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60화 (160/345)

160. 15장 1화 천조국(千祚國)(1)

대한제국이 한창 아편 단속에 골몰할 무렵 미국-멕시코 전쟁의 지원군은 머나먼 바다를 건너 미국으로 향하였다. 이들의 여정은 두 달 동안 계속되었다.

마침내 미국 동해안의 항구도시인 스태튼 아일랜드, 현대의 뉴욕 남부에 입항하였다. 이미 서신을 받은 미국 대통령 제임스 녹스 포크는 대한제국의 장병을 맞이하였다.

“명백한 운명이 지원군을 얻었습니다. 우리와 텍사스 공화국을 두고 마찰을 벌이며 텍사스 공화국을 무력 병합하려는 멕시코를 기억하십니까! 이들을 격멸하기 위한 동방의 사절입니다!”

이미 미국은 텍사스 공화국 병합을 주도하였고 멕시코에 대한 징벌을 천명하였다.

뉴욕 시민들의 성원 속에 배에서 가장 먼저 내린 흥선군 이하응의 형 이최응이 인사를 올렸다.

“미국의 대통령과 의원들 그리고 시민 여러분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저 산향공(山響公) 이최응이 답을 드립니다. 묵서가를 정벌하여 대한의 자존심을 다시 세우겠습니다!”

대한제국의 지원군을 받아들이게 된 미국은 이를 ‘명백한 운명’이 가져온 축복이라 공표하였다. 이는 멕시코와의 전쟁을 촉구하는 여론을 부추겼으나 파견 병력은 부담이 되었다.

2,000여 명에 달하는 정규군이 미국 땅에서 여러 정보를 입수하는 것도 문제였고 전쟁에 타국의 힘을 빌리는 것 또한 문제였다. 그러니 격식에는 맞되 전선 투입은 거부하려 하였다.

임시로 뉴욕 일대의 호텔과 숙소를 빌려 병사들의 숙소 배분과 장교 숙소를 마련하고 연회가 시작되었다.

제임스 포크는 이최응과 잔을 마주치며 당부를 하였다.

“미국의 군사교육을 이수하실 필요는 없지만 적응은 해야지요. 프린스 산향(山響 - 이최응의 호)께서 이를 유연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소대 단위에서 대한제국군을 보조하겠습니다.”

“훌륭한 판단입니다. 이역만리에서 군대를 멋대로 운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니 통제에 따라야지요.”

“응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대한제국군 장교 여러분과 병사들에게 전우(戰友) 부대를 마련하겠습니다. 함께 행동하면 서로 많은 것을 배울 것 같습니다.”

“장교진에게 영어를 배우게 하였으니 대화도 잘 통할 것 같습니다.”

박현상의 주도하에 미국에서 많은 정보를 얻어내기 위한 계략이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였다.

인사가 끝나자 다음으로 제임스 뷰캐넌이 나서 이최응과 병사 배분에 대해 논하였다. 대한제국군에서 보낸 3개 대대 가운데 이최응이 지휘관인 포병대대만 실전에 투입할 예정이었다.

나머지 2개 보병 대대는 후방 거점방어와 보급 부대 호위 역할을 담당하게 될 예정이었다.

이최응이 이를 허락하자 제임스 뷰캐넌은 고개를 돌려 장성과 장교들을 소개하였다.

“프린스 산향의 상위 제대를 담당하게 될 윈필드 스콧 장군입니다. 전쟁장관 윌리엄 마시의 명령을 수행하되 어디까지나 대한제국군에게 화력지원 권고만 제시할 예정이지요.”

“머나먼 대한제국에서 멕시코를 징벌하기 위하여 방문하신 분에게 인사를 올립니다.”

“이러지 마시오. 군인은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법이며 황제 폐하께서 나에게 내린 명은 미국에서 상위 부대 장성의 명령을 따르라 하였소.”

서로 크게 인사를 올린 윈필드 스콧과 이최응은 손을 맞잡았다. 그러고는 서로 다짐하듯이 말하였다.

“제가 알기로 대한제국의 역사이자 옛 조선의 역사에서 화포를 사랑하는 나라라 하였습니다. 화포가 녹아내릴 때까지 신나게 포격을 수행하시어 멕시코 놈들을 짓뭉개 주십시오.”

“화포가 모두 녹아내리고 다음 화포는 미국에서 임대하여 쏘아댈 것이니 염려하지 마시오.”

“훌륭한 말씀입니다. 듣자 하니 포병학교 기본 교육을 나폴레옹의 원수인 오귀스트 마르몽이 담당했다 하였지요. 참으로 기대가 됩니다.”

총사령관 윈필드 스콧과 이최응이 서로 훈훈한 덕담을 나누자 다음 순서가 진행되었다. 고위 계급부터 각 계급에 대응하는 장성과 장교진이 악수와 통성명을 나누었다.

“로버트 에드워드 리 대위입니다. 공병 담당이며 군단 보조를 수행할 예정입니다.”

“이현익(李玄益) 부위(副尉)요. 자는 치향이며 똑같은 공병 담당이니 함께 잘해봅시다.”

미군이 배정한 장교들은 대한제국군보다 한 단계 높은 계급으로 배정해 서로 마찰이 일어나지 않게 하였다.

순서대로 악수를 나누고 마침내 가장 낮은 장교들의 차례가 되었다.

“율리시스 심슨 그랜트 중위입니다. 보급 및 척후 담당이니 이번 전쟁에서 많은 전훈을 얻어봅시다.”

“본관은 양헌수 참위(소위)요. 보병 담당이지만 이번에는 산향 공작님을 보좌하게 되었소.”

혼자 폭음(暴飮)을 하여 술 냄새를 풍기는 율리시스 그랜트가 휘청거리며 악수를 나누자 윈필드 스콧이 인상을 찌푸렸다.

악수가 이어지며 계급이 내려가고 거의 마지막에는 대한제국군에서 막 참위가 된 신규 위관(尉官) 계급이 남았다.

서로 180㎝에 달하는 당당한 체격의 두 사내가 악수를 나눴다.

“윌리엄 데쿰셰 셔먼 소위입니다. 병참과 후방 행정 담당을 실시할 예정입니다.”

“어재연 참위요. 사실 참위 자리는 기에 눌리지 않기 위해 진급한 것이고 실제로는 정교(正校 - 상사) 계급에 불과하지.”

서로에 대한 군사적 대화가 시작되었다. 미국은 근래에 대규모 정규전을 치른 적이 없으며 대한제국군의 정규전은 나약한 청나라 군대를 상대하였기에 논의할 것은 많았다.

모두가 새로운 대화상대를 만나 술을 들이켜고 음식을 즐겼다. 분위기가 가라앉을 무렵 이최응이 어재연에게 다가와 명령을 내렸다.

“어 참위 자네가 가장 경력이 짧고 계급이 낮지 않은가. 미국에 있는 유대인들이 여러 인재를 대한으로 보내려 하는데 자네가 며칠 말미를 내어 이들을 방문해 주게.”

“추…… 충성! 참위 어재연 명을 받들겠습니다!”

미군은 아직 대규모 군대를 운영하지 않는 국가이기에 병사 소집과 훈련 과정이 남아 있었다.

일선 부대는 몰라도 윌리엄 셔먼의 병참 부대는 편성 예정이니 그 또한 시간이 남았다. 윌리엄 셔먼은 아예 자신의 상관에게 보고를 하였고 상관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이최응의 명을 받아 흥분한 어재연에게 돌아온 그는 담담하게 말하였다.

“아예 한 달 정도 자율 활동을 허가받았으니 제가 어 참위님을 보좌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궁금한 점이 있으면 여러모로 여쭈어보도록 하지요.”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저도 궁금한 점이 있기는 합니다.”

어떤 질문이 나올까 염려한 어재연에게 셔먼은 슬쩍 웃으며 조금 심각한 질문을 하였다.

“성씨의 표기가 궁금합니다. 성이 어인데 Auh입니까? Uh입니까 아니면 Eoh입니까?”

“농담 한번 잘하시는구려. Uh요!”

“저는 혹시나 Aeugh일지도 몰라 걱정하였습니다.”

“그건 웬 복어가 당근 씹어 먹는 소리요!”

서로 등을 때려가며 웃은 어재연과 셔먼은 다시 와인을 들이켜며 농담을 나누었다.

어 씨의 공식 표기가 Eo임을 잊은 채 술을 퍼마신 어재연은 다음 날 숙취에 시달리며 일어났다.

“포도주는 숙취가 심하다는 정위님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시체 몰골로 숙소에서 나온 어재연은 남쪽에 펼쳐진 롱아일랜드의 풍경을 즐긴 다음 시가지를 확인하였다. 드넓은 길과 다채로운 건물이 가득한 뉴욕의 시가지 사이사이에서 아련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어제 윌리엄을 만나기로 한 장소가 대장간이던가. 특허 무기 제조 회사(Patent Arms Manufacturing Company)라니 이름 한번 거창하군.”

어재연이 받은 목록의 인물은 12명에 달하였다. 하나같이 채무를 짊어지거나 사업에 실패하였으며 유대인들이 이 채무를 탕감해 주는 조건으로 대한제국을 소개해 주기로 하였다.

숙취에 시달리며 억지로 걸음을 옮기자 저 멀리서 윌리엄 셔먼이 손을 흔들었다.

서로 숙취가 심하였는지 파리한 안색의 셔먼은 어재연의 표정을 보더니 다짜고짜 말하였다.

“이러다 우리 둘 다 숙취로 쓰러질 것 같은데 해장이라도 하지 않겠나?”

“해장이라? 굴국밥 한 그릇이라도 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런 음식이 있나?”

“굴? 굴은 해장에 아주 좋지. 근처 레스토랑에서 굴이나 먹으세.”

마침 굴이 제철인 1월이었으니 어재연의 입에 군침이 돌았다. 뜨끈하고 시원한 굴국밥 국물을 들이켜면 숙취가 바로 해소될 것 같았지만 미국에는 국밥이 없으니 생굴이 나았다.

뉴욕시에 수많은 레스토랑 가운데 셔먼이 추천한 레스토랑은 이른 아침인데도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어재연이 느낀 감상은 화려함이었다.

희뿌연 담배연기와 고기 굽는 연기가 어우러지고 수실을 놓은 식탁보와 두툼한 원목 테이블이 윤기를 내며 격을 돋구었다. 여기에 각 테이블마다 둔 은촛대와 촛불이 음침한 분위기를 밀어내었다.

자리에 앉은 셔먼과 어재연에게 웨이터가 다가와 주문을 받았다.

몇 번이고 와본 레스토랑이었는지 셔먼은 속사포같이 주문을 내뱉었다.

“생굴 두 접시에 스튜 그리고 솔즈베리 스테이크를 내오게.”

“어이구. 대낮부터 스테이크를 드실 생각이신가?”

“해장을 끝마쳤으면 속을 든든히 채워야지. 한번 먹어나 보게.”

벌써부터 친밀해진 두 장교는 낄낄거리며 탄산수를 들이켰다. 알싸한 탄산 맛 속에 레몬 향이 감도는 가운데 어재연은 아직도 속이 얹혀 있는 것을 느끼고 품속에서 병을 꺼냈다.

“활명수 한잔하게나. 마침 탄산수를 내왔으니 여기에 섞어 먹으면 아주 좋아.”

“활명수?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니 젊음의 샘에서 퍼 왔나?”

정약용이 만들어낸 활명수는 농축액 형태로 보급되어 있었다. 이역만리에서 소화불량이나 역병 혹은 급체를 당할 때를 대비한 약이었는데 셔먼은 이를 한 모금 들이켜고 말하였다.

“속이 다 후련하군! 박하 맛이 조금 센 것 같은데 설탕을 넣어서 가라앉히면 좋겠어.”

“그럼 활명수 한 병을 줄 테니 설탕을 넣어서 마셔보게.”

활명수 농축액 병을 건넨 어재연은 웨이터가 가져오는 은쟁반을 보며 눈을 굴렸다. 팁을 넉넉히 얹어 내놓은 식비는 50센트이며 최근 환율이 오른 신냥으로 2냥 수준이었다.

대한제국이라면 거하게 한 상 차림을 받을 수 있는 가격이었으나 미국은 상식을 초월하는 나라였다. 주먹보다 거대한 굴이 얼음을 담은 은쟁반 위에 담겨 탁자 위에 놓였다.

“역시 뉴욕은 식품 가격이 비싸다니까. 해안이나 내륙이라면 물가가 훨씬 싼데.”

“훨씬 싸다고? 이토록 거대한 굴을 서른 개나 내놓았는데?”

말이 나오기 전에 손이 먼저 움직였다. 굴을 하나 집고 레몬소스를 뿌려 먹은 어재연은 그 고소한 맛에 감탄하였다. 아직 어자원이 보존된 미국의 환경이라 한반도의 굴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굴을 게 눈 감추듯 비운 다음에는 스튜와 바구니 가득 담긴 빵이 나왔는데 웨이터는 자랑하듯이 그릇에 숟가락을 수직으로 꽂아주었다. 숟가락은 바로 넘어가지 않고 느릿느릿 넘어졌다.

“내가 알기로 영길리의 스튜는 국밥보다 건더기가 적은데.”

“그건 수프이지 스튜가 아니지 않나. 이 가게는 오크라가 잔뜩 들어가서 맛이 아주 좋으니 어서 먹도록 하게.”

후추를 갈아서 스튜 위에 잔뜩 뿌린 셔먼을 바라본 어재연은 스튜 한 숟갈을 들었다. 얼마나 고기를 많이 넣었는지 손톱만 한 덩어리 고기와 채소가 가득 건져 나왔다.

다음으로 나온 것도 고기였다. 주먹 세 개를 합친 것보다 거대한 솔즈베리 스테이크.

훗날 햄버거 스테이크라 불리는 음식을 마주한 어재연은 활명수를 들이켜고 말하였다.

“내 장담하겠는데 이런 식사를 대한에서 했다가는 봉급이 삽시간에 거덜 날 거야.”

“농담 한번 잘하는군. 이런 음식을 먹을 정도로 여유가 있어야지.”

어재연은 버터가 잔뜩 들어가 부드러운 빵을 찢어 스튜에 찍어 먹고 스테이크를 썰어 먹는 윌리엄 셔먼을 보면서 자신의 생각을 고쳐나갔다.

지금까지 대한제국이 서구 열강들과 견주어도 부족할 뿐 격차는 크지 않다 생각하였다.

반면 이류 열강이라 낮잡아 보았던 미국은 식료품 생산 하나로도 압도적인 격차를 보여주었다.

이 정도의 생산력이라면 전쟁이 벌어지거나 국가가 위기에 처할 경우 상당수의 농민을 징집해도 몇 년은 버틸 수 있으리라.

식사를 마친 어재연은 레스토랑을 나와서 거리를 확인하였다.

“너 나 할 것 없이 풍요로움을 자랑하고 있구나.”

이미 대한제국에서는 유럽에 유학생을 매년 파견하였다. 기존의 거창한 행사도 아닌 서류 면접에 합격하면 국비로, 국비 유학에 실패하면 사비를 내어 유학을 다녀왔다.

공통적으로 말하는 사항이 있었으니 영국 서민들의 실태였다. 키가 작고 아이를 몇 낳지도 못한다는 증언이지만 미국은 정반대의 양상을 보여주었다.

부부가 각기 어린아이를 껴안고 길거리를 지나갔으며, 그리고 그 뒤를 병아리처럼 따라다니는 여섯 명의 아이들이 보였는데 모두 체격이 건장하였다.

이를 확인한 셔먼이 팔짱을 낀 채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미국의 덕목은 아이를 많이 낳는 것일세. 대한제국은 어떠한가?”

“보통 아이를 여섯 정도 낳아서 한 둘 정도는 어린 시절에 죽게 마련이지.”

“흡사하군, 저 멀리 시골에 가면 아이가 열둘 정도는 되어야 자랑할 수 있지만 그건 시골 이야기고.”

그게 부부인지 아이 낳는 기계인지 모를 심정의 어재연이 눈을 흘겼지만 셔먼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둘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오늘 방문하기로 한 공장으로 향했다.

“이 공장 내가 아는 공장인데.”

“윌리엄 자네가 알고 있다고? 무슨 공장인가?”

“새뮤얼 콜트라는 발명가가 경영하는 공장이지. 이 친구가 여러 발명품을 창안하고 해병대에 리볼버를 납품하였는데 공이가 부서지고 탄연이 새어 나와 손가락이 날아갔어.”

유대인들이 제대로 된 사람을 소개하지 않았다 생각한 어재연이지만 일단 만나 봐야 알 수 있었다. 처음에는 공장이 크기만 클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의외로 알차게 가동되고 있었다.

대한의 공장과 비교하여도 손색이 없는 큰 채광창과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환풍기 사이로 후끈한 열기가 밀려오며 어재연의 콧잔등이 달구어질 지경이었다.

증기기관이 꿈틀거리며 부품을 찍어내고 두툼한 작업복을 입은 기술자들이 움직이는 가운데 어재연은 손짓을 하였다.

이를 확인한 사환이 인사를 올렸다.

“대한제국에서 새뮤얼 사장님을 만나 뵈러 오신 분이시군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동안 몇몇 시험용 물품이나 확인해 보겠네.”

어재연은 눈을 흘기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미 편견을 가진 그는 상자 안에 담긴 바늘을 하나 꺼내 군복 소매를 여러 겹 겹쳐서 꿰어보려 하였다.

처음에는 잘 들어가던 바늘이 구부러지며 부러져 버렸다.

어재연은 이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며 비난을 시작하였다.

“총포를 만드는 대장간에서 바늘 하나도 제대로 못 만들어? 농기구로 시작해서 바늘 같은 섬세한 물건을 만들고 마지막에 다루는 것이 총포인데!”

“대한에서는 물건을 그렇게 만드나? 우리는 기술자들이 가장 먼저 만드는 것이 총인데.”

“농담하지 말게. 세상에 어떤 나라가 총을 먼저 만드나? 그 정도로 총을 많이 만들면 길거리의 어린아이들이 새총 대신 총을 쏘면서 돌아다닌다는 말인가?”

“시골의 부유한 집에서는 열 살 정도 되는 아이들이 머스킷을 쏴서 토끼를 잡고는 하지.”

농담이라 생각한 어재연은 괜한 소리 하지 말라며 옆구리를 찔렀고 셔먼은 뭐라 설명을 하려 하였다. 그들의 농담은 공장 구석에서 나온 한 기술자의 인사로 끊겼다.

“반갑습니다. 저는 하트퍼드 출신의 발명가이자 기술자인 새뮤얼 콜트입니다.”

“반갑소. 나는 대한제국군 참위인 어재연이요.”

악수를 나눈 새뮤얼 콜트와 어재연은 눈을 빛내며 서로를 살펴보았다. 어재연은 새뮤얼 콜트를 온갖 문제를 일으키는 발명가라 생각하여 퉁명스럽게 제안을 하였다.

“계약에 의거하면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람을 대한제국에 파견하는 조건으로 채무 탕감을 할 예정이지. 본인 의사를 물어보아야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오?”

새뮤얼 콜트 입장에서는 유대인이 짊어진 채무를 이행하지 못하여 이역만리로 팔려가는 신세였다. 그러니 기술을 자랑할 목적으로 아직 완성되지 않은 리볼버를 가져왔다.

“일단 제 기술을 확인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물건이지요.”

“육혈포이군. 기존에 사용하던 육혈포와 다른 것 같은데.”

“제 리볼버는 총열이 하나이며 탄창이 회전하는 구조입니다. 기존 리볼버는 총열이 회전하기 때문에 장전도 불편하고 무게도 지나치게 무겁지요.”

어재연도 권총 사용법은 숙지하고 있었다. 이 시대의 리볼버는 총열 후방에 퍼커션 캡을, 전방으로는 흑색화약과 총알을 넣어야 하기에 전투 중에 재장전이 불가능한 물건이다.

반면 새뮤얼 콜트의 리볼버는 버튼을 누르면 총열이 젖혀져 탄창이 드러났다. 이 탄창을 교체하거나 손바닥 위에 올려 재장전을 하면 되니 실전성이 있는 물건이었다.

“저에게 투자하신 분이 대한제국의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다 하며 추천해 주시더군요. 감히 여쭈어 보겠으니 제가 대한제국에 가면 이 리볼버를 완성할 수 있습니까?”

“이미 완성은 되었소. 개념상으로는 완성이 되고말고.”

새뮤얼 콜트의 발명품을 확인한 어재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였다.

그의 실패 원인은 새로운 개념을 도입하다 벌어진 사고였으며 몇 년 이내에 성과를 드러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새뮤얼 콜트를 대한제국에 들여와 신형 리볼버를 군에 보급할 생각을 먹었다. 사람을 보내 자신의 숙소에 보관된 갑식 소총과 탄환 20발을 가져왔다.

다른 나라에서는 꿈의 소총이자 돈을 허공에 퍼붓는 물건이라 비꼬아 말하는 갑식 소총을 건네받은 새뮤얼 콜트는 후방의 트랩도어 장전장치를 열어본 다음 놀라서 말하였다.

“후미장전식? 대한제국이 탄피를 완성했다는 말은 들었는데 실전 배치를 실시하다니요!”

“이번 멕시코 원정에서 첫 실전을 겪을 거요.”

어재연은 아예 시험 사격을 실시하였다. 장전한 갑식 소총을 겨누고 백 야드 밖의 표적에 총을 쏘았고 몇 발의 사격을 거듭하였다.

들썩거리는 트랩도어를 확인한 새뮤얼 콜트는 소총 자체의 성능보다는 안정적으로 탄환을 내뿜는 탄피에 주목하였다.

그는 탄알을 몇 발 들고 흥분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이걸 어떻게 구현하셨습니까? 가스압력은요? 내부 폭발은요? 장약 설정은요?”

“자세한 것은 휘트워스라는 기술자와 조일준 총장이 주도하였으니 직접 가서 묻지 않겠소?”

“오 세상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계약서를 작성합시다!”

새뮤얼 콜트의 회사가 도산한 이유 중 하나가 리볼버의 장전방식 때문이었다. 정확한 장전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압력이 높아져 불발되거나 아예 탄창이 파손되는 일이 잦았다.

이를 막아내기 위해 퍼커션 캡과 일체화된 주석 탄피를 연구하였으나 채무가 쌓여갔다. 탄피 개발 난이도는 총의 개발 난이도의 몇 배에 달하니 그의 힘으로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앞으로 2년만 기다리면 콜트 워커(Colt Walker) 리볼버 대량발주가 들어와 회사의 운이 트이게 생겼지만 이를 알 리가 없었다.

바로 계약서에 서명한 새뮤얼 콜트는 다시 악수를 나누며 말하였다.

“계약에 의거하여 십오 년 동안 대한제국에 근무하며 소총을 개발하겠습니다. 특허료는 대한제국이 절반, 제가 절반을 가져가는 것으로 하지요.”

“본관이야말로 잘 부탁하지. 그 리볼버라는 물건을 완성해 군에 보급해 보시오.”

구석에서 빤히 둘을 지켜보던 윌리엄 셔먼은 양손을 내밀어 둘을 포옹하였다. 그러고는 어재연에게 다가가 갑식 소총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참 대단한 소총이로군. 이런 소총을 사용하는 소대가 고작 후방 보급을 담당하다니.”

“자네야말로 이 소총의 진가를 알고 있군. 혹여나 대한제국에 발주를 원하는가?”

“아직은 불가능하지. 내가 알기로 소총 한 자루의 가격이 삼십오 달러에 달하는데 그 가격에 누가 사들이겠나? 이십 달러 아래라면 사들일 생각은 있네만.”

코웃음을 친 셔먼은 어재연이 소총을 닦아내고 가죽 케이스에 넣는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어재연에게 다시금 질문을 하였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네. 내가 알기로 완성도가 높은 갑식 소총을 따로 분류하여 무연화약 소총으로 만들어낸다 했었지. 그 소총을 자네가 사용할 수 있는가?”

“원한다면 가능한 일이지. 갑식 소총은 여유분을 감안해 삼천 정을, 진식 소총은 여유분이 별로 없어서 오백 정을 가져온 것이 전부이지만 소대 하나 정도야 창설할 수 있어.”

“그럼 말이야. 우리 소대 전체를 진식 소총을 사용하는 소대로 만들어 보지 않겠나?”

“어이구 윌리엄, 이 방정맞은 친구야. 우리는 엄연히 후방 보급 및 호위 담당인데 값비싼 진식 소총을 사용하겠다고? 개 발에 편자를 다는 소리를 하는군.”

어재연은 여전히 농담을 하고 있는 줄 알고 고개를 돌렸으나 윌리엄 셔먼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는 군인이며 젊은 혈기와 공명심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내가 알기로 대한제국의 최신형 소총의 유효 사거리는 칠백 야드에 달하지. 최전선에서 칠백 야드 뒤에 있다면 후방이 아닌가?”

“자네 설마 호위 부대를 담당하며 멋대로 전선에 뛰쳐나올 생각인가?”

“아닐세! 호위는 적을 가만히 앉아서 지키는 것이 아닌 적을 선제 타격하여 밀어내는 것이지! 우리가 조금 앞으로 나와서 지휘관의 머리통을 날려버리면 어떻게 되겠나!”

어재연 또한 공명심이 있으며 혈기가 넘치는 젊은 장교였다. 곰곰이 생각해 본 어재연은 윌리엄 셔먼의 말을 호방하게 받아쳤다.

“좋은 생각이야. 까짓것 십 리 정도 전선이 뒤엉키는 경우도 있는데 누가 뭐라 하겠나.”

“나는 새로운 병기를 활용할 길을 찾고 자네는 진식 소총의 실전 성능을 파악할 수 있지. 더군다나 한 정에 백 달러가 넘는 소총이니 우리 미국이 복제할 수도 없지.”

의기투합한 두 장교는 바쁘게 움직였다. 어재연은 진식 소총을 사용하는 병사를 보급받기를 청하였으며 윌리엄 셔먼은 각지의 뛰어난 사수(射手)들을 모집하기 시작하였다.

#작가의 말

윌리엄 셔먼이 대접한 음식은 미국 기준으로 굉장히 검소합니다.

이게 다 이하응이 아일랜드에서 벌인 행적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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