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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98화 (98/345)

98. 9장 14화 화의(和議)

양력 11월 27일이자 음력 11월 4일,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전쟁이 발발하고 2개월이 조금 넘게 경과하였지만 조선군은 이미 산해관에서 40㎞ 거리까지 진군하였다.

이 장계가 북경까지 올라오려면 하루가 조금 넘게 걸리니 삼 일 후에는 산해관이 공격당할 것이 분명하였다.

도광제는 팔기군 기주들과 황족을 소집하여 오늘도 회의를 시작하였다.

“이제 산해관이 무너지기까지 며칠조차 걸리지 않겠군. 방도라도 말하여 보게.”

“황상께 아뢰오니 산해관은 천하제일의 관문이옵니다. 그러하니 적어도 보름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것이며 겨울 추위에 호되게 당한 조선군이 물러날 것이옵니다.”

아직도 괜찮다는 말을 논하는 관료를 노려본 도광제는 아무 말 없이 금군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금군들이 나서서 관료를 끌고 나갔다. 이후 건장한 금군들이 온 힘을 다하여 곤장을 치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

도광제는 전장에서 수집한 정보를 떠올리고 관료들에게 조선군의 백린탄에 대해 논하였다.

“천하제일의 관문이니 보름을 버틸 것이라? 물을 부어도 꺼지지 않는 불꽃을 마구 쏘아대는 조선군이 산해관을 함락하는데 며칠 정도 걸릴 것 같은가?”

“황상께 아뢰오니 보름은 버티지 못할 것이라 사료하옵니다. 잘하여야 열흘 정도를 버티면 족하며 실지로는 이보다 더욱 빠르게 무너질 것이옵나이다.”

“아마 그러하겠지. 자이콴의 시신과 함께 전해진 정보는 물론이요,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지리멸렬한 머저리들의 말 또한 그러하니까!”

분노를 참을 수 없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도광제는 손을 쥐었다 펴고 심호흡을 하며 어떻게든 화를 억누르려 하였다.

처음으로 들어온 장계는 조선군이 사기가 떨어져 지리멸렬하였다며 승전을 논하는 장계였다. 그 장계가 조카인 아이신기오로 이샨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이레가 지나자 실제로는 조선군을 상대로 처참하게 패전하였다는 장계가 도착하였다. 다시 닷새가 지나자 부사령관인 직례총독 키샨이 전사하고 총사령관 자이콴이 포로가 되었다는 장계가 도달하였다.

더군다나 조선의 왕이 직접 군대를 이끈다는 믿기지도 않는 소식까지 전해졌다. 다음으로는 심양성의 함락 보고가, 이후로는 연이은 패전 기록만 들려왔다.

대부분의 성채나 요새는 잘해야 하루, 아주 간혹 이틀 정도를 버티고 패배하여 퇴각하였다. 이를 떠올린 도광제는 더 이상 분노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자리에 앉아 말하였다.

“태조태황(太皇)께서 명나라와 조선의 군대를 몰살시킬 적에도 이토록 승전만 거듭하지는 아니하였다. 누가 이 사태에 대하여 말이라도 해보지 않겠는가?”

조선군을 쓸어버리겠다고 호언장담한 금려팔기의 기주(旗主)들은 도광제와 눈이 마주치기 무섭게 고개를 숙이며 시선을 회피하였다. 결국 도광제의 분노가 다시 폭발했다.

“누가 조선의 군대를 막아설 수 있는 방안이라도 논하여보거라. 잘해야 열흘이 지나면 산해관이 무너지고 북경으로 조선의 병사들이 진군할 것이 아니더냐!”

“신 두안후와(端華, 단화) 아뢰옵니다. 광주 일대에서 영길리의 군대를 필사적으로 막아내는 임칙서의 방안을 택하시옵소서. 북경의 장정들을…….”

“소집하면 무엇이 되더냐! 전투가 끝나면 황군이 무너지고 요동이 침탈당하였으며 병졸들이 지리멸렬하였다는 소문이 퍼져 나갈 것인데!”

청나라 황실의 일원이자 팔기군을 이끄는 이혁정친왕(已革鄭親王) 아이신기오로 두완후와의 주장은 청나라가 일반적인 한족으로 구성된 국가라면 합당한 대처였다.

반면 청나라는 소수의 만주족이 지배계층으로 군림하며 다수의 한족을 지배하는 국가였다. 한족을 소집하여 군대를 만들면 설령 사태를 수습해도 훗날 발흥할 한족의 반란으로 국가가 전복될 염려가 있었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병력을 소집한다면 이런 후유증을 방지할 수 있지만 상대는 조선군이었다.

도광제는 손가락을 꼽아가며 상황을 논하였다.

“녹영군과 금려팔기가 오만 명 이상 전쟁에 참전하였다. 이들이 처참히 패하였으니 북경에서 오십만 대군을 소집해야 승산이 있겠지. 이들이 살아서 돌아가면 어떻게 되겠느냐?”

도광제는 한숨을 깊게 내쉬고 욕을 내뱉으려다가 이를 속으로 감추었다. 그나마 말이라도 하였으니 다행이지 나머지는 시선을 피하다가 가까스로 한 신료가 방안을 논하였다.

“하오면 조금이라도 협상안을 조정하여 받아들임이 마땅하옵니다. 조선은 물론이요 영길리 또한 동맹을 자처하여 참전하였으니 약간의 수정을 통하여…….”

“영길리라면 몰라도 조선은 자신들이 논한 사항을 절대 수정하지 않겠다고 확언을 하였다!”

이제 청나라에 남은 길은 세 가지였다.

첫 번째 길은 몽진(蒙塵)하여 북경을 내어주고 조선군의 힘을 빼놓는 것이었는데, 죽음을 늦출 뿐 확실한 멸망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선군이 북경을 함락하는 선에서 만족하더라도 황제의 위신은 바닥에 떨어지리라. 번국에 처참한 패배를 당했으니 사방에서 한족들이 난을 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두 번째 길은 두완후와의 주장을 받아들여 한족을 소집하는 방법이었다. 조선군을 확실하게 소모시켜 격퇴하려면 엄청난 자금과 물자가 소모되는 것부터 문제였다.

이 문제를 해결하더라도 모든 한족이 조선군에게 깔끔하게 전멸당할 리는 없었다. 생존자들을 통해 소문이 퍼질 것이며 청나라의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난이 일어나리라.

세 번째 길은 조선과 영국의 협상안을 받아들이는 길이었다. 차마 논하기도 흉측하며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굴욕인 협상이었으니 나라가 확실히 붕괴되리라.

도광제는 이 세 가지 길 외에 다른 방법을 생각했지만 아무리 생각하여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관료들에게 다른 의견을 들으려는 도광제에게 전령이 도착해 보고를 올렸다.

“열흘 전에 광주 일대에서 일어난 전투에 대한 장계이옵니다. 총독 임칙서가 연이은 패전에도 객가와 한족을 규합하여 영길리의 병졸들과 다시금 맞서 싸웠사옵니다.”

도광제의 불안요소는 하나가 더 있었으니 임칙서의 존재 그 자체였다. 조선군을 상대로 북경에서 연전연패를 거듭하는 와중에도 영국군을 상대로 필사적인 저항을 이어갔다.

“보고를 시작하라.”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임칙서는 도합 네 차례에 걸쳐 병력을 소집하였으며…….”

보름 전인 11월 13일경 올라온 보고가 시작되었다. 임칙서는 지리에 능하고 호전적인 객가를 앞세워 기습과 유인작전을 구사하였다.

병력 사백여 명이 죽은 대가로 영국군을 스무 명 정도 죽거나 다치게 하였으나 부수적인 피해를 입히는 데 성공하였다.

전령은 목소리를 높여 이 사실을 논하였다.

“오염된 물을 마신 영길리의 병사들 사이에서 날이 갈수록 병이 퍼지고 있다 하였사옵니다. 진군이 가로막히고 돈좌된 영길리의 오랑캐들을 재차 공격할 것이라 하옵니다.”

“참으로 좋은 일이로구나. 그러하면 북방의 상황은 임칙서가 알고 있더냐?”

“전령이 오가는 시일을 생각하면 며칠 전에야 인지하였을 것이옵니다.”

임칙서의 결사항전은 평상시라면 존중해 줘야 마땅하였지만 상황이 문제였다. 황제의 군대가 돼지처럼 도륙당하는 와중에 저런 성과를 거두면 훗날 문제가 될 것이 분명하였다.

더군다나 병력의 주축이 팔기군도 아닌 변방의 떠돌이 민족인 객가와 한족이었다.

이 사실만으로도 부담이 막중해진 도광제는 자리에서 일어나 말하였다.

“몽진도, 한족의 소집도 그리고 화의(和議 - 협상을 받아들임)도 논할 수 없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지 논하여보거라. 짐은 잠시 마음을 달래고 돌아올 것이다.”

시시각각 천명이 무너질 위기에 처한 도광제는 어린 나이부터 황위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황자들을 찾아 이궁인 원명원으로 향하였다.

두 황자는 도광제의 부름을 받고 인사를 올렸다. 비록 둘 중 하나를 택하여야 하지만 도광제도 두 아들을 사랑하는 아버지였다.

인사를 나눈 부자는 평상에 걸터앉아 정원의 정취를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4황자 이주가 질문을 하였다.

“소자 이주 폐하께 아뢰옵나이다. 아바마마의 용안(龍顏)에 그늘이 보이오니 소자가 며칠 전에 학업을 중단하고 놀이에 열중한 것을 고변하겠사옵니다.”

아직 열 살에 불과한 4황자 이주(奕詝 - 혁저), 훗날의 함풍제는 자신의 행동이 도광제를 노하게 하였다 생각해 고개를 숙이고 잘못을 뉘우쳤다. 도광제는 헛웃음을 흘리며 말하였다.

“그러한 일이 아니로구나. 짐이 고민이 있으니 근래에 들어 조공을 바치던 번국인 조선과 영길리가 변란을 일으키려 하는구나.”

“조선도 동이(東夷)라 불리는 오랑캐이며 영길리는 서역의 오랑캐가 아니옵니까? 어찌하여 두 오랑캐가 함께 난을 일으킨다는 말이옵니까?”

“그러하니 고민이로구나. 천자국은 언제나 여러 오랑캐를 다스리며 화이(華夷)들을 통솔해야 하는 법인데 둘이 난을 같이 일으킬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

4황자 이주는 도광제의 말을 듣고 골똘히 생각하였다. 인격은 좋으나 능력이 부족한 그는 이 상황을 오랑캐를 잘 다스리려던 도광제가 고민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반면 이보다 어린 여덟 살의 6황자 이힌(奕訢 - 혁흔), 훗날의 공친왕은 현실적인 대처를 논하였다.

어린아이에 불과한 그의 말은 도광제의 가슴을 찔러왔다.

“소자 이힌 아뢰옵나이다. 오랑캐들이 상국을 떠받드는 것이 순리이니 변란을 일으키면 강한 팔기군으로 몰아쳐서 모조리 무너트리는 것이 답이옵나이다.”

“모조리 팔기군으로 무너트리고 싶지만 그렇게 하면 조공을 바칠 나라가 없어지지 않느냐?”

“하오나 오랑캐들이 법도를 어겼으니 무너트림이 마땅하옵나이다.”

도광제는 여덟 살에 불과한 6황자에게 쩔쩔 멜 줄은 꿈에도 몰라 헛웃음을 지었다. 옳은 방법이지만 오랑캐의 군대가 훨씬 강하니 수도가 함락당할 위기에 처하였다.

반면 이 모습을 바라보던 4황자 이주의 시선은 달랐다. 그는 부족한 머리를 굴리고 굴려 천자로서의 아량을 드러내라는 조언을 하였다.

“소자가 생각하기로 두 오랑캐를 싸우게 만들 방안이 있사옵니다. 중원의 천자는 여러 오랑캐를 다스릴 때 이이제이의 방안으로 다스리는 법이옵니다.”

“이이제이의 방안으로 다스린다 하였느냐?”

“그러하옵니다. 하나의 요구만 들어주고 존중하면 몇 년이 지나 서로를 질시할 것이 분명하옵니다. 오랑캐는 욕심이 많으니 서로 싸우게 마련이옵니다.”

이주의 말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론만 따지면 옳은 말이지만 둘 중 어느 한쪽의 요구조차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문제일 뿐이었다.

영국의 의견을 들어주면 다섯 개의 항구를 개항하고 세 곳의 땅을 내어주며 여기서 아편이 무제한적으로 판매될 것이다.

조선의 의견을 들어주어도 문제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청나라가 발흥한 만주와 요동을 넘겨주고 총 3,600만 냥의 배상금을 지불하는 끔찍한 조건이었다.

그런 도광제의 머릿속에 자이콴의 유언이 떠올랐다.

[어떠한 굴욕을 겪더라도 십 년을 절치부심하여 군대를 육성하고 나라를 온전히 되돌리면…….]

나라를 되돌리려면 조선의 의견을 들어 줄 수밖에 없었다. 조선과 협상하면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만 영국의 협상을 하면 아편이 무제한적으로 유입되는 길이 뚫리는 격이었다.

광주 한 곳에서 판매되는 아편이 나라를 좀먹고 있었는데 다섯 곳의 항구에서 아편이 유입되면 나라를 온전히 되돌릴 길이 막히리라.

도광제는 이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하였다.

“좋은 말이로구나. 오랑캐들을 서로 싸우게 만들면 될 일이 아니더냐.”

마침 잘된 일이었다. 조선은 자신들의 협상안을 절대 수정하지 않기로 하였다. 반면 영국은 협상안을 어느 정도 수정할 길을 열어두었다.

도광제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다시 회의를 진행하였다. 급변한 도광제를 바라보던 관료들에게 세 번째 선택인 화의에 대한 결정이 내려졌다.

“짐이 판단하기로는 조선의 요구를 받아들이되 영길리의 의견을 묵살하는 것이 답 같구나.”

“하오나 조선의 요구만 받아들인다 하여도 사방에서 변란이 속출할 것이옵니다!”

“그러하면 영길리의 요구를 받아들이겠느냐? 아편을 매년 오백만 근이나 들여오던 영길리에게 항구 다섯 개를 내어주고 땅까지 내어주면 아편이 매년 수천만 근이 들어오겠구나.”

수천만 근의 아편이 들어온 청나라의 몰골을 상상한 관료들이 눈을 질끈 감았다.

저 정도 분량이면 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일 년 내내 아편을 피울 수 있는 수입량이었다. 조선과의 협상이 굴욕이라면 영국과의 협상은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도광제는 관료들을 바라보며 다시금 주장을 하였다.

“자이콴이 남긴 유언을 잊었느냐? 우리는 번국에게 기습을 당하여 어쩔 수 없이 땅을 물려주었을 뿐이다. 이러한 굴욕을 십 년, 늦어도 이십 년 이내에 갚을 것이니 명심하여라.”

조선이 영국의 견제를 당하는 동안 청나라는 나라를 최대한 정돈하고 역공에 나서리라. 이런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모든 세력을 포용할 수 있는 인품이었다.

자신이 죽더라도 인품이 좋은 4황자 이주가 이런 문제를 해결하리라.

또한 능력이 좋지만 냉정한 6황자 이힌이 이를 보좌하면 충분하리라 판단하였다.

* * *

산해관을 지척에 두고 한창 공성전의 준비를 하였다. 여러 차례의 승전을 거듭한 조선군의 사기는 하늘까지 치솟아 올랐다.

마르몽은 산해관의 상세를 보면서 말하였다.

“처음에는 사기를 꺾어버리도록 백린탄 사격을 백 발 정도 하면 좋겠군.”

“백린탄을 만드는 비용도 문제가 아닙니까? 더군다나 유산탄이 효과가 훨씬 좋은데 왜 그런 위험한 물건을 사용하시는지요?”

“그것 또한 일리가 있는 말이로군. 그나저나 말년이 다 되어서 이렇게 행복한 전쟁을 치를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이런 맛 좋은 차도 마시다니 호사가 따로 없어.”

가짜 전투를 벌인 팔기군은 퇴각하며 뇌물로 온갖 좋은 물건을 다 내어주었다. 마르몽이 따라준 보이차는 청나라 황실에 진상하는 물품이었는데 조선에서는 꿈도 못 꿀 물건이었다.

병사들도 이런 혜택을 누렸다. 만주와 요동에 거주하던 한인들은 자신들의 재주를 모조리 드러내 군대의 수발을 들었으니 추운 것을 제외하면 너무나 만족스러운 환경이었다.

“주변을 정찰하고 돌아왔네! 적의 움직임은 여전히 포착되지 않는군.”

그루시와 안드레이가 정찰을 마치고 돌아왔는데 예상대로 변수는 없었다.

공성을 치르기 전 항복권고를 위해 사절을 보내려 하는데 산해관의 문이 열렸다.

“설마 또 가짜 전투를 치르자는 말인가. 이번에는 닷새 뒤에 함락시키면 딱 좋겠군.”

“아닙니다. 복식을 보아하니 청나라 황제가 직접 전령을 보내온 것 같군요.”

내 예상보다 조금 일찍 도광제가 조선의 협상안을 수용하기로 한 것 같았다. 격식을 갖추어 국서가 배송되었고 순조는 이를 읽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영길리는 참으로 간사한 나라로구나. 전쟁에 참전하였을 적에는 동맹으로서의 의리를 논하였는데 뒤에서는 이토록 막대한 요구를 강요하였구나.”

“본래 협상이라 함은 어느 정도 합의를 보는 것이 마땅하옵니다.”

아직까지 본 적이 없는 영국의 협상안을 보자 머나먼 서쪽을 보고 저절로 욕지거리가 나오려 하였다.

영국은 남부의 항구를 닥치는 대로 약탈하고 들쑤셔서 괴롭히려는 생각이었다. 물론 이 생각은 순조의, 공식적으로는 프랑스의 화약을 받은 임칙서의 전략으로 무력화되었다. 이런 불리한 상황을 감안하면 협상을 수정할 생각이 들 것이다.

다음 내용을 읽어보니 청나라의 속내를 알 수 있었다. 조선과 영국을 이간질하여 이이제이를 논하려는 것 같은데 내가 정말로 원하던 내용이었다.

[영길리에서 제안한 협상을 최대한 줄인다면 조선과의 협상을 온전히 받아들일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프랑스에 외교적 결례를 범한 영국이다. 여기서 광주를 공격해서 아무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계속 돈좌당한다면 어디까지 협상을 줄일 수 있을지 궁금하였다.

여기서 청나라도 마지막 자존심을 내세웠다. 산해관을 협상 장소로 삼으며 영국의 외교관은 물론이요, 중재를 위한 3국의 외교관을 데려오고 여기에 조선 측 외교관으로 효명세자가 함께하라 하였다.

이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다. 그렇지 않아도 겨울 추위에 시달리는 순조가 보기 안쓰러운 지경이니, 부자가 산해관에서 만나 서로 담소라도 나눌 기회가 생기지 않을까.

#작가의 말

조선측 요구 : 치명상 + 굴욕

영국측 요구 : 부상 + 마약중독 + 좀 덜 한 굴욕

부상이라면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마약중독은 치료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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