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40화 (140/345)

140. 13장 2화 큰 실수를 한다(2)

단속을 실시할 때에는 자신이 있었다. 조선 전체에 퍼져나간 전신 기지에는 형조 휘하의 전신국(電信局) 관원들이 있었으며 이들이 전신을 감청하였다.

평상시에는 전신을 받고 다음 전신국으로 보내는 역할을 하나 조정에서 원하는 일이 있을 경우 포착하여 보고를 실시한다.

이들을 통해 조보에 올릴 자료를 수집할 목적의 익문사(益聞社)가 상황을 파악한다. 마지막으로 형조 휘하의 수사기관인 검리원(檢吏院)이 움직이는 체제였다.

“아무리 대단한 놈이라 해도 이 감시체계를 벗어날 수는 없겠지.”

솜 남편이건 솜 부인이건 불법적인 물량은 주문자와 제조자 간의 연락을 하게 마련이었다.

같은 동네에 거주하여 구두(口頭)로 계약을 맺으면 포착하기 힘들겠지만 그런 사소한 일은 눈을 감아주어야지.

“경남에서 올라온 보고서입니다. 양귀비라는 불법 솜 부인의 제조 정황이 포착되었습니다.”

“검리원을 파견하여 단속에 나서고 돌아오는 길에 각 공장을 시찰해 주시지요.”

불법을 저지른 놈들에게 쓴맛을 보여줘야 한다. 과도한 처벌을 가하는 엄벌주의는 내 취향이 아니지만 왕의 명을 대놓고 무시하면 이 시대에도 큰 처벌이 내려졌다.

“외무승지 영감님! 크! 큰일입니다! 당장 확인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대체 무슨 일입니까? 고작 전신 따위에…….”

전신을 번역한 관원은 손을 파들파들 떨면서 쪽지를 건네주었다. 급(急)이라는 단어가 네 개, 무력 충돌에 버금가는 급보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영길리의 여왕과 흡사한 불법 제품이 일백여 개 유통되었음. 이천도호부에서 이틀 전에 출발하였으니 이미 도성을 통과하였을 것이며 구매자는 불란서의 젊은 청년 구난배임.]

구난배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선을 확실하게 넘어버렸다. 이 물건이 유럽에 유통되면 조선에서는 빅토리아 여왕 개인은 물론이요, 영국 왕실과 의회에 약점을 잡히는 꼴이다.

“당장 움직일 수 있는 사람 모두 움직여! 사리원에서 닿을 수 있는 모든 항구를 수색한다!”

국가의 체면을 구기기도 하겠지만 나와 일준이 그리고 에이다의 체면도 구겨 버리리라.

내 말을 들은 관원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엉뚱한 답을 하였다.

“개항지가 세 곳이나 되는데 형조 인원은 물론 포도청까지 필요합니다. 이를 감당…….”

“우리가 잡아내지 못하면 나라가 뒤집히는데 감당이고 뭐고 생각할 상황입니까!”

나라가 뒤집힌다는 말에 모두가 사태를 파악했다. 그냥 솜 부인에 빅토리아 여왕의 얼굴을 사용해도 욕을 먹을 판에 불법 제품이라 하면 어떻게 감당할 건가.

미리 전보로 이름이나 성 혹은 별명으로 구난배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프랑스인과 이들이 사용할 배의 모든 화물을 구류하라 하였다. 다음으로는 아예 기차 한 대를 대절하여 황해도로 향했다.

“외무승지님께 보고 드립니다! 유추하여 구난배라는 불란서 사람을 찾아냈으며 그는 삼화도호부(현 평양 인근의 남포)에 구류되어 있습니다. 속히 방문하여 주십시오.”

“삼화도호부라면 그나마 다행이군요. 먼저 수색해 주시지요!”

하필 얇은 천인 외피만 가져가니 단속이 난해하다. 외피를 둘둘 말아 잘 압축하면 와인 병 크기 혹은 대나무 막대 크기가 되니 짐을 다 수색해야 할지도 모른다.

급격히 성장하여 삼화 현에서 순식간에 삼화도호부가 된 항구도시에는 이미 도호부사와 관원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이들은 미리 구류해 둔 구난배 두 명을 보여주었다.

“한 명은 서른두 살의 무역상 앙투안 쿠르베, 다른 한 명은 젊은 지주의 아들이자 화가를 자처하는 귀스타브 쿠르베입니다. 짐은 모두 압류하였는데요.”

“귀스타브 쿠르베?”

내가 이름을 크게 부르자 관원들 사이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청년이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 순간 현대의 기억이 떠올랐다.

“앙투안 쿠르베는 방면하고 귀스타브 쿠르베의 짐을 철저히 수색하십시오.”

“방면이라 하셨습니까? 둘 다 젊은 청년으로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만.”

“앙투안이 쌓아놓은 화물을 보니 이 나라에서 구매할 수 있는 약재인데 약재 사이에 물건을 숨기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요. 반면 귀스타브 쿠르베의 물건은 족자가 아닙니까?”

앙투안은 엉뚱한 일에 끼어들어 손해를 보았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사라졌고 귀스타브가 남았다.

그의 찰랑거리는 검은 머릿결과 준수한 외모를 보면서 첫 대화를 나누었다.

“참 대단한 일을 하셨더군요. 팔만 프랑이나 되는 물건을 일괄 주문하시다니요.”

“제가 돈이 좀 많은 사람이기는 합니다. 부친께서는 지주이시지만 조선과 인연을 맺고 조선-청 전쟁에 투자하고 무역으로 재산을 축적해 제 화가로서의 완성을 도와주고 계시지요.”

“불법 물품을 대량 구매해서 화가로서 완성을 추구하시는 겁니까?”

“제가 뭘 주문했는지 보이지 않으십니까? 조선의 민화와 풍속화입니다. 이를 배워서 제 화풍으로 만들고 판매하면 돈도 벌고 예술적 감각도 성장시킬 수 있지요.”

관원들이 확인한 물건은 200개에 달하는 족자였다. 하나같이 제법 질이 좋은 민화나 풍속화 심지어 김정희의 제자가 그린 인상파 회화도 있었다. 나머지 짐은 보잘것없는 생필품이나 도구였다.

자존심을 지키면서 턱을 한껏 들어 외모를 뽐내는 쿠르베를 보며 족자의 뒤편을 가리켰다.

“족자 뒤에 붙인 천이 좀 얼룩져 있고 천이 두 겹인 것 같은데요. 당장 족자 해체해!”

“오 이런, 들켜 버렸군.”

귀스타브 크루베는 이마를 탁 치면서 해체되는 족자를 보았고, 족자 뒤를 보강하기 위해 붙이는 천의 안쪽에는 빅토리아 여왕의 얼굴을 담은 솜 부인 외피가 있었다.

“왜 이런 일을 저지르셨습니까? 예술 작품을 공장에서 찍어내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귀스타브 쿠르베는 잠시 답을 하지 않고 눈을 흘겼다. 그러더니 너무나 당당하게 말하였다.

“예술은 언제나 사실을 묘사해야 합니다.”

“저건 사실이 아니지 않습니까. 얼굴은 사진에서 어설프게 따 와서 형상만 비슷한 데다 몸은 멋대로 만들어낸 물건이지요. 이런 기괴한 물건이 사실이라니요?”

“예술은 계층의 구분이 없으며 존귀한 자나 가난한 자나 모두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왕후장상은 언제나 드레스를 입습니까? 이 작품은 사실에 가까운 묘사를 하였습니다!”

내가 미술에는 관심이 별로 없지만 이 사람의 작품을 기억하는 이유가 있다. 극도의 사실을 추구한 작품을 그리며 이 시대의 윤리와 도덕을 넘나드는 예술가였다.

그러니 법대로 처분하기로 하였다.

“사실을 추구해도 감당해야 할 일이 여럿 있습니다. 폐하께서 불법으로 지정한 물건이니 수감될 것이며 재판을 받을 것입니다.”

“언제쯤 적나라한 사실을 묘사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법을 어겼으니 재판을 받아야지요.”

물론 이런 작품을 그리지 않은 24세의 애송이에 불과하여 의욕만 앞서서 이런 사태를 저질렀으리라.

모든 작품을 소각하고 귀스타브를 형조로 압송하여 재판을 열었다.

“불법 솜 남편의 제조에 자금을 지원하였으나 젊은이이며 자금만 조달하였기에 벌금형에 처한다. 물품 대금으로 지불한 팔만 냥과 합쳐 총 십이만 냥의 벌금을 내놓고 향후 입국을 불허한다.”

몇 년이나 형무소에 가두어둘 수 없으니 입국 불가조치와 추방령이 내려졌다. 그의 성향을 생각하면 프랑스에 돌아가서 흉측한 물건을 만들어 내겠지만 조선의 일은 아니니 상관없다.

귀스타브 쿠르베는 이 정도로 끝났으나 나머지 가담자들의 형벌은 가혹하였다. 형조에서는 일벌백계를 내리려는지 이들을 요동의 탄광에 처박아 버렸다.

“공장장은 노동형 칠 년! 화가와 기술자는 노동형 십 년에 처한다!”

천만다행으로 사태를 수습하였지만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났다. 매번 올라오는 보고에 형조는 경기를 일으켰고 선을 심하게 넘는 범죄는 의금부까지 관할하게 되었다.

이를 막으려면 강력한 처벌과 철저한 감시가 필요하다 생각했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날이 갈수록 개판으로 돌아가는 보고를 들으면서 처벌과 감시로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와서이다.

적발이나 단속이 힘든 단일 제작품은 어쩔 수 없다 쳐도 대량생산만큼은 단속하려 하였다.

이런 의지와 달리 이 시대의 부족한 정보력으로 인해 수사 중 문제가 발생하였다.

“익문사에서 탐문 수사를 벌인 솜 남편 공장을 압수 수색하다가 실책을 저질렀습니다.”

“실책이라니요? 혹시나 덮어놓고 치도곤을 들이대고 포박하였다는 말씀이십니까?”

“도리가 없었습니다. 공장주가 전신으로 ‘훌떡 벗기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범죄의 정황이라 생각하였는데 놀랍게도 압수한 물건이 이런 녀석이었습니다.”

“이건 취발이 탈이잖아요?”

형조 단속반이 준 물건은 별산대놀이에 사용하는 취발이 탈이었다. 나무를 깎아 만드는 탈 대신 직조한 면을 덮어씌워 탈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시대의 탈이 수공예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생산성 발전이지만 실수로 인해 단속 대상이 되었는데 관원은 내 시선을 피하며 보고를 마쳤다.

“주문을 의뢰한 사람은 탈에 씌우는 천의 끝자락에 고무줄을 박아 넣고 누벼서 훌떡 벗기는 것을 원하였습니다. 저희는 이런 사실을 명확히 모르고 공장을 습격하여…….”

“배상금으로 한 사람당 신냥 일백 냥에 공장 가동 중단 보상금 일천 냥을 제공하지요.”

보고가 올라올 때마다 머리가 빠개질 것 같았다. 이러한 실책도 가끔 저지르곤 하지만 정상적으로 단속에 성공한 사례가 닷새에 한 번 정도가 되었다.

에이다와 내기를 했던 오천 개의 불법 제조품은 이미 절반 이상이 채워졌다.

후임자가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앞으로 몇 년 동안 두더지 잡기 놀이를 하듯 이런 불법을 찾아내야 하리라.

“이러다가 이민아문에 돌아가서도 잔업으로 욕을 먹겠는데. 마지막 삼 년 차 화전민 이주는 어떻게 처리하나. 이 시대 사람들을 과소평가했나.”

현대라면 수입품을 단속하겠지만 이 시대에는 꿈도 못 꾸는 일이다. 원료인 목화는 청도와 상해의 개항지에서 무제한적으로 수입되는데 이를 어떻게 추적하겠는가.

“박현상 자네 나 좀 볼 수 있겠는가?”

앞을 보니 정약용이 지팡이를 짚은 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정약용은 평상시에는 나와 일준이가 미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뜻에 어울려 주었지만 가끔 반목할 때가 있었다. 우리가 이 시대의 규범을 무시하거나 선을 지나치게 넘을 경우였다.

이럴 때에는 날 질책하고 상황을 올바르게 되돌리려 하였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그렇지 않아도 다산 선생님을 뵙고 싶었습니다. 일을 저질렀는데 제가 수습하기 곤란합니다.”

“자네가 근래에 들어 성숙했다 생각하였는데 의욕만 앞서서 또 일을 저지를 줄은 몰랐네. 내 집에 잠시 방문하도록 하게나.”

얼마나 욕을 들어먹을까 고뇌하며 정약용의 저택 사랑채에 들어가 앉아 있었다.

잠시 뒤 마음을 정리한 정약용이 나를 질책하기 시작하였다.

“작금의 일을 토지와 농민의 관계로 대조하여 이해하였네. 토지를 사들인 농민이 농사를 지어서 토지의 가격을 갚아나갈 수 없으니 앵속(罌粟)을 길러 아편을 만들어낸 꼴이 아닌가.”

“비슷하긴 합니다. 저는 끝없이 아편을 만드는 일을 단속하는 상황이지요.”

“농민들이 토지에 멀쩡히 농사를 지어 소출을 거두게 만들어야 앵속에 눈을 돌리지 않겠지. 내 알기로 솜 남편을 하나 만드는 데 원가가 신냥 이백 냥이 넘는다 하였네. 그러한 상황인데 쉽게 만들 수 있는 흉한 물건에 눈을 돌리지 않는가.”

공장 입장에서 불법 물품은 손쉽게 수익을 거둘 수 있는 녀석이었다. 증기기관과 직조기 구매로 인한 이자 증가를 감안하면 개당 이익을 끌어올리는 것이 답이다.

정약용은 바닥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그러니 이 계담(罽毯 - 조선식 양탄자)을 만드는 것을 권유하게. 백성들이야 바닥에 거적을 깔고 살지만 제대로 된 양반가라면 화려한 계담을 바닥에 깔고 싶은 욕심이 생기지.”

이건 생각하지 못했다. 좌식문화인 조선은 바닥의 열기를 조금이라도 더 보존하려고 깔개를 두툼하게 깔아두었는데 영국산 모직물도 사용하고 얇게 만든 누비이불도 활용했다.

사람의 형상이 아닌 복잡하고 기묘한 무늬를 찍어낼 수 있다면 솜 남편이나 솜 부인을 제조하는 것보다 쉽고 더 다양한 무늬를 창안할 수 있으리라.

다음 날부터 에이다를 다독여 계담에 사용할 새로운 문양들을 만들어내 유출하기 시작하였다.

이러면서 단속을 계속하고 있는데 형조 관리가 새로운 물건을 가져왔다.

“이 물건은 솜 남편이나 솜 부인은 아니지만 너무나 해괴하여…….”

“이건 피규어네.”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었다. 내가 다키마쿠라를 유통시키니 오타쿠의 물건 중 하나인 피규어가 자발적으로 생겨나 버렸다.

영국의 본차이나 기술을 흡수한 조선의 도자기 기술이 급격히 발달하고 있으니 도자기로 피규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보통 물건도 아니다. 양팔을 치켜올리고 근육이 울룩불룩 거리는 기묘한 형상의 피규어를 보면서 앞으로 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갈지 심각히 염려되기 시작하였다.

* * *

이하응이 벨기에로 건너가 감자 역병에 대처할 무렵 프랑스에서는 조선에서 수입한 나폴레옹의 솜 남편이 대유행을 시작하였다.

자카드 직물을 직조하던 자카드-에이다 방적직조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가며 솜 남편과 솜 부인을 만들어냈다. 너무나 당연히 가장 잘 팔리는 모델은 나폴레옹이었다.

이외에 나폴레옹의 26원수나 유가족과 후손의 허락을 받은 당대의 유명 인물들이 솜 남편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솜 남편의 구매자 가운데 특이하게 사용하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황제폐하께 보고 올립니다! 에마뉘엘 그루시! 배신자를 사로잡아 왔습니다!”

“그루시 너는 벌써 노망이 들었나? 오랜만에 보나파르트를 보니 기분이 묘하군.”

그루시의 저택의 단상 위에 정중히 모셔진 나폴레옹의 솜 남편을 바라본 그루시와 마르몽은 인사를 올렸다. 이러한 풍경은 늙은 프랑스인이 머무는 저택에는 흔한 일이었다.

둘이 다음으로 한 행동은 벽에 자기 자신을 묘사한 솜 남편을 기대어 두는 것이었다.

마르몽은 담배 파이프에 불을 붙이고 다트를 한 아름 꺼내어 말하였다.

“솜 남편은 이렇게 사용해야지. 규칙은 지난번 내 자택과 같이할까?”

“규칙 변경이다. 코는 십오 점, 눈은 십 점, 입술은 오 점 그리고 나머지 얼굴은 일 점.”

먼저 마르몽이 온 힘을 다해 다트를 그루시의 솜 남편에 던져 버렸다. 눈에 정확히 다트가 찍힌 솜 남편을 확인한 마르몽은 담배를 한 모금 빨아들이며 말했다.

“내가 조선에 있을 때 네놈에게 포탄을 날려 버리고 싶었는데 어떻게 참았는지 모르겠군.”

“누가 할 소리를! 내가 네놈을 죽이고 싶은 욕망을 몇 번이나 억눌렀는데!”

다음으로 날아간 그루시의 다트는 마르몽 솜 남편의 코에 박혔다.

서로의 솜 남편에 다트를 던지며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와인을 마시기를 한동안 즐긴 그루시는 피로가 몰려와 의자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이런 물건이 있다면 누구나 황제폐하의 젊은 시절 모습을 즐길 수 있겠지. 안 그런가?”

“말년에 운수가 풀린 놈이 말 한번 잘하는군. 내 솜 남편은 인기가 더럽게 없는데.”

조선의 솜 남편과 달리 프랑스에서 제조한 솜 남편은 순수한 직조제품이 아니었다. 화려한 장식은 물론이며 안료가 비어 있는 공간을 화려한 문양으로 채워나갔다.

“잘 즐기셨습니까? 제가 새로 만든 녀석은 어떻습니까?”

“조선에서 만든 물건은 지나치게 절제하여 장식이 없었는데 이 녀석은 맘에 들어.”

“그야 조선 사람들이 꾀가 없었으니까요. 저는 여러 방안을 모색했습니다.”

조선에서 강제 추방당한 귀스타브 쿠르베는 두 원수를 후원자로 삼아 솜 남편을 개량하였다. 아예 얼마 전 영국에서 개발된 실크 스크린 인쇄법을 솜 남편에 적용하였다.

언제나 같은 형상으로 직조되는 직물 위에 안료를 등사(騰蛇)하여 입혔고 이를 통하여 더욱 많은 물량을 쉽게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꿈을 자랑스럽게 말했다.

“예술은 누구나 대상이 되어야 하며 누구나 향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옳은 말이지. 언젠가는 황제 폐하의 그림을 지나가는 사람들도 즐길 수 있어야지.”

“자네의 실종에 절망한 나폴레옹을 인쇄한 판화도 좋겠지. 대량 주문하고 싶은데?”

귀스타브 쿠르베는 생각 외로 괜찮다 생각하였는지 턱에 손을 괴고 침묵하였다. 이 모습을 바라본 그루시는 마르몽의 멱살을 잡고 뒤흔들며 고함을 쳤다.

“넌 좀 닥쳐 이 배신자야! 네놈이 조선에만 안 갔어도 영원한 배신자일 거다!”

“너야말로 닥쳐! 네놈은 조선에서 멋대로 사라진 다음 운이 좋아 전과를 거두었잖아!”

“두 분 잠시 그대로 계셔주시겠습니까? 다음 작품은 두 악우라 칭하겠습니다.”

다음 작품은 ‘아무튼 빅토리아도 아니고 여왕도 아님’으로 만들어내고 있던 귀스타브 쿠르베는 가짜 미소를 지으며 둘의 모습을 스케치하였다.

이 두 후원자를 통하여 자신의 이상적인 예술 사조, 사실주의를 완성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예술의 발전을 위하여 오늘도 자신의 심상을 갈고닦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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