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44화 (144/345)

144. 13장 5화 대일 외교(1)

제임스 뷰캐넌은 커피를 다 마시고는 나를 옆으로 흘겨보며, 자신 기준으로는 똑바로 보며 고민하였다. 나를 경계하는 눈치인데 내 입장에서도 그리 만만한 상대는 아니다.

미국에서는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손꼽히는 사람이지만 뷰캐넌의 능력은 부족함이 없다. 대통령 시절에는 남북전쟁의 발발을 막는 데 급급했지만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국무장관 시절에는 과감한 팽창정책과 신중하고 견고한 정책을 세우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는 생각을 정리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대한제국도 태평양을 향한 팽창정책을 염두에 두시는 겁니까?”

“함부로 팽창했다가는 된서리를 맞을 수도 있지요. 남중국해 일대와 인도차이나 반도를 프랑스와 스페인이 견고히 막고 있으니 작은 섬 몇 개를 거느린 것이 전부입니다.”

“마치 우리 미합중국이 이 견고한 체제를 무너트려 달라는 말씀 같군요.”

“태평양 제해권이 모두 미국의 손에 넘어가는데 원할 이유는 없습니다. 대한제국도 이런 상황에서 함부로 나설 순 없지요.”

대한제국이 유럽의 견제를 별로 받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해양 확장으로 인한 마찰을 피해서이다. 예산 집중을 위하여 무역용 선박과 최소한의 자기 보호용 함대만 양산했다.

이제는 증기 프리깃과 철갑 증기선 그리고 윈드재머를 대량 양산할 시대가 되었다. 물론 이 전력으로도 미국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이니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생산력 격차로 인해 더더욱 나설 수 없구요. 미국의 다음 목표는 일본이 아닙니까?”

일본을 지목하자 제임스 뷰캐넌은 팔짱을 끼면서 나를 떠보는 척 눈짓을 하였다. 그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하였다.

“일본은 목표라기보다는…… 일종의 중간 거점이지요. 일본을 개항시키면 포경선 활동은 물론이고 무역 활동에 여러모로 편한 점이 많아질 겁니다.”

“그 개항이 여러 번 실패하였지요. 명백한 운명을 달성하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야 무력으로 문을 열어젖혀야지요. 대한제국의 입장에서는 안심하셔도 되는 일이니 가급적 대한제국의 이익을 침해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익을 침해할지 침해하지 않을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습니까?”

미국의 전략은 일본을 개항시켜 조약을 맺고 무역선이나 포경선의 중간 거점을 만드는 수준이지만 훗날의 일을 확답할 수 없다.

더군다나 대한제국과 미국은 서로의 전력을 명확히 모르는 나라이다. 대한제국의 여론은 지나치게 자신들을 고평가하고 있으며 미국은 자신들의 전력을 낮게 평가한다.

그러니 적당한 비유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나는 잠시 저 멀리 인왕산을 바라보고는 비유를 시작하였다.

“예전에 호랑이를 사냥하는 포수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수많은 산을 종주하며 호랑이를 쉰 마리 넘게 사냥한 명사수이지요. 그에게 들은 이야기가 생각나는군요.”

내가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제임스 뷰캐넌은 눈을 크게 뜨며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는 태도로 답하였다.

“호랑이라? 호랑이는 한반도에 대량으로 서식하는 맹수가 아닙니까?”

“지금은 거의 다 소탕되어 북방으로 밀려났지만요. 그 포수가 말하기를 호랑이는 하루 동안 산골짜기를 일백 리, 약 이십오 마일 정도를 이동할 수 있다 하더군요.”

호랑이가 많이 이동하는 생물이라는 사실은 대충 알고 있으니 그리 틀린 이야기는 아니겠지.

뷰캐넌은 내가 하는 호랑이 이야기를 듣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하였다.

“제가 알기로 호랑이는 황소의 목을 단번에 부러트릴 정도로 강한 짐승입니다. 그토록 강한 짐승이 저토록 활동범위가 넓으면 서로 상잔(相殘)할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서로 싸우는 일은 흔치 않다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며 힘을 가늠하니 서로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압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있지만요.”

“예외라 하셨습니까?”

“다른 호랑이들을 만나지 못 한 채로 성장한 호랑이는 자신의 힘과 상대의 힘을 가늠하지 못한다 합니다. 이런 호랑이 둘이 만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뷰캐넌도 바보가 아니니 내 말을 이해하였다. 전쟁이라곤 청나라와의 전쟁 한 번을 벌인 것이 전부인 대한제국과 몇 번의 전쟁을 하였지만 전면전은 독립전쟁이 전부인 미국에 대한 이야기이다.

“서로의 힘을 모르는 호랑이 둘이 만나면 온 힘을 써서 서로를 공격하겠군요.”

“그렇습니다. 보통 호랑이가 싸우면 가죽에 상처만 입는다 합니다. 대신 저렇게 만난 호랑이는 서로가 죽을 때까지 물어뜯고 할퀴며 살아남은 호랑이조차 얼마 못 가 죽는다 하지요.”

내 비유를 들은 뷰캐넌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였다. 서로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채 접촉하면 대한제국의 높아진 콧대와 미국의 명백한 운명이 충돌하며 최악의 경우에는 총력전을 벌일 수도 있었다.

“우리 대한제국과 미국은 언젠가 대립하게 될 운명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정보가 많을수록 서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며 불필요한 마찰을 줄일 수 있겠지요.”

“옳은 말씀입니다. 아까 전 호랑이의 비유가 정확한 것 같군요.”

“지금 이 나라의 여론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 한번 세상을 확인하고 여론을 억누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미국과 멕시코의 전쟁에 참전할 필요가 있지요.”

“하긴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대국으로 인식된 청나라를 단숨에 분쇄한 대한제국이니 그럴 만도 합니다. 청나라가 그토록 허약할 줄은 누가 알고 있었겠습니까?”

이미 전 세계에 청나라의 실태가 퍼져나갔다. 청나라에 대한 인식은 살만 찐 돼지이며 그나마 영국을 상대로 행운과 여러 꼼수를 부려 진격을 저지한 것이 전부이니 말 다했지.

아마 옆방에서 듣고 있는 일본의 사절단은 동양에서 믿을 놈이라고는 대한제국 하나만 있는 상황으로 인식하였으리라.

제임스 뷰캐넌은 저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 30분 뒤에 연회가 시작되니 근처로 돌아오라는 신호를 듣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하며 말하였다.

“한센 박을 만나기를 잘했습니다. 외교사절로 파견되었을 때에는 미합중국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였는데 이토록 명쾌한 지식을 가지시니 일이 편해졌습니다.”

“저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제가 입수한 정보가 거의 다 맞아떨어지니 마음이 놓입니다.”

“그럼 대한제국군과 함께 멕시코 놈들의 콧대를 부러트릴 그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상세한 파병 규모는 황제 폐하와 논하도록 하지요.”

뷰캐넌을 배웅한 다음 잠시 짬이 남는 동안 옆방으로 향하였다. 스무 명에 달하는 일본 사절단은 나와 뷰캐넌의 대화를 듣고 넋이 나간 몰골로 말하였다.

“앞으로 십 년 이내에 일본을 두고 미국이라는 국가와 대한제국이 분쟁을 벌이다니요!”

“그러니 위기라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좋게 설득하여 넘어가려 하였으나 저토록 확고한 뜻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황제 폐하의 혜안이 지극히 옳았군요.”

“그러하면 십덕 후작님께.”

“십덕은 너무 격이 높은 호이니 그냥 박현상이라 말해주십시오.”

일본인에게 십덕이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인격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꾹 참고 넘어갈 수 있으나 일본인은 다르다.

“알겠습니다. 박현상 후작님에게 여쭈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이 일본을 공격한다면 어떠한 전략을 취할 것 같습니까?”

“철갑 증기선 함대를 끌고 에도 입구를 틀어막고 한 달 정도 기다릴 겁니다. 굳이 포를 쏠 필요도 없으며 에도 백성들이 굶주림에 시달려 죽어갈 무렵 개항을 시작하면 되겠지요.”

실제 역사에도 일어난 흑선내항 사건이며 아주 효과적인 전략이다. 에도 막부의 권위와 지배력을 땅바닥으로 떨궈버리며 재기 불능의 상태로 무너트릴 수 있다.

일본 사절단도 내 설명을 통해 철갑 증기선이 얼마나 끔찍한 병기인지는 대충 이해하였다.

사절단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해결책을 강구하였는데 나는 딱 잘라 말하였다.

“철갑 증기선은 같은 철갑 증기선으로 막아내야 합니다. 다른 배는 수십 척이 달려들어도 가까스로 맞서 싸울 뿐이지 승리를 거둘 수 없습니다.”

“말이 안 됩니다. 아무리 철갑 증기선이 강하다 하여도 그 정도입니까?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 강력한 배를 마음대로 양산할 정도로 강대한 나라입니까?”

“며칠을 더 머무르시며 건조 중인 최신예 철갑 증기선인 발해 급을 확인하십시오. 미국의 함대를 감안하면 대한제국의 전력을 다해도 본국을 수호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공포에 질린 도쿠가와 막부에 여러 생존 방법을 제시하며 혜택을 제공할 예정이다. 그러니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모두 보여주며 이들을 설득하고 대한제국의 강대함을 확인시켜야 한다.

식민지로 만들 생각은 없다. 일본은 제국이 된 적도 없으며 아직 막부 체제가 유지 중이다. 본래 역사의 일제처럼 쓸데없이 패악을 부리는 것은 비효율적인 방법이다.

“그렇다면 막부를 도와주십시오. 수많은 병장기를 우선…….”

“체질 개선이 먼저입니다. 병장기를 구매해보았자 제대로 된 행정도 없으며 곡물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치솟는 상황에서 어떻게 관리할 겁니까? 행정과 농업을 우선시합시다.”

효율을 추구하면 이렇게 관리해야지. 대한제국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막부를 만들고 대한제국이 필요한 물자를 생산하는 머슴으로 삼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일본 내부의 정치체계나 산업체계를 대한제국이 관리하기 편하게 조율하며 발전은 시킬 것이다. 메이지 유신 같은 전근대적인 사상을 가진 국가를 만들 이유도 없다.

종이 두 번 울리고 연회장으로 집결하라며 요청하는 나인들에게 이끌려 일본 사절단과 함께 나아갔다. 연회장은 두 곳에 있었는데 경회루는 종친들과 주요 대신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다른 한 곳은 본래 역사에서 중건된 경복궁의 태원전 인근에 위치하였다. 각종 국상을 처리하는 건물이 태원전이지만 이 역사에서는 연회를 주관하기 위한 영진전(迎津殿)이라는 건물이 들어섰다.

“연회는 오늘 밤늦게까지 이어질 것이니 염려하지 말고 드십시오. 대한제국의 모든 곳에서 가져온 진귀한 식재가 넘쳐나니 여러분의 입맛에 맞을 것입니다.”

형태는 동양식이었지만 내부는 여러 요소를 절충하였다. 콘크리트 바닥에 대리석을 깔아두었으며 내부에는 보일러가 돌아가는지 훈훈한 열기가 느껴졌다.

나무 살 사이에 끼운 유리창과 벽과 바닥을 장식한 화려한 계담(양탄자)으로 격을 더욱 높였다.

연회에 참석한 각국 대사들은 안내를 받아 자리에 착석하였고 경양군이 연회를 주관하였다.

“황제폐하께서 경회루에서 각국의 외교관을 접견할 것이니 다들 자리를 비우지 말고 연회장에 머물러 주십시오. 그러하면 연회가 시작하였으니 모두 잔을 들고 즐기도록 하시오!”

나를 제외한 외교관들이 각 테이블에 앉아 잔을 들고 대한제국 만세를 연호하자 건배를 하며 모두가 대한제국 만세를 연호하였다. 식탁에 있는 음식은 한식이었지만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은 요리들이었다.

신선로나 구절판 같은 요리는 크게 변하지 않았으며 내가 제안한 중국 음식, 이제는 중국식 한식이라 불릴 요리들도 있었다. 한과들도 자그마하고 앙증맞은 모습이 되었고.

고기 요리도 풍부하였다. 프랑스에서 수입한 육우를 기반으로 두툼한 고기를 만들어냈으니 모두가 만족할 만하였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역시나 치킨이었다. 보통 치킨도 아닌 치킨 너겟과 감자튀김이다. 서양 문화권에서는 닭을 오래 길러 스튜를 만들어 먹는데 이 닭고기를 정성스럽게 갈아 튀김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여기에 이 시대 기준으로는 어린 닭, 현대 기준으로는 꽤나 큰 닭으로 만들어 조금 질긴 치킨이 추가되었다.

나와 같은 탁자에 앉은 일본 사절단에게 이 음식들을 권유하였다.

“연회에 와서 논할 것도 많지만 배를 채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식기 전에 드시지요.”

“맛이 너무나 좋습니다. 한 입 베어물자마자 혓바닥이 짜릿해지는군요.”

아예 나와 한 몸이 된 일본인 사절단은 나를 상전으로 모시듯이 아부를 떨어댔다. 고작 치킨너겟을 호들갑을 떨며 찬양하였는데 먹어 보니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곤포당으로 미리 간을 해두었으니 이토록 맛이 좋군요. 저야 많이 먹어 보았습니다.”

“곤포(昆布)라 하였는데 다시마로 이런 맛을 내다니요? 다시마는 국물을 내는 데 씁니다만.”

“조만간 일본에서도 곤포당을 만들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이를 막부에서 관할하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새로운 문물을 통해 나라를 발전시키도록 합시다.”

어차피 일본은 대한제국에서 생산하기 힘들거나 귀찮은 물건들을 생산할 나라였다.

치킨너겟으로 시작하여 음식을 먹던 사절단은 내 잔에 소주를 따라주며 말했다.

“박현상 후작님 한 잔 받으십시오. 앞으로 스승의 나라를 대한제국으로 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잔을 돌려 마셔야 제격이나 한 잔 받으시지요.”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사절단을 휘어잡았다. 행정 체계의 개편에 들어가는 소모 자금을 채권 형태로 제공할 것이며 전신 설치에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는 말도 있었다.

이미 효명제가 세자 시절에 내린 명령이 있었으니 일본을 담당하고 미국을 견제하라는 말이 있었다.

이 정도는 내 권한으로 해결할 수 있는 약속이니 신신당부하듯이 말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방의 번을 통솔하는 것이며 다음으로는 농업 생산력을 부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력을 비축하면 십 년 이내에 최소한의 방위는 가능할 것 같군요.”

“황제 폐하께서 진일 후작님과 왜국의 사절단을 찾고 계십니다.”

마침내 때가 되었다. 경회루 방향으로 내려가자 나룻배가 있었고 연못에서 미국 대사인 제임스 뷰캐넌이 건너왔다.

배에서 훌쩍 뛰어내린 뷰캐넌은 내 손을 잡으며 말하였다.

“한센 박이 한 말이 옳았습니다. 대한제국 황제께서는 멕시코의 무례한 서신을 용납할 수 없다 천명하시며 이천 명의 병력을 파견하기로 결정하시더군요.”

“제가 뭐라 하였습니까? 명분이야 멕시코가 먼저 제공하였으니 명백한 운명을 개척하시지요.”

“옳은 말입니다. 두 호랑이가 서로의 힘을 확인할 그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잠재적 적국인 미국 대사들을 노려본 일본 사절단은 내 손짓에 따라 나룻배 위에 올랐다. 기존 모습을 유지한 경회루 위로 올라가 효명제에게 큰절을 올리며 인사를 하였다.

“신 박현상 폐하의 명을 듣고 당도하였나이다.”

“짐이 가장 만나고 싶은 사람을 보게 되었군. 연회를 행하기 전에 미국의 대사와 여러 문제를 논하였으니 마음이 놓이는구나.”

은으로 만든 술잔을 받아들고 효명제의 술을 받아서 들이켰다. 효명제는 취기가 조금 올라온 눈으로 상석에 있는 순조를 바라보고는 말하였다.

“아바마마께서 가장 중히 여기는 신하가 당도하였으니 어사주를 내려주시옵소서.”

“금상의 말이 옳소. 내 외무 부대신과 술을 나눈 적이 없거늘 양위를 마치고 나서야 술을 나누게 되었구려. 그럼 한 잔 받게나.”

순조의 어사주를 받고 순조에게 술을 한 잔 따라주었다. 순조는 옛일이 생각나는지 잔을 받아들고 조용히 말하였다.

“자네가 영길리에서 선친의 유고를 이행하고자 이 나라에 당도하였을 때 얼마나 가슴이 놀랐는지 아는가. 국문을 행할 적에 사특한 오랑캐를 벌하려다 옥루(玉淚)를 흘리게 되었지.”

“태상황께서 내려주신 은혜를 한시도 잊은 적이 없사옵니다. 신을 어여삐 보시어 선친의 묘소를 새로 세우게 하였으며 반남 박씨의 일원으로 삼으셨으니 이 또한 좋은 일이옵니다.”

“당시에는 자네가 얼마나 위태로운 사람이었는지 아는가. 겁 없이 세도가 사이에 끼어드는 모습이 너무나 흉험하였으나 아무런 이문에 관여치 않는 모습을 보며 자네를 믿게 되었지.”

잔을 비운 순조는 내 눈빛을 바라보며 허탈하게 웃고는 말하였다.

“연회장에서 자네가 왜인들과 어울린다는 말을 듣고 금상과 내기를 하였지. 왜인을 이미 다 포섭해 두었는지에 대한 여부인데 얼마나 포섭해 두었는가?”

“모든 일을 끝마쳐 두었습니다.”

“그럴 줄 알고 있었네!”

다시 술을 한 잔 받는 동안 효명제는 일본 사절단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를 힐끔힐끔 흘겨보는데 아마 결재도장만 찍으면 모든 일이 끝날 상황임을 알아차렸으리라.

일본과 여러 확약을 맺은 효명제는 아예 나를 중심으로 선진 문물을 보여주라면서 명령을 내렸다.

다시 영진전으로 돌아가니 일준이가 다가와 술을 한 잔 주며 염장을 질렀다.

“어이구 십덕 후작님이 오덕 제자들을 만드신 것 같은데요? 한 잔 받으십시오.”

일부러 유리로 된 와인 잔을 가져와 와인 반 소주 반으로 폭탄주를 만든 일준이를 보면서 술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일본 사절단에게 일준이를 지목하며 말하였다.

“제 벗이자 의형제인 조일준이며 자는 용태입니다. 대학 총장이자 일본에 필요한 모든 기술을 알고 있으니 이 친구와 연회를 하시지요!”

“용태 총장님! 저희에게 가르침을 주십시오!”

덩치가 커다란 일준이는 어떻게든 도망치려 하였으나 사절단들은 사방을 에워싸고 녀석을 탁자에 앉혀 버렸다.

결국 일준이는 일본에 필요한 기술에 대해 논하며 새벽까지 연회장에 머물러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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