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 11장 7화 적응, 부적응(1)
한양으로 올라간 화전민들은 한양 구경도 못 해보고 인왕산 자락을 넘어가 기차역으로 향하였다. 난생처음 기차를 확인하고 놀랐으며 다음으로는 기차를 타고 더욱 놀랐다.
“이게 꿈이여 생시여…….”
창밖의 풍경과 자신이 타고 있는 기차의 속도를 가늠해 본 화전민들은 하루 종일 기차에 시달리며 의주로 향하였다. 간혹 역에 내려서 식사를 하고 잠시 쉰 다음에는 무조건 기차에 머물러야 하였다.
순차적으로 의주로 올라올 화전민을 위해 효명세자는 각 사단을 동원하여 이송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들은 의주에 도달하자마자 배가 아닌 다리를 통해 요동으로 향하였다.
“저희가 어디까지 가는 겁니까? 하루 만에 도성에서 의주까지 내려왔는데 저희가 살 땅은 정해져 있는지 궁금합니다.”
“청주에서 오신 분들이니 앞으로 오신 만큼 가시면 됩니다. 어서 움직이시지요.”
대열 양옆을 호위하는 병사들은 조선 팔도에서 징집되어 북방 신규 사단에 배정될 초짜들이었다. 일종의 행군 훈련 겸 야영 훈련을 겸한 방식이었다.
화전민들은 이런 속사정을 알 수 없으니 제대로 된 군복과 광택이 흐르는 옷 그리고 기초적인 훈련으로 다져진 제식을 보고 주상전하가 제대로 된 병사를 보내주었다 생각하였다.
한 달에 걸친 이동 끝에 300㎞를 올라온 청주의 화전민들은 삼림이 우거진 넓은 땅을 보며 침을 삼켰다. 북방이 추운 고장이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 환경이면 자신들이 살던 산보다 훨씬 나은 형편이라 생각하였다.
주변에는 맹수들을 사냥하는지 총성이 간혹 들려오는 가운데 쭈뼛거리는 화전민들이 인솔을 받아 이동하였다.
화전민들은 미리 숲을 벌채해 둔 장소에 모여 자신들과 기나긴 인연을 맺을 관원의 연설이 시작되었다.
“의주-봉천선의 제4 공구에 배정받으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여러분 모두는 이곳에서 이 년 동안 저희의 인솔하에 철도 공사에 나설 것입니다.”
“이런 허허벌판에 공사를 할 곳이 있다는 말입니까?”
“이미 측량 기술자들이 다녀와 어떠한 방식으로 철도를 놓을지 정해 두었습니다. 오시면서 사람 크기의 노란색 말뚝을 여럿 보았을 겁니다.”
화전민들도 주변 경치를 보았으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일 년에 걸친 측량과 예산 배분으로 계획은 완료되었으며 이제 시공에 나설 차례였다.
이점버드 브루넬 아래에서 평양 일대의 철도 노선을 담당한 기술자들이 안산(鞍山) 일대의 제4 공구를 시공할 예정이었다. 가장 먼저 하달된 명령은 조원 분배였다.
“지금 모인 분들을 세 조로 나누어 한 조는 철도 공사를, 다른 한 조는 기반 시설 공사를 그리고 마지막 조는 보조 공사를 담당하게 할 예정입니다.”
“어떤 일이 가장 힘든지 알 수 있을까요?”
“제가 모든 일이 공평하게 힘들 정도로 잘 조절하겠습니다.”
화전민들은 마을 단위로 집결하여 원하는 조로 배정되려 하였다. 의외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철도에 달려들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땅바닥에 자갈을 쌓은 것이 전부라 쉬운 일이라 생각하였다.
이 모습을 보면서 평양 일대에서 공사를 하다 기술을 배워 관직을 얻은 사람들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눌렀다. 모든 인원이 배정되자 앞으로 1년 6개월이 걸릴 세기의 공사가 시작되었다.
* * *
철도 공사는 순차적으로 진행되었으며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맞물리며 작업 효율을 높였다.
측량 기술자들이 정한 길목에 가장 먼저 나선 이들은 벌목 작업자들이었다.
“이럴 염병할 일을 보았나! 나무를 잘라내면 되었지 그루터기 하나하나를 다 뽑아내?”
“그럼 저기 가서 흙이나 퍼먹을까? 흙이 너무 좋아서 뒹굴고 싶지?”
“내가 파내겠네!”
도끼와 톱으로 나무를 벌목하는 인부가 지나가면 다른 인부들이 그루터기에 화약을 넣고 터트려 제거 작업을 진행하였다. 여기에 수풀과 잡목을 모조리 걷어내는 인부들도 투입되었다.
벌목된 나무는 공사현장 구석으로 옮겨져 잘 말려 훗날 형성될 도시에 쓰일 재목이 되었다. 이 작업이 끝나면 측량 기술자들이 커다란 붉은 말뚝을 박아 철로가 시공될 장소를 정했다.
“또 시작. 염병할.”
“곽(郭) 서방 자네 허리는 괜찮나?”
“괜찮다. 어제 치료받아.”
십장(什長) 역할로 뽑힌 조선 화전민이 휘하에 배속된 청나라 사람을 바라보자 그는 허리를 두드리며 곡괭이를 들었다. 이 조에는 화전민 8명과 청나라 사람 2명이 배정되었다.
공사현장에 투입된 인부의 총비율은 화전민 4 : 청나라 사람 1이었다. 처음에는 말도 통하지 않아 손짓 발짓으로 대화하거나 아예 역관이 돌아다니며 말을 번역해 주었다.
석 달이 지나자 청나라 인부들은 조선의 말을 어느 정도 익혔다. 대화를 할 때마다 불편하게 역관을 부르느니 간단한 단어를 익힌 것인데 이제는 어설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곽 서방을 바라보던 십장은 고개를 돌리며 어련히 하겠거니 생각하였다. 이런 생각과 달리 곡괭이를 움켜쥔 곽 서방은 바닥을 몇 번 내리치고 인상을 찌푸리며 고통을 억눌렀다.
“크어윽!”
“곽 서방 자네는 왜 무리를 하나? 여기 의원 계시오?
곽 서방이 사람들의 부축을 받아 의무실로 옮겨졌다. 간혹 꾀병을 부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이런 이들은 로버트 리스턴과 영국 의원을 통해 해부학을 익힌 의원들의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곽 서방이 실려 가는 모습을 본 인부들은 다시 곡괭이질을 시작하였다. 흙이 솟구치고 허리의 통증을 느낀 인부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이러다가 몸 죄다 망가지는 거 아니야?”
“힘의 배분을 잘해야지. 그냥 곡괭이를 놀리면 곽 서방처럼 허리를 다쳐.”
“그게 쉬운 일이기는 한가? 난 대체 왜 여기를 택했을까?”
“거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 들어보았는가? 빙산이 뭔지는 모르지만 드러난 것은 전체의 일 할에 불과하다 하였네.”
휘하 인부의 말을 들은 십장이 눈을 찌푸렸다. 처음에는 땅을 고르게 다지고 자갈을 쌓는 작업을 생각하였지만 실제로는 우물을 파는 작업이 쉬울 지경이었다.
철로 부설은 일상적인 공사와 견줄 수 없을 정도로 난이도가 높은 공사였다. 숲을 밀어내고 모든 나무뿌리를 뽑아내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작업에 불과하였다.
비교적 서늘한 새벽부터 작업을 시작하였지만 인부들의 노동은 끝이 없었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온 몸이 땀으로 젖을 정도로 곡괭이를 놀렸지만 해야 할 일은 넘쳐났다.
“땅을 더 깊이 파라고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는가! 노반(路盤 - 철로 아래의 땅)이 엉성하게 굳어져 있으면 철도가 가라앉아 버린다니까!”
“사람이 드나들 정도로 깊이 파내지 않았습니까? 이런데도 더 파내라니요?”
“더 파야지! 지층 분석 결과가 연약지층이니 흙을 모조리 새로 갈아야 한다고! 앞으로 한 자는 더 깊게 파야 목표치에 닿아!”
인부들이 짜증을 냈지만 한양에서 의주까지 기차를 타 본 입장에서는 넘겨 들을 수 없는 소리였다. 소달구지나 마차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빠른 물건이 기차였다.
땅이 주저앉거나 철로가 흐트러진다면 기차가 뒤엎어져 수백 명이 떼죽음을 당하는 것은 불 보듯 뻔했다. 다시 작업을 시작한 인부들에게 희소식이 전해졌다.
“점심시간입니다! 새참 먹고 하세요!”
흙덩어리가 된 인부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구덩이 밖으로 달려 나왔다. 미리 준비한 물통을 끼얹으며 몸의 흙먼지를 덜어낸 인부들은 준비된 식사를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다.
“내 살아생전 먹은 계란보다 공사를 하면서 먹은 계란이 더 많은 것 같아.”
“이런 하얀 계란은 어떤 닭이 낳는지 모르겠어. 조금 덜 삶아서 부드러운 맛이면 좋겠는데.”
“이 사람아. 계란이 앞에 있는데 어디 부드럽고 딱딱하고를 따지나?”
식사는 훌륭하다 못해 풍족한 편이었다. 보리와 옥수수 그리고 콩이 섞인 잡곡밥은 쌀이 절반이 넘게 들어가서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다.
반찬 또한 김치를 시작으로 각종 절임채소와 나물에 새우젓을 비롯한 젓갈이 있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풍족하지만 언제나 하루 한 끼 이상 고기를 먹이려고 노력하였다.
이렇게 계란을 하나씩 지급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다른 육류도 나왔다. 몽골에 곡식을 수출하고 받아온 누린내가 나는 양고기, 말린 생선으로 만든 조림 그리고 아주 가끔 돼지고기나 푹 삶은 닭이 죽처럼 나왔다.
“맛이 이상해.”
곰삭은 젓갈을 먹은 청나라 노동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젓갈을 숟가락으로 떠서 옆 사람에게 주었다.
젓갈을 받은 화전민 출신 인부는 젓가락으로 반찬을 집어 건네주며 말하였다.
“나도 이 반찬 맛이 입에 안 맞는데 좀 더 먹게.”
“그거 유채(油菜) 절여 볶은 거.”
화전민들은 이미 청나라 요리를 경험해 보아서 대부분의 반찬을 먹을 수 있었다.
반면 청나라 인부들은 조선의 반찬에 잘 적응하지 못하였고 이렇게 반찬을 나누며 우정을 키워갔다.
“이 국은 텁텁하지만 맛있단 말이야.”
“이거 썰다 볶아서 먹으면 맛있어.”
“이 사람아. 한자리에 모여 삼천 명이 넘게 먹으면 볶음 요리가 죄다 눌어붙고 죽처럼 으깨져 버리지. 근데 감자볶음이 맛있기는 하겠네.”
식사의 마무리로 감잣국을 들이켠 인부들 낮이 되어 기온이 올라가자 두 시간 정도 햇볕을 피해 휴식을 취하였다.
이런 인부들을 위해 숭늉을 담은 주전자를 아이들이 가져왔다.
“어이구 우리 장손이! 오늘도 고생 많이 했다.”
“아니에요 아버지. 아직 할 일이 많은데요.”
화전민 가운데 장정들은 공사현장에 참가하였으며 아낙들은 옷을 빨고 음식을 준비하는 작업을 하였다. 아이들은 이러한 어른들 사이에서 잡다한 일을 하며 도움을 주었다.
이 시대는 아동 노동이 보편화된 시대였다. 서양이라면 굴뚝 청소를 시작하고 농업 사회인 동양이라면 농사에 뛰어들어 쉴 새 없이 일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공사현장에서 잡다한 노동을 하는 것이 농사보다는 덜 힘든 일이라 아이들은 사방을 뛰어다니며 일을 도왔다.
잠시 늘어져라 잠을 잔 인부들은 나팔 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다시 일하세. 내일은 푹 쉴 수 있으니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고!”
노반을 만들기 위해 연약지반을 파헤친 다음에는 흙을 다시 덮는 공정이 시작되었다. 인공석분(시멘트)을 넣고 돌을 골라낸 흙을 버무려 바닥에 깔고 쉴 새 없이 달구질을 하였다.
“하나! 둘! 내려!”
절구보다 커다란 화강암 달구(땅을 다듬는 도구)에 열 명의 사람들이 달라붙어 노끈을 위아래로 흔들며 호흡을 맞추었다. 한 겹의 흙을 뿌리고 다듬으면 다음 흙이 뿌려지고 다시 달구질이 시작되었다.
“우리 아버지 묘소를 만들 때에도 이렇게 달구질을 안 했는데!”
“말해서 뭐 해! 다시 시작한다!”
“하나! 둘! 내려!”
쿵 소리가 나며 달구가 바닥을 뒤흔들며 흙을 다지고 한 걸음 나아간 인부들이 다시 호흡을 맞추었다.
한 자리에 수백 번에 달하는 달구질을 당한 땅에 말뚝을 쑤신 감독관은 손짓을 하며 다음 작업을 진행하였다.
“합격! 자갈 촘촘히 깔아! 배수로에 흘러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고!”
“자갈 납시오! 다들 비키시오!”
선로가 올라갈 자갈이 운반되고 측량 담당자가 정해진 높이를 확인하며 명령을 내렸다. 합격 명령이 떨어지자 다음 자갈이 쌓이고 기술자들이 운반된 철로를 부설하였다.
“여기는 곡률이 있는 구간이니 염린(炎燐 - 테르밋)으로 접합해야 해. 염린 준비!”
“또 석면 방호복을 입어? 이러다 늙어서 온갖 골병에 걸리는 거 아니야?”
“너는 안에 고무 피복이 있는 옷을 감싸고 작업하니 차라리 나은 형편이지! 우리는 네 몸에서 떨어지는 석면을 들이마셔야 하잖아!”
화전민들도 청나라 사람들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측량기술자들은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측량기를 사용하고 선로 기술자들은 사력을 다하여 선로를 조립하였다.
멀리서도 느껴지는 뜨거운 테르밋의 열기가 잦아들 무렵, 선로가 접합되었다. 공장에서 테르밋 접합을 마친 선로가 다 떨어지면 이런 식으로 즉석 접합 선로를 만들었다.
모두가 힘들게 일하니 한 몸으로 뭉쳤으면 뭉쳤지 서로 어긋날 일은 없었다.
테르밋으로 선로를 접합한 기술자는 몸에 물을 뿌려 석면을 씻어내고 한탄하듯이 말하였다.
“전하께서는 대체 얼마나 우리를 고생시키려고 이런 작업을 시키시나.”
“전하 말고 폐하잖나! 그리고 폐하께서 친히 청나라를 정벌한 길에 철도를 놓는 데 불만을 가질 이유가 있는가? 이번 공사는 폐하의 명을 철저히 받드는 혜택이지!”
“하긴 폐하에게 불만을 품는 놈이 있다면 아편을 한 사발 들이켜거나 아편을 한 달 끊어서 정신이 나간 놈이겠지.”
고난으로 인해 솟구치는 불만은 순조의 위대한 치적이 없던 것으로 만들었다. 불만을 품고 반란이라도 일으키려 하면 주변 사람들이 작당해 열 길 땅속으로 묻어버리고 호랑이가 물어갔다고 말할 정도였다.
벌목을 제외한 보조 공사도 쉴 새 없이 진행되었다. 마을 건설을 어느 정도 마친 인부들까지 투입된 공사에는 증기기관이 투입되었는데 철로에서 가장 중요한 자갈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증기기관에 연결된 쇠망치가 내리 찍히자 돌이 쪼개지며 자갈이 사방으로 튀어나갔다. 기준 크기보다 커다란 자갈을 쇠망치와 정으로 쪼개는 작업이 이어졌다.
허리를 다친 청나라 출신 곽 서방은 의사의 처방을 받고 임시로 여기에 배속되었다. 나무로 만들고 작은 구멍을 여럿 뚫어 시야를 틔운 보안경을 쓴 곽 서방은 자갈을 계속 쪼개 나갔다.
“오늘 일정 종료! 모두 들어가 쉬시오!”
환호성을 지른 인부들은 저녁이 준비되는 동안 몸을 씻기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몸을 씻고 나온 인부는 감독관에게 달려가 질문을 하였다.
“감독관님! 궁금한 것이 있으니 이 공사가 얼마나 걸릴 것 같습니까?”
“속도가 제법 빨라서 앞으로 일 년 하고 다섯 달 정도 걸릴 것 같군.”
“봉천이라는 곳까지는 한참이나 남았는데요?”
“지금 우리가 담당한 공사구역은 제4 공사구역인 걸 잊었나? 봉천까지 공사구역이 일곱 개가 있는데 각자 여기와 비슷하게 작업을 진행하지.”
“그럼 철도 총 길이가…… 오늘도 두 리가 조금 넘게 지나왔으니…….”
손을 꼽아가며 계산한 인부는 철도의 총 길이가 2,400리에 달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참으로 막대한 공사이지만 지난 한 달 동안 부설된 철도의 길이가 30리, 8㎞가 넘었다.
“생각보다 금방 할 것 같습니다.”
“땅이 얼어버리는 겨울에도 공사를 할 작정인가? 겨울이 되면 주변 공사만 조금씩 하고 숙소에서 쉬면서 내년을 준비해야지.”
“그러니 저희에게 배움의 기회를 열어주신 것이로군요. 폐하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올려야겠습니다.”
남쪽 한양에 머무르는 순조에게 절을 올린 인부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저녁 식사를 하였다. 공사는 이틀에 한 번씩 진행되었으나 관리자들에게는 아직 할 일이 남았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세부 측량 오차로 인하여 노선이 조금 변경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하필 새 노선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장소가 기존 마을 외곽이 되었습니다.”
“이미 마을의 논밭을 가로질러 철도를 부설할 예정이라 땅을 구매하고 농사도 안 지어두었는데 측량 오차가 생겼다. 손해액이 오백 냥이 훌쩍 넘어가겠군.”
실수를 저지른 초보 측량 기술자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어깨를 숙였다. 감독관은 반성하는 태도를 확인하고는 대수롭지 않게 노선을 변경하며 말하였다.
“본토에서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면 최악의 경우에는 손해를 배상하다 파직까지 갔을 것일세. 이 정도는 실수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니 내 단순 오기(誤記)로 처리해 주겠네.”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사력을 다하여 세심히 측량하겠습니다!”
오늘도 의주 – 봉천 철도건설 제4 공구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고 동시에 여러 문제를 발생시키며 작업을 종료하였다.
내일은 인부들에게 말을 가르치고 간단한 학문을 알려주기 위해 수업 내용을 준비하던 기술자들이 대화를 나누었다.
“여기에서 업무를 시작하고 체중이 열 근(6㎏)이나 빠져 버렸네. 이러다가 몸이 축나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그럼 나은 형편이지. 자네가 오늘 저지른 실수가 본토에서 벌어졌어 봐. 지금쯤 자네 멱살을 누가 잡고 있을까?”
본토였으면 새로운 법으로 보호받는 땅 주인들이 행패를 부리거나 공식적으로 송사를 걸 만한 일이었다.
눈을 벌겋게 뜬 지주와 농민들의 아우성을 상상한 초보 기술자는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그나마 수습이 되어서 다행이지. 아무렴 다행이고말고.”
“위기를 잘 수습했다 생각하고 더욱 근면하게 일하게. 그러고 보니 청나라에서 철도 공사를 진행한다던데 이 친구들 청나라 사람과 부대껴서 버틸 수는 있을까?”
“거 사람은 환경이 변하면 적응하기에 마련이잖아. 이 말을 어디서 들었지?”
상대적으로 행복한 처지의 제4 공구의 밤이 깊어지고 보초를 제외한 모두가 잠에 빠져들었다.
초보 기술자들의 상상과 달리 청나라에서는 어느 누구도 적응할 수 없는 공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