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72화 (172/345)

172화

15장 10화 진흙탕 전투

프랑스 해병대와 장 바티스트 세실의 주관하에 병사 교육과 물자 준비가 진행되었다. 태자 폭티의 지원 물자를 받아들인 해병대 장교가 보고를 올렸다.

“제독님께 보고를 올립니다. 베트남 군대에서 사용하던 우마차를 여든 대 확보하였습니다.”

“우마차 여든 대라. 보급을 이송하기에 충분한 양이로군.”

“또한 짐을 옮기는 용도로 쓸 군마 이백 마리를 비롯한 우마 사백여 마리를 확보하였습니다. 제독님께 감히 말씀드리니 이 소와 말들로 선박에서 사용하는 소형 대포를 운송하십시오.”

젊은 장교가 당당하게 보고를 올리자 장 세실은 시선을 회피하며 괜히 벽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군사적 지식에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하였다.

“그럴 수는 없어. 반란군의 기세를 꺾으려면 하루라도 빠르게 진군해야 한다.”

“네? 이미 충분한 양의 소와 말을 확보하였습니다. 행군 속도도 하루 이십 킬로미터를 넘길 수 있으며 소형 대포를 진군 속도에 맞추어 옮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건 자네 판단이지 내 판단은 아니지. 이미 우기가 시작될 조짐이 보이는데 비라도 내리면 어떻게 되겠나? 사람은 걸어서 진군할 수 있어도 우마차는 애물단지가 될 거야.”

젊은 장교는 장 세실의 말에 의문을 품었으나 제독 직함을 가진 사람이 제대로 된 판단을 할 것이라 넘겨짚었다. 그는 아직도 약간의 의문을 품은 채 보고를 마쳤다.

“이상으로 보고를 마칩니다. 모든 물자는 준비되었으니 명령만 내려주십시오!”

“고생 많았네. 내일 새벽 진군을 실시할 것이니 모두 푹 쉬라 전해두도록.”

장교가 나가자 장 세실은 발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한참을 기다렸다. 그리고 책상 위에 있는 서류 뭉치를 양손으로 움켜쥐어 구기고 갈기갈기 찢으며 짜증을 터트렸다.

“뭐 이딴 인간이 다 있어! 저 인간 정말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조카 맞아!”

그가 나폴레옹 3세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는 데 4시간이 걸렸다. 상황을 여기까지 반전시킨 것도 나폴레옹 3세요, 여기까지 엉망으로 만든 것도 나폴레옹 3세다.

기세등등하게 병사를 만들어낸 것까지는 좋았다. 여기에 자신이 스위스에서 포병 장교 교육을 이수하였다고 자랑하여 지휘권을 달라 하였다.

나름 기대하며 막 소집된 병사들의 훈련을 참관하며 명령을 내리게 하였다. 이 과정에서 나폴레옹 3세의 가장 큰 약점이 드러났다.

“머스킷 일제사격 소리만 들어도 얼굴이 창백해지고! 대포 사격 소리를 듣고 정신을 잃어? 포병 장교 출신이라며! 졸업장은 라따뚜이랑 같이 썰어서 오븐에 구워 먹었나!”

화를 이기다 못해 발로 벽을 걷어찬 장 세실은 방 안을 돌아다니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애초에 나폴레옹 3세의 군사적 지식은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존재할 수도 없었다.

본래 역사의 나폴레옹 3세는 보불전쟁에 참전하자 포성을 비롯한 전장의 소리에 질려 아무 행동도 못 하는 추태를 보여줬다.

그나마도 프랑스 국민의 황제이며 총 지휘관이라는 막중한 짐을 짊어지고 저 꼴이었다. 이러한 짐을 짊어지지 않은 나폴레옹 3세의 정신은 깃털처럼 가벼운 상태였다.

“정신이 종잇장보다 못해! 평상시 정책은 잘 추진하면서 전장에서는 어찌 저렇게 변하냐고! 차라리 말이라도 잘 들으면 내가 지휘를 하고 말지!”

의자에 앉은 장 세실은 아예 울먹거리며 나폴레옹 3세가 방금 전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는 지난 이틀간의 추태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게 선언하였다.

-나는 프랑스 시민들을 전선에 내몬 사람이지요. 내가 최전선에서 돌격해야 큰아버지의 명예를 지킬 수 있고 나 자신의 약속을 지킬 수 있겠군요.

여기까지 생각하자 다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기병 돌격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가장 위험한 전술이며 나폴레옹 3세의 상황을 보니 개죽음이 확정된 상황이었다.

“차라리 전략적 식견이라도 있으면 말을 안 해! 아무것도 없잖아! 화력 지원도 못 받잖아!”

기병 돌격 이전에 적진을 와해시켜야 하였다. 최소한 머스킷 일제사격으로 전열을 붕괴하거나 포격을 퍼부어 적을 혼란에 빠트려야 한다.

가장 중요한 포격은 나폴레옹 3세의 나약한 정신으로 인해 불가능해졌다. 처음 혼절했을 때에는 일사병이라 변명하였으나 전선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면 변명할 수도 수습할 수도 없다.

아예 의자를 짓밟아 부숴버리려던 장 세실은 복도에서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흥분을 억지로 가라앉혔다.

잠시 뒤 워털루 전투에 참가한 장교가 보고를 올렸다.

“장 바티스트 세실 제독님께 제롬 중위 보고를 올립니다.”

“어서 오시오. 보나파르트 외교관님에 대한 전술 교육은 어떻게 되고 있소?”

프랑스에서 가장 처음 쿨리를 구매한 선장 제롬은 예전 기억을 되살려 의용군에 합류하였다. 그를 비롯한 장교들이 나폴레옹 3세에 대한 전략, 전술 교육을 단기간에 수행하려 하였다.

사실 장 세실이 담당해야 할 일이지만 그는 4시간 만에 교육을 포기하였다. 제롬도 별반 다를 것이 없어서 시선을 회피하며 적당히 둘러댔다.

“군사학적 재능이 좋은 분은 아니시더군요. 솔직히 말씀드려서 프로이센보다 못합니다.”

“프로이센보다 못 하다?”

“정확히 말씀드리자면 프로이센 군인들의 유머 감각보다는 못합니다.”

장 세실과 제롬은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마주쳤다. 기나긴 침묵이 이어지다 장 세실이 홀가분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말하였다.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우리 프랑스의 자존심과 명예를 위해 내일의 진군을 준비합시다.”

“네! 반드시 반군을 제압하고 승리를 거머쥐겠습니다!”

제롬이 나가자 장 세실은 찬장에 있는 와인 병을 열고 병나발을 불었다. 단숨에 와인 반병을 들이켠 그는 입가를 소매로 닦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떠올렸다.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재능이 영국인의 요리 솜씨보다 못합니다.

-조금 심각한 수준이군요. 재능이 이탈리아인의 결속력보다 못합니다.

-포병 장교 교육을 이수했다면서요? 재능이 러시아인의 금주 결단보다 못합니다.

결국 프로이센 군인의 유머 감각이 비교 대상이 되었다. 이는 ‘너무 끔찍하니 포기한다.’라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분노를 삭히기 위해 와인을 모조리 비운 장 세실은 당시에 꾹 눌러 참았던 평가를 하였다.

“두개골을 뜯어내고 뇌에서 군사학적 재능을 모조리 도려낸 수준이잖아!”

이런 인간을 데리고 전선에 나가는 것 자체가 치욕이다. 갑자기 올라온 술기운에 목부터 벌겋게 변한 장 세실은 문을 걷어차고 하노이의 길거리로 나갔다.

이미 사태를 수습할 길은 없다. 내일 진군이 시작되면 대략 이틀 뒤에 반란군과 전투를 실시하리라.

그렇게 되면 벌어질 일은 불 보듯 뻔했다. 나폴레옹 3세는 멋대로 돌격하고 죽거나 중상을 입어 나자빠지리라.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진 병사들을 수습해 해병대 위주로 전투를 벌이면 결과는 공멸(共滅)이다.

“설령 승리해도 반란군과 다음 전투를 벌일 수 있을까.”

사실 이겨도 큰 차이는 없다. 적을 격멸하면 포로가 생기게 마련이다. 이천 명에 불과한 전력에서 포로 관리를 위해 병사를 나누면 다음 전투에는 천 명만 데려가야 한다.

술기운을 억누르며 길거리를 걷는 장 세실의 눈에 이 사태의 궁극적 원흉, 사실 너무 머나먼 원흉이 보였다.

대피를 준비하는 영국 상인들은 장 세실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며 말하였다.

“아이고 제독님! 고생이 많으십니다!”

“닥쳐! 네놈들이 아편을 퍼트려서 우리가 이 꼴이 되지 않았나!”

“그거야 프랑스에서 관리를 소홀히 한 탓이지요. 애초에 쿨리를 혹독하게 대우하셨어야죠.”

장 세실은 그 말을 듣자마자 영국 상인들을 노려보며 다가갔다. 프랑스 입장에서 청나라 남부의 사람들은 용맹하고 나라를 수호하기 위해 헌신하던 이들이다.

심지어 자신들의 도움, 실제로는 대한제국의 도움을 받고 영국에게 엿을 먹였다. 그러한 훌륭한 모습을 보인 용사들이 아편에 중독되고 급격히 변모하여 이 사태를 저질렀다.

물품을 정리하던 영국 상인들은 장 세실의 눈빛에 주눅이 들어 뒷걸음질을 쳤다.

화를 억눌러 참은 장 세실은 괜히 시선을 돌리다 수레에 실린 물건을 확인하고 질문을 하였다.

“이거 아편 아닌가?”

“바로 보셨습니다. 거…… 한족(漢族)이었나? 예전에 청나라에서 넘어온 사람들의 후손이 구매하기로 한 물건이었습니다. 죄다 도주하여서 다시 저희 것이 되었지요.”

이번 사태를 일으킨 한족들은 이미 도주를 결행하였다. 예전 송나라 시절부터 꾸준히 이주한 한족들은 청나라로 돌아가지 못 하고 베트남 곳곳의 화교들에게 몸을 의탁한 상태였다.

장 세실의 머리가 맹렬하게 돌아갔다. 지금 반란군이 기세등등하게 날뛰는 이유는 아편을 원해서이다. 이미 아편 금단증상에 시달리는 놈들은 미치광이처럼 날뛰었다.

오로지 아편을 얻어낼 생각으로 발작하는 놈들에게 아편을 주면 어떻게 되겠는가. 전투가 코앞이어도 아편을 복용하고 축 늘어져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리라.

“우리가 부족해서 문제라면 적을 더 부족하게 하면 되겠군.”

“네? 지금 뭔 말을 하셨습니까?”

“아편을 구매할 생각이네. 운송료를 포함해 통상 시세의 다섯 배를 제공하지. 우리의 진군 경로 앞에서 아편을 배달하도록 하게.”

즉석에서 계약이 체결되었다. 프랑스 제독의 보증하에 아편을 반란군에게 공급하는 계약이었다.

여기에 장 세실은 한 가지 계획을 추가하였다.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에서는 마약인 빈랑(檳榔) 나무 열매가 유행한다. 예전에 접대를 받으며 한 번 씹어 보았을 때 마약 성분으로 인해 묘한 고양감과 흥분이 맴돌았다.

새가슴인 나폴레옹 3세에게 약을 먹어 정신을 고양시키면 기절은 안 할 것이라 기대하였다.

한창 물자를 분류하던 영국 상인에게 추가 주문이 들어갔다.

“빈랑나무 열매를 가장 약효가 센 놈으로 삼십 인분 줄 수 있겠나?”

장 세실은 마약을 풀어 적의 전력을 깎아내고 마약을 복용해 아군의 약점을 보완할 계획을 수립하였다.

다음 날인 4월 18일 새벽, 600여 명의 해병대와 1,400명의 시민군은 라 마르세예즈를 제창하며 진군하였다. 가장 추악한 전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 * *

프랑스 군대가 급속 진군하는 동안 하노이 인근의 플랜테이션 농장은 맹렬한 공격을 받았다. 베트남군의 방임으로 인해 소규모로 쪼개진 외인부대는 필사의 항전을 하였다.

4월 20일, 이틀을 버틴 농장은 적의 화력을 감당할 수 없어 전선을 뒤로 물렸다. 이들은 고무나무 농장의 숲에서 결사 항전을 시작하였다.

숲에 막 돌입한 반란군이 외인부대의 라이플 사격에 허우적거리며 진격이 중단되었다. 반란군 지휘관은 기세를 북돋기 위해 외쳤다.

“홍이들을 모조리 죽여라!”

“조선 놈들을 포로로 잡아 고향으로 돌아가자!”

호기롭게 창을 들고 달려가던 반군의 머리에 호두 크기의 돌멩이가 날아와 두개골을 골절시켰다. 바닥에 고꾸라진 반군을 본 고무농장 노동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역시 줄팔매라니까! 계속 돌을 날려!”

“숲속에서 명중시키기도 힘들어!”

“그럼 죽창이라도 들고 놈들을 찔러 죽이든가!”

이미 외인부대의 화약은 고갈되기 직전이었다. 최소한의 라이플 사격이 전부이며 아예 만주에서 이송된 대한 출신 노동자들 가운데 석전에 능한 사람을 동원할 지경이 되었다.

“지원 고맙소! 다들 숨을 들이켜라! 착검 돌격을 실시한다!”

줄팔매에서 돌이 한 무더기 쏟아지자 다시 진격이 중단되었다. 외인부대는 오늘 하루를 버티기 위하여 최후의 수단을 동원하였다.

“비바 프랑스! 비바 루이필리프!”

“전원 돌격하라!”

서른 명에 불과한 외인부대가 이백여 명에 달하는 반군을 상대로 착검 돌격을 실시하였다. 숲을 질주하여 날아든 외인부대의 총검이 반군의 목을 단숨에 꿰뚫었다.

총검이 번뜩일 때마다 반군이 속절없이 죽어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군은 아편을 갈망하며 중상을 입은 채 외인부대의 사지를 붙들었다.

반군 네 명을 죽인 외인부대 병사는 사지에 창날이 꽂혀 피를 뿜으며 자리에 쓰러졌다. 점점 절망적인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이변이 일어났다.

“놈들이 퇴각합니다!”

“퇴각…… 놈들이 퇴각한다! 오늘도 버텨냈다! 조만간 지원군이 올 테니 조금만 더 버텨라!”

외인부대 소대장은 영문도 모른 채 승리를 축하하였다. 반란군이 200명 정도만 추가로 투입했어도 농장이 함락당할 위기였다.

이 좋은 기회를 저버린 이유는 아편 때문이었다. 반란군 본진에 방문한 영국 상인들은 아편을 내놓았고 지휘관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멋대로 퇴각하였다.

심지어 전투 능력을 저하시키는 아편을 피우기 시작했다. 소조귀가 임명한 지휘관이 칼을 빼 들고 날뛰었으나 모두가 심각한 아편 중독자이기에 곳곳에서 아편 연기가 올라왔다.

재산도, 가족도 그리고 스스로도 팔아치운 아편 중독자들 입장에서는 목숨과 아편 중 아편을 선택하였다.

이를 망원경으로 바라보던 외인부대 소대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놈들 밥을 지어 먹나? 연기가 왜 저리 많이 피어오르지?”

“소대장님, 다 이겨놓은 전투를 밥을 먹으려고 중단합니까? 말이나 됩니까?”

몇 시간이 지나자 지휘관마저도 아편을 피우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한창 반란군이 아편을 피울 무렵, 저 멀리서 웅장한 합창이 들려왔다.

-프랑스의 적들이여, 공포에 질겁하라! 피와 오만에 취한 반란군이여!

-주권자인 병사들이 나아가니! 반역자들은 무덤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나폴레옹 3세와 장 세실이 이끄는 시민군은 라 마르세예즈의 형제 격이 되는 출발의 노래를 제창하며 접근하였다. 적이 왕족이 아니니 약간 개사하였으나 큰 차이는 없었다.

대열을 정리한 시민군은 고작 1,200명에 불과하였다. 남은 800명의 병사는 사방으로 분열하여 주변을 경계하고 포격 지원을 준비하였다.

“홍이 놈들이 군대를 보냈다! 한 줌밖에 안 되니 어서 쓸어…….”

아편 파이프를 문 채 쉴 새 없이 아편을 빨아대던 지휘관은 병사들의 상태를 보고 질색하였다. 척후병도 아편을 피웠으며 즉시 대응해야 할 예비군도 아편에 허우적거렸다.

6,000여 명에 달하는 반란군 중에 제대로 대응하는 이들은 천여 명에 불과하였다. 망원경으로 이 모습을 확인한 장 세실은 나폴레옹 3세에게 빈랑 열매를 건네주며 말하였다.

“이 열매를 씹으신 다음 진격 명령을 내리십시오!”

“거……. 어……. 뭔진 모르지만 고맙군요.”

멋도 모르고 장 세실이 권유한 빈랑 열매를 나폴레옹 3세가 입안에 넣었다. 열매를 질겅거리며 씹자 치약에 가까운 알싸한 향과 함께 여러 성분이 몸속으로 유입되었다.

순식간에 나폴레옹 3세의 몸에서 열기가 올라오고 속이 뜨거워졌다. 곧이어 마약성분으로 인한 각성효과와 흥분이 그의 뇌를 휘감았다.

“진군하라! 진군하여 적을 격멸하라!”

“명령 들었나! 포격 개시!”

다시 빈랑 열매를 삼킨 나폴레옹 3세는 평상시의 새가슴이 아닌 한 명의 용사가 되어 있었다. 사방에서 포격이 날아들고 굉음이 전장을 강타하는 와중에도 담담하게 전장을 바라보았다.

장 세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진격하는 시민군을 보았다. 이들 모두 나폴레옹 3세의 당당한 모습에 취하여 너나할 것 없이 나아가며 사격을 퍼부었다.

“보나파르트의 길을 열어라!”

“황제폐하! 보고 계십니까!”

“황제폐하의 조카께서 우리를 이끌고 있습니다! 나폴레옹 만세!”

나폴레옹이 살아서 이 광경을 보았다면 접시 물에 코를 박고 자결하였을 상황이었다. 마약에 취한 자신의 조카가 내린 명령은 오로지 진격이 전부였다.

본래 역사의 나폴레옹 3세가 보불전쟁에서 내린 명령과 별 차이는 없었다. 본래 역사에서 그가 내린 명령은 진군하라, 위치를 사수하라 단 두 개가 전부였다.

빈랑 열매의 마약 작용에 흥분을 억누르지 못한 나폴레옹 3세는 기병도를 꺼내 들었다. 쉴 새 없이 적진에 포격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말의 배를 걷어차며 돌격을 실시하였다.

“프랑스 만세!”

“보나파르트께서 돌격하신다!”

포격이고 뭐고 마약에 취한 나폴레옹 3세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약속과 의무감 그리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군사적 지식이 융합되며 포화 속의 돌격을 실시하였다.

“포격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포격 중단 명령 보내!”

장 세실이 필사적으로 만류하였으나 나폴레옹 3세는 이미 저 앞으로 치고 나갔다. 두툼한 흉갑과 기병도의 무게로 인해 말 위에서 허우적거리면서 끝없이 진군을 외쳤다.

멋대로 뛰쳐나간 나폴레옹 3세를 호위하기 위해 기병들이 합류하였다. 150기의 기병들은 아군의 포격이 이어지는 적진을 향해 돌격하였다.

유산탄이 폭발하며 흙기둥을 피워 올렸다. 이 거대한 흙먼지를 뚫고 나폴레옹 3세가 입에서 핏빛 침을 흘리고 기병도를 휘적거리며 적진을 파고들었다.

“으아아아아악! 미친 악귀다!”

“도망쳐! 귀신이 나타났다고!”

아편에 취하고 포격까지 당해 와해된 반란군은 나폴레옹 3세와 기병의 돌격에 질겁하였다. 작달막한 사내가 사지를 휘청거리며 마구잡이로 기병도를 휘둘러댔다.

심지어 입에서는 핏빛 거품, 빈랑나무 과즙과 섞인 침을 흘리니 더더욱 기괴한 모습이었다.

장 세실은 이 모습을 망원경으로 보면서 눈을 질끈 감고 말하였다.

“너무 엉망진창이야. 엉망진창이라 포화를 회피할 줄은 몰랐는데.”

나폴레옹 3세는 반란군의 털끝도 건드리지 못하였다. 지나치게 느린 데다 사방으로 허우적거리니 그의 칼은 허공을 계속 가로질렀다.

오히려 그를 호위하려 달라붙은 기병들이 적진을 유린하였다. 마치 진흙탕에서 아귀다툼을 벌이는 술주정뱅이 같은 몰골의 전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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