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장 - 요순학, 2기 (1) >
토머스 호킨스와 매리 에닝을 통해 지질학과 고생물학 그리고 고고학에 발을 들인 유생들은 삼 개월 동안 화석을 발굴하며 겨울이 다 된 1838년 11월에 결실을 맺었다.
이들이 원하던 옛 유물은 아니지만 역사상 최초로 공룡의 알을 발견하였다. 돌을 엮어 만든 둥지에 주먹보다 커다란 10여개의 알이 있었으니 모두가 궁금하게 생각하였다.
“이 물건은 용의 알이라 보아야 하나 아니면 악어의 알이라 보아야 하나.”
“알껍데기를 쪼아내면 속에 무슨 짐승이 있었는지 알 수 있겠지. 혹시 봉황이 아닐까?”
애석하게도 발견한 공룡 알의 내부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이들이 알에 몰두한 동안 매리 에닝은 본능적으로 화석의 위치를 찾아나갔고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여러분 이걸 좀 보시는 게 어떨까요? 보존상태가 영 좋지 않지만 아무리 보아도 거대한 짐승의 뼈가 아닌가요? 둥지의 주인 같은데요?”
메리 에닝의 직감은 현대에 발견되었을 코리아케라톱스의 화석을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팔다리가 대부분 소실된 화석이지만 두개골과 척추 그리고 꼬리뼈의 형상은 남아 있었다.
“아무래도 새로운 도마뱀이라 생각되는데요. 제가 발견한 녀석 중에서 가장 특이한 게······.”
“이 녀석은 용의 일종이 분명하다네. 꼬리에 달린 뼈는 볏을 지탱하기 위해서 돌출되었겠지.”
“그럼 두개골이 문제로군. 주둥이가 길지 않고 새의 부리처럼 오므려져 있지 않나. 그렇다고 이 뼈의 형태가 봉황의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매리 에닝은 더 이상 생각하기를 포기하였다. 영국에서도 자신이 발견한 화석을 악마의 일부분이나 악어라고 하였는데 머나먼 동양에서는 기괴한 서적의 생물들을 들이대 버렸다.
나름 지역의 유지들인 유생은 자신들이 발견한 용인지 봉황인지 모를 코리아케라톱스의 화석을 가지고 언쟁을 벌였다. 이 언쟁을 통해 더 많은 유생들이 몰려들자 토머스 호킨스는 제안을 하였다.
“아무리 보아도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조선 속담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는데 조를 나누어서 각자 유물과 화석을 발굴하는 게 효율적일 겁니다.”
“별로 좋은 일은 아니지만 용파를 시기하는 봉황파 때문에라도 조를 나누겠소.”
“봉황파는 무슨! 그 부리를 보고도 용이라 주장할건가?”
화성을 중심으로 모인 요순학자들은 이미 백여 명에 달하였으니 옳은 결정이었다. 먼저 메리 에닝과 함께 행동할 서른 명이 대형 지층을 발굴하는 작업을 주도하였다.
나머지는 각자의 고향으로 내려가 화성의 화석 발굴에 참여한 사람을 중심으로 뭉쳐서 행동했다. 이들은 가장 쉬운 단계부터 발굴 작업을 익혀나갔다.
이들이 눈을 돌린 곳은 고인돌이었다. 스톤헨지라는 유적지에 대한 설명을 들은 유생들은 조선에도 스톤헨지와 흡사한 고인돌이 있으며 여기서 유물을 발굴할 수 있다 생각하였다.
마침 고인돌은 발굴하기도 쉬운 물건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옛적에 제사를 지내던 단상이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은 고인돌에 지지대를 세우고 발굴을 시작하였다.
“나리! 말씀하신 대로 땅을 파 보았는데 묘소와 사람의 유골이 있습니다!”
“사람의 유골이 있다고? 고인돌은 제사를 지내는 곳인데 왜 유골이 있단 말인가?”
고인돌 아래에는 간혹 유골이 남아있는 경우가 있었다. 고인의 영면을 방해한 유생들은 사죄의 뜻을 담은 제사를 올렸다.
이후 발굴은 삽과 곡괭이 대신 모종삽과 붓을 동원하여 철저한 발굴을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부장품으로 안치된 토기와 동검 그리고 각종 장신구가 발견되었다.
점차 경험과 유물이 축적되었지만 서른 명이 합류한 대규모 발굴단은 실패를 거두었다. 태백의 화석 산지에서 겨울 내내 화석을 발굴한 매리 에닝은 참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에도 실패에요. 죽을 고생을 했는데 이런 찌꺼기만 발굴하다니.”
“옛 유물은커녕 용이나 봉황의 뼈도 아니고 고작 벌레의 파편을 발굴할 줄이야.”
뭔가 큰 건수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 방문한 태백의 화석 산지에서는 삼엽충의 화석만이 가득하였다. 재산을 상당히 소모한 장우일은 곡괭이를 집어 던지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지층을 찾는 토머스 호킨스의 지식은 평범한 학자에 불과하였다. 오히려 매리 에닝의 직감이 발휘되어 이 정도의 화석을 찾아냈으리라.
1839년의 봄날에 화성에 돌아온 요순학자들은 각자의 성과를 공개하였다. 그나마 고인돌을 발굴한 초보자들은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다.
반면 수많은 호랑이와 늑대의 습격을 견디면서 야산의 지층을 파헤친 사람들은 대부분 화석치고는 너무나 초라한 녀석들만 발굴하였다.
“이건 옛적에 살던 벌레가 아니오? 서른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만든 성과치고는 초라한데.”
“저는 화서(華西 - 이항로의 호)라는 분의 지질 조사결과를 재조사해서 지층을 선별할 뿐이니까요. 오히려 여러분의 실력이 좋아서 발굴이라도 성공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화서 대감을 요순학자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지. 지금도 나라를 부강하게 하기 위하여 수많은 지역을 오가며 탄광을 찾고 계시지 않은가.”
“그럼 화서 대감에게 지질학을 가르친 사람에게 가르침을 얻는 것이 괜찮을 것 같은데?”
이들은 더 나은 지질학자를 찾아 서양에 머물고 있는 남연군에게 서신을 보냈다. 마침 프로이센에 머물고 있던 남연군은 서신 무더기를 받고 콧노래를 부르며 말하였다.
“내가 보낸 용골이 조선에서 인기를 끌어서 용골을 발견하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군.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소이다.”
마침 함부르크에 머물던 남연군은 자신을 대접하기 위해 저택을 빌려준 은행장 뮐러 오페르트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뮐러는 남연군의 이야기를 듣고 이상하다는 듯이 말하였다.
“용골이라 하면 화석 아닙니까? 노아의 대홍수에 죽은 짐승들을 연구한다니요?”
“옛 조상의 기록도 확인하려고 땅을 파헤친다 하였는데 얻어 걸린 것이오. 이들이 나를 통해 땅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소개받으려 하는데 혹여나 소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소?”
“그야 제 셋째아들인 에른스트가 아니겠습니까. 저 귀여운 모습을 보십시오.”
마당에서는 8살의 어린아이 에른스트 오페르트가 유물을 발굴한다며 삽과 작은 곡괭이를 들고 땅을 파헤치고 있었다. 웃음을 터트린 남연군에게 뮐러가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었다.
“저희 프로이센의 자랑인 알렉산더 폰 훔볼트 경을 만나 보신 적이 있지 않습니까? 그분의 지질학을 기반으로 한 수많은 지식은 어느 누구도 따를 수 없습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남연군은 바로 알렉산더 폰 훔볼트를 만나게 되었다. 마침 서적 집필 중에 슬럼프에 빠진 훔볼트는 간단히 이 요청을 허락하였다.
“프랑스에 머무를 때에 닐슨과 함께 연구를 하려 했지만 서적 집필 때문에 할 수 없었지요. 이렇게 열정적인 사람이 가득하니 이번 기회에 조선으로 건너가 강연회를 열면 좋겠군요.”
처음에는 거절하려던 알렉산더 폰 훔볼트였지만 이런 열정을 보이는 사람을 가르칠 욕심이 생겨났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의 지리에 대한 연구도 간단히 진행할 예정이었다.
1839년 9월 말에 조선에 도착할 프랑스의 정기 무역선 함대에 훔볼트가 임대한 배가 합류하였다. 마침 그랑제콜 분원에 입학할 예정인 프랑스 학생들은 훔볼트의 강의를 듣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그랑제콜에 강의를 할 예정이었는데 잘 된 일이로군요. 여러분의 기초 과학지식을 강화하기 위한 강의를 간단히 진행해 보겠습니다. 모두 집중하시지요.”
프랑수아 기조가 첫 시험을 통해 500명을 선별하고 조일준의 요청으로 확정된 50명의 유학생들은 눈을 빛내며 강의를 들었다. 개중 훔볼트의 눈에 들어온 학생이 둘이 있었다.
“식물의 생장에는 기온과 습도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또한 토양의 영양소가 중요한 작용을 하지요. 루이 파스퇴르 학생이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으니 말해 보시지요.”
“닐슨 조의 주도 하에 유스투스 리비히가 만든 인산 비료가 있습니다. 다만 최소한 한 가지 성분이 더 있으니 닐슨 조도 광물을 정제한 인산에 정어리를 섞는다 하였습니다.”
“옳은 답입니다. 인산은 식물의 성장을 촉진시키지만 한 가지 요소가 더 있어야 식물의 성장이 확실히 증가됩니다. 제 추측으로는 페루의 구아노가 가진 성분 같군요.”
70세의 노인이 된 훔볼트였지만 그는 정열적인 수업을 이어갔다. 그의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대부분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배 위에서 놀아댔지만 다른 학생은 질문을 계속하였다.
“교수님께서 남미 일대를 탐험하신 기록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장 앙리 파브르 학생은 밤이 늦었는데 지치지도 않습니까? 그럼 어제에 이어서 전기뱀장어를 사냥한 이야기를 해 드리지요. 아주 위험한 생물이었습니다······.”
훔볼트가 보기에 이 두 학생들은 성공하고도 남을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놀라운 직관과 지능을 보이는 루이 파스퇴르는 당장 제자로 삼고 싶을 생각이 들 정도였다.
반면 평범한 재능을 보이는 장 앙리 파브르는 이를 감당하고 남을 끝없는 노력과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밤 12시까지 이야기를 한 훔볼트는 잠자리에 들며 중얼거렸다.
“닐슨 조의 아래에서 이들이 어떤 성과를 거둘지 모르겠군. 내가 십 년만 젊었어도 이들을 가르치는 것인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배는 예정대로 항해하여 1839년 9월 26일 조선에 도착하였다. 머나먼 동방의 조선에 도착한 훔볼트는 프로이센에도 없는 문물을 보고 조선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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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항해에 지친 유학생과 훔볼트가 항구에서 이틀 정도 묵으며 여독(旅毒)을 풀어내고 마침내 내륙으로 향했다. 이들이 가장 놀란 점은 조선의 철도였다.
“믿기지가 않는군요. 우리 프로이센이 기껏해야 철도를 막 설립하고 있는데 이런 지방까지 철도가 개설되다니. 더군다나 백성들이 철도를 이용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저희가 영국에서 들여온 차관의 대부분이 이 철도 부설에 쓰이는 형편입니다.”
프로이센의 철도는 1838년에 개설된 베를린-마그데부르크 철도노선이 전부였다. 25km에 불과한 거리이니 조선 기준으로 역 두 개가 간신히 부설되는 구간이었다.
이는 프랑스의 유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의 영향을 받은 민간 철도업자가 파리를 기점으로 삼은 60km 노선을 두 개 운영하였을 뿐 이런 대규모 노선은 상상조차 하지 못 했다.
“생레옹의 촌놈인 내가 열차를 탈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루이는 열차를 타 본적이 있어?”
“열차를 내가 어떻게 타 봤겠어? 몇 번 본 적은 있는데 직접 타 보는 건 처음이야.”
파스퇴르가 아는 조선은 산속에 거대한 호랑이가 들끓고 인삼이 자라날 정도로 자연이 보존된 곳이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최첨단 기술인 철도를 누구보다 잘 받아들이는 곳이었다.
이들이 타고 갈 기차가 역에 들어오고 유학생을 맞이하기 위해 교수들이 내려왔다. 가장 앞에 있는 사람은 이들을 가르칠 그랑제콜 분원의 학과장인 조일준이었다.
희대의 천재이자 위대한 화학자를 맞이한 유학생들은 시선을 집중한 채 조일준을 바라보았다. 반면 조일준은 유학생들을 한 번 살피더니만 훔볼트에게 달려가 인사를 올렸다.
“저명하신 알렉산더 폰 훔볼트 교수님을 만나 뵈니 참으로 영광입니다.”
“이러실 필요까지는 없지요. 저야 열정이 가득한 사람을 가르치러 온 것이지 정식 교수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니 편히 대해주시지요.”
“업적이 있는 분인데 편히 대하시다니요. 나중에 저와 한 번 논의라도 하심이 어떠십니까?”
“제가 프랑스에 있을 때 닐슨의 활약을 보고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그 때 아쉬움을 나중에 달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지요.”
조일준도 교수로 초청하려 하였지만 너무나 위대한 인물이라 욕심도 내지 못 한 사람이 알렉산더 폰 훔볼트였다. 그런 사람이 손수 조선에 왔으니 융숭한 대접을 함이 마땅하였다.
“아무런 조건이 없이 찾아오신 분이니 드릴 수 있는 것은 모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머나먼 동방의 조선에서 간단한 연구만 진행해도 좋으니까요. 오히려 우리 프로이센의 발전하기 위한 해답이 조선에 있는 것 같군요.”
기차에서 보이는 풍경으로 조선의 자연환경에 대한 분석에 나선 훔볼트를 보며 조일준은 저절로 자세를 바로 잡고 긴장하였다. 언제나 남을 존중하였으니 편히 대할 수 있어도 그는 이 시대에서 가장 위대한 학자였다.
젊은 시절에는 아마존 강을 탐사하고 안데스 산맥을 넘어 페루까지 나아갔으며 5,000m가 넘는 거대한 산을 몇 번이고 오른 사람이었다. 그의 과학적 지식은 모든 분야에 뻗어 있었다.
수많은 지식은 물론 지리학을 정립한 위대한 학자이니 조선에서 어떤 성과를 거둘지가 궁금하였다. 열차가 기점인 인왕산 역에 도착하자 훔볼트는 벌써부터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조선의 지층은······. 특히 수도 인근의 지층은 흑운모가 조금 섞인 화강암이군요. 이런 단단한 돌이 넘쳐나는 나라이니 석조 건물이 그리 발달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저희가 꾀를 조금 내어서 좋은 건물을 지으면서 여러모로 개선하고 있습니다.”
한양의 거리 풍경도 완전히 바뀌었다. 이전에는 중심부에 기와집이 있고 외곽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초가집이 즐비하였지만 이제는 중심 길거리에 3층 내외의 벽돌집이 즐비하였다.
훔볼트는 특별 초청 강사이니 가마에 올라 콧노래를 부르며 한양의 풍경을 확인하였다. 길거리에는 사괴석(四塊石)이 깔려 타일을 대신하였으며 지금도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저 철로 만든 원통은 무엇입니까? 조선에서는 각 집에도 증기기관을 설치하는지요?”
“증기기관은 아니고 보일러라는 녀석입니다. 조지 스티븐슨의 아래에서 배운 사람들이 만든 물건인데 바닥 난방용으로 쓰이는 물건이지요.”
“구리 관이 함께 운송되니 철로 만든 원통에서 불을 때서 구리 관에 들어있는 물을 가열하는 것 같군요. 프로이센에서는 군불이나 때는 토탄을 활용하면 제법 쓸모가 있겠습니다.”
한양 중심부는 고층 건물과 보일러를 활용하여 인구 밀집도가 자연스럽게 증가하였다. 또한 외곽의 초가집은 화재를 방지하기 위하여 점차 재개발되어 벽돌집으로 바뀌고 있었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이러한 발전을 프로이센에 적용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사괴석이 깔린 바닥에 머무르다 또 다른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무리 보아도 레일을 설치하기 위해 바닥을 비워두었군요. 혹시 수도 내부에 마차철도를 운영하실 계획이십니까?”
“아직 예산이 부족하여 계획만 하고 방치하였을 뿐입니다.”
조선은 체계적인 발전을 계획하는 나라였다. 이러한 조선에 적잖이 만족한 훔볼트는 간단한 자기소개를 마치고 강의를 시작하였다.
훔볼트를 초청한 유생들은 끝없는 열정으로 질문을 하였다. 한 달 전부터 그랑제콜에 머물던 이들은 단 두 명을 제외하고 모두 모여 질문을 퍼부었다.
“교수님께 여쭈어 볼 것이 있습니다. 수많은 유적을 발굴하셨다 들었습니다만 가장 인상적인 유적이 어느 것이셨습니까?”
“한 유적은 발굴하던 중에 다시 덮어버리고 말았지요. 아스텍의 유적을 발굴하다 너무나 흉측한 신상을 발견하여 그대로 묻어버렸습니다. 참 부끄러운 일이로군요.”
훔볼트의 업적은 다양한 분야를 포괄하고 있으니 강의할 내용이 넘쳐났다. 그의 끝없는 지식은 쉴 새 없이 답을 알려주었다.
조일준의 과학이 올바른 길을 따라 흐르는 강물이라면 훔볼트는 거대한 호수와도 같았다. 그는 어지간한 발굴 자료를 볼 때마다 흔쾌히 답변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