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99화 (99/345)

99. 9장 15화 동지조약

순조는 순순히 요구사항을 받아들인 청나라를 못마땅하게 보았지만 천명이 무너질까 염려하였다.

협상을 진행할 때까지 휴식을 취하게 된 순조는 이를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청나라의 천명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였구나. 황군이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무너지는 와중에 남방의 백성들이 온 힘을 다하여 싸우니 참으로 기특하면서도 불행한 일이로다.”

“신 또한 주상전하와 같은 마음이옵니다. 천명이 무너지면 난세가 시작되는 법이며 이렇게 되면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신 또한 짐작할 길이 없사옵니다.”

“그러하니 청나라의 명줄을 오래오래 붙여두어야지. 이 과정에서 우리 조선이 개입하여 청나라가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

순조의 뜻은 청나라를 거대한 시장이자 힘조차 없는 돼지로 만들라는 말이었다.

물론 뜻이 있을 뿐이지 어떠한 방법으로 이를 진행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하여 푸념하듯 말하였다.

“내가 늙고 세상의 정세를 잘 알지 못하여 이런 뜻을 가지고 있을 뿐이지. 그러하니 자네를 비롯한 관료들이 세자를 보좌하여 이 뜻을 이루도록 하라.”

효명세자가 도착할 때 까지 산해관을 앞에 두고 휴전이 이루어졌다. 병사들은 강화 협상을 맺고 전쟁을 끝낼 예정이라는 소문이 퍼지자 너나할 것 없이 환호성을 질렀다.

마침내 양력 12월 20일, 효명세자가 육로를 통하여 산해관에 도착하였다. 하필이면 가마도 마차도 아닌 말에 타고 저 멀리서부터 달려왔다.

전령이 소식을 전하는 시일을 계산하면 15일 만에 600㎞를 주파한 수준이다. 효명세자는 순조를 보자마자 말에서 내리고 달려와서 고개를 숙이고 잘못을 논하였다.

“아바마마를 엄동설한에 보낸 불효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겨울의 혹한에도 군을 이끌고 맞서 싸우신 아바마마를 두고 궐에 있었으니 이는 지극한 불효이옵니다.”

“네가 궐에 머무르며 나라를 통솔하였으니 이는 내가 명한 바가 아니더냐. 이 엄동설한에 무릎을 꿇으려 하다니 또 다른 불효를 할 셈이더냐.”

순조가 효명세자를 일으켜 세우고 부자는 거의 석 달 만에 서로를 만나 눈시울을 붉혔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은 순조는 몸을 돌려 산해관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처음에는 필사적으로 맞서 싸우고자 하였으나 일이 이렇게 돌아갈 줄은 몰랐구나. 청군을 모조리 격파하고 길을 열어두었으니 이제 네가 나설 차례이다.”

“소자가 청국과 영길리의 협상을 주도하게 되었사오니 사력을 다하여 협상을 주도할 것이옵니다. 혹여나 아바마마께서 원하는 바가 있으시옵니까?”

순조는 효명세자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니 웃으며 어깨를 두드리고는 부탁을 하였다.

“네가 이미 영길리에 다녀온 사람이니 영길리의 습속을 모조리 알고 있을 터. 지금까지 영길리가 저지른 행동을 모조리 갚을 협상을 제안하여 숨통을 틀어막도록 하여라.”

“소자가 감히 아뢰오니 숨통을 틀어막으면 아니 되옵니다. 자고로 쥐를 잡을 때에는 도망칠 길을 하나 열어두어 길목에서 목을 내리쳐야 하는 법이 아니겠사옵니까?”

“그 또한 옳은 말이로구나. 외무승지와 동지사가 너를 도울 것이니 숨구멍을 하나만 틔워두어 영길리가 곤란한 처지에 놓이는 꼴을 마련하면 더욱 좋겠구나.”

순조는 나에게 고개를 돌리며 한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자신은 감정적으로 움직여 좋은 성과를 거두었을 뿐이지, 제대로 된 외교를 실시할 수 없음을 인지하였으리라.

이는 순조의 시대가 끝나가며 효명세자의 시대가 다가온다는 증거이기도 하였다.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순조를 향하여 고개를 숙이고 말하였다.

“신 박현상이 아뢰오니 영길리의 사람이었던 경험을 살려 세자저하가 실시할 조약을 온전히 수행할 것이옵나이다.”

“자네가 알아서 할 일이니 염려하지 않아도 되겠군. 그러하면 궐로 돌아가자꾸나!”

순조의 어가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대소신료 모두와 경계에 나선 병사를 제외하고 절을 올렸다.

석 달 만에 나를 만난 효명세자는 내 손을 맞잡으며 호기롭게 말했다.

“아바마마께서 마지막 협상을 일임하였으니 이를 잘 이행하여 이득을 더욱 키우도록 하세나.”

“명심하겠사옵니다. 그러하면 열국의 외교관과 함께 산해관으로 들어가도록 하시옵소서.”

중립지역임을 표방한 청군은 산해관 중심에 있는 종고루(鍾鼓樓)를 회담 장소로 정하였는데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회담 소식을 전한 프랑스의 연락선이 광주에서 돌아와 보고를 올렸다.

“영국의 선박이 어제 당도해야 하는데 유빙(流氷) 때문에 배가 하루 지체될 예정입니다.”

“하루가 지체된다 하였는가? 협상을 공표하고 스무 날이나 지났는데 어찌 된 일인가?”

정작 같이 와야 할 영국 선박이 뒤처진 것이다.

효명세자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외교관들을 돌아보았다. 이 시대에는 하루 정도 늦는 일이 허다하였으나 짜증을 내면서 말하였다.

“회담은 일정대로 진행하는 법이니 익일인 양력 십이월 이십이 일 다섯 시에 개최하겠네.”

늦은 놈이 잘못이라는 논리이니 외교 결례이지만 결례는 영국이 먼저 저질렀다.

내일의 회의를 기대하며 프랑스 연락선의 정보를 취합하고 외교관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조선의 외무승지이며 이번 협상에서 세자저하를 보좌하게 된 박현상이라 합니다. 서양의 여러분들은 한센 박이라 알고 계실 것인데 여러분의 면모가 궁금하군요.”

“조선의 왕족이신 남연군 대감을 따라 방문한 스페인의 피덴시오 뵈르만입니다.”

“저는 프로이센 출신의 알브레히트 폰 베른스토프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오스트리아에서 조선 주재 외교관으로 발령된 프란츠 데 파울라입니다.”

조선에는 서양 열국의 외교관들이 주재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경험이 적은 젊은 외교관들을 동방에 배정하여 경험을 쌓게 하였다.

청나라의 요청대로 협상을 중립적으로 판단할 3개 국가의 외교관을 효명세자가 선정하여 데려왔다. 당연히 서양의 외교 알력을 알고 있는 효명세자의 의도가 보이는 배치였다.

스페인은 세력이 약하지만 지브롤터의 분쟁이후 영국과 사이가 안 좋은 편이다. 여기에 프랑스의 나팔수나 마찬가지이니 중립이라 보기도 힘들었다.

프로이센은 이번 전쟁에 간접 참전한 프랑스와 인접국이라 사이가 꽤 안 좋다. 그렇다고 영국이나 러시아와의 관계가 좋은 것도 아니고 불편한 수준이었다.

오스트리아는 유럽의 빈 체제를 구축한 맹주로서 외교력에서 손꼽히는 국가이다. 물론 그리스 독립전쟁을 지원한 영국과 러시아의 사이는 안 좋은 편이다.

이 세 국가가 영국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중립국의 한계였다. 완전 중립이 아니고 아무튼 영국을 싫어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프랑스와 러시아를 견제할 수 있는 나라이니까.

회담이 결정되자 저녁부터 북문인 위원문과 서문인 영은문에 청나라의 군대가 머물렀다. 여기에 동문인 천하제일관과 남문인 망양문에 조선의 군대가 머무르게 되었다.

하루를 푹 쉬고 새벽 3시에 일어나 온몸을 씻고 회담을 준비하였다. 회담장인 종고루는 본래 회담 용도가 아니지만 청나라의 인부들이 이를 개조하였다.

이 건물의 종과 고(鼓 - 큰 북)가 철거되고 2층이 회담장소가 되었다. 주변 건물의 안전을 확인한 병사들이 신호를 보내자 양측 협상단이 차례로 입장하였다.

“조선의 세자 영(旲)이 청나라의 친왕이신 정친왕 전하를 뵙겠습니다.”

“불민한 몸이지만 아이신기오로의 성씨를 물려받은 사람으로 인사를 받겠네.”

아직 조선이 황제국도 아니고 세자와 친왕이니 효명세자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이런 예절과 달리 청나라를 대표하는 정친왕 아이신기오로 두완후와는 시작부터 위축되었다.

아마 조선 측에서 중립을 표방하는 3개국을 모아올 때 베트남의 응우옌 왕조의 사람이나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 그리고 오키나와의 류큐 왕국을 데려왔으리라 상상한 것 같았다.

“죄다 서역인이니 이 어찌 된 일인가. 혹여나 서역인을 잔뜩 데려와 우리를 속이고 협상을 진행할 것인가?”

“저 또한 고심 끝에 사람을 선별하였으니 이해하여 주십시오. 월국(越國 - 베트남)이나 왜국의 사람을 들여오면 대처를 하지 못할 것이 아닙니까?”

두안후와가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3개국의 외교관들이 소개를 하자 마지못해 이해하였다. 청나라 방향에는 두안후와를 시작으로 외국어에 능한 인재 네 명이 앉았다.

이후 효명세자를 시작으로 양옆에 나와 박규수가 착석하고, 바깥쪽에는 참전 국가인 프랑스의 대표로 마르몽과 러시아 대표로 보리스 푸시킨이 앉았다.

원탁의 남은 공간에는 영국 사절단이 앉을 자리가 배정되었지만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잠시 인사를 나누는데 밖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헐레벌떡 뛰어온 영국 사절단이 인사를 올렸다.

“몇 시간 뒤 도착할 예정이라 하였는데 협상을 벌써부터 진행하시다니요!”

숨을 헐떡거리며 자리에 앉은 찰스 엘리엇과 영국 협상단의 대표가 착석하고 회의가 시작되었다. 모두가 모이자 두안후와가 조선의 협상안을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말하였다.

“이상이 조선의 협상안이지. 영길리의 협상안 또한 읽을 것이니 경청하시오.”

영국의 협상안은 본래 역사의 1차 아편전쟁에서 제시한 협상안과 비슷한 내용이었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았다.

-광주를 비롯한 5개 항구의 개항과 홍콩을 비롯한 3개 섬의 할양, 영국 법률 적용

-아편을 비롯한 무역품의 무관세, 무제한적 수입 허용과 영국 상인 주도의 독점 무역 허용

-전쟁 배상금으로 은자 1,500만 냥 제공

이걸 그대로 적용할 생각은 아니고 어느 정도 양보를 하면서 항구 개항과 섬 할양, 그리고 아편 무역을 재개하려 하였으리라.

내용을 다 확인한 마르몽이 먼저 비판하였다.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면 저런 조약을 맺을 자격이 있지. 그런데 패전국 주제에 저런 조약을 맺는 것은 말이 안 되는 혜택이 아닌가?”

“광주를 함락하고 내륙으로 진군하여 청나라 군대를 무찌르고 있는데 승전이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더군다나 동맹국인 조선이 압도적인 승전을 거듭하였지 않습니까.”

“철갑 증기선 한 척은 광주 앞바다에서 티 인퓨저(tea infuser - 찻잎을 넣는 철망)처럼 홍차를 질질 흘리고 있지 않나? 병사들도 기습과 질병으로 광주 근처에서 돈좌되었다던데?”

프랑스 연락선을 통하여 소식을 전달받은 마르몽은 청산유수처럼 영국군의 실태를 털어놓았다. 그러더니 한 손을 주먹을 쥐고 높이 들어 ‘나가 죽어라’라는 표시를 하며 말하였다.

“내가 배신자이지만 배신자는 죽어 마땅하지. 졸전과 패전을 이어가는 영국 군대가 승전을 논하다니 영국의 여왕과 내각을 배신하지 않았나? 그냥 죽어버리게나.”

중립을 지켜야 할 외교관들도 웃음을 터트렸다. 그제야 찰스 엘리엇이 3개국의 사람들을 살펴보았고 보통 상황이 아님을 짐작하였다.

모두 다 효명세자의 의도였다. 정상적으로 회담을 진행해 중립국 외교관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면 처음부터 승전이라는 말을 입에도 올리지 않았으리라.

여기에 더 불을 지르려 하였다.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회담을 논하는 데 사견은 필요 없으며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아야지요. 그런 점에서 저 박현상이 조선의 협상안을 수정하고자 합니다.”

“협상안을 수정하겠다고 하였는가? 어느 항목 말인가?”

“일전에 조선에서 개항하기로 약속한 항구에 관하여 이를 두 개로 줄이려 합니다. 대신 남은 한 개의 권리를 영국의 요청과 결부시키면 어떠하겠습니까?”

영국의 의견을 모조리 묵살하면 조선과 영국이 무역을 할 길이 막힌다. 더군다나 프랑스를 아무리 신뢰하여도 국제 관계가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데 모두 신뢰할 수는 없다.

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두완후와는 이전의 약속을 저버리려는 것 같은 내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서 영국의 숨통을 조금은 틔워줄 생각으로 말하였다.

“홍콩 섬을 이십년 동안 할양하고 자유무역항으로 삼아 영국의 제안을 일부 받아들이는 것이 어떠합니까? 저희 조선은 상해(上海 - 상하이)와 청도(淸島 - 칭다오) 두 항구면 족합니다.”

“그러하면 영길리의 요청대로 법률을 영길리의 것으로 적용하는가?”

“조선의 법을 적용하여야지요. 제가 알기로 영국은 프랑스의 권리를 무시하고 해군을 멋대로 보내 견제를 하지 않았습니까? 같은 일이 벌어지면 참 곤란하겠군요.”

이미 프랑스는 영국에게 뺨을 한 대 두들겨 맞은 상황이다. 멋대로 해군을 보내 무력 압박을 가하였으니 영국의 개항지에도 동일한 행위를 해도 할 말이 없었다.

물론 인도같이 엄연한 영국 식민지라면 보호를 받겠지만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역이라면 프랑스의 자비를 구걸해야 하는 입장이다.

찰스 엘리엇은 나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그러하면 나머지 두 개 섬의 할양과 다섯 개 항구의 할양은…….”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인도양을 넘어 남중국해까지 세력을 투사할 여건이 되는지가 궁금할 지경이군요. 혜택을 하나 더 드릴 테니 조선의 개항지는 영국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결국 조선에 목줄이 채워져서 질질 끌려다니라는 말이 아닌가!”

“그럼 회담을 파기하고 전쟁을 일 년만 지속하면 어떠하십니까? 보름 정도 뒤에는 유럽 전체에 지금까지의 전쟁 진행 상황이 퍼질 것인데 본국이 뭔 몰골이 되겠습니까?”

이번 사태가 영국 본국에 들어간다면 내각 총사퇴가 기본이다.

당연히 원정군 철수가 시작되고 찰스 엘리엇을 비롯한 지휘관들은 온갖 조리돌림을 당하리라.

최소한 체면치레라도 할 수 있는 수준의 협상을 타결해서 돌아가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으리라.

내 옆에 앉은 마르몽은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다 귓속말을 하였다.

“영국을 너무 몰아세우지 말고 숨통을 조금씩 틔우도록 하게. 지나치게 몰아세우면 프로이센을 시작으로 협상을 조정하려고 들 것이 분명하다네.”

“그러면 프랑스와 러시아의 이득을 조금씩 논할 차례군요.”

기존에 영국이 영향력을 행사하던 남중국해 일대의 항구 중 두 개인 광주와 복주(푸저우)는 프랑스에 개항되었다.

두안후와는 프랑스와 영국의 관계를 알고 이를 단번에 허락하였다.

“영길리의 사람들이 드나들지 않는다면 좋다네. 그럼 계속하도록 하게.”

“이번에는 조선에 할양된 영토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러시아에서 쌍성자(우수리스크)를 비롯한 연해주 일대를 통치하면 어떠하겠습니까?

“그 또한 받아들일 일이지. 조선에서 너무 많은 땅을 떼어주는 것 같지만 조선이 알아서 할 일이지.”

이미 니콜라이 1세가 카자크 기병과 3만여 마리의 군마를 지원하며 연해주에 대한 할양을 요청하였다. 이 비중이 작은 것도 아니고 조선의 승전에 확실히 기여한 지원이었다.

러시아에서 심혈을 기울여 보낸 군마가 아니라면 조선의 기병대도 존재할 수 없었다. 기껏해야 프랑스에서 수입한 군마로 기병 4천을 육성한 것이 한계이리라.

결과적으로 러시아의 지원이 없었다면 조선군은 아직도 만주 벌판에서 팔기군에게 시달리며 진퇴양난에 빠져 있으리라. 결과적으로 이기겠지만 이 정도로 빠른 승리는 거둘 수 없었다.

연해주 일대의 경제권은 조선에 종속된 상태이니 별문제도 없었다. 러시아가 40만 이상의 화전민을 모조리 추방한다면 모르겠는데 그런 미친 짓을 하면 조선이 가만히 있을 리도 없고.

지도를 확인한 중립 3개국의 외교관들은 기존의 청나라 영토인 연해주의 할양에 대하여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이는 명백한 승전국인 조선이 지분을 나누어 주는 것이라 인정하였다.

물론 러시아의 동진을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영국 입장에서는 뼈아픈 손실이었다.

찰스 엘리엇의 표정이 점점 뒤틀렸는데 이제 전쟁 배상금을 조절할 차례였다.

“조선은 영국의 화폐로 이백만 파운드, 약 은자 일천만 냥의 국채를 짊어졌습니다. 조선에 보낼 전쟁 배상금 가운데 일천만 냥을 영국에 배정하여 국채를 갚겠습니다.”

“그럼 조선에 지급할 비용은 총 은자 이천육백만 냥으로 줄어드는 격이로군.”

영국 입장에서는 어차피 받아낼 돈을 조금 더 일찍 받게 된 이득이 전부였다. 결국 영국이 얻어낸 것이라고는 홍콩의 20년 할양이었다.

찰스 엘리엇은 간절한 눈빛으로 협상을 중재하는 외교관들을 바라보았다. 이 눈빛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은 프랑스 편이니 웃고 있었고 오스트리아는 시선을 회피하고 프로이센이 그나마 신중히 생각하였다.

최종적으로 협상을 타결하기 전 효명세자가 내용을 읽어보았다.

그리고는 안타깝다는 듯이 마르몽을 바라보면서 말하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불란서에게 제약 하나를 걸 것이 있네. 일전에 니트로셀룰로오스를 삼 톤이나 판매하였는데 잘못하면 위험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군.”

“생각해 보니 그렇군요. 해적들이 멋대로 위험 물품을 구매하여 영국 배에 구멍을 내 버릴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그러하니 금수품 항목에 니트로글리세린을 비롯한 신형 폭약과 무기를 추가하면 어떠한가? 이 항목들은 모두 청나라 조정의 관리가 관여하여야지 거래할 수 있게 만들지.”

기껏 청나라 시장을 개척하게 된 프랑스 입장에서 이 제안은 참 난감한 내용이었다. 최신식 소총과 화포를 팔아치워서 이득을 챙기려 했는데 중간에 가로막힐 수 있게 된 격이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프로이센의 대사만 초조해하는 가운데 두안후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하였다.

“당연한 일이지. 조선에서 훌륭한 의견을 내놓았으니 적극 추진하도록 하지.”

최신식 무기를 수입하는 길을 스스로 막아버리는 모습을 보고 찰스 엘리엇조차도 놀란 모습을 보였다. 두안후와는 스스로 붓을 놀려 최종 협상안에 이 내용을 기입하였다.

청나라 조정에서는 밀수된 무기로 인하여 한족이 무장을 갖추고 반란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피해망상에 빠져있었다.

임칙서가 거둔 성과로 인한 피해망상을 효명세자가 눈치챈 것이다. 다른 나라가 보기에는 엉뚱한 제안이지만 청나라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조약이었다.

“병장기와 화약의 목록은 차근차근 적어나가도록 하고 이를 수입할 때에는 필히 청나라의 중앙 관료의 허가 하에 물량을 정함이 마땅하네.”

두안후와는 이이제이에 성공하였다 판단한 것 같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모두가 영국을 싫어하고 있으니 일종의 집단구타를 조선이 성공한 격이었다.

이를 동지(冬至) 조약이라 명하였으며 찰스 엘리엇을 필두로 한 영국 외교관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만족하여 도장을 날인하였다.

최종 조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조선은 기존의 군신관계 대신 평등한 형제관계로 맹약을 맺는다.]

[포로의 방면을 위하여 청나라에서는 은자 10만 냥을 제공하며 총 5만 명과 비전투 전력을 방면한다. 나머지의 처우는 조선의 몫이다.]

[조선에는 항구 2개를 개항하며 각기 상해와 청도이며 영국의 상선도 머무를 수 있다. 법률은 청나라와 조선의 법을 각기 존중하여 적용한다.]

[새 국경을 대릉하로 삼는다. 조선에서는 연해주 일대를 러시아에 할양하고 소속된 주민은 청나라에 소속될 경우 조선의 인도 하에 이동한다.]

[총 전쟁 배상금은 은자 2,600만 냥이며 이는 5년 이내에 납부한다.]

[삼전도의 비석의 측면을 쪼아내어 이 조약을 적어낸다. 기존 글귀는 그대로 보존한다.]

글귀를 굳이 보존할 필요는 없었지만 효명세자가 뼈아픈 기록도 감당해야 한다면서 보존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영국에는 다음과 같은 조약이 채결되었다.

[홍콩을 영국에 20년간 할양하며 조선인 관리가 분쟁을 해결한다.]

[영국에게 조선의 국채를 대신하기 위하여 은자 1,000만 냥을 배상한다.]

이외에 프랑스와 러시아도 조약을 체결하였다. 총 4개국의 이권이 걸린 공통 조약으로는 무기와 화약을 비롯한 위험물에 대한 관리 항목이 들어갔다.

이제 영국에게 남은 길은 패전의 멍에를 덮어쓰는 길 하나였다. 최소한 내각 총사퇴를 기본으로 하고 대다수의 정치인들의 집에 돌이 날아 들리라.

#작가의 말

청나라 : 이이제이 가랏!

조선 : 가랏! 집단구타!

프랑스 : 영국을 줘팬다고?

러시아 : 나도 끼어야지!

프로이센 : 다들 모여!

스페인 + 오스트리아 : 헤헤 난장판이다!

영국 : 으아아아악!

연해주 할양은 6장 변혁(2)와 변혁(3)에 미리 약속된 내용입니다. 물론 주인공이 연해주를 생으로 할양하지 않았습니다.

화전민을 30만가량 보내서 연해주의 경제권을 종속시켰습니다. 명목상으로는 러시아 영토인데 경제와 인구는 조선에 종속된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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