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장 - 심양성 (1) >
전투에 나선 팔기군이 단 3시간 만에 무너졌지만 엄연히 십만 명이 넘는 군인들이 격전을 벌였다. 조선군에서도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수습과정에서 의사들이 나섰다.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사망자가 추가 발생해 서른두 명에 달합니다.”
“그 정도면 경미한 손실이니 여유가 생겼습니다. 부상자가 그리 많지 않고 대부분이 경미한 수준이니 물자가 부족하지 않겠군요.”
후방의 막사로 이송된 부상병들은 부상 수준에 따라 분류되었다. 대부분의 부상병은 사거리 밖에서 명중한 조총 탄환이나 진영 내부로 파고든 팔기군의 화살에 피해를 입었다.
조선군은 박현상의 강력한 주장으로 소대 단위로 의무병을 배정하였고 이들은 고무 지혈대와 붕대를 사용하여 동료들의 응급 처치를 마쳤다.
본래 외과 의술이 발달하지 않은 조선이지만 로버트 리스턴의 가르침으로 외과 의사를 양성할 수 있었다. 이 의사들은 새로운 수술 도구에 적응하였고 리스턴도 4년 전인 1836년부터 이 도구를 사용하며 계속 개량하였다.
가황고무로 만든 장갑을 낀 군의관은 수술 부위를 요오드팅크로 소독하고 메스로 상처를 벌려 화살촉을 뽑아냈다. 이후 환부에 요오드팅크를 충분히 적신 솜을 넣고 마구잡이로 닦아냈다.
“으아악! 차라리 화살 한 대 더 쑤셔 박히고 말지!”
“이 친구 아직 제정신을 못 차렸군. 본래 이런 상처에는 끓는 기름을 부어서 독을 빼내야 하는데 리스턴 선생님의 요청으로 새 방법을 쓰는 거야.”
“훌륭한 치료 방법이로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상처를 다 닦아낸 부상병은 봉합까지 완료하고 깨끗한 붕대로 환부를 덮었다. 다음 병사가 도착하자 군의관은 피가 묻은 메스를 버리고 새로운 메스를 꺼냈다.
“자네도 화살촉을 뽑아내야 하니 이 꽉 물게.”
현대인인 박현상과 조일준이 알려준 소독 개념이 처음 적용되는 부상 치료였다. 군의관들은 환부를 철저히 소독하고 기구를 한 번 사용한 뒤 세척하며 장갑을 항시 착용하였다.
경상자들이 치료받는 와중에 리스턴은 본격적인 수술에 나섰다. 고통으로 숨을 헐떡거리는 병사들을 확인한 리스턴은 이를 다시 분류하였다.
“이 친구는 내장 파열이 분명하니 모르핀을 계속 주사해서 가는 길이라도 편하게 만들어 주도록. 여기 셋은 개방골절에 골수가 드러났으니 당장 절단 수술을 준비하고.”
“절단 수술이라니요? 제 팔을 자를 생각이십니까?”
“이 정도의 중상은 회복될 가망이 없어. 더군다나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으니 외팔이 신세가 아닌가?”
병사는 개방골절로 신경이 끊겨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 모습을 확인하고 이를 꽉 물었다. 아무리 보아도 가망이 없으니 자신의 팔에 작별 인사를 하고 부탁하였다.
“조······. 조금이라도 덜 아프고 팔을 많이 남길 수 있게 부탁드립니다.”
“내 노력해 보지.”
병사에게 모르핀을 투여하였지만 고통을 줄이는 수준이었다. 리스턴은 비명을 지르며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병사의 팔뚝을 1분 만에 썰어낸 뒤 땀을 닦으며 말했다.
“환부 제대로 지혈하고 세정한 다음 낙수(落水) 소독법을 시도하도록.”
다음 병사는 포탄에 맞아 정강이가 날아간 병사였다. 리스턴은 자신과 숙련 외과의 앞에 대기한 나머지 63명의 절단 수술 대기자를 흘겨보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조금 빨리 끝내면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모두를 치료할 수 있겠군.”
“치료? 지금 뭐라 했습니까? 팔다리를 썰어내는데 치료라고요!”
“내 기준으로는 치료라네. 정강이를 절단해야 하니 이 꽉 물고 참게.”
수술에 사용한 물품이 부족하니 장갑을 제외하면 모두 재사용이 필요하였다. 평상시라면 반복 사용된 도구로 인하여 환부가 감염되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압력솥을 개량한 오토클레이브(Autoclave)는 대부분의 세균과 박테리아 그리고 수술기구에 묻은 단백질 파편까지 분해할 수 있는 기구였다. 당연히 명확한 이론은 리스턴도 모르고 사용하였다.
이번 전쟁은 새로운 의술을 시험하고 이를 통한 부상 치료 논문을 만들 기회로 삼으려는 리스턴이었다. 그는 중상자들의 환부를 소독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며 평가하였다.
“내 살아생전 표백제가 의료용으로 사용될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는데.”
“정말 이 방법이 옳은 치료법이긴 합니까? 냄새가 너무 독합니다.”
“동물 실험에서는 제대로 된 효과를 보았지.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 보다는 나을 텐데?”
프랑스의 화학자 클로드 루이 베르톨레가 발명한 치아염소산나트륨, 현대에는 락스라 불리는 용액은 이 시대에 직물의 표백 용도로 사용되었다.
이 락스의 강력한 소독효과를 알고 있는 조일준은 희석한 락스를 환부에 지속적으로 떨구는 카렐-다킨 치료법(Carrel–Dakin method)을 떠올리고 적용하였다.
이 치료법은 정확한 농도로 희석한 락스를 환부에 일정 간격으로 떨구어 계속 씻어내는 방식이니 낙수(落水) 치료법이라 명명되었다.
절단 환자는 물론이요 심각한 창상(創傷)을 입은 환자들도 이 치료법의 대상이 되었다. 리스턴은 백여 명의 부상자를 간단히 확인한 뒤 지시를 내렸다.
“냄새가 너무 독하니 환자들이 고통을 겪을 것 같군. 환기에 신경을 쓰고 용액이 부족해지면 바로 보충하도록.”
모든 부상자의 치료를 마쳤지만 아직 해가 완전히 떨어지지도 않았다. 리스턴은 저물어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기지개를 켜고 말하였다.
“소대 단위로 비상용 의료장비를 배급하니 과다출혈로 죽은 병사들이 별로 없군. 이런 개념은 유럽에서도 빨리 받아들여야겠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식사를 배급하는 곳으로 향하려던 리스턴은 아쉬운 마음에 조약돌을 걷어차며 짜증은 냈다. 본래 격전 이후 부상병을 치료하며 새 치료법과 기존 치료법의 대조군을 만들 계획이었다.
새 치료법은 예산 한계로 인하여 400명 정도에게 적용하고 나머지 부상병은 기존 치료법을 적용하려 하였다. 적이 너무 약해서 부상병이 줄어들었고 대조군이 없었다.
“이대로 새 치료법만 적은 논문을 공표하면 우연의 일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겠지. 그렇다고 조선에 고용된 몸으로 병사들을 함부로 치료할 수도 없고.”
그런 리스턴의 눈에 임시 포로수용소로 끌려오는 청나라 병사들이 보였다.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옷을 붕대로 삼고 나뭇가지를 부목으로 댄 비참한 몰골이었다.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 고위 관료들은 어느 정도 치료를 받았지만 응급 처치에 불과하였다. 이를 보고 대조군을 즉석에서 만들 생각을 한 리스턴은 순조에게 달려가 청원을 올렸다.
“조선의 군주께 청을 올리겠습니다. 청나라의 부상병을 치료하면 조선의 관대함을 퍼트릴 수 있으며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겠지요. 이들을 치료하는 것을 허가해 주십시오.”
“의사가 적국의 부상병을 치료한다 하였는가? 그런 쓸데없는 일을 하면 이 나라의 병사들에게 사용할 약재가 부족해질 것이 분명한데 헛힘을 쓰는 격이로구나.”
“여력이 남은 사람들이 약과 의료도구를 가급적 사용하지 아니하면 될 일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절단 수술을 경험해보지 않은 초보 의사들이 많으니 간곡히 요청하는 바입니다.”
순조는 전장을 순시할 때 중상을 입고 바닥에 널브러진 청나라 병사들을 떠올렸다. 이들 중 나름 높은 가문에 있는 자들은 협상 과정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도구였다.
“여력이 남으면 치료하도록 하고 아니라면 치료하지 말도록.”
“허가를 내려주셨으니 정말 감사합니다. 꼭 필요한 사람만 치료하도록 하겠습니다.”
리스턴은 수용소를 돌아보며 인원을 선별하였다. 유산탄에 사지가 찢기고 머스킷 사격에 뼈가 으스러졌으며 기병에게 짓밟혀 개방골절을 입은 중상자를 100명이나 선별하였다.
이들은 중상을 입고 이미 감염이 시작되어 열이 들끓고 기력이 쇠진되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것이라 생각하였지만 벌판에 놓인 평상(平床)위에 사지를 묶이게 되었다.
“지금 뭘 하는 거요! 우리를 치료한다면서 탕약을 준비해야지!”
“이게 제 치료법입니다. 당신들은 제 의술 진보를 시험하기 위한 대조군이 되어야겠습니다.”
통역관이 없어서 서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지만 뜻은 통했다. 톱과 메스 그리고 인두가 옮겨졌고 리스턴은 마취가 제대로 들어갔는지 메스로 상처를 쑤셔 확인하였다.
“크악! 어딜 찌르는 거야!”
“모르핀을 투약하긴 했는가? 내가 분명 환자가 요동치는 것을 막게 투약하라 지시했는데?”
리스턴이 다시 메스를 환부에 쑤시자 청나라 장수는 사지를 뒤틀며 격렬히 반응하였다. 분명 모르핀을 투약한 보조 의사는 자신이 사용한 주사기를 보여주며 말하였다.
“분명 정량을 투여했습니다. 이 정도 투약을 하였으면 절단이 진행된 다음에야 고통을 느껴야 하는데요.”
“왜 이러는지 알겠군. 아편을 장기간 복용하였으면 모르핀 내성도 상승하는 법이니 이 대조······. 환자분은 아편을 다량 복용한 사람이라 효과가 없겠지. 아프더라도 꾹 참으십시오.”
로버트 리스턴은 조선에 오기 전 런던에서 길거리 절단수술을 벌였던 때로 돌아갔다. 지금처럼 복잡한 방법과 여러 준비도 필요 없었으며 그저 환자의 사지를 잘라내면 되었다.
리스턴은 자비심이라고는 일절 없는 무감각한 표정으로 안경을 고쳐 쓰고 환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허벅지를 절단 당하게 생긴 환자는 겁에 질려 사지를 오들오들 떨며 말하였다.
“당신 의사 맞소? 이 치료법이 정말 효과가 있는 거요?”
“나도 잘 모르겠는데?(I have no idea?)”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뜻은 통했다. 예전에 사용하던 톱을 거머쥔 리스턴은 그 서늘하고 묵직한 감각에 만족하여 환부를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옛 기억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
“아아, 이 서늘하고도 묵직한 감각. 소독이고 뭐고 지긋지긋했다. 이제 외과의사 로버트 리스턴으로 돌아갈 때다.”
“사람 살려! 아무나 나 좀 살려주시오! 이 미친 의사가 날 죽이려 하오!”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는데 안 죽습니다. 통계적으로 수술 후유증으로 열 명 가운데 두 명 정도만 죽더군요.”
메스와 톱이 움직이며 절단 수술을 시작하였고 끔찍한 비명이 벌판에 울렸다. 두터운 허벅지를 2분 만에 썰어낸 리스턴은 다음 환자에게 다가갔다.
청나라 장수들은 절단 수술을 마치고 상처가 감염되어 끔찍한 발열과 고통에 시달렸으며 생존자가 77명에 불과했다. 사망자가 있었지만 이 정도 생존율이면 유럽에서도 훌륭한 성과라 찬양을 받을 수준이었다.
반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은 조선 병사들은 65명 가운데 고작 3명이 감염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리스턴은 완벽한 대조를 이룬 두 결과를 확인하며 흡족한 듯이 평가하였다.
“과연 닥터 여유당(정약용)의 방법이 옳았어. 환부와 수술도구를 철저히 세정하고 독소의 유입을 낙수 치료법으로 차단하면 기적과 같은 성과를 내는군.”
의술의 진보를 이룬 로버트 리스턴은 더 많은 환자와 대조군을 치료하여 논문의 자료로 삼았다. 그의 의학적 진보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여러 전투에서 부상병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
본대가 이틀 동안 그루시를 기다렸지만 단 한 번 전령과 부상병을 보낸 것이 전부였다. 순조는 그루시가 보내온 서신을 읽더니 황당하다는 듯이 평가하였다.
“사방에서 팔기군이 노략질을 일삼고 이들이 뭉쳐서 후방을 노릴 기세라 하였는가? 다른 나라의 군대라면 당치도 않은 일이겠지만 지금까지 본 몰골로는 옳은 말인 것 같기도 하고······.”
“전술적으로는 옳은 판단이기는 합니다. 제가 가장 염려하는 것이 한창 공성전을 실시할 때 후방에서 어슬렁거리는 기병들이지요.”
“손자병법에서도 논하기를 한 방면에 신경을 쓰면 다른 방면에 소홀해진다 하였지. 아무리 약졸이라도 상황을 잘 판단하면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지 않더냐.”
이론상으로는 적의 증원이 합류하지 않았을 때 차단하는 진격전의 일종이었다. 문제는 그루시가 이 전략을 실시하며 제대로 된 병력을 차단하였는지 유무가 중요하였다.
본대에 합류하지 않는 도적떼만 두들겨 패고 다니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 하고 자신의 치적만 쌓은 꼴이다. 이렇게 되면 그냥 본대에 머무르며 후방을 보조하는 것이 나은 꼴이다.
더군다나 총사령관 아이신기오로 자이콴과 부사령관 보르지기트 키샨이 도주한 방향은 남서쪽이다. 그루시는 북동쪽으로 진군하였으니 둘이 만날지나 모르겠다.
일단 대승을 거두었으니 이 승리를 완벽히 굳힐 차례였다. 순조는 본래 심양을 압박하며 적의 본대를 끌어내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이를 즉석에서 변경하였다.
“일이 어떻게 되었던 이번 기회에 심양을 함락하여 후방을 보강할 것이다. 포로들의 증언을 들으니 심양성에 머무는 병력은 이만여 명의 패잔병이 아니겠느냐.”
“패잔병 따위야 포격을 좀 날려주면 성을 버리고 도주할 것입니다.”
“마르몽 자네의 판단이 옳겠지. 어서 진군하도록 하자꾸나!”
부상병과 중간 보급 호위를 위해 1만여 명의 병력을 남겨둔 조선군은 3일을 진군하여 심양의 남쪽에 흐르는 혼하(渾河)에 도달하였다.
북쪽으로 올라가면 바로 심양의 외곽에 닿는데 당연히 배다리가 필요하였다. 병사들이 나무를 벌채해 즉석에서 배다리를 만드는 모습을 지켜보던 순조는 질문을 하였다.
“박현상은 알고 있더냐? 녹영군을 수습하여 도주한 지휘관은 황족인 정역장군 혁산(奕山 - 이산)과 예전에 청나라에서 일어난 변란을 진압한 장수인 참찬대신 양방(楊芳 - 양팡)이라 하더구나.”
“명성이 퍼져 제가 익히 알고 있던 장수들이지만 그 명성이 자신들이 얻어낸 치적인지 다른 사람의 것을 훔친 일인지는 알 길이 없사옵니다.”
“내 생각도 그러하다. 다만 공성전이니 더욱 큰 희생이 따를 것 같구나.”
순조는 내 이름을 지어주고 호적에 넣어준 사람이라 간혹 나를 손아래의 먼 친척처럼 대접해 주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도하를 끝내고 심양으로 향했는데 먼저 정찰을 마치고 돌아온 안드레이가 보고를 올렸다.
“놈들이 시가지를 텅텅 비워두었습니다. 처음에는 시가전을 예상하였는데 외곽에 축조한 성벽에도 사람을 두지 않았더군요.”
“첫 수부터 악수(惡手)를 두었군. 심양성의 내성이 튼튼하기는 하나 새로 만들어낸 화포를 견딜 수 없을 것인데.”
순조는 악수를 두었다고 평가하였지만 나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혁산과 양방, 만주족 이름으로는 이산과 양팡으로 불리는 두 장수는 본래 역사에서 1차 아편전쟁에 참가했다.
이 두 장수가 보여준 혁신적인 전략은 나도 감탄을 금치 못하여 극찬을 할 정도였다. 물론 상황도 다르고 시기도 다르니 최소한 정상적인 대응을 하였으리라 생각하였다.
이 생각은 시가지를 뚫고 진군한 순간 깨어졌다. 전방부터 대열의 이동이 점점 느려졌고 전방에 있는 병사가 순조에게 보고를 올렸다.
“주상전하께 아뢰옵나이다. 심양성의 백성들이 몰려나와 청원을 하옵니다.”
“어찌하여 나에게 청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청나라의 백성이면 내성에 틀어박힌 장수에게 청원을 할 것이지.”
순조는 이들을 돌려보내려 하였으나 조만간 전투를 위해 건물을 때려 부수고 물자를 징발하게 될 입장이라 들어주려 하였다. 대열이 잠시 멈추고 심양성의 주민들이 청원을 하였다.
“조선의 임금께 말씀을 올리겠습니다. 이틀 전 복귀한 병사들이 외성에 거주하는 아녀자들을 모조리 내성으로 잡아들였습니다. 저희가 협력할 것이니 이들을 구출하여 주십시오.”
“아녀자? 장정이 아닌 아녀자를 왜 잡아들였느냐? 참으로 기이한 일이로구나.”
순조는 의문을 품고 진군하였는데 나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알고 있었다. 내성으로 점점 진군하자 분변의 냄새가 밀려오며 순조가 눈살을 찌푸렸고 마르몽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 멍청이들이 해자에 똥과 오줌을 퍼부어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히려 하는군.”
“그게 아닐 것 같습니다. 망원경으로 내성 성벽을 확인해 보시지요.”
“내성 성벽? 성벽에 대체 뭔 짓을······. 이 미친놈들이 뭔 짓을 한 거야!”
화들짝 놀란 마르몽이 망원경을 떨구었고 저 멀리 보이는 성벽의 색상을 확인한 순조도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른 망원경을 받았다. 한참동안 성벽을 살펴본 순조는 혼이 날아간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성벽에 왜 아녀자들이 입는 속옷을 매달아두고 요강을 뒤엎어 싯누런 분변을 바르느냐?”
순조는 자리에 주저앉고 아예 혼절을 한 듯이 멍한 눈빛으로 심양 내성을 바라보았다. 한 나라가 건국된 역사적인 장소가 똥과 오줌으로 덧칠된 몰골을 보고 정신적 충격을 입은 것이 분명하였다.
작가의말
조금 늦었습니다.
이 시기의 청나라 군대가 성벽에 속옷을 매달고 똥오줌을 칠하는 것은 고증입니다. 저도 이런 고증을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어쩔 수 없더군요.
< 9장 - 심양성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