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65화 (65/345)

< 7장 - 요순학 >

현대에는 화성시 북부이며 조선시대에는 남양도호부라 불리는 지역은 예전에는 그리 부각되지 않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슬루프의 도입과 원양어업의 시작으로 급격히 발달하였다.

도성과 인접하여 각종 정책의 도입이 빠르게 이루어졌으며 조정에서도 많은 지원을 하였다. 그 지원 중 하나가 여전히 은결(隱結)로 남아있는 땅의 개선이었다.

가뭄이 발생하지 않으면 평범하게 농사를 지을 수 있지만 조금이라도 가뭄이 생기면 모든 작물이 말라죽는다. 이러한 땅은 주변에 둑과 제방을 축조하여 정상적인 토지가 되어갔다.

“이거 팔 빠지겠습니다! 언제까지 섞어야 합니까!”

“한참 더 섞게! 이대로 타설하면 제대로 섞이지 않은 인조석분(시멘트)이 분리될 걸세!”

이러한 작업에는 상당한 인력과 자원이 소모되었다. 얼마 전 수확을 마치고 돈을 좀 벌어볼 생각에 노역에 나선 농민 양기진은 허리와 어깨가 빠질 정도로 삽을 놀렸다.

“그냥 돌을 쌓을 것이지 왜 석회에 자갈과 모래를 섞는지 영문을 모르겠네.”

“내 말이 그 말이야. 저건 철망 같은데 고작 제방을 쌓는데 이렇게 노력을 기울이다니.”

이점버드 브루넬의 아버지 마크 브루넬이 템스 강 하저터널에 도입한 콘크리트는 현대인인 조일준의 손을 거치면서 현대와 흡사한 콘크리트로 개선되었고 이제는 철근 콘크리트로 나아갈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기술은 발달하여도 공학적 기반이 부족하였다. 철근 콘크리트는 수많은 연구를 통해 적절한 철근 비율을 찾고 문제점을 개선하는 시행착오 과정이 필요하였다.

각 지방의 천수답을 되돌리기 위해 쌓는 둑은 이러한 철근 콘크리트의 시험장이었다. 설령 둑이 무너지더라도 큰 피해는 아니니 감당할 수 있는 실험이었다.

“이제 철근을 설치하게. 내 계산이 맞으면 철망이 수축과 팽창을 감당해서 인조석분의 균열을 방지할거야.”

장 진사와 여러 농민이 소유한 천수답 근처 하천에 제방을 쌓은 사람은 영국에서 5년 동안 토목을 배운 유학파 출신이었다. 시멘트만 사용했다면 홍수에 무너질 둑이지만 철근이 있다면 버틸 것이라 계산하였다.

설령 버티지 못 하고 무너져도 이는 새로운 공식을 만드는 밑거름이 될 일이니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 거푸집까지 씌워지고 시멘트 타설을 마치니 공사가 마무리 되었다.

“자네들 모두 한 달 동안 고생이 많았네. 급료로 석 냥을 줄 것이니 어서 모이게나.”

한 달을 내내 일하고도 석 냥이면 남는 장사였다. 서른 명에 달하는 인부들은 줄줄이 모여 급료를 받아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새로운 동전이 들어왔다.

조정에서는 기존의 상평통보를 대신하는 새 동전을 찍어냈다. 상평통보의 가치가 프랑스의 화폐단위인 프랑과 흡사하였고 조폐기도 프랑스 기술자를 통해 들여와 흡사하게 만들었다.

10냥은 안쪽에는 금을, 바깥쪽에는 은을 두른 바이메탈 동전으로 만들었으며 5냥은 은으로, 1냥과 그 이하 동전은 구리와 주석을 혼용한 동전이었다.

“옛 동전으로도 석 냥이면 남는 일인데 새 동전으로 석 냥이면 더 남는 일 아닌가?”

“그래도 새 동전은 불편하다니까.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어야 엮을 수 있는데.”

한 냥 동전에 각인된 이화문(李花文)과 측면에 새겨진 십이지(十二支)의 한자는 증기기관과 직결된 프레스기가 아니고서는 위조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섬세한 동전이었다.

심지어 5냥이나 10냥 동전은 이보다 섬세한 위조방지 체계를 갖추었다. 이러한 새로운 화폐는 상평통보를 밀어내고 순식간에 화폐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양 서방은 돌아가는 길에 설치된 샤워장에서 몸을 씻으며 흥얼거렸다.

“올 겨울에는 고기 좀 입에 댈 수 있겠는데. 생선은 이제 물리기 시작했어.”

급료를 받은 사람들은 시장에서 뭘 살지 고민하였다. 양 서방은 땟물이 줄줄 새어나오는 친구를 보면서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차라리 비누를 사들여서 몸을 씻지 그래?”

“겨울에 씻을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지금도 물이 서늘해서 한기가 밀려오는데.”

“그래도 비누는 사야지. 이제는 몸을 안 씻으면 견딜 수가 없잖아?”

몸을 씻고 나온 사람들 중에 상투를 튼 사람은 별로 없었고 상당수가 단발이었다. 처음에는 머리를 짧게 깎는 것이 불민한 일이라 여겼지만 깎아보니 달랐다.

다들 농사를 하는 사람이라 상투 아래의 머리를 마구 깎아내는 일이 잦았다. 이렇게 머리를 시원하게 해도 여름철에 농사를 지으면 머리에 열이 올라 쓰러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머리를 짧게 깎으니 모든 일이 편했다. 참빗으로 이와 벼룩을 잡아내기도 쉽고 머리를 감을 때 비누를 조금만 사용해도 되었다.

수건으로 몸을 닦고 얼마 지나지 않아 햇볕에 마른 머리 위에 초립을 쓴 사람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시내로 내려갔다.

“양 서방은 한 잔 하지 않겠나? 요즘 탁주가 아니고 청주가 당기던데 청주 한 잔 할까?”

“청주는 뭔 청주야. 그 돈 아껴서 뭐라도 해봐야지.”

“이 친구 씀씀이가 짜기도 하네. 이번에는 내가 내겠으니 다음에는 자네가 내게!”

결국 주변 친구들과 청주를 적당히 걸친 양 서방은 품에 남은 동전을 들고 집으로 향하였다. 한 달 내내 자리를 비운 집으로 돌아가자 아내와 세 아이들이 인사를 올렸다.

“다녀오셨습니까? 그동안 별고 없으셨는지요?”

“아버지 다녀오셨어요!”

“별 고생은 없었으니 염려 마시오. 급료를 받았으니 비누 좀 사왔고 남은 돈은 두 냥이오. 너희들을 위해 사탕도 사 왔으니 아껴서 먹어라.”

당장 쓰러지고 싶은 양 서방이지만 아이들에게 사탕을 물려주니 피로가 사라지고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제법 비싼 선물이지만 이 정도는 해야 마음이 놓였다.

저금통에 두 냥이 더해지고 모인 돈을 보니 도합 열 냥이 조금 넘어갔다. 예전에는 일 년을 벌어 한 냥도 모으지 못하였고 가까스로 모은 돈도 흉년에 소모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새로운 세금제도가 적용되어 아전에게 뇌물을 먹일 필요가 없으며 비료를 사용하여 예전보다 수확량이 많아졌으니 삶에 여유가 생겨나고 있었다. 아내는 돈을 찬장 안에 넣어두고 말했다.

“이 돈으로 닭이나 사면 어때요? 장 진사님 댁에는 서양에서 들어온 닭이 열 마리가 넘게 있는데 싸게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닭이 그렇게 좋은가? 나는 닭이 너무 작아서 비둘기와 분간이 안 되던데.”

“작은 닭이지만 알을 이틀에 한 번씩 낳는다 하던데요.”

“그건 닭이 아니고 알 낳는 귀신 아니야? 거 전기라는 도깨비도 있고 증기라는 귀신도 있는데 속에 귀신이 들어서 알을 뱉어내는 거지.”

영국에서 개량된 레그혼은 아직 품종개량이 덜 되었지만 연간 180개가 넘는 알을 생산하는 품종이었다. 조선에서 기르는 토종닭은 이 시기에 계란을 기껏해야 연간 60개 생산했다.

돈을 어떻게 사용할까 고민하던 양 서방의 눈앞에 철로 만든 거대한 원통이 지나갔다. 아내는 이 모습을 보고는 식사를 준비하며 중얼거렸다.

“저게 보일러라는 기물이네요. 장작을 삼분지 일 만 사용하고도 방이 훈훈해 진다던데요.”

“꿈도 꾸지 마. 저 기물 가격을 알아보니 한 대에 일흔 냥이라 했고 방의 크기에 따라 백 냥이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 하였어.”

“일흔 냥이면 이 집보다 비싼 값이 아니에요? 일단 식사부터 드세요.”

어느덧 해가 기울고 저녁 식사가 올라왔다. 어촌 근처라서 평상시에는 가끔 생선을 맛볼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소금에 절인 고등어 한 마리를 온 가족이 나눠먹는 수준이었다.

이제는 한 명이 고등어 반 마리는 먹을 수 있었다. 보존을 위해 소금에 절인 고등어가 아닌 간을 맞춘 고등어이니 맛도 좋았고.

식사가 바뀐 아이들이 부쩍부쩍 크는 모습을 보니 고등어 값이 아깝지 않았다. 아마 몇 년이 지나면 첫째가 자신보다 커질지도 모를 것 같았다.

어느덧 해가 기울어갔지만 할 일이 있었다. 양 서방은 화로에서 건져낸 불똥으로 촛불을 켜며 말했다.

“이놈의 초는 비린내가 너무 심해서 코가 비뚤어질 것 같다니까.”

“그래도 촛불을 쓰는 것이 어디에요. 예전에는 상상이나 하던 일인가요?”

“틀린 말은 아니네. 예전에는 소나무로 불을 붙였는데 방 안이 매캐해졌잖아.”

다이토 제도에서 잡아들인 기름치는 서민들에게 요긴한 생선이었다. 고기를 먹을 수 없지만 지방을 짜내 일부는 윤활유로 쓰고 고형 기름은 값싼 촛불로 만들었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달빛에 의지해 아내는 삼베를 짜고 자신과 아이들은 멍석을 말고 새끼를 꼬았다. 그러나 이제는 촛불에 의지하여 잡다한 도구를 만들었다.

“아빠! 나 돌팔매로 다람쥐 잡아서 다람쥐 지갑 만들 수 있어요!”

“우리 둘째가 좋은 일을 했구나. 그럼 오늘은 다 합쳐서 예순 개만 만들어 볼까?”

다섯 식구가 모두 모여 부채를 비롯한 수공예품을 만들었다. 듣자하니 이 물건들은 머나먼 서양에 비싼 값에 팔린다던데 양 서방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잘만 하면 서양과 얽혀 조금이라도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한 양 서방은 부채에 풀을 먹이고 민화를 붙이며 늦은 밤까지 작업에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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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의 생활이 변모하였지만 양반 계층은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들은 애초에 부유하였으며 세금을 제대로 내게 되면서 비료를 사용해 조금 더 부유해진 것이 전부였다.

“이번에도 겨울이 오기 전에 사람들과 모여 풍류를 즐겨야 하는데.”

지방의 유생들은 자신들이 소유한 선산과 잡다한 토지를 관리하고 풍경이 좋은 곳에 모여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기는 경우가 많았다.

풍류를 즐길 장소를 찾던 장 진사는 현대에 육지와 연결되어 자그마한 산이 된 우음도(牛音島)를 지목했다. 여기에 유생들과 함께 모여 술을 즐기기로 하고 미리 약속을 잡았다.

“열흘 뒤에 여기서 모여 열 명의 벗들과 정취를 즐기려고 하네. 돈을 줄 것이니 좋은 술과 훌륭한 안주거리를 준비해주게.”

“말씀하신 대로 잘 해 두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어르신들이 오셔서 즐기기 편하게 좋은 곳에 정자를 하나 마련해 두었습니다. 평상시에는 저희가 모여서 즐기지요.”

장 진사는 이들의 복식을 보고 예전처럼 동전 몇 푼이 아닌 새로 만들어진 은자 다섯 냥을 내밀었다. 예전에는 갯벌에서 어업을 하며 지내던 빈곤한 어민들이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서양의 슬루프를 비롯한 새로운 배를 생산하며 기존의 조운선을 비롯한 관선(官船)이 어민들에게 임대되었다. 이를 이용해 쉴 새 없이 어업을 하여 관선의 임대료를 갚아나갔다.

마을을 슬쩍 돌아보았는데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은 찾아보기도 힘들었다. 평상시에는 아침부터 그물을 수선하고 생선을 다듬는 아이들은 이제 어른에게 글을 배우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밝고 아이들이 벌써부터 글을 익히니 이 어찌 좋은 일이 아닌가. 서역과 통교를 맺을 때에는 염려하였지만 이제는 좋은 모습이 보이는군.”

“저희야 주상전하께서 주신 하······ 아무튼 많은 은혜에 감사할 뿐입니다.”

“하해와 같은 은혜라 하면 된다네. 그럼 열흘 뒤에 방문하겠네.”

열흘 뒤에 열 명에 달하는 유생들이 우음도에 모였다. 어민들이 며칠 전부터 준비했으니 열린 주안상은 푸짐하다 못해 해산물이 넘쳐났고 소주조차 준비되었다.

예전이라면 쪽배로 잡아와 살이 무르고 비린내가 올라와 맛이 부족했던 삼치가 싱싱한 채로 구워져 주안상 한가운데에 올라왔다. 한 유생은 술잔을 비우면서 요즘 세태를 논하였다.

“얼마 전에 환일 그 친구의 둘째아들이 그랑재골에 입시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네.”

“그랑재골이라 하면 서역의 학문을 퍼트리는 곳이 아닌가? 성균관의 아래에 있는 기관이니 차라리 경학에 매진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과거에 응시할 것이지.”

“신일(장 진사의 호) 식년시가 변모하지 않았는가. 기존의 대과와 대등한 이과(理科)라는 과목이 생겨났다네. 아예 잡과를 흡수하여 대등한 인원을 뽑는다 하였네.”

관직에 민감한 양반들이니 눈썹을 꿈틀거렸다. 반면 장 진사는 자신이 예전에 진사시에 합격한 것을 떠올리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결국 잡과를 조금 개선한 것이 아닌가?”

“옳은 말이네만 이과 합격자가 부족하여 관직을 바로 수여한다 하였지.”

과거시험에 합격하면 바로 관직을 수여하지는 않았다. 소과인 생원시와 진사시는 어디까지나 4대 후손까지 양반 자격을 수여하는 시험에 불과하였다.

대과도 바로 관직을 주는 경우는 없었다. 상위 3위까지만 관직을 주고 나머지는 품계를 내린 뒤 빈자리가 생기면 임명하는 방식이었다. 장 진사는 말을 듣고는 분통을 터트렸다.

“서양에서 배우고 잡학을 끌어올려 만든 학문이 어찌하여 더 많이 등용된단 말인가!”

“이과에 합격할 만큼 지식을 쌓는 사람이 드물어서 생긴 일이라더군. 자네가 가진 천수답 근처에 얼마 전에 보가 세워진 일은 잊었나?”

생각하여 보니 옳은 말이었다. 예전에는 지형이 높고 지반도 연약하여 보나 둑을 만들지도 못 하던 천수답이었다. 여기에 조정에서 온 사람이 여러 재료를 동원해 튼튼한 보를 세웠다.

주상전하의 뜻은 서역의 학문과 기술을 배워 나라를 이롭게 하자는 말이었다. 상업을 부흥시키고 여러 기술을 도입하니 불만이 생겨났지만 이러한 이득 앞에서는 불만이 누그러졌다.

“쓸모가 있는 사람이 등용되는 법이지.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쓸모가 없다는 말이로군.”

“쓸모가 없기는 무엇이 없겠나. 새로운 학문을 배우라는 뜻이지.”

“이 나이에 새로운 학문을 배우라? 내 나이가 내년에 불혹(마흔)이 넘는다네.”

콧방귀를 뀐 장 진사는 주안상 대신 머나먼 바다를 바라보았다. 음력 10월이라 갯벌에서 일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웬 배가 물결을 거스르고 갯벌에 정박했고 사람들이 내려왔다.

어민에게 망원경을 빌려서 보니 가장 앞에 있는 사람은 갈색 머리칼에 두툼한 서양 복식을 입은 외국인이요. 그 뒤에 있는 사람은 쑥색 옷을 입은 여성이었다. 장 진사는 이 모습을 확인하고는 혀를 차댔다.

“나라에 서역인들이 들어와 이곳저곳을 들쑤시는데 무슨 꿍꿍이인지 모르겠군.”

“어차피 술도 거의 다 마셔가고 흥도 빠져나갔는데 저들의 꿍꿍이나 알아보지 않겠는가?”

“그거 좋은 생각이로군. 광산을 찾아 온 사람들 같은데 상세히 알아봐야겠지.”

장 진사를 앞세운 유생 십여 명은 배를 타고 이들이 상륙한 장소에 따라왔다. 이미 삽을 들고 있는 삼십여 명의 인부들이 흙을 파헤치고 있었다.

광산을 개발하는 사람들의 장비를 확인한 장 진사는 기대감을 담아 나아갔다. 그러자 화석 발굴단의 대표인 토머스 호킨스가 앞으로 나서서 인사를 올렸다.

“조선의 귀족 여러분이 방문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저 토머스 호킨스가 발굴단을 대표하여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나는 장우일이라 하며 호는 신영이오. 발굴을 한다니 무슨 일인지 모르겠구려.”

“저희는 화석, 조선의 말로는 용골(龍骨)이라는 물건을 찾아 이 땅까지 온 사람입니다. 여기에 옛 사람의 흔적을 찾아 조상의 삶을 분석하기 위한 학문을 익혔지요.”

토머스 호킨스와 매리 에닝은 조선에 건너와 자신들의 학문을 설명하였다. 설명을 곰곰이 듣던 순조는 이를 간략하게 정리하여 되돌려주었다.

‘그러니 옛 기록을 찾기 위해 땅을 파헤친다는 말이로군.’

고고학에 대한 지나친 요약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오히려 옛 조상에 대한 존경심을 담고 있는 조선 사람들 입장에서는 경계할 수도 있고 올바른 학문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다.

엄연히 주인이 있는 무덤을 도굴하는 행위가 아닌 잊힌 무덤을 발굴하고 흔적을 찾아낸다면 진정한 조상을 찾는 숭고한 학문이리라. 장 진사는 잠시 고민하다 말하였다.

“요순시대에 이 나라에 살던 사람들의 습속을 찾는 학문이라는 말이오?”

“요약하자면 그렇습니다. 그 시대에 살던 짐승도 찾고 사람의 흔적도 찾는 것이지요.”

“이 학문은 배워볼 가치가 있을 것 같군.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새로운 학문을 익힐 필요는 느끼지 못하는 유생들이지만 요순시대의 기록을 찾아 나선다면 제법 좋은 학문이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였다.

이들이 있는 땅은 요순시대는커녕 인류가 존재하지도 않는 시기의 생물들이 흔적이 잠든 땅이지만 그런 지식은 양반들에게 없었다.

주변을 잠시 살펴본 장 진사는 새로운 학문을 하나 익혀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훗날 별칭으로 요순학이라 불리며 고고학의 시조가 될 학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작가의말

조선 서민 : 우리는 생선도 잘 먹고 몸도 비누로 씻고 이래저래 잘 살고 있소

영국 서민 : 우리는 홍차도 마음대로 마시고 그럭저럭 잘 살고 있소

영국 빈민 : 니들은 우리와 비교하면 왕후장상이다!

아직 고고학은 태동하는 학문에 불과합니다. 솔직히 말해 19세기 중반까지는 도굴꾼이나 다름 없는 짓을 많이 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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