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11장 1화 동상이몽
임칙서의 죽음은 다음 날 공표되었다. 공식적인 사인은 과로사이며 주변의 사람들은 잠조차 제대로 자지 못하고 피로에 시달리다 숨을 거두었을 것이라 증언하였다.
도광제는 이 소식을 듣고 한나절 내내 집무를 중단하고 침묵하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임칙서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이번 일을 시행한 환관과 대화를 나누었다.
“짐이 조금 더 빠르게 행동했어야 마땅하구나. 좋은 약을 내렸음에도 약을 내린 날 밤에 절명하였으니 이는 짐의 잘못이기도 하다.”
“아니옵나이다. 황상께서 하해와 같은 은혜를 내렸으나 시기가 옳지 않았을 뿐이옵니다.”
“시기가 옳지 않았다고? 조금 더 빠르게 행동함이 옳다는 말이더냐.”
도광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틀리지 않다 생각하였다. 일은 완벽하게 처리되었으며 궁궐에서 임칙서의 집으로 하사된 약은 보약으로 기록되었다.
여기에 도광제가 투구꽃을 응축한 환약을 함께 하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환관은 임칙서의 집에 들르기 직전에 도광제의 명령에 따랐으니 임칙서가 죽음을 택한 것이다.
임칙서가 죽음을 택하지 않았다면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역모 혐의를 씌워 처형하고 가족들도 모조리 죽여야 했으리라.
임칙서의 가족들이 떠오른 도광제는 환관에게 질문을 하였다.
“내 임칙서의 장남이자 한림원 학사인 임여주(林汝舟)에게 명을 내려 산해관 일대를 시찰하라 한 것이 떠오르는구나. 임여주가 얼마 뒤에 올 것 같더냐.”
“여드레 정도 뒤에 당도할 것이라 하였습니다. 집안의 하인 또한 기력이 쇠한 노복(老僕) 한 명을 제외하고는 임여주를 돕기 위해 산해관으로 향하였사옵니다.”
“나머지 가족들은 임칙서의 본관인 복건 일대에 있겠지. 가족에게 소식을 빨리 전하도록 하고 시신이 더운 여름에 부패하지 않도록 온 힘을 기울여 염습하도록 하여라.”
철저히 도광제의 명령으로 계획된 일이기에 증거 인멸도 쉬웠다. 기껏해야 늙은 종 한 명이 힘을 써보았자 수상한 정황이 느껴졌다고 말하리라.
물론 한 나라의 황제인 도광제는 여기에 대처할 수단도 충분히 마련해 두었다. 환관에게 더 내릴 명령이 없나 고민하던 도광제가 손짓을 하며 명을 내렸다.
“짐의 심사가 매우 불편하니 물러나도록 하여라.”
환관이 물러나자 도광제는 임칙서의 행동을 떠올리며 다시 고민하였다. 이미 끝난 일이지만 임칙서를 죽이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아직도 후회하고 있었다.
임칙서는 분명 올바른 행동을 하였다. 자신에게 전권을 위임받았으니 지방을 통솔하고 외적의 침입을 막아내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문제는 팔기군이 조선에 패배하였으며 임칙서가 팽팽히 맞서 싸웠다는 점이다. 또한 조약을 맺으며 조선의 제안을 모두 수용하고 영국의 제안을 대부분 거부하였다.
얼핏 보기에는 임칙서의 활약으로 영국의 조약을 폐기하고 팔기군의 추태로 조선의 굴욕적인 강화 조건을 모두 수용한 것이다.
도광제는 이를 생각하며 혼잣말을 하였다.
“병장기를 수입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황군이 무너지는 가운데 광주 일대를 수호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한족과 객가를 동원하여 사병(私兵)을 훈련시키지 않았더냐.”
도광제의 자기합리화가 시작되었다. 임칙서의 입장에서는 팔기군의 호응이 없어 지방의 한족들을 소집하였으나 청나라의 지배층인 만주족이 보기에는 반역 행위였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으나 중요한 것은 그다음 행동이었다. 도광제가 개혁의 뜻을 보이며 임칙서를 중용하였으나, 그는 개혁의 핵심 동력인 팔기군 제도를 폐지하려 하였다.
물론 모두 폐지할 생각은 아니고 기존의 팔기군을 우대하되 철저한 실력제도와 서양의 훈련을 도입하자는 말이었다.
도광제는 이를 떠올리고 눈을 비비며 고뇌하듯 말하였다.
“더군다나 팔기군을 이십 년 이내에 해체하자 제안했는데 무슨 꼴이 나겠느냐. 한족이 수를 앞세워 새로운 병기를 동원하면 입에도 담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도광제는 이미 임칙서를 의심하고 있었지만 팔기군을 해체하여 개편하자는 주장으로 의심이 더욱 커졌다. 만주족이 가지고 있는 특혜가 사라지면 나라가 붕괴할 것은 불 보듯 뻔하였다.
물론 실낱같은 가능성은 있었다. 임칙서가 정말 청나라의 미래를 생각하여 아무런 사심 없이 순수한 충성심으로 이런 제안을 하였다면 받아들일 가치는 있었다.
그런 충성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장 일인지하 만인지상, 사실상 나라를 개혁할 최고 중신으로 삼아야 하리라.
문제는 도광제가 임칙서의 충성심을 알 방법이 없었고 의심을 하였다. 귀양을 보내려 하였지만 잘못하다가는 객가의 협력을 받아 남부의 군벌이 되고 반기를 들 것이라 생각하였다.
도광제는 임칙서의 제안서를 받아들고 말하였다.
“지금까지 보여준 충심을 감안하여 짐이 이 개혁을 수행하겠노라. 다만 십 년 이내에 군제를 개혁하고 이십 년 뒤 완전 개편하여 조선을 압박하라는 말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구나.”
도광제는 조선이 획득한 영토의 크기를 감안하면 이를 정비하고 소화하는데 20년은 족히 걸릴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니 천천히 개혁을 진행하면 조선을 압도할 자신이 있었다.
반면 임칙서는 조선이 새로 얻은 북방 영토를 흡수하는 시간이 10년 이내일 것이라 예상하였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이라는 말이 떠오른 도광제는 대전으로 향하여 명령을 내렸다.
“군기대신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나게 되었으니 참담한 일이로구나. 짐이 아끼고 보살피던 신하가 세상을 떠났으니 정중한 예를 치러야 하지 않겠느냐.”
“실로 그러하옵니다. 황상께서 이토록 진중히 대하시니 세상을 떠난 임칙서도 심히 만족할 것이옵나이다.”
도광제는 임칙서를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고 변명하듯이 최고의 예우로 장례를 치러주었다. 임칙서에게는 시호로 문충(文忠)을 하사하였으며 궁중의 사람들을 보냈다.
이 과정에서 철저한 수색이 동반되었다.
명분이야 충신인 임칙서가 사용하던 물품을 황제가 보관하여 그를 기리겠다는 말이었지만 대부분의 물품이 압수되었다. 늙은 하인은 여기에 태연하게 응하였지만 속은 들끓고 있었다.
임칙서가 죽은 날 밤에 저택이 떠나가라 웃은 것도 수상하였는데, 황궁에서 사람을 보내오니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주인어른께서는 살해당하신 것이 분명해. 그토록 정정하신 분이 어찌…….”
늙은 하인은 임칙서의 입안에 있던 팽(烹)이라 적힌 종이와 홍수전에게 보낼 편지를 가지고 있었다. 이를 당장 임칙서의 아들에게 전하려 하였으나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임칙서가 죽었으니 자녀와 친인척에게 예우를 가장한 감시의 손길이 뻗치리라. 자신도 늙고 병들은 하인이라 감시의 눈길을 피했을 뿐 편지를 보내면 단번에 주검이 되리라 생각했다.
도광제는 임칙서의 주변 인물을 소집하였다. 아내는 물론이요, 휘하에 자식이 다섯이나 있었고 이들의 사위나 처가도 있었다.
도광제는 임칙서를 그리워하는 것처럼 이들에게 관직을 하사하였다.
“임칙서의 장남 임여주에게 태원(현 타이위안)의 첨사 직위를 내리노라. 삼년상을 일역월제(以日易月制 - 한 달을 하루로 계산함)로 하여 속히 치르고 부임하도록 하여라.”
“황상께서 하해와 같은 은혜를 내리셨으니 이를 어찌 감당할지 모를 일이옵나이다.”
어린 자식조차 관직을 수여받고 하인들마저도 궁궐에서 일할 길이 열렸다. 자신이 독 안에든 쥐 신세가 될 것이라 염려한 늙은 하인은 감시를 피하려 고민하다 청을 하였다.
“소인은 늙고 병약하여 궁궐에서 일을 하지 못할 것이옵나이다. 청이 있사오니 어르신의 묘소를 북경에 두며 소인을 묘지기로 삼으시옵소서.”
“지금 뭐라 하였는가? 선친께서는 복건에서 태어난 사람이니 복건에 묘소를 두어야 하거늘!”
임칙서가 태어난 고향에 묘를 만들려 한 임여주가 화를 내며 늙은 하인을 노려보았다. 이러한 엉뚱한 제안에 오히려 도광제가 나서서 칭찬을 하기에 이르렀다.
“충신인 임칙서의 묘소를 북경에 두고 사람을 보내 간혹 제사를 올리도록 하겠다.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나 짐은 임칙서의 충정을 잊지 않을 마음이 있노라.”
도광제의 입장에서도 좋은 제안이었다. 묘가 북경에 있다면 자식들이 주기적으로 제사를 올리기 위해 방문한다. 여기서 수상한 정황이 보이면 즉각 제거할 수 있었다.
늙은 하인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절을 올렸지만 속으로는 도광제에 대한 분노로 들끓어 올랐다. 이 태도를 보니 도광제가 임칙서를 살해한 것은 확실하였다.
물론 이를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임칙서의 자식들은 물론 친인척들은 철저한 감시를 당할 것이 분명하니, 그저 앓는 속을 달래기 위해 지나가듯이 중얼거렸다.
“언젠가는 대인의 원한을 풀어줄 수 있는 귀인(貴人)이 나타나리라. 그렇지 아니하면 이 세상의 이치가 틀려먹은 것이지.”
그 귀인은 광주에서 임칙서의 사망 소식을 듣고 하늘이 떠나가라 통곡하며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모든 일이 정리되고 수상한 정황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도광제는 임칙서의 개혁을 수정하여 첫 명령을 내렸다.
“듣자 하니 조선에서는 전신이라 하여 신비한 기물로 즉각 신호를 보낸다 하였다. 기존의 기마로 전하는 서신을 대체할 수 있으며 운하를 통한 서신보다 빠를 것이니 이를 도입하라.”
“명을 따르겠사옵니다.”
“또한 서역과 조선에서는 철마(鐵馬)라 하여 쇠로 만든 마차를 동원해 수많은 짐을 빠르게 옮긴다 하였다. 마차를 대신할 수 있으니 이를 도입하면 아주 좋을 것 같구나.”
도광제의 인식은 단순하였다. 서역의 기술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있으며 여기에 필요한 사회적 제도의 변화나 교육에 대한 고려는 없었다.
그저 전신을 도입하면 소식을 전하는 병사를 아낄 수 있고 철도를 도입하면 운송에 쓰이는 병력을 줄일 수 있다 생각하였다.
임칙서는 팔기군을 개편하라 하였지만 도광제는 지방의 군졸을 개편하려 하였다.
이렇게 기존 사회 질서를 무시하고 아무런 고려도 없이 받아들이는 기술은 조선 입장에서도 어처구니없는 요청으로 받아들여졌다.
* * *
청나라에서 종전 협상 1주년이 지나기도 전에 각종 문물에 대한 수입을 요청하였다.
효명세자는 처음에는 반대하려 하였으나 다른 신료들의 제안을 듣게 되었다.
“이 나라에서 기술을 도입하지 않으면 결국 서역의 기술을 수입할 것이옵나이다. 아직 서역의 기술이 우수하니 이 기회를 틈타 더 많은 물건을 만들어 갈고닦으시옵소서.”
“그러하면 성능을 낮춘 물품을 보내면 어떠하오? 청나라는 대국이니 이 나라의 온전한 물품을 도입하여 더욱 앞서나갈 것이 심히 염려되는구려.”
“잘못된 일이옵니다. 청나라의 사람이 의심을 하여 서역의 물건을 수입하거나 다른 경로로 기물을 수입하면 차이를 알 것이옵니다. 모든 거래에는 신뢰가 중요하옵나이다.”
내가 굳이 나설 필요도 없었다. 청나라를 더 이상 상국으로 모시지 않았지만 대등한 외교관계를 맺은 국가이며 함부로 속이면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게 마련이었다. 그러니 물건만큼은 제대로 제공해야 했다.
내가 정리하여 올린 청나라의 요구사항을 다시 확인한 효명세자는 신료들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다시 보니 청나라에서 요청한 것이 너무 많기도 하고 너무 적기도 하여 문제요. 전신을 시작으로 기차와 증기기관의 도입을 청하였는데 여기에 필요한 물건을 고려하지 아니하였소.”
“설마 전신에 쓰일 전지를 충전할 발전기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이시옵니까? 더군다나 기차는 노선이 중요하며 각 역에서 석탄과 물을 공급해야 하옵나이다.”
“그러한 내용은 없소. 우리에게 대등한 형제국이라 칭하며 정중하게 권유하였지만 조선이 알아서 기술을 제공하면 합당한 가격을 치를 것이라는 말 외에는 없었소이다.”
현대를 기준으로 말하자면 돈 많은 졸부가 ‘요즘 전기차가 유행한다던데 별장에 알아서 설치해 줘.’라는 식으로 업자에게 충전소와 전기차를 구입하는 격이다.
다만 졸부에게는 운전면허가 없으며 별장에는 이를 감당할 설비도 없어서 전신주부터 설치해야 하는 수준이다.
결국 한도 끝도 없이 예산이 늘어나는 주제에 애물단지만 되리라.
조선의 힘으로 드넓은 중국 대륙에 전신과 철도를 설치할 수도 없다. 조선이 일부를 부설하고 나머지는 청나라 관료가 일임해야 하는데 엉망진창으로 시공하고 관리하리라.
이런 점을 고려해 보았을 때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였다. 조금 귀찮은 일이 되겠지만 기술을 쌓을 기회라 감안하고 이 해외수주를 받아들이기를 요청하였다.
“신 박현상 아뢰옵나이다. 합당한 가격을 치르는 고객을 받아들이는 것이 올바른 일이옵니다. 하오니 조차지로 할양받은 청도와 상해를 시작으로 전신과 철도를 부설하시옵소서.”
“그러하면 청도와 상해를 시작으로 이 나라의 사람들이 부설 작업을 시작하되 청나라의 기술자들에게 시공 방법을 전해주라는 말이군.”
“실로 그러하옵니다. 이 나라가 전신과 철도를 사용한 것은 서역에 다녀온 사람들이 배움을 퍼트린 덕분이옵니다. 이러한 고려가 없다면 보도(寶刀)를 들어도 쓸 수 없듯이 애물단지만 될 것이옵나이다.”
본래 역사의 양무운동보다 20년이 빠르고 20배는 비효율적인 짓이었다. 제대로 된 실무진을 구성하여 양무운동을 실시해도 실패를 하였는데 성공할 리가 있는가.
전신? 부설이야 제대로 할지 모르겠는데 전신은 두꺼운 구리선을 사용하니 도둑들이 잘라갈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여기에 납 축전지는 어떻게 사용할 생각인지 궁금하다.
철도? 철도는 효율은 좋지만 예산을 한없이 잡아먹는다. 기차를 계속 수리하고 석탄과 증기를 일으키기 위한 급수탑을 설치하여 이를 관리해야 한다.
기껏해야 일부 구간이 정상 가동되고 나머지는 신나는 부정축재의 장이 되어 뇌물 축제를 벌이리라.
효명세자는 애물단지라는 내 말을 곱씹고는 명을 내렸다.
“선물을 하나 더 제공하면 더욱 좋겠구려. 그랑제콜 부설 공장에서 사용하는 방적기를 몇 대 만들어 청나라에 보내면 더욱 큰 신뢰를 얻지 않겠소.”
“그 방적기를 사용할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참으로 궁금하옵니다.”
에이다가 만든 자카드-에이다 방적기는 이 시대를 뛰어넘은 물건이지만 시대를 뛰어넘은 만큼 문제가 있었다. 고장도 자주 일어나며 숙련된 기술자가 없으면 제대로 쓰지도 못한다.
효명세자의 명을 받아 그랑제콜에 부설된 공장으로 가니 오늘도 신나게 방적기가 돌아가고 있었다.
이 소리 속에서 에이다가 공구를 들고 방적기를 분해하며 말했다.
“제가 분명히 말했잖아요! 80수 원단을 사용할 때에는 저장기능을 꼭 비워두고 두 번에 걸쳐서 입력하라고! 80수 원단 두 개를 엮어 40수로 만드는 것과 80수 원단은 다르다니까요!”
“죄송합니다. 제가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아직도 감이 안 잡혀서…….”
고래 기름 윤활유와 검댕 그리고 옷감 파편을 온몸에 묻힌 에이다는 땀을 수건으로 닦아내며 기계를 고쳤다.
다시 철컹거리며 가동하는 방적기를 확인한 에이다는 나에게 하소연을 하였다.
“방적기를 만들었는데 이걸 평범한 사람은 제대로 쓸 수 없다니! 눈물이 다 나요.”
“지금 욕을 먹은 기술자는 그랑제콜 졸업생이 아닌가요? 대학 졸업생이 평범하다니요?”
“그럼 조금 머리가 좋은 사람까지는 쓸 수 없다 해야겠네요. 이 방적기를 영국과 프랑스에도 만들었는데 고치는 데 한 세월이라 세 대만 작동한다 하던데요?”
자카드-에이다 방적기는 영국 출신인 에이다가 설계하였으니 설계도를 공개하였다. 문제는 너무나 복잡한 기계라 세계 유수의 석학들도 수리하는데 뇌가 터질 지경이라 하던가.
이런 기괴한 물건을 청나라에 보내면 처음 몇 달 정도는 좋다고 사용하다가 죄다 고장 나서 수리를 위해 돌아오거나 아예 기술자를 파견해야 하리라.
이 과정에서 정보도 얻어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