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15장 1화 천조국(千祚國)(2)
모병 공고문이 길거리에 붙고 멕시코와의 전쟁을 천명하니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예비군과 군대에 막 발을 들인 신병들이 소집되었다.
윌리엄 셔먼이 상위 부대에 요청을 하여 보급 부대에 필요한 물자를 요청하는 동안 어재연도 상관에게 보고를 하였다.
이는 최종적으로 이최응과의 면담으로 이어졌다.
“진식 소총만 사용하는 부대라. 폐하께서는 실전 성능을 확인하기 위하여 실전 배치를 원하였는데 보급 부대에서 진식 소총을 쓰면 말이나 되는가?”
“보급을 최전선까지 수행하기 위해서는 장거리에서 적을 격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작달막한 체격의 이최응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방 안을 돌아다니고 한참을 생각하였다. 그러더니 어재연의 손을 잡으며 말하였다.
“어 참위의 생각은 잘 알 것 같네. 최전방에 탄환이나 화약을 보급할 수도 있고 조금 멀리 나갈 수도 있지. 그러다 자발적으로 적을 격퇴할 수도 있고 조금 깊숙이 들어갈 수도 있어.”
“옳은 말씀이십니다. 이 정령(正領 - 연대장급 영관) 대감께서 바로 보셨습니다.”
“진식 소총 팔십 정을 자네의 부대에 배급하겠네. 황제 폐하께 장계를 올려 여유분의 진식 소총과 탄환을 보낼 것이나 소총은 꼭 회수하도록 하게.”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최응은 어재연의 시도를 흥미롭게 바라보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전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상황에 대한 대처가 필요하니 이런 과감한 시도도 필요하였다.
청나라와 실전을 치를 때 갑자기 부대를 편성하면 여러 문제를 겪겠지만 여기는 미국이다. 설령 어재연의 부대가 문제를 일으켜도 이를 보조할 미군이 있으니 해서 나쁠 건 없었다.
다만 모든 일이 순탄히 돌아가지 않았다.
소집된 병사 중 명사수들을 비롯하여 저격 소대에 이상적인 병사를 모집하던 윌리엄 셔먼이 돌아와 어재연에게 푸념을 하였다.
“애석한 일이지만 사수 모집에 실패했어. 내가 그토록 설명을 하였는데 듣지를 않더군.”
“제대로 설명하였는가? 대한제국에서 만들어낸 진식 소총을 지급할 것이라면 관심을 보였겠지. 한 정에 사백 냥이 넘는 소총을 쥐어볼 기회이니 누구나 응할 것 같았는데?”
“거기에 넘어간 병사가 있으면 좋겠는데 남부 꼴통들이 말하기를 대한제국 기술은 믿을 수 없다 하더군. 놈들이야 꼴통으로 살다 꼴통으로 죽는 놈들이니 오히려 욕을 하던데.”
이 시대의 신형 소총이나 권총은 폭발이나 안 하면 다행인 무기로 취급하였다. 실제로도 새뮤얼 콜트의 권총이 손가락 잡아먹는 고철덩어리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더군다나 대한제국의 갑식 소총과 진식 소총은 미국산 무기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이를 십 년 이상 사용하여 충분히 문제점을 수정한 다음에나 쓸 수 있는 병기라 취급하였다.
결국 남부 일대의 명사수들은 플로리다에서 인디언이나 때려잡던 소위 따위가 뭘 아냐면서 핀잔을 하였다. 심지어 보급 부대에서 일하면 멕시코 놈들을 보지도 못할 것이라 말하였다.
“결국 소집은 하였는데 좀 문제가 있는 병사들이 많아서…….”
“병사에 문제가 있다? 절름발이나 몸에 부스럼이 심한 병사인가? 아니라면 체중이 이백 근(120㎏)이 넘거나 칠십 근(42㎏) 아래인가? 아니라면 광증이라도 있는 병사들인가?”
“사람 구실을 간신히 하는 환자를 징병하는 나라가 어디 있는가? 그딴 방식으로 병사를 징집하느니 군대 인원을 줄이고 말지. 아무튼 직접 보면 알 것이니 나와보게.”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인근의 드넓은 공터는 임시 징병장소 및 부대 편성장소가 되었다. 상비군을 운용하지 않는 미국이니 이렇게 대충 징집해 대충 편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천여 명에 달하는 대한제국군 중 천여 명의 보병들이 여기서 전우 부대를 만나 편성되고 있었다. 윌리엄 셔먼은 어재연 및 휘하 부대원과 함께 공터 구석으로 향했다.
“이들이 우리 소대에 들어올 인원들일세. 스무 명은 이전 영국과의 전쟁(미영전쟁, 1812년)에 참전한 예비역이고 열 명은 세미뇰 전쟁에 참전한 병사들이지.”
“나머지 서른 명은 딱 봐도 애송이인데.”
어재연과 셔먼의 보급 소대는 60명으로 구성되었으며 대한제국군을 제외하면 징집할 인원은 30명이었다. 이 병사들은 보급부대에나 사용할 잉여 인원의 집합체였다.
여기서 적당히 병사를 추려내 30명을 편성하라는 말이었다. 어재연은 아직도 앳된 티를 벗지 못한 소년들을 노려보면서 셔먼에게 쓴소리를 하였다.
“관례도 안 올린 녀석들 아닌가? 체격이야 담대하다지만 이런 아이들이 총을 쏜다고?”
“그래도 나이 열다섯이 넘은 녀석들 중에 사격 실력이 좋은 녀석들로 추리고 추렸어.”
“아무리 보아도 대한의 나이로 열여섯 아래의 애송이인데? 거기 너! 이름이 무엇이고 나이는 몇 살이냐!”
수염도 제대로 돋지 않고 얼굴이 둥글둥글한 소년들은 어재연에게 지목되어 흠칫 놀라며 서로를 돌아보았다. 그러더니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소년부터 앞으로 나와 말하였다.
“토마스입니다! 나이는 올해 열다섯 살입니다!”
“소이여입니다! 나이는 올해 열다섯 살입니다!”
“허크입니다! 동갑입니다!”
“베리입니다! 동갑입니다!”
“피네스입니다! 동갑입니다!”
모두가 미국 나이로 열다섯 살이라 주장하는 소년들을 살펴본 어재연은 이마를 감싸 쥐며 짜증을 내었다.
그는 한숨을 내쉬고 아무리 보아도 13세가 안 되어 보이는 아이들의 어깨를 짚으며 말하였다.
“일단 돌아가라. 전쟁에 아이들이 참전해? 보급부대라고 해서 안 싸울 줄 알았나?”
“그래도 저 총은 쏠 줄 아는데요. 셔먼 소위님께서 총 잘 쏘는 사람들을 추려내라 해서…….”
“닥치고 돌아가!”
토마스, 소이여, 허크, 베리 그리고 핀을 비롯한 14명의 아이들이 남았다. 아무리 보아도 토마스와 소이여만 16세이고 나머지는 14세쯤 되어 보였지만 끝까지 16세라 주장하였다.
“너희들이 사격을 그리 잘한다고 하였지? 토마스! 그 총은 어디서 가져왔나?”
“삼 년 전부터 사용하던 권총입니다! 그 전에는 머스킷을 사용했습니다!”
“그렇게 총을 오래 사용했다고? 어디 한 번 증명해 봐라!”
난이도 높은 사격 시험으로 신병들을 모두 걸러내고 진군하며 현지에서 병사를 더 모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재연은 주변을 둘러보다 나무 울타리를 걷어차 보고는 시험을 준비하였다.
“너희의 나이가 아무리 말하여도 열여섯이라 하니 믿을 수밖에 없지. 호패가 있는 것도 아니며 총까지 들고 왔으니 사격 솜씨로 너희를 판가름하겠다.”
울타리 위에 벽돌을 짚이는 대로 세워놓은 어재연은 대한제국에서 사격시험을 실시하는 거리보다 조금 짧은 30m 거리, 야드로는 약 36야드 거리에 선을 그었다.
대한제국 신병 훈련소에서는 50m 거리에 놓인 사람 머리 크기의 표적으로 훈련한다. 머스킷으로 6발을 사격하여 2발 이상 명중하면 합격으로 판정한다.
표적의 크기가 작아지고 거리가 가까워졌으나 난이도는 비슷하다. 어재연은 이들이 단 한 발이라도 명중시킬 수 있다면 병사 자격이 있다 생각하고 사격 지시를 내렸다.
“총 여섯 발을 사격하여 명중하면 합격이다!”
“너무 난이도가 높은데요…….”
난이도가 높다고 말하자 어재연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팔짱을 끼고 지켜보았다. 권총을 들고나온 토마스는 표적을 한참 바라보다가 대뜸 권총을 발사하였다.
새뮤얼 콜트가 만든 리볼버가 아닌 총열이 여섯 개인 리볼버에서 흑색화약의 매연이 뿜어져 나왔다.
잠시 뒤 희뿌연 흑색화약 연기가 걷히고 결과가 드러났다.
“두 발만 명중하였습니다. 탈락인가요?”
“두 발이 명중하였다?”
권총 사격 훈련을 받은 어재연 본인이 쏘아도 세 발을 명중시킬까 말까 한 상황에 정말 벽돌 두 개가 울타리 아래로 떨어졌다.
“이건 말이 안 돼. 관례도 안 올린 아이가 총알을 두 발이나 적중시켰다고?”
어재연이 나서기 전에 대한제국 병사들이 나섰다. 이들은 권총의 명중률이 얼마나 낮은지 잘 알고 있으며 이 시험이 머스킷으로 치르는 시험임을 알고 있었다.
어재연이 벽돌을 확인하니 탄환을 맞아서 금이 가 있었다. 어재연이 토마스와 셔먼을 번갈아가며 바라보자 셔먼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였다.
“여섯 발을 모두 명중시켜야 합격인가 한 발만 명중해도 합격인가?”
“한 발만 명중해도 합격이지.”
“토마스가 합격했군요! 그럼 저도 시험을 치러보겠습니다!”
다음으로 뛰쳐나온 소이여는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물건인지 낡아빠진 머스킷에 화약을 넣었다. 다시금 여섯 발의 사격이 실시되고 이번에는 네 개의 벽돌이 떨어졌다.
“시골에서 살며 관례도 안 올린 아이들이 이토록 사격에 능하다니!”
“저 정도면 제법 잘 쏘는 편이지. 어린 시절부터 사냥을 많이 했군.”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대한에서는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석전을 즐기는 나이의 아이들이 총을 저렇게 잘 쏜다고?”
머스킷으로 시험을 치른 소이여는 다섯 개의 벽돌을 명중시켰다. 이후 모두가 나서서 사격을 실시하였고 셔먼은 그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재연은 넘어가는 벽돌과 청년들, 실제로는 소년들의 환호성을 들으며 고뇌하였다. 셔먼은 이를 위로하기 위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오하이오의 환경을 설명해 주었다.
“저 나이에 저 정도는 할 수 있어야지. 내가 태어난 오하이오 주의 랭커스터도 시골에 속했는데 당시에도 인디언들이 난동을 부려서 아이들도 총을 다뤘지.”
“이게 나라인가 아니면 모두가 총을 휘두르는 총국(銃國)인가.”
“이게 미국이야. 총은 위대한 개척을 하기 위한 필수 도구이지.”
셔먼은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합격하는 소년들을 바라보았으나 어재연은 착잡한 심정이었다. 이 애송이들과 함께 전장의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자니 말이 안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한 명의 아이들이 합격하였으니 한 말은 지켜야 했다. 셔먼은 어재연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 최종 선별을 하였다.
어재연과 셔먼이 이끄는 보급소대. 실질적으로는 전선에서 저격을 실시할 소대는 총원 60명으로 구성되었다. 합격자가 선별되자 어재연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내가 알기로 개전이 4월 말인데 경력자는 몰라도 애송이들이 문제야.”
“내가 생각해 둔 것이 있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대한제국군의 훈련은 어떠하지?”
“처음 한 달 동안 제식훈련을, 다음 두 달 동안 총기 사용법과 사격 훈련을 익히지. 생각해 보니 이 녀석들 총기 사용법을 다 익혔군.”
“그러면 제식훈련과 행군훈련을 겸하며 신형 소총 사용법을 숙지하게 만들면 어떠한가?”
아무나 총을 쏠 수 있는 나라이기에 할 수 있는 신병 훈련 방법이었다. 뉴욕에서 출병한 셔먼과 어재연의 소대는 보급 마차와 함께 서쪽으로 나아갔다.
* * *
행군 겸 신병 제식훈련을 제안한 윌리엄 셔먼의 판단은 효과적이었다. 신병들에 대한 사격 훈련은 갑식 소총과 상위호환 소총인 진식 소총의 사용법이 전부였다.
먼저 행군을 실시하며 제식 개념을 주입하였다. 처음에는 방정맞게 사방을 쏘다니던 소년들의 등이 곧게 펴지고 절도 있는 모습으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훈련과 진군을 반복하며 대한제국의 병사들도 기강이 바짝 들어갔다.
드넓은 평원을 바라보던 병사는 휴식시간에 어재연에게 질문을 하였다.
“미국은 어디를 가도 드넓은 평원이로군요. 보아하니 죄다 겨울 밀을 기르는 것 같은데 다른 농사는 안 하는지 궁금합니다.”
“이 나라에서는 밀가루가 주식이니 많이 기를 수도 있지.”
“그렇다 해도 너무 땅이 드넓습니다. 대한에서는 한 결만 가져도 부유한데 여기서는 열 결정도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 같군요.”
“싸다 못해 대한 가격의 십 분의 일에 달하는 물가를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지.”
셔먼은 보급 부대임을 증명하듯이 진군을 하며 물자 보충과 배분을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어재연과 병사들은 미국의 압도적인 생산력을 다시금 체험하였다.
한 병사는 대한제국 물가를 생각하여 설탕을 사려고 20센트, 약 한 냥을 내밀었다. 기껏해야 1/4근(150g)의 설탕도 못 살 거라 생각하였지만 4근(2.4㎏)의 설탕이 되돌아왔다.
대한제국에서 간혹 빵에 발라 먹는 수유(酥油), 버터는 20센트에 반 근이 조금 넘는 양이었다. 이마저도 덤터기를 썼다며 셔먼이 핀잔을 줄 지경이었다.
“오늘 일정은 진군 경로에 있는 저택을 소유한 윌슨 가문의 어르신께서 편의를 봐줄 예정이네! 다들 얼마 남지 않았으니 당당히 진군하도록!”
대열 맨 앞에서 말을 타고 나아가는 셔먼이 호기롭게 외쳤지만 저택은 보이지도 않고 드넓은 평원만이 보였다.
어재연은 앞으로 나아가 벌판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윌슨 가문의 저택이 어디에 있는가?”
“저 멀리 보이는 점이야. 망원경으로 확인해 보게.”
겨울 밀이 자라는 평원 저 멀리 점 하나가 보였는데 망원경으로 확인하니 정말 저택이 있었다.
이 자리부터 저택까지 모두 평원인 것을 확인한 어재연이 놀라서 물어보았다.
“이 모든 땅이 윌슨이라는 가문의 땅이라고? 당대의 호족 중 하나인가?”
“그냥 평범한 가문 어른이지. 이 나라에서 부자 노릇을 하려면 땅이 오천 에이커(2,000만 제곱미터)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고작 이천 에이커만 소유하였으니 부자도 아니야.”
“고작 이천 에이커? 팔백 결이면 만석꾼을 넘어서서 삼만 석을 거둘 수 있는데 평범하다?”
어재연은 평범함의 기준이 뒤틀려버린 미국의 생산력을 확인하며 말이 안 된다 생각하였다.
대한제국에서 개인이 농토를 팔백 결이나 소유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설령 소유하여도 가문 전체가 공유하는 토지이며 양반 가문들이 소작을 부리는 경우도 평균적으로 30결 내외를 소유하였다.
셔먼은 어재연의 표정을 보더니 지나가듯이 말하였다.
“한 가족이 백 에이커 정도는 너끈히 경작할 수 있어야 하고 아무리 부족한 사람도 십 에이커 정도는 소유하고 있지. 일단 거지가 생기면 농토부터 빌려주는 것이 가진 자의 의무야.”
“십 에이커면 대한제국에서는 부농(富農)이야. 백 에이커면 어지간한 양반들보다 미국 농부의 땅이 많다는 소리고.”
셔먼과 어재연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진군하였다. 잠시 뒤 저 멀리서 말이 열 마리나 달려오더니 농장 주인인 윌슨이 말에서 내려 인사를 올렸다.
“멕시코 놈들을 때려잡기 위해 진군하는 병사분들이군요. 미리 연락을 받아 두었습니다.”
“저는 윌리엄 데쿰셰 셔먼, 이쪽은 대한제국에서 건너온 어재연이며 둘 다 계급은 소위입니다. 휘하 병사 육십 명과 함께 오늘 하루 이 저택에서 묵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예순 명이나 방문하다니요. 제가 연락이 조금 늦게 들어와 준비가 부족한데…….”
벽돌 위에 회반죽 칠을 하여 새하얀 자태를 드러내는 저택으로 안내한 윌슨은 하인들을 소집하였다. 20명에 달하는 흑인 노예들이 뛰쳐나와 수발을 들었다.
“또 탄산수야? 시원한 물은 어디 없는가?”
“대한제국 사람들은 탄산수 대신 시원한 물을 좋아하니 어서 내오게나.”
어재연이 가장 짜증 나는 일 중 하나가 미국에서는 그냥 물을 마시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최소한 탄산수이니 맛 좋고 시원한 물도 톡 쏘는 맛에 트림이 나오게 하였다.
주문대로 찬물이 나오고 대한제국 병사들은 물을 퍼마시며 시원함을 즐겼다.
너 나 할 것 없이 군화를 벗고 행군으로 부르튼 발을 주무르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쉴 새 없이 움직이는 건장한 흑인들을 보며 셔먼은 부끄러운 듯이 말하였다.
“깜둥이들 좀 안 보이게 하면 어디 덧나나?”
“어허! 흑인도 엄연한 사람이야!”
“자네 생각은 그럴지도 모르지만 나는 인종이 자격을 가지고 있으며 사귈 인종을 가려야 한다고 생각하네. 대한제국이면 명백한 운명을 가진 개화된 민족이야.”
어재연은 친구의 또 다른 일면을 다시 보게 되어 질색하였지만 이해는 하였다. 셔먼은 적어도 사회적인 차별은 거부하는 사람이었다.
흑인이나 유대인 그리고 대한제국을 제외한 동양인을 평등하게 싫어하는 사람이 윌리엄 셔먼이었다.
서로의 군장을 점검하는 중에 윌슨이 다가와 식사가 준비되었다고 말하였다.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하루만 더 빨랐다면 더 좋은 대접을 할 수 있었는데 영 부족한 식사를 차려야 할 것 같군요.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윌슨 씨에게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제가 미리 보낸 서신에서 검소한 상차림을 대접하라는 말을 제대로 확인하셨는지요?”
“제대로 확인하여 검소한 상을 차렸습니다.”
“검소한 것 맞지요?”
검소라는 말이 반복되자 어재연이 눈을 굴렸고 셔먼은 머리를 매만지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윌슨이 저택 후원으로 안내하는 동안 셔먼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우리는 대한제국의 검소한 면을 존중하여 여러모로 검소한 대접을 하였는데 여기서는 아닐 것 같군. 뱃속에서 전쟁을 치를 준비를 하게.”
“지금까지의 대접이 검소하였다고?”
어재연은 저택 후원에 차려진 상차림을 보고 할 말을 잃어버렸다. 으리으리한 탁자 여러 개 위에는 빵 덩어리가 있었는데 비프 웰링턴이라는 요리임을 알아차렸다.
소는 시작에 불과하였다, 돼지고기를 다채롭게 굽고 베이컨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았으며 그 옆에는 사슴 고기로 보이는 스테이크가 또 있었다.
여기에 거위와 오리 통구이는 물론이요, 산더미 같은 감자튀김과 버터를 잔뜩 넣고 막 구워낸 빵이 다시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탄산수, 에이드, 맥주, 커피 심지어 위스키까지 탁자에 빼곡히 놓여 있었다. 어재연과 대한제국 병사들은 질색을 하였으나 미국인들은 입맛을 다시며 손을 부볐다.
대충 보아도 대식가로 유명한 대한제국 사람들이 100명이 먹고 남을 요리가 60명에게 대접되었다.
윌슨은 포도주 통의 뚜껑을 열며 축사를 말하였다.
“차린 것은 부족하지만 많이 드시지요! 육류가 열 종류여야 하는데 고작 여덟 종류만 대접하게 되어 참으로 죄송한 일입니다.”
미국의 ‘검소한’ 대접이 시작되었다. 어재연과 병사들은 이 날 이후로 멕시코와의 전쟁을 대비하며 끝없이 쏟아지는 고기와의 전쟁을 수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