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92화 (92/345)

92. 9장 9화 심양성(2)

조선군과의 회전에서 패배한 녹영군 대다수와 일부 팔기군은 양팡과 이산의 지휘하에 심양 내성으로 진입하여 농성을 준비하였다.

처음에는 이들 모두가 도주하려 하였지만 지휘관인 양팡이 필사적으로 병사들을 규합하였다. 이 과정에서 심양성의 물자를 약탈하고 일만여 명의 아녀자들을 끌고 왔다.

오늘도 동이 트기가 무섭게 양팡이 명령을 하달하였다. 점점 더 심해지는 악취 속에서도 이 악취를 더욱 증폭시킬 물건이 차례차례 성벽으로 운반되었다.

“조선의 화포가 강대한 이유는 조선의 무당들이 양기(陽氣)를 모아 요사한 술법을 걸었기 때문이다. 이 술법을 깨트리려면 뭘 해야 하는지 내가 알려주지 않았더냐!”

“알고 있습니다! 더욱 많은 분변과 음기가 깃든 물건으로 성벽을 보호할 것이니 분변을 뿌리고 더 많은 속옷을 매달아 성벽을 지킬 것입니다!”

병사들은 주술의 힘이 자신을 보호할 것이라 믿으며 작업을 시작하였다. 삼만여 명에 달하는 병사들은 조선군이 외성 구역에서 공성전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역시 양팡 장군님께서 말씀하신 대로야! 벌판에서는 마음대로 화포를 쏘던 놈들이 지금은 꾸물거리며 아무 짓거리도 못 하잖아!”

“이 방법이 정말 통할 줄은 몰랐는데 세상 오래 살고 봐야겠어!”

심양 내성과 심양 고궁(古宮)은 계속 생산되는 오물로 오염되고 있었다. 성 둘레가 6킬로미터에 달하고 평균 높이가 7미터이니 성벽 전체를 오물로 뒤덮으려면 아직 양이 부족했다.

오물을 뿌린 병사들은 훈련 같은 상식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이들은 더욱 많은 음기를 생산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그 역겨운 행동을 지켜보던 이산조차도 눈살을 찌푸릴 지경이었다.

“이게 말이나 됩니까? 장군께서는 심양 고궁에서 무슨 짓을 저지르는지 알기나 하십니까?”

병사들을 수습한 이산조차 돌아가는 꼴에 질릴 지경이었지만 양팡은 이런 질문을 받고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병사들의 활기찬 모습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자네가 멋대로 승전 장계를 올렸으니 황상께서는 우리가 승전을 하였다고 알고 계실 것이야. 그럼 조선군을 싸워서 밀어내기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벽에 똥칠을 한다고 조선군이 죽습니까? 적이 공성전을 준비하고 있어서 며칠의 시간을 끌 수 있지 본격적으로 포격이 시작되면 뭔 일이 벌어질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 정도면 충분해. 조선군의 주력은 우리가 있는 심양으로 향하였지. 그럼 남서쪽으로 후퇴한 정군왕께서 병력을 규합할 틈을 내어주는 꼴이 아닌가?”

본래 역사에서 벌어진 아편전쟁에서 양팡은 미신과 주술에 기대 영국군을 상대로 성벽에 여성의 분변을 바르고 요강과 속옷을 걸어두라 하였다.

이 과정에서 병력들이 약탈에만 몰두하는 바람에 시간을 지체하였고 영국군에게 기습당했다. 결국 약탈에 몰두하다가 대부분이 몰살당하였다.

반면 홍타이지가 잠든 심양성이 지척에 있었으니 사력을 다하여 명령을 내렸고 본래 역사보다 조금 나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양팡은 이산을 설득하기 위해 앞으로 벌어질 일을 논하였다.

“조선군이 공성전을 준비하려면 대포를 쏘아야 하지. 이 과정에서 시가지를 철거하면 민심이 흐트러지겠지. 백성을 적으로 돌리게 되었으니 오래 버틸 수 없을 거야!”

“우리가 오래 버틸 수 없을 겁니다! 성안으로 들인 아녀자들이 일만 명에 달하는데 이들은 조선군이 공성을 시작하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며칠만 버티면 된다! 며칠만 지나면 정군왕께서 최소 이만, 운이 좋다면 삼만 대군을 이끌고 강을 건너올 거야. 이렇게 되면 앞뒤로 가로막힌 조선군이 도망칠 수밖에 없지 않겠나!”

양팡의 계획은 그럴싸했지만 성공할 리가 없었다. 조선군도 심양 후방을 견제하며 부상병과 물자를 보호하기 위해 전열보병과 일부 기병대를 할양해 두었다.

석회를 바르고 맨 위에 느릅나무를 심은 홍타이지의 봉분을 바라본 양팡은 콧방귀를 뀌며 음기를 생산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이산에게 당당하게 말하였다.

“자네의 거짓말 때문에 일이 틀어졌지만 한 번이라도 조선군을 밀어내면 겨울이 찾아올 걸세. 그러하면 조선군도 후퇴할 것이고 변명을 할 틈이라도 생기겠지.”

“만약 정군왕께서 병력을 규합하는 데 실패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런 생각을 하느니 조금이라도 병사들의 사기를 끌어올리도록 노력하도록! 정군왕께서는 반드시 심양으로 돌아오실 것이다!”

정군왕 아이신기오로 자이콴이 팔기군을 규합하여 끌고 올 것이라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 전제가 깨어진다면 심양 내성에 갇혀 모조리 몰살당하는 길만이 남았다.

그러한 양팡과 이산의 기대와 달리 정군왕은 난데없이 나타난 수천여 명의 기병의 파상공세에 노출되었다. 심양 외곽의 도시 다섯 곳을 격파한 그루시의 기병들이 공세의 정체였다.

6일 동안 300㎞를 기동하여 10월 23일, 마침내 자이콴이 병력을 규합한 안산(鞍山)에 도달하였다.

“포격 개시! 이 도시에 가장 많은 적이 있다고 하였으니 모두 격전을 준비하라!”

가까스로 자이콴이 설득하고 규합하였던 팔기군은 포격에 노출되자마자 경기를 일으켰다. 이윽고 진군을 목놓아 부르던 팔기군이 자이콴을 내버려두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조선군이 여기까지 왔다면 심양성이 떨어진 게 아니고 뭐겠는가! 심양이 이미 함락되었다!”

“허보(虛報)를 논하는 놈들을 모조리 참수하라! 조선군이 지금 막 심양에 닿았을 시기인데 어서 구원하지 않고 무엇을 하는가!”

도망치려는 팔기군의 목을 손수 베어버린 자이콴은 항전을 독촉하였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그루시의 병력이 견제를 위해 보낸 분견대라 생각하였고 사기를 끌어올리려 하였다.

이런 필사적인 노력에도 포격이 이어지자 팔기군은 도주를 택하였다. 3만여 명에 달하는 기병이 고작 4천 명, 피로로 낙오된 병력을 제외하면 3천 명의 기병에게 무너져 내렸다.

“모두 저 깃발을 향해 돌격하라! 놈들의 지휘관이 저기에 있다!”

무너지는 팔기군은 기병들의 질주를 막을 수 없었다. 늙어서 더 이상 전열에 설 수 없는 그루시를 대신해 최전선에 선 임건보가 칼을 휘둘러 전선을 돌파하였다.

“적장의 목을 베었다!”

기병도를 앞세운 임건보가 날아들 듯이 달려들어 부사령관인 키샨의 목을 칼날로 꿰뚫었다. 키샨은 피를 쏟으며 즉사하였고 남은 팔기군도 도주를 택하였다.

이제 자이콴에게 남은 병력은 오십여 명에 불과하였다. 결사 항전을 독촉한 자이콴의 주변을 수백여 명의 기병이 에워쌌고 그 사이에서 그루시가 나와 피로에 전 표정으로 말하였다.

“살육, 강간, 방화, 폭행, 약탈 그리고 이외에 논할 수 없는 수많은 범죄를 저지른 책임을 물을 차례요. 지휘관께서 청나라의 황족이라는 정보를 입수하였는데 모든 일에 책임을 지시오.”

“책임? 책임이라 하였는가? 나는 황상께 받은 명을 수행하였지…….”

“일대에서 벌어진 일을 모르고 있다? 그 눈구멍은 가죽이 부족하여 뚫어 놓은 구멍이오? 알지 못하면 포로가 되어 실상을 확인하거나 죽어서 주님 앞에서 죄를 논하시오!”

그루시의 말 속에 깃든 분노는 번역을 통해서도 전해졌다. 이제 자이콴에게 남은 길은 깔끔한 죽음과 포로가 되어 굴욕을 겪는 두 개의 길밖에 없었다.

그는 황족으로서의 명예와 위신을 위해서 죽음을 택하려 하였다. 자신을 죽이라는 답을 하려다 잠시 망설이는 중에 분노가 깃든 조선군의 시선을 느끼고 의문이 샘솟았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비참한 패전의 원인을 알고 싶었으며 부하들이 저지른 일 또한 알고 싶었다.

그는 말에서 내려 무기를 버리고 항복을 택하였다.

“항복하겠네.”

“그러하면 앞으로 볼 것이 차고 넘칠 것 같군. 포로를 정중하게 이송하라!”

팔기군을 이끌고 심양으로 복귀하려던 자이콴은 포로 신세가 되어 그루시의 기병들을 이끌고 복귀할 신세가 되었다.

기병들은 총사령관을 사로잡은 위업을 거두었으니 피로에 힘겨워하면서도 온 힘을 다하여 박차를 가하였다.

* * *

순조는 오늘도 멍하니 심양성을 망원경으로 바라보았다. 지난 이틀 동안 조선군은 집을 철거하고 물자를 쌓으며 공성전을 준비하였으나 상대는 다른 준비를 하였다.

“효종대왕께서 머무르시던 심양성이 저러한 꼴이 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인조대왕을 겁박하여 굴욕을 강요하던 청의 태종(홍타이지)의 무덤이 똥 밭이 되다니.”

오늘도 심양 내성의 성벽은 누런색으로 물들고 더욱 심한 악취를 풍겼다.

안에서 지속적으로 생산되는 물건들이 성벽 표면을 장식하니 이를 기록하던 박규수는 나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사관으로서 기록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한 광경일세. 주상전하께서 저토록 상심(傷心)하실 지경인데 청나라 사람 입장에서는 얼마나 끔찍할까 몸서리가 쳐지는군.”

조선으로 따지면 한양에 외적이 쳐들어왔는데 한양도성에 똥을 바르는 꼴과 같았다. 이런 짓은 개편된 조선군이 아닌 옛 조선군에게 시켜도 항명을 할 미친 짓이었다.

물론 녹영군에게는 아니었다. 이들은 성벽 주변을 정리하며 공성전을 준비하는 조선군에게 조총을 쏘며 ‘너희들의 화포는 쓸모가 없어졌다.’ 라고 헛소리를 지껄이고 웃어댔다.

“제가 보기에는 눈앞의 쾌락에 취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저지르고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역겨운 이야기는 집어치우게. 어제 가까스로 도주한 사람이 논한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놈들을 산채로 불태우고 싶어지는군.”

간혹 성의 배수구를 통해 나오거나 틈을 보아 도주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증언이 너무 역겨운 나머지 머릿속에 남지 않고 휘발되어 버렸다.

다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다. 순조와 박규수 심지어 모든 장수들이 증언을 들었고 이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순조는 우리의 대화를 듣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나 말하였다.

“그래! 동지사(同知事 - 박규수의 관직)가 좋은 말을 하였구나! 산 채로 불태워야지! 저런 놈들은 당장 불태워야 마땅하지 않은가!”

“하오나 함부로 화공을 실시하면 성안의 아녀자들도 몰살을 당할 것이옵니다.”

“그래……. 그럴 수도 있기는 하지.”

며칠 동안 화포의 사각(射角)을 어지럽히는 건물들을 철거하고 적의 포격을 대비하기 위한 목책이 만들어졌다.

성벽이 계속 오염되며 악취를 풍겨올 무렵, 좋은 소식이 도착했다.

“그루시가 큰 성과를 거두었구나! 청군의 부사령관 기선(키샨)을 죽이고 사령관 재전(자이콴 - 載銓)을 사로잡았도다. 기병들이 쉴 수 있도록 미리 숙소를 준비하고 이들을 환영하여라.”

그루시의 업적은 마르몽조차 박수를 치며 환영할 지경이었다. 멋대로 사라진 것은 잘못이지만 심양 일대의 여섯 도시를 무너트리고 6만여 명의 팔기군을 격퇴하였다.

이런 격전을 치렀으니 병사들의 상태는 가까스로 말에 타고 있는 상황이었다.

지휘관인 그루시는 반송장 몰골로 보고를 올렸다.

“에마뉘엘 그루시가 조선의 군주께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소장이 사력을 다하여 심양으로 복귀하려던 팔기군을 모조리 격멸하였습니다.”

“이는 모두 자네의 공이니 불란서에도 이 소식을 전하도록 하겠노라.”

“그러하면 잠시 수면을 취하여도 되겠…….”

보고를 올리던 그루시가 자리에 널브러지자 순조는 흡족한 표정으로 손짓을 하며 기병들의 휴식을 명령하였다. 그 흡족한 표정도 잠시, 순조는 분노를 담아 말하였다.

“청군의 총사령관인 정군왕과 논할 이야기가 있으니 어서 끌고 오도록 하여라.”

청군의 총사령관 아이신기오로 자이콴은 포로 신세가 되어 순조 앞에 끌려왔다.

그는 도광제가 임명한 정군왕의 직위를 가진 왕공족이니 순조에게 가벼운 인사만 하였다.

“조선의 임금을 저 자이콴이 뵙게 되었습니다. 친정에 나서셨으니 그 용맹함에 감탄하였으며 이제 포로 신세가 되었으니 자비를 구할 뿐입니다.”

“자비? 자비라 하였는가? 네놈 아래에 있는 병사들이 저지른 꼴을 보고 자비를 논해!”

순조는 어가에서 내려와 자이콴의 바로 앞까지 다가가 분노를 담아 말하였다. 자이콴은 눈을 피하면서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대충이나마 알아차리고 논하였다.

“군의 기강이 땅에 떨어지고 명령도 듣지 않아 비참하게 패배하였으며 사방에서 약탈을 저질렀습니다. 이는 제 잘못이니 조상들께 사죄를 올릴 것입니다.”

“사죄를 올린다? 지금 심양 내성에 잠들어 있는 청 태종이 그 사죄를 받아줄 것이라 생각하였느냐! 두 눈이 있으면 저 몰골을 똑똑히 지켜보아라!”

순조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한 자이콴이지만 내성 근처까지 다가와 망원경으로 성벽을 확인하고 아예 바닥에 주저앉아 버렸다.

그는 아예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사죄의 말을 하였다.

“태조 상황(上皇)이시어! 태종 상황이시어! 후손이 된 몸으로 이런 비참한 꼴을 보여드렸으니 목숨을 바쳐 이 죄를 뉘우치겠사옵니다!”

“네놈의 비루한 목숨 하나 가지고 이 대죄를 거둘 수 있다면 몇 번이고 참(斬)할 것이다. 네가 보기에는 저놈들이 무엇이더냐? 사람이더냐 아니면 짐승이더냐?”

“짐승조차 저러한 짓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니 오물입니다.”

자이콴은 한 나라가 건국된 장소가 똥으로 뒤덮인 꼴을 보고 사람이 아닌 오물이라 평가하였다.

순조는 오물이라는 말을 중얼거리고는 어가 위로 올라가 명령을 하달하였다.

“성안에 있는 놈들은 사람도 짐승도 아닌 오물이지. 오물은 온갖 병을 일으키는 놈들이니 불로 태우거나 잿물(수산화나트륨)로 녹여서 소독한다 하였다.”

순조의 말을 들은 장수들 가운데 마르몽이 조만간 하달할 명령을 눈치채고 앞으로 나섰다.

내 예상대로 순조가 마르몽에게 명령을 하달하였다.

“지난번 회전에서 패주(敗走)할 때를 대비하여 삼백여 발의 백린연막탄을 만들라 명령하였다. 이 연막탄은 물처럼 스며들어 불을 일으킨다 하였지.”

“옳은 말씀이지만 살상용은 아닙니다. 이런 성벽은 유산탄으로 공략하는 것이 옳습니다.”

“적들이 무엇을 논하는지 알지 못하는가? 저들은 양기니 음기니 하는 미신을 믿고 있다. 음기가 가득한 성벽에 물이 떨어져 불을 일으키면 저들이 어떻게 대응하겠는가?”

순조의 논리는 틀리지 않았다. 액체인 이황화탄소는 떨어졌을 때는 자극적인 액체이지만 증발하면 불이 되었다. 이는 음기니 양기니 하는 미신을 초월하는 물질이었다.

기름도 아닌 액체가 멋대로 불을 일으키면 저들의 정신을 지탱하던 미신은 삽시간에 붕괴하리라.

순조는 성을 가리키며 명령을 하달하였다.

“오물을 불로 소독하라! 다만 성안으로 포탄이 날아들어 청 태종의 묘나 사로잡힌 아녀자들이 상하지 않게 세심히 사격하라!”

“지극히 힘든 명령이지만 철저히 완수하겠습니다.”

장수들은 성 밖으로 뛰쳐나올 적군을 요격하기 위해 성문 앞을 가로막았다.

성벽과 성벽 상부만 타격해야 할 입장인 마르몽과 포병들은 사표를 세심히 계산하고 포격을 준비하였다.

“절반 정도는 성벽 아래에 떨어지겠지만 별수 없군. 일제 사격 개시!”

이황화탄소에 녹인 백린을 넣은 철환(鐵丸)이 발사되었다. 포탄은 마르몽의 예상대로 절반가량이 성 아래에 떨어졌고 남은 절반은 성벽과 성벽 위에 착탄하였다.

착탄한 백린연막탄은 주철로 만들어져 산산조각으로 박살 나고 불운한 몇몇 녹영군이 파편에 맞아 비명을 지르는 것이 전부였다.

남은 병사들은 호기롭게 조선군을 향해 외쳐댔다.

-네놈들의 요술은 효력이 없다!

-이 물은 무엇이더냐! 화기가 녹은 물이 아니더냐!

이황화탄소는 독성이 심한 액체였지만 사람을 즉사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유산탄 포격에 당해본 녹영군들이니 포탄이 폭발하지 않는 것을 보고 아예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재차 포격이 날아들고 다시 백린을 용해시킨 이황화탄소가 성벽 위와 벽 표면에 흩뿌려졌다.

녹영군의 웃음이 점차 커지는 가운데, 성벽 표면부터 불길이 솟아올랐고 순조가 흡족한 듯이 말하였다.

“오물은 불로 소독해야지. 성벽 표면에 있는 분변이 잘 소독될 것 같구나.”

백린에서 치솟아 오른 불길은 성벽의 불순물을 만나며 하얀색이 아닌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퍼져 나갔다. 이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녹영군은 물을 뿌리며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성벽 위에서 농성하던 녹영군의 몸에 묻은 백린에도 불이 붙었다. 서로에게 물을 퍼부으며 불을 끄려 하였지만 백린은 물로 쉽사리 꺼지는 물질이 아니었다.

-놈들이 물을 불로 바꾸는 요술을 부린다!

-불이 꺼지질 않아! 내 몸이 불탄다!

불길에 휩싸인 녹영군들은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더 많은 불을 퍼트렸다. 성벽이 모조리 불길에 휩싸이는 모습을 확인한 마르몽은 마지막 지시를 하달했다.

“세 발 정도는 각 성문 앞에 발사하도록.”

성문이 열리며 겁에 질린 녹영군이 뛰쳐나오려 하였지만 거기에도 불이 있었다.

물동이를 퍼부어 불을 끄려는 녹영군을 향해 머스킷 사격이 실시되며 공성전의 막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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