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14장 6화 금지령(2)
1845년 10월 말, 평양의 남포에서는 두 무리의 선단이 동시에 출발하였다. 한 선단은 미국과 맺은 조약대로 멕시코 전쟁에 파견할 2,000여 명의 대한제국군이 탑승한 선박이었다.
효명제는 이를 태종의 대마도 정벌과 대등하게 여겨 친히 배웅하였다.
각 장수들과 악수를 나누고 대표이자 종친의 일원인 이최응이 마지막으로 배웅을 받아들였다.
“머나먼 이역만리에서 이 대한에 무례를 범한 나라를 징벌할 것이니 미국을 도와 이를 수행하라. 또한 미국의 실체를 명확히 알아둬야 할 것이다.”
“신 이최응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묵서가(멕시코)가 다시금 이 나라를 질시하지 않도록 통령이라 자처하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할 작정이옵니다.”
“실로 마음이 놓이는구나. 흥완(興完)공이 배운 것을 모조리 발휘하도록 하라.”
이하응의 형이자 남연군의 차남이며 훗날 부여왕의 자리에 오를 예정인 장교 이최응을 배웅한 효명제는 출항하는 배가 먼 바다로 사라질 때 까지 지켜보았다.
다음으로 외교 문제를 처리할 차례였다. 칭제건원 이후로 서로 형식상의 국서만 전달하던 청나라에 외교 담당부서인 외부대신이 직접 나아갈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다.
“신 권돈인 황제폐하께 청나라로 나아가기 전 인사를 올리옵나이다.”
“예전이라면 북경에 다녀오는 것이 고단한 일이었으나 이제는 아니지 않소. 먼 길을 편히 다녀오도록 많은 배려를 하였으니 여력을 모아 청나라 황제에게 필요한 말을 하시오.”
“익히 알고 있사옵니다. 이번 기회에 청나라의 강역에서 아편의 뿌리를 뽑아 이 나라가 아편의 해악을 겪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이옵니다.”
효명제는 청나라의 엉망진창인 상황을 알고 있으며 이 자리에 있는 사람 모두가 알고 있었다. 당연히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외교적으로 꼭 해야 할 일이었다.
증기선에 올라 사흘 만에 청도에 도착한 권돈인과 대한의 사신들은 기차를 타고 다시 마차를 갈아타며 북경으로 향하였다.
이미 서신을 먼저 받은 도광제는 즉각 접견을 실시하였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 조선의 사신을 접견하고자 하였다. 양귀비라 하였느냐? 이 땅에 양귀비를 대량으로 재배하는 놈들이 있다 하였느냐?”
공식적인 자리에서 국명을 조선이라 말하는 도광제를 본 권돈인은 별다른 대꾸도 하지 않았다. 국명을 조선으로 부르건 대한으로 부르건 중요한 일은 기 싸움이 아닌 아편 단속이었다.
“철도 노선 부설 최종공사에서 시야를 확보하기 위하여 나무를 베려던 기술자들이 우연히 발견하였사옵니다. 인근 능선에 양귀비밭이 세 군데나 있는데 심상치 않은 일이옵니다.”
“우연일 수도 있지 않느냐. 짚더미 속에 바늘이 한 개 섞여 있고 우연히 찔린 꼴이겠지.”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하였으나 외무 부대신인 박현상의 판단이 더 정확한 것 같사옵니다. 짚더미에 손을 대자마자 바늘이 세 개가 나오면 짚이 아닌 바늘 덩어리나 마찬가지이옵니다.”
아편을 증오하다 못해 아편 때문에 굴욕을 겪은 도광제가 권돈인을 노려보았다. 아직 증거가 부족하지만 대한에서는 공식적으로 국서를 작성한 상황이었다.
도광제도 징후를 포착하여 답답하였지만 권돈인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비공식 첩보기관인 상무국을 통해 입수한 첩보에 의하면 양귀비밭이 백 곳이 넘게 생겨났다.
“바늘 덩어리라. 그 말이 옳은지 그른지는 모르겠지만 조선은 어찌 대처할 작정인가.”
“효명제께서 명하시길 상해와 청도에 관원을 파견하고 아편을 대량으로 밀수하는 자를 즉각 참(斬)할 것이라 하였사옵니다. 그러하니 이에 대한 합의도 필요할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도광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다 왼 다리의 힘이 풀려 다시 주저앉았다. 그가 경험한 조선과의 전쟁도 결국 범죄자 송환과 법 적용 문제로 불거진 것이다.
자신이 잘못 대처하면 대한이 더 많은 권리를 요구하며 공세를 취할지도 몰랐다. 이 자리에 있는 권돈인은 몰라도 박현상이라는 끔찍한 놈은 그러고도 남을 괴물이었다.
그러하니 이 자리에서 사태를 수습해야 하였다.
도광제는 아량을 내리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아편을 다른 나라에 판매하는 놈은 죽여 마땅하지. 다만 판결에 시시비비가 없도록 재판을 세 번 치르고 명확한 증거를 확인하여 짐에게 보고를 올린 뒤 처형하라.”
“황상께서 이토록 아량을 보이시니 신의 마음이 지극히 평온해졌사옵니다.”
“나머지 일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말라. 이제 형제국이 되었는데 동생의 나라인 조선에 올바른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느냐.”
권돈인이 인사를 올리고 물러나자 도광제는 이마를 감싸 쥐고 이를 부득부득 갈아댔다. 그러고는 주변을 돌아보며 명령을 하달하였다.
“즉각 상해를 시작으로 남부의 각 성들을 수색하도록 하여라. 양귀비 농장이 보이면 일하는 모든 자를 잡아 목을 베고 가족을 노비로 만들며 관여한 모든 자를 처형하라!”
“하오나 지나치게 많은 병력이…….”
“충신 임칙서가 남긴 신군(新軍)을 파견할 것이다!”
도광제의 즉각적인 반응을 확인한 권돈인은 찬사를 올리며 대한으로 귀환하였다. 물론 청나라가 제대로 일할 것이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이 소식은 즉각 북경 일대에 전해졌다. 지방의 양귀비 농장에서 아편을 받아 피우던 관리들은 몸을 사렸으며 배상제회에도 소식이 전달되었다.
“황상께서 뜻을 정하시어 양귀비 농장을 소탕하고 아편을 거래하는 놈을 모조리 처형하겠다고 하였네. 듣자하니 조선의 사신이 이를 제안했다 하더군.”
증국번은 앞으로 벌어질 일, 수많은 백성들이 양귀비 재배 혐의로 목숨을 잃게 되리라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였다.
반면 날벼락을 맞은 홍수전은 더듬거리며 말하였다.
“조선의 사신이…… 양귀비 농장을 발견하고 항의를 하였다?”
“바로 보았네. 우리와 같은 생각을 품고 있으니 더 무서운 자들이 아닌가.”
홍수전은 입가를 파르르 떨며 표정을 관리하였지만 방으로 들어오지 마자 털썩 주저앉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런 단속은 결국 큰 건수 하나를 잡아야 끝나는 법이다.
“가만히 있다가는 앉아서 죽게 생겼군.”
이미 각지의 객가들에게 양귀비 재배를 권고하고 퍼트리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런 행위를 하는 홍수전의 행적이 드러나지 않은 이유가 있었으니 돈이 오가지 않아서이다.
이런 행위는 중앙에서 권력으로 단속을 피하게 하고 그 권력 기반을 각 지방에서 들어오는 돈으로 얻어내는 방식이었다. 그저 권고와 사업 확대만 하니 정보망에 포착되지 않았으리라.
그러나 홍수전이 아무리 숨기려 하여도 대한의 정보망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이대로 사건이 진행되면 각지의 객가들이 몰살당하고 마지막으로 자신과 배상제회 모두가 무너지리라.
홍수전에게 남은 길은 도광제에게 간언하여 수사를 중단하는 방법 외에는 없었다.
상관에게 뇌물을 먹여 접견을 시도하였지만 도광제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젊은 관료가 무슨 일이던가. 이 친구가 아편 단속에 대한 고견이 있다니 믿을 수 없군.”
도광제는 범죄자를 색출해 능지처참을 할 생각으로 접견을 중단하였다. 홍수전은 마지막 기회를 잡기 위해 금군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걸어나가며 크게 외쳤다.
“신 홍수전 황상께 간곡히 청하는 바가 있사오며 신의 간언을 들어주시지 아니하면 당장 머리를 찧어 뇌수를 쏟아내고 죽을 작정이옵니다!”
홍수전에게 뇌물을 받고 이번 자리를 마련한 고관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리고 어떻게든 만류하려 하였다.
“황상께 아뢰오니 인곤(仁坤 - 홍수전의 초명)이 여러 어려움을 겪어…….”
“내 한번 듣기라도 하겠으니 논하여 보아라.”
도광제가 허락하자 홍수전은 숨을 들이켰다. 자신의 스승을 죽인 원수이니 말은 해야 하지만 올바른 일이라 말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모순 속에서 홍수전은 그 뛰어난 머리를 굴려 간언을 시작하였다.
“일이 이렇게 된 것은 황상께서 잘못을 하였기 때문이옵니다! 황상께서 이 나라를 온건히 다스리셨다면 백성들이 이런 지경에 빠지지 아니하였을 것입니다!”
“지금 뭐라 하였느냐!”
수십 명의 금군이 달려와 홍수전의 무릎을 꿇렸고 도광제의 호통이 이어졌다. 이는 청나라 황제에 대한 도전이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법을 완전히 무시하고 제도를 짓밟으며 하였던 말을 되돌려도 아무도 탓하지 않았다.
이러한 도광제에게 정면으로 도전하였던 자는 명분을 앞세워 교묘한 수작을 부린 조선의 왕, 지금은 대한의 태상황인 이공 외에는 없었다.
도광제는 고개를 돌리며 말하였다.
“미치광이로구나. 짐 앞에서 무례를 범하였으니 즉각 하옥하라.”
“백성들이 양귀비를 기르고 아편을 짜내는 이유가 무엇이옵니까? 황명으로 각지에 만주에서 이주한 사람을 보내지 않으셨습니까! 이 모든 것이 황상의 잘못이며 백성의 고난이 눈앞에 선하옵니다!”
홍수전이 다시금 자신을 자극하자 도광제는 절뚝거리며 다가와 총을 내놓으라면서 손을 내밀었다. 젊은 시절 백련교의 잔당을 쏘아 죽일 때처럼 홍수전을 죽이려 하였다.
총에 화약이 채워지고 납환이 들어가는 동안 홍수전은 도광제를 바라보았다.
도광제가 부싯돌이 물린 노리쇠를 뒤로 장전하고 총구를 겨누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위협하였다.
“한 마디만 더 하면 짐이 친히 네놈의 목숨을 앗아갈 것이다.”
“신의 목숨은 이미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옵니다.”
눈앞에서 흔들거리는 총구에도 홍수전의 눈빛은 꺾이지 않았다. 이대로 가만히 있다가는 더 비참하게 죽을 신세이니 상황을 뒤엎을 말이라도 해야 하였다.
이는 도광제의 눈에 절대적인 충심을 가진 신하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간언을 올리는 것으로 보였다. 더군다나 홍수전의 눈을 보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자신이 비참한 패전을 겪는 동안 영국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개혁을 주도하려던 임칙서였다.
권력의 분열을 막으려고 살해하였지만 도광제 입장에서도 안타까운 일이기는 하였다.
“목숨이 없다 생각하였느냐. 그러하면 간언을 논하여보거라.”
흔들림 없는 눈빛에 설득된 도광제가 총을 내려놓았다. 그제서야 입을 연 홍수전은 자신을 살리고 청나라를 악순환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을 발언을 시작하였다.
“황상께서 신에게 논할 기회를 주시니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작금에 이르러 백성들이 양귀비를 기르고 이 사실이 조선에 퍼진 이유는 먹고 살길이 막막하여서입니다.”
발언권을 얻은 홍수전은 청산유수처럼 이야기를 하였다.
자신이 거주하던 관록보촌에서 겪은 고난을 시작으로 백성을 위한 말을, 실제로는 변명을 하였다.
“조선의 반역으로 만주에서 추방당한 사람들은 재산을 탕진한 채 각지로 내려왔습니다. 백성들이 이들을 십시일반으로 도우려 하였으나 여러 한계에 봉착할 것이옵니다.”
“내 분명 이주하는 이들에게 부패로 인해 패전에 기여한 놈들의 재산을 일부 내놓았거늘.”
“그러하나 기반이 없으면 몇 년 이내에 동나는 법이옵니다. 고향조차 아닌 머나먼 땅에 홀몸으로 건너온 이들은 하루 끼니를 때우기 위하여 사력을 다하였습니다.”
이야기의 흐름은 백성을 수탈하지 말라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홍수전이 여기서 살아남더라도 부패한 관료들의 공격을 당하게 되겠지만 말이 이어졌다.
“그러하니 급히 돈을 메울 수 있는 양귀비를 재배하며 아편을 만들어 낸 것이옵니다.”
“익히 알고 있어도 양이 문제가 아니더냐? 조선의 사신이 말하기를 능선 전체가 양귀비로 넘실거리는 판국이라 하였다. 이런 자들의 삼족을 멸해야 하지 않겠더냐.”
“신이 간언을 올릴 적에 황상께 결례를 범한 이유가 이것이옵니다. 백성이 농사를 짓지 못하는 상황이라 변두리의 땅에 양귀비를 기르는 상황이 아니옵나이까.”
홍수전은 이미 수많은 관료들에게 뇌물을 바친 경험이 있었다. 여기에 자신이 꿈만 꾸고 막대한 자금 소모로 인해 진행하지 못 하는 계획도 이 자리에서 해결할 생각이었다.
“결국 사람이 많은데 농토가 적어서 벌어지는 문제이옵니다.”
“그러하면 개간을 하자는 말이더냐?”
“개간 또한 옳은 일이오나 더 좋은 방안이 있사옵니다. 황상께서는 공장을 설립하시어 농토가 없는 백성들이 먹고살 길을 마련하였사옵니다. 그러하니 각 지방에 공장을 설립하시옵소서.”
도광제는 이미 개혁안을 받아들여 95개의 공장을 설립하였다. 실제로는 홍수전이 사력을 다해 가동하는 9개의 공장과 이해관계가 맞아서 제대로 세워진 7개의 공장만 정상 가동되었다.
물론 서류상으로는 95개 중 78개가 정상 가동되고 있으며 지원금을 받아내기 위한 사설 공장도 설립되고 있었다.
도광제는 자신의 개혁에 응하는 홍수전을 보며 말하였다.
“그 공장의 관리는 어떻게 할 작정이더냐?”
“양귀비를 재배하는 백성들이 공장에서 일자리를 찾게 되면 재배를 멈출 것이옵니다. 자고로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식량과 주거이며 다음이 의복이옵나이다.”
“옳은 말이다. 땅을 일구어 양귀비를 기르고 아편을 짜내는 고된 작업을 할 이유가 없구나. 처음 간언을 할 때에는 무례하다 생각하였지만 아니로구나.”
도광제도 생각이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청도에서 시작해 북경으로 올라오며 공장을 설립한 이유는 가장 많은 여유인구가 있어서 공장에 인력을 댈 수 있다는 최소한의 계산이 있어서였다.
이런 여유인력이 부족하다 판단한 각 지방에는 공장을 설립하지 않았다. 그러나 홍수전의 설득을 들으니 사람이 넘치고 땅이 부족하여 아편을 만들며 생계를 이어가는 것으로 보였다.
“조금 전의 무례를 내 눈감아 줄 것이며 간언을 받아들일 것이다. 짐의 잘못을 이토록 신랄하게 짚어 주었으니 충심이 지극하구나.”
“신이 이 자리에서 죽더라도 회한이 없었사오나 황상의 자비하심에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홍수전은 다시 고개를 숙이며 절을 올렸지만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목숨을 건진 것은 물론이요, 각 지방에 공장이 설립되면 일어날 일은 불 보듯 뻔했다.
이제는 각 성(省) 단위의 예산을 사용하여 공장을 설립하는 허가가 나게 된 것이다. 도광제는 이번 사태를 정리하며 황명을 다시 고쳐서 내렸다.
“죄를 저지른 자를 엄벌에 처하지 않고 교화할 것이다. 아편을 유통하는 자를 즉각 사형하는 대신 모든 재산을 압수하고 벌어들인 수익을 각 성의 예산으로 환원하라.”
“하오면 양귀비밭을 일구어낸 백성들에게 내릴 벌은 무엇이옵니까?”
“양귀비밭을 적발하면 모조리 불태우고 인근에 설립될 공장에서 일 년 동안 일하게 만들 것이다. 짐이 이러한 뜻으로 교화할 것이니 자연스럽게 온전한 삶을 찾을 것이다.”
도광제의 황명이 전달되자 홍수전은 아예 이마에서 피가 솟아오를 정도로 절을 올렸고 다른 관료들 모두가 미소를 지으며 절을 올렸다.
“황상께서 크나큰 은혜를 내리시니 이 나라의 광명이 비춰오는 것 같사옵니다!”
이제 청나라의 변방을 이중으로 갈취할 합법적인 수단이 열렸다. 각 성의 예산을 공장을 설립하기 위하여 착복하고 자신들에게 뇌물을 올리지 않는 정상적인 부호를 착취할 명분이다.
모든 일이 끝나고 홍수전은 온몸에 솟아 나온 땀을 닦고 흥분을 가라앉혔다. 당장에라도 뛰쳐나가 도광제의 목을 뒤틀어 버리고 싶은 증오심을 참느라 사지가 벌벌 떨리기까지 하였다.
이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목숨을 버리며 자신의 뜻을 주장하고 마침내 뜻이 통하여 흥분한 것으로 보였다.
증국번은 홍수전을 보면서 추후에 일어날 일을 논하였다.
“이제 난리가 나겠군. 백성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일은 모면하였지만 갈 길이 태산일세.”
“자네는 배상제회의 회칙을 알고 있지 않는가. 상제께서 보시기에 부끄럼이 없도록 우리 스스로를 갈고 닦으며 널리 이롭게 하는 것이야.”
같은 단체에 속한 친구 사이이지만 서로의 시선이 달랐다. 증국번은 냉정하게 아편이 더 많이 퍼져 나가고 지방에 공장 설립을 빌미로 더욱 많은 착취가 자행될 것이라 염려하였다.
이를 원하고 있으며 청나라를 더더욱 망가트리려는 홍수전은 태연하게 웃으며 자신의 이론을 논하였다.
“그러하니 우리가 할 일은 명확하네. 이러한 행위가 언제까지 이어지겠는가? 언젠가 때가 되면 황상께서 쭉정이를 불에 태우고 알곡만 거두겠지.”
“내가 한 수 배우는군. 우리 배상제회가 더욱 많이 활동하고 인원을 확충할수록 이 나라를 바로잡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 수 있을 거야.”
증국번이 원하는 새로운 질서는 정상인들이 가득한 배상제회를 중심으로 한 청나라의 부흥이었다. 반면 홍수전이 원하는 새로운 질서는 만주족을 멸하고 객가를 흥하게 하는 질서였다.
그 날이 오면 아직까지 뜻을 함께하지 않은 배상제회의 한족들도 자신의 대의에 동참하리라.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한 홍수전은 다음 날부터 청나라 내각의 신흥 관료로 두각을 드러냈다.
이 과정에서 대한에 아편을 공급하지 말라는 명은 철저하게 지켜졌다. 오히려 상해에 파견된 대한의 관리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지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