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47화 (147/345)

147. 13장 7화 만주는 대체로 평온

박현상을 비롯한 대한의 관료들이 기이할 정도로 많은 만주의 생산량에 골머리를 썩고 있을 무렵, 만주의 관료들도 고뇌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심양 남서쪽의 안산(鞍山), 3년 전에 소작농들과 청나라 출신 사람들의 분쟁이 벌어진 곳에서는 관리와 농민의 분쟁이 시작되었다.

“마을에서 모은 밀 이백오십 석을 드리겠으니 필요한 물자로 바꿔주시지요.”

“이 마을에 여유분의 밀이 이토록 많을 줄이야. 대체 뭔 생각으로 덮어놓고 농사만 지었나?”

대한제국은 아직 정착기간이라 세금을 거두지 않았지만 나름 관리를 하고 있었다. 평생을 팔기군에 시달리며 살아온 청나라 사람도, 새 땅을 얻은 소작농과 화전민도 농사에 몰두하였다.

이들도 나름 수단을 강구하여 넘쳐나는 농작물을 소모하였다. 술을 만들고 아예 증류를 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돼지와 닭을 기르기도 하였다. 그러나 가장 간단한 것이 곡식 판매였다.

조정에서는 이들이 판매한 곡식을 사들여 환금하거나 다른 상품으로 구매해줄 의무가 있었다.

유대인 출신 상인들이 곡식을 확인하는 사이 관리가 푸념을 하였다.

“조정에서는 죽도록 고생만 하고 유대인 상인들이 돈을 챙기게 생겼군. 너무 심한 말 같지만 농사 좀 적게 지을 수 없겠나?”

“그야 바짝 벌어둬야 하지 않습니까? 아직 세금이 부과되지 않을 때에 벌어둬야지요!”

“이러다가 시세가 엉망이 될 것 같은데. 생각보다 쌀 구매가 부족할 수 있음을 알아두게.”

파견된 관료들은 올해부터 농사를 짓기 시작한 화전민들과 이미 농사 사 년 차에 접어든 소작농들의 생산량을 처리하는 데 골머리를 썩였다.

해운으로 처리하다 바다의 유빙이 생길 무렵이 되어 얼마 전 완공된 기차를 통해 곡식을 운송하였다.

한 관리는 각지에서 쏟아지는 업무를 확인하면서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올해 겨울에는 싸우지 않고 좀 잠잠하겠지. 문제를 일으킨 놈들이 돌아와 또 문제를 저지르면 이번에는 형량을 더 올려야겠어.”

새벽이 될 때까지 유대인 출신 상인과 함께 서류를 작성한 관료는 파김치가 되어 방 안으로 기어들어 갔다.

그 무렵 안산 인근의 마을에서는 한 농민이 악몽에 시달리고 있었다.

-삽을 더 놀리지 못하겠나! 줄어든 형량이 다시 늘어나야 정신을 차릴 작정이지!

“열심히 하겠습니다! 열심히! 열심히!”

-그 말을 할 동안 삽질을 더 해라!

녹색 눈동자를 부라리며 자신을 쏘아보는 감독관에게 욕지거리를 내뱉고 싶었으나 내뱉을 수 없었다. 저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허연 요괴에게 거슬리면 형량이 십 년이 늘어난다.

자신의 형량이 3년이었다가 황제폐하의 은혜로 2년이 되었지만 12년이라니.

애초에 10년이나 형량이 늘어나는 이유도 모르겠지만 끔찍한 공포가 몸을 휘감았다.

“끄아아아아악! 모기새끼들!”

온몸에 비 오듯이 흐르는 땀방울을 자세히 보니 시커먼 모기떼였다. 온몸에 달라붙은 모기들이 피를 빨아먹자 사지가 간질거리고 머리가 아득해져 왔다.

분명 낮에는 일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 목덜미가 타들어 갈 것 같은 순간 바람이 불었다. 후덥지근하다 못해 살가죽을 삶아버리는 것 같은 바람이 스치자 저절로 비명이 나왔다.

“아으흐으으윽! 누가 좀 살려줘! 살려줘!”

“살려달라고? 호(胡) 서방 자네는 날 버리지 않았나!”

갑자기 세상이 뒤엎어지며 해가 사라졌다. 하늘에서 구멍이 뚫린 것 같은 폭우가 쏟아지며 물이 발목까지 차올랐다. 여기에 익사해 온몸이 불어난 주검이 저벅저벅 걸어오기까지 하였다.

도망치려 하였으나 발목에서 정강이로, 정강이에서 다시 무릎까지 순식간에 불어난 격류에 몸을 허우적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자 시신이 목을 움켜쥐고는 원통한 비명을 뱉었다.

“내 아들이 올해 열넷인데 자네가 내 손을 안 잡아줘서 내가 물에 빠져 죽지 않았나! 아들이 장가가는 모습은 내가 꼭 보고 가야 하는데!”

“미안하네! 내 자네를 꼭 잡아챘어야 하는데!”

“그럼 뭘 하나! 자네 때문에 물귀신이 된 사람이 뭘 하는지 알고 있지 않나!”

저 멀리서 콰르릉하는 소리가 들리며 열 장(長)이 넘는 까마득한 흙탕물이 밀려 내려왔다.

흙탕물에 휩쓸리는 순간, 누군가가 자신의 팔을 거세게 흔드는 느낌이 들었다.

“여보 일어나세요! 이러다가 숨넘어가겠어요!”

온몸에 식은땀이 비 오듯 흐르고 손발이 벌벌 떨렸다. 노역을 하던 고무나무 농장에서 꿈에도 그리던 자신의 집으로 돌아오고 넉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악몽을 꾸곤 하였다.

“그때 이 서방의 손을 잡았어야 했어. 설령 내가 쓸려가는 한이 있었어도…….”

“아무 말 마세요. 본래 재해가 닥치면 자기 앞가림만 해도 대단한 거라니까요.”

호 서방은 끔찍한 사고를 체험하였다. 조정의 명을 받고 귀국 직전 베트남의 치수 공사를 실시했는데 사고가 발생하였다. 폭우로 인하여 배수로에 연결된 저수지가 무너졌다.

폭우가 갑자기 쏟아져 내려 명령 전달이 안 되었고 인부들이 당황한 사이 무너진 저수지에서 밀려온 물이 사람들을 휩쓸어간 것이다.

호 서방은 당시의 간절한 눈빛을 되새기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개꿈을 꾸었으니 이 서방네 묘소에 다녀와야 할 것 같아.”

“전처럼 술 많이 드시지 마세요. 날이 추워져서 전처럼 쓰러지면 큰일 난다니까요.”

호리병에 술 한 됫박을 담은 호 서방은 11월의 찬 공기를 헤치며 묘지로 걸어나갔다. 그러고는 조정에서 관리를 보내 제대로 만들어둔 묘소에 절을 올렸다.

“이 서방 자네의 꿈을 또 꾸었네. 당시의 일은 내 실책이고 혼령이 되어서 날 원망해도 좋네만 꿈에서는 제발 온전한 용모로 나와주기를 빌 뿐일세.”

호리병에 담은 탁주를 들이켜고 묘 주변에 슬쩍 뿌린 호 서방은 깊게 절을 두 번 올리고 근처의 풀로 묘비를 닦으려다 서리만 털어내었다. 다른 누군가가 이 서방의 묘를 관리하였으리라.

본래 절을 올리는 대신 향을 피우고 고조부 시절부터 물려받은 축문을 외워야 하지만 어느새 대한의 법도를 따르고 있었다.

성묘를 마친 호 서방은 마을로 내려와 같은 고무나무 농장 노역자를 만났다.

“오늘도 이 서방네 묘에 다녀왔나?”

“그야 당연한 일이지. 자네도 어제쯤에 다녀온 것 같은데?”

평소에는 데면데면하게 지내던 마 서방이 아는 체를 하였다. 겨울이니 내년 농사를 준비하는 것 외에는 할 일도 별로 없었고 이런 시기에는 술로 시름을 달래는 것이 제격이었다.

마을 어귀의 정자에 모인 청나라 출신, 이제는 대한의 백성이 된 사람들은 탁주를 꺼내 들고 장아찌를 가져와 술판을 벌였다.

그러던 중 호 서방은 친구 양 서방이 보이지 않아 질문을 하였다.

“양 서방네는 오늘 안 나왔나?”

“자네 소식 못 들었나? 이틀 전에 호랑이가 양 서방네 장남을 덮쳤지 않나. 낫으로 머리를 찍어서 위기를 모면하였지만 크게 다쳐서 의원에게 진료를 받는다네.”

“그럼 초상이 나야 정상 아닌가? 호랑이가 덮치면 상처 때문에 앓다가 죽는데?”

“황제폐하께서 파견한 의원이 왕진을 와서 말하기를 며칠만 경과를 지켜보면 된다 하였네.”

소문이 다 퍼지지 않았는지 귀를 쫑긋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분위기가 침울해지자 호 서방은 목을 가다듬고 잔을 들며 말하였다.

“예전이라면 우리를 앞세워 호랑이를 잡아내려고 팔기군 놈들이 발광을 했겠지. 이제는 황제폐하의 은혜로 사람의 목숨을 구하게 되었으니 건배를 올리세.”

“황제폐하의 은혜를 위하여! 건배!”

아득한 예전 같지만 고작 5년 전까지만 하여도 모두가 생존을 위하여 투쟁을 벌였다. 아무런 혜택도 주지 않는 놈들이 자신을 지배한다고 떵떵거리며 다녔다.

팔기군에게 보호를 청하며 뇌물을 바친다 하여도 생존을 장담할 수 없었다. 풍년이면 풍년이라는 명목으로, 흉년이라면 뇌물이 적다는 명목으로 돈을 뜯어갔다.

이런 일을 겪지 않으려면 마을에서 도망쳐 산골짜기에 움집을 짓고 살거나 운이 좋아 팔기군에게 발견되지 않기를 빌며 살아가야 하였다.

호 서방은 억지로 분위기를 돋우기 위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고 춤을 추려 하였다.

갑자기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자 흠칫거리며 반사적으로 도망치려 하였고 호 서방이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여기 팔기군은 없다니까. 그나저나 기병들이 무슨 일이지?”

“호랑이가 출몰하였으니 잡으러 온 것이지. 소식을 전한 것이 어제인데 벌써 올 줄이야.”

만주를 끝없이 시찰하는 대한제국 기병들 중 보고를 받은 이들은 호랑이의 출현을 실전 훈련기회로 삼았다.

순조를 호위하던 흉갑기병 출신의 지휘관은 마을의 산을 가리키며 외쳤다.

-지금부터 대민지원을 실시한다! 기병 대민지원의 목적이 무엇인가!

-악! 오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기병 대민지원은 오도(誤導 - 그릇된 길로 인도함)를 벌이는 무리를 탄압하며 자세(藉勢 - 세력을 믿고 세도를 부림)를 부리는 놈들을 박살 내는 겁니다!

“오도는 또 뭐고 자세는 또 뭐여.”

“알 게 뭐람. 좀 괴짜 같지만 팔기군과 비교하면 선녀가 따로 없는 사람들이라니까.”

조선 기병들이, 이제는 대한제국 기병들이 만주를 관할한다 하였을 때 팔기군처럼 패악을 부릴 것이라 예상하였다.

이런 예상과 달리 기병들은 자신들을 철저히 대우해 주었다. 하다못해 말들이 마실 물만 제공해 주어도 찐쌀을 한 됫박은 내어주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지휘관은 빛나는 흉갑을 손으로 탕탕 치며 답하였다.

-기합이 아주 훌륭하게 들었다! 호랑이는 자세에 해당되니 대민지원을 실시한다!

-악! 명 받들겠습니다! 기병 대민지원 실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산속으로 사라진 기병들의 고함이 메아리처럼 울려왔다. 호랑이를 잡지 못하더라도 이런 소동이 벌어지면 당분간 이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으리라.

이야기의 주제는 전쟁 당시 겪었던 경험으로 넘어갔다. 당시 팔기군에게 호되게 시달리다 죽은 사람도 있고 심양성에서 도저히 언급할 수 없는 일을 하였다는 아녀자도 있었다.

“그놈의 팔기군 돼지 새끼들이 다 죽는 모습을 보았어야 내 속이 풀리련만!”

걸음이 뒤처진다는 이유로 다리가 불편한 동생이 칼을 맞아 죽은 사람은 탁주를 들이켜며 분노를 터트렸다. 계속 술을 들이켜자 자제하라는 손짓을 하며 다른 사람들이 만류하였다.

“우리는 이미 경험하지 않았나. 놈들이 죽을 때까지 고무나무 농장에서 노역을 한다더군.”

“그 정도로는 부족해! 아주 그냥 팔다리 힘줄을 다 끊어서…….”

“듣자 하니 팔다리를 꽁꽁 묶인 채 톱으로 사지를 썰린 놈도 있다더군.”

“참말로? 돼지도 그렇게 안 하는데.”

“영길리의 미치광이 의원이 사람을 가지고 실험을 한다면서…….”

상상하니 등골이 오싹해지고 소름이 돋아서 모두 술잔을 들이켤 수 없었다. 억지로 술잔을 비운 이들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호 서방은 괜히 마을 방향을 보면서 변명을 하였다.

“안사람이 술 좀 그만 마시라 했는데 술 끊고 밭이나 좀 보러 가자고.”

“마침 서리가 내렸으니 보리 싹이 들뜰 수 있잖아? 보리밟기 좀 하다 들어가야겠군.”

일단 밭을 확인하러 떼를 지어 이동한 이들은 강가 근처를 확인하며 감탄을 아끼지 않았다. 예전에도 확인하였지만 농지가 두 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속담이 대한에 있던가? 고작 이 년 만에 마을에서 경작하는 밭이 배로 넓어질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호 서방 자네도 알지 않나. 우리가 농사를 짓지 않았지 못 짓는 건 아니었어.”

“그야 당연한 일 아닌가. 농사가 풍년이어도 흉년이어도 뇌물을 내놓으라는 놈들이지. 밭을 늘려보았자 바쳐야 할 뇌물과 고생만 늘어나고 얻는 것도 없었을 걸세.”

고무나무 농장에서 자신들이 노역을 하는 동안 다른 농부들은 밭을 늘려나갔다.

이미 지은 죄가 있으니 이런 불리함은 받아들여야 함이 마땅하였다. 호 서방도 겨울의 보리농사가 성공하면 내년에 땅을 늘릴 생각이었다.

그런 기대를 하며 밭으로 향하니 이미 마을 사람들이 한창 보리밟기를 하며 이상한 기구를 굴리고 있었다.

“호 서방 자네도 보리밟기하러 왔는가? 이 기구 제법 쓰기가 편하다네.”

“그건 또 뭔가? 웬 수레를 밭 위에서 굴리고 있어?”

“이건 인공석분이라는 물건으로 만든 답압기(踏壓機)라네. 그냥 원통이지만 한 번만 굴리면 보리가 다 밟히니 일이 아주 편해지더군.”

어느새 대한의 사람들과 친밀해진 농민들은 이미 농기구를 빌려서 사용하고 있었다. 뿌리가 솟구친 보리가 단번에 가라앉는 것이 참 편리한 도구였다.

순식간에 보리밟기를 끝낸 호 서방은 사용이 끝난 답압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네들이 가져온 수고를 생각하니 우리가 돌려놓아야겠군.”

“그러면 고맙지. 마을 어귀에 세운 장승까지만 가져가면 된다네. 어디인지 아는가?”

“우리가 세운 장승이니 잘 알고 있다네.”

막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의 기억이 떠오른 호 서방과 농민들은 당시의 이야기를 하며 답압기를 끌고 천천히 움직였다. 앞으로 절대 싸우지 말고 화해하자며 서로가 제안을 하였다.

대한 출신 소작농들과 아름드리나무를 몇 그루 잘라다 장승을 만들어 두 마을의 경계에 놓았다.

그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생각하던 찰나, 큰 소리가 들려왔다.

“나무를 베나?”

“이 근처에 이런 소리가 날 정도로 큰 나무가 있으려고?”

마을을 향해 다가가자 한 무리의 애송이들이 헐레벌떡 길을 달려가고 있었다. 같은 마을 출신이니 익히 얼굴을 꿰고 있는 젊은 놈들인데 인사도 하는 척 마는 척 도망쳤다.

이윽고 장승이 세워진 마을 경계를 확인하자 모두가 탄식을 내뱉었다. 자신들과 대한 출신 소작농들이 협력하여 세운 장승이 도끼에 찍혀 무너진 것이다.

다급히 뛰쳐나온 대한 출신 사람들은 처참하게 무너진 장승을 보며 눈을 부라렸다. 그러고는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하더니 가장 앞에 서 있는 호 서방에게 말하였다.

“혹여나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는가?”

“알고는 있지만 말하지는 않을 걸세.”

“이런 동티(사당이나 장승을 훼손하면 신령이 내리는 벌) 맞을 짓을 누가 했는지 말하게!”

호 서방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멋도 모르고 혈기를 앞세워 텃세를 부리는 놈들이 아직 남아 있으리라 걱정은 하고 있었다.

자신들은 이런 텃세를 부리다 호되게 대가를 치렀지만 사람은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리는 법이었다. 이 장승을 무너트린 결과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고작 물골을 침범하였다는 이유로 말싸움이 시작되었다. 이후 돌을 던지고 몽둥이를 휘두르며 싸움을 벌였고 여러 마을이 격전을 벌였는데 장승을 무너트리면 협박이나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오백 명 정도는 고무나무 농장으로 끌려갈 것이며 자신들은 전과가 있기에 억울하게 끌려갈지도 몰랐다.

이를 생각한 호 서방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간청하였다.

“그놈들이 알아서 동티를 맞고 사과하러 올 것이네. 그렇게 알아두게나.”

“우리가 죽도록 고생하였는데 이 흉험한 일을 온전히 넘어갈 수 있기를 빌 뿐일세.”

자신들의 마을로 걸어가는 호 서방과 농민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누구인지 얼굴은 기억하고 있으며 하나같이 스무 살도 안 된 애송이들이었다.

“개놈의 새끼들. 이런 천벌 받을 짓을 해?”

“옳다네. 갑자기 동티가 내려오겠지.”

눈에 핏대를 세운 사람들은 자신이 겪은 끔찍한 체험을 퍼트리고 싶지는 않았다. 이들은 마을 간의 분쟁이 벌어지기 전에 사적 제제를 실시하여 이 사건을 무마하려 하였다.

고무나무 농장 경험자들은 세 명씩 패를 지어 장승을 무너트린 애송이의 집을 습격하였다. 얼굴에 하얀 고깔 두건을 쓴 채 문을 발로 걷어차고 몽둥이를 들이대며 외쳤다.

“동티의 시간이다! 네놈에게 동티를 내리러 왔다!”

“신령께서 노하셨다! 동티를 받으러 나오지 않고 뭘 하느냐!”

자신의 장남이 하얀 고깔을 뒤집어 쓴 사람들에게 끌려가자 아버지가 나섰다. 평상시에 친하게 지내던 사이이니 바짓가랑이를 잡아가며 간절히 부탁하였다.

“이보게! 목소리만 들어도 알겠는데 호 서방 아닌가! 자네 대체 뭘 하는 건가!”

아는 사이이지만 꼭 필요한 일이다. 호 서방은 어림도 없다는 듯이 하얀 고깔을 쓴 채로 횃불을 들어 올리며 말하였다.

“지금 동티를 내리지 않으면 고무나무 농장에 몇 명이 끌려가겠나! 놈들이 뭔 짓을 저질렀는지 알기는 하나!”

이후 사적 제제, 명목은 신령이 내리는 벌인 동티가 시작되었다.

조선의 풍습과 청나라의 풍습을 절충하여 일단 한 번 구덩이에 매장하고 바로 꺼내서 멍석으로 말아버렸다.

“살려주십시오! 악! 으악! 어르신! 다시는!”

“동티다! 동티를 당하면서 어르신이라니! 신령님이라 하라!”

“장승님 죄송합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목소리가 작구나! 여전히 노하셨다!”

멍석에 말린 애송이들은 도리깨로 사지를 구타당했다. 사람이 죽거나 불구가 될 정도로 두들겨 패면 일이 커지니 소리만 요란하도록 몽둥이 대신 나뭇가지를 도리깨 자루에 엮어두었다.

물론 죽지는 않고 불구가 안 될 뿐이었다. 두들겨 맞는 입장에서는 전신 타박상에 한밤중에 멍석에 둘둘 말려 두들겨 맞는 공포가 겹쳤다.

멍석에서 애송이들을 꺼내자 바지에 오줌을 지린 놈이 태반이고 아예 게거품을 물고 혼절한 놈들까지 있었다.

이를 확인한 대한 출신 소작농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하였다.

“이것이 동티지. 앞으로 우리 마을에서 불순한 놈들이 나오면 동티를 하겠네.”

“앞으로 동티를 잘 이어가며 서로 온전히 살아가도록 하세.”

훗날 동티단이라 불리는 사적 제제 전문가들의 출현이 시작되었다.

이런 과도한 사적 제제로 인한 피해는 당분간 접수되지 않을 예정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