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09화 (109/345)

109. 10장 5화 농가월령가

양주향교에 모여 세상의 정세를 논하는 양반들은 오늘도 줄담배만 태우며 불만을 삭여나갔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이들은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대하여 논하였다.

그런 즐거운 분위기는 조정의 정책 한 번에 무너져 내렸다. 모내기가 끝난 논을 바라본 양반은 재떨이에 담뱃재를 털어내고는 다시 담배를 곰방대에 재워 넣으며 말하였다.

“왜 다들 말이 없나? 소작농 가운데 여섯 가구가 빠져나가서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인데 자네들은 나보다 형편이 나은 상황 아닌가? 뭐라고 말이라도 해보게.”

충주의 민치일처럼 불법을 자행한 자들은 벌금은 물론이요, 모든 소작농이 빠져나가고 조정에 땅을 절반이나 팔아치워야 하였다. 이는 양반들 입장에서도 욕을 들어도 싼 일이었다.

반면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 계약을 준수하였어도 소작농이 떠나가는 경우가 있었다. 사람대접을 안 하거나 험한 일을 떠넘기는 지주 아래의 소작농들도 이민아문에 설득당한 것이다.

결국 전국 대다수의 지주들은 소작료를 3할 초반으로 낮추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도 태연한 자가 있었으니 정약용의 자택과 토지를 물려받은 유산(酉山) 정학연이었다.

“그러기에 소작농들을 대접하라 하지 않았는가. 자네는 박가 놈아 최가 놈아 하면서 놈 자를 붙이니 말이 씨가 되어 만주로 이주를 결심하였지.”

정학연의 말을 들은 양반은 제법 비싼 성냥을 쓰려다 돈을 아끼려고 집게로 화로에 있는 불똥을 집어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며 짜증을 한껏 부렸다.

“관리? 관리가 뭔 필요가 있었나? 소작농들이 대대손손 땅을 부쳐 먹고 살고 우리는 대대손손 땅을 내어주고 살았지? 이제는 소작농이 멋대로 자리를 떠날 길이 열리지 않았는가?”

“그럼 내 집에 있던 소작농들이 떠나가지 않은 이유를 알고 있는가?”

“그야 유산 자네의 부친께서는 조정의 중신이시며 재산도 많아 소작료를 삼 할로 유지하였으니 가능한 일이지. 그런 자네라 하여도 피해가 없을 것 같나?”

이민아문에서 수립한 정책을 경험한 양반계층은 극도의 위기감을 느꼈다. 지금까지 효명세자의 주도로 이루어진 정책은 이득과 손해를 따졌을 때 결국 양반계층의 이득이 되었다.

새로운 세금 제도는 세금을 늘렸지만 비료를 공급하며 이득을 주었다. 소작농의 소작료를 4할 이하로 제한하여도 조세제도의 개량으로 손해를 덜어주었다.

반면 만주를 개척할 사람을 빼앗아가는 정책은 아무것도 돌려받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양반들은 앞으로 많은 인력을 소모할 공장을 세울 예정이었다. 공장은 농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력이 필요하였다.

양주에 세워질 피혁 가공공장에 필요한 인력을 계산한 양반들은 담배를 깊게 피우고는 말하였다.

“내 말도 그 말일세. 조만간 우리가 출자한 자금이 모여 이 양주(楊州 - 현 남양주)에 공장을 두 개나 설립할 예정인데 공장 노동자를 빼앗아갈지도 모르지 않나.”

“전하…… 아니지, 폐하께서는 만주의 드넓은 땅에 공장을 세울 수도 있다네. 그렇게 되면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조금만 대접이 시원치 않아도 이주할 것 아닌가.”

“그렇다고 조정의 뜻을 막을 방법도 없지. 폐하께서 손수 친정을 나셔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니 명분이고 뭐고 소용도 없어.”

“자네는 일전에 도성에 올라가 청나라와의 의리를 논하며 상소를 올리지 않았는가?”

정학연이 도성에 올라가 상소를 올렸던 양반을 쳐다보며 말하자 부끄러움에 눈조차 마주치지 못하였다. 그러고는 더듬거리며 억지로 변명을 쥐어짜 말하였다.

“그, 그, 그야 나라가 급변하니 청나라와의 관계가 틀어질지도 모른다 생각하였네. 청나라는 오랑캐인데 당시에는 힘이 강성하다고 생각하였으니 충언을 올린 셈이지!”

“아무리 보아도 변명이지만 이해는 하겠네. 눈앞에서 이득이 사라질 것 같은데 사람이 말도 안 되는 명분을 앞세워 움직일 수도 있는 법이지. 암 그렇고말고.”

“이러다가는 뭘 해보지도 못하고 기가 꺾여서 촌구석의 지주 노릇이나 할 상황이 아닌가. 그렇게 비꼬지만 말고 뭐라도 대책을 논하여 보세나.”

전쟁을 통해 막대한 권위와 이보다 더 많은 금은보화를 얻어낸 순조를 제지할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여기에 조선은 만주와 요동을 확보하였다.

이론상의 일이지만 조선의 모든 사람들을 이주시켜도 남을 토지가 왕실 소유가 되었으니 인구를 얼마든지 빼낼 수 있었다.

양반들이 세운 공장에서 불법을 저지르면 공장 인부들이 바로 만주로 이주할 것은 불 보듯이 뻔했다.

이 사태를 헤쳐나갈 방법을 모색하던 양반은 짜증을 내며 말하였다.

“생각 같아서는 내가 쟁기를 끌고 땅 열 결이건 스무 결이건 모조리 경작해버리고 싶네. 한 가구가 잘해야 세 결을 농사짓는 것이 한계이니 이를 어찌하면 좋나.”

“스스로 쟁기를 끌고 다니겠다고? 내가 알기로 유산(정학연)의 동생은 농서(農書)를 저술할 욕심이 있다 하였네. 우리 다 같이 농서에서 답을 찾아 쟁기나 끌어보지 않겠나?”

엉겁결에 시선이 집중된 정학연이었지만 답을 하지 않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양반들을 훑어보면서 여기서 더 나아간 주장을 하였다.

“농민이 더 많은 땅을 경작하려면 새로운 농법이 필요할 것이 아닌가. 새로운 작물도 필요하겠고 더 나은 도구도 필요하겠지.”

“이 친구 농담으로 한 말을 왜 진담으로 받아들이나?”

“농담이 아닐세. 요동과 만주에 땅이 남아도는 상황이니 전국 팔도의 인구는 계속 줄어들 것이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공장을 운영하려면 농민들이 더 많은 땅을 경작해야 한다네.”

정학연은 향교의 서재로 들어가 서적들을 찾기 시작하였다. 그랑제콜은 물론이요 지방 대학의 역할을 담당하는 서원에서 정기적으로 보고서와 논문을 저술하여 각 향교에 배포하였다.

이러한 논문들은 프랑스에서 건너온 천주교 신부들과 이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는 출판업자의 손에서 인쇄되어 각지로 배포되었다.

정학연은 여기서 농사와 관련된 저술들을 잔뜩 가져와서 말했다.

“여기에 답이 있을지도 모르겠군. 얼마 전 흥선도정의 저술을 확인하였는데 완두콩의 특징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방법이 담겨 있었지. 이런 책이 많고도 많다네.”

“고작 완두콩을 가지고 답을 찾는다고?”

“자네들은 시야가 너무 좁아서 탈이라니까. 작물의 특성을 잘만 뽑아내면 더 많은 곡물이 열리거나 잡초에 강한 벼를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또한 각종 물질의 활용법도 있네.”

정학연이 가져온 서적에는 조일준을 시작으로 한 그랑제콜 출신의 논문과 각종 저술은 물론이요, 정약용이나 얼마 전 관직에서 은퇴한 서유구의 저술까지 있었다.

이러한 내용들은 연구결과로 보관된 채 농민들에게 전달될 계기를 찾고 있었다.

평소에는 표지만 보고 넘어갔던 서적들을 확인한 양반들은 무릎을 치며 한탄하였다.

“과실의 표면이 썩어 문드러지는 병은 석회와 황산구리를 섞은 약을 발라서 막을 수 있다고? 이걸 진작 알았으면 작년에 사과를 실컷 수확하는 것인데!”

“우리야 한 번 읽고 서재에 쌓아두기만 하였지 농민들이 알 길이 있겠는가. 얼마 전 감자에 시커먼 반점이 피었는데 토양에 울릉도산 호장근(虎杖根) 추출물을 섞으라고 하였네.”

“서역의 학자인 훔볼트라는 사람이 남긴 저서도 있군. 이 나라에서 사용하는 비료에 구아노라는 녀석을 넣으면 더욱 작황을 증진시킬 수 있다 하였네.”

먼지만 쌓인 채 방치되던 서적을 하루 종일 읽은 양반들은 피로를 호소할 지경이지만 아무도 서적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그들은 정해진 토지에서 더 많은 곡식을 얻을 수 있다면 더 많은 소작료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들은 서적의 내용과 현실을 접목시키기 시작했다.

“저서에 의하면 구아노는 남아메리카라는 대륙의 서부 연안에서 소출된다 하였네. 세상의 반대편에 있는 나라인데 여기까지 갈 방법이 있을까 모르겠군.”

“갈 수는 없을 것일세. 듣자 하니 일대에 해류가 격렬히 흐르고 풍향도 역행하여 증기선조차도 비주(非洲 - 아프리카)에서 향하는 것이 빠르다 하더군.”

“비료를 얻으려 세상의 반대편으로 다녀와야 하는가. 생각해 보니 영길리나 불란서의 상인들이 같은 마음을 품어도 결국 세상을 한 바퀴 돌아야 하겠지.”

“그러하면 좋은 방안이 있네. 영길리와 불란서의 상인들에게 투자를 하여 구아노를 얻어오게 하고 이를 이 나라의 비료와 교환하여 섞어 쓰는 것일세.”

하루가 지날 때마다 좋은 방안이 계속 샘솟아 나왔다. 서양을 다녀온 사람들의 저서까지 가져온 정학연은 개중 영국의 스윙 폭동(Swing Riots)을 담은 서술을 보며 말하였다.

“영길리에서 농민들의 쟁의(爭議)가 일어났는데 원인이 곡식을 단번에 탈곡하고 겨를 분리해 수확하는 기구 때문이었다네. 우리는 지금 알곡을 훑어내는 기구를 쓰지 않는가.”

“그 기구를 당장 도입하면 좋겠는데 서역은 밀을 먹지만 우리는 벼가 주식이지. 기구를 사들여도 개수하여 이 나라의 실정에 맞게 고쳐서 적용해야 하겠는걸.”

양반들은 어느새 새로운 농법을 조선의 실정에 맞게 개량할 의지까지 품게 되었다. 단순히 기구를 도입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의 재산을 동원할 생각까지 품은 것이다.

“다른 기구도 있다네. 공장에서 주조하여 날을 잘 세울 수 있는 쟁기와 걷기만 하면 씨앗을 파종하는 기구도 있지. 이렇게 되면 농사를 더욱 쉽게 지을 수 있다네.”

“잡초를 쟁기로 긁어내는 일도 쉬워지고 파종 기구를 개량하면 허리를 굽히지 않고도 모를 심을 수 있겠지. 그렇게 되면 소작농 한 가구가 땅 세 결을 경작하는 일도 쉬울 걸세!”

“이대로 일이 잘 돌아가면 조정에서 소작농을 이주시키는 것도 한계에 봉착할걸세. 만주로 나아가 땅을 경작하려면 험한 황무지를 개간해야 하지 않는가?”

“아무렴, 소작료를 내면서 땅을 편안히 경작할 사람은 많아도 황무지를 개간할 사람은 적게 마련이지. 그럼 공장에서…….”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양반들은 흠칫 놀라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새로운 농법을 동원하여 더 많은 작황을 거두고 더 많은 땅을 경작하면 소작농의 수익도 올라가게 마련이었다. 이렇게 되면 공장에서 일하게 할 사람들의 인건비가 급증하게 마련이었다.

정학연은 말을 멈춘 양반들을 바라보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였다.

“근로 기준법에 의거하여 한 사람의 노동시간은 여덟 시간, 휴식을 제하면 일곱 시간일세. 여력이 남는 사람들이 알아서 새벽에 농사를 짓고 저녁에 농사를 짓지 않겠는가?”

“그렇지! 간혹 공장을 유동적으로 운영해서 농사가 힘들 때에는 휴가까지 주어야지.”

농업사회에서 급격히 산업사회로 나아가려는 조선의 변화를 양반들이 받아내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농민들이 고된 농사를 조금이라도 쉽게 하라는 명분으로 머리를 굴렸다.

속내는 국가가 소작농을 함부로 빼앗아가지 못하게 기술을 발달시키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나은 일이었다.

정학연은 수많은 결론을 종합하여 말하였다.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면 스스로 농사를 짓는 사람은 편안히 살 것이요 소작농들의 일손도 덜어내겠지. 결국 농민들의 자급자족의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네.”

“공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은 쏙 빼놓을 생각인가?”

“그들이야 알아서 일할 것이니 염려할 필요도 없지.”

정학연이 굳이 말은 안 했지만 정약용이 추구하던 이상적인 사회가 이루어질 것 같았다. 농민들이나 소작농이나 큰 어려움 없이 자급자족하며 번성할 수 있으리라.

후손들은 만주나 요동으로 이주해야 하지만 더 많은 농토를 거느릴 재주만 있다면 막을 이유도 없었다. 다만 정학연이 아쉬운 것이 있으니 양반들은 이 많은 연구주제를 현실적으로 다룰 방법이 없었다.

결국 자신의 땅에 새로운 농법과 농기구를 시험해야 하리라.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손해를 견디지 못하고 중단하면 새로운 기술의 도입도 중단되리라 생각하였다.

누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서로 눈치를 보던 와중에 정학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갓을 고쳐 쓰고 양반들에게 말하였다.

“얼마 전 좌의정을 역임하시다 은퇴한 풍석(楓石 - 서유구) 대감을 찾아가세. 이 나라의 양반 지주들이 우리와 같은 마음을 품을 것이니 풍석 대감을 통해 연을 만들도록 하세.”

“좋은 생각이로군! 서로 손해를 나누고 이득도 나누면 그보다 좋은 일이 없지!”

서유구는 정학연이 정리한 결론을 몇 차례에 걸쳐 읽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고는 이를 위하여 더 많은 돈을 얻어낼 방법을 말하였다.

“이는 각 서원에 배정된 연구주제와 흡사하군. 조정에 직접 나아가 논하여 아예 지원금을 받아내고 연구 주제를 배분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좋겠어.”

결국 서유구의 뜻에 희생될 사람이 있었다. 이민아문이 일을 잘 처리해서 그나마 업무가 줄어든 탁지부와 탁지부대신 김좌근은 평상시 마시던 커피 대신 다른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이제야 좀 살 것 같군. 가배인(카페인)을 추출하여 맛과 향을 남기고 잠을 잘 수 있게 고쳐 만든 가배를 마음껏 마신다니 이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대감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민아문 덕분에 저희가 잠이라도 잘 수 있게 되었군요.”

조일준은 탁지부 관리들을 위해 카페인을 추출한 디카페인 커피를 만들고 카페인 정제도 만들었다. 김좌근은 매일같이 이 정제를 먹었지만 오늘은 먹을 필요가 없었다.

이민아문의 업무 처리는 깔끔하다 못해 군더더기가 없었다. 도성으로 올라온 소작농들은 알아서 부족한 농기구와 생필품을 챙겨가고 군부에서 골칫거리였던 조선의 말을 농사용으로 가져갔다.

여기에 각 부처를 순회하며 필요한 물자를 받아가고 정착 이후 3년 동안 보낼 쌀을 계산하면 모든 일이 끝났다.

최종 예산만 결재하면 되는 김좌근은 철컹거리며 돌아가는 계산기를 보며 말하였다.

“배정된 예산은 운송 중 파손될 미곡을 감안하여 칠십구만 석이면 되겠지. 기차와 상선을 통하여 미곡을 배송할 것이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명을 받들겠습니다. 호위 병력은 병조에서 육성한 각 사단의 신병으로 배정하겠습니다.”

“사단 예산이 돌아오려면 두 달 정도 남아 있으니 어느 정도 숨통이 트였군. 조금 쉬게나.”

석 달 만에 결재를 기다리는 서류가 자취를 감추었고 책상 위에는 시급히 편성이 필요한 예산만 남았다. 이를 조율하여 각 부처에 배송하니 오후 4시에 모든 업무가 사라졌다.

긴장이 풀린 탁지부 관리들이 꾸벅꾸벅 졸면서 그동안 취하지 못한 수면을 벌충하려 하였고, 김좌근 또한 대놓고 잠을 자려고 베개를 가져왔다.

“앞으로 두 달은 쉴 수 있겠구나. 아니지, 정시퇴근할 수 있겠구나!”

두 달 뒤에는 각 사단의 예산 결재와 추수시기를 맞이하여 밤샘을 며칠 해야 하지만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그가 임시 기관장을 겸임하는 중앙은행도 그때쯤 되면 새 은행장이 배정되리라.

아예 책상 위에 베개를 가져다 놓고 엎드린 김좌근은 잠에 빠져들어 침을 흘렸다. 잠에 빠진 김좌근의 귀에 누군가의 말이 들려왔다.

“하옥(荷屋 - 김좌근의 호) 대감님 중요한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뭐! 이런 좋은 시기에 사람이 왜 찾아와!”

단잠을 자던 탁지부 직원들이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고, 김좌근은 침을 닦아내고 베개를 저 멀리 던져 버렸다. 대체 누가 방문하였는지 몰라도 상대는 집무실로 불쑥 들어와 인사를 하였다.

“하옥 자네를 간만에 보는군. 그간 잘 지냈나?”

“풍석 대감님을 뵙습니다. 얼마 전 좌상(左相)을 지내다가 은퇴하신 분이 어찌 여기에…….”

“자네의 도움을 찾는 사람들이 많으니 이를 모두 수렴하여 청을 하러 왔네.”

서류를 읽은 김좌근은 눈가를 파르르 떨며 내용을 확인하였다. 각 향교에서 새로운 농법과 품종개량을 연구할 비용에 대한 출자를 조정에 합당하게 요청하는 서류였다.

여기에 농민들을 고용하는 비용과 새로운 품종 도입과 각종 출자금을 비롯한 사항이 대충 정리되어 기록되었다.

엉망진창의 서류가 자신의 담당이 아니라 망상하는 김좌근이 필사적으로 말하였다.

“이…… 이것을 폐하께서…….”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며 탁지부에 배정하라 명하신 물건이네.”

이민아문의 깔끔한 서류와 요구 예산을 보았던 김좌근에게는 너무나 엉망진창인 예산안이었다.

이 내용을 올바로 수정하고 내년까지 다시 배정하려면 앞으로 석 달은 꼼짝없이 붙어 있어야 하리라.

“야근이다! 야근이 시작된다!”

김좌근이 탁지부 관원들에게 선언하며 책상 서랍을 열었다.

오늘은 먹지 않으리라 다짐한 카페인 정제 두 알을 물과 함께 넘긴 김좌근은 다시 고통을 받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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