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10장 1화 승전(2)
종착역인 인왕산역에 도착한 효명세자는 피로에 시달리면서도 열차에서 내려 주변을 돌아보았다. 양력으로는 2월 5일이며 음력으로는 정월 대보름이 코앞인 1월 14일이었다.
한양 도성에 있는 백성들은 물론이요 전쟁에 투자한 지방 유생들도 승전 소식을 듣고 집결하여 있었다.
정월대보름에 협상 타결을 마친 효명세자가 당도하였으니 말 그대로 북새통이 따로 없었다.
“태자전하의 당도를 폐하께서 며칠 전부터 기다리고 있사옵니다. 속히 입궐하시옵소서.”
“물론이네. 도성의 백성들에게도 당당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니 마음을 굳게 먹어야겠군.”
200년 전 벌어진 병자호란에서는 인조가 치욕을 당하고 두 대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혔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왕이 맞서 싸워 승리하고 세자가 협상을 진행하여 이득을 얻어냈다.
효명세자가 늠름한 군마를 타고 그 뒤에 전쟁에서 얻어낸 재물이 가득 담긴 수레가 궐로 향하였다. 심양에 비상시 사용할 자금으로 남겨둔 400만 냥을 제외한 1,120만 냥의 재물이었다.
말 그대로 금마차가 도성을 지나가는 격이니 모든 백성들이 나와 환호성을 질렀다. 도성을 관통하여 창덕궁까지 향하는 동안 너무나 함성이 거세서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마침내 창덕궁에 들어오자 순조가 효명세자를 맞이하였다.
모두가 절을 올리자 순조는 준비하였다는 듯이 말하였다.
“내가…… 이제는 짐(朕)이지. 청나라를 상대로 나서서 맞서 싸우고 태자가 나서서 청나라의 혼을 빼놓아 협상을 맺었으니 이 어찌 좋은 일이 아니더냐. 그러하면 포상이 필요한 법이다.”
“소자는 아바마마께서 이룩하신 위업의 만분의 일조차 달성하지 못하였사옵니다.”
“짐이 반을 이룩하고 태자가 반을 이룩하였으니 염려하지 말거라. 가장 먼저 포상을 내려야 할 이들은 이번 변란에서 힘을 쓴 장졸들이니 제장(諸將)들이 직접 포상을 내리어라.”
수없이 옮겨진 짐수레가 분류되고 환금이 가능한 은과 금을 위주로 병사들의 포상이 내려졌다. 새로 만든 냥으로 내려주어도 되지만 일종의 전쟁 기념품이기도 하였다.
“보병 민응도! 포상금을 받겠습니다!”
“전열보병이니 포상금은 은자 스무 냥일세.”
각 병사들의 병종과 직급에 맞게 포상금을 내려주었는데 가장 적게 받는 전열보병이 은자 20냥이었다.
그루시와 함께 다녀온 기병 이천여 명은 은자 80냥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받았다. 포병이나 본진에 있던 기병들은 은자 50냥이 내려졌다.
“손이 부르트고 저려올 지경이니 어찌나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내 말이 그 말일세. 손에 묻은 은분(銀粉)과 금분(金粉)을 물에 헹궈도 돈이 꽤 나오겠는걸.”
내가 알기로 전열보병의 일 년 봉급이 신냥으로 60냥, 은자로는 약 12냥인데 2년 어치 봉급을 받은 격이다. 4만여 명의 병사들에게 자금을 나누어 줘도 아직 1,000만 냥이나 되는 거금이 남아 있었다.
남은 자금이 다시 분배된 이들은 전쟁에 투자한 유생들이었다. 이들은 승전 소식을 듣고 몇 달 전부터 기다렸는데 투자 자금에 비례하여 이득이 배분되었다.
“울진에 사는 김 생원은 이번 변란을 대비하여 신냥 일만이천 냥의 자금을 내었으니 그 공을 기려 사 할 하고 오 푼의 이율을 적용한다. 신냥으로 일만칠천사백 냥을 받아가시오.”
“그러하면 경덕진(景德鎭 - 중국 강서성의 도자기 유명 산지)에서 나온 커다란 백자를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저렇게 귀한 물건은 흔치가 않은데 신냥으로 이천 냥은 하겠군요.”
“그런 사소한 일은 경매를 통해 처리하도록 하시오.”
나름 물건을 분류하여 질이 그리 좋지 않은 물건들을 내놓았는데도 경매가 열렸다. 유생들은 자신들에게 배분된 돈을 활용하여 각종 재물을 사들였다.
이제 질이 좋은 물건들을 각 장수들에게 배분할 차례였다. 이번 전쟁의 일등공신이야 누가 뭐라 해도 순조이지만 이들을 보좌한 장수들이 포상을 받을 차례였다.
“누가 뭐라 하여도 가장 큰 공을 세운 자는 에마뉘엘 그루시이니 어서 나오너라. 기병을 이끌고 심양 주변의 고을을 모조리 분쇄하였으니 이 공은 1사단장과 견줄 수 있을 지경이지.”
가장 많은 적을 격파한 순위를 따지자면 전열보병 총지휘관이자 조선 출신인 이유수였지만 그는 심양에 머물고 있었다.
잰걸음으로 나온 그루시는 무릎을 꿇고 순조의 포상을 받았다.
“짐이 많은 것은 준비하지 못하였지만 신냥으로 오만 냥, 불란서의 화폐인 프랑으로 약 오만 프랑에 해당되는 재물과 동상 하나를 내려줄 것이노라.”
“동상…… 동상이라 하셨습니까?”
순조가 손짓을 하자 거대한 동상이 드러났는데 말 위에 오른 그루시의 1:1 청동상이었다. 손은 기병도를 휘두르는 것 같은 자세를 취하였는데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화룡점정이라 하였으니 기병으로 수많은 적을 도륙한 자세를 묘사한 동상에는 검이 필요한 법. 지금까지 사용하던 기병도로 동상을 완성하고 새 검을 받도록 하라.”
“제가 이런 영광을 누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더욱 큰 영광을 위하여 새로운 검은 의(義 - 군신 간의 도덕)를 상징하는 사인검을 하사할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 동상도 사관학교의 정문에 두어 대대손손 볼 수 있게 하겠다.”
그루시는 눈물을 펑펑 흘려가며 자신을 묘사한 동상에 검을 꽂아 넣어 마무리하였다. 자신의 모든 오욕을 머나먼 동방에서 씻어내었으니 얼마나 뜻깊은 일일까.
대열로 돌아온 그루시가 아직도 눈물을 닦았는데, 다음으로 지목된 이등공신들은 이유수의 휘하에 있던 사단장 세 명과 마르몽, 그리고 안드레이였다.
“자네들은 공이 크나 일등공신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그렇다 하여도 청군을 상대로 능수능란하게 움직였으니 포상을 받으라.”
안드레이와 마르몽은 못내 아쉬운 눈치였지만 그루시의 활약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이들에게는 각기 신냥 삼만 냥에 해당되는 재물이 하사되었다.
마지막으로 외교관인 나와 각 장수들에게 신냥 일만 냥에 해당되는 재물이 배정되었다.
모든 재물을 배정한 순조는 이번 전쟁에 도움을 준 프랑스와 러시아에도 선물을 보냈다.
“가장 좋은 재물들을 각기 불란서와 노서아에 보낼 것이니 귀환하여 승전을 보고하라.”
모든 일을 마치고 연회가 시작되었는데 효명세자는 못내 아쉬운 듯이 길거리로 흩어지는 장졸들을 염려하였다. 좋은 기회이니 효명세자에게 적당한 청을 올렸다.
“태자전께 아뢰오니 장졸들 또한 미주가효를 즐기며 연회에 함께 하는 것이 마땅하옵니다. 장소는 다르더라도 엄연히 성은을 내려야 할 일이 아니옵니까?”
“장졸들에게 포상을 내리고 배불리 먹이는 것이 마땅한 일이지만 궁궐의 숙수들의 수는 한정되어 있지 않더냐. 뜻은 좋으나 이를 처리할 방도가 문제로구나.”
“도성까지 내려온 청나라의 보인들이 있사옵니다. 많은 이들이 청나라의 요리를 배웠으니 이들에게 일임하심이 어떠하시옵니까?”
청나라의 보인 가운데 일부는 악착같이 조선 병사들에 따라붙어 조금이라도 돈을 더 챙기려 하였다. 단순한 인부들이야 병사들 선에서 걸러내서 돌아갔지만 병사들도 자신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이들은 돌려보내지 않았다.
효명세자는 내 생각을 듣고는 이들을 소집하였고 도성에서 마음대로 식자재를 구매하는 것을 허가하였다.
저녁이 되자 연회가 시작되었고 이들은 맹렬히 활약하였다.
“모든 전쟁이 끝났으니 마음대로 먹고 마시도록 하라!”
대소신료들은 창덕궁과 닿아 있는 창경궁의 전각에서 연회를 시작하였다. 순조의 뜻이었는데 자신의 아버지인 정조가 승하한 궁궐이니 정조가 보고 즐기라는 뜻이었으리라.
이후 벌어진 광경은 정조가 정말 즐거워할 모습이었다. 독한 소주로 병나발을 부는 그루시와 질세라 같이 병나발을 부는 안드레이의 모습을 본 효명세자도 웃으며 술을 따라주었다.
담배 연기가 피어오르고 마르몽과 각 사단장들 모두가 합류하여 술을 들이켰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며 흐뭇해하니 일준이가 다가와 나에게 술잔을 건네주었다.
“고생 많이 했다. 지난 넉 달 동안 전쟁에 참가했으니 한 잔 받아.”
녀석은 잔을 건네주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그 커다란 덩치가 불쌍할 정도로 쪼그라들었다. 아예 눈 아래가 쑥 들어갔는데 원인이 뭔지는 알 것 같았다.
“너도 고생을 많이 한 것 같은데. 혹시나 둘째라도 만들 욕심이냐?”
“그놈의 호피무늬 속옷 다음에는 하트무늬 속옷이라서…….”
일준이와 잔을 나누고 연회가 끝날 때까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전쟁에 참가하지 않은 신료들의 관심사 중 하나는 순조가 개편을 시작한 직제(職制)였다.
얼핏 들어보니 본래 역사의 대한제국 직제와 흡사하였는데 설정만 해 두고 효명세자가 즉위하면 바로 적용할 것이라 하였던가.
한밤중이 다 되어서 연회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다녀왔소. 내 오래 집을 비웠으니 안사람을 만나고 싶구려.”
“낭군님께서 언제 귀향하실지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넉 달 만에 아내와 만나 포옹하니 그 따스한 기분에 저절로 피로가 풀려왔다.
나도 얼마나 긴장하였는지 다리에 힘이 풀리고 부축을 받아 안방으로 향하였다.
* * *
이후 보름을 내리 휴식하고 다시 조정에 출근하였다. 효명세자는 전후 처리를 위하여 회의를 소집하였는데 첫 주제가 영국의 향후 방향이었다.
“이번 전쟁에서 이득을 취하였으나 손해를 본 나라도 있소. 청나라야 당연히 손해를 보았으나 영길리의 손해가 막심하지 않겠소? 잘못하다가는 역성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르오.”
이미 조선 신료들 가운데 다수가 영국의 정보를 알고 있으니 심각하게 염려할 만하였다. 프랑스 혁명처럼 영국 혁명이 일어나 기존의 외교가 다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염려하였지. 물론 영국이라는 나라의 핵심을 알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 분명하였다.
나는 모두가 침묵한 가운데 효명세자에게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영길리는 이번 사태를 겪고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 확실하옵니다. 무너지기보다는 오히려 절치부심하여 내부를 정리하고 새로운 전략을 구사할 것이옵니다.”
영국은 호락호락한 나라가 아니다. 지금 조선이 영국에 거하게 엿을 먹인 것도 프랑스와 러시아의 협조를 등에 업어 변수를 만들고 유럽이 동양 정세에 어두워 방심을 한 덕분이다.
변화한 영국은 수많은 인재와 막강한 기술력을 앞세워 강압적인 외교를 택하지 않으니 더욱 다루기 힘든 상대였다.
다만 영국의 정세를 알고 있는 효명세자는 여전히 염려하였다.
“듣자 하니 사회주의자라 하는 이들이 런던의 여러 단체들과 동맹을 맺고 활보하고 있다 하였네. 잘못하다가 불란서에서 일어난 역성혁명처럼 나라가 뒤집힐 수도 있지 않은가.”
“혁명이 크게 일어나도 문제는 없을 것이옵니다. 영길리는 그러한 극단적인 방안에 대해 타협과 수용을 택할 것이며 오히려 혁명 세력을 수용하여 정치 세력으로 만들 것이옵니다.”
“극단적인 세력에 대한 타협과 수용을 택한다고?”
“영길리는 섬나라이니 관계를 봉합하여 화해하기를 즐기는 자들이옵니다. 신이 사료하기로는 영길리의 정부는 이미 타협을 준비할 것이 분명하옵니다.”
섬나라 특유의 정서도 있지만 올리버 크롬웰이라는 극단주의자가 남긴 상처 때문이기도 하지.
효명세자는 내 설명을 듣더니 안심하여 평가하였다.
“그러하면 별문제는 없을 것 같군. 내가 염려한 것이 있으니 많은 도움과 가르침을 준 영길리의 왕실이 단두대로 끌려갈 것이라 생각하였네.”
효명세자는 자신에게 여러 가르침을 준 윌리엄 4세와 당시에 잠시 만나 교류를 하였던 빅토리아 여왕의 안위를 염려하고 있었다.
물론 염려할 필요는 없었다. 얼마 전 받은 디킨스의 편지에 의하면 빅토리아가 찰스 디킨스를 특파원으로 보낸 장본인이었다.
물론 이는 명분에 불과하리라. 내가 빅토리아의 머릿속에 들어가 볼 수는 없지만 아마 다른 꿍꿍이를 품고 디킨스를 보내지 않았을까.
이를테면 영국이 의외의 변수로 패전할 때를 대비하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생각이야 영국이 알아서 할 일이니, 효명세자를 안심시키기 위해 답하였다.
“그러할 일이 일어나려면 영길리의 의회가 집단으로 발작을 일으켜야 하옵니다. 차티스트 운동가들을 모조리 짓밟는다면 벌어질지도 모르나 이미 내각 해산을 앞두고 있을 것이옵니다.”
“내각 해산이라니 참으로 볼만한 일이로군. 그러하면 주제를 달리 논하도록 하겠으니 왜국을 정벌하자는 논의가 여럿 들어오고 있다네. 이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왜국을 정벌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오나 못 하는 일이 아니고 안 하는 일이옵니다.”
의견을 내놓으니 무관 출신들은 나를 흘겨보며 질문을 준비하였고 김좌근을 비롯한 예산 편성 관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기서 남연군과 함께 유럽에 다녀온 예조참판, 조만간 외부(外部) 대신으로 임명될 서희순(徐憙淳)이 나서서 자신이 배운 외교 관계에 대해 설명하였다.
“신 서희순이 잠시 설명을 드려도 되겠사옵니까?”
“물론이오. 구주에서 각종 외교관과 만나 대담을 나누었다 하였으니 기대하고 있었지.”
“그럼 설명을 드리겠사옵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왜를 정벌하여 얻는 이득보다 서역의 열국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이 문제이옵니다.”
서희순은 외교에 대해 많은 지식을 쌓았는지 나름 이 시대의 논리를 동원하여 조선의 현실을 설명하였다. 특히 지도에서 강조한 부분이 러시아에게 할양한 연해주였다.
“이 나라의 사람들은 노서아에 할양한 땅이 산과 울창한 수림으로 구성되었고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지요. 반면 서역의 열국에는 다르게 보일 것이 분명합니다.”
“다르게 보인다 하였습니까? 예조참판께서 말씀하시는 바는 혹여나 저 땅을 할양하여 태평양으로 진출할 길을 노서아에게 열어주는 것으로 보인다는 말씀이신지요.”
“옳은 말씀이십니다. 서양의 열국들은 해양으로 진출하는 길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영길리도 결국 해군으로 무역을 실시하고 세계를 주름잡고 있는 나라이지요.”
이 시대에는 지정학이라는 학문이 없으나 지도를 통하여 국가의 정책과 방향성을 추측하는 것은 할 수 있었다.
조선은 얼핏 보기에는 대양으로의 출구를 조금만 열어둔 나라이다.
교역을 위하여 통로를 열어두었을 뿐이며 해안과 인접한 연해주를 러시아에게 내어주었다. 또한 인구가 4억이 넘어가는 청나라와 드넓은 국경을 접촉한 상황이었다.
서희순은 조선 주변 바다와 남중국해에 바둑돌을 여럿 가져다 놓았는데 스페인, 프랑스, 교역권은 있는 영국, 그리고 태평양을 건너온 미국이었다.
이후 나를 보면서 말하였다.
“일전의 노서아와의 협정을 외무승지가 잘 처리한 덕분에 일이 잘 풀렸습니다. 조선은 다른 나라들이 보기에 우리 안에서 풀을 뜯는 양처럼 바다로 나서지는 않는 것으로 보이지요.”
“그러하니 왜국을 무력으로 압박하여 통로를 열면 되는 일 아니오?”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비하여 지나친 악수이옵니다. 흰 돌을 왜국 곳곳에 두어 이 나라의 해군이 순시한다고 가정하여 보면 알 수 있지요.”
조선이 일본을 영향권에 넣는 순간부터 일이 틀어졌다.
오키나와를 통해 남중국해 일대의 필리핀을 견제할 수 있으며 알래스카 일대를 통해 건너오는 미국도 영향권 안에 들어간다. 여러 나라를 견제할 수 있는 위치이지만 바꿔 말하면 여러 나라에게 견제를 당하는 위치이기도 하다.
서희순은 지도의 바둑돌들을 서로 인접시키고 평가하였다.
“지금은 우호적인 불란서도 동맹인 서반아의 식민지가 압박을 당하면 관계가 틀어질 것입니다. 여기에 미리견(彌利堅 - 미국)도 심기가 불편해질 것이지요.”
“그러하면 세 국가의 해군을 견제해야 한다는 말이구려.”
“옳은 말씀입니다. 사실 세 국가도 아니며 이런 기회를 놓칠 영길리가 아니니 네 국가. 노서아를 포함하면 다섯 국가의 견제와 질시를 당하게 됩니다.”
서희순의 주장은 조금 수세(守勢)적이었는데 이것만 제외하면 거의 완벽한 답이었다. 외교 문제를 나 혼자서 통솔하려니 상당히 피곤했는데 좋은 인재가 생겨나 다행이었다.
효명세자와 다른 신료들도 이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였다. 괜히 힘을 빼고 적을 만드는 것보다 일본에게서 이권만 뜯어내면 충분하다고 설득된 것이다.
“그럼 왜에 대해서는 각종 광산의 개발권을 얻어내는 정도로 만족해야겠군. 다음의 주제는 새로 만들어진 영토를 병합하는 과정이오.”
“철도부터 만드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옵나이다. 예산 편성을 당장에라도 진행하겠사옵니다.”
김좌근은 어떻게든 자신이 사용할 예산을 줄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본래 호조와 탁지승지로서 배분해야 할 상당수의 예산을 철도에 먼저 배정하는 것이다.
철도 예산으로 편성된 순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예산이 되니 필사적인 생존 전략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 말을 들은 효명세자는 김좌근의 주장을 듣더니 한숨을 쉬며 말하였다.
“내가 알기로 옛 고려(고구려) 시절부터 요동의 철이 질이 좋기로 소문이 나 있는데 어찌하여 이 나라에서 철도를 만들어야 하는지 모를 일이오.”
“하오나 신의 판단으로는…….”
“근래에 들어 요순학자들이 서역의 학자들에게 지질학을 배워 맹렬히 활동하고 있다 하더구려. 이들을 통해 탄광과 철광을 개발하고 전로(轉爐)를 양산하여 요동을 거점으로 삼음이 마땅하지 않겠소?”
효명세자도 생각한 것은 많았다. 이 발언을 시작으로 요동에 대규모 제철소를 세우는 것은 물론 작물 육성, 인구 배분 등의 압도적인 과업이 호조에 배정되었다.
“아무리 보아도 새 직제를 먼저 적용할 곳이 호조 같구려. 탁지부와 상공부를 먼저 설립할 것이니 탁지승지가 임시로 탁지부를 통솔하면 어떠하겠소?”
김좌근은 손을 벌벌 떨면서 도망치려 하였으나 도망칠 길이 없었다. 앞으로 수많은 업무에 시달리게 된 신료들 모두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희생을 강요하였다.
그렇다, 지금 이 자리에서 김좌근은 희생된 것이며 그의 희생은 최적화된 요동의 개발로 이어지리라.
#작가의 말
조선이 딱히 견제를 안 당하는 이유가 해양세력 투사를 안 하는 덕분입니다.
일본을 정벌하면 다음 차례는 남중국해와 태평양인데 이렇게 되면 서희순의 의견대로 최악의 경우에는 5개국의 견제를 당합니다.
그러니 일본은 경제적 종속을 시키면 될 일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