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75화 (175/345)

175화

16장 2화 두 가지 설득

조일준과 대한제국 병사들은 각지의 농장을 방문하여 피해 규모를 확인하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조일준이 만들어둔 콜라나무 농장은 아무 피해가 없었다.

다음으로 조일준이 향한 곳은 인근의 기름야자 농장과 고무나무 농장이었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져 함락당한 농장에는 위령 미사가 거행되고 있었다.

-생명이요 부활이신 주님, 국가를 위해 온 힘을 다한 외인부대 백성과 반역자들에게 살해당한 바오로 신부의 영혼에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이들이 영원한 안식을 얻게 하소서.

라틴어로 진행되는 기도를 확인한 조일준은 눈을 굴리며 프랑스 장교를 바라보았다. 그는 한숨을 깊게 내쉬고는 피해 상황을 보고하였다.

“외인부대 병사 삼백이십여 명과 성당에 머무르던 신부와 수도사 스무 명이 이번 참극에 희생되었습니다. 여기에 해병대와 시민군에서 육십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신부님들이 희생당하다니요?”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끔찍한 참극이었습니다. 혁명 정부에서 저지른 행위처럼 사지를 날붙이로 난자하고 성당을 불태워 송두리째 무너트려 버렸지요.”

조일준은 가톨릭 신자로 이 시대의 프랑스인이 얼마나 종교에 몰두하고 이들을 보호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프랑스는 혁명 이후 이어진 광기로 스스로의 종교를 탄압하였다.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로 폭주하기 시작한 혁명정부는 종교인과 가톨릭 자체를 제거 대상으로 규정하였다. 여기에 혁명에 절대 충성하지 않는 모든 이들이 반역자로 규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방데라는 도시 전체가 소멸하였으며 수많은 이들이 강제로 혁명에 동참하였다. 이들은 혁명을 강요받았고 스스로 다니던 교회를 습격하고 불태웠으며 성직자를 학살하였다.

이후 1년도 지나기 전에 테르미도르 반동으로 로베스피에르가 몰락하였다. 후속 정부인 1공화국과 나폴레옹은 이 행위를 끔찍한 악행으로 규정하였으나 상처가 남아 있었다.

“옛 상처를 헤집고 소금을 발라 버렸군.”

“바로 보셨습니다. 악행이 하나하나 드러날 때마다 우리의 분노가 커졌으며 정당한 보복이 시작되었지요. 그렇다 하여도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았습니다.”

나폴레옹 3세와 대화를 나눈 조일준은 섬뜩한 기분이 들어 장교를 바라보았다. 말을 더듬거리며 ‘나는 보관하라 했는데.’라며 중얼거리던 나폴레옹 3세의 눈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장교는 그 시선을 느끼고 더더욱 자랑스럽게 으쓱거렸다. 조일준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포로들의 상태를 확인하려 하였다.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혹시나 포로들에게 고문을 가하고 있습니까?”

“그러고 보니 우리의 자랑스러운 포로수용소 네 곳이 있군요. 한번 방문해 보시지요.”

잠시 뒤, 인근 토목공사 현장으로 안내받은 조일준은 아무도 없는 공사장을 둘러보았다.

장교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곳저곳이 울룩불룩한 땅을 삽으로 내리찍으며 말했다.

“여기가 포로수용소입니다. 이미 일만 이천 명이 보관되어 있으며 조만간 협조자라 주장하는 배신자 놈들을 재판하여 일만 명 정도 추가로 수용할 예정입니다.”

“야 이 미친놈아! 사람을 산 채로 묻어!”

“저희 입장에서도 많이 참은 겁니다. 나폴레옹 3세께서 명령을 내려서 어쩔 수 없더군요.”

대한제국 병사들은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났고 조일준만 앞으로 나섰다. 현대인의 감성은 물론 전근대 기준으로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니 이를 중단시킬 마음을 먹었다.

“당장 사람들 부르시오. 시민군과 해병대 대표들 말이오!”

“혹시나 닐슨 조께서 새로운 방법으로 배신자를 수용할…….”

“그딴 생각 추호도 없으니까 당장 부르라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흥분을 가라앉힌 조일준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몰려왔고 조일준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닐슨 조를 오래간만에 뵙는군요. 저 기억하십니까?”

“그랑제콜에서 저와 권투를 하셨던 분이지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기나긴 인사 이후 조일준이 의견을 수렴하였다. 분노할 대로 분노한 프랑스인들은 더 많은 학살과 피를 원하고 있었다. 이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감정적인 태도였다.

조일준은 이를 들으며 박현상의 경고를 떠올렸다. 쿨리는 아깝지 않으나 이대로 두면 베트남이 송두리째 프랑스의 식민지가 될 기세라 하였다.

결국 누구의 이득도 아닌 대한제국의 이득을 위해 이 학살극을 뜯어말리려 시도하였다.

“여러분들은 개인의 사소한 감정으로 세상을 보고 계십니다. 학살을 중단하고 국가의 이익을 위하여 행동하시길 바랄 뿐입니다.”

“반역자들을 처형하는 것이 국가의 이득 아니오?”

“개인의 감정을 쏟아내기 위한 행위에 불과하지요! 프랑스가 왜 영국에게 뒤처졌는지 아십니까? 이러한 개인의 감정이 뭉치고 뭉쳐 스스로의 저력을 갉아먹었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이 이런 비판을 하였다면 분노한 프랑스인에게 뭇매를 맞았으리라. 반면 조일준은 프랑스를 위하여 연구 결과를 공유한 명예 프랑스인이자 위인이었다.

언제나 프랑스의 국익을 가져오는 조일준의 말을 모두가 경청하였다. 사람들의 반박이 끊기자 조일준은 이번 사태를 수습할 온건한 방향을 제시하였다.

“제가 국력을 갉아먹지 않는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배신자건 아니건 이번 사태에서 살아남은 쿨리들을 모조리 공사 현장에 투입하십시오.”

“이들이 받을 처벌은요? 하다못해 감옥에…….”

“그러면 감옥 유지비가 나오지 않습니까! 계약 조건을 변경하며 더욱 가혹한 노동으로 반란을 꿈도 꾸지 못하게 관리하십시오.”

프랑스인들은 ‘죽지만 않을 정도로’ 대접하면 적당한 고문이라며 만족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조일준에게 역으로 질문을 하였다.

“그럼 반란을 종용한 한족의 수괴는 어떻게 합니까?”

“옳소! 청나라에 공격을 실시합시다! 청나라 황제가 배상하게 합시다!”

“청나라 황제에게 배상 유무를 묻기 전에 외교 서신부터 보내야지요!”

조일준은 아예 콧김을 뿜으며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번 사태의 전말을 알리고 연판장을 작성한다. 이후 프랑스의 힘을 동원해 국서를 작성하는 방향이었다.

그는 루이필리프의 성격을 생각하면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 사태를 수습할 것이라 판단했다. 조일준의 설득에 프랑스 사람들은 분노를 퍼붓는 대신 연판장을 작성하기 시작하였다.

* * *

대사관 안에 틀어박힌 나폴레옹 3세는 내가 방문하였음에도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시종이 안내한 방 안에서는 흐느끼는 소리만 들려왔다.

노크를 하였으나 반응이 없어서 한참을 기다리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놀랍게도 나폴레옹 3세는 방구석에 웅크려서 나폴레옹의 솜 남편을 껴안고 흐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한센 후작 아니십니까? 제가 대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습니다.”

나폴레옹 3세는 두서없이 말을 늘어놓았다. 자신이 마약을 먹고 돌진한 일, 사람을 죽인 일 그리고 명령을 곡해하여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일까지 말하였다.

“저는 분명 구덩이에 포로를 잘 보관하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까!”

“그야 프랑스 사람들이 분노하면 할 일이지요.”

“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니까요! 이토록 끔찍한 비극이 세상 어디에 있습니까!”

프랑스 사람이 왜 이해할 수 없냐고 반론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나폴레옹 3세는 프랑스 출신이지 프랑스에서 자란 사람이 아니다.

그가 7세 무렵 나폴레옹이 패망하고 부모와 함께 스위스로 망명하였다. 여기서 다시 로마로 이주하였으며 또 스위스로 망명하였다.

이후 잠시 프랑스로 돌아와 봉기를 일으키고 미국으로 추방되었다. 결국 40년에 달하는 인생에서 프랑스 생활은 8년 내외에 불과하다.

그는 분노한 프랑스인이 아니었다. 오로지 손해를 본 스위스인 혹은 유럽의 평균적인 정신 상태로 이번 사태를 해석하였다.

“사람이 포로를 잡으면 몸값을 받아내고 방면을 미끼로 정치적으로 활용해야지! 그래 놓고 아무튼 기력을 찾으라고 강요만 하였지요! 한센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보나파르트 외교관님의 말이 맞습니다. 다만 프랑스에서는 틀린 말이지요.”

“프랑스에서는…… 틀리다?”

“프랑스 사람들은 감정을 터트리기를 좋아하지 않습니까.”

나폴레옹 3세는 인생의 20%만, 어느 정도 인격이 완성될 시기를 감안하면 5% 정도만 프랑스의 영향을 받았다. 오히려 그의 인격 형성은 스위스와 이탈리아에서 더 많이 되었으리라.

그러니 이런 꼴이 벌어졌다. 가뜩이나 마음이 여리고 이지적인 인물이 감정적인 설득만 당하였으리라. 일준이도 감정적인 설득을 시도해 실패할 만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태를 수습할 수 있는 사람은 나폴레옹 3세 말고는 없다. 아직도 갈피를 못 잡는 그의 성격에 맞게 사태를 요약 정리하였다.

“지금도 길거리에는 수없이 많은 단두대가 가동되고 있습니다. 이를 만류하셔야지요.”

“더 많은 처형을 원하던데요? 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추가 설치하였어요!”

“이들의 재산을 모조리 뜯어내고 조리돌림을 하여 친인척까지 죄인으로 만든다고 하십시오. 그리고 적당한 변명, 예를 들면 베트남 개혁 협조와 같은 명분으로 사면하면 될 겁니다.”

폭티와 손발을 맞추라는 소리이다. 공포의 상징이자 이천 년을 거슬러 올라온 백기인 프랑스군이 저런 태도를 보이면 ‘백기’ 당하지 않으려고 화교 모두가 굴복할 것이다.

더군다나 ‘개혁’이나 ‘혁명’ 같은 단어는 프랑스인들이 너무나 좋아한다. 오죽하면 문화 대혁명의 진상이 유럽에 전해진 이후에도 여기에 영향을 받은 68운동이 벌어졌겠는가.

이후에도 많은 조언을 하였다. 프랑스 정부에 요청하여 시민 명예 훈장을 수여하라는 조언, 베트남의 새 시설에 희생자의 이름을 넣으라는 조언 등 프랑스인이 좋아할 만한 말이었다.

“이해할 수는 없으나 올바른 방법 같군요. 그럼 저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아마 내년쯤, 프랑스 정부가 아닌 혁명을 원하는 이들이 소환 요청을 할 겁니다.”

“드디어 유배생활에서 풀려날 수 있게 되었군요!”

마침내 나폴레옹 3세의 정신이 회복되고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가 나폴레옹의 솜 남편에 경례를 하고 날 바라보았는데 당장 돌아가고 싶을 거다.

그건 희망사항일 뿐이고 현실은 훨씬 냉정하다. 잘못하면 프랑스에 내란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정치적인 고려를 추가해 부탁 아닌 부탁을 하였다.

“아직 가지 마십시오. 지금 가시면 프랑스 사람들이 멋대로 혁명을 일으키고 대통령이나 새 황제로 추대할지도 모릅니다. 실패하면 어떻게 될지는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 미친 짓을 왜 합니까! 제가 혁명을 두 번 시도하여 처음은 추방이요 두 번째는 무기징역 이후 유배에 처해졌습니다. 다음에는 사형이라고요!”

“프랑스는 합니다. 하고도 남으니 앞으로 삼 년 정도 여기서 머무르시며 직무를 수행하십시오.”

아마 1년 정도 지나면 루이필리프 정권과 현 내각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올 거다.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베트남에 유배당한 나폴레옹 3세에 주목하겠지.

그러니 정부의 힘이 다 빠져나갈 시기인 3년 뒤에 프랑스로 귀환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 더 머물러 있는 건 힘들 것 같으니 알아서 잘 조율하라 하였다.

이후 폭티와 나폴레옹 3세는 손을 맞잡고 베트남의 개혁을 추진하였다. 우리는 피해자와 노동자를 수습하고 대한제국으로 귀환하였다.

넉 달이 지난 1847년 9월, 내가 예상하지 못한 사태가 벌어졌고 이 소식이 대한제국까지 전해졌다.

공장에서 콜라 레시피를 조율하고 있는 일준이를 찾아가 소식에 대해 말하였다.

“네가 설득을 해도 너무 이상한 방향으로 잘 해버려서 뜻하지 않게 이득이 되었어.”

“프랑스인들을 이상한 방향으로 설득했다고? 현상이 네가 보기엔 내 설득이 통한 것 같아?”

“당연하지. 이번 사건이 가장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간 이유가 프랑스인의 태도 변화야. 이 양반들이 폭력 행위를 중단하고 영국과 비슷한 방향을 선택하게 되었잖아.”

“이 사태가 어떻게 긍정적으로 흘러가?”

나는 애초에 안 될 것이라 생각하고 나폴레옹 3세만 설득했다. 대신 일준이는 프랑스인들에게 감정적으로 호소해서 이들의 생각을 바꿔 놓았다.

그 결과가 너무 긍정적으로 돌아갔다. 일준이에게 각종 외교문서와 영국, 프랑스 그리고 프로이센을 비롯한 유럽의 신문들을 보여줬다.

“네 설득이 통한 프랑스 상인을 비롯한 사업가들이 움직였지. 이들은 연판장(連判狀)을 작성하고 이를 루이필리프가 외교 문서로 승화해서 도광제에게 호소와 항의를 전달했어.”

프랑스에서 전달된 신문 기사에는 사건 전개, 일준이의 설득, 연판장 작성에 대한 과정이 빼곡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루이필리프가 첨삭한 국서가 결국 도광제에게 전달되었다.

이 과정에서 불리한 내용은 검열되었다. 쿨리의 대량 구매나 불법 계약 여부에 대한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쿨리들은 [임시 고용된 청나라 노동자]로 분류되었다. 요약하면 청나라 노동자의 반란을 촉발한 화교에 대한 공식 입장 표명이 요구되었다.

당연히 도광제는 이번 사태에 아무 책임도 없는 사람이라 아무 책임도 없는 답변을 하였다. 이는 이론적으로 올바른 일이나 외교, 정치적으로는 실책이었다.

[불란서와 영길리를 비롯한 서역 열국에서 문제시한 한족 이주자들은 청나라 조정과 아무 연관이 없다. 이들은 수백 년 전부터 나라를 떠나 이주한 사람들이다.]

[반란은 서역의 열국들이 이 나라의 백성들을 학대하였기 때문이다. 기껏 해 보았자 수천여 명의 백성이 고용되었을 것인데 소국(小國)이 대국(大國)의 백성을 통솔하지 못한 것이다.]

이 공식 답변이 전달된 프랑스의 반응은 분노로 수렴하였다.

일준이는 신문을 들고 기사를 읽더니 흥분해서 신문을 절반으로 쪼개며 말했다.

“도광제 이 인간 생각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생각이 있더라도 어중간하게 있으니 이 꼴이지.”

“공식 입장이 이따위라고? 화교들이 유대인보다 못한 신세가 되는데 제정신이냐?”

“지금 동남아를 비롯한 전 세계에 화교가 얼마나 퍼져 나갔는지 도광제가 알 길이나 있겠냐.”

도광제가 화교들이 일으킨 사태에 대해 금전적 피해보상을 실시할 수도 있었다. 그럼 수백만 명에 달하는 화교들이 청나라의 보호를 받고 더욱 왕성히 활동하리라.

이런 기회를 제 발로 차버렸다. 애초에 자신이 명령을 내린 적도 없으니 멋대로 들러붙은 식객(食客)을 쫓아내듯 이번 기회에 관계를 확실히 정립한 것이다.

결국 화교들의 마지막 희망, 청나라로 돌아가는 길마저 막혀 버렸다. 일준이는 찢어진 신문을 마저 읽더니 쓰레기통에 쑤셔 박고 말하였다.

“프랑스인들의 대처가 더 무서운데. 이 양반들 분노를 승화해서 자신들이 후원하는 대학의 총장들, 심지어 각 국가의 주요 인사들을 설득했어.”

“나도 봤다. 이제 유럽의 각국 대학에서 청나라 유학생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면서?”

“청나라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은 인재를 마련할 길도 막혀 버린 거야. 유학이 불가능한데 학문을 어떻게 배우냐?”

도광제의 발언은 간단명료했다. 화교들은 청나라 땅을 떠나 살고 있으니 조정에서 아무 책임도 질 수 없는 보증 안 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프랑스에서는 이를 극단적으로 확대해석해 버렸다. [청나라 땅을 떠난 사람들은 청나라 조정에서 아무 책임도 질 수 없다]이다. 그나마 공식 사절단 정도면 봐줄 수 있다던가.

바꿔 말하면 사절단 일원이 아닌 청나라 유학생이 보호받을 길이 막혀 버렸다. 청나라에서 개인 자격으로 유학을 가면 벌어질 일을 일준이가 웃음을 섞어가며 말했다.

“유학을 가자마자 선배님들의 환영을 받을 거야. 죽기 직전까지 집단 구타를 당할걸?”

일준이는 자신이 겪은 일을 상상하는 듯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한참을 웃더니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제 청나라에 희망이 있을까? 관료는 부패해, 기술 도입은 엉망진창이야, 안에서는 마약이 들끓고 있지. 이제는 사절단은 몰라도 유학조차 못 보내잖아.”

“희망이 없는 수준이 아니고 본래 역사에서 오십 년 동안 벌어질 일을 오 년 동안 당하고 있다. 이대로 이십 년 정도가 흐르면 스스로 분열해서 내란이 터질걸?”

“그 전에 홍수전이 권력을 거머쥘지도 모르고.”

“청나라 권력 따위는 거머쥐라 해. 태평천국은커녕 청나라가 완전히 멸망하고 사상부터 모든 체제가 완벽하게 변해야 희망이라도 보이지.”

청나라의 남은 희망 중 3개가 단숨에 사라져 버렸다.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 돌아올 화교들을 스스로 내쳐버렸다.

여기에 베트남에 대한 영향력도 상실해 버렸고 인재를 육성할 길까지 막혀 버렸다. 프랑스 신문을 보니 이 결과에 대한 촌평(寸評)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아편이 없는 청나라 사람은 용맹한 전사이다. 아편을 먹으면 이렇게 변한다!]

삽화 왼쪽에는 변발을 휘날리며 거대한 폭탄을 짊어지고 달려가는 청나라 사람을 그렸다. 반대로 오른쪽에는 아편 파이프를 물고 신부의 목에 창을 찌르는 청나라 사람을 그렸고.

신문을 확인하다 보니 일준이가 놓친 기사가 있었다.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루이필리프는 제정신인가? 이번 사태는 쿨리들의 자유를 무시한 독단적인 판단 때문이다]

예상대로 프랑스인의 혁명 정신이 불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앞으로 루이필리프가 겪을 일은 본래 역사보다는 못해도 왕좌가 위태로울 수준으로 격화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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