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 14장 6화 금지령(1)
본래 역사에서 헌종이 되었어야 할 태자 이환은 처음으로 나라의 일을 담당하게 되어 의욕이 앞서 있었다. 효명제의 재가를 받아야 하지만 권한이 주어지니 누가 권고하지 않아도 나서서 업무를 수행하였다.
외교를 담당하는 외부 인원들과 치안을 담당하는 포도청의 후계 기관 경찰총국(警察總局) 일부의 인원들이 소집되었다.
내가 가장 먼저 회의장에 들어서자 태자가 반갑게 맞이하였다.
“가장 먼저 십덕 후작이 당도하였구려. 그간 별일 없이 지냈소?”
“태자전하께 인사를 올리옵니다. 그저 분수에 맞지 않는 호를 달고 살아 불민할 뿐이옵니다.”
태자는 일준이보다 조금 못해도 184㎝나 되는 거구에 운동을 하루도 거르지 않아 체격이 듬직하였다. 여기에 중후한 목소리와 이 시대 기준으로 조금 갸름하지만 멋진 외모를 지녔다.
효명제도 젊은 시절에 준수한 외모라 불리었지만 태자가 더 준수하였다. 이 시대 기준으로는 얼굴이 가냘프다는 평가를 받는데 이는 근육으로 다져진 어깨 때문에 균형이 안 맞는 것이다.
“호가 열 가지 덕을 칭하는데 분수에 맞지 않는다? 그러면 반으로 줄여 오덕으로 부르겠소.”
“태자전하께 아뢰옵기 부끄러운 일이오나 더 줄이는 것이…….”
“그래도 학문을 익힌 사람인데 다섯 덕 정도는 지켜야 하지 않겠소?”
그냥 말을 말아야지. 사람들이 속속들이 들어오고 자리에 착석하였으며 태자는 긴장하여 목을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한반도와 중국대륙을 나타낸 지도를 지휘봉으로 가리키며 말하였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청에 국서를 보내 양귀비의 재배와 아편의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다 알리는 것이지요. 다만 정보의 출처가 문제인데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우리가 청나라 내부 정보를 입수한 경로는 전신 설치 및 보수 과정에서 사람들이 움직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이 나라에 세워진 전신국(電信局)에서 정보를 입수한 버릇이 도진 것이다.
이 기관을 공식적으로는 전신국, 비공식적으로는 상무국(商務局 - 상업 용무를 담당하는 기관)이라 칭한다. 이 명칭은 상업적으로 보내는 전신을 주로 감시해서 붙여졌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를 뽑아내기 위해서는 상무국의 존재를 숨겨야 하리라.
권돈인도 이를 알고 있으니 고개를 숙이고 담담하게 말하였다.
“조사한 사실을 모두 말할 필요는 없사옵니다. 청나라 남부에서 이 나라의 사람들이 철도를 운행하는 항주 인근에 양귀비밭이 세 곳이나 있으니 이를 중심으로 알려야 하옵니다.”
“고작 세 곳의 양귀비밭으로 무얼 알릴 수 있겠습니까. 청나라가 경계할 이유가 있습니까?”
“청나라의 황제는 젊은 시절부터 아편에 빠져 이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사옵니다. 이 나라를 위해서는 청나라의 단속도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오니 신을 보내 뜻을 전하시옵소서.”
이러면서 나를 살펴봤는데 나머지 외교 업무를 담당하라는 뜻이었다. 태자는 권돈인의 말을 듣더니 괜찮은 생각이라면서 이를 허락하였다.
“외부대신이 잘할 것이라 믿겠습니다. 다음으로 행해야 할 일은 아편을 밀수한 자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이미 황제폐하께서 뜻을 정하시어 십 년 이상의 징역을 부과하기로 하였사옵니다.”
“부족하다 생각합니다. 지게로 등짐을 짊어질 수 있는 양은 보통 쉰 근(30㎏) 정도이니 이 이상의 양을 밀매한 자는 사형에 처해야 합니다.”
조선의 법은 이 시대 전 세계를 놓고 보아도 온건한 법이며 이는 대한제국에도 적용되었다. 극단적으로 말해 반란을 일으킨 경우에도 수뇌부만 모조리 처형하고 나머지는 방면한다.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사례는 홍경래의 난이다. 내가 이 시대에 오기 전에 벌어진 일이지만 당시의 충격이 어찌나 컸는지 순조가 정치에 대한 관심을 저버리게 되었지.
바꿔 말하면 아편의 대량 유통은 반역죄와 대등하게 처리할 예정이라는 뜻이다. 당연히 이견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형이라 하니 너무 가혹하옵니다.”
“아바마마께 건의하여 단속 특별법을 제정할 겁니다. 또한 청도와 상해의 개항장은 양국의 관리가 협의하여 법을 적용하는 규칙이지요.”
태자는 효명제와 성향이 달랐다. 효명제는 어느 정도 여유를 두며 상대를 다독인다면 태자는 선을 그어놓고 넘어서는 순간 바로 법을 적용할 기세이다.
젊은 치기일지 아니면 특유의 성품 때문일지는 모르지만 본래 역사에서 세도가를 공격하고 삼정의 문란을 바로잡은 성향이 드러났다.
태자는 가슴에 손을 얹으며 말하였다.
“외부대신은 청나라 황상에게 이 사실을 논하고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을 것이라 하십시오.”
“태자전하의 뜻을 받들겠사옵니다.”
“또한 청나라에 파견된 전신국의 일원들은 계속 정보를 수집하여 주십시오.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할수록 사건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법입니다.”
이후 논의가 계속되었다. 경찰총국에서는 참 기묘한 제안을 내놓게 되었다.
“얼마 전에 불란서에서 보로서(프로이센)에서 만든 털이 곱슬곱슬한 부들이라는 개를 수출하였사옵니다. 이 개가 영민하기가 이루 말할 데가 없으니 쓸모가 있을 것이옵니다.”
“개가 영민하여 쓸모가 있다 하였습니까?”
“그러하옵니다. 신이 판단하기에는 이 부들이라는 견종을 잘 양육하여 아편의 냄새를 맡게 하면 짐 사이에 숨겨진 아편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르옵나이다.”
부들이 아니고 푸들이라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이 시대의 푸들은 현대처럼 품종개량이 되지 않아서 현대의 진돗개보다 거대한 사냥개였다.
물론 그 특유의 성향은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야성이 강하니 쓸모가 있을지도 몰랐다.
태자는 이를 적극 추천하며 나머지 안건도 정리하여 회의를 마치고는 나에게 말하였다.
“이 자리에 있으면 좋을 일이지만 얼마 전에 은퇴한 여유당 대감의 의견도 들어봐야 할 것 같구려. 외부 부대신이 여유당 대감과 인연이 있으니 한 번 다녀와 주시오.”
“여부가 있사옵니까. 그러지 않아도 한 번 고견을 듣고 싶던 차였사옵니다.”
정약용은 사실상의 은퇴상태였다. 나이가 80세가 넘고부터 부축을 받아 움직였고 칭제건원 이후에는 상태가 더 나빠졌다. 내의원 대표 자리를 담당하되 입궐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와 저술활동을 하는 정약용을 방해하는 것 같아 답답하였다.
아예 일준이도 데려가 인사를 올리기로 하고 퇴근을 준비하는데 긴급 보고가 들어왔다.
“외부 부대신님께서 찾으시던 정보가 입수되었습니다. 근래에 들어 광주와 복주 그리고 청나라 남부 일대에 배상제회라는 수상한 단체가 생겨났다는 보고입니다.”
“배상제회요? 어디 한 번 봅시다.”
드디어 홍수전의 보고서가 올라왔지만 아직 정보를 많이 입수하지 못하였는지 내용은 간략하였다. 2년 전인 1843년 말부터 두각을 드러낸 배상제회는 객가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나름의 회칙을 가지고 있는데 내용도 기묘하였다. 본래 역사에서는 예수의 동생인 홍수전을 찬양하는 단체라면 이 역사에서는 스스로를 발전시켜 모두를 이롭게 하자는 뜻이었다.
“이런 단체가 이 년이나 암약하였다니. 참 대단한 일이로군요.”
“청나라가 드넓고 서로 소통하지 아니하여 입수가 늦어졌을 뿐입니다.”
내가 대단하다고 한 것은 청나라의 드넓은 땅이 아닌 배상제회의 변화였다. 본래 역사에서는 변명할 수도 없는 광신도 집단이었다면 여기서는 나름 제 앞가림은 하는 단체였다.
“회칙도 있나? 한족과 객가를 화합시켜라, 물골을 관리하라,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라 그리고 갱신된 회칙으로 아편을 엄금하여 몸과 마음을 다스려라?”
아마도 광주에서 아편전쟁을 경험한 홍수전이 사상적 혹은 심정적 변화를 겪은 것 같았다.
보고를 계속 취합하여 장계로 만들기로 하고 일준이와 함께 정약용을 방문하였다.
“다산 선생님을 뵙습니다. 그간 별 고 없으셨는지요?”
“나야 별일이 없이 잘 지내지. 둘 다 나라의 중진이 되어 왕성히 활동하니 오히려 자네들이 염려될 지경이로군.”
정약용은 방금 전까지 집필에 몰두하였는지 안경자국이 남은 채 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잠시 고개를 돌려 책상 위를 확인하고는 말하였다.
“나도 소문은 듣기는 하였다네. 노사(蘆沙) 그 친구가 창백하게 질려서 며칠 전에 나를 방문하였지. 아편을 잡아내기 위하여 애를 쓴 것이 엊그제 같은데 또 아편이라니.”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본래 먼 훗날에 일어날 일이었으나 청나라의 상황이 변모하며 더욱 빨리 아편을 생산하게 되었지요.”
“자네들이 본래의 천기(天機 - 하늘의 비밀)를 논할 적에 내가 죽고 스러진 이후의 일을 논하였지. 더군다나 청나라의 일은 상세히 모르고 있으니 이를 설명하여 주게나.”
정약용의 요청이니 미래의 일을 이야기하였다. 본래 역사에서는 1859년부터 도광제의 아들 함풍제가 아편 유입을 막아내자고 아편 재배 권고를 실시하였다. 물론 이 이전에도 아편이 알음알음 재배되었지만 완전히 해금된 것이다.
최종적으로 청나라가 무너질 무렵 35,000톤의 아편이 생산되었다는 말을 듣자 정약용은 한숨을 쉬며 말하였다.
“이 대한의 옛 팔도(八道)와 대등한 면적에서 작물 대신 아편을 경작하였다고? 굶어 죽은 사람이 대체 몇 명이나 되는가?”
“기록에 의하면 천만 명이 확실히 넘어간다 하였습니다.”
“그렇지, 천만 명이 먹고살 수 있는 땅에 아편을 길렀으니 그만큼이 죽어 나가겠지.”
당시에 생산된 아편은 만주를 통해 조선으로 들어와 아편 중독자를 양산시켰다.
정약용은 조정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소식을 접하였는지 이를 요약하여 말하였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이 아편이 대한으로 흘러들어오기 힘들다는 것일세. 북방은 최소한의 교류를 제외하면 사람이 오가지 않고 조차지에서는 이 나라의 법을 적용하지 않는가.”
“그렇다 하여도 유입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현대에도 마약이 끝없이 유통되며 사람들을 고통의 도가니에 빠트리고 있습니다.”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하여야지. 태자전하께서 지나치게 혹형을 부과하는 것 같으나 이는 유통을 실시하는 사람에게 가하는 처벌일세. 다만 다른 문제가 있지.”
정약용은 일준이를 빤히 바라보았는데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는 일준이가 알려주었던 내용을 되새겼는지 진중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조일준 자네가 말한 것을 떠올리니 훗날 마약(痲藥)이라 불리는 종류는 한도 끝도 없이 많다 하였네. 혹여나 청에서 다른 마약을 제조할 수 있겠는가?”
“현실적으로 그 정도로 응축할 기술이 청나라에는 없습니다. 아무나 재배하여 옷감으로 만들어내는 대마마저도 마약으로 만들 수는 있지요.”
생각해보니 대한에서도 사방팔방에서 대마를 기르고 대마를 피우는 사람이 있는데 이 또한 마약으로 분류해야 할지도 몰랐다.
정약용도 숨을 들이켜며 놀랐는데 일준이가 답하였다.
“이 시대의 마약은 기술이 부족하여 함유량이 지극히 낮습니다. 대마의 경우에는 여린 새순과 꽃에 성분이 있는데 이를 채취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야 대마를 옷감으로 만들 수 없을 걸세. 줄기가 멋대로 뻗어 나가고 씨앗이 맺히지 않지.”
“저도 대마를 마약으로 삼을까 염려하여 여러모로 알아보았는데 담배도 못 피우는 사람들이 담배 대용으로 피우더군요. 코카나무 잎도 마찬가지입니다.”
코카나무 잎이라면 코카인이겠지. 일준이는 이 설명을 하면서 정약용을 지그시 바라보았는데 정약용은 턱에 손을 괴면서 찬장을 슬쩍 바라보고는 말하였다.
“얼마 전에 남미에서 들여온 코카나무 잎에서 유효 성분을 분리하였는데…….”
“비정제 코카인을 만들어내셨군요. 사실 강장제로도 사용할 수 있는 녀석이기는 한데 엄연히 중독성이 있기도 하지요.”
“세 번째 찬장 여섯 번째 칸에 있으니 즉각 폐기하여 주게.”
일준이는 화로를 바깥으로 들고 나가 비정제 코카인을 태워 버렸고 정약용은 괜히 헛기침을 하면서 가슴을 두드렸다. 그러더니 태연하게 나에게 말하였다.
“이런 식으로 마약을 발명할 수도 있지. 본래 역사에서 코카인이라는 마약을 만들어낸 사람이 괜히 만들어냈겠는가? 사람을 이롭게 하려고 만들어 낸 것일세.”
“틀린 말이 아닙니다. 코카인이 처음 발명되고 너 나 할 것 없이 와인에 코카인을 타서 먹었지요. 로마의 교황부터 발명가에 유럽의 왕족도 다들 코카인을 마셨습니다.”
“그런 대단한 물건도 폐기할 줄 알아야 올바른 뜻을 가지고 있는 법이지.”
이렇게 말은 하였지만 나도 정약용을 오래 만나며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입술을 비쭉 내밀고 고개를 슬쩍 돌렸는데 십 년 감수했다는 속마음이 분명하다.
내 시선을 눈치챈 정약용은 자신이 저술한 추출방법을 적은 종이를 구겨서 휴지통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코카인을 폐기한 일준이가 돌아오자 태연하게 말하였다.
“내가 우연하게 흉한 물건을 만들어냈으니 자네가 어떠한 물건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궁금하네. 혹여나 아편을 몰아낼 수 있는 더 강한 마약을 만들 수는 있는가?”
“만들 수는 있습니다. 다만 절대 만들어서는 안 되고 만들 이유도 없는 약이지요. 아편을 이길 수 있는 더욱 강한 마약이니까요.”
“그런 끔찍한 물건을 어떻게 만들 생각을 하는가? 내 농담을 하였는데 혹여나 다른 사람이 만드는 것은 가능한가?”
“삼십 년 후에 만들어질 물건입니다. 혹시나 제가 발달시킨 화학 덕분에 누군가 조만간 만들어낼지도 모르지요. 생각하니 끔찍하군요.”
속이 답답하였는지 일준이도 가슴을 두드렸고 정약용도 속이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는 책상 옆에 있던 유리병에서 갈색 액체를 따라주어 마시기를 권고하였다.
“속이 답답할 때는 이 활명수가 제격일세. 지금까지 침출과 추출을 반복한 약재를 섞고 배합하여 처음으로 약을 만들어냈는데 한 번 마셔보게나.”
잔에서 보글거리는 기포를 내뿜는 활명수를 들이켜자 현대의 맛보다 훨씬 알싸하고 속이 후련해지는 청량감이 느껴졌다.
정약용은 우리의 표정을 보더니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의술은 이런 곳에 쓰이라고 만든 것일세. 이 활명수 한 잔이면 급체를 겪은 사람들의 체증이 씻은 듯이 사라질 것이니 어찌 좋은 일이 아닌가.”
“이번에는 제대로 된 약 같습니다. 그나저나 제가 잘못 생각할 수도 있는데 혹여나 다산 선생님께서는 코카인 추출물을 활명수에 배합하실 생각이셨습니까?”
“그런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네!”
정약용이 웃으며 내 농담을 받아넘겼는데 아무려면 좋았다. 정약용은 지금까지 일어난 일을 정리하여 나에게 대책을 마련해 주었다.
“모든 방안을 동원하여 마약의 유입을 막아야 한다네. 다만 지금의 상황을 보건대 누군가가 청나라에 양귀비 재배를 권고하고 있을 것 같군.”
“양귀비 재배를 권고하다니요? 알음알음 재배하던 물건이 점점 퍼져나가며 악순환이 반복된 것입니다. 아편으로 돈을 축재하고 군벌을 형성하고 다시 아편으로 돈을 축재하였지요.”
“그 역사는 자네들이 개입하기 전의 역사일세. 정보를 보아하니 각지의 옥토에서 들불처럼 양귀비를 재배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행위를 권고한 자를 마약왕이라 칭하겠네.”
마약왕. 현대에는 마피아 같은 폭력조직이 국가권력의 빈틈을 노려 마약농장을 만들고 세력을 확장하는데 지금 청나라는 빈틈이 너무나 많다.
사실 빈틈이 8할인 나라이다. 그러하니 마약왕이 한 명일 수도 있고 여러 명일 수도 있지.
정약용은 내가 여러 정보를 입수하여 현대의 역사와 비교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질문을 하였다.
“마약을 퍼트리는 자가 자기 휘하의 부하들을 통솔할 때 어떻게 하겠나? 마약에 중독된 부하들을 죽일 것이니 절대 마약을 복용하지 말고 퍼트리라 할 것일세.”
“그러하면 다산 선생님께서는 마약을 권고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마약왕일 가능성이 높다네. 청나라의 충신인 임칙서가 죽은 이후 아편 금지령이 유명무실해졌다는 소문은 익히 듣고 있네. 이런 상황에서 마약을 금할 자가 누가 있겠는가?”
순간 배상제회를 경영하는 홍수전이 갱신한 회칙이 떠올랐다. 한 달 전인 9월에 갱신한 회칙의 내용 가운데 신규 규칙이 아편의 금지였다.
“자네는 알고 있는 것 같군. 내가 관여하고 싶지만 자네도 나이가 마흔이 넘어가 완숙해졌고 나는 여든이 넘어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을 사람이 아닌가.”
“저는 아직 부족한 사람이니 다산 선생님의 고견이 필요합니다.”
“자네는 간혹 과도한 일을 저지르는 것을 제외하면 나도 흠을 잡을 수 없는 사람이니 딱 한 가지만 명심하게. 섣불리 개입하였다가는 일을 그르칠 수 있는 법일세.”
옳은 말이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요원들을 파견하여 배상제회의 회주인 홍수전을 암살할 생각까지 하였다. 놈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지 모르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반면 정약용의 말을 들으니 홍수전도 쓸모가 있을 것 같았다. 녀석이 청나라의 충신이라도 되면 모를까 암 덩어리와 같이 사방에 퍼져 청나라를 갉아먹을 가능성이 큰 놈이다.
“다산 선생님의 뜻을 받아들여 신중히 일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하면 되었네. 나는 앵속제독서를 새 의술과 접목하여 갱신하여 보고하도록 하지.”
대화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캄캄한 밤하늘이 보였다.
앞으로 몇 년이고 아편과의 전쟁을 치르며 성질이 돋은 도광제를 다독일 생각을 하니 밤하늘이 내 앞길과 흡사해 보일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