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18화 (118/345)

118. 11장 6화 대이주

조선이 북방 영토를 얻어내고 1년이 흘렀다. 첫해에는 소작농을 선발 이주시켜 시험과 기존 거주민의 반발을 억제하였으니 이제는 본격적으로 화전민을 이주시킬 차례였다.

“올해의 목표는 오십만 명의 화전민을 백성으로 만들고 이들 가운데 삼십만 명을 북방으로 보내는 것이옵니다. 이미 모든 준비는 마쳤사오니 태자전하께서 명을 내려주시옵소서.”

오십만 명이면 말이 쉽지 요즘 급격히 인구가 늘어난 한양의 1.5배에 달하는 인구이다. 이 인구들을 올려보내는 것도 일이고 정착시키는 과정에 들어가는 노력은 말할 필요가 없었다.

효명세자는 이미 예산안도 통과시키고 최종 승인만 남은 서류를 확인하였다. 이 업무는 이민아문을 비롯한 3개 아문이 관여하고 각 부서가 협력할 업무였다.

얼마 전 은퇴하였던 서유구가 새 임시 기관인 농무아문의 대신으로 복구하여 이번 계획을 총괄 통솔하였다.

다만 서유구는 젊은 인재를 키운다는 명목으로 나를 앞세우고 고문 역할을 자처하였다.

“예산이 부족하였다면 중단할 것이나 올해도 청나라에서 오백이십만 냥의 재물을 보내주었으니 가능한 일이 아니겠소. 모든 이들이 힘을 합쳐 이 대업을 성사시키도록 하시오.”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지방의 유생들과 백성들의 협력을 받아 이 대업을 이룩하겠나이다.”

“근래에 잇달아 흉년이 생겨 작황이 좋지 아니하였으나 작년에는 작황이 매우 좋았소. 미곡이 풍부한 이 시기를 잘 활용하시오.”

흉년이라 하였지만 조선은 비료를 사용하고 각지에 보를 축조하여 피해를 경감하다 못해 작황이 증가하였다. 효명세자의 말은 작황 증가를 30% 기대하였는데 20%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이고.

여기에 전쟁이 끝나고 일 년이 지나 경기가 활성화되니 곡식이 확 풀려날 시기였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 라는 말이니 이에 호응하여 말하였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사오나 이제는 산으로 배를 끌어올려 사람을 내려올 때가 되었사옵니다.”

“농 한번 잘하시는구려. 더군다나 아바마마께서 새 공주를 보신바. 이런 좋은 시기에 변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심혈을 기울이시오.”

“태자 전하께서 내려주신 명을 충실히 이행하겠사옵니다.”

효명세자도 30년 넘게 나이 차이가 나는 동생이 하나 생겨나서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더군다나 효명세자의 아내인 신정왕후의 회임 소식도 얼마 전 들려왔다.

아마 일준이와 나도 둘째를 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조정까지 나오니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서유구가 지나가듯이 말하였다.

“말이 쉽지 오십만 명을 어찌 다룰 수 있겠는가. 내가 알기로 지금까지 가장 많은 화전민을 보낸 것이 십만 명일세. 이 인원의 다섯 배를 어떻게 통솔하겠는가?”

“그야 분류를 하며 차근차근 사람을 선별하면 될 일입니다. 작년부터 이민아문의 관료들을 시켜 각지의 화전민들에게 소식을 전달해 두었지요.”

“가능한 일인가? 각 사단을 만들고 한양의 공장은 물론이요, 쌍성자에 이주시킨 화전민은 각 고을 인근에 있는 이들이라 하였네. 이제 남은 이들은 심산유곡 인근에 사는 화전민인데?”

“사람이 여럿 모이면 좋은 꾀가 생겨나게 마련이더군요.”

나도 생각하지 못한 꾀였지. 본래 작년부터 사람을 보내 화전민들에게 소식을 전하고 이들의 인구를 산출해야 하였는데 이 작업을 대신해 줄 사람들이 있었다.

서유구는 나에게 굳이 물어보지 않고 함께 화전민을 백성으로 만들 충청도 청주로 향하였다. 가장 먼저 화전민을 보낼 청주에는 이미 목사와 병사들, 그리고 지주들이 대기하다 서유구에게 인사를 올렸다.

“대감님을 뵙습니다. 그간 격조하셨습니까?”

“말년에 업무가 많아 여기까지 내려오게 되었지. 아직 사지가 멀쩡하며 눈이 탁해졌을 뿐이니 염려하지 말게.”

서유구는 화전민들이 사라진 산에 새로 만든 숲을 보며 잠시 감상에 빠졌다.

그러고는 진주 목사에게 나를 대신하여 보고를 듣기 시작하였다.

“청주 일대에 머물고 있는 화전민은 이만이천 명이 조금 넘습니다. 이들 가운데 이미 일만칠천여 명이 폐하의 명을 받아 청주로 내려오기로 정하였습니다.”

“일만칠천여 명이라 하였는가? 그러하면 청주 인근의 산이라는 산에서 모조리 내려온다는 소리가 아닌가?”

말이 쉽지 청주 인구의 1/3에 달하는 엄청난 숫자다. 서유구의 질문을 받은 목사가 고개를 끄덕였고 나에게 질문이 돌아왔다.

“이를 어찌 알 수 있었는지, 어떻게 소식을 전하였는지 참으로 궁금하군.”

“한효정(孝靖 - 한정교)이라는 젊은 관원이 좋은 방안을 마련했더군요. 앞으로 나와 보고를 올리게나.”

한 달 전부터 출장을 다녀온 한정교는 서유구의 앞에 나서서 인사를 올렸다. 한정교는 한눈에 보아도 장사꾼으로 보이는 사람들을 데리고 왔는데 이들에 대한 소개를 하였다.

“풍석(楓石 - 서유구의 호) 대감님을 뵙습니다. 화전민들에게 소식을 전달한 방법이 지극히 간단하고 효과가 좋았습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군. 저들의 손이 거칠고 옷에 하얀 얼룩이 묻어 있으니 소금장수와 젓갈 장수가 아닌가? 산에 사는 화전민이 꼭 필요한 물건이 소금이지.”

“옳은 말씀입니다. 제가 심산유곡을 어떻게 돌아다녀야 할지 고민하다 고용하게 되었지요. 그렇지 않아도 바다와 면한 고을에는 젓갈 장수가 넘쳐날 지경이었습니다.”

실제로는 한정교가 화전민에게 공문을 전달하는 업무를 처음 했을 때 늑대를 만나 호되게 당하였다. 듣자 하니 자신의 호위로 나선 사람이 열 명에 달하였는데 겨우 도망쳤다 하던가.

이후 업무를 차일피일 미루면서 농땡이를 피우기에 벌을 내리려 하였다. 이런 와중에 한정교가 술자리에서 만난 젓갈 장수를 통해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화전민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던 한정교와 젓갈장수는 심산유곡을 거니는 고난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다 화전민에게 주기적으로 젓갈과 소금을 전달한다는 말도 들었다.

이후 한정교는 화전민에게 물품을 판매하는 상인을 회유하고 이들을 연락 용도로 사용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농땡이를 피우다 성과를 거두었으니 상을 내릴 수 없었지만.

“화전민들이 청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예정대로 일천여 명에 달합니다!”

생각을 하던 와중에 군관의 보고가 들려왔다. 예전이라면 화전민을 몰아왔는데 이제는 연락을 받은 화전민들이 자발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이들도 여러 소식을 접하였으며 조선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고 청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 승리를 거두었다는 말을 들은 덕분이다.

촌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먼저 인사를 올렸다.

“심산유곡에서 하루하루를 먹고 살아가던 와중에 조정의 부름을 받고 응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모두가 조정의 뜻을 받들어 제대로 된 백성이 되고자 하니 굽어살펴 주십시오.”

“살던 땅을 버리고 이주에 나섰으니 참으로 놀라운 결단이라네. 이들을 온전한 백성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니 외무승지가 나서서 업무를 진행하게나.”

서유구는 이들을 어떻게 분류할지 궁금한 눈빛을 보내왔는데 모든 계획은 세워 두었다. 가장 먼저 나선 이들은 병사들인데 이들의 몸을 씻기고 새 옷으로 갈아입혔다.

튼튼한 공장제 면직물로 된 옷을 입은 사람들은 귀한 양목(洋木)으로 된 옷이라 중얼거렸다. 아마 영국에서 들어온 면직물이 공장제 면직물이라는 용어를 대체하였으리라.

여기까지는 기존의 화전민 대우와 별 차이가 없었으나 다음 과정에서 지방 지주들이 개입하였다. 청주에는 이미 면직물 공장 하나와 다른 공장 두 개가 들어설 예정이니 이들에게 간단한 시험을 실시하였다.

“자네들 모두가 북방으로 나아가 땅을 개척할 마음을 품지는 않았을 것 같군. 그러하니 손재주가 좋은 사람은 청주에 머물며 우리가 설립한 공장에서 일하게 하겠네.”

“공장이라 하셨습니까? 김을 뿜는 요괴와 전기라는 도깨비가 있는 곳 말입니까?”

“실제로는 증기기관이 돌아가고 발전기로 전구를 가동하지만 아무려면 좋은 일이지. 손재주가 부족한 사람은 공장에서 일을 해도 성과가 부족하게 마련이 아닌가?”

화전민 장정들과 아낙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모두 손재주가 필요한 작업이었다.

바늘귀에 실 꿰기, 이쑤시개 같은 작은 봉에 고리를 종류별로 꿰기 등등의 작업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걸 해서 뭘 알 수 있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우리가 입은 양목과 우리가 신은 가죽 신발을 만들 수 있는 공장 사람으로 뽑는다잖아? 더 이상 흙을 파먹지 않고 떼돈을 벌 수 있을 거야.”

“저는 도깨비가 가득한 곳에서 일 할 자신은 없는데요.”

애 어른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끼어들어 순차적으로 작업을 실시하였다. 정해진 시간에 얼마나 작업하는지를 기입한 서류가 작성되고 양반들은 상위권에 속한 이들을 선별하였다.

“자네의 손재주가 참으로 훌륭하군. 이 정도라면 공장에서 순식간에 적응하겠어.”

“그럼 청주에 남아도 되는 겁니까? 여보! 내가 해냈어! 해냈다고!”

시험에 합격한 장정은 아내와 아이들을 껴안고 방방 뛰며 좋아했다.

화전민에서 공장 노동자가 된 사람은 상위 10%인 백여 명이었다. 반면 시험에서 탈락한 화전민들은 정해진 대로 만주로 향해야 했다.

시험이 끝나고 다들 주린 배를 쓰다듬으며 식사가 언제 나오나 궁금해하였다. 이들을 위하여 움직인 사람은 얼마 전 청주에 정착한 청나라 요리사들이었다.

“자네들은 이제 청나라에서 얻어낸 땅으로 나아가야 할 사람들일세. 자네들이 갈 곳에 있던 청나라 출신 요리사들이 자네들을 대접하고 싶다 하더군.”

청주 목사의 명령을 들은 화전민들이 정해진 식당으로 향하였다. 호화로운 음식은 아니지만 일상적으로 먹는 중국 요리를 배식하였고 소면이 아닌 옥수수면이 나왔다.

만주 일대의 사람들은 옥수수로 만든 면을 자주 먹는데 이 요리를 배식한 것이다. 소면이 아닌 뚝뚝 끊기는 생소한 맛이었는데 거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니 쉽사리 적응하였다.

반면 서유구를 비롯한 관리들은 옥수수 면을 삼키며 생소한 맛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였다. 그러다 내 계획을 알아차린 서유구가 미소를 지으며 물어보았다.

“자네가 청나라의 요리사들을 먼저 들인 이유가 여기 있었군. 새로운 사람이 오면 음식을 대접하게 마련인데 이 자리에서 서로를 알아가게 마련 아닌가?”

“바로 보셨습니다. 화전민들이 아무런 경험도 없이 북변으로 나아가면 음식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할 일이 아닙니까? 미리 경험을 하여야 주는 음식을 잘 먹겠지요.”

“옳은 말이야. 서로 식사를 즐기면 대화를 나누지 못하더라도 친해지는 법이지. 그런 점에서 나도 청나라에서 이주한 사람들을 통솔하게 이런 음식을 즐겨야 할 것 같네.”

거의 모든 문화권, 북유럽의 삭막하고 냉정한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새 이웃이나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모든 문화권의 기초 상식이었다.

현대 한국조차도 이사를 오면 떡을 이웃들에게 돌리는 문화가 남아 있는 실정이며, 이 시대에는 새 이웃이 이사를 오면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대접하였다.

만주로 이주하는 조선 사람을 청나라 요리사들이 먼저 대접하기로 하였다.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수가 더 많은 화전민의 문화로 흡수를 촉진하기를 원하였다.

서유구는 사람들을 보며 평가하였다.

“잘 먹는군. 산속에서 살다 온 화전민들이라 식사를 너무 많이 하고 있어서 흠일 뿐이지만.”

문제가 있으니 화전민이 너무 많이 먹어 요리사들이 땀을 줄줄 흘려가며 음식을 만들었다.

그제서야 문화 차이를 알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음식을 배불리 먹고 남기는 내림상 문화가 있다. 대신 화전민들은 내림상에서 가장 아래에 속하니 계속 먹는 것이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청나라에서는 식사를 대접할 때 손님이 음식을 풍족하게 먹고 조금 남기는 풍습이 있습니다. 반면 이 나라에서는 주는 대로 먹는 풍습이 있지요.”

“그럼 화전민들이 배가 터질 때까지 먹거나 요리사들이 탈진할 때까지 음식을 요리한다는 말이 아닌가?”

서유구가 화전민들에게 이 내용을 알리라 하였고 마침내 먹는 자와 만드는 자의 팽팽한 접전이 끝났다.

이런 사소한 사건을 겪고 첫 분류가 끝났으니 다음으로 이주 작업이 시작되었다.

“오늘 시험에서 가장 손재주가 뛰어난 일 할의 사람들이 선발되었습니다. 나머지 분들은 북방으로 이주할 것이며 앞으로 오 년 동안 한 명당 다섯 석의 미곡과 생필품이 보급될 겁니다.”

내 말을 들은 화전민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격렬히 호응하였다. 소작농의 이주 조건은 명백한 ‘쌀’이었지만 화전민들은 조금 격을 낮추어 미곡이라 하였는데도 이런 반응이었다.

이들 입장에서는 험한 산에서 시달리다 새로운 땅을 개척하게 되어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겠지.

개중 촌장으로 보이는 화전민이 앞으로 나서서 질문을 하였다.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소작농들이 북방으로 이주할 때에 삼 년의 기한을 두고 미곡과 생필품을 보급할 것이라 하였는데 조건이 더 좋지 않습니까?”

“바로 보셨습니다. 여러분이 이주를 하면 처음 이 년 동안은 기차 노선을 만들고 각지의 마을과 제방을 건설할 것입니다.”

화전민들의 반응이 싸늘해졌는데 그럴 만하였다.

북방으로 이주하여 농사를 지으라고 하였으니 모두 스스로 땅을 일구어 농지를 만들 마음을 품었다. 이런 와중에 막노동을 하게 되었으니 억울하리라.

대신 화전민들에게 이득을 제공해야 하니 이들을 위해 설명을 하였다.

“기차는 석탄과 물을 먹고 움직이는 철로 만든 마차입니다. 한 번 움직이면 한양에서 의주까지 하루 동안 오갈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물건입니까?”

“그러하면 저희가 만든 기차 노선이라는 곳 인근이 저희의 땅이 되는 겁니까?”

“바로 보셨습니다. 기차에 석탄과 물을 보급하는 장소를 만들기 위한 고을이 여러분의 땅이 됩니다. 모든 노선이 소통하면 가장 먼 북방에서 동래까지 나흘이면 오갈 수 있습니다.”

화전민들은 상상하지도 못한 말을 듣고 눈을 껌뻑였다. 그도 그럴 만한 것이 동래에서 한양까지 파발이 올라오는 데 4일이 걸리는 시대이다.

이보다 두 배 이상 빠른 기차라는 물건이 지나갈 길을 만든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지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지나가듯이 조선의 상황을 말하였다.

“기차 노선은 한양에서 의주까지 뻗어있으며 이로 인하여 물자가 소통하고 사람이 오갑니다. 이제 서북(西北 - 함경도)의 사람들은 누구보다 부유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설명을 하였다. 한양에서 만든 물건이 다음 날 의주에 도착하며 각지에서 올라온 곡식이 흩뿌려져 구휼미라는 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말했다.

기차 노선을 만드는 작업은 고되다는 말은 분명히 하였다. 대신 새로 건설될 도시에 자리 잡으면 더 이상 중간 상인들의 수탈을 겪을 필요도 없이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다 하였고.

“그럼 다시 여쭈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만약에 말입니다. 저희가 배정받은 땅에 노선을 일찍 건설한다면 더 빨리 농토를 일굴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닙니까?”

“농토를 일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여기에 새로 설립될 공장에서 다시 시험을 볼 것이니 거기에 합격하시면 풍족한 농토의 곡식을 먹으며 공장 근로자가 될 수 있지요.”

그 과정에서 청나라 사람과 부대끼며 적응 과정을 거치고 겨울 추위도 견뎌야 하지만. 물론 험준한 산속에서 추위에 시달리던 화전민들은 이런 과정을 감당할 자신이 있었다.

더 이상의 질문은 없는 화전민들은 닷새 정도 휴식을 거치고 중병을 앓는 사람들의 장기 치료를 위한 가족을 남긴 채 한양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예정된 대로 다음 화전민이 몰려왔다.

“이번에는 좀 더 많은 이천여 명입니다!”

이미 남쪽에 있는 대전에서도 화전민 이주를 실시하여 군관의 인솔과 함께 한양으로 향하고 있었다. 목사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는 와중에 나는 서유구와 함께 한양으로 돌아가며 말하였다.

“이제 한양에서 재분류와 선별 그리고 이주를 실시해야 합니다. 서둘러 움직이시지요.”

“옳은 말이야. 앞으로 일이 번잡해질 것이니 어서 한양으로 올라가도록 하세.”

올해 50만 명의 화전민을 이주시킬 계획이었다. 여기서 5만은 각지에 설립될 공장 노동자로 배정하고 남은 15만 명은 한양부터 설립될 철도를 부설할 예정이다.

이 정도 인원을 다룰 수 있다면 3년 이내에 노선 두 개는 설립하고 남겠지. 수 없는 화전민들의 물결에 질린 백성들을 바라보며 나도 한양으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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