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15장 5화 판매처 : 일본
이 건물은 경복궁에서 가장 많은 대화가 오가며 평상시에는 의정부 대신들이 대화를 나누는 장소인 담원(談苑)이다. 본래 역사의 환구단에 있는 황궁우(皇穹宇)의 규모를 키운 형태이고.
대화가 새어나가지 않게 1층에는 두툼한 벽돌 벽을 두 겹으로 두르고 네 겹의 창문을 설치하였다. 덕분에 전권 대사들의 언쟁도 밖에는 속삭이는 소리로 들리리라.
“아르크의 성녀 요안나(Joanna Arcensis - 잔 다르크)를 마녀 조안나라고 칭한 것도 화가 치밀어 올라 죽을 만한 일인데!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고!”
이런 언쟁이 새어나가는 것 자체가 부끄러워서 죽을 일이니 차라리 잘 되었다. 영국 사절단과 프랑스 사절단의 언쟁은 점점 수위를 넘어가면서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아무튼 빅토리아 여왕 아님이라 해놓고 여왕 전하와 똑같은 외모의 코튼 레이디도 만드는 놈들이 뭔 소리야! 마녀 조안나 정도면 이름도 확실히 바꿔놓아서 양호한 수준이지!”
“양호하다고? 그 추잡한 형상을 보고 구토를 할 뻔했다! 뇌 속에 뭐가 들어서 가슴이 머리보다 큰 추잡한 형상을 만들어냈나!”
프랑스 해군 장성이자 루이필리프의 3남인 프랑수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아예 의자 위에 올라섰다. 그는 주변을 돌아보더니 웃옷을 휙 벗어 던졌다.
평상시의 그는 단정한 흑발과 잘 다듬은 검은 콧수염을 돋보이며 남을 배려하는 부드러운 태도를 보였다. 반면 지금은 이성을 반쯤 잃어 침을 튀겨가며 솜 부인을 묘사하였다.
“이런 가슴이 말이나 되는가! 이게 사람인가 아니면 괴물인가!”
아름드리 통나무를 껴안은 것 같은 자세를 취한 프랑수아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프랑스 사절단과 보조 인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삿대질과 욕설을 퍼부었다.
제3국 사절단도 질색을 하자 영국 사절단은 궁지에 몰렸다. 그러더니 반격의 실마리를 찾은 디즈레일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우리는 마녀 조안나의 코튼 레이디에게 최소한 제대로 된 옷을 입혀놓았다고!”
“그래! 말 잘했다! 실 몇 개만 풀어내면 옷이 사라지잖아!”
“댁들은 옷이 아니고 투석구…….”
그 이후에는 내 뇌가 대화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다. 투석구(投石具 - 슬링), 그물, 가죽, 나무로 만든 무언가, 철로 만든 무언가를 비롯한 대화가 오갔다.
다음 대화는 제조 방법인데 자카드-에이다 방적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실크스크린 인쇄기법과 에칭(etching – 구리 판화)을 비롯한 다채로운 기법을 헛되이 사용한다 말하였다.
마침내 영국과 프랑스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의 대사들이 눈치를 주었다. 그러자 다시 내 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완화된 욕설이 시작되었다.
“야 이 변태새끼들아! 치졸하고 음습하게 달팽이 뚜껑 따서 빨아먹는 딱정벌레 같은 놈들아!”
“딱정벌레? 정어리 대가리 파이 먹는 놈들이! 변태성으로 따지자면 네놈들이 더 해!”
“우리가 네놈들보다 열등한 것이 있으니 성욕과 변태성이다! 코튼 레이디의 원판도 모자라서 사드 백작의 혐오스러운 저서를 기반으로 재창작 중이잖아!”
디즈레일리가 진한 갈색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목청을 높였다. 사드 백작이라는 말이 나오자 프랑스에서는 잠시 주춤하다가 다시 반격을 시작하였다.
“예술성이겠지! 네놈들은 예술성이 없어서 나폴레옹의 코튼 바론(cotton baron, 솜 남편)을 사람도 아닌 짐승도 아닌 흉측한 고깃덩이로 만들어 놓았잖아!”
“그게 비평이라는 단어다! 조금만 잘못하면 단두대로 모가지를 썰어내는 놈들아! 네놈들이 온건한 비평을 해 본 적이라도 있나?”
“비평? 나폴레옹이 말년에 살이 좀 찌긴 했는데 뱃살을 찌워서 사타구니를…….”
다시 뇌가 대화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했다. 한참의 욕설이 끝나고 영국 사절단과 프랑스 사절단이 서로 멱살을 잡을 무렵 내가 개입하였다.
“대한제국의 궁궐에서 이 무슨 소란이요 행패입니까! 우리는 건설적인 논의를 하려 이 자리에 온 것이지 천박한 대화를 나누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꼭 나눠야 하는 자리란 말이오!”
“그 대화는 영국이나 프랑스 혹은 유럽의 제 3국에서 논하십시오!”
“십덕 후작 당신도 책임이 있소. 코튼 바론과 코튼 레이디를 창조한 사람이니 책임이 있지.”
헨리 웰즐리를 통해 대화를 중재하려 했는데 나를 흘겨보면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 태도를 보니 짚이는 것이 있다.
서로가 경쟁자라서 저런 식으로 비방을 하지 않을까.
이를 염두에 두고 사람들에게 내 추측을 말하였다.
“혹시나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이 코튼 바론 사업에 돈을 투자하셨습니까?”
모두가 나와 눈을 마주치기를 거부하며 고개를 돌렸다. 한참의 침묵이 이어질 무렵 손뼉을 쳐서 생각을 정리하고 자리에 앉은 다음 말하였다.
“제가 추측하기로는 코튼 바론 사업이 소개되고 여러분 모두가 투자를 했을 것 같습니다.”
“프랑스 놈들이 먼저 공세에 나섰습니다. [아무튼 빅토리아 아님]이라는 코튼 레이디를 출시해 유럽에 퍼트렸는데 저희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공적인 자리에서 외교를 통해 항의를 하였을 것 같습니다. 대신 사적으로 코튼 바론 제조사에 대한 비공개 투자를 했을 것 같군요.”
대한제국에서는 자카드-에이다 방적기가 공식적인 경로로 유통되었다. 삼국지 등장인물을 인쇄하여 조정에서 대량 판매한 덕분에 제대로 된 사업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대신 유럽에서는 추방당한 귀스타브 쿠르베의 취향이 반영되었다. 코튼 바론은 결국 시작부터 비공개적인 물품으로 규정되어 버렸다. 시작은 프랑스고 이후 물건을 접한 영국도 같은 대응을 하였다.
결국 음지에서 시작한 음습한 사업을 겉으로는 욕하며 속으로는 가산을 털어 투자한 것이 분명하다.
“여러분 대다수가 제법 큰 돈을 코튼 바론 사업에 투자하지 않았습니까? 아예 부인들께서 집안의 재산을 투자했을 것 같은데요.”
모두가 움찔하며 내 입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디즈레일리가 나름 변명을 한답시고 주눅이 든 목소리로 답하였다.
“그렇지 않소! 부인의 재산이 제법 된다 하여도 그런 일에는 손을 대지 않는 것이 마땅하오!”
“제가 런던에 살고 있을 무렵 들은 소문입니다. 귀족 저택을 오가는 방문업자 가운데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맞춤형 제품’을 판매하는 사람이 천 명에 달한다더군요.”
“그래도 우리 부인은…….”
“중요한 건 디즈레일리 의원님의 부인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겉으로는 비난하며 속으로 투자해 모두가 투자한 상황이 중요하지요.”
이 시대의 성적 관념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되 사적인 장소에서는 왕성하게]로 정의할 수 있었다. 결국 음습한 물건이 잘 팔릴 것이라고 판단해 모두가 투자해 버린 격이다.
지나칠 정도의 과잉 투자로 인해 과잉 생산이 시작되었다. 이 경쟁 속에 투자 수익을 환수하려는 몸부림으로 기괴한 물건이 나와 버린 것 같다.
결국 서로에 대한 악감정만 쌓여가다가 제 3국인 대한제국에서 억하심정이 튀어나와 버렸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제안을 하였다.
“얼마나 많은 코튼 바론이나 코튼 레이디를 판매하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습니까?”
“저희는 대충 이만 개 정도인데 프랑스는 어떠합니까?”
“여유분을 조금 잡아서 삼만 개 정도로 하지.”
모든 귀족들이 죄다 음습한 생각으로 투자를 하니 저 꼴이지! 오만 개가 넘는 물건을 사들일만한 나라는 딱 한 군데밖에 없다.
일본에는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내가 싼 똥이라 내가 치울 생각으로 이들에게 제안을 하였다.
“일본은 춘화(春畫)가 일상화되어 있으니 충분히 구매할 수 있습니다. 대한제국에서 거래를 알선할 예정이니 염려하지 말고 판매하시지요.”
“일본이 그렇게나 대단한 나라요? 이 이상성의 집합체를 사들일 수 있다고?”
“나중에 일본에 가셔서 민화 몇 개만 보시면 답이 나올 겁니다. 그러하면 상세한 사항은 황제 폐하께 논하기로 하고 오늘 일정을 종료하겠습니다.”
길고 긴 회의가 마무리되었다.
사필귀정이라고 십덕 후작이 다키마쿠라를 팔아버리게 되니 참 할 말이 없다. 오타쿠라는 단어 대신 내 신사의 이름을 따서 시부도쿠나 시부타쿠 같은 용어로 불리지 않을까.
아직도 뇌에 남은 기억 파편을 지우기 위해 뺨을 치면서 정신을 가다듬었다.
“어휴, 수명이 십 년은 줄어든 것 같네.”
“십덕 후작님! 말씀을 드릴 게 있습니다!”
고개를 돌리니 네덜란드 전권대사가 서신을 들고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대체 왜 그러나 싶어 다가가니 대사는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일본으로 건너간 아편을 조사해 보았습니다. 기존에 저희가 일본에 보낸 아편 물량이 이십 톤 내외라는 말씀은 드린 적이 있었지요.”
“알고 있습니다. 오백만 명이 복용할 수 있는 분량이며 그 이상은 교역을 거부하였다고 들었는데요.”
“이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양국의 항구를 조사하였습니다. 그 결과 지난 한 달 동안 오십 톤이 넘는 아편이 일본으로 운송되었습니다.”
“지난달에만 오십 톤!”
프랑스어로 고쳐 쓴 서신을 읽어 보았다. 서신에는 자신들이 하역을 거부하자 아편을 수출하는 과정에서 항로를 파악한 청나라 선박들이 거래를 하였다더라.
“이 선박은 다 어디서 구했단 말입니까!”
“조-청 전쟁 당시 남부 전선에서 구매한 선박입니다. 지휘관 임칙서의 명령으로 구매해 둔 서양식 무역선을 상인들이 다시 사들여 무역에 사용하였지요.”
“나라를 지키려고 사들인 배가 다른 나라를 망가트리는 데 사용되다니. 지난달에 아편 오십 톤, 지지난달에 사십 톤 내외, 추정 물량이…… 이백칠십 톤?”
청나라 상인들은 일본에 가급적 많은 중독자를 양산하기 위하여 영국과 똑같은 짓을 하였다. 첫 아편은 쌀 한 석에 아편 열 관(한 관 = 3.75㎏)의 헐값에 판매했다.
이후 한 달마다 정기적으로 아편을 퍼부어 버렸다. 네덜란드 상인들이 조사한 총 아편 무역량은 약 270톤이다. 이 정도 양이면 중독자를 24만 명이나 양산할 수 있는 양이다.
“영국에게 당한 것을 배워서 다른 나라에 되돌려 주었군.”
예전에 일본에 경고를 했을 때 막부와 교토의 귀족들은 단속반을 마련해 밀매업자를 체포할 것이라 하였다. 이는 잘해야 수 톤 단위의 아편 밀매를 대처하는 방법이다.
이제는 단속반 수준이 아닌 아편과의 전쟁이 필요한 시기였다. 다음 날 각국 대사들을 다시 소집해 아편 무역선을 단속할 대책을 논의하기로 하였다.
* * *
박현상의 예상보다 아편은 더욱 깊숙이 퍼져 나갔다. 아편을 당약(唐藥)이라 퍼트린 사이고 다카모리는 처음에는 이 좋은 약을 지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는 이 좋은 약을 귀족이 아닌 서민들에게 퍼트릴 마음을 품었다. 그는 사쓰마 번의 학자들과 함께 이 약을 분석하였다.
“당약의 효과는 이전까지 찾아본 적이 없네. 모든 통증을 사라지게 하고 몸을 이완시키지. 더군다나 강력한 진해거담(鎭咳祛痰)과 속병을 멎게 하는 효과가 있어.”
약방을 경영하는 사이고 다카모리의 친구는 여러 환자에게 아편을 시험하고 결과를 말해주었다. 사이고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나는 약이 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시골 어른들이 무릎이 아플 때 달여먹는 양귀비와 흡사한데?”
“바로 보았네. 아마 양귀비 꽃봉오리의 진액이 아편인 것 같아.”
“양귀비 꽃봉오리의 진액이라고? 열 송이는 채취해야 한 돈이 나오는 물건인데.”
상아로 만든 아편 파이프에 아편 한 돈(3.75g)을 넣어 불을 붙인 사이고 다카모리는 아편 연기를 빨아들이며 미소를 지었다.
청나라 상인들은 이 좋은 약을 헐값에 판매하였다. 직접 일본까지 와서 청나라의 시세의 1할도 되지 않는 헐값에 거래하였다.
너무나 놀라운 일이라 물어보니 상인들은 아편을 더 얹어주며 답하였다.
-자네들의 도자기 덕분이지. 왜국 도자기는 희소하다 하여 예상 가격의 열 배에 판매했네. 이득을 보아서 친구로서 의리를 지키려고 직접 방문하였네.
당시의 일을 떠올린 사이고 다카모리는 50톤, 약 1만 3천 관의 아편이 쌓인 창고를 떠올렸다.
이 좋은 약을 가장 먼저 복용할 사람이 마침 근처에 있었다.
“새로운 문물을 퍼트리려면 가장 필요한 사람부터 퍼트려야지.”
“퍼트릴 사람이 있다 하였는가? 대체 누구이기에?”
“누구기는. 운젠(雲仙) 산에서 일하는 광부들이지!”
나가사키 인근의 활화산인 운젠 산에는 수많은 온천과 광산이 있었다. 여기서 일하는 광부들은 채광 작업으로 관절염에 시달리고 독한 유황 연기로 질병에 시달렸다.
며칠 뒤 운젠 산의 유황 채굴장으로 향한 사이고 다카모리는 평상시의 담대한 태도로 관리를 설득하였다.
“나리께 권할 것이 있으니 바로 당약입니다. 이 약은 그리 비싸지도 않으며 강력한 진통과 진해 거담 효과가 있습니다.”
“당약? 당나라에서 건너온 약이 있다고 소문은 들었는데. 시험이나 해 보지.”
유황을 캐느라 무릎이 상하고 연기를 들이켜 기관지가 손상된 인부가 아편을 받았다. 그는 아편을 한 대 피우고 통증을 잊은 채 편안한 표정으로 잠들었다.
“평상시에는 기침을 쉴 새 없이 하고 사지가 아프다 하던 놈인데…….”
“얼마나 효과가 좋은 약입니까? 한 열 관을 비축해 두셔서 인부들에게 나누어주시지요.”
사이고 다카모리의 첫 거래는 단번에 성사되었다. 각지의 광부들과 육체노동자들이 아편을 사들여 통증을 다스리고 기침을 멈추었다.
이는 병을 억눌러 더욱 키우는 행위였다. 마약으로 통증을 억제한 몸을 가만히 두면 모를까 계속 노동을 하면 관절이 순식간에 망가지게 되었다.
진해거담 효과도 마찬가지였다. 호흡기에서 먼지를 막아내기 위한 방어체계가 가래와 기침이다. 이를 약으로 억누르면 사람이 순식간에 죽어 나가리라.
이를 알 길이 없는 사이고 다카모리는 다음 달에도 도착한 청나라 상인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산더미처럼 쌓인 도자기와 공산품을 제시하니 상인은 혀를 차며 말하였다.
“도자기를 세 배는 더 준비해 왔어야지. 당시에는 왜국 도자기가 희소하여 가격을 높게 받았어. 한 번 팔린 물건이 또다시 들어오면 가격이 떨어지지 않겠나?”
“제가 젊은지라 생각이 온전치 못하였습니다.”
“그래도 친구 좋은 게 어디인가? 이득을 볼 생각은 없으니 도자기를 두 배만 내오게. 아니면 대등한 가치의 금이나 은 혹은 공예품도 괜찮고.”
시간이 지날 때마다 아편의 가격은 점차 올라갔다. 불길한 기운을 느낀 사이고 다카모리는 거래를 끊으려 하였다.
이런 태도를 감지한 상인은 즉각 다른 물주를 찾았다. 사쓰마 번의 관료를 통해 중독자들의 재산이 거두어졌고 다시금 아편이 들어오게 되었다.
새로 들어온 아편을 확인한 사이고 다카모리는 마침내 아편을 금지하려 행동하였다.
그는 자신과 같이 청나라에 다녀온 친구들을 불러 엄중히 경고했다.
“아무리 보아도 당약은 불길한 약이야. 이렇게 가격이 오르는데도 계속 사들이다니 당장 금지해야 하네.”
“그럼 뭘 하나? 끊을 수 없는 좋은 약인걸.”
친구들이 아편을 피우며 하나둘씩 바닥에 널브러지자 사이고 다카모리는 이들을 두들겨 패서라도 깨우려 하였다.
그 와중에 방안에 자욱한 아편 연기를 맡게 되자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담대한 체격과 튼튼한 체질로 아편 중독이 늦어졌을 뿐 그도 엄연한 중독자였다.
그는 구석에 뒹굴고 있는 아편 파이프에 아편 한 돈을 얹고 불을 붙였다. 연기를 깊게 들이켠 사이고 다카모리는 곰방대를 쉴 새 없이 빨아들이며 완전한 중독의 길에 빠져들었다.
한참 대한제국에서 회의가 진행되는 1846년 6월, 아편이 퍼져 나간 일본은 수많은 중독자가 양산되었다. 한 아이는 오늘도 아편을 피우러 나가는 아버지를 어머니와 함께 한사코 만류하였다.
“아버지! 그거 칼입니다! 칼을 팔아버리시면 자긍심이 사라! 으악!”
“닥쳐! 아편을 안 피우면 내가 사라진단 말이다!”
괴성에 가까운 고함과 함께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아이는 명치를 맞아 다다미 바닥을 뒹굴고 허우적거렸다.
떨리는 팔다리를 추스른 아버지는 멍한 눈으로 마른기침을 뱉으며 아편굴로 사라졌다. 황폐한 집 안에서 어머니는 두들겨 맞아 퉁퉁 부은 얼굴을 감싼 채 흐느끼고 있었다.
가까스로 숨을 고른 아이는 저 멀리 사라져가는 아버지를 쫓아가려다가 배고픔에 자리에 주저앉았다. 며칠 전부터 미음에 가까운 맑은 죽만 먹었으니 울 힘도 없었다.
몇 시간 뒤, 아이와 어머니에게 구원의 손길이 닿았다. 이들의 집 근처에 멈춘 우마차에서 거대한 솥이 내려왔고 막부에서 파견한 무사들이 손뼉을 치며 고함을 쳐댔다.
-굶주린 이들은 어서 나오시오! 막부의 동맹 대한에서 미곡을 보내왔으니 나누어줄 것이오!
평상시라면 아시가루, 하급 호위무사 가족으로서의 자긍심이 있어 절대 나서지 않았으리라. 그러한 자긍심은 굶주림 앞에서 아무런 가치도 없었다.
대한제국에서 보내온 밀로 쑨 죽이 배급되었다. 아이와 어머니는 걸인 사이에 섞여 주린 배를 죽으로 채우고 감사 인사를 올렸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토록 큰 은혜를 내려주시니 어찌 보답해야 할지요.”
“아이가 굶주리는 몰골을 볼 수 없습니다. 그저 잘 먹이고 잘 키우는 것이 보답이지요.”
밀가루 죽을 두 그릇이나 먹은 아이의 배가 불룩 튀어나왔다. 여섯 살쯤 되는 아이를 바라보던 무사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질문을 하였다.
“네 녀석 나중에 큰 인물이 될 것 같구나. 이름이 무엇이냐?”
“리스케(利助)입니다! 성은 하야시(林)에요!”
“하야시 리스케라. 괜찮은 이름이구나.”
여섯 살의 하야시 리스케, 훗날 개명을 거듭하여 이토 히로부미라는 이름이 붙은 아이의 인생은 아편으로 인해 완전히 뒤틀려 버렸다.
하야시 리스케는 우마차 위에 붙은 글귀인 ‘대한제국 제공 미곡’이라는 한자를 마음속에 새겨두었다.
이는 머나먼 훗날까지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있게 될 글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