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87화 (87/345)

< 9장 - 대적 >

조선군이 의주를 시작으로 천천히 진격하며 청나라의 철저한 청야전술에 의문을 품을 무렵 다른 의문이 심양에 머무르고 있는 아이신기오로 자이콴에게서 샘솟기 시작했다. 그는 한탄하듯이 말하였다.

“벌써 약속된 개전 일자에서 보름이나 지났는데 이놈들이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지?”

그는 방안을 맴돌며 북경에서 출병할 때부터 천천히 상황을 짚어나갔다. 도광제는 소집된 군대는 개전 직전까지 심양 일대에서 대기하라고 명령하였다.

음력 9월 1일 까지 조선이 항복한다면 효명세자를 데리고 북경으로 돌아오고 아니라면 전쟁을 시작하면 되었다. 문제는 조선과의 전쟁이 확실시되자 팔기군이 보인 태도 변화였다.

“수도 근처에 모여 술이나 퍼먹고 근처에서 잡아온 백성들을 두들겨 패던 놈들이 갑자기 태도가 돌변하여 진군한 것도 문제였지. 애초에 놈들에게 명령을 내리지 말았어야 했어.”

먼저 소집된 3만여 명의 팔기군은 표면상으로는 선발대를 자처하였고 실제로는 요동 일대를 약탈하기를 원하였다. 자이콴은 이를 충성심의 표출이라 여겨 수락하였다.

선발대에게 담당된 임무는 조선군의 척후 제거와 주민의 대피였다. 이 정도는 개전 이전에 실시해야 하는 작업이니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으나 아직도 답신이 없었다.

“조선의 군대가 약속된 날을 무시하고 멋대로 진격하였어도 삼만 명에 달하는 병력이 모조리 전멸할 리는 없잖아? 더군다나 나머지 놈들은 보인을 모집한다며 어디로 사라진 거야?”

출병할 당시 자이콴은 50만 대군을 이끌고 있었다. 산해관을 넘어 요서회랑을 통과할 때만 하여도 6만의 녹영군과 11만의 팔기군 그리고 30만 명의 보인이 서류상으론 존재하였다.

물론 출병 규모를 부풀려 예산을 더 받아먹을 심산으로 허위 보고를 올려 늘어난 숫자였다. 실제 병력은 녹영군 4만, 팔기군 8만 그리고 12만 명의 보인이었으며 병력의 수발을 들 보인들이 너무 부족하였다.

이 보인들은 고용된 이들이 아니고 진군 경로에서 잡혀온 백성들이며 틈을 보아 거리낌 없이 탈주하였다. 팔기군은  설사병으로 보인들의 손실이 심하다면서 즉석에서 보인을 ‘충원’하겠다고 요청하였다.

요동 일대에 불법으로 거주하는 한인의 존재를 알고 있던 자이콴은 충원 명령을 내렸고 이들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 병력이 서류상으로는 5만여 명에 달하였고 실제로는 3만 명이었다.

“생각해보니 더더욱 말이 안 되는 일이로군. 보인을 충원하는 작업이 이리도 험난하나? 한인들이 창칼을 들고 저항하여도 팔기군은 기병이니 이를 제압할 수 있을 텐데?”

조선 근처의 작은 마을이면 몰라도 요동에 있는 큰 규모의 한인 마을이 문제였다. 정상적인 군대라면 쉽사리 보인을 충원하겠지만 팔기군은 대등한 수의 민병대와 격전을 벌이고 패퇴할 수준이었다.

결국 팔기군은 대규모로 집결하여 큰 마을들을 거듭 공격하며 약탈하였다. 전쟁은 안중에도 없으며 자국의 백성을 학살하고 약탈하는 꼴이지만 자이콴은 이 사실을 몰랐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자이콴은 승리를 확신했다. 심양 일대에는 12만 명의(실제로는 9만)병력이 있으며 조선군 정도는 쉽사리 격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그 생각은 휘하 장수의 보고로 잠시 중단되었다.

“정군왕(자이콴의 직위)님께 보고를 올립니다. 이번에도 몽골팔기와 주방팔기간의 난투가 벌어져 여럿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또 벌어졌다는 말인가? 내가 싸움을 금지하라고 몇 번이나 명령을 하였거늘!”

보르지기트 셍게린첸, 몽골팔기의 지휘관이자 팔기군에서 몇 없는 정상인이 보고를 올렸다. 그는 아직 30세에 불과한 애송이라 병력을 4천여 명 밖에 끌고 오지 못하였다.

이들은 기강이 살아있고 옛 팔기군의 풍습을 지키고 있는 정상인이었다. 당연히 약탈과 온갖 범죄를 밥 먹듯 저지르는 청나라 내부의 팔기군을 비난하며 대립하였다.

세습된 신분으로 위세가 등등한 청나라 팔기군은 이들을 집단 구타하였고 몽골 팔기들은 필사적으로 맞서 싸웠다. 자이콴은 모조리 처형하라는 명령을 내리다가 이를 억눌러 참고 말하였다.

“우선 부상을 입은 병사들을 치료하고 은자를 조금 내 주도록 하게. 아무래도 이번 전쟁이 끝나면 팔기군의 옥석을 가려야겠어. 그러지 않으면 기강이 땅에 떨어질 것 같군.”

“참으로 감사한 말씀입니다. 그나저나 조선군이 진군한다는 소식은 없습니까?”

“척후를 삼만 명이나 두었는데 보고 정도야 알아서 하겠지. 설마 척후들이 전멸하거나 모두 딴 짓거리를 하다가 조선군을 보지 못 하였겠나?”

아예 틈을 보아 심양을 순시한 자이콴은 길거리의 꼴을 보고 할 말을 잃어버렸다. 두들겨 맞고 자리에 누운 장정부터 어디론가 사라진 아낙네들을 찾는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전쟁을 치르기 전 어느 정도 사기 진작을 위해 병사들의 비행(非行)을 눈감아주는 풍습이 있지만 도를 넘어선 것 같았다. 그러한 자이콴에게 병사들이 다급히 달려와 보고를 올렸다.

“정군왕께 보고를 올립니다! 조선군이 본계(本溪)에 나타났습니다!”

“본계라 하면 여기서 남쪽으로 일백여 리 떨어진 곳이 아닌가! 지금까지 대체 뭘 했는가!”

대체 삼만 명에 달하는 척후가 뭘 했는지 몰라도 자이콴은 자신이 배치해둔 병력을 떠올렸다. 여유 병력을 조금씩 쪼개 남서쪽의 안산(鞍山)과 남쪽의 번계에 배치했다.

본계에 머무르고 있던 병력이 도합 칠천여 명이니 며칠 정도는 버틸 수 있으리라 생각하였다. 그 동안 병력을 소집하여 번계를 구원하고 일전을 벌이려 하였는데 말도 안 되는 보고가 이어졌다.

“송구한 말씀입니다만 본계가 함락 당하였습니다.”

“함락? 함락이라 하였나? 녹영군 삼천 명과 팔기군 사천 명을 보냈는데 함락이라고?”

“놈들이 일만여 기의 기병을 동원하여 포격을 날린 뒤 사방으로 파고 들어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노서아의 기병들이 어찌나 흉험한지 필사적으로 저항하였으나······.”

실제로는 기마포병이 가져온 소구경 포의 포격 몇 번과 그루시와 안드레이의 돌격에 제대로 싸우지도 않고 패퇴하였지만 그런 보고를 올릴 수는 없었다.

자이콴은 보고를 듣고 전략을 정했다. 청 태조 누르하치가 잠들어 있는 심양성을 끼고 수성전을 벌이면 이 많은 병력을 제대로 활용할 길이 없다.

더군다나 조선 따위와 맞서지 못 하여 수성전을 벌이면 누르하치의 후손으로서 지독한 모욕과 같았다. 아예 회전(會戰)으로 조선군의 주력을 박살내기로 정한 자이콴은 각 팔기 지휘관에게 명령을 하달하였다.

“조선군을 본계와 심양 사이의 벌판에서 맞이하여 회전을 벌인다. 마침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으니 사르후에서 명나라를 격퇴한 것처럼 조선의 오합지졸들을 똑같이 격퇴할 것이다!”

이상은 높고 현실은 비참하였으나 자이콴은 아직도 승리를 자신하였다. 술과 아편 그리고 온갖 쾌락에 취한 팔기군은 조선군을 무너트리고 약탈을 할 생각에 사기가 충천하여 명령에 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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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인도양 해군은 1840년 10월 8일을 기준으로 개전 일자를 정하였다. 영국에서 전해온 소식이 도달하고 병사의 준비와 보급을 마치는 시기를 감안한 결정이었다.

영국은 양심이 없는 국가라 이미 조선과 청나라의 사이에 전쟁을 촉발시키는 추잡한 행위를 하였음에도 뻔뻔한 태도로 나섰다. 자신들은 아무 잘못이 없기를 원하며 선전포고를 하였다.

유럽 외부의 국가에게는 별 필요 없는 선전포고였지만 모든 형식을 지키려 하였다. 개전 3일 전인 10월 5일에 외교관이었던 찰스 엘리엇은 해군 정복을 입고 광주에 입항 요청을 하였다.

영국의 참전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기에 임칙서는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어내려고 이를 받아들였다. 곧이어 능글맞은 표정의 찰스 엘리엇이 인사를 올렸다.

“오랜 간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별 일 없으셨는지요.”

“별 일은 없었지. 본관이 너무나 자비로운 사람이었으며 영길리의 악독함을 생각조차 못 하였다는 것이 후회될 뿐이야. 진즉 모든 상인의 목을 쳤어야 하는데.”

“저는 물론이요 상인들이 청나라와의 조약을 어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이 어떻게 되었던 이제는 전쟁을 벌일 때가 되었으니 선전포고문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임칙서는 영국 의회에서 결정된 선전포고문을 읽으며 분노 대신 웃음을 터트렸다. 한 줄을 읽을 때마다 피식거리면서 웃음을 터트리더니 이를 고이 접어 소매에 넣고 평가를 내렸다.

“본관이 지금까지 영길리를 오랑캐라 부른 것을 진심으로 사과하겠네.”

“그런다 하여도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오랑캐가 아니고 양심도 없고 의리도 없으며 머릿속에는 탐욕만 가득 찬 놈들이지! 아마 다른 오랑캐들이 자신들이 영길리와 비교되었다 하면 격분하여 자살을 택할 걸세!”

임칙서가 분노조차 하지 못 하고 헛웃음을 터트릴 선전포고문이었다. 차라리 아편 무역을 촉구하며 선전포고를 하였다면 이득에 눈이 멀었다고 이해라도 할 수 있었다.

자신들이 조선과 청나라의 전쟁을 촉발시켰으면서 ‘합당한 동맹국이자 법을 준수한’ 조선을 위하여 참전하겠다고 하였다. 여기에 전쟁을 피할 수 있는 협상 조건이 더욱 가관이었다.

“영길리가 조선을 위하여 참전하였으면 조선과의 전쟁을 중단시키고자 하는 협상조건을 내세워야 하지 않나? 핵심 항구 다섯 곳의 개항과 아편 무역 허가는 뭔 소리인가?”

“그야 조선과 청나라와의 전쟁 내용을 기입하면 다른 나라의 외교에 간섭하는 일이지 않습니까. 이는 우리 영국의 뜻만 내세운 선전 포고입니다.”

“이미 조선의 외교에 간섭하였으면서 개소리 하지 말게!”

임칙서는 심호흡을 하며 분노를 억눌렀다. 지금 개전을 하여도 좋지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준비와 훈련이 필요했다. 전쟁을 코 앞에 두고 추가 훈련을 하려고 마음을 먹은 임칙서는 찰스 엘리엇에게 제안을 하였다.

“개전이 서양의 역법으로 10월 8일이라 하였는데 보름의 말미를 두면 좋을 것 같군. 광주 일대가 전쟁터가 될 것인데 영길리의 상인들이 피해를 입지 않겠나.”

“그렇다면 마카오를 중립지대로 두어 일대의 상인들을 이동시켜 주시면 어떻겠습니까? 저희도 보름이나 전쟁을 연기하니 얻을 것이 있어야지요.”

“알겠네. 본관의 가문을 걸고 영길리와 서역의 사람들을 피난시킬 것을 약조하지.”

약간의 시간을 번 임칙서는 병력을 소집해 훈련을 실시하려 하였다. 그는 지난 1년 6개월 동안 영국, 프랑스 그리고 미국 상인에게서 화포 600여 문, 2만 정의 머스킷 그리고 16척의 무장상선을 구매했다.

병력으로는 녹영군 중 그나마 정상적인 사람을 선별하고 일대 주민들 가운데 의기가 넘치는 이들을 향용(鄕勇)이라 칭하고 소집하였다. 이 병력은 총 2만 명이 넘어갔다.

물론 팔기군은 없었다. 임칙서의 명령을 귓전으로 흘려보내다 못해 말도 안 되는 출정비용을 요청하였다. 삼천 기의 기병과 합동훈련을 하는데 은자 삼만 냥을 내놓으라 하였다.

“팔기군은 광주가 함락당하고 적이 내륙으로 진출하면 알아서 맞서 싸우겠지. 이 이상은 나도 감당할 수 없는 노릇이니 훈련이나 착실히 해야지 별 수가 없겠군.”

임칙서는 소집 명령을 내리고 잠시 틈을 보아 상인들을 피난시키는 일을 진행하려 하였다.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는 가운데 군관이 달려와 보고를 올렸다.

“임 대인께 보고를 드립니다. 웬 젊은 영길리 사람이 같은 나라 사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돌아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더군요. 심지어 대인을 만나겠다는 요청을 했습니다.”

“나를 만나보겠다고? 혹여나 군인이나 상인이라도 되는가?”

“기자라 하였는데 영길리의 군인을 따라온 사람입니다. 첩자일지도 모르니 돌려보내려 하였는데 한사코 거절하더군요.”

영국의 문물을 어느 정도 알고 있으니 기자가 뭘 하는 사람인지 알고 있었다. 주변의 소문을 수집하여 신문이라는 서적에 올리는 사람이니 여러 정보를 입수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임칙서는 병력을 소집하는 동안 상대를 만나보려 하였고 청나라 군인들의 삼엄한 경계 속에 신문 기자가 등장하였다. 그는 인사를 꾸벅 올리더니 어눌한 중국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머나먼 길을 건너온 저 찰스 디킨스가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저는 이번 청나라와 영국간의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허가를 받으려 왔습니다.”

“전쟁을 취재한다? 혹여나 전쟁의 참상을 필설로 즐기려는 자들이 자네를 보냈는가? 본관의 입장에서 그런 불손한 행위를 용납할 수 없으니 당장 돌아가게.”

임칙서는 상대가 사람이 죽어나가는 전쟁의 참상을 팔아치워 돈을 벌어들이려는 애송이로 보아 돌려보내려 하였다. 찰스 디킨스는 이를 예상하고 미리 준비한 편지를 보여주었다.

“실은 어떤 분의 요청을 받아서 이 자리에 왔습니다. 영국 의회가 저지르는 추악한 범죄와 전쟁에서 일어날 학살과 약탈을 여과 없이 기록하라 하였지요.”

찰스 디킨스의 작품인 올리버 트위스트와 픽윅의 보고서(The Pickwick Papers)를 읽은 빅토리아 여왕은 그의 애독자이자 후원자가 되었다.

그녀는 임칙서가 보낸 편지를 읽었으나 의회에서 결정된 전쟁을 막을 길이 없었다. 대신 영국의 현실과 의회의 태도를 신랄하게 비판하기 위해 찰스 디킨스에게 부탁을 하였다.

마침 새 작품을 준비하던 찰스 디킨스는 이를 받아들였다. 올리버 트위스트로 비판을 하였음에도 변함이 없는 영국 정부의 태도를 뒤엎으려면 더욱 큰 사건이 필요했다.

임칙서는 빅토리아 여왕의 편지를 읽고 모든 것을 이해하였다. 자신이 승리한다면 영국은 패전으로 인한 역풍을 뒤집어 쓸 것이며 패배하여도 자신은 세상에 한 점 부끄럼 없는 사람이니 양심이 없는 영국을 통렬히 비판할 수 있으리라.

“본관이 자네를 지켜줄 것이라 보장은 할 수 없지만 힘이 닿는 한 안전하게 보호할 것이야.”

“참으로 감사한 말씀이십니다. 이 전쟁에서 벌어질 모든 행위를 기록하고 서적으로 만들어 영국 전체에 퍼트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하면 훈련 장면부터 기록해도 되겠습니까?”

대화를 나누는 동안 집결한 녹영군과 향용들이 임칙서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눈치가 빠른 디킨스를 쳐다본 임칙서는 고개를 끄덕이고 흔쾌히 허락하였다.

훈련이 시작되었지만 영국 육군의 훈련을 취재해 본 경험이 있는 디킨스의 입장에서는 맥이 빠질 지경이었다. 최신식 머스킷을 사용하지만 시대에 맞지 않는 진형을 사용하였다.

화포도 중구남방으로 구매하여 영국제 주철 화포부터 최신식 프랑스 화포까지 다양하였다. 한 포대에 소구경과 대구경 화포가 섞여 있으니 서로 협차(夾叉 - 탄착군을 내부로 넣음)를 달성하기 힘들었다.

물량을 앞세우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겠지만 수많은 희생이 뒤따르리라. 이런 사실을 모르는 임칙서는 뿌듯한 표정으로 질문을 하였다.

“어떠한가? 세상을 많이 돌아보고 견문하는 사람이라 하였는데 솔직히 평가를 해 보게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영국 육군을 백 점으로 놓고 보자면 오십 점에도 미치지 못 합니다.”

임칙서의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디킨스는 태연하게 답하였다. 오히려 해안의 포대에서 쏘는 포탄 가운데 폭발하는 유산탄이 한 발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역으로 질문을 하였다.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예산이 부족하여 유산탄 사격을 금지하셨습니까?”

“유산탄? 유산탄은 또 무엇인가?”

“탄환이 적중한 다음 터지는 녀석 말입니다. 일반 탄환으로 전열함까지는 상대할 수 있지만 유산탄이 운 좋게 적중하지 않으면 철갑 증기선에 아무런 타격도 입힐 수 없습니다.”

임칙서는 유산탄의 존재를 아예 몰랐다. 무기를 판매한 상인 입장에서도 주문하지 않은 물품을 팔 의리는 없었으니 이를 입수할 길도 없었다.

찰스 디킨스의 시선으로 보니 분전을 하여도 며칠 이내에 광주가 함락될 것이 분명하였다. 반면 임칙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25발의 폭발하는 물건을 떠올리고 고개를 휘저으며 잊으려 하였다.

그는 사용한 사람이 반드시 죽는 끔찍한 병기를 쓸 생각을 하지도 못 하였다. 정말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쓰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훈련을 거듭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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