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04화 (104/345)

104. 10장 2화 성장(3)

화교들을 자기 마음대로 거주하게 만들면 개항장이나 각종 신도시에 몰려들어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자기들끼리 통혼하는 일이 일어나겠지.

그러니 각 고을로 분배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강제로 시행하면 아무도 오지 않으려 하니 이들이 각 고을로 분배되어야 하는 그럴싸한 이유도 만들어 주어야 하였다.

“요리들을 보니 재료를 구하는 게 너무 힘들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작장 대신 된장을 사용하였는데 요리사가 작장을 만드는 것은 너무 힘들 것 같군요.”

“조금의 양이라면 만들기는 합니다만 저희가 기르던 품종의 콩도 필요하니…….”

“그러하니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겠지요. 한 해의 말미를 줄 것이니 본래 살던 곳으로 돌아가 각기 원하는 열 개의 호(戶 - 가구)를 조선으로 데려오시지요.”

요리사 한 명이 재료를 제대로 얻어내려면 이 정도 인원은 필요한 법이었다. 이민아문의 다른 관원들이 이를 어찌 감당할지 염려했지만 요리사들은 고개를 숙이며 말하였다.

“이렇게 좋은 조건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러면 저희는 어디에 살게 되는 겁니까?”

“그야 각 요리사와 식솔들이 고을마다 배정될 겁니다. 요리사들이 오백여 명에 달하는데 오천 호가 함께 이주하면 사람이 삼만 명이 넘어갈 것이니 도시 하나가 세워지지 않겠습니까?”

물론 한양 같은 대도시에는 50호 정도를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이런 혜택을 받은 사람은 병사용 부식으로 합격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내 제안을 듣고 고민하다 답하였다.

“조선에서 열 가구만 따로 떨어져 살면 여러모로 핍박을 당할지도 모릅니다. 이역만리에 아는 사람이라고는 친한 열 개 가구와 마을에서 사는 사람이 전부가 아닙니까.”

이렇게 거창하게 설득을 하였지만 실패할 줄은 몰랐다.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어 몸을 돌리려는데 요리사들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였다.

“그러나 저희는 조선의 병사들로 인하여 목숨을 부지하였습니다. 선친께서는 팔기군에게 시달려 명을 달리하였지만 후손인 저는 구명을 해주신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저희 모두의 목숨을 조선이 구해주었는데 더욱 큰 은혜를 주시니 응당 따라야지요!”

“핍박을 당해도 팔기군이 저지르던 짓거리보다 더하겠습니까?”

아예 궁궐 방향으로 큰절을 올리는 요리사들 모두가 이 제안에 응하였다. 본래 역사의 화교들이 단단하게 굳은 설탕 덩어리였다면 이들은 스스로 잘게 쪼개지는 선택을 하였다.

굳은 설탕 덩어리는 뜨거운 물에도 쉽사리 녹지 않지만 설탕 가루라면 순식간에 용해되겠지.

이를 위해서는 연계를 가급적 끊어 여러 장소로 나눌 필요가 있었다.

이들은 조선 사람과 부대끼고 살면서 청나라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사라질 것이요, 다음 세대는 청나라의 문화도 사멸될 것이고 훗날에는 청나라 조상을 지닌 조선 사람이 되리라.

모두가 만족하니 좋은 일이었다. 다만 이광정을 비롯한 고문들은 내 방식을 보면서 염려하듯이 말하였다.

“일단은 청나라 백성을 조선에 들여와 화합을 시켰으니 나쁜 일은 아닌 것 같군. 다만 각 지방에 사람들을 배분하면 결국 비좁은 땅을 두고 문제가 벌어질 걸세.”

“그 정도야 미리 생각해 둔 바가 있습니다. 조금 지나면 익문사와 검리원에서 좋은 소식이 들려올 것 같군요.”

조만간 지방에서 즐거운 사례가 올라올 것을 기대하며 요리사 대다수를 귀국시켰다.

보름 정도 지나 양력 3월이 되자 내 요청을 받은 익문사를 중심으로 수사를 진행하였다.

“참 대단한 놈들이로군. 사 할의 소작료를 받아도 충분할진대 어찌 이런 행위를 하는가.”

“유관(游觀 - 김홍근의 호) 대감께서 보시듯이 제 생각도 그러합니다. 이들에게 핍박당하는 소작농의 처우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파올 지경이며 속이 답답해지고 있습니다.”

안동 김씨에 소속된 김흥근도 이민아문의 고문이었다. 그는 각지의 지주들이 쉴 새 없이 탐학을 저지르는 징후를 알아차리고는 혀를 차며 평가하였다.

“이민아문이 없었다면 수많은 소작농들이 불합리한 처우를 당하며 고통을 당하고 있겠지. 이들을 머나먼 곳으로 보내야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네만 해결할 방도가 생겼네.”

“백성들의 입장에서도 지주들의 온갖 탐학(貪虐)을 감내하느니 새로운 땅을 원할 것입니다.”

“이민아문의 청을 받아들여 수사를 진행할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입니다. 각 지방을 시찰하며 지주들을 단속하고 피해를 입은 소작농이 이민아문의 권고를 듣게 할 예정입니다.”

삼정의 문란이 새로운 세금제도로 봉합되었지만 아직 내부는 봉합되지 않았다. 지주들은 자신의 땅을 파먹고 살아야 하는 소작농들을 얽어매고 온갖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

지금까지는 여러 정황증거를 포착하였어도 조정에서 함부로 나서지 못하였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조선에서 이주시킬 첫 대상자는 이러한 범죄 행위에 시달린 소작농들이다.

절대적 우위에서 온갖 패악을 저지른 지주들은 최악의 처분을 받게 되리라.

한 달 정도 지나면 올라올 보고를 기대하면서 청나라 사람의 이주를 차근차근 준비하였다.

* * *

충주 일대의 대지주 중 한 명인 민치일은 서양에 다녀온 적도 없는 사람이지만 오늘도 새로운 의복을 입고 충주 시내를 돌아다녔다.

멋들어진 양복과 갓을 대신한 펠트 모자는 그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다.

“돈 놓고 돈 먹는 일이 이리도 쉬울 줄이야. 세상은 역시 꾀를 부려야 한다니까.”

민치일은 240결에 달하는 땅을 소유하고 휘하 소작농을 57가구, 하인을 30명이나 부리는 대지주였다. 그는 영민하게 움직이는 사람이며 온갖 수단을 동원해 재산을 불렸다.

재산을 불리는 수단으로 투자나 채권구매 대신 소작농에게 더 많은 소작료를 불법으로 부과하기도 하였다. 그를 충주 시내에서 만난 소작농이 깊게 절을 올렸다.

“어르신을 뵙습니다.”

“어이구 박가야, 작년에는 농사를 잘 지었으니 올해에도 잘 부탁한다.”

민치일에게 인사를 올린 소작농은 눈에 불을 켜고 그를 치켜보았지만 민치일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그러고는 거리낌도 없이 향교로 향하여 느긋하게 자리에 앉았다.

툇마루에 앉은 민치일은 성냥에 불을 붙여 장죽을 피웠다. 조선에서 가장 고가의 담배인 영국산 잎담배였지만 그에게는 그리 큰 사치도 아니었다.

“성현께서 사치를 줄이라고 하였네. 그런데도 자네는 영길리의 담배를 숨 쉬듯이 피우는군.”

“한번 맛을 들이면 이보다 좋은 담배가 또 없다네. 그러니 자네들도 나처럼 땅에 투자하는 것이 답이라니까 왜 말을 듣지 않아서 이 모양인가.”

“우리도 땅을 사들이기는 하였지만 자네처럼 삿된 일을 하지 않아서 벌이가 부족하다네.”

“삿된 일이라 하였는가? 엄연히 소작농들과 합의하에 진행된 일이라니까!”

민치일은 담배 맛을 버렸다는 듯이 타구(唾具)에 침을 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새로운 세금제도에 의거하면 소작농은 여러 제도로 보호를 받았다.

소작료는 4할을 넘길 수 없다, 한 번 소작을 시행하면 5년 동안 같은 땅에서 소작을 이어갈 수 있다. 그리고 계약이 종료될 때에는 소정의 위로금을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제도는 민치일이 간단하게 무시하였다. 소작농은 지주의 땅을 파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니 땅이 사라지면 굶어 죽는 신세라 판단하고 강압적인 요구를 하였다.

“어차피 내 땅 파먹으면서 사는 무지렁이들인데 뭘 그리 망설이는가? 저들이 이주하여도 다른 지주 아래에서 소작을 할 것이요! 어차피 소작농은 넘쳐나는 실정 아닌가!”

“그러다가 조정에 발각이라도 되면 어찌 감당할 셈인가?”

“법적으로는 위배되었지만 상호 계약을 맺은 행위라니까! 이를 감안하면 기껏해야 벌금 오만 냥 정도가 전부이고 금방 축적할 수 있다네!”

아예 벌금을 내겠다고 각오한 민치일을 바라본 유생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소작농이 어디로 사라지지 않는 한 민치일은 결국 벌금을 메꾸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하여도 법을 무시하는 행위였다.

모두가 민치일을 만류하려던 찰나 서원의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들어왔다.

“충주에 사는 민치일은 속히 나와 관아에서 죄를 고변하라!”

익문사 관원과 도성에서 내려온 포졸이 민치일을 충주 관아로 압송하였다. 죄인 신세가 된 민치일에게 익문사 관원이 충주 목사와 함께 민치일의 잘못을 논하였다.

“죄인 민치일은 들으라. 네가 소작농에게 법을 어기고 소작료를 올려 받으며 온갖 패악을 일삼음을 조정에서 알게 되었다. 그러하니 죄를 논하도록 하겠다.”

각종 소문을 입수하는 전신국에서 포착한 정보를 형조 휘하의 검리원이 상세히 입수하였다. 이후 익문사가 휘하 관원을 보내 정황을 파악하고 들이닥쳤다.

충주 목사는 민치일의 죄목을 낱낱이 논하였다. 이를 모두 들은 민치일은 죄를 뉘우치는 척 고개를 숙였으나 청산유수처럼 변명을 시작하였다.

“목사님께 참으로 송구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제 땅이 워낙 질이 좋은지라 소작농들이 줄을 서서 땅을 경작하려 하여 국가에서 정한 소작세보다 조금 올려 받았습니다.”

“조금이라 하였는가? 소작세가 사 할을 넘어 오 할하고 오 푼에 달하지 않던가! 소작농들이 사용할 금비(金料 - 비료)를 갈취하여 자신이 경작하는 논에 뿌리기도 하였는데!”

“비료야 땅의 질이 좋으니 적게 넣어도 효과가 동일하였습니다. 서로 합의하에 한 일인데 이 어찌 잘못된 일이라 하시는지요.”

청산유수 같은 말에 충주목사도 익문사의 관원도 분노를 억눌렀다. 이후 소작농들이 불려와 증언을 할 차례였지만 이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을 하지 않았다.

결국 민치일의 처분은 법을 어기고 올려 받은 소작료를 감안한 벌금 육만 냥이 전부였다. 충주 목사는 관아에서 나가는 민치일을 보며 머리를 흔들며 말하였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라네. 나도 민치일의 행적은 알고 있었으나 소작농들이 답을 안 하니 방도가 없었지. 더욱 교묘하게 소작료를 징수할 것인데 이를 어찌하면 좋은가.”

“그러하니 이민아문에서 좋은 수단을 마련하였습니다. 가장 확실한 수단이지요.”

다음으로 나선 사람이 이민아문에서 파견한 김재현이었다. 그는 소작농 중 한 명인 김득문을 방 안으로 부르고 차를 한 잔 내어준 다음 설득을 시작하였다.

“그간 얼마나 고생이 많았습니까.”

“제가 고생을 하기는 뭘 하였습니까. 농사를 짓는 사람이 다 이렇게 삽니다.”

김득문이 억울한 말을 하려다 고개를 숙이고 침묵하였다. 그는 민치일의 땅을 경작하는 사람이며 도망치더라도 다른 소작농이 자신의 자리를 메울 것이 분명하였다.

“소작료에 세금을 제하면 세 결 땅을 경작하여도 식구들이 먹고살기 빠듯하지 않습니까? 이게 고생이 아니라면 뭡니까! 황소보다 더 험악하게 일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자신이 당한 처우를 되새긴 김득문이 눈물을 줄줄 흘려댔다. 감정이 무르익자 김재현은 조심스럽게 요동 이주에 대한 제안을 시작하였다.

“제가 소속된 이민아문은 새로 얻어낸 만주와 요동을 경작하기 위한 기관입니다.”

“전쟁에서 이겼다는 말을 듣기는 하였지요. 대체 얼마나 큰 땅입니까?”

“이 나라의 땅을 모두 합쳐도 새로 얻어낸 땅의 삼분지 일에 불과합니다.”

상대를 현혹시키지 않고 솔직담백한 내용을 말하였다. 땅은 얼마라도 경작해도 좋으나 기존에 살고 있던 청나라 사람과 싸우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하라고.

“이외에도 혜택이 있습니다. 삼 년 동안 한 명 앞에 쌀 다섯 섬을 배정할 것이고 농사에 쓸 황소는 아니더라도 호마(胡馬 - 기존에 조선에서 사용하던 군마)를 내어줄 겁니다.”

“사실이십니까? 그런 좋은 혜택을 왜 주시는지 영문을 알 길이 없습니다.”

“폐하께서 보증하셨으니 믿어도 좋습니다. 새로운 강역을 얻었으면 사람을 보내 경작해야 하는 법. 이런 땅에 스스로의 땅을 원하는 사람이 가야 하는 법이지요!”

김득문 입장에서는 지긋지긋한 민치일의 탄압으로부터 벗어날 기회이자 국가가 보증한 이주 기회였다.

눈물을 닦은 김득문은 당당하게 말하였다.

“좋은 말씀이십니다. 저는 물론이고 민치일에게 핍박당하던 소작농 모두가 동의할 겁니다.”

“그러하면 서명 혹은 지장(指章)을 찍어주시지 않겠습니까?”

기존의 소작 계약 대신 국가가 보증한 이주 증서에 소작농 김득문의 이름이 적히고 지장이 찍혔다. 이후 민치일 휘하의 소작농 대다수가 증서에 지장을 찍었다.

보름동안 근신한 민치일은 벌금을 관아에 납부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소작농을 닦달하려 하였다. 조만간 모내기철이니 소작농들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여야 할 시기였다.

한데, 소작농들이 모여서 농사를 준비하는 집이 북적거릴 시기이지만 웬일인지 고요하기만 하였다.

민치일은 화들짝 놀라 집 안으로 들어가 사람을 찾았다.

“거기 김가 있느냐? 이가는 어디에 있더냐? 다들 어디로 간 게냐!”

“야! 이 민가 놈아! 우리는 네놈 땅을 더 이상 경작하지 않겠다!”

욕설에 고개를 돌린 민치일은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보았다. 자신의 휘하에 있던 소작농들이 우마차 위에 가재도구를 올린 채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자유다! 우리 없이 이백 결이 넘는 땅을 잘 경작해 봐라!”

“이놈들이 미쳤나! 마름 있는가! 어서 저놈들을 잡지 않고 뭘 하는가!”

마름이 어떻게든 대열을 막으려 하였지만 김득문이 나서서 마름을 집어 던졌다. 그러고는 아낙부터 아이들까지 달려들어 마름에게 흙을 퍼부으며 장정들이 논두렁으로 밀어 넣었다.

이들의 맨 뒤에서 대열을 통솔하던 김재현은 작별 인사를 하듯 손을 흔들며 민치일을 내버려 둔 채 충주 고을 밖으로 사라졌다.

어처구니가 없어 바닥에 주저앉은 민치일에게 흙이 끼얹어지고 진흙이 덕지덕지 묻은 마름이 다가와 상황을 말해주었다.

“소작을 하던 쉰일곱 가구 가운데 쉰네 가구가 조정의 명을 받아 떠나갔습니다.”

“나머지는 자네 가족과 자네의 친인척이 아닌가! 저들이 어디로 사라졌는가!”

“듣자하니 폐하께서 원하는 소작농들 모두가 이주를 할 수 있다고 하시어…….”

자신의 땅이 200결이든 300결이든 뭔 소용이 있단 말인가.

땅을 경작할 소작농들이 모조리 이주를 택하였으니 민치일은 자신의 땅을 경작해줄 소작농을 찾기 시작했다.

“이보게 박가…… 아니지! 박 서방 내 이야기 좀 들어보게!”

“민 생원님께서 어찌하여 저를 찾으시는지요?”

“자네가 옆 동네 이 진사의 땅을 한 결이나 경작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내 땅을 두 결 경작하게나. 소작료는 삼 할 오 푼으로 낮추어 주겠네!”

평상시라면 민치일의 제안을 들은 박 서방이 고개를 숙이며 응해야 하지만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이미 민치일의 범죄는 정보기관을 통해 충주 고을 전체는 물론이요, 충청도까지 퍼져나갔으니 적당히 변명을 하였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제가 얼마 전 계약을 연장하여서 이 진사님 댁의 땅을 십 년 동안 경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하니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할 것 같습니다.”

“자네는 텃밭도 꾸리고 있지 않은가! 누구 앞에서 거짓말을…….”

“지금 뭘 하는가! 내 땅을 경작하는 사람에게 뭔 망발이야!”

어느새 다가온 이 진사가 호되게 질책하자 민치일은 울먹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얼마 전까지는 술을 나누고 풍류를 읊었지만 그는 민치일을 벌레 바라보듯 쏘아보며 호통을 쳤다.

“조정에서 중재한 계약을 어겨! 여기에 소작농을 겁박하여 아무 말도 논하지 못하게 하고! 마침내 다른 사람의 계약을 헝클어트리며 행패를 부리는가?”

민치일의 행적이 공개되고 이민아문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지주들에게도 비상이 걸렸다. 이들은 소작농이 모조리 만주로 떠나갈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사로잡혀 계약을 갱신하였다.

충주 일대의 소작료는 평균 3할 3푼으로 떨어지기에 이르렀으니 지주 모두가 민치일 때문에 손해를 보았다 생각했다. 당연히 민치일은 양반 사회에서 축출되기 직전의 위기에 처하였다.

서원과 향교의 출입도 금지당한 민치일에게 김재현이 돌아와 권유하였다.

“요즘 좀 불편한 일이 생긴 것 같습니다. 땅이 남는데 사람이 부족하군요?”

“그걸 말이라, 말이라고…… 하시오!”

“향교와 서원에도 드나들지 못하시니 조만간 향안에서도 제명당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하니 이 모든 것을 무마할 방법을 폐하께서 알려주시게 되었습니다.”

민치일에게 배정된 서류는 멍에나 마찬가지였다. 240결의 농지 중 120결을 국유지로 판매하며 추후 10년 동안 소작료를 2할 5푼으로 낮추어 징수하라는 제안이었다. 욕심을 부려 재산을 축적하였으니 그 욕심을 모조리 토해내라는 말이었다.

몇 번이고 머뭇거린 민치일은 이 어명을 받아들여 양반 사회로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이 땅은 충주에 이주하게 될 요리사와 여기에 딸린 가족들이 사용할 예정이었다.

이러한 지주들의 자발적 판매를 바탕으로 12만여 명의 소작농이 만주로 향할 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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