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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82화 (82/345)

< 9장 - 아량 >

초대형 자돌폭뢰가 한창 설계되고 있지만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 일준이는 솜화약의 안정화와 리벳접합을 통한 폭발물 완성을 위하여 최소한 석 달이 지난 7월은 될 것이라 말 했다.

“이걸 어떻게 보낼지 고민인데 좋은 방법 있냐. 조선에서 직접 보내면 문제가 될 거야.”

“그야 프랑스 상인을 통해 보내면 되니 염려하지 마라. 그나저나 시기가 좋을 구월에 개전하려 했는데 오월이나 유월에 전쟁을 시작하면 비 때문에 손해가 막심한데.”

팔기군이 아무리 멍텅구리라 해도 엄연한 기병이다. 전열보병이 아무리 강해도 갑자기 폭우가 내리면 팔기군을 상대로 막대한 피해를 입을 것이다.

물론 막대한 피해를 입어도 이기기야 하겠지만 완봉승과 처절한 사투는 격이 다른 법이지. 일준이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아직도 시험을 계속하고 있는 탄피를 가져와 말하였다.

“오 년만 전쟁이 늦게 일어나면 무연화약 라이플을 사용할 수 있는데 어떻게 안 되냐?”

“그래봤자 양산에 보급까지 십 년은 걸릴 물건 아니야.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이번 전쟁은 이대로 실시해야지.”

일준이는 내 말을 듣더니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창고로 들어가서 자돌폭뢰에 쓰일 솜화약을 주문하였다. 그러더니 연구생들에게 가서 주문을 하였다.

“니트로셀룰로오스를 일 톤 정도 만들어야 할 거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고 만들어!”

“일 톤씩이나? 자돌폭뢰를 몇 개나 만들려고?”

“스물다섯 개는 만들어야지 통할걸? 네가 가져온 철갑 증기선 도면에 격벽으로 나눠진 구획이 일곱 개나 있었어. 확실히 침몰시키려면 최소 세 발, 운이 좋아도 두 발은 필요하지.”

일준이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지만 폭발이 성공하기는커녕 달라붙다가 콩그리브 로켓에 터져나가거나 포탄에 맞아서 배가 침몰하는 경우도 많으리라.

일이 어떻게 되었건 개전 준비는 착실히 계획되었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밀수꾼들을 순차적으로 처형하며 청나라의 답을 들어야 했지만 영국이 훼방을 놓은 이상 일제 처형이 답이었다.

“죄인들을 처형하라!”

“황상께서 내 은원을 갚아주실 것이다! 우리가 대체 뭘 잘못했느냐!”

“네놈들의 잘못은 청나라의 법에도, 조선의 법에도 엄연히 사형이라 하였다!”

목숨을 구걸하거나 온갖 변명을 내뱉은 밀수꾼 팔십여 명은 새남터에서 목이 잘려졌고 최대한 온전한 상태로 보존되었다. 그 방법이야 서빙고에 저장된 얼음으로 썩지 않게 보존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이들은 청나라에 전해질 조공 물품과 함께 보내질 예정이었다. 이런 자리에는 남연군이 가야 했는데 남연군은 올해 말 유럽에서 돌아올 예정이라 다른 종친이 필요했다.

바로 원래 역사의 전계대원군이었다. 그는 새로 경양군(慶陽君)이라 군호를 받았으며 아무런 죄도 짓지 않고 오로지 부모와 형제가 저지른 잘못으로 어린 시절부터 유배생활을 하던 사람이었다.

본래 역사에서는 효명세자의 죽음으로 유배가 풀려서 순조의 명으로 복권이 되었다. 이제는 역사가 변하여 그의 복권은 이보다 늦은 1838년 말이 되었다.

혈통이야 순조의 사촌이지만 인생은 밑바닥이었다. 강화도에서 농부로 지내던 사람이니 궁궐에 들어온 적도 군호를 받을 적 단 한 번 외에는 없었다던가.

그나마 효명세자가 1827년 부터 지원을 하여 최소한의 학문정도는 익혀 사대부 수준의 역량을 지녔지만 그게 전부였다.

이번에 사신으로 다녀올 사람은 최악의 경우에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순조는 최악의 경우에는 자신의 사촌 경양군을 희생시킬 생각으로 연회를 열어주었다.

“내 군호를 내려주고 한 번 후하게 연회를 열어주었으나 이후 정무가 쌓여 이런 사사로운 자리를 만날 수 없었지. 요즈음에 이런 기회가 생겼으니 잔을 받게.”

명목이야 조정의 대소신료와 안면을 트고 종친의 일원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하는 자리였지만 진실은 달랐다. 경양군은 아직도 몸이 굳어 고개를 푹 숙이고 답했다.

“주상전하께서 신을 이토록 아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사옵나이다.”

“몸을 이미 도성에 두고 있으면서 어찌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하는가? 종제(從弟 - 사촌동생)가 농을 하는 법을 조금이라도 익혔으면 하니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배움이 부족하고 스스로를 갈고닦지 않았사오니 각고하여 수양에 매진하겠사옵니다.”

“참으로 슬픈 일이로구나. 세자는 보거라, 네가 보기에는 종제가 그리도 부족해 보이더냐?”

“아니옵나이다. 경양군이 부족한 점이 있다 하면 세상 모든 유생들이 부족할 것이옵니다.”

연회를 처음 시작할 때의 경양군은 억지로 참석하여 긴장하였지만 순조와 효명세자의 공세에 점차 풀어지고 있었다. 물론 겉으로만 긴장이 풀린 상태였다.

자신의 아버지가 겪었던 일을 생각하는지 대소신료들과 안면을 틀 때마다 흠칫흠칫 놀라며 대화를 나누고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을 집중하였다. 그러다 나와 잔을 나눌 차례가 되었다.

“경양군 대감에게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저는 반남 박 씨의 현상이라 하며 자는 진일(振佚)이라 합니다. 호는 아직 없사오며 주상전하의 명에 따라 외부승지로 일하고 있습니다.”

“명성이 자자한 외부승지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소. 듣자하니 영길리에서 태어났다던데 이역만리에 떨어진 섬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니 고생이 얼마나 많았소이까?”

“그야 고생이 참으로 많고도 많았지요.”

경양군은 아직 세상에 대해 잘 모르고 있어서 나에게 동질감을 가지고 있었다. 영길리는 오랑캐의 나라이며 작은 섬나라라 생각하고 있으리라.

저절로 술잔이 오가면서 취기가 맴돌았고 경양군은 호탕하게 가슴을 치며 말하였다. 그는 이미 순조를 통해 북경에 다녀올 것이라는 말을 듣고 흥분을 숨기지 않았다.

“내 강화도에서 그토록 고난을 겪었는데 이제야 인생이 풀려나는 것 같구려. 가슴이 먹먹하고 화기가 올라와 어쩔 도리가 없었으나 이제는 어엿한 종친의 신분이 되었소. 잔 받으시오!”

“너무 취하신 것 같습니다. 조만간 배를 타고 천진으로 향하셔야 할 것인데요.”

“배가 무엇이라고! 내가 고기도 잡아본 사람이고 농민과 탁주도 마시던 사람인데!”

경양군이 도광제 앞에서 국서를 읽으면 아마 경기를 일으키며 국서를 제대로 읽어나가지도 못 하리라. 어떻게 보면 사람을 죽음의 길로 이끄는 것 같지만 순조는 왕으로서의 처신은 냉정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마침내 경양군이 청나라와 약조한대로 1840년 양력 5월에 배에 올라 북경으로 향하였다. 자카드 직물과 글루탐산나트륨 그리고 3만 필의 공장제 면직물을 포함한 조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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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은 경양군은 조공을 하나하나 내려놓았다. 개중에는 얼음으로 철저히 보관한 물건이 있었는데 명령을 받기로는 나중에 올리는 조공이라 하였다.

여전히 조선에 대한 의심을 품은 도광제가 경양군을 접견하였다. 당연히 한낱 촌부에서 가까스로 왕실의 일원이 된 중압감을 온 몸으로 체험하는 경양군은 국서를 펼치고 읽어나갔다.

“조선의 왕 이공(李玜)이 황상께 서신을 올리옵나이다. 번국이 평안하니 여러 물목을 선발하여 조공으로 바치었으며 이는 약조한 바를······.”

아직까지는 이상한 조짐이 없는 국서였다. 이를 천천히 읽어나간 경양군은 평상시와 같은 문안인사나 각종 찬사를 담고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그러나 한 대목에서 말문이 막혔다.

“다만 흉험한 일이 있사오니 삼 년 전부터 요청을 올린 일을 여전히 준수하지 않고 계시옵나이다. 청나라의 백성들이 멋대로 국경을 넘고 엄중한 질책을 하여도 듣지 않기에 모조리······.”

“모조리라 하였느냐? 어찌하여 말을 하지 않는 것인지 심히 궁금하도다.”

“모조리 처! 처형! 이게 뭐야! 전 못 읽습니다! 절대 못 읽습니다!”

아예 창백하게 질려 뒷걸음질을 치며 달아나는 경양군의 모습을 본 도광제는 눈에 진노를 담아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지금 뭐라 하였느냐! 번국의 관리가 상국의 백성을 처형하다니!”

옥좌에서 내려가 경양군이 떨군 국서를 읽은 도광제는 사지를 휘청거리며 옥좌로 돌아갔다. 그러더니 국서의 내용을 요약하여 알려주었다.

“번국은 법을 지키고 약조를 수락하는데 상국은 지키지 아니한다고? 이를 고치지 않으면 조공 관계를 중단하고 형제의 맹약을 맺어 나라 사이의 의리를 다 할 것이라니! 이 국서를 정녕 알고서 논하였느냐!”

“모르옵니다! 정녕 모르옵니다! 다만 좋은 물건을 보낼 것이라고만 하였사옵니다!”

도광제의 시선을 받은 경양군은 아예 머리를 찧어가며 절을 올렸다. 도광제는 당장 처형하고 효수하라는 명령을 내리려 하였으나 그가 가까스로 종친에 합류한 사람임을 떠올렸다.

이럴 때에는 대국으로서의 아량을 보여주어 사신을 돌려보내야 했다. 손짓을 하여 이마가 터져 피를 흘리는 경양군을 돌려보낸 도광제는 즉시 조정 신료들을 소집하였다.

아량을 품고 바라보면 조선이 불만을 논한 것이요. 아량이 없이 냉정하게 바라보면 멋대로 상국의 사람을 처형한 것이다. 반면 지금은 긴장이 고조되는 시기이기에 대응이 극렬하였다.

“조공과 함께 이 나라 백성의 시신을 함께 보내다니 이토록 오만불손한 놈들을 본 적이 없도다. 조선이 짐의 아량을 무시하고 영길리와 한 편을 맺은 것이 분명하구나!”

서신의 내용을 전해들은 도광제는 눈을 씰룩거리며 대소신료들을 노려보았다. 임칙서의 간언을 듣고 반신반의한 채 팔기군과 녹영군을 소집하였는데 정말 일이 터져버렸다.

이 사건 이전까지의 대소신료들은 조선의 조공을 기다리고 있어 이를 쓸데없는 일이라 하였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도광제는 침묵한 신료들을 지목하며 명을 하달하였다.

“시국을 논하는 충언이나 간언도 없이 오로지 눈앞의 이문만을 추구하니 조선이 저리도 흉험한 짓을 저지르는 것아 아니더냐! 누가 이 사태에 대하여 짐에게 논하여 보거라!”

“시······. 신 형부상서 알칭가(阿勒清阿) 아뢰옵나이다. 실은 조선의 요청을 받아 재작년부터 밀수꾼의 단속을 실시하였으나 효력이 없었사옵니다.”

“잘못을 조선이 하였는가? 아니면 짐의 아래에 있는 신료들이 하였는가? 그저 번국에 다녀오는 이들의 행동을 침소봉대하여 모조리 처형한 것이 조선이 아니더냐!”

도광제는 불편한 심기를 대놓고 드러내며 신료들을 압박하였다. 이미 전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인데 정작 전쟁에 대해 논해야 할 팔기 지휘관 아이신기오로 자이콴은 다른 고민을 하였다.

작년인 1839년 9월 도광제의 명을 받아 군대를 소집한 자이콴은 북경 인근에 소집된 지휘관과 군사 목록을 확인하였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정군 15만, 보인 30만의 약 50만 대군이 편성될 예정이었다.

그가 지휘하는 금려팔기(禁旅八旗), 북경을 수호하는 팔기군은 12만 명에 달하였지만 이들은 북경을 수호해야 하니 기껏해야 2개 기(旗)인 3만여 명을 파견하는 것이 한계였다.

반면 지방을 담당하는 주방팔기는 팔기군과 녹영군을 합쳐서 최소 10만 명, 가급적 15만 명이 소집되어야 하였다. 그러나 지방에서 소집된 병사가 3만 명에 불과하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병력의 여유를 한껏 두어 후방을 통솔할 예비대를 남겨두라 하였지만 고작 삼만여 명이 집결하다니? 기주나 도통들은 얼마나 집결하였는가?”

“이제 막 여섯 명 가량이 집결하였습니다.”

우물 안 개구리처럼 청나라의 현실을 모르는 자이콴이었지만 이상을 느꼈다. 아예 지방을 순시하여 팔기군의 현실을 확인하려 하려던 찰나 그의 귀에 합당한 이야기가 들려왔다.

“정군왕(定郡王 - 자이콴의 왕공족 직위)께 송구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주방팔기는 본래 지방을 순시하고 치안을 유지하며 변란을 막아내는 군대가 아닙니까?”

“옳은 말이지. 또한 황상께서 명하신 외적을 격퇴하는 군대이기도 하고.”

직례(直隸)총독 보르지기트 키샨의 말을 들은 자이콴은 상대를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담당지역은 가장 빠르게 병력을 동원할 수 있는 북경 인근의 3개 관할지역이다.

당연히 가장 큰 책임을 짊어져야 할 사람이라 이번 사태에 대해 물어보려 하였지만 그는 청산유수처럼 변명을 늘어놓았다.

“일전에 백련교도들이 벌인 난이나 자한기르가 저지른 난(위구르의 반란)의 경우는 엄연한 변란이며 외적이기에 모든 팔기군이 창칼을 들고 소집에 응하였습니다.”

“물론 잘 알고 있지. 당시의 변란이 얼마나 지독하였는지 십 년이나 걸리지 않았는가?”

“이는 충용무쌍한 팔기군의 위엄 앞에 변란을 일으킨 자들이 각자도생을 택하여 숨어들었기 때문입니다. 향용(鄕勇)들이 각지를 순시하고 녹영군이 뒤를 돌봐주어 승리할 수 있었지요.”

실제로는 당시에도 부패한 팔기군과 녹영군이 예산을 타내려고 반란 진압을 하지 않고 방치하였다. 설령 실제 전투가 벌어져도 농민들인 백련교도들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였고.

결국 백련교도의 반란을 진압한 것은 지방에서 분연히 일어난 향용이었다. 심지어 향용이 소집되지 못 하는 지방에서 벌어진 위구르의 반란에서는 청나라 조정이 굴욕적인 평화 조약을 맺기까지 하였다.

이를 알 길이 없는 자이콴은 그러려니 하고 키샨의 청산유수 같은 말을 듣기 시작하였다. 그는 다시금 팔기군의 강력함을 설파하며 말하였다.

“조선이 불손한 마음을 품어도 팔기군이 한 번 질주하면 천하를 진동하는 고함과 함께 무너질 것이 아닙니까? 또한 병자년에 일어난 일처럼 조선의 왕이 삼궤구고두례를 할 것입니다.”

“그 말이 다 옳다고 치지. 어찌하여 주방팔기가 소집되지 않았는지 말해주지 않겠나?”

“그야 조선을 상대로 하니 모두가 전쟁이 일어날지에 대한 의문을 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어느 누가 조선이 변란을 일으킬 것이라 확신한단 말입니까?”

이는 변명할 수 없는 도광제에 대한 항명이었다. 자이콴이 눈을 부라리며 키샨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사실 팔기군 가운데 삼만 명이나 소집된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대부분 주민들에게서 보호비를 받지 못 하거나 약탈을 할 정도로 세력이 약하였기에 등을 떠밀려 북경으로 향한 것이다.

이 사실이 도광제의 귀에 들어간다면 주방팔기가 모조리 해체될지도 몰랐다. 더군다나 직례총독 자리를 역임하는 키샨도 무사하지 못 할 것이 분명하니 그의 변명은 계속 이어졌다.

“이제는 아닙니다. 조선이 엄연히 변란의 징조를 보였으니 모든 팔기군이 깃발을 휘날리며 황상 아래에 집결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하니 조금만 더 말미를 주십시오.”

“황상께서 진노를 담아 논하시는 옥음(玉音)이 여기까지 들려올 지경인데 말미를 달라?”

“고작 두 달, 아니면 석 달이면 충분합니다. 팔 월 말에는 십만여 명의 팔기군과 녹영군을 북경으로 소집해 둘 것입니다.”

키샨도 이번만큼은 십만 대군을 북경까지 모을 자신이 있었다. 평상시에는 인근을 약탈하고 착취하며 도적떼와 다름없는 팔기군이지만 정말 전쟁이 일어난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전쟁이 벌어지면 전시징발이라는 명목으로 마음대로 약탈을 할 수 있었다. 같은 만주족이면 어느 정도 보호를 받지만 요동 일대에 멋대로 거주하는 한인들은 보호 대상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나약한 조선군을 무너트리고 한양까지 진군하며 약탈을 할 수 있다면 거부할 놈들이 없으리라. 이 계산을 담은 대답을 내뱉은 키샨을 바라본 자이콴은 한숨을 쉬며 말하였다.

“내가 조선에 수상한 징후가 보인다고 애매하게 소집을 명하였으니 내 책임이기도 하군. 그러하면 황상께 간언을 올리도록 하고 새로 소집 명령을 내릴 것이네.”

아직도 진노하여 대책을 촉구하는 도광제의 목소리를 들은 자이콴은 변명거리를 찾았다. 거짓말이 또 다른 거짓말을 부르듯이 자이콴의 머리가 맹렬히 돌아가며 답을 도출하였다.

마침내 도광제와 접견할 때가 되니 좋은 꾀가 떠올랐다. 지금은 음력 5월이 다가오며 조만간 기후가 변할 시기였다. 인사를 올린 자이콴에게 도광제의 질책이 쏟아졌다.

“당장 군을 움직여 조선을 토벌하도록 한다. 지금 온 조선의 사신들을 돌려보낼 때 짐의 진노를 담은 국서를 보낼 것이며 앞으로 보름 뒤에 출병할 것이다.”

“신 정군왕이 간언을 올리옵나이다. 병사를 소집하여 준비를 마쳤으나 시기가 좋지 아니하옵니다. 신은 황상께서 명하시는 바를 충실히 따를 것이나 하늘이 이를 따르지 않사옵니다.”

“하늘이 이를 따르지 않는다 하였는가?”

도광제는 군사에 대해서는 조금의 지식이 있었지만 이를 과신하지 않았다. 자이콴은 자신의 거짓말이 통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키샨과 같이 변명을 시작하였다.

“한 달이 지나 군대가 요동으로 향할 때가 되면 진창과 수렁이 즐비할 것이옵나이다. 팔기가 사용하는 준마의 다리가 꺾일 것이요 녹영이 이끄는 수레의 바퀴가 깨어질 것입니다.”

“그러한 문제는 조선의 병사들도 같이 겪을 것이 분명한 일이로다”

“조선은 영길리보다 못 하여도 커다란 선박을 다수 사용하고 있사옵니다. 이들이 진창과 수렁을 방패로 삼아 배로 보급을 받으면 쉽사리 걷어낼 수 없사옵니다.”

한 번 시작된 거짓말은 그의 군사지식을 기반으로 점점 더 커져갔다. 도광제가 신중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느낀 자이콴은 어떻게든 석 달의 시간을 끌기 위한 제안을 하였다.

“그러하니 병사를 움직이기 좋은 시기는 구월이라 사료되옵나이다. 한 달만 지나면 바다가 얼어 조선의 선박이 보급을 못 할 것이며 팔기군이 마음대로 활보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도광제가 생각하기에도 옳은 말이었다. 조선을 상대로 전쟁을 할 때에는 언제나 한겨울인 1월에 전쟁을 실시하였으니 좋은 판단이라 생각하였다.

무리한 출병 요구를 합리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여 간언을 올린 자이콴의 판단이 마음에 들었다. 도광제는 잠시 고민하다 적당한 변명거리, 개전까지 석 달을 지연시켜야 하는 명분을 찾아냈다.

“조정에 이러한 간언을 올리는 이가 없었는데 참으로 마음에 드는 일이도다. 조선이 지금까지 보인 충심을 감안하여 개심의 기회를 줄 것이니 국서를 작성하여라.”

국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오만불손한 조선이 지금까지 상국을 섬겨온 마음을 완전히 저버리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여 마지막 기회를 줄 것이라 하였다.

음력 9월 1일까지 이번 사건을 일으킨 조정 관리와 관련 인원을 처형하고 수급을 세자와 함께 북경으로 보내라 하였다. 이는 조공질서에 의거하여 합리적인 태도였지만 국제적 외교에서는 완벽한 선전포고였다.

작가의말

20분이나 늦어서 죄송합니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부르고 또 거짓말을 부르면서 덩치를 키워나가는 법이지요.

그래서 최악의 시기가 아닌 조선군에게 최고로 좋은 시기에 전쟁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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