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 기병 (1) >
요동을 건너 의주에 도착하자마자 쉴 새도 없이 급히 전보와 장계를 동시에 올렸다. 내 말을 모스 부호로, 여기서는 에이다가 개입하여 에이다 부호로 해석한 관원이 전신기를 두드렸다.
- 청나라에서 정황을 파악하여 쌍성자로 군대를 파견할 가능성이 높음. 대비 필요.
이 정도로 간략한 보고를 올리고 상세한 정보는 파발을 통해 보내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한창 작성하는 장계를 확인한 박기수는 심각한 표정으로 물어보았다.
“언젠가는 들킬 줄 알고 있었지만 때가 좋지 않군. 그나마 노서아의 병사들이 온전히 자리를 잡은 다음이라 방비를 하고 있겠지만 청나라의 기병은 날래기로 명성이 자자하지 않은가.”
“진인사대천명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저희는 할 일을 다 하였고 모든 것을 제공하였습니다. 그래도 희망이 있으니 많은 병사를 투입하지는 않을 것 같군요.”
“자네가 꾀를 부린 덕분에 사태를 수습할 길이라도 있었네. 불온한 자들이 노서아와 손을 잡고 멋대로 국경을 넘어갔으니 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겠지.”
박기수는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겠지만 걱정 할 필요가 없다. 임칙서나 도광제라면 이상 징후가 느껴지니 확인해 볼 심산으로 명령을 내리겠지만 이를 이행할 장수들이 문제다.
이 시기 평범한 청나라 장수라면 미리 승전 장계를 만들어 둔다. 이후 가급적 많은 병사를 보낸다고 조정에 보고하고 자신이 거느린 군대보다 많은 보급품을 잔뜩 받아둔다.
이미 가짜 보고와 횡령을 하였지만 돈을 더 벌 수단이 있다. 적당히 진격하는 척 하며 주변의 마을에 달려들어 약탈, 살육 그리고 방화를 일삼아 수급과 재물을 챙기고 돌아온다.
이게 기강이 헤이해진 일부 군대가 저지른 일도 아니고 아편전쟁 당시에 벌어졌던 일이다. 이걸 말하고 싶어 입이 간질간질 거렸지만 박기수의 염려를 덜어주기 위해 말했다.
“임칙서가 군을 움직인다면 일이 조금 힘들어 질 수도 있습니다만 그는 흠차대신의 직위를 받고 광주로 내려가 아편 무역을 단속한다 하였습니다. 그러하니 다른 장수가 임명되겠지요.”
“자네의 말도 옳아. 급한 사람이 사라지면 다음에는 영문을 모르는 사람이 마음을 두지 않고 명령을 이행하는 법이 아닌가. 그나마 다행인 일이로군.”
박기수도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하였고 기차 노선이 뚫린 평양까지는 육로를 통해 움직였다. 이번 연행사에서 나도 배운 것이 많았으니 서양사를 전공하면서 얻지 못한 이 시대 동양 인물들에 대한 지식이었다.
지금 청나라에서 우수리스크를 정찰하고 올 장수가 몇이나 되는지 궁금했다. 이 기준은 조선 사람들에게 뇌물을 보내지 않은 지휘관이었는데 몇 명이 되지 않았다.
기껏해야 영시위내대신 탈라 테이순(特依順保)이나 건륭제의 증손자이자 팔기 지휘관인 아이신기오로 자이콴(載銓) 정도이다. 이들이 우수리스크까지 움직일 리는 없었다.
그나마 몽골팔기에는 정상인이 한 명 있었다. 보르지기트 셍게린첸 정도라면 우수리스크를 정찰하고 남을 사람이긴 한데 아직 애송이 취급을 당해 제대로 된 군대도 편성하지 못 하리라.
“셍게린첸이 오더라도 지금 카자크 기병이라면 충분히 물리칠 수 있겠지.”
누가 오더라도 결과는 변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카자크 기병에게 공격당해 몰살당하거나 잘 해야 몇몇 생존자가 돌아가 보고를 하리라.
대동강을 건너 기차를 타고 한양으로 돌아가니 순조와 효명세자 모두가 보고에 귀를 기울였다. 보고가 계속되고 내가 청나라의 의심에 대해 논하자 순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숨기는 것 보다 어느 정도 드러내는 것이 옳은 판단이었구나. 그러하면 과연 몇 천 기나 되는 기병이 쌍성자 일대를 정찰할 것 같은가.”
“신의 판단으로는 일천 기 내외의 기병이 쌍성자 일대를 시찰할 것 같사옵니다. 이를 넘어서는 기병을 움직이려면 지나치게 많은 자금이 소모될 것이옵니다.”
“그러하면 노서아의 지원군으로도 감당할 수 있는 정도이지. 다만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니 경계를 삼엄하게 하고 병사를 계속 순찰시키도록 하라.”
셍게린첸 본인이 오면 쓸 만한 지휘관을 끊어낼 수 있지만 그럴 리는 없다. 올 가능성은 거의 없고 우수리스크까지 온다 하여도 기껏해야 파벌싸움에 밀리거나 뇌물을 못 내놓은 소수의 기병들만 도착하리라.
어차피 대책을 세워도 당장 효과를 발휘할 수 없으니 다음 주제로 넘어갔다. 순조는 교역의 이야기를 경청하고는 네 번째 거래 품목을 지목하며 말하였다.
“이제 청나라에서 목화를 사들여 공장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구나. 이제 나라에서 만든 공장이 아닌 지방 유지들의 자본을 들인 공장의 설립 허가를 내리도록 하겠다.”
아직 조선에서 방적공장을 비롯한 증기기관을 사용한 공장은 조정에서만 운영하고 있었다. 이는 목화 교역이 불가하니 매점매석을 염려하여 택한 행위였다.
이제 청나라와의 교역이 허가되었으니 정부에서 만든 공장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면직물을 만들 길이 열렸다. 순조는 서양의 여러 제도를 익혀두었는지 괜찮은 제안을 하였다.
“서역의 방식을 적용하여 회사(會士)와 주식을 도입하려 하는데 어떠한가? 각 지방의 유지들이 힘을 합쳐 공장을 설립하면 난립을 막을 수 있어 좋을 것 같지 않은가.”
지금까지의 개혁은 조선의 제도를 급변하기 위한 사전 작업에 불과하였다. 이제 다음 작업인 양반계층의 변화를 추구할 차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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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리스크로 이주한 화전민들은 가혹한 기후에도 순식간에 적응하였다. 이들이 살고 있던 야산과 비교하자면 천국과도 같은 곳이 이 땅이었다.
산골짜기에 흐르는 샘물 대신 거대한 항카 호에 유입되는 수많은 지류들이 농경지의 수원이 되었다. 여기에 제대로 경작하기 시작한 밭은 지력은 조금 부족해도 쓸 만한 농토였다.
더 이상의 지원이 필요 없지만 조선 정부는 손을 놓지 않았다. 일대에서 재배할 수 없는 쌀을 제공하고 의복에 사용할 옷감을 비롯한 생필품을 거래하며 이들을 관리하였다.
“올해에도 쌀이 왔으니 알아서 잘 분배하게나. 올해는 경기도와 개성을 비롯한 여러 고장에 흉년이 들어 지원이 조금 부족하게 되었네.”
부족한 지원이라 하였지만 화전민에게 공급될 쌀만 따져도 1인당 쌀 2석에 달하였다. 보통 항구라면 쌀을 하역하느라 보름을 소모해야 하지만 이 항구에는 선로가 깔려있었다.
조선에서 생산된 철도 레일 중 절반가량은 품질이 부족하여 불량품으로 취급되었다. 이 레일들을 각지의 항구에 설치하여 인력이나 축력(畜力)철도를 부설하니 일이 편해져서 좋았다.
“이랴! 어서 움직이지 못 하겠느냐! 네놈이 꼴을 축내지 않으려면 일을 해야지!”
한때는 기병의 군마로 쓰였지만 더 이상 쓸모가 없어 짐말이 된 조선의 호마(胡馬)들은 이런 동력으로 쓰이거나 농사에 쓰였다.
쌀 한 섬에 석탄 넉 섬이 거래 시세였다. 관리는 석탄의 품질을 확인하며 작업을 진행하였고 배가 위험할 정도로 석탄이 쌓여갔다. 이윽고 다음 거래가 시작되었다.
“다음으로는 삼베를 팔 것인데 시세는 정해진 대로 매기겠네. 이번에는 뭘 준비했나?”
“저희가 담비를 기르게 되었습니다. 물고기를 잡아 먹이면 그럭저럭 잘 자라더군요.”
이외에도 일대에서 쉽사리 만들 수 없는 상품들이 거래되며 화전민과 관리 양 쪽이 이득을 보게 하였다. 관리는 거래를 마치고 화전민 노인과 술을 마시며 은근슬쩍 상황을 물어보았다.
“요즘 들어 사는 것이 어떠한가? 자네 신수가 훤한 것 같으니 보람찬 것 같군.”
“그럭저럭 잘 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하루하루 목숨을 부지하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먼 훗날을 생각하고 있지요. 더군다나 같이 사는 사람들도 재미가 넘칩니다.”
“노서아의 사람들이 재미있다 하였는가? 난폭한 습속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아닌가?”
“난폭하게 다뤄야 할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을 분별하고 있지요. 저기 저 친구 보시지요.”
덩치가 거대한 카자크 기병이 땀을 뻘뻘 흘리며 지게로 쌀을 옮기고 있었는데 옆에는 화전민 노인이 같이 있었다. 관리의 얼빠진 표정을 확인한 노인은 술을 마시면서 말했다.
“가살극(카자크)들은 처음에는 저희를 하인 부리듯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말을 관리하고 식사를 책임지며 온갖 굳은 일을 하니 상황이 서서히 변하더군요.”
“내가 알기로 가살극의 풍습이 요란하고 음란하여 술이 있으면 마시고 여인이 보이면 교합을 일삼는다 하였지. 혹여나 저들은 장인과 사위 관계인가?”
“바로 보셨습니다. 저들이 말하기를 이 나라 사람들은 산과 강에 가면 음식이 생겨나고 한시도 쉬지 않고 근면하게 일한다 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가살극들은 훗날을 생각하지 않고 음주가무를 즐기고 비축을 하지 않는 습속이 있었지. 마치 자네들을 화수분 대하듯이 정중히 대하겠군.”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고 관리도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였다. 처음에는 니콜라이 1세의 명을 받은 카자크 기병들이 건성건성 자신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화전민을 보호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보호하는 화전민은 생활력이 강한데다 험난한 땅에서 농업을 평생 해온 사람이었다. 풍부한 농토를 가진 화전민의 생산력은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희는 먹을거리가 넘쳐납니다. 아예 소줏고리를 만들어 감자와 밀로 소주를 만들고 말을 마음대로 접붙여 늘릴 수 있을 정도로 식량을 공급하지요.”
“참으로 좋은 일이로군. 여기에 겨울동안에는 탄광에서 일한다 하였는데 여유가 있는가?”
“주상전하께서 은혜를 내려주시어 여유가 넘쳐납니다. 탄광에서 일 하지 않는 사람들은 겨울 내내 이 나라의 글은 물론이요 가살극의 말과 글을 익히기도 하였지요.”
그 다음부터 벌어진 일은 안 봐도 뻔했다. 카자크에게 있어 조선의 화전민은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 되었으며 아예 결혼을 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관리는 조정의 일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이니 자리에서 일어나 먼 훗날의 일을 기대하였다. 이 땅은 조약에 의거하여 청나라와의 전쟁 이후 러시아에게 양도할 땅이었다.
지금 상황을 보면 양도가 쉽사리 이루어질 리가 없었다. 러시아의 땅이 되면 화전민들을 다시 이주시켜야 하는데 이 땅에 거주하게 될 카자크 기병들이 동의할 구석이 없는 상황이다.
한편 쌀이 공급된 마을 내부에서는 잔치가 벌어졌다. 겨울 동안 감자는 물론이요 밀과 냉한지에서 잘 자라는 각종 곡물들로 배를 채웠지만 쌀은 조선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곡물이었다.
“역시 쌀은 햅쌀이 최고라니까! 밀로 밥을 만들어 먹어도 쌀보다는 못 하지!”
조만간 파종을 시작할 밭을 두고 잔치가 시작되었다. 영국에서 가져온 시커먼 버크셔종 돼지가 도축되고 수육과 순대를 비롯한 반찬들이 속속들이 잔칫상에 올라왔다.
경비 교대를 마치고 흙먼지를 피우고 달려온 카자크 기병들도 잔치에 합류하였다. 이들은 가마솥에서 죽을 쑤고 있는 할머니에게 달려가 메밀 죽이나 시뻘건 보르시를 받았다.
“спасибо, бабушка.(스피쉬바, 바부슈카 - 고마워요 할머니)”
“스벌시벌 바보슈카라 했어? 그거 처음에는 욕 같았는데 할미가 고맙다는 말이지? 죽 많으니까 염려 말고 천천히 많이 먹어.”
동구권의 스프인 보르시는 조선에서는 빨간무국이라 불렀다. 카자크 기병들은 식탁에 놓인 반찬들을 여기에 얹어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며 말했다.
“조선 사람들은 참 신기하다니까. 처음에는 우리가 먹여주고 재워줘야 할 줄 알았는데 어디서 먹거리를 저렇게 찾아왔는지 모르겠어.”
“풀로 만든 반찬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푸짐하게 차려주는 것이 어디야.”
“조선 사람들이 처음 도착했을 때에는 앙상하게 마른 나뭇가지 같았는데 참 다행이야.”
메밀 죽에 고사리와 각종 산나물을 얹어 물마시듯 들이켠 카자크 병사는 순대를 먹고는 감탄을 내뱉었다. 선지를 듬뿍 넣어 만든 순대 또한 이들의 입맛에 맞았다.
“내가 이런 머나먼 동쪽까지 와서 이렇게 맛있는 깔바사(선지 소시지)를 먹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여기가 지상낙원 아닐까?”
“낙원이라 말하기에는 술 맛이 조금 약하긴 하지만 이건 이해할 수 있지. 여기에는 지천에 술이 깔려있으니 더 마시면 충분하잖아?”
“잔 비었는데 뭐 해! 더 마시자고!”
어느 새 악기를 연주하며 잔치 분위기를 즐긴 카자크들과 어울린 화전민들은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춤을 춰댔다. 그러한 사람들의 옆에 다 죽어가는 시체들이 천여 명이나 도착했다.
“일단 밥. 밥부터 좀 내놓게.”
“야 이 머저리들아! 씻고 먹으라 했지! 밥이 어디 달아나는 거 본 적이 있나!”
흙먼지를 뒤집어쓴 그루시와 안드레이는 간단하게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조선의 기병들을 기다렸다.
사흘 전 사라진 사람들이 저런 꼴이 되었다면 이번 훈련도 가혹하였으리라. 카자크들은 술을 마시자며 안드레이에게 휘파람을 불어댔지만 안드레이는 술을 마실 생각 따위는 없었다.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그루시는 이마를 감싸 쥐고 안드레이를 바라보았다. 뒤이어 훈련 교관으로 참가한 프랑스 기병들과 카자크 간부들이 탁자에 앉고 안드레이가 착잡한 심정으로 중얼거렸다.
“세 번째 경험하는 일이지만 조선 사람은 왜 이런 꼴인지 모르겠어. 농사는 잘 짓는데 기병은 저런 꼴이라니 이게 전쟁을 할 나라가 맞나?”
“내 말이 그 말일세. 자네가 보아도 형편없지 않은가.”
“대체 언제 사라진 전술을 논하는지 궁금하고 답답할 지경이라니까.”
대놓고 반말을 하였지만 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프랑스 기병도 카자크 간부들도 조선 기병들의 작태에 대해 논하기 시작하였다.
“갑주부터 병기까지 실전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차라리 말꽁무니에 불을 붙여 돌격시키는 게 실전성이 있을 것 같군요.”
“진군부터 돌입 이후의 모든 과정을 가르치자니 머리가 터질 것 같습니다.”
“실전을 치른 것이 삼십여 년 전의 내란인데 천 명에 달하는 기병 중에 백여 명이 활을 몇 발 쏘고 돌아왔다 하더군요. 아직도 활을 붙잡고 있는 놈들은 대체 뭐 하는 놈들입니까?”
이미 세 번째로 훈련을 시키지만 갓난아이에게 떠먹이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기병을 육성해야 하는 꼴이 반복되었다. 그루시는 옆에 있는 부관 임건보를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까지 배운 잘못된 지식을 모조리 수정하려면 한 달 정도 걸릴 것 같군.”
“한 달로 충분하겠습니까? 소관이 보기에는 석 달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내 속이 터질 때 까지 한 달이라는 말이야! 이런 밥버러지에 구더기들을 보았나!”
몸을 씻고 돌아온 기병들은 앞을 가로막은 그루시를 보면서 겁에 질려 움찔거렸다. 일흔이 넘은 노인이지만 그루시와 조선 기병들 사이에는 하늘과 땅 수준의 실력 차이가 있었다.
힘이 넘치는 프랑스산 군마건 지구력이 뛰어나고 좌우로 흔들리는 러시아산 군마건 마음대로 탈 줄 아는 그루시와 달리 조선 기병들은 말의 힘에 자빠지는 경우가 흔했다. 그루시는 지난 사흘 동안의 훈련을 마지막으로 물어보았다.
“자네들이 지난 사흘 동안 배운 것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고 질문을 하겠네. 기병은 척후와 붕괴된 적을 추격하는 일을 담당하지. 그러하면 적진에 돌입할 때는 어찌 해야 하나.”
“보무가 당당하게 적을 노려 돌입하고 뭉개버려야 합니다.”
반사적으로 나온 대답을 들은 그루시는 입술을 씰룩거리더니 대답을 마친 기병의 어깨를 두드렸다. 기병은 동양 기병의 정석을 논하니 통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유럽의 전쟁 기준으로 기병은 철저히 은폐하여 지형을 이용해 적을 기습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지금의 대답은 저승으로 통하는 문을 여는 것과 같았다.
“그래? 기껏해야 이백 초 이내에 대열을 재정비하여 방진을 형성하는 전열보병을 상대로 보무가 당당하게 적을 노려 돌입한다고? 무슨 일이 벌어지겠나?”
“그야... 대열을 재정비하기 전에 돌입에 성공할 것 같습니다.”
“이 구더기야! 구더기도 아닌 걸어 다니는 시체에 똥자루를 버무린 놈을 보았나! 흙먼지를 피워 올리고 나팔을 불면서 돌입하면 전열보병이 사 킬로미터 전에 감지하고 대열을 형성하지!”
전열보병의 시대가 되며 기병은 전면전에서 극히 불리한 병종이 되었다. 그루시가 경험하지 못 한 워털루 전투에서도 기병이 돌입하였으나 방진을 형성한 영국군에게 접근조차 못 하고 몰살당했다.
안드레이와 카자크 기병들도 이마를 감싸고 한숨을 내쉬었고 프랑스 교관들은 아예 헛웃음을 내뱉으며 조선 기병들을 바라보았다. 그루시는 이 모습을 보더니 활짝 웃으며 말했다.
“자네들은 이미 한 번 죽었으니 제사상이라도 받게. 제사라는 의식은 사람이 죽고 일 년 뒤에 치른다 하였는데 일 년 전에 죽었으면 좋을 정도의 훈련을 예정해 두겠네.”
그루시의 애정이 가득한 눈빛을 확인한 임건보는 며칠 뒤에 재개될 훈련을 생각하며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
조선 기병들은 이러한 그루시의 애정과 관심 속에 무럭무럭 자라나 서양 기준으로 평균 혹은 그 이하에 준하는 기병이 되어갔다. 이러한 기병들에게 첫 실전이 닥칠 시기가 다가왔다.
작가의말
15분이나 늦을줄은 몰랐습니다. 청나라 아편전쟁 당시의 지휘관은 말 그대로 써먹을 구석이 하나도 없어서 쓸 만한 사람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