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 11장 5화 십시일반(2)
과학사를 뒤흔들 수 있는 화석을 발굴한 매리 에닝과 고생물학자들은 요동의 외곽에서 빠져나와 의주에 도달하였다.
의주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장우일이 쭈뼛거리며 말하였다.
“이 용의 이름을 무어라 명명할지 생각하여 보았는가?”
“용? 깃털이 있는데 용이 아니고 봉황이라 하지 않았나!”
다시 언쟁이 벌어지자마자 매리 에닝은 귀를 막으며 멀리 도망쳤다. 그녀는 열정적인 화석 발굴자였지만 화석을 발굴하는 일이 중요할 뿐 분류는 학자들의 일이라 생각하였다.
-이 친구가! 세상 모든 새들의 박제를 가져와 보게! 꼬리가 저토록 긴 새가 어디 있어!
-그럼 비늘 없는 도마뱀을 가져와 보게! 얼마 전 발굴한 거조(익룡)의 발자국을 보니 길고 가느다란 꼬리가 달린 새도 있을 수 있지 않나!
-그럼 저 머리를 보고 봉황이라 하는가? 부리는 어디에 달려 있는가?
기차가 도착하였음에도 아무도 탑승하지 않고 언쟁을 이어갔다.
의주역이 떠나가라 논쟁을 벌이니 역을 관리하는 병졸이 다가왔지만 격렬하기에 함부로 말릴 생각조차 못 하였다.
“내가 못 살아. 저런 사람들을 데리고 어떻게 발굴을 진행했담.”
영국의 학자들은 화석을 옛 생물의 짐승이라 생각하였지만 조선의 학자들은 달랐다. 그들은 자신들의 설화와 기록되지 않은 옛 역사와 결부하기 위해 잦은 언쟁을 벌였다.
요학자들이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산해경은 매리 에닝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괴담에 가까웠다. 그 과장된 기록을 보면 뮌히하우젠 남작(허풍쟁이 남작)을 주제로 삼은 소설 수준이었다.
언쟁이 벌어지고 1시간 30분이 지나가니 아예 언쟁을 들으려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심지어 군것질거리를 파는 좌판을 차린 사람마저 생길 지경이었다.
-저 용은 응룡(應龍 - 깃털 달린 용)이라니까!
-그럼 꼬리털이 아름다워야지 왜 시커먼 색인가!
이 이상 기차역에서 언쟁을 들으며 시간 낭비를 할 이유는 없었다.
매리 에닝은 설득을 포기하고 다음 기차에 발굴된 화석을 잔뜩 싣고 한양으로 도망쳤다.
“여러분! 제가 먼저 그랑제콜로 가서 화석을 보존처리 할게요!”
“알아서 하시오! 거 보게! 자네들이 주장을 그만두지 않으니까 여사께서 먼저 떠나시잖아!”
하루 내내 기차를 타고 한양으로 돌아온 매리 에닝은 화석을 즉각 그랑제콜에 운송하였다. 학과장에서 총장으로 새 직위를 받은 조일준은 이를 살펴보며 중얼거렸다.
“이건 또 뭔 놈의 물건이야?”
“총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옳아요. 세상에 이런 생물이 어디 있지요?”
“거대한 바퀴벌레 같은 생물이 머리에 포크 같은 뿔을 매달지도 않습니까? 일단 보존처리 하고 연구 논문도 작성할 준비를 해주십시오.”
매리 에닝이 피로를 호소하며 사라지자 화석 저장실에는 조일준만 남아 화석을 살펴보았다. 화학과라 하여도 과학 전반에 대한 지식을 갖춘 그의 입장에서 이 시대에 있어서는 안 될 물건이었다.
정확한 이름은 모르지만 현대 기준으로 비교적 최근에 발굴되어 과학계를 뒤집고 고고학자들의 생물 고증 논리를 뒤엎어 버린 공룡인 것은 알고 있었다.
-총장님에게 여쭈어보자고! 총장님이라면 결론을 내릴 수 있겠지!
밖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들리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조일준 애타게 찾았다.
요학자들의 열정을 잘 알고 있는 조일준은 이마를 감싸 쥐며 밖으로 나왔고 장우일이 두서없이 질문을 하였다.
“총장님! 봉황이 아니라 용 아닙니까? 용이 맞지 않습니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 보는 생물이 아닙니까.”
“그럼 알 때까지 토론을 지켜봐 주십시오! 당장 토론을 시작하겠습니다!”
다시 14시간을 이어진 토론 끝에 간혹 들러 진행과정을 살펴본 조일준조차 결론을 내리지 못할 정도로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모두가 파김치가 되자 조일준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화석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제가 보기에는 도마뱀으로 불러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정도 크기의 날개라면 새처럼 하늘을 날아다닐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조일준은 현대 생물 분류를 알고 있기에 악어와 조류를 한 종류로 묶고 나머지 파충류를 따로 분류해야 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한계상 자신의 지식을 모조리 털어놓을 수 없었다.
“역시 용이다! 용이라고 하셨어!”
“도마뱀입니다. 물론 용이라는 명칭도 나쁘지 않으니 옛 시대에 살던 포유류가 아닌 생물들을 통틀어서 공룡(恐龍)이라 하겠습니다. 모두가 두려워할 만한 짐승이라는 뜻을 담습니다.”
“그럼 날개가 달린 짐승은 봉황이 아니고…….”
“아직 연구가 덜 되었으니 익룡(翼 - 날개)이라 칭하겠습니다. 골격의 형태나 현존하는 조류와 다른 특성을 보면 더욱 많은 자료를 쌓아야 하지 않습니까?”
극성 중의 극성인 요학자들도 어느 정도 인정을 하였다. 아직 자료도 부족하며 공룡이라 명명된 짐승 중 몇 가지를 발굴하였을 뿐이니 할 일이 태산이었다.
조일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막 니켈 광석을 채굴하여 통조림을 비롯한 부식 및 변형 방지 금속을 연구하고 두랄루민의 연구도 한창 진행하고 있어서 시간이 부족하였다.
결국 학자들을 다시 돌려보낼 필요가 있었다. 마침 좋은 말이 떠오른 조일준은 당당하게 말하였다.
“과학의 완성을 위해서는 많은 연구가 필요합니다. 이를테면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는 말과 마찬가지지요. 여러분은 밥을 한 술 뜬 것에 불과하니 이제 한 술을 모으고 모아 끼니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훌륭한 말씀입니다. 더욱 정진하기 위해 푹 쉰 다음 이 화석이 발굴된 장소로 향하지요. 그럼 이 화석의 명칭은 무어라 하겠습니까?”
“깃털 달린 용이니 응룡이라 칭하겠습니다.”
용파도 봉황파도 서로 만족하여 그랑제콜 밖으로 나섰다. 마침 그랑제콜에 방문하기로 한 사람이 떠오른 조일준은 자기의 연구실로 돌아와 편지를 다시 확인하였다.
<그랑제콜 조선 분원에서 하응 리가 실시한 완두콩 연구를 직접 확인할 목적으로 방문하겠습니다. 이를 통하여 제 연구과정을 더욱 발전시키겠습니다. 찰스 로버트 다윈>
조일준은 기대 이상으로 빠르게 자신의 안배를 발견한 찰스 다윈에게 좋은 선물이 되리라 생각하였다. 그의 원대한 계획에 필요한 사람이 자신의 품으로 들어왔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계획은 과학의 체계적인 발전이었다. 세기의 과학자들이 자신들의 위업을 더욱 빠르게 완성시킬 수 있도록 기반 학문과 실험을 마쳐 안배를 뿌려두는 것이었다.
이 과정을 통해 우생학과 같은 인류에게 해악만 끼치는 학문을 배제하며 건전한 발달을 촉진하려 하였다.
* * *
한 달 뒤, 그랑제콜에 방문한 다윈을 맞이한 조일준은 악수를 청하며 말하였다.
명목상으로는 편입생이지만 많은 경험을 쌓은 사람이기에 교수들과 인사를 나눌 자격은 충분히 있었다.
“그랑제콜은 모든 과학자를 환영합니다. 조선에서 강의를 하시고 학문을 연구하시면서 이론을 정립하시지요. 본래 이론 하나를 정립하려면 십 년이 걸릴 수도 있지 않습니까?”
“참으로 감사합니다. 다만 제 능력이 부족하니 강의는 할 수 없고 입학시험을 보고 편입을 하겠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수학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서류를 보니 에든버러 의대와 케임브리지 신학과 입학 경력이 있는데 왜 시험을 보십니까? 객원 강사로 일하시면서 자유 연구를 실시하시지요.”
“닐슨 총장, 내가 알기로 객원 강사도 입학시험은 봐야 하는데.”
갈루아가 눈을 가늘게 뜨고 다윈을 노려보자 조일준은 고개를 흔들며 만류하였다. 화학과를 나온 조일준이지만 찰스 다윈이 수학을 지독히 못 한다는 소문은 들은 적이 있었다.
찰스 다윈이 가뜩이나 어려운, 현대 기준으로 고등학교 이과 2학년 수준의 수학 문제가 나오는 입학시험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결국 갈루아는 조일준에게 져주듯이 고개를 돌리며 말하였다.
“나는 수학의 기초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계산기 노릇을 하는 꼴은 혐오하네. 혹여나 수학과 관련된 지식을 쌓고 싶거든 강사 신분이라도 내 강의를 듣도록.”
갈루아를 비롯한 교수들은 다윈을 학부생과 강사 중간쯤 되는 뜨내기로 인식하고 건성건성 인사를 나누었다. 각 교수들의 소개가 끝나자 찰스 다윈은 본격적으로 질문을 시작하였다.
“닐슨 조 총장님께 여쭈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조선은 유럽과 교류를 시작하고 십 년이 지나지 않았다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인데 어찌 최첨단 과학을 다루는지요.”
“그야 각계각층에 묻혀 있던 인재들이 새로운 문물에 적응한 덕분이지요. 저 혼자서 한 일은 아니며 모두 충분한 지원금을 내려주시는 폐하와 이에 응하는 사람들이 있어서입니다.”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로군요.”
실제로는 거짓말이었다. 그랑제콜은 순조의 지원금을 넘어설 정도의 특허료와 각종 물자를 생산하여 연일 흑자를 경신하며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었다.
여기에 세계 각국의 천재들을 모아 여러 안배를 흩뿌려 놓으니 천재들을 육성하는 장소라 여겨지리라.
찰스 다윈이 간절한 눈빛을 보내자 조일준은 원하는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여기는 제 연구생인 석사과정 이수자 흥선도정 이하응과 학부생인 루이 파스퇴르 그리고 장 앙리 파브르입니다. 서로 인사라도 나누시지요.”
남성 탈모로 앞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한 찰스 다윈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이하응의 손을 맞잡았다. 그러더니 속사포같이 말을 퍼붓기 시작하였다.
“조선의 왕족이신 하응 리의 칼럼을 영국에서 확인하였습니다. 대체 어떤 방식으로 이런 기묘한 연구를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총장님께서 저에게 벌을 내리셨지요. 제가 졸업 논문 겸 연구과제 발표에서 사고를 친 바람에…….”
조일준이 방 밖으로 나가자 이하응은 완두콩이 담긴 통을 꺼내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그동안 완두콩만 재배하지 않고 각종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하나같이 고된 작업이었다.
이하응의 고된 대학원 생활을 돕는 사람은 학부생인 파스퇴르와 파브르였다.
지난 2년 6개월 동안 온실을 이용해 가며 총 7회를 재배한 성과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였다.
“총장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미 형질을 정해놓은 완두콩이니 서로 섞이지 않게 재배하라 하였습니다. 각기 마흔 알에 불과한 완두콩을 온실에 넣고 재배하였지요.”
“보통 노력이 아닐 것 같습니다. 완두콩 꽃은 아주 작으니 어떻게 이를 접붙이셨습니까?”
“그야 장 덕분이지요. 누구보다 집중력이 뛰어나고 세밀한 손놀림이 장기입니다.”
조일준이 무심코 추천하였지만 이하응과 파스퇴르, 그리고 파브르의 조합은 조선에서 꾸릴 수 있는 연구진 가운데 최고의 조합이었다.
이하응은 왕족으로서 학문의 길을 걸으며 종친의 본보기를 보이려 하였다. 그의 입장에서 두 학부생의 성과를 질시할 이유는 없으며 오히려 자신의 통솔로 재주를 드러내게 되었다 자랑할 사람이었다.
파스퇴르는 엄청난 직관력과 폭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이하응이 분류한 완두콩의 형질을 수학적으로 계산하여 우성-열성 형질의 규칙을 파악하였다.
마지막으로 파브르는 재주는 조금 부족하였지만 끈기와 열정이 가득하였다. 말년에 남프랑스의 황무지에서 묵묵하게 곤충을 연구하던 자질을 젊은 시절에도 보여주었다.
셋의 자기소개를 들은 찰스 다윈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이하응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자신이 원하는 연구에 대해 말하였다.
“저는 이 자리에서 이론으로 말씀드릴 수 없지만 자연을 극복하는 생물의 원리를 분석하고 싶습니다. 이를 통하여 자연을 극복한 종이 변화하는 과정을 연구하려 합니다.”
“자연을 극복하는 생물의 원리를 분석하신다. 그거참 재미있는 말씀이로군요.”
이하응이 슬쩍 웃으며 루이 파스퇴르를 바라보자 파스퇴르는 다시 파브르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장, 사람들이 와서 다짜고짜 식물과 가축의 수확량을 증가시키는 교배 방법에 대해 물어보았던 거 기억나? 그때 우리가 밤을 지새우면서 설명을 했었지?”
“농사지어 보지 않은 사람이 농사에 대해 끝도 없이 물어보았잖아.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머리가 다 아프다. 우리가 이 년 넘게 연구한 걸 하루 만에 알아내려 하다니.”
“그래도 네 덕분에 위기를 넘겨서 다행이야. 나야 무두장이집이라 농사에 대해 몰랐지만 장 네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서 돌아갔잖아.”
어린 시절을 찢어지게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자란 파브르는 파스퇴르의 옆구리를 찌르며 왜 그런 말을 하냐는 듯이 째려보았다. 프랑스어를 어설프게 알아차린 다윈은 손뼉을 치며 말하였다.
“생각해 보니 제 이론에서 자연과 대체할 만한 대상이 있기는 하군요. 인간이 기르는 가축은 인간이라는 환경 요소에 적응하기 좋은 유리한 형질을 대대손손 물려받지 않겠습니까?”
“인간이 환경 요소라. 틀린 말은 아니군요.”
“참 옳은 말입니다. 영길리에서 들여온 레그혼이라는 품종이 조선에서도 기세를 불리며 알을 낳고 있지요. 조만간 인간이라는 환경에 의해 닭의 품종이 뒤바뀔 것 같습니다.”
다윈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이하응과 파브르였지만 파스퇴르는 골똘히 생각하였다. 그러더니 찰스 다윈이 아직 입 밖에도 내지 못한 진화론의 핵심을 파고들었다.
“찰스 다윈 강사님에게 여쭈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혹시나 주님의 창조물인 인간 또한 환경에 적응하여 이러한 모습이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파스퇴르는 독실한 신자였으며 찰스 다윈 또한 딸인 애니 다윈이 죽지 않아서 신앙심이 깊었다. 파스퇴르를 한참 동안 바라본 다윈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부정은 하지 못하겠군요. 저 또한 독실한 성공회 신자이며 사람은 주님의 창조물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학문의 발전과 이론의 완성에는 종교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혹여나 사람이 주님의 창조물이 아니고 오랑우탄이나 원숭이 같은…….”
“더 이상 종교에 관련된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여기가 성당이 아니지 않습니까?”
파스퇴르와 다윈이 과열될 분위기를 감지한 이하응이 둘의 싸움을 만류하였다. 이미 천주교를 비롯한 서양의 종교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이하응은 다윈에게 권유하였다.
“설령 이론을 완성하더라도 남은 평생을 교회 관계자와 싸우며 보내야 할 겁니다.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찰스 다윈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파스퇴르는 이하응의 결정에도 불만을 표시하려 하였지만 문밖에서 바라보는 조일준의 시선을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싸늘한 분위기가 이어지자 찰스 다윈이 견딜 수 없다는 듯이 열 살 넘게 어린 파스퇴르와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결국 조일준이 들어와 둘의 사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파스퇴르 자네의 신앙심은 천주교 신자인 나 또한 잘 알고 있지. 인간이 원숭이의 후손이라는 결과가 나와도 결국 세상의 근원은 이를 창조하신 주님이라 생각하면 되겠지.”
“아무리 총장님이라도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이미 조각이 하나씩 맞춰지기 시작했으니 그 결과를 정리하여 올바른 이론으로 완성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론이 잘못되었다고 결과를 조작하는 것은 그른 일이지.”
파스퇴르의 거만한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조일준이 이런 성격을 교정하려 하였지만 간혹 이렇게 날이 선 태도를 보였다.
파스퇴르는 자신에게 수많은 학문을 가르친 조일준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자신의 뜻을 접으며 말하였다.
“총장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다만 저는 찰스 로버트 다윈 강사님의 연구에는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겠습니다.”
“좋은 말이야. 차라리 다른 연구는 어떠한가? 이를테면 얼마 전 영국으로 돌아간 로버트 리스턴의 소독 이론에 대한 분석이 있지. 신형 현미경으로 이를 연구해 보도록.”
졸지에 연구과제 하나를 더 떠맡게 된 이하응이 한숨을 쉬었지만 어떻게 보면 강사와의 싸움을 회피할 수 있으니 잘된 일일지도 몰랐다.
조일준은 다윈의 등을 두드리며 권유했다.
“얼마 전에 요동에서 들어온 좋은 물건이 있으니 한 번 감상하시는 것이 어떠십니까?”
“요동에서 들어온 좋은 물건이라니요?”
종종걸음으로 조일준을 따라온 찰스 다윈은 전용 전시실에 보관된 화석들을 살펴보았다. 불이 켜지자 수많은 화석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개중 한 화석이 눈길을 끌었다.
“이 화석은 뭡니까? 제가 화석은 몇 번 보았지만 색이 남은 화석은…….”
“흔치 않지요. 저는 응룡이라 명명하였는데 얼핏 보면 도마뱀이 새로 변화하는 과정을 나타낸 것 같지 않습니까?”
이 외에도 볼거리는 많았다. 매리 에닝이 분류한 삼엽충의 화석은 돌기가 생겨나고 뿔이 돋으며 삼엽충 특유의 안구 구조가 점차 정교해지는 과정을 담고 있었다.
어느새 화석에 대한 분석을 시작하는 찰스 다윈을 내버려 둔 조일준은 복도로 나왔다. 성격이 영 좋지 않은 루이 파스퇴르를 떠올린 그는 슬쩍 웃으며 중얼거렸다.
“둘 다 종교와 정면 승부를 벌여야 할 인재들인데 지금부터 싸우면 쓰나.”
조일준이 뿌려둔 연구과제는 제법 많았다.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맥주 효모를 개량하고 소독과정을 통해 자연발생설을 반박할 증거를 마련한 사람이 루이 파스퇴르였다.
진화론이나 세균 이론 모두가 조일준이 담당할 수 없는 연구였다.
설령 결론을 내놓는다 하여도 수십 년 동안 종교인이나 새 이론에 반발하는 과학자들과 언쟁을 벌여야 하리라.
이런 과정의 결말은 조일준 입장에서는 연구도 못 하고 알고 있는 이론을 되새기는 행위였다.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본래 역사에서 이론을 발전시킨 천재들을 모집하려 하였다.
이들은 조일준이 뿌려둔 논문과 칼럼 그리고 각종 발견을 차례차례 섭렵하며 자신의 이론을 더욱 빠르게 내놓을 예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