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 14장 2화 교토로
이에요시와 막부 중진들 입장에서는 내 제안이 뼈아프다 못해서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제안이리라. 이만큼 받아먹었으면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데 가장 민감한 사항이니까.
막부의 위신과 정치적 불안감 두 가지 항목을 모두 찔러 버린 한 수이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권고안에 대해 말하였다.
“육식금지령은 천 년 전의 법도라 알고 있습니다. 각 지방의 번에서는 가축을 길러 고기를 먹고 쇼군 합하께서도 매년 수백 근의 쇠고기를 들여 육식을 알음알음 즐기지 않습니까.”
“그야 약재······. 내 솔직히 말하지요. 고기가 맛이 좋은 것은 알고 있으나 법도를 우회한 겁니다. 우리의 체면을 지키면서 맛 좋은 먹거리를 입에 넣는 것이지요.”
“제가 알기로 육식금지령은 천 년 전의 덴노께서 세운 법입니다. 이후 가마쿠라 막부가 설립되며 덴노께서 쇼군에게 권력을 양도하였으니 폐지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하여도 스스로 유지한 체면을 무너뜨릴 수는 없지요. 덴노께서 친히 천명하신다면 모르겠지만 이마저도 막부 인사들이 큰 화를 입을 겁니다.”
막부의 입장을 잘 알고 있지만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막부는 이미 수세에 몰렸지만 설립 초기부터 덴노와 교토 인근에 거주하는 옛 귀족들과 권력을 나눠 가지고 있었다.
어디까지나 덴노의 ‘대행자’이지 지배자가 아니라서 발생하는 모순이며 이들도 노출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니 다음 권고안이자 더 뼈아픈 모순을 드러내는 제안을 하였다.
“다음으로는 정유년 이후 왜추가 자행한 참극의 마무리를 짓는 것입니다.”
“히데요시 말인지요? 그 전쟁은 예전 국명이 조선일 적에 통신사를 보내며 화해를 하고 끝을 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왜추는 말년에 광증에 걸리기라도 하였는지 조선의 백성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하고 코를 베어 이를 소금에 절여 가져갔습니다.”
내 권고를 들은 이에요시의 표정이 뒤틀려 버렸는데 이건 꼭 해야 할 일이다. 나는 내 코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권고안을 이야기하였다.
“이십만 명이 넘는 백성들이 학살당하고 그들의 코가 일본에 매장되었다 하였습니다. 대한과 막부가 서로의 허물을 덮고 협력하려면 이들의 유해를 대한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참 좋은 명분이며 대한이 제공한 선물의 상당수를 이 귀환을 빌미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문제는 가장 커다란 코무덤 소재지가 덴노와 옛 귀족의 중심지인 교토라는 점이다.
일본인들도 양심이 있었는지 이 무덤들은 교토의 사찰에 있는 승려들이 관리하고 있었다. 코무덤 건으로 다시 교토와 얽히니 이에요시는 난색을 표하며 대답을 회피하였다.
“저희가 알아볼 것이니 염려하지 마시지요.”
“황제 폐하께서 초의선사를 비롯한 승려를 보내신 뜻은 코무덤을 대한의 품으로 되돌리기 위해서입니다. 가장 큰 코무덤은 승려들이 옛 도읍 교토에서 관리하고 있다 합니다.”
막부 중진들과 이에요시 입장에서는 미칠 노릇이리라. 코무덤은 엄연히 교토 사찰 부속시설이며 이 사찰에 후원금을 가장 많이 내는 이들은 교토의 귀족들이다.
명분도 완벽하고 별다른 돈도 들이지 않지만 결국 자신들이 받은 선물을 교토의 귀족들에게 전해주며 고개를 숙여야 하는 형편이다. 결국 이에요시가 심각한 표정으로 답했다.
“짐을 떠넘기는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우리 막부는 불승들과 온건한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니 교토에 나아가 직접 논의를 하는 것이 어떠하신지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제정(祭政)이 분리되어 있는데 권력자가 승려에게 강제로 권고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그러하면 주요 인원들이 교토로 나아가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승려들을 선두로 하여 잠시 방문하는 것이 나을 것 같군요.”
결국 내 예상대로 막부가 항복하고 교토의 길목을 열어주었다. 코무덤 환수는 꼭 해야 하지만 교토에서 닌코(仁孝) 덴노를 만나고 일본의 미래에 족쇄를 달 계획도 마쳐야 한다.
이후 며칠에 걸쳐 여러 권고안을 제시하였다. 각 번을 통솔하되 대한과의 무역 조건을 동일하게 만들어 달라는 권고, 일본에서 이주를 원하면 대한에서 제시한 조건하에 이주를 받아들이겠다는 권고였다.
모든 일을 마치니 닷새가 흘러갔다. 그동안 일준이가 뭘 했을지 궁금해서 찾아가 보았는데 녀석은 난학자들을 46명이나 모아놓고 대학 강의를 하고 있었다.
“화학 반응에는 속도가 증가하는 촉매가 있다. 이 촉매가 가지고 있는 규칙성을 설명하도록!”
“반응물의 농도에 따라 속도가 달라지는 반응속도식이 있으며 온도와······.”
열의가 넘치다 못해 서로 앞자리를 다투며 일준이와 갈루아를 들었다. 에이다는 이런 상황에서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볼을 부풀리면서 투정을 부렸다.
“한센 오셨군요? 저 아예 강의가 금지되어서 종이접기나 하고 있어요.”
“강의가 금지되었다니 무슨 말이지요? 일준이가 에이다를 홀대할 이유가 없는데?”
“사람들이 지식이 부족해서 내 강의를 듣고 삼십 분 만에 괴성을 지르고 책상을 뒤엎으며 도주하지 뭐에요. 닐슨도 모르는 닐슨의 제자들이었는데 가르치고 싶어 죽겠어요!”
“일준이도 모르는 일준이의 제자라?”
에이다의 속사포 같은 설명을 들으며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일본이 헛된 생각을 품으면 할 수 있는 짓거리를 원천 봉쇄할 수단이 갖춰진 것이다. 설명을 끝낸 에이다는 내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왜 웃어요! 저도 실력이 있다고요! 닐슨의 제자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실력이 너무 우수한 사람들이니 나중에 석사나 박사 과정을 이수할 때 집어오세요.”
“그것도 괜찮네요. 학부생 수준에서는 제 강의를 따라오기 힘들지요. 그래도 짜증 나.”
에이다가 짜증을 내며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자 한창 강의 중인 일준이의 머리에 꽂혔다. 강의에 너무 열중하여 휴식시간을 넘긴 것을 알아차린 일준이는 책을 덮으며 말했다.
“이십 분 휴식하고 다음 강의를 수강하도록. 다음 강의는 영훈 교수에게 배우는 성리학이다.”
“뼈와 살이 되는 강의였습니다. 스승님!”
일준이는 이마에 솟구친 땀을 닦으며 나를 맞이하였다. 녀석은 내가 십 년 동안 노력해야 할 업적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달성해 내고 이를 모른 채 태연하게 말하였다.
“참 황당하게도 내가 저술한 서적이 서양에서 다시 동양으로 넘어왔어. 한 번 실력을 보여주니 열과 성을 다해서 제자 노릇을 하던데.”
“내가 황당할 따름이다. 앞으로 닌코 덴노와 접견해서 난학자들을 대한의 학문적 후계자이자 제자로 만들어 얽어맬 계획인데 스스로 족쇄를 채워 버렸네.”
“응? 스스로 족쇄를 채웠다고?”
“이 시대 난학자들 대부분은 유학(儒學)으로 학문을 시작해서 난학을 배운 사람들이야. 사상의 뿌리가 유교 질서에 얽매어 있는 이들인데 너와 너의 고국인 대한을 배신할 수 있겠어?”
일본에 유학이 퍼진 것은 임진왜란 시기이다. 당시 포로로 잡혀간 강항(姜沆)과 성리학자들이 성리학을 전파하였고 이 사상은 일본의 저변에 깔리게 되었다.
하급무사와 지방의 번을 중심으로 퍼져 나간 성리학은 권력에서 밀려난 이들에게 구원자 역할을 하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추구하며 에도 막부를 무너뜨리려 하였다.
마침내 대정봉환, 덴노에게 권력을 돌려주면서 결실을 맺었지만 그 과정에는 폭력과 핏자국이 즐비하였다. 결국 유학으로 시작해 피로 세워진 신정부는 정한론을 시작으로 폭주하였다.
여기까지 생각을 마친 일준이는 한창 성리학을 강의하며 서로 터놓고 토론을 하는 난학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황당하다는 듯이 답하였다.
“저 난학자들 대부분의 사상적 기반이 유학이라고? 그러고 보니 인문학 강의에서 교수와 대등한 수준까지 오른 사람이 몇 있었긴 했지.”
“그나마 대한의 성리학도 시대의 흐름에 맞게 발전해서 대등한 수준이지 십오 년 전이면 더 쳐졌을걸? 이렇게 되면 네 제자들의 충성도가 어느 정도일지 생각은 해 봤어?”
“이론상으로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이니 날 아버지와 같이 섬기겠지.”
“그러니 새로운 학문을 익혔다고 다른 마음을 품을 이유가 있냐. 아마 네 제자들이 사손(師孫)을 가르칠 때 정한론이라도 들먹이면 제자를 잘못 키웠다면서 너에게 사과하고 할복할 거다.”
일본의 감성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제자를 잘못 키워서 스승에게 폐를 끼치게 만들었으니 스스로 모든 책임을 짊어지고 자결하는 것이다.
그 뒤에 스승을 죽인 제자는 아마 다른 제자들에게 난도질을 당해 목숨을 잃겠지만. 나는 일준이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이번 일을 좋게 평가해 주었다.
“졸지에 대한학풍을 제창하게 되었으니 내가 십 년 동안 만들어야 할 기반을 네가 다 세웠다. 이제 난학자를 기반으로 한 신진 관료층이 대한의 충실한 제자가 된 격이야.”
“이거 학연(學緣)에서 비롯된 악습 아니야? 그랑제콜도 그렇고 같은 교수의 제자들이 자기들끼리 다 해먹는 꼴이잖아?”
“그 교수를 기른 사람이 너다.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그 끈끈한 학연의 악습 속에서 너라는 사령탑이 언제나 업적을 만들어낼 텐데 배신의 ‘ㅂ’ 자라도 꺼내면 세상에서 사라지지.”
현대 한국도 문제가 벌어지지만 일본의 학연 악습은 한국과 비교할 수 없다. 아예 경제적, 사회적 계층까지 얽어매며 이런 틀을 벗어나는 방법은 수십 년 익힌 기량을 뽐내는 것이다.
일준이도 자신이 어느새 일본 학문의 정신적 지주이자 수많은 신진 관료들의 사령탑이 된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허탈한 듯이 팔을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아주 제자 복이 넘쳐나는군. 국립이학대학 분원을 세울 계획을 왜 제안하는지 알 것 같아.”
이제는 내가 한 일에 대한 설명을 해줄 차례였다. 녀석은 내가 막부와 나눈 협정과 권고안에 대해 듣더니 이를 염려하며 말했다.
“일단 황제 폐하께서 명하신 바이니 모두 이행한 건 좋은 일이야. 다만 일본이 배신하면 어떻게 할 거야? 다른 국가가 개입한다면?”
“일본은 배신할 수 없지. 막부는 우리가 손가락만 까딱해도 나락으로 떨어지고 각 번들은 철갑증기선으로 시위만 해도 무너질 놈들이야. 그리고 우리 대한은 일본에 개입하지 않았어.”
“개입하지 않았다고? 지금 내정간섭을 절찬리에 실시 중인데?”
“이 시대 외교는 가장 온건한 프랑스가 플랜테이션을 만들어내며 다른 국가는 영토를 할양받는 것이 표준이야. 우리가 홋카이도를 집어삼켰다면 경계하겠지만 그런 시도도 안 했잖아.”
다른 국가의 시선으로 보자면 대한은 일본과 ‘교역’을 실시하는 소극적 외교를 시도한 것이다. 기껏해야 쇄국일관도인 일본의 문을 열어젖힌 것이 전부이며 일준이도 여기에는 동의했다.
“하긴 이 정도로 온건하게 문호를 개방시켰는데 다른 국가가 개입할 명분도 없지.”
“실제로 힘도 없고. 영국은 동북아 영향력을 거의 다 상실했고 프랑스는 인도차이나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어. 프로이센과 미국은 영향력을 투사하려면 오 년 이상 남았다.”
영향력 투사가 5년이고 본격 개입은 10년이 남은 형편이니 그때쯤 되면 일본은 온전히 대한의 손아귀에 들어올 예정이다. 일준이는 내 말을 이해하고는 협정 내용을 논하며 다시 질문을 하였다.
“다른 내용은 다 좋은데 일본이 너무 많은 이득을 챙기는 것이 아닐까 염려할 지경이야. 최대 팔백만 석에 달하는 곡물을 제공하는 데다 비료까지 제공하면 인구가 너무 늘어나잖아?”
“틀린 말은 아니지. 이론상 작물 생산량이 삼 할 증가하고 가축을 통한 부가 식량 창출로 더 늘어날 예정이기는 해.”
“그러면 여력이 생겨서 다른 마음을 품지 않을까? 지금 대한 인구와 일본 인구를 비교하면······.”
지금 대한의 인구는 만주와 요동에서 병합된 영토 인구를 포함해서 2,180만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일본의 인구 추산은 3,200만 명인데 정책을 도입하면 3할은 증가한다.
일준이가 종이에 계산한 대한의 인구는 연 3%의 증가율을 감안했을 때 20년 뒤 4,000만 명. 일본의 인구는 4,160만 명이다. 녀석은 펜을 내려놓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제안을 하였다.
“이러다가 일본이 무장이라도 하면 감당이 안 될 거 같은데.”
“식량이 늘어나면 마비키라는 미개한 관습을 폐지하고 자연스럽게 인구가 폭증할 건 확실해. 특히나 대한에서 제공한 미곡을 받은 에도 인근에서 벌어질 일이지.”
“누가 아니라 하겠냐. 땅이 부족하고 인구가 많아서 자기 아이를 어린 시절에 죽이고 공양하는 풍습이라니. 그 인구가 빠르면 십 년 이내에 대한으로 칼을 돌릴 거 아니야.”
“칼을 왜 돌려? 쟁기를 들고 삼강평야를 개척해야지.”
일준이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미 요순학자는 물론이요 사람들을 파견해 대한이 얻어낸 새 영토에 대한 정리를 마쳐둔 녀석이었다.
“삼강평야? 거긴 동북아시아 최고 수준의 질 좋은 토양에 경상, 전라도를 합친 면적보다 넓은 평야이기는 하지. 대신에 환경 조건이 사람 다 잡아먹는 생지옥이잖아!”
“옳은 말이야. 허리까지 푹푹 빠지는 늪지대에 영하 이십 도가 넘는 강추위 그리고 진입하려면 러시아 영토를 경유해서 올라가야 하지.”
“거기 개척하려면 연 인원 삼십만 명 정도를 동원해야 하는데 말이 되는 소리냐. 집도 절도 없이 따돌림이라도 당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안 가지.”
“일본의 증가한 인구가 자연스럽게 핍박을 당할 건 확실해. 일본은 생산량이 늘어났을 뿐 농지 규모가 늘어나지는 않는 현실이지. 이 상황에서 증가한 인구가 어디로 갈까?”
일본의 평민층은 조상의 가업을 물려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농부의 아들은 농부요, 농부의 딸은 옆 동네의 농부의 아들과 혼인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의 식량 지원으로 마비키로 죽을 아이들이 살아남는다면 이들이 장성해서 뭘 할 수가 없다. 대대로 물려받은 땅을 장남과 차남이 둘로 나누느니 차남을 분가시키리라.
“아마 타로(太郎 - 장남)들은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을 거고 지로(次郎 - 차남)나 니코(二子 - 차녀) 들은 마비키로 죽을 운명에서 벗어나겠지. 이들이 성장해서 어떻게 되겠어?”
“일본의 상업과 공업이 발달해도 엄연히 대한의 지원 곡식으로 성장한 아이들이잖아. 발달 대비 더 많은 인구가 도시로 쏟아질 건 당연하고 막부도 감당할 수 없겠지.”
“그럼 인건비는 급감하고 날품팔이로 사는 사람들도 늘어나겠지. 이런 상황에서 자신들을 먹여 살린 대한이 새로운 개척지에 초대한다면 어떻게 될까?”
내가 곡식을 지원하면서 10년 뒤를 내다본 이유를 알아차린 일준이는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돌리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손가락을 꼽아가며 계산을 하고 말하였다.
“백만 석만 마비키를 당할 아이들에게 흘러가도 수십만 명이 목숨을 건져. 그렇게 되면 십 년, 빠르면 육 년 뒤에는 에도에 이십만 명의 젊은이가 유입되겠네.”
“오 년 정도 지나면 에도 막부도 대응에 나서겠지. 우리 입장에서는 곡식을 먹여서 일 잘하고 의욕 넘치는 사람을 수집하는 정책이다.”
“그럼 이들이 도주라도 하면······. 생각해 보니 삼강평야에서 도주할 곳도 없네.”
“삼강평야로 진입하려면 러시아 영토인 우수리스크, 지금 대한에서 쌍성자로 칭하는 지역을 통과해야 해. 이게 마개 역할을 해서 도주를 막아낼 거고 북쪽으로 도주할 수도 없어.”
그나마 삼강평야는 영하 20도 정도가 끝인데 그 북쪽으로 올라가면 영하 40도가 넘는 미친 추위가 몰아치는 지역이다. 물론 이런 고생을 하면 보상도 있다.
“대신 최고의 옥토를 경작하는 만큼 고생 조금 하면 인생이 편해질 거야.”
“처음 유입된 십만 명의 일본 노동자를 시작으로 일본 노동자 모두가 오 년 이상 둑과 제방 설치에 매진해야 하는뎁쇼?”
“급료도 식사도 풍부하게 대접할 거고 처음 이 년 정도가 지나면 대한에서도 이주민을 보낼 거다. 그때쯤 되면 우수리스크를 시작으로 기차 노선도 부설되겠지.”
“지금 마중물을 넣어서 아예 홍수를 만들어낼 생각이군. 십오 년 뒤인 1860년쯤 되면 인구고 뭐고 간에 삼십 만 대군을 상비군으로 굴리고도 남을 수준의 수익이 생길 거야.”
이게 다 청나라가 정신을 차리는 최악의 사태를 대비한 계획이다. 효명제도 여기까지 일이 진행될 것이라고는 모르고 그저 곡물 가격 안정화를 추구하여 정책을 입안하였다.
나중이 되면 십년지대계라 하면서 십덕으로 불릴 것 같은데 여기까지는 너무 나간 것 같으니 제발 다른 별호를 만들어야지. 일준이는 팔짱을 끼고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럼 다음 일정을 교토로 잡아두었으니 신속히 움직이자고. 그렇지 않아도 사쿠마 쇼잔이 난학자들에게 연락을 넣었는데 이들을 교토로 집결시키면 될 거다.”
“앞으로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거다. 덴노를 구워삶아서 다음 이득을 챙겨내야 하니까.”
일준이 덕분에 일이 아주 편해졌다. 본래 10년 동안 일본에 심혈을 기울여 상황을 조절하려 하였는데 이 정도라면 손을 조금 놓아도 될 수준이다.
대한 통신사가 에도에 도착하고 보름이 지나고 승려들과 우리 주요 인사들이 에도를 떠나 교토로 향하였다. 이번 기회에 옛 조상의 유해를 대한으로 가져가려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다음 외교 전쟁을 준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