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장 - 2차 박람회 >
영국에서 개최되고 영국의 자존심을 무너트린 국제 박람회는 2회차를 맞이하였다. 1833년의 박람회를 잊지 않은 영국의 과학자들은 4년 동안 철저히 준비하여 승리를 거두려 하였다.
1837년 3월, 파리에서 제2차 국제 박람회의 개막이 시작되었다. 왕립학회의 회장이자 영국 왕 윌리엄 4세의 동생인 서식스 공작 어거스터스 프레데릭이 행사 시작 전에 루이필리프에게 인사를 올렸다.
“영국 과학자의 모임인 왕립협회를 대표하여 저 서식스 공작이 루이필리프 전하께 인사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요즘 들어 좋은 일이 많이 생겨서 즐겁게 지내고 있다네. 그나저나 항해왕(윌리엄 4세의 별명)은 근래에 들어 병을 앓고 있다 하였지? 빨리 쾌차하였으면 좋겠군.”
“형님께서는 귀여운 우리 알렉산드리나(빅토리아 여왕의 이름)가 왕위에 오를 때 까지는 꿋꿋이 사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그 이후로는 방법이 없을 것 같습니다.”
윌리엄 4세의 건강은 간경변증으로 인해 서서히 무너져가고 있었다. 안타까운 듯이 고개를 좌우로 저은 루이필리프는 프레데릭의 어깨를 두드리며 권유했다.
“더 이상 우울한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는가. 잠시 좋은 구경을 하면서 눈을 돌리게나.”
“좋은 구경이라 하셨습니까? 새로운 미술품이 들어왔나 보군요.”
프레데릭은 과학자라기보다는 예술을 좋아하며 성서를 연구하는 신학자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는 차분한 마음으로 루이필리프의 안내를 받아 따라갔다.
전구로 밝혀진 방 안에는 세 장의 회화가 있었다. 작품을 감상하기에 알맞은 조명에 만족한 프레데릭은 작품을 훑어보고 살펴보고 중얼거렸다.
“이런 양식의 회화가 이 자리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꽃을 표현한 아름다운 회화일 뿐인데 다른 것이 보이는가?”
루이필리프는 그저 웃고 있었지만 프레데릭은 홀린 듯이 세 장의 그림으로 다가가 상세히 살펴보았다.
세 장의 그림은 돌 위에 굵은 뿌리를 내리고 두꺼운 잎 사이로 새하얀 꽃을 피운 장면을 묘사했다. 풍란(風蘭)이 세 장의 그림에 각기 다르게 담겨 있었는데 화풍이 예사롭지 않았다.
“기법은 렘브란트와 흡사한 방식의 웨트 온 웨트(wet on wet)이지만 방식이 다르군. 붓의 질감을 최대한 활용하여 물감을 섞어가면서 지독할 정도로 얇고 세밀하게 그렸어.”
세 장의 그림은 각기 거대한 바위의 구석에 피어난 풍란 세 포기를 묘사하였다. 배경은 하얀 색으로 보였지만 기묘한 색이 혼재되어 있었다.
여기에 바위와 풀잎에 맺힌 이슬이 수천 번의 붓질로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프레데릭은 조심스럽게 그림을 매만지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아마유(물감의 건조를 느리게 한다)를 거의 섞지 않다니. 이 그림을 한 장 그리려고 하루 종일 식음을 전폐하고 붓을 놀렸겠군.”
“역시 자네가 나보다 많이 알고 있다니까. 그나저나 왜 새하얀 곳을 뚫어져라 보는가.”
“배경이 하얀 색으로 보이지만 산바람에 일렁거리는 안개를 회색으로, 저 멀리서 파고드는 햇볕을 노란색으로 담고 있습니다. 이렇게 인상적인(impressive) 그림이 있다니요.”
프레데릭은 이 회화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었다. 화가가 본 순간적인 풍경을 머릿속에서 재해석하고 가장 인상적인 방법으로 핵심을 표현한 것이다.
이를 위해 물감의 색을 겹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붓을 놀렸으리라. 그러던 프레데릭의 머리에 불현듯이 이번 박람회에 쓰기 위해 가져온 물건이 떠올랐다.
“이 사람은 지금 카메라 옵스큐라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카메라 옵스큐라와 전쟁을 벌인다고 했는가? 그 물건은 불편한 장난감이 아닌가?”
“왕립협회에서 개선한 카메라 옵스큐라는 3분의 노출로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화가는 기껏 해야 몇 초의 순간을 묘사하였군요.”
사진기의 발명은 화가들에게는 악몽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직 흑백에 불과한 사진기이지만 주관적인 왜곡이 생기는 회화와 달리 사진기는 피사체의 모습을 온전히 전해주었다.
평범한 화가는 몰라도 부유한 화가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자신들이 그리는 이상적인 회화를 고작 손가락을 몇 번 움직이는 기계가 따라잡을지도 모르는 세상이었다.
그러나 이 세 장의 그림은 이 시대의 사진기가 절대 담을 수 없는 찰나의 풍경을 묘사하였다. 프레데릭은 이를 알아차리고 체면도 무릅쓰고 제안을 하였다.
“이 그림 중 왼쪽에 있는 한 장을 저에게 주시지요. 대영박물관에 전시하여 모든 화가들이 보고 즐기게 해야 합니다. 대체 어느 화가가 그렸는지 몰라도 만 파운드를······.”
“한 장은 영국에 선물할 그림이었는데 잘 되었군. 남연군은 어서 그림을 소개하도록 하게.”
“처음 뵙겠습니다. 조선의 두 번째 사절단을 이끌고 방문한 남연군이라 합니다.”
이번 방문에는 영국에 들르지 않을 남연군이었지만 예의는 지켜야 하는 법이었다. 인사를 나눈 프레데릭은 남연군에게 이 그림에 대해 캐 묻기 시작하였다.
“제가 태어나서 이렇게 인상적인 그림을 본 적이 없습니다. 조선의 어떠한 화가가 이러한 그림을 그리셨는지요?”
“한때 세자저하의 스승이었던 추사 김정희이십니다. 불란서에 머물다 돌아오신 다음부터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고 회화에 몰두하고 있지요.”
틈을 내어 제자를 가르치고 새로운 안료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 김정희이지만 관직에서 물러났으니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었다. 남연군은 왼쪽에 있는 회화를 건네주며 말했다.
“이 회화는 총 넉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세 장은 각기 영길리, 불란서 그리고 보로서(普魯西 – 프로이센의 음차)에 전해줄 것입니다.”
“한 장은 조선에 있겠군요. 그러하면 모든 그림을 보기 위해 조선까지 다녀와야 합니까?”
“그야 조금 전에 말씀하신 카메라 옵스큐라라는 기물로 사진을 촬영해 보내면 될 일이지요.”
“우문현답이 따로 없군요. 이 그림은 감사하게 받겠습니다.”
프레데릭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림을 들고 사라졌다. 20년 뒤에 태동했어야 할 인상주의가 김정희의 손으로 이루어졌다.
다음으로 그림을 가져갈 사람은 루이필리프였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 가운데 그림의 틀에 가볍게 연필로 서명을 날인하고 말했다.
“나는 이 녀석이 가장 좋은 것 같네. 묘사한 꽃의 형태가 우리 부르봉-오를레앙 가문의 옛 문장인 백합을 닮아있군. 다음 회화는 언제쯤 완성할지 알 수 있는가?”
“회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파기하여 언제일지는 알 수 없다 하였습니다.”
이 회화를 그리는데 삼 년이 가깝게 걸렸다면 다음 회화는 십 년이 걸릴지도 몰랐다. 루이필리프는 잠시 생각하다 조금 전 프레데릭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 허탈한 듯이 말하였다.
“그럼 좀 더 기다리도록 하지. 영국도 단단히 준비했군. 닐슨 조가 개량한 카메라 옵스큐라가 십오 분의 노출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데 이제는 삼 분으로 줄어들었다니.”
“그야 서로가 좋은 물건을 자랑하기 위해 경쟁하니 당연히 벌어지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조선에서 사진을 촬영해 보았는데 심히 불편하였지만 이제는 편할 것 같습니다.”
“왕립협회 덕분에 조금만 참으면 좋은 사진을 촬영할 수 있게 되었군. 언젠가는 조선에서도 국제 박람회를 개최하여 새로운 문물들을 보여주면 어떠한가.”
“제가 과학에 대한 지식은 모르고 있지만 하루가 바삐 발전하고 있으니 조만간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남연군의 대답을 들은 루이필리프는 몇 년 뒤에 조선에서 국제박람회가 열릴지 기대하며 개회식장으로 향했다. 파리에서 가장 넓은 콩코르드 광장이 2차 파리 국제 박람회의 무대였다.
이번 박람회도 프랑스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루이필리프는 행사장 앞에 설치된 높은 연단 위에 올라서 2차 박람회의 개회를 선언하였다.
“과학의 발전에는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 위한 순수한 마음이 필요하다. 이 자리에 모인 모든 과학자들은 승패에 연연하지 말고 편견과 집착에 매몰되지 말도록 하라.”
연설이 끝나자 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파리의 시민들은 물론이며 관광객까지 지난 박람회처럼 프랑스 관으로 향하였지만 입장료가 생겨났다.
“입장료는 오 프랑입니다.”
“오 프랑이라? 지난번에는 안 받았는데.”
“그야 이번 박람회에서 입장권을 제법 비싼 녀석으로 지급하기 때문이지요.”
갑자기 생겨난 입장료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발길을 돌리려 하였으나 한 신사는 별 생각을 안 하고 루이필리프의 얼굴이 새겨진 5프랑 은화를 내밀었다.
“여기 입장권입니다. 이 입장권을 보여주시면 프랑스 관에는 몇 번이고 드나들 수 있습니다.”
“이게 뭔가? 아연은 아닌 것 같은데?”
은화와 같은 크기지만 훨씬 가벼운 입장권을 살펴본 신사는 정체를 알아보려 고민하였다. 그러다 자신의 약지에 끼워진 알루미늄 결혼반지와 비교해 보며 소리를 쳤다.
“입장권이 알루미늄이라니! 금보다 비싼 금속을 어떻게 오 프랑에 살 수 있나!”
“알루미늄을 돌에서 얻어내는 방법을 개발했습니다. 제조법에 대한 설명도 전시관 내부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한 번 들어가 보시지요.”
전시관에 들어간 사람들은 알루미늄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시작에 불과하였다. 브라질에서 수입한 고무나무 묘목은 아이티에서 성장하였고 여기서 생산된 가황고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 프랑스관의 주제는 새로운 물질입니다. 접착제나 방수제로 쓰이는 고무를 기억하십니까? 이 고무는 기존의 고무와 완전히 다른 물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고무 특유의 독한 냄새가 풍겨왔지만 사람들은 순식간에 가황고무의 우수한 성질에 빠져들었다. 피에로는 마흔 겹이나 되는 바지를 입으며 서글픈 목소리로 말했다.
“바지를 계속 입어도 계속 들어가! 고무줄을 바지에 넣으니 이렇게 쭉쭉 늘어나네!”
“그거 참 슬픈 일이군. 우리에게 바지를 나눠줘 보지 않겠나?”
“여러분들이 원하신다면 드려야지요!”
가황고무의 내구성을 증명하는 장소도 있었다. 기존 고무덩어리는 얼음물에 넣고 주무르면 금이 가면서 무너져 내렸다. 반면 가황고무는 형태를 유지하였다.
아예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새로운 물건을 즉석에서 창안하기까지 하였다. 조일준처럼 미래의 지식이 없더라도 이 사람들은 어엿한 과학자였다.
영국 전시관은 지난 박람회보다 조금 나은 편이었지만 한산한 느낌이 들었다. 프랑스 전시관을 모두 보고 온 사람들이나 번잡함을 피한 고위 귀족들이 한가하게 돌아다닐 뿐이었다.
이번 박람회에 참가하는 과학자들을 지휘한 마이클 패러데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나름 노력을 하였지만 이번에도 패색이 짙었다.
“두 번째 박람회에는 설욕을 할 줄 알았는데. 그토록 철저히 준비했는데 희망이 없군.”
패러데이도 나름 조일준의 편지를 받고 여러 물건을 준비하였다. 심지어 프랑스에서 처음 입수한 구타페르카 수액을 영국 상선을 통해 구해와 전선과 각종 도구를 만들었다.
이 노력에도 불구하고 구타페르카는 용도가 발견되고 5년 만에 가황고무에 밀려나게 생겼다.
영국 전시관에서 인기가 있는 곳은 3분 이내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체험하는 곳이 있었다.
의외로 사람이 더 모인 분야가 있었으니 화석이었다. 화석 수집가 토머스 호킨스와 고생물학자 매리 에닝이 어룡(魚龍 - 이크티오사우루스)의 골격을 비롯한 여러 화석을 전시하였다.
그곳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화석은 목이 긴 플레시오사우루스였다. 관심을 가진 남연군은 추정 복원도를 상세히 살펴보며 질문을 하였다.
“이 거대한 짐승은 무엇인지 궁금하구려. 팔다리는 거북과 닮아있으며 목이 아주 긴데다가 귀갑(龜甲)도 없지 않소. 참 난해한 짐승 같은데 혹시 여러 짐승의 뼈를 섞은 거요?”
“저희도 잘 모릅니다. 이름은 플레시오사우루스라 붙였는데 도마뱀에 가까운 짐승이라는 뜻이지요. 혹여나 노아의 대홍수에 쓸려 내려간 짐승의 뼈일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물에 사는 짐승처럼 팔다리가 넓고 튼튼한데 홍수에 쓸려 내려갔다? 생김새가 기묘한 물건이니 구매하고 싶구려.”
즉석에서 경매가 열렸고 천 파운드를 부른 남연군에게 낙찰되었다. 고생물학을 창조한 원동력이 된 플레시오사우루스의 화석이 엉뚱하게도 조선에 건너가게 되었다.
남연군은 화석이 일종의 용골(龍骨 - 한약재, 갑골문을 쓴 거북이 뼈를 약으로 씀)이며 약효가 다른 용골보다 훨씬 우수할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청나라에서 수입한 용골 대신 조선에서 용골을 찾으면 값싸고 질 좋은 용골이 나올지도 몰랐다. 생각을 정리한 남연군은 토머스 호킨스와 매리 에닝에게 대수롭지 않게 권유하였다.
“조선의 그랑재골 분원에는 수많은 학자들이 있는데 거기서 일 해볼 생각은 없소?”
“그랑제콜 분원이라 하셨습니까? 저는 화석 수집가이며 이쪽은 화석을 캐는 사람인데요. 저희의 능력이 부족해서 여러 문제가 벌어질 것 같아 심히 염려됩니다.”
“일 년 정도 업무를 해 보고 성과가 없으면 돌아오면 될 것 아니오. 급료 정도야 내가 지급할 수 있으니 염려하지 마시구려.”
계약서가 작성되었고 남연군은 조선에 묻혀있을 용골을 기대하며 다음 작품을 확인하였다. 다음 작품이 있는 방에는 돌로 만든 단상이 있었는데 앉아있던 사람이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나며 비명을 질렀다.
“엉덩이 다 타들어가는 줄 알았네! 이게 대체 뭐야!”
“조선의 구들을 재현한 물건입니다. 보시다시피 바닥에 구리로 만든 관을 매설해서 바닥 전체를 훈훈하게 덥히지요.”
“되었네! 되었어! 조지 스티븐슨의 제자라 해서 믿었는데 화상 입는 줄 알았네!”
남연군이 상대를 가만히 살펴보니 양복을 입고 머리를 짧게 깎았지만 엄연한 조선 사람이었다. 그는 남연군을 알아보았는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남연군 대감님을 뵙습니다. 혹시 저를 기억하고 계시는지요.”
“호가 돈와(遯窩)이었던가? 퇴계 이황의 후손인 이만손(李晩孫) 맞는가?”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뜻이 부족했지만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본래 역사에서 영남만인소를 올렸던 이만손은 영국까지 올 생각은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조만영이 헐뜯은 청나라의 실상을 알아보려고 사절단에 합류한 것이 전부였다.
이후 청나라 광주의 엉망진창인 현실을 목격하게 되어 얼떨결에 영국까지 오게 되었고 발전한 영국에서 학문을 익힐 마음을 품게 되었다. 이만손은 남연군에게 자신이 만든 물건에 대해 설명하였다.
“조지 스티븐슨이라는 분에게 여러 지식을 배우게 되었는데 이 지식을 응용하여 여기에서 사귄 벗 세 명과 함께 아궁이보다 훨씬 효율적인 구들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아궁이보다 훨씬 효율적인 구들이라? 대체 무엇이 다른가?”
“예전처럼 구들장이나 고래(불길이 지나가는 곳)도 필요가 없고 구리로 만든 관을 매설하기만 하면 끝납니다. 한 번 체험해 보시지요.”
돌로 만든 단상에 앉은 남연군은 조선에서 사용했던 구들과 견줄 수 있는 뜨끈한 기운을 느끼고 표정이 누그러졌다. 이 구들은 아궁이도 없고 굴뚝도 없으며 아래에서 올라오는 탄내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주 좋군. 여기에 몸을 지지면 피로가 확 풀릴 것 같으니 참으로 좋은 물건일세.”
“역시 조선 사람은 구들장에 몸을 지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지 스티븐슨께서는 이 물건을 보일러(Boiler)라 하였는데 아궁이와 비교하니 장작이 절반 이하로 들어갑니다.”
“아주 좋으니 조선으로 돌아가서 내 집에······. 어차피 자네가 먼저 돌아갈 것이니 안사람에게 말하여 보일러라는 물건을 구들 대신 설치하여 주게.”
남연군은 보일러라는 물건이 많은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했다. 조정에서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2층 이상의 다층 주택을 권유하였지만 높은 층에는 구들을 설치할 수 없어 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제는 아니었다. 사람보다 조금 큰 크기의 쇳덩어리라면 층마다 설치할 수 있으리라. 이를 통해 모든 건물의 바닥을 마음대로 덥힐 수 있을 것이 분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