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장 - 서원 혁파 (2) >
서원 혁파 작업에서 서유구는 빠져나가게 되었다. 그는 나름 머리가 깨어있는 사람이지만 결론적으로 유학자들을 본래의 뜻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작업이니 감당하기 힘들어 하였다.
“신은 서원이 올바른 뜻을 가지고 나라를 위하여 경학(經學)을 익히는 것을 원하고 있을 뿐이옵니다. 성현의 위패를 모시던 곳에서 돈을 놓고 이문을 논하는 것은 그릇된 일이옵나이다.”
“그 또한 옳은 말이나 지금의 세상을 눈여겨보시오. 전국에 있는 서원의 칠 할 가량이 이문을 찾다 죄를 저질렀고 남은 삼 할도 죄를 범하지 않았을 뿐 이문을 추구하지 않소.”
서유구도 옳은 일임은 알고 있었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지식 때문에 효명세자의 말에도 답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언뜻 보면 무례한 행동이지만 유학자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행동이었다. 효명세자는 서유구를 설득하기 위해 차근차근 설명을 하였다.
“내가 서역의 교육을 보며 이 나라와 가장 큰 차이점이라 느낀 것이 대학의 존재요. 뛰어난 스승을 두고 일곱 분야(문법, 논리학, 수사학, 산술, 기하, 음악, 천문)를 익히더구려.”
“하오나 본래 서원과 향교가 이러한 역할을 담당하지 않사옵니까. 이를 상인과 같이 묶으려 하시니 올바른 뜻이라 하여도 손이 움직이지 않을 지경이옵니다.”
“그러하니 다른 방도를 마련하여 봅시다. 서원 가운데 진정으로 이문에 눈이 멀지 않고 경학을 논하려는 곳은 우대하고 나라의 일을 도맡아 할 기회를 주면 좋지 않겠소?”
효명세자의 뜻은 상세히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본래 서원을 세운 의미는 지방의 사립학교 역할로 후학을 양성하고 학문을 추구하여 완성하는 것이다.
변질되어버린 서원의 본질을 되살리면 대학교와 유사한 학문의 장을 만들 수 있을 것이며 지방 사학의 계보를 바로 세울 수 있으리라. 효명세자는 우리를 보면서 명을 내렸다.
“나는 서유구를 비롯하여 경학에 능한 자들과 함께 다른 방법을 찾아볼 것일세. 그러하면 나머지는 뜻을 모아 서원의 유생들에게 권업(勸業)을 하는 방안을 논하도록 하게.”
서유구 대신 우리를 인솔한 사람은 조만영이었다. 그는 차근차근 설명을 듣더니 서원의 유생들이 아예 욕심을 대놓고 드러내 적당한 사업을 실시하기를 원했다.
“참으로 좋은 방도로군. 나라에서 서원의 사업에 출자하면 이들이 무슨 행동을 하는지 알 권리가 생기지. 이를 통해 여러 법을 지키게 하고 세금을 납부하게 만들면 되는 일 아닌가.”
“옳은 말씀입니다. 감시를 위해 현직 관리가 아닌 은퇴하여 기로소나 봉조하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이 시찰하게 만들면 더욱 좋은 일이지요.”
먼저 출자 비율에 대한 논의부터 시작하였다. 영국의 빈민가를 보고 온 관리들은 철저한 관리를 요구하며 나라의 돈으로 5할을 출자해야 한다 말했지만 조만영은 단칼에 거절하였다.
“여러 유생이 힘을 합쳐 회사를 만들고 공장을 건립한다면 최소한 다섯 명은 넘는 사람이 응하겠지. 그러하니 조정의 지원은 이 할을 넘어설 필요도 없지.”
“명분은 가장 큰 자본을 투자한 조정에 있지 않습니까. 공장을 모조리 관리하지 않고 회계감사를 하고 입출내역만 조사하여도 목덜미를 잡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며칠에 걸친 장기 회의에 점차 기본적인 틀이 잡혀나갔다. 각 서원이 담당할 사업을 정할 차례가 되었는데 조만영은 서원의 출자 규모에 따라 선택권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자고로 많은 돈을 출자하고 많은 지원을 받는 서원이 우선권을 가지는 법이 아니겠는가.”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만 그렇게 하면 부가 편중될 염려가 있습니다. 차라리 출자 규모에 따른 사업을 분배하여 어느 정도 지역의 형평성을 추구하는 것이 어떠하십니까?”
균형발전 논리를 추구할 시대는 아니지만 담합과 산업 편중으로 인한 부작용을 조금은 완화해야 하리라. 조만영은 잠시 고민하더니 내 의견을 존중하여 주었다.
“출자 자금을 우선으로 하면 아예 종가의 돈을 끌어 모을 수 있으니 피해야 할 일이지. 분수에도 맞지 않는 큰 사업을 논할 수는 없으니 어느 정도 기준을 마련해 봄세.”
경제적 수치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김좌근이며 이를 뒷받침할 근거는 일준이가 알고 있었다. 일준이는 제안을 받고 한 번 방문하여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랑제콜의 학과장을 담당하고 있어서 힘든 일입니다. 지금 졸업논문 심사과정이 있는데 제가 관여하여 논문을 수정함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일준이는 적어도 한 달 동안은 그랑제콜에 머물면서 일을 해야 한다더라. 결국 업무가 조금 비어서 평온한 날을 보내던 김좌근이 끌려와 설명을 시작하였다.
“공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증기기관과 발전기입니다. 근로에 관한 법률이 두 조를 교대하는 제도로 지정되어 있으니 전구와 환풍기가 없으면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질 않습니다.”
조선에서 제작한 증기기관의 가격은 칠천 냥이 조금 넘어간다. 여기에 한 조로 얽혀서 돌아가는 발전기도 값싼 물건은 아니니 단가가 사천 냥이 넘어간다.
물론 영국산 신품 증기기관은 관세와 수입비용을 감안하면 한 대에 1만3천 냥에 달하니 국산화를 추구해야 하리라. 김좌근은 안경을 고처 쓰며 말하였다.
“결국 최소 자본금은 만 이천 냥에 달합니다. 여기에 공장을 세우는 건설비에 필요 설비를 감안하면 이만 냥 정도를 여유 자금으로 삼아야 할 겁니다.”
“이만 냥도 최소한의 공장을 구성하는 비용이겠지? 그럼 직조공장을 기준으로 삼아보세.”
직조공장은 효율성을 위해서 여러 대의 증기기관과 수십 대의 직조기가 필요하다. 여기에 조면기와 방적기의 가격까지 미리 계산한 김좌근은 안경을 고쳐 쓰며 말하였다.
“자본금이 이십만 냥 이하라면 직조 공장을 세우는 것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효율적인 규모로 공장을 세우려면 사십만 냥 정도는 투자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생각 외로 공장의 가격이 높지는 않은 것 같군. 경강상인 여럿이 나서면 두 개는 굴릴 수 있지 않겠는가?”
“그야 저희가 도성을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지방의 유생들이 가진 여유 자금을 털어내도 이십만 냥을 달성하는 곳은 열 곳도 안 될 것 같습니다.”
김좌근은 사람들과 함께 계산한 공장 설립비용을 벽에 붙여나갔다. 경공업보다 투자 자본이 몇 배나 많은 중공업 계열, 예를 들면 제철소는 최소 투자비용이 이백만 냥에 달했다.
“조일준이 개발한 전로(轉爐)는 한 대로는 부족하고 다섯 대는 가동해야 효율적이더군요. 한 대를 만드는 비용이 사십만 냥이 넘어가니 민간에 불하할 가능성조차 없지요.”
베서머 전로 한 대당 직조공장 한 동의 가격이 들어갔지만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물건이다. 제철소 다음으로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중공업은 소금 공장이라는 녀석이었다.
“소금 공장이라 하시니 궁금한 사업이군요. 제 벗인 용태(踊兌 - 조일준의 호)가 추천한 녀석입니까?”
“나는 화학에 대해 잘 모르지만 발전기를 이용하여 소금에서 염산과 수상화염인가 뭔가를 만든다 하더군. 다음으로 값이 비싼 것은 황산을 만드는 공장과 폭약을 만드는 공장이라네.”
일준이도 착실하게 기술을 개발하여 중공업에 꼭 필요한 화학공업을 육성하고 있었다. 국가가 설립해야 하는 중공업 공장들의 비용을 보면서 조만영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 모든 시설을 단숨에 세울 수 있게 하늘에서 은자 천만 냥 정도만 뚝 떨어지면 좋겠군. 신냥으로 오천만 냥에 달하는데 저걸 다 세우려다가는 십 년 이상이 걸릴 것이네.”
“그렇다고 아예 손을 놓을 생각은 아니신 것 같습니다.”
“우리와 같은 권세가들이 자본을 투자해 중공업을 육성하는 것이 옳을 것 같군. 그야 나중의 일이니 지금은 넘어가도록 하세나.”
벽돌공장도 충분한 노동력과 풍부한 공간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음으로는 성냥공장이나 종이공장 그리고 피혁을 비롯한 각종 의복공장이 위치하였다.
한 달에 걸친 계산 끝에 경공업 공장의 필요 자본금은 40만 냥을 시작으로 5만 냥 까지는 그럭저럭 구성을 갖추었다. 조만영은 각 지방에서 올라온 보고서를 확인하고는 말하였다.
“일단 서원 중 여든 개가 조정에 제안에 응하기로 하였지. 문제가 있으니 자본금이 오만 냥에도 미치지 못하는 서원이 스물두 개나 되는 것이 문제라네.”
“생각보다 자본을 많이 내놓지 않는군요. 오만 냥이면 기껏해야 땅 이천오백 마지기, 약 백오십 결을 거래할 수 있는 자금이 아닙니까?”
“종자돈이 아니고 여유 자금을 투자하니 오만 냥이라도 모을 수 있다 하여서 다행일세. 나머지 서원들은 이런 자금도 없어 폐하는 것을 받아들일 정도이니 답답한 노릇이지.”
결국 80곳의 서원 중 6개는 직조공장을, 나머지 10개는 벽돌공장과 정미소를 비롯한 공간을 많이 차지하는 사업을. 이외에는 성냥이나 종이 그리고 가죽을 비롯한 의복 가공 공장이었다.
최하위 22개의 서원에는 도저히 추천할 만한 사업이 없었다. 발전기와 증기기관을 제외하여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거나 정부 자금을 많이 넣거나 둘 중 하나의 방법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서원을 폐하지 말고 그대로 두되 나중에 우선권을 줘야겠네.”
“좀 더 많은 자금을 융통하면 형평성이 어긋나고. 그렇다고 시설을 적게 만들어도 된다고 특혜를 주면 더더욱 형평성에 어긋나니 어쩔 수 없지요.”
사업의 소모 자금을 정해두고 분배하는 방식이니 말이 안 나오게 하려면 이런 방식을 택해야지. 한 달에 걸친 논의가 정리될 무렵 일준이가 다 죽어가는 몰골로 방문했다.
“한 달 전에 요청을 들었는데 이제야 논의에 들어오니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아닐세, 모두가 제출한 논문을 심사하고 수정했다 하던데 제자들을 점검하고 확인한 것이 아닌가. 쉬운 일이 아니니 이해할 수 있다네.”
“처음으로 제출하는 논문인지라 이래저래 문제가 많았지요. 사실 자격이 없는 어중간한 졸업생들을 학사 자격이라도 쥐어주려고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듣기만 해도 참으로 고생이 많은 것 같군. 결과는 거의 다 정해졌지만 읽어는 보게.”
자리에 앉은 일준이는 논의 결과와 앞으로의 방침을 읽으면서 ‘그놈의 호피무늬’ 라고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22개의 최하위 서원을 지목하며 말하였다.
“이 서원들은 제법 쓸모가 있겠습니다. 나라의 자금을 더 투자하면 될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리하면 형평성이 어긋나지 않는가. 나라에서 자금을 융통하는 명분은 새로운 사업에 나서는 유생들에게 위험한 일을 줄이는 방법이라 소개했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명분이야 사업 실패의 부담을 덜고 장사를 모르는 유생들을 보호하기 위한 나라의 조치라 하였다. 개인 사이의 돈을 떼어먹는 것과 국가 예산을 떼어먹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니까.
실질적으로는 세금을 거두지만 저러한 명분을 앞세웠으니 지나치게 많은 자금을 투자할 수도 없었다. 반면 일준이는 나라의 자금이라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안정적이고 쉬운 일을 하면 위험을 조금 덜어낼 자금만 지급하면 충분한 일이지요. 대신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일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더 많은 자금을 내어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 우리가 제안하는 사업들은 적정한 자금에 적정한 규모를 산정한 것이니······. 그러하면 자네는 어떠한 위험한 일을 생각하고 있는가.”
일준이가 원하는 것은 일종의 스타트업, 새로운 개념의 사업을 정부에서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지원하는 방식이다.
말이 스타트업이지 이 시대의 기술발달을 꿰고 있는 일준이 입장에서는 사실상 돈 놓고 돈 먹기나 마찬가지다.
물론 제3자가 보기에는 생전 처음 접하는 물품에 거액을 투자하는 위험한 행위였다. 일준이는 조만영이 내어준 발언 기회를 얻고 당당하게 말하였다.
“저는 이번 졸업생들이 내놓은 논문을 통하여 소규모 사업을 여럿 추진하기를 권하겠습니다. 세상에 없던 물건이나 새로운 개념을 사용한 물건이니 위험 부담이 엄청나지 않겠습니까.”
“그러한 물건들의 효용성은 어떻게 증명할 셈인가?”
“사업타당성 검토와 시험 제품의 안전성 검토를 비롯한 수많은 항목을 통과해야지요. 나라의 돈을 받아서 사업을 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일준이는 자신이 점검한 졸업논문의 내용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위험한 사업들에 대한 설명을 하였다. 나야 성공을 예상하였지만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물건이 많았다.
“새로운 조족등(照足燈 - 촛불을 넣는 손전등)이라 하였는가? 여기에 곰탕을 두 시간 이내에 끓일 수 있는 냄비는 어디에 쓰는 물건인가? 이 물건들이 성공할 수는 있는가?”
“제가 보기에는 절반 정도는 실패할 것 같습니다. 그러하니 투자 비율을 높이셔야지요.”
“절반 정도가 실패한다면 자본이 적은 서원들에게 미리 설명을 하는 것이 마땅하겠군. 이 사업들이 성공한다면 어느 정도로 효과적일 것 같은가?”
“그야 이 나라를 넘어 온 세상에 팔리게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지나치게 많은 자본을 투자하면 손해가 크니 소규모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일준이의 제안을 받아들인 조만영은 22개 서원에서 선택할 수 있는 30여개의 사업을 선별하였다. 1839년 7월. 본격적인 서원의 정리 작업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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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명세자의 명을 받은 서원은 크게 세 가지 대응을 취하였다. 사백 개가 넘는 서원이 부정부패의 혐의를 받고 문을 닫았으니 남은 이들은 최소한 비리를 저지르지 않은 자들이었다.
첫 번째 대응은 명망이 있는 서원이거나 자손이 번성하고 아직 부패하지 않은 유생들이 많이 소속된 서원에서 택한 방식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모시고 있는 성현들의 제사를 이어가기를 원하였다. 확인을 위해 조정에서 내려온 관리가 문의하였으나 이들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하였다.
“일전에도 말하였지만 우리는 서원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오. 서원전이 사라진다 하여도 힘이 닿는 한 재산을 각출하여 제사를 올릴 것이며 배향을 이어나가겠소.”
“서원전이 없이 배향을 이어나가시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올바른 뜻을 거스르고 이문을 추구할 생각은 없소. 여기 충렬사(忠烈祠)는 임진왜란에서 힘을 다 한 사람들의 위패가 모셔진 곳이오.”
효명세자도 이러한 유생들의 뜻을 꺾을 생각까지는 없었다. 다만 뜻이 올바를 뿐 이들의 행위는 올바르지 않다 여겼다.
오로지 배향과 제사에 대한 의무를 다 할 뿐이니 고인 물이 썩어가듯 언젠가는 변질되리라. 그래도 올바른 마음이 남아 있는 유생들은 한탄하듯 말하였다.
“훗날이 되면 여든 명이 넘는 선열에 대한 배향도 끝날 것이요 임진년의 병화를 아는 사람도 없어질 것이 아니겠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오.”
“세자저하께서 명하시기를 제사를 폐하지 말고 충렬사가 지닌 본래 뜻을 찾으라 하였습니다. 이를테면 임진년에 일어난 병화(兵火)로 소실된 기록도 모셔야지요.”
효명세자가 서유구를 비롯한 사람들과 힘을 합쳐 이러한 서원들에게 연구 과업을 내어주기로 하였다. 제대로 된 교수나 강의내용은 없지만 일종의 연구기관으로 삼은 것이다.
충렬사에 배정된 연구 과업을 건네받은 유생들은 머리를 맞대고 내용을 확인하였다. 그러더니 머나먼 북쪽을 향해 절을 올리면서 감사의 뜻을 표시하였다.
“세자저하께서 서원전을 거두시고 나라의 녹봉을 내려줄 것이라 하시니 감읍할 따름이오. 정말 이 서책에 적힌 기록을 찾고 정리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의 전부요?”
충렬사에 배정된 과업은 임진왜란 시기의 경상도에 대한 기록 조사였다. 조정에서 처리하려면 수많은 인력과 시간이 소모되는 대규모 조사가 필요하였다.
반면 유생들에게는 쉬운 과업이었다. 행장(行狀)이나 일기를 통한 자료의 조사가 쉽고 이를 검증하여 진실을 찾아내기도 쉬웠다. 관리는 서두의 말을 짚으며 다시 설명하였다.
“매년 최소한 여섯 개 이상의 과업을 수행하시고 이를 정기적으로 도성으로 올라와 보고하셔야 합니다. 원하신다면 더 하셔도 좋으며 그렇게 되면 성과급이 내려올 것입니다.”
명분으로도 실리적으로도 거절할 수 없었다. 괜히 서원전을 관리하면서 신경을 쓰느니 여러 기록을 수집하며 연구비라는 명목으로 녹봉을 받을 길이 열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