다나 소금이나 식초에 절인 새우보다 나을 게 없고.”
답답한 마음에 수산물 시장에 향한 파스퇴르와 파브르는 산더미처럼 쌓인 굴을 보며 군침을 삼켰다. 경쟁사만 없다면 저 굴로 당장 통조림을 만들 수 있으리라.
다른 생선을 찾아 주변을 살피던 둘의 눈에 거대한 물고기가 들어왔다. 사람보다 거대하며 통통한 몸을 자랑하는 이 물고기가 크레인에 꼬리가 걸려 입으로 피를 내뿜고 있었다.
“낚시로 잡은 다랑어입니다! 경매 시작하겠습니다!”
“다랑어를 누가 먹는다고.”
파스퇴르와 파브르의 시선은 거대한 다랑어에 집중되었다. 누군가 호기심에 이 달러, 신냥으로 약 10냥을 불렀으나 그 이상 가격이 올라가지 않았다.
“삼 달러!”
파브르가 반사적으로 가격을 높이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모두가 파브르를 바라보며 비꼬듯이 말하였다.
“저 젊은 놈 제정신인가? 다랑어를 저 가격에 사들여?”
“몰라, 억양을 보니 프랑스에서 이주한 사람 같은데 세상 물정 모르나 보지.”
고작 3달러에 240㎏에 달하는 거대한 다랑어가 파스퇴르에게 낙찰되었다. 수레로 다랑어를 가져온 파스퇴르와 파브르는 식칼로 다랑어를 해체하였다.
수많은 시도 끝에 너덜거리는 다랑어 살이 한 덩어리 나왔다. 이 살을 통조림과 동일한 방법으로 가공한 둘은 며칠 뒤 감격에 겨워 말하였다.
“붉은 살 생선이 이렇게 맛이 있을 줄이야!”
“기름이 너무 많고 비린내가 심해서 잘 먹지 않는 생선인데…… 통조림이랑 잘 어울리네?”
현대의 참치 통조림과 비교하면 살이 억세고 비린내가 심하였으나 이 시대 기준으로는 합격점이었다. 마침내 최종 사업 계획서가 완성되고 카우프만이 이를 받아들였다.
“천덕꾸러기 생선인 다랑어로 통조림을 만들 계획이라?”
“한번 드셔보시지요. 맛이 아주 좋지는 않아도 통조림으로 완벽한 생선입니다!”
카우프만은 삶은 뒤 면실유로 절인 다랑어 살을 한 점 맛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사업을 성공한 그가 보기에는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 두 젊은 청년은 조일준의 제자요 대한제국에서 학문을 이수한 사람이다. 카우프만은 이들의 실패를 염려하다 조일준의 서신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장 공장을 가동하고 인부를 마련하게. 앞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질 걸세.”
“카우프만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파스퇴르와 파브르는 다음 날부터 정신없이 움직였다. 각지의 어부들에게 다랑어 90㎏당 1달러의 구매 계약을 체결하였고 다랑어 해체에 능숙한 사람을 모집하였다.
“안전 제일! 우리는 안전한 통조림을 만든다!”
-안전 제일! 우리는 안전한 통조림을 만든다!
파스퇴르는 이번 통조림 사업에 사활을 걸었다. 세균 이론을 접목하여 모든 이상 물질을 파괴할 수 있도록 통조림을 110도의 고온 고압에 가열하였다.
내부에 있는 모든 세균은 가열 과정에서 파괴되었다. 훗날 주석 땜질이나 캔 자체가 손상되면 몰라도 멸균된 통조림 내부에 세균은 존재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얼음을 가져와 다랑어의 신선도를 보존하려 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들이 예상하지 못한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하였다.
“우욱! 장 사장님! 이 다랑어 상한 것 같은데요?”
“다랑어가 상한 것 같다고? 이거 어제 잡아 온 다랑어라 오늘 통조림에 사용한 물건인데?”
공장 식사를 만들던 요리사가 코를 틀어막은 채 파브르를 찾았다. 공장 내부는 비린내와 피 냄새로 인하여 감지할 수 없었으나 식당에 옮겨진 다랑어에서 쉰내가 느껴졌다.
다랑어의 등뼈 인근부터 살점이 거무죽죽하게, 마치 시체의 색처럼 변질되었다.
파브르가 이를 구워 먹었는데 거의 부패한 물건이라 바로 구토를 하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생선이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상해버렸다고?”
파스퇴르는 구역질을 하는 파브르를 바라보고 다시 다랑어를 확인하였다. 그리고는 이 다랑어를 잡아 온 어부를 찾아가 항의를 하였다.
“당신들 계약 제대로 이행한 것 맞소? 갑자기 다랑어가 상하다니 보관을 잘못한 것 아니오?”
“계약은 똑바로 이행했습니다. 항해 일지도 작성하였고 회항하기 전에 다랑어를 잡아들였지요. 약간의 시간 차이는 있기는 합니다만…….”
항해일지를 확인하니 답이 나왔다. 지금까지는 해안 인근까지 밀려온 다랑어를 잡아 왔으나 개체수가 줄어 조금 먼 바다까지 나아가서 다랑어를 잡아들였다.
처음 한 달 동안 잡힌 다랑어는 낚이고 6시간 이내에 항구로 들어와 12시간 정도면 공장까지 운반되었다. 반면 이 다랑어는 공장에 들어오는 데까지 18시간이 걸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장, 너는 뭘 좀 알 것 같아?”
“어떻게 되기는. 죽은 다랑어가 염장하지 않은 고등어처럼 빨리 상했나 보지.”
파브르의 말을 들은 파스퇴르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공장으로 갓 들어온 다랑어에 손을 짚었다. 놀랍게도 다랑어는 자신의 손과 비슷할 정도로 따듯했다.
다랑어는 빠르게 부패하는 붉은 살 생선인 데다 너무 거대한 생선이라 체온 또한 높았다. 헤엄을 칠 때는 혈액이 순환하여 바닷물로 몸을 계속 식혀서 버틴다.
결국 다랑어가 죽는 순간 혈액 순환이 끊겨 체온이 계속 상승하며 급격히 부패하였다.
파스퇴르는 혀를 차며 세균 이론을 떠올렸다.
“이러면 안전한 통조림을 만들어도 답이 없어! 장! 이걸 어떻게 하면 좋지?”
“이미 가열과 압력솥을 통한 멸균 과정을 거쳤는데 무슨 소리야?”
“멸균 과정을 거쳐도 독소는 사라지지 않아! 상한 음식을 다시 데운다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지는 않잖아!”
대처 방법은 다랑어의 신선도 관리였다. 체온으로 인해 부패하기 전 차갑게 식히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다랑어를 잡고 즉시 목을 따서 피를 빼고 뱃속을 비워내 얼음을 채워 식히시오.]
결국 다랑어의 단가는 200파운드, 약 90㎏당 3달러로 상승하였다. 이런 대처에도 불구하고 어부들은 대충대충 일하였다.
파스퇴르와 파브르는 해체된 다랑어를 일일이 확인해 부패 유무를 확인해야 하였다. 이러한 고난 속에 첫 다랑어 통조림이 팔려 나갔으나 시장의 반응은 더욱 냉정하였다.
“이거 썩은 생선 아닙니까! 뭐 이런 물건이 다 있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통조림을 뜯자마자 질겁하여 상인에게 항의하였다. 이 상인들은 다시금 파스퇴르와 파브르의 공장으로 달려왔다.
시커먼 다랑어 살을 확인한 파스퇴르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분명 모든 공정을 마치고 봉입할 때에는 옅은 갈색의 다랑어 살이라 먹음직스러웠다.
시간이 흐르고 다랑어 살점 내부의 혈액이 캔을 코팅한 니켈에 반응하여 시커먼 색으로 변색되었다.
이 과정은 부패나 세균과 전혀 연관이 없는 화학 반응이었다. 현대에 제조되는 통조림은 이를 막기 위해 합성수지로 내부를 코팅하나 이 시대에는 불가능한 기술이었다.
결국 멸균된 다랑어 통조림도 시커먼 색으로 변질되었다. 맛에는 이상이 없어도 너무나 흉측한 몰골이었다.
상인들은 헛구역질을 하며 정신이 나간 파스퇴르 대신 옆에 있던 파브르에게 따지고 들었다.
“썩은 통조림을 먹으라고? 프랑스에서는 통조림으로 비료를 만드나?”
“색이 검게 변한 거라 먹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한 달 동안 면실유가 속에 침투해서 맛이 좋아졌어요!”
파브르는 통조림을 숟가락으로 퍼먹으며 더 나아진 맛을 느끼고 정상적인 물건이라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 반응은 냉정하다 못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여기에 더욱 큰 문제가 발생했다. 둘은 물론 공장 노동자들이 사력을 다하여 노력하였음에도 통조림에 간혹 상한 다랑어 살점이 섞여 들어갔다.
멸균 과정을 통해 모든 세균이 제거되어도 세균이 만들어낸 독소는 남아 있었다. 이로 인해 통조림을 먹은 사람들 가운데 몇 명이 배탈을 앓았다.
[프랑스의 두 애송이, 비료를 담은 통조림을 만들다.]
[금육을 지키려 다랑어 통조림을 먹은 일가족, 장염으로 한 달 내내 금육을 지켜]
조지아 주의 신문 기사를 확인한 파스퇴르와 파브르는 싸늘하게 비어버린 공장을 확인하였다. 그들 입장에서 억울하다 못해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다랑어 통조림 중 상한 살점이 들어간 불량품은 1,000개당 5개 내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부는 도망쳐버렸고 통조림은 모조리 반품되어 창고에 쌓여 버렸다.
이러한 둘에게 카우프만이 다가왔다. 그는 둘을 공장 구석에 앉혀놓고 와인을 따라주며 말하였다.
“사회의 냉정함을 위하여, 건배.”
“건배.”
안주로 나온 참치 통조림은 이미 일만 개가 넘게 쌓여 있었다. 무게로 따지면 9톤에 달하는 막대한 양이며 이 모두가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카우프만이 투자한 일만 달러 중 회수한 것은 이천 달러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카우프만은 계속 술만 들이켜는 두 젊은이들에게 말하였다.
“닐슨이 얼마나 대단한 과학자인지 알겠는가? 그는 기술을 만들어내고 이를 완벽하게 적용하기 위하여 더 오랜 시간을 감추고 스스로 연구하는 것 같네.”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럴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신중히 파악했을 겁니다.”
파스퇴르의 거대한 자존심은 짓뭉개지고 압축되었다. 공장을 훑어본 파스퇴르는 파브르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이번 일을 주도한 건 나야. 내가 몇 년이 걸려도 좋으니 목화 농장에서 일이라도 해서 채무를 모두 갚아볼게.”
“우리는 한 몸이야! 나도 같이 일 할 테니 염려 말라고.”
“둘 다 일할 필요는 없네. 닐슨 조가 나에게 서신을 하나 보내왔더군.”
카우프만이 건네준 서신의 내용을 확인한 파스퇴르는 멍한 표정으로 이를 바라보았다. 사업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으며 손해가 얼마가 되든 간에 이를 조일준이 갚아나가겠다고.
“비싼 값을 치렀으니 다음번에는 실패하지 말게. 이제 뭘 해야 할지 알겠는가?”
“알고 있습니다! 스승님의 아래에서 학문을 익혀서 성취를 거두겠습니다!”
이틀 뒤, 파스퇴르와 파브르는 모든 짐을 정리하고 대한제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카우프만은 비어버린 공장 내부를 청소하며 다음 계획을 진행하였다.
“전설의 비누로 돈을 왕창 벌어뒀으니 굴 통조림 업체나 인수해 볼까?”
손해의 절반은 통조림 공장 건립비용이라 다시 가동하면 손해라 볼 수도 없었다. 여기에 만 개가 넘는 다랑어 통조림을 떠올린 카우프만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소비할 방법을 마련하였다.
“남은 다랑어 통조림은 아무것도 모르는 아일랜드 이주자들에게 팔아치우든가 해야지. 아니면 파스퇴르의 말대로 오 년을 보존할 수 있으니 계속 보존했다 기근에 풀어볼까.”
아일랜드 이주민들도 바보는 아니어서 통조림을 거의 먹지 않았다.
곧 카우프만의 기억에서 사라진 통조림은 조지아의 낡은 창고 안에 잠들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