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64화 (64/345)

< 7장 - 논의 >

조선은 급격하게 발전하며 이로 인한 수많은 문제를 발생시켰다. 이로 인해 조정에서는 비변사에서 한 달 간격으로 열리는 정기 회의를 열었다. 효명세자는 자리에 앉아 회의의 시작을 알렸다.

“1838년 제 6회 정기 논의를 시작하겠네. 이번에도 안건이 도합 서른 건이 넘는군.”

새벽부터 시작된 회의는 보통 저녁 늦게야 끝났다. 한 번 회의를 마치고 나면 나도 파김치가 될 정도로 지쳤고 심지어 중간에 낮잠을 자는 경우도 있었다.

그나마 나은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발전을 저해하는 문제보다는 발전이 된 이후의 진통이 회의의 안건이 되었다. 물론 언제나와 같이 올라오는 안건도 있었다.

“신 박규수 아뢰옵나이다. 형조의 아문인 전신국(電信局)의 보고에 의하면 가평 일대의 농지에서 비료를 헛되이 이용하는 일이 벌어진 정황이 포착되었사옵니다.”

“백성들을 협박하고 비료를 갈취하여 자신의 은결에 사용하였단 말인가.”

1837년 가을의 측량까지 합치면 도합 세 번의 토지 양성화 사업이 진행되었다. 이제 은결은 옛 말이 되었으며 산간오지의 백성이 아닌 한 새로운 세금에 적응하여 비료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사람은 언제나 욕심을 부리기 마련이며 세금을 떼어먹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사람이 즐비하였다. 효명세자는 수십 번이나 벌어진 일이니 표정도 변하지 않고 명령을 내렸다.

“익문사에 명을 내려 기본적인 조사를 마치고 장계를 올리도록 하라. 만약 정황이 드러나거든 검리원(檢吏院)의 사람을 파견하여 조사하도록.”

“세자저하께서 내린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를 일이로군. 그깟 이문에 눈이 멀어 나라의 법도를 어지럽히다니 가당치도 않은 일이지 않은가. 보는 눈이 몇 개나 있는데 그런 짓을 저지르는가.”

이미 조선 대부분의 지역에는 전신이 연결되었다. 효명세자는 전신을 전달하기 위해 각지의 역참에 배치된 전신 기사들을 일종의 정보부로 활용하려 하였다.

좋은 생각이지만 조금 부족해서 내가 개입하였다. 전신으로는 제대로 된 소식을 알 수 없으니 예전에 사라진 조보(朝報 - 관용 신문)를 부활시키고 조보 기사를 핑계로 정보를 수집하는 기관인 익문사를 창설하였다.

전신국은 공식적인 정보를 입수하는 수단으로 활용하였으며 익문사는 비공식적인 첩보기관이었다. 여기에 형조 휘하의 수사기관인 검리원을 만들었다.

일종의 국가안보국, 정보조사국 그리고 연방수사국을 둔 격이다. 박규수는 연방수사국 역할의 검리원의 대사간(大司諫)이며 왕명이 내려오면 사건을 수사하는 역할을 하였다.

명이 내려졌으니 다음 주제로 넘어갔는데 몇 년째 피로에 시달리던 김좌근이 보고를 시작하였다. 그는 토지조사가 일단락되어 호적과 인구조사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사람 같지 않고 미라와 비슷할 지경이었다.

“다음으로는 호적과 관련된 문제이옵니다. 더 이상 부역(負役)과 공납이 없는 상황인데도 자신을 유학호(양반 후손)라 칭하며 조작된 호적을 들먹이는 이들이 많사옵니다.”

“양반이건 백성이건 모두 동등한 세금을 내는데 무슨 소리란 말인가. 그까짓 네 글자가 그리도 중요하단 말인가?”

“지방의 호적을 확인할 때마다 삼 할이 넘는 사람들이 유학호로 기록되어 있사옵니다. 심한 경우는 사 할에 달하옵니다.”

지방에서 올라온 관료들은 심각한 표정이었지만 한양 일대에서 살아온 관료들은 웃음을 억지로 참고 있었다. 효명세자는 기가 차다는 듯이 되물었다.

“양반이 땅에서 솟아난다는 말인가? 아니면 하늘에서 떨어진다는 말인가?”

“그만큼 삼정의 문란이 남긴 여파가 심각하였다는 뜻이기도 하옵니다.”

조선시대에는 7할이 양반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시대의 사람들이 들으면 비웃다 못해 배꼽이 빠질 소리였다.

이 시대에 공식적인 양반은 아무리 많아봤자 2%에 불과하고 그들의 후손을 따지면 10%에도 미치지 못 한다.

그러나 현실과 조작된 호적은 달랐다. 삼정의 문란에 직면한 사람들은 세금을 막아내기 위하여 아전에게 뇌물을 바치고 자신의 출신을 양반의 후손이라 고쳐 적었다.

이미 부역, 공납 그리고 군포가 폐지되었는데 아직도 호적을 고치지 않고 있었다. 효명세자는 일단 넘어가려 하는 표정이었는데 기강을 제대로 잡아야 하니 의견을 제시하였다.

“신 박현상 아뢰옵나이다. 출신을 속이는 일은 조상을 모욕하는 행위와 마찬가지이옵니다. 그러하니 유향소에 비치된 향안(鄕案)과 호적을 대조하여 이들을 색출하시옵소서.”

“그렇게 걸고넘어질 필요가 있기는 한가?”

김좌근이 당황한 나머지 애처로운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는데 양보해야 할 일이 있고 아닌 일이 있다. 김좌근도 나에게 업무를 떠넘기는 경우가 있었으니 나도 업무를 좀 떠넘겨야 할 것 같았다.

향안은 향교에 보관되는 지역 양반들의 목록이다. 김좌근은 수백 년 동안 축적된 향교의 기록을 조사하고 이를 족보와 대조하게 되었다. 좀 힘든 일이긴 하니 양심이 꿈틀거렸다.

김좌근은 나와 효명세자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제발 살려달라는 눈빛을 보냈는데 효명세자도 내 제안이 마음에 들은 것 같았다. 그리고 김좌근에게 언제나처럼 제안을 하였다.

“보학(譜學 - 족보를 추적하는 학문)에 능한 유생들을 소집할 것이니 이들의 도움을 받아 업무에 임하도록 하게.”

“하오면 처······. 처벌은 어찌 내려야 하옵나이까.”

“세 번을 권고하도록 하게. 스스로 나서서 고치면 훈방으로, 관원이 질책하여 고치면 적당한 노역을 부과할 것이라 하며 향안과 대조하여 거짓이 드러나면 벌금을 내리면 적당하겠군.”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효명세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김좌근이 경기를 일으킬 명을 내렸다.

“이는 기록이 서로 일치하지 아니하여 벌어진 일이라네. 이번 기회에 향안을 옮겨 적어 조정에 보관하도록 하게. 영길리가 강성한 나라가 된 근본이 여기에 있다네.”

“명을 받들겠사옵니다.”

마지막까지 폭격을 맞은 김좌근 다음으로 나온 사람은 이항로였다. 그는 조선 팔도를 쉴 새 없이 돌아다니며 광산을 찾았으며 부국강병의 길이 자원 생산에 있다 생각하였다.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이항로는 총 30만 명에 달하는 화전민이 이주한 우수리스크의 지질 조사 결과를 보고하였다.

“기쁜 소식이옵니다. 쌍성자(우수리스크) 일대를 세심히 채굴해 본 결과 세 곳의 노천탄광을 발견하였사옵니다. 운산이나 삼성 금광처럼 화강암이 아닌 얇은 지층이옵니다.”

“그러하면 다이너마이트나 발전기가 없이도 석탄을 쉬이 캐낼 수 있겠군. 그렇다 하여도 이주한 백성들이 지나친 노동에 시달리면 아니 된다네.”

“운산 금광과 같이 험난한 곳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사옵니다.”

이항로는 지난 3년 동안 60개가 넘는 광산을 발견했다. 그러한 광산 중에는 운산금광처럼 개발이 어려운 녀석들도 많았다. 어렵다 해도 개발이 불가능한 수준은 아니었다.

단단한 화강암 지층은 다이너마이트로 뚫어냈으며 솟구치는 지하수는 증기기관을 이용한 펌프로 모조리 퍼냈다. 광원은 아예 발전기까지 설치하여 전구로 대체하였다.

이 금광들의 초기 투자비용이 은자 10만 냥, 유지비가 은자 10만 냥이 들어가지만 매년 은자 25만 냥의 수익을 토해냈다. 효명세자는 운산금광의 이야기를 논하자 슬쩍 웃으며 말하였다.

“운산금광이야 매년 나오는 인삼 일만 근의 값어치가 있고 인근의 금광 다섯 곳을 합쳐도 삼만 근에 불과하지 않나. 그러나 석탄은 어느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소중한 자원일세.”

이항로의 보고가 끝나고 다음 보고도 이어졌다. 다 죽어가는 표정의 이점버드 브루넬은 자신이 설계한 금강 수중보가 홍수 한 방에 무너졌다는 보고를 올렸다.

이미 한강이라는 괴물 앞에 포기한 이점버드에게 또 하나의 패배가 적립되는 순간이었다. 이외에도 도로의 개선이나 각종 토목공사에 대한 진척이 끝없이 올라왔다.

마침내 회의가 끝난 것은 오후 9시가 다 되어서였다. 퇴근할 생각도 못 하고 휘청거리며 탁지부로 향하는 김좌근에게 작별 인사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갔다.

“낭군님께서 다녀오셨습니까. 그간 별고 없으셨는지요.”

“그리 힘든 일은 없었소. 다만 아이의 산달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틀 뒤에 휴 린지를 만나러 황해도로 다녀와야 할 것 같구려.”

“황해도야 넉넉잡아 하루면 다녀올 수 있지 않습니까. 세상이 참 빠르게 변하니 뒤쳐질 것 같아서 염려가 됩니다.”

아내의 임신사실을 안 것은 6개월 전인 1838년 1월이었다. 정말 실감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7월이 다 된 지금은 내 아이가 태어날 것 같아서 어떻게 감정을 다스려야 할지 모르겠다.

아버지로서의 모범을 보이려 하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사실 내가 하는 일을 아이가 알게 되면 아버지를 먼저 불신할지도 몰랐다.

이미 효명세자를 꼬드겨 첩보기관과 정보기관을 만들었다. 외교에서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이득만을 추구하고 있었다. 이것만 보아도 올바른 아버지가 아닌 것 같은데 아내는 내 마음을 모르고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낭군님께서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올바로 지키시는 분이 아니십니까.”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 하였소? 그건 또 무슨 소리요.”

“몸과 마음을 수양하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였습니다. 또한 주상전하의 은혜를 입어 나라를 온전히 다스리고 천하를 상대로 섬세한 기교를 부려 평정하지 않사옵니까.”

상대가 영국이라는 혐오스러운 성품을 지닌 나라라서 내 외교적 평가가 올라갈 뿐이다. 마치 악당을 상대하는 또 다른 악당이 선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주변의 시선과 기대를 한 몸에 받는 관료이니 이런 기대에 부흥할 수밖에 없다. 마루에 앉아 아내를 옆에 두고 별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내 아이가 보아 실망할 만한 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이나 아직은 실망할 일이 가득하오.”

“낭군님께서는 스스로를 언제나 갈고 닦으시니 그러한 말을 하실 법 합니다.”

아내와 뱃속의 아이를 생각하니 양심이 뒤틀리는 것 같았다. 적어도 아이가 주변 정황을 아는 다섯 살부터 인격이 완성되는 스무 살 까지는 혐오스러운 행위는 하지 말아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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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린지가 나를 만나기로 한 이유는 신상품 때문이었다. 아직 동인도회사의 조선 무역 독점권은 4년이나 남아 있으며 독점의 폐해를 막기 위해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였다.

이미 대동강 근처까지 개통된 철도 노선은 순조의 명으로 최소한의 유지비만 요금으로 받고 있었다. 그러니 백성들을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었다.

“내 살아생전 이런 물건을 가지고 기차에 오를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아마 한반도 역사에서 최초로 수출하는 물건일지도 모른다. 열차는 정처없이 달려 목적지인 사리원에 도착했다. 각 객차마다 배정된 관원들은 손잡이를 굳게 잡고 사람들에게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였다.

“이번 역은 사리원입니다! 열차가 멈출 때 까지 가만히 계십시오!”

사람들은 찍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자리를 지켰다. 철도를 도입하고 처음 일 년 동안은 사망사고나 부상사고가 속출하였지만 이제는 질서가 잡혀가기 시작했다.

사리원은 이 시대에는 봉산군으로 불렸는데 교통의 요충지이기에 경의선의 경로로 설정하였다. 열차 도착이 30분 정도 지연되었는데 이미 역에서 휴 린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센 박을 또 뵙게 되는군요. 이번에는 급히 주문할 물건이 있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내 살아생전 쥐를 급하게 주문해서 이를 웃돈을 주고 잡아올 줄은 몰랐는데요.”

조선이라는 국가는 최고 효율을 추구하며 계속 발전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생각하는 방법보다 조선의 평범한 백성들이 머리를 모아 쥐어짜낸 지혜가 좋을 때도 있었다.

그러한 지혜가 겹치고 겹쳐 나를 움직이게 만들었다. 분명 쥐를 팔고 있지만 휴 린지는 쥐라는 말에 질색을 하며 물건을 살펴보고 말했다.

“이 녀석들은 쥐가 아닙니다! 다람쥐의 박제를 본 사람들이 다람쥐를 들여오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습니다. 귀족가의 마스코트가 될지도 모르는 녀석이지요.”

“지금 칩멍크(chipmunk - 다람쥐)가 아니라 다람쥐(daramjwi)라 하셨습니까?”

“이 우아한 줄무늬와 빵빵한 꼬리가 없으면 칩멍크지요! 다람쥐는 다람쥐입니다!”

휴 린지는 철망으로 만든 우리 안의 다람쥐를 보면서 눈을 떼지 못 하였다. 이러다 하루 종일 다람쥐만 볼지도 모르니 서둘러 거래 단가를 정했다.

“아직 다람쥐의 수요공급을 모르니 일만 마리만 잡아와 보았습니다. 단가는 얼마지요?”

“열다섯 마리 당 은자 한 냥으로 하겠습니다. 운송하면서 손실되는 양은 염려하지 마시지요.”

휴 린지가 가져온 서류는 동인도회사의 회장 직인이 찍힌 정식 서류였다. 심지어 예상 손실률이 90%라도 상관이 없다 하였다.

아마 영국에 도착한 다람쥐는 경매에 붙여질지도 몰랐다. 고작 쥐 한 마리에 은자 한 냥 이상의 가격을 내는 꼴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솔직하게 말했다.

“이 나라의 백성들에게는 곡식을 훔쳐 먹는 짐승일 뿐인데 참 신기한 일이군요.”

“저는 이렇게 예쁜 다람쥐가 유해조수 취급을 받는 것이 신기할 지경입니다.”

다람쥐의 수출 요청이 들어온 것은 우연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 공장이 생겨난 여파로 베틀을 놀려 수익을 거둘 길이 막힌 백성들에게 겨울 동안 잡다한 물품을 만들게 했었다.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비싼 값을 받을 생각으로 물품을 개량하는 사람이 있었다. 이를테면 지갑을 만들 때 천 대신 다람쥐 모피를 사용한 사람도 상당수가 있었다.

우스운 일이지만 이 다람쥐 지갑이 영국에 건너가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아예 추가 발주를 할 정도로 주목받는 상품이 되었는데 나는 미래에 벌어질 일을 알고 경고하였다.

“다람쥐는 모피의 줄무늬가 진하고 색이 예쁘지만 결국 쥐입니다. 이를 마음대로 야생에 풀어두면 마구잡이로 번식해서 해를 끼칠지도 모르는데요.”

“오히려 좋은 일이군요. 조선의 예쁜 다람쥐가 유럽에 퍼지면 공원을 다닐 때마다 행복하지 않겠습니까? 조선에서 수입할 걱정도 덜어낼 수 있겠군요.”

다람쥐의 식량은 산에서 나는 견과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들판의 곡식과 심지어 창고 안에 있는 곡식도 다람‘쥐’ 아니랄까봐 마구잡이로 훔쳐 먹는다.

다람쥐를 생포하면 돈을 준다는 소문이 돌자 백성들은 말 그대로 다람쥐를 쥐 잡듯 잡아댔으니 얼마나 피해를 입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휴 린지는 다람쥐가 담긴 철창을 옮기며 말했다.

“아무래도 일대 유행이 될 상품이니 내년에도 거래를 실시합시다. 조만간 거래 결과를 알려드릴 테니 염려하지 마시지요.”

야생 다람쥐는 아무리 좋게 말해도 나무를 타는 쥐에 불과하다. 쥐가 옮길 수 있는 병은 다람쥐가 모두 옮길 수 있으며 이는 현대 유럽에서 증명된 사실이다.

잘못하면 현대의 프랑스처럼 진드기와 기생충에 범벅된 다람쥐가 대량 번식해 피해를 입는 사람이 생겨나리라. 어차피 자기들 책임이니 알아서 할 일이지.

휴 린지는 다람쥐가 죽지 않게 하려고 신주단지 모시듯이 항구로 운송하였다. 돌아가는 열차를 기다리며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사람들의 표정이 더없이 밝아 보였다.

음력 7월이면 한창 더울 때이고 농사까지 번잡하니 쉴 틈이 없을 시기였다. 이런 계절에도 사람들이 어느 정도 여유를 가지고 있으니 내가 제안한 정책이 효과를 발휘했는지 궁금했다.

“지금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기는 한가?”

서민이 아닌 관료의 입장이라 나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사람을 보내 조사라도 조금 해 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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