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장 - 초읽기 (13:35 수정) >
찰스 엘리엇은 아쉬운 일이라 평가하면서 도망치듯 조선을 떠나 벵골로 향했다. 이후 보름 정도가 지나자 간혹 광주에 들렸다 돌아가던 프랑스 상인들이 조선까지 와서 보고를 올렸다.
“한센 박에게 여러 정황을 종합해서 알려드리려 합니다. 저희가 굳이 할 일은 아니지만 아무리 보아도 심상치 않은 조짐이 감지되어서 가만히 둘 수 없더군요.”
내용을 훑어보니 머리가 지끈거리고 뒷골이 쑤셔오며 찰스 엘리엇에게 리볼버를 쏘지 않은 보름 전의 내가 후회되었다. 총을 살살 쏘면 덜 아픈데 아주 살짝 쏠 걸 그랬다.
영국은 전쟁 명분을 찾기 위해 법을 넘나들며 아편을 판매하며 계속 청나라를 도발하였다. 가장 예술적인 항목은 법을 어기지 않고 저지르는 밀수 방법이었다.
“과연 영국 놈들이로군요. 예인선을 통해 아편을 거래하면 엄연히 상륙 이전에 거래하였으니 법을 어기지는 않았습니다. 참 대단해서 상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상이라 하셨습니까? 한센 박이 농담도 잘하십니다.”
“온가족 줄초상이라는 상이지요. 당하는 입장이라 생각하니 아무런 죄책감 없이 할 수 있겠는데요?”
지금까지 전쟁이 벌어지지 않은 것은 모두 임칙서의 초인적인 인내심 덕분이었다. 평범한 관료였다면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영국을 먼저 공격하여 전쟁을 일으켰으리라.
그렇게 되면 대처가 늦은 조선이 허우적거리며 전쟁에 합류하는 꼴이라 지금쯤 요동에서 격전이 벌어졌으리라. 결국 임칙서를 통해 전쟁을 일으키려던 영국은 다른 방법을 택했다.
임칙서가 철저한 수화물 검사를 하는 것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결국 우연을 빙자하여 조선으로 들어갈 군수품을 보여주었고 마침내 청나라가 조선에 대한 정황을 파악하였다.
당연히 조정의 분위기는 싸늘하다 못해 영국에 대한 증오가 맴돌고 있었다. 내가 장계를 읽으며 보고하니 모든 전개과정을 알게 된 순조가 머리를 감싸 쥐고 이 상황에 대해 논하였다.
“적벽대전으로 따지면 동오(東吳)가 유비를 불러들여 조조를 물리칠 계책을 논의하다 다 성사될 무렵 이를 몰래 조조에게 알린 꼴이 아닌가! 영길리 놈들은 정말 사람이 맞는가?”
순조가 적벽대전을 비유로 하여 아주 적당한 설명을 하였다. 연환계로 적을 모조리 불태울 준비를 하였는데 화공을 알려주어 이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만든 상황과 같다.
물론 청나라 따위가 조조의 강력한 육군과 비교할 군대는 아니고 조선의 승리는 변하지 않는 진리이지만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영길리를 믿지 않았지만 이렇게 역겨운 행동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구나! 그나마 임칙서라는 관리가 인내심이 대단하기에 사태가 더욱 험난한 방향으로 진전되지 않았을 뿐이다.”
“실로 그러하옵니다. 임칙서가 분노를 억누르지 못 하고 멋대로 영국의 상인들을 공격하였다면 변란은 더더욱 빠르게 벌어졌을 것이옵니다.”
영의정 이지연이 평가하자 대소신료들이 적국인 청나라의 관료 임칙서를 칭찬하고 동맹이라 자처하는 영국을 비방하였다. 순조는 비난의 물결이 거세지는 것을 알아차리고 이를 제지하려는 듯이 말하였다.
“영길리의 행위에 분노하여 이 나라에 있는 영길리의 사람들을 비방하지는 말도록 하여라. 이미 벌어진 일이니 거기에 소모할 힘을 변란을 대비하는데 쓰도록 하자꾸나.”
그렇다 해도 대소신료들 모두가 이 상황에 적응하지 못 하였다. 전면전이 벌어지기 이전에 수도를 함락시킨다는 대전제가 깨어졌으니 새로운 전략을 세워야 한다.
사실 이 상황에서 남은 것은 청나라와의 전면전 외에는 없다. 순조도 숨통이 조여 오는 느낌이 들었는지 싸늘한 대전 안에서 옷자락을 조금 내리며 말하였다.
“결국 예정된 대로 대업을 진행할 것이니 명심하도록 하여라. 지금 막 의주 일대에서 사로잡힌 밀수꾼을 내년 오 월 까지 수감한 뒤 처형할 것이다.”
본래 계획대로라면 청나라와 외교적 마찰을 일으키며 어쩔 수 없이 전쟁을 일으키려 하였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격분한 청나라는 즉각 군사를 소집하리라.
본래 영국은 자신들이 남부 일대를 담당하여 청나라의 병력을 반으로 나눠 상대한다고 약속하였다. 이 약속조차 믿을 수 없게 된 순조는 허탈한 듯이 말하였다.
“영길리는 우리 조선이 북방을 담당하면 남쪽에서 해전과 상륙전을 벌여 적의 전력을 분산하겠다고 하였다. 이를 신뢰할 수 없으니 영길리가 어떻게 나설지 그루시가 답해보아라.”
“그야 방비가 약한 도시를 약탈이나 할 것이 분명합니다. 해안 도시를 쏘다니면서 포격으로 제압하고 일대를 약탈하며 시간을 끌며 자신들의 지분을 높일 것 같군요.”
“기껏해야 지방을 담당하는 주방팔기(駐防八旗)나 괴롭힐 것 같구나. 실로 고달픈 일이로다.”
그루시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 역사에서 아편전쟁은 광주를 해군으로 공격하며 시작되었다. 다만 임칙서가 지상포대를 설치하고 강 하구를 막으며 광주는 지킬 수 있었다.
이후에 여러 장소를 공격하며 약탈을 하다 협상이 결렬되자 재차 전쟁을 감행하였다. 여기서는 철갑 증기함 네메시스를 동원하여 광주를 함락하고 청나라 남부를 초토화시켰다.
이후 전개야 실상이 드러난 청나라가 아예 박살이 나면서 남경 함락 직전에 협상을 맺은 것이 전부이다. 순조는 잠시 생각하다가 나를 바라보며 명령을 내렸다.
“불란서와 노서아의 힘을 빌려야 할 것이다. 이미 불란서의 함대가 대월에 머물고 있으니 이천만 냥(약 80만 파운드)의 차관을 들여 불란서의 함대를 소집하도록 하여라.”
“하오면 노서아에게는 어떠한 요청을 하는 것이 옳사옵니까?”
“노서아는 기병의 힘을 조금이라도 끌어올려야 하니 질 좋은 준마를 수입할 것이다. 이미 추가 지원을 하기로 약조하였으니 불가한 일은 아닐 것 같구나.”
순조의 명령을 받고 외교서신을 작성하였지만 영국이 순순히 당해줄지가 의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프랑스의 개입을 막기 위해 영국은 치졸하고 역겨운 수를 사용했다.
본래 프랑스의 개입은 예정된 사항이었으며 조선은 확답을 얻으려 했을 뿐이다. 반면 1840년 2월에 도착한 프랑스의 외교관은 순조에게 인사를 올리고 좋지 않은 소식을 전했다.
“영국의 신형 철갑 증기선 네 척이 벵골에 위치한 인도양 전대에 배정되었습니다. 여기에 2급과 3급 전열함을 포함한 함선 스무 척이 증파되었습니다.”
“지금 뭐라 하였는가? 증기선이라 하면 쉽사리 운용할 수 없는 선박이 아닌가?”
“저희로서도 답답할 따름입니다. 위협적으로 말라카 해협을 오가며 베트남 동맹에 대한 압박을 실시하는데 이미 베트남에 둔 원양 함대를 조선으로 보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영국이 왜 이런 대처를 보였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프랑스는 그루시의 보고가 들어간 1839년 8월 경 부터 조선 파병을 위해 베트남 일대에 함대를 비축하고 있었다.
이 행위의 명분은 동맹국 베트남에 대한 수군 교육이지만 다르게 해석하면 베트남을 통한 인도양 해군의 견제로도 보일 수 있었다.
영국의 함대 증설 명분이야 베트남에 머무는 프랑스 수군의 견제이겠지만 본질은 다르다. 이번 기회에 어떻게든 조선을 위기에 처하게 만들려는 속셈이었다.
네메시스 호를 비롯한 철갑 증기선 4척을 파견하였으니 유지비는 끔찍할 정도로 올라간다. 일반 선박은 지중해에 있건 원양에 나오건 같은 유지비가 소모되지만 증기선은 아니다.
배를 움직이는 것 자체가 돈이 소모되며 본국이 아닌 원양에 나서면 석탄 운송비로 인해 엄청난 자금이 소모된다. 이를 알고 있는 순조도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평가하였다.
“철갑 증기선을 천축까지 보내는 비용만 따져도 어지간한 선박 두 척을 건조할 수 있을 것이다. 영길리가 참으로 치졸하고 오만하며 강대하니 이 일을 어찌 하면 좋겠느냐.”
“저희로서도 이번 전쟁에 많은 군선을 보낼 수 없는 상황입니다. 다만 상선을 많이 보내 조선군의 보급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조를 드리는 바입니다.”
순조는 고개를 푹 숙이고 손짓을 하며 프랑스 외교관을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며 생각을 정리하다 말하였다.
“이토록 치졸하고 오만한 영길리를 어떻게 해야겠느냐? 인조대왕의 치세부터 이 나라를 핍박한 청나라는 적이지만 영길리는 악독한 사갈(蛇蝎)과도 같구나!”
지금 상황은 영국이 무리한 수를 두었지만 수습할 수는 있다. 함대를 먼저 증설한 쪽이 프랑스이니 직접적인 공격만 안 하면 어떻게든 수습이 된다.
그래도 이렇게 혐오스러운 짓을 당하였으니 되갚아주고 싶었다. 자고로 되로 주면 말로 받는 법이니 순조에게 조심스럽게 간언을 올렸다.
“이번 전쟁에서 영길리의 자존심이 무너지면 어떻게 되겠사옵니까? 이를테면 새로운 병기가 갑자기 남경에 등장하여 기함이 침몰한다면 참으로 볼만한 일일 것이옵니다.”
“박현상이 좋은 말을 하였구나. 내가 알기로 철갑 증기선은 전열함 세 척의 건조비용이 들어가는 배라 하였다. 이 배를 청나라에서 격침한다면 영길리는 얼마나 곤경에 처하겠느냐.”
사관이 듣고 있으니 더 이상 말은 하지 않았지만 순조는 눈짓으로 나에게 명령을 내렸다. 조선 수군은 최소한의 보급선만 운영할 예정이니 신병기를 만들어도 좋다는 허가였다.
이를 임칙서에게 지원하여 영국에게 큰 엿을 먹이라는 뜻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일준이를 만나 신병기에 대한 조언을 받으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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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준이는 신입생들을 위한 화학 강의를 마치고 연구실에 있었다. 이하응이 올린 것 같은 보고서를 살펴본 녀석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팔짱을 끼며 말했다.
“네 표정만 봐도 알 것 같다. 지금 또 괴상망측한 무기라도 요청하려고 왔냐?”
“어떻게 알았어?”
“얼마 전에는 마르몽이 너와 비슷한 표정으로 신형 포탄이 언제 완성되는지 독촉하더라. 지금은 어느 정도 여유가 있으니까 이야기나 해 봐라.”
일준이는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보였다. 나는 이점버드 브루넬을 통해 입수한 철갑 증기함 네메시스의 상세 스펙을 보여주며 질문을 시작하였다.
“철갑 증기선을 격파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들어 줬으면 해서.”
“철갑 증기선? 그걸 상대한다면 영국이나 프랑스를 상대로 싸운다는 소리인데 제정신이냐?”
“우리가 싸울게 아니고 차도살인지계를 수행하려고 하지. 이야기가 길어질 텐데 들어줘봐.”
녀석은 내 계획에 대해 듣더니 고민을 하였다. 훈련된 조선군도 아니요 아직 기량을 쌓고 있는 조선 예비 수군도 아니요 민병대에 불과한 임칙서 휘하 병사들이라는 말을 듣자 한참을 고민하더니 말하였다.
“훈련도가 부족한 민병대가 일 센티미터가 넘는 강철판을 관통해 배를 침몰시킬 수 있는 병기를 만들라고? 관통이야 가능하지만 배를 침몰시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야.”
녀석은 네메시스호의 스펙을 확인하고 외부 구조를 칠판에 그렸다. 나무로 만든 내부 구조를 외부의 철판이 감싼 형태였는데 장갑 부분을 손가락으로 두들기면서 말했다.
“이론상 영국산 32파운더나 프랑스에서 수입한 대구경 포를 근거리에서 쏘면 관통이야 가능하겠지. 관통은 가능해도 침몰은 아예 다른 문제야.”
“내부에 파편이 튀어서 들쑤시거나 잘만 하면 증기기관을 타격할 수 있지 않겠어?”
“그게 가능하려면 프로펠러를 사용해서 후면에 기관이 밀집된 녀석이어야지. 반면 네가 가져온 영국의 증기선은 배의 중심에 증기기관 두 개를 설치한 외륜선이잖아?”
일준이가 내부에 증기기관과 외부에 연결된 수차까지 그리니 문제를 알 수 있었다. 구멍 몇 개를 뚫어서 배를 격침시키려면 외륜을 집중 타격해야 하였다.
이 과정에서 외륜을 타격하고 힘을 잃거나 경로가 어긋난 포탄이 생기면 격침은 불가능하다. 확실한 격침을 위해서는 최소 수십 발의 포탄을 쏘아야 하는데 일준이는 이 문제를 지목했다.
“조선에서도 상대하기 힘든 철갑 증기선을 상대로 전면에서 포격을 주고받으면서 싸운다고? 그게 된다면 애초에 이런 병기를 만들 이유가 없잖아?”
“그럼 다른 방법은 없을까?”
“뭐······. 지금 생각나는 방법은 차라리 물량으로 달라붙어서 배 위에 올라 백린을 뿌리고 도주하는 방법 정도야.”
“그게 더 불가능하지. 네메시스정도 되는 기함이면 최정예 해병대가 탑승하고 있어. 민병대는 백린을 뿌리기는커녕 올라오지도 못 하고 도륙당하겠지.”
영국에게 아주 큰 엿을 선사하고 싶은데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냥 임칙서에게 영국의 전략과 이를 상대하는 방법만 전달해야 하리라.
조선에서 수십 문의 화포와 여기에 사용할 포탄을 제공한다면 영국이 눈치를 챌 것이요 나중에 뒷감당을 못 한다. 영국은 수작을 부렸다면 조선은 아예 배신을 한 행위이다.
반면 일준이는 뭔가 생각이 났는지 여러 공식을 적었는데 아마 폭발력과 관련된 공식 같았다. 그러더니 심란한 표정을 지으면서 나에게 물어보았다.
“사용하는 사람이 반드시 죽는 것을 전제로 무기를 만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야.”
“설마 자폭병기를 만들려고? 너 지금 제정신이지?”
“제정신으로 말하는 거야. 애초에 기술력도 부족한 이 시점에 기뢰를 만들 수도 없고 화포를 사용할 수도 없잖아? 그러니 장약을 무식하게 많이 넣은 초대형 고폭탄을······.”
녀석은 거대한 깔때기 형태의 도면을 그렸는데 내부에 솜화약이 들어 있었다. 여기에 줄을 당겨서 작동하는 구조의 신관이 있었는데 생각나는 병기는 단 하나였다.
“이거 초대형 자돌폭뢰(刺突爆雷)잖아!”
“본래 역사에서 존재한 병기였냐? 아무튼 이런 형식의 무기가 아니라면 격침은 불가능해. 최소 오십 킬로그램 이상의 무연화약을 밀착시켜 흘수선(吃水線) 아래에서 터트리는 거야.”
작동 방법도 살벌했다. 최소 대여섯 명의 사람이 거대한 막대기에 매달린 이 초대형 자돌폭뢰를 지탱한 채 스무 명 남짓 탑승 가능한 나룻배에 올라 목표까지 접근하는 것이다.
녀석은 폭발로 일어날 효과를 칠판에 그렸는데 철판이 뻥 뚫리고 내부의 목조 구조물이 무너지며 사람이 드나들만한 구멍이 생겨났다. 심지어 파편이 튀어 내부의 선원 몇 명이 휩쓸리는 것 까지 묘사하였다.
문제는 이 초대형 자돌폭뢰를 사용한 쪽의 타격이 더 심했다. 열 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사지가 허공으로 날아간 모습을 묘사한 일준이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대신 이 배에 탄 사람들은 반드시 후폭풍에 휩쓸려. 자석을 이용한 접착 같은 것은 꿈에도 못 꾸니 격발 시점까지 손잡이를 움켜쥐고 배의 표면에 밀착시켜야 하니까.”
“나룻배 위에 있으면 후폭풍에 휩쓸리지만 물속으로 뛰어들면 살 수 있지 않을까?”
“물은 충격파를 잘 전달하니까 더욱 확실하게 죽어. 이 병기는 생환을 전제로 하지 않은 자폭병기고 내 입장에서도 만드는 것 자체가 부끄러운 녀석이야.”
영국에게 아주 큰 엿을 선사하려고 자폭병기의 사용을 강요하는 꼴이 되었다. 이래서야 가미카제랍시고 조종사들의 희생을 강요한 일본제국과 다를 것이 뭐란 말인가.
반면 다른 생각도 들었다. 임칙서와 청나라 사람들 입장에서 네메시스는 수많은 사람을 잡아먹은 악마이다. 악마를 죽이는데 조금의 희생은 감내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고민해봤자 답이 나오지도 않는 형편이었다. 일준이에게는 일단 무기의 제조를 보류시키고 프랑스 상인을 통해 광주에 머무는 임칙서와 서신으로 대화를 나누었다.
[임 대인께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조선의 신하로서 본분을 지키며······.]
조선은 전쟁을 벌이건 말건 관심이 없지만 영국 때문에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죄송하다는 사죄 편지를 보냈다. 여기에 임칙서를 위하여 영국에 대한 정보를 보내주었다.
[영길리는 지극히 흉험한 수를 쓰는 나라입니다. 임 대인께서 적발하지 못 한 아편은 예인선을 통해 옮겨질 것입니다. 또한 영길리의 수군은······.]
한 달 뒤에 임칙서에게서 답변이 도착했다. 그는 조선을 도저히 신뢰할 수 없을 지경이지만 영국보다는 신뢰할 수 있다는 답을 보내주었다.
더군다나 철갑 증기선의 대처법을 물어보기까지 하였다. 첫 편지에서는 대처법이 아예 없으니 교전을 회피하라 하였지만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내려 한 것이다.
양심에 걸렸지만 영국의 자존심을 무너트리고 청나라가 조금이라도 반격을 할 계기를 만들려면 철갑 증기선의 격침이 필요하였다. 그러니 최악의 제안을 하였다.
[수십 명, 최악의 경우에는 수백 명이 죽으면서 격침시킬 방법이 있습니다. 다만 이 병기를 사용한 사람은 반드시 죽을 것이요 시신도 찾지 못 할 것입니다.]
밀수꾼의 처형으로 관계가 악화되기까지 한 달 남은 4월경에 임칙서의 답이 도착하였다.
[순리에 어긋나는 일이나 철갑 증기선이 그토록 강하다면 조선의 지원을 받을 것이다.]
결국 임칙서도 마음을 굳혔다. 개전을 코앞에 둔 시기에 답을 받았으니 즉각 일준이에게 철갑 증기선용 자돌폭뢰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였다.
작가의말
청나라 : 적이자 원수이지만 호구
영국 : 동맹이라 자처하는 마귀같은 놈
틀린게 아닙니다.
13:35에 수정하였습니다. 영국의 함대 증설 명분은 프랑스가 먼저 베트남 일대에 함대를 파견했기 때문입니다. 작중에 시기를 언급하지 않아 이 사실을 알려드리지 못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