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 61편
(6장 - 상극)
남연군은 내 설명을 듣더니 잠시 생각하였다. 그러더니 순조에게 조심스럽게 화전민에 대한 정책을 제안하였다.
“화전민들이 마을을 꾸리는 이유는 범이나 승냥이에게 맞서기 위함이옵니다. 그러한 곳에 몇몇 가족만 남겨두면 변고가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니 보살펴 주시옵소서.”
“염려하지 말게. 엽병을 훈련할 때 나무를 심는 화전민과 함께 움직인다 하였네. 이들이 위험한 산짐승을 격멸하고 화전민들이 제대로 나무를 심을 수 있게 보조하지.”
말이야 쉽지 엽병들이 목숨을 걸고 훈련하니 영국 육군에서도 탐낼 만한 인재가 되어버렸다. 아마 하급 장교로 포수를 배정하고 사격 실력이 좋은 병사들을 따로 선별하였으리라.
열차는 예정보다 빠른 11시 40분 무렵에 개성 남쪽에 설치된 봉동역에 도착하였다. 남연군을 비롯한 사절단 일행은 순조에게 절을 올리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주상전하의 성은으로 철마에 몸을 올려 마음이 편안하게 머나먼 길을 출발하게 되었사옵니다. 신을 비롯한 사절단은 서역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올 것이옵니다.”
“헛된 지식을 배워도 좋으며 사소한 지식을 배워도 좋네. 더 이상 유학(儒學)이 필요 없는 시대가 될지도 모르니 스스로 정진하여 종친의 이름을 드높이게나.”
“유학이 필요 없는 시대라 하셨사옵니까? 이는 나라의 근본이 아니옵니까?”
“그야 유학 하나만 가지고 관직에 진출할 수 없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말이지. 사서삼경 정도야 법도를 알기 위하여 익혀야 하지만 조만간 과거 제도도 변경될 것일세.”
순조는 인사권을 쥐고 있으니 지금 조선에 어떤 인재들이 필요한지 알고 있었다. 이제는 사서삼경만 논하는 사람은 전문적인 자리에 앉지 못하는 시대가 될 것이다.
결국 내년인 1837년에 치러질 식년시는 문과와 이과(理科)를 분별하여 시험을 실시하기로 하였다.
초시까지는 기존 과목을 유지하지만 복시와 전시에서 이과라는 과목이 신설될 예정이며 수학, 과학, 천문 등의 과목을 보는 시험이었다. 남연군은 이를 알고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하응이가 내년에 치러질 식년시에 응시하면 필히 우수한 성적을 거둘 것이옵니다.”
“내 생각 또한 마찬가지라네. 그러하면 머나먼 길을 평안히 다녀오도록 하게.”
남연군을 배웅한 순조는 기차가 정비를 마치는 동안 잠시 개성을 돌아다녔다. 왕의 행차에 사람들이 고개를 꾸벅꾸벅 숙였고 순조는 이들을 치하하며 경덕궁(慶德宮)에서 간단한 제사를 올리고 만족하여 말하였다.
“선대왕께서는 경덕궁에 거동하시어 간혹 제사를 올렸는데 이제 제사를 편히 올리게 되었구나. 이는 참으로 기쁜 일이 아니겠느냐.”
“실로 그러하옵니다. 철도가 방방곡곡에 개통되면 함흥의 별궁까지 하루 이내에 도달할 수 있으니 이는 어가(御駕)가 날래게 움직이는 것과 같사옵니다.”
“이를 나와 세자를 비롯한 왕실의 사람들만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만히 보니 저들은 도성으로 향하는 송상(松商)이 아니더냐? 돌아가는 길에 기차의 빈자리를 채우도록 하여라.”
상인들은 순조의 호의에 감사하며 우마차 대신 기차에 짐을 올리고 한양으로 올라갔다. 인왕산이 보일 무렵인데도 저녁놀이 지지도 않은 풍경을 바라본 순조는 나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기차가 하루 내내 달리면 의주까지 닿는다 하였지. 그러하면 기차 스무 대를 오고 가게 만들면 병력을 얼마나 빠르게 옮길 수 있을지 참으로 궁금하구나.”
“보급품을 미리 보내놓는다 가정하고 병력과 장비만 수송하면 일만 명의 병력이 도성에서 의주까지 올라갈 수 있사옵니다.”
“그러하면 삼만 대군에 칠만여 명의 보인을 열흘 안에 옮길 수 있다는 말이 아니더냐. 사람이 모이는 대로 올려 보내면 되니 청나라는 제대로 된 병력도 모으지 못 할 것이다.”
순조도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기습적인 수도 함락으로 참수작전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영국에서 맺은 밀약인 조선과 영국의 협공이라는 전제조건은 애초에 생각하지도 않았다.
내 표정을 확인한 순조는 이미 마음을 정한 듯이 대수롭지 않게 손짓을 하며 말하였다.
“내가 사적으로 영길리의 군주 윌리엄과 서신을 주고받는 것을 알고 있더냐. 윌리엄이 논하기를 총리 웰링턴은 조선을 병합하려는 꿍꿍이를 품고 있으니 절대 믿지 말라 하였다.”
“하오면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영길리와의 합종연횡을 배제하실 생각이시옵니까?”
“나는 애초에 영길리를 믿은 적이 없다. 영길리 사람이라면 믿을 수 있어도 영길리라는 나라는 절대 믿을 수가 없지. 겉과 속이 다른 나라를 어찌 믿겠느냐.”
지금까지 순조의 태도를 보아 영국을 옹호하는 것 같았는데 속내를 숨기고 있었다. 열차가 도착하고 먼저 상인들이 내리는 모습을 확인한 순조는 나에게 당부하듯이 말했다.
“나는 옛 사람이라 새로운 습속에 따르기 힘들 것 같구나. 그러하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모든 힘을 쏟을 것이니 친정(親征)에 나설 생각도 있다.”
“친정에 임하시다니 실로 흉험한 일이옵니다. 전하께서 나서지 아니하더라도 모든 일이 순리대로 돌아갈 것이 분명하니 친정의 뜻을 거두어 주시옵소서.”
“다른 일은 제쳐두더라도 로널드라는 영길리 출신 군관이 마음에 걸리는구나. 그 자가 영길리 총리의 밀명을 받고 진군을 거부하면 통솔할 사람은 나 이외엔 없구나.”
순조가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나름 올바른 뜻을 가지고 있으니 함부로 말릴 수는 없었다. 왕이 친히 청나라를 정벌하는 것과 맞서 싸우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까.
마침내 우리가 내릴 차례가 되었다. 순조는 기차에서 내려 대소신료들의 인사를 받으며 가마에 올랐다. 그러더니 기차를 바라보면서 명령을 내렸다.
“기차를 유지하고 보수하는데 얼마나 많은 자금이 들어가는지 확인하고 요금을 정하도록 하라. 개인이 만든 철도라면 몰라도 나라가 만든 철도라면 이문을 챙길 수 없다.”
사실상 민간에게 개방된 철도는 계속 확장해 나갈 것이며 서민들도 여러 지역을 오갈 날이 조만간 열릴 것이다. 사실 조선의 물동량은 이미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영국에서 수입한 슬루프는 운용도 간편하고 여러 용도로 쓰이는 선박이었다. 이미 조선 각지에 있는 조선소에서는 이를 복제하여 다용도 선박으로 사용하였다.
각지에서 올라온 곡식을 비축하는 한강 백사장에는 이미 60개가 넘는 창고가 부설되어 100만 석에 달하는 미곡을 비축하고 있었다. 이제 백성들의 생활도 훨씬 나아졌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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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4년에 총리에 다시 집권한 아서 웰즐리는 2년 동안 동방 정책을 추진하며 정기 보고를 들었다. 매년 2회 올라오는 보고서를 기반으로 한 정기 보고가 시작되었는데 엉뚱하게도 영국 내부의 보고가 시작되었다.
“최근 들어 이스트엔드와 맨체스터를 비롯한 노동자 밀집지역에 프랑스 계열 인사들이 드나드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들은 노동자와 면담을 하며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있습니다.”
“프랑스 놈들이 이스트엔드와 맨체스터에 드나든다고? 안 좋은 일이 떠오르는군.”
아서 웰즐리는 6년 전에 벌어진 스윙 폭동을 떠올렸다. 1830년 당시 영국 농민들은 나날이 줄어가는 수익과 늘어나는 세금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이들은 굶어 죽지 않기 위해 시위를 벌였고 탈곡기를 부수는 것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여 나름 온건한 시위를 하였다. 그러나 당시 총리는 현 총리인 아서 웰즐리였다.
아서 웰즐리는 이를 ‘프랑스에서 파견한 선동가’로 인하여 발생한 범죄 행위로 규정하였고 철저히 탄압하였다. 내각에서는 웰즐리의 성향을 감안해 신중한 의견을 내놓았다.
“지금이라도 사람을 파견해 사태를 파악하고 빈민 구제법을 수정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어느 정도 타협을 보아야 숨통이 트이는 법이 아니겠습니까?”
“개선된 빈민 구제법은 아무 문제도 없네. 빈민구제는 개인의 선택을 훼손하는 행위이니 지원은 필요 없지. 빈곤층 남녀를 분리하는 것은 지나친 출산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이야.”
예전 일을 떠올린 웰즐리는 짜증을 숨기지 않으며 말했다. 자신은 올바른 일을 하였으나 몇몇 선동가의 행동으로 총리 자리에서 물러났다 생각하고 있었으니 이번만큼은 같은 일을 겪지 않기 위해 명령을 내렸다.
“당시에 윌리엄 코벳(저널리스트, 스윙 폭동을 옹호하였다)이 사람들을 현혹시켜서 내가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나. 혹시나 폭동이 발발할 때에는 시작부터 싹을 밟아 없애야지.”
“시작부터 싹을 밟아버리겠다는 말씀은······.”
“시위대는 성 피터 광장에서 했던 것처럼 기병대를 동원해 뭉개버리게. 또한 윌리엄 코벳처럼 어설프게 폭도들을 옹호하는 인물을 조사하여 보고를 올리도록. 이미 조사는 했겠지?”
다른 총리라면 위협을 하겠지만 아서 웰즐리는 정말 한다면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1819년 맨체스터에서 일어난 차티스트 운동에 나선 노동자들을 기병대를 동원해 짓뭉개 버렸다.
당시의 잔혹함이 워털루 전투와 흡사하다 하여 피털루 학살(Peterloo Massacre)이라 회자되었으나 웰즐리는 자신의 행동에 후회가 없었다. 내각 의원들은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 먼저 보고를 올렸다.
“일단 프랑스의 인사들과 접촉하는 의원 몇 명의 명단을 확인하였습니다. 휘그당(자유당의 전신) 출신 의원들이 대다수인데 특이한 인물이 있더군요.”
“특이한 인물이라?”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입니다. 얼마 전에 의회 연설로 동방 정책에 대한 재고와 무분별한 착취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던 젊은 의원이지요.”
후일 영국의 총리에 등극하며 자유주의와 도덕정치의 표상(表象)이나 다름없는 위인이 된 글래드스턴은 아직 애송이 의원에 불과하였다. 얼마 전의 의회 연설을 떠올린 웰즐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말재주만 좋은 애송이 말이로군. 윌리엄 코벳은 작년에 죽었고 늙은이들과 애송이 의원이라면 큰 문제는 아니지. 항쟁이 벌어지면 즉각 무력으로 진압하도록. 그럼 조선 문제로 넘어가도록 하지.”
조선에 대한 자료를 집대성한 파머스턴 자작, 존 헨리 템플이 일어서서 보고를 시작하였다. 이미 동인도회사를 통해 조선의 자료를 수집하였으니 내부 사정을 대부분 알고 있었다.
“일단 총리께서 예상하신 바와 달리 지난 3년 동안 조선은 내실을 다지고 기본적인 국가 역량을 늘리고 있습니다. 기초 산업인 농업 생산량을 중심으로 정책을 취하였지요.”
“청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벌일 생각인데 여유도 넘치는군.”
“그렇다고 군사에 손을 놓은 것은 아닙니다. 이미 일개 사단이 편성되었고 삼 년 이내에 일곱 개 사단, 총 병력 5만 명을 확보할 예정이라 하였습니다.”
나쁜 일은 아니었다. 영국의 계획은 조선과 청나라의 전쟁을 팽팽하게 끌고 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막대한 차관을 조선에 짊어지워 속국으로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군사력 증강에만 몰두하여 기초가 무너진 조선을 집어삼키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다. 내실이 온전한 조선을 집어삼키고 통치비용과 차관을 뜯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미 조선에서 받아들인 차관은 300만 파운드에 달하였고 전쟁이 3년 정도만 이어져도 이 차관은 1,000만 파운드를 돌파할 것이라 계산하였다. 파머스턴은 추가 보고를 올렸다.
“얼마 전 조선 왕이 보낸 서신에 의하면 청나라와 조선이 요동이라는 지역에서 공방전을 벌이면 저희 해군이 남부를 타격할 것이라는 밀약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효명세자와 맺은 밀약에 의하면 청나라의 주력을 조선 육군이 담당하는 동안 영국 해군과 상륙부대가 후방을 기습하기로 하였다.
당시의 효명세자는 영국을 속이기 위해 영국 문물에 흠뻑 취하여 머리를 깎고 양복을 입으며 자신을 위장하였다. 마치 영국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웰즐리는 너무나 순수하게 자신을 믿은 효명세자의 기대를 무너트리게 되어 미안한 감정이 들었지만 국익이 우선이었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 양심을 찾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였다.
“문서로 남기지도 않고 구두로 약속을 한 것에 불과하지 않나. 조선이 올바른 명분으로 전쟁을 벌이면 지원은 하겠지만 상황에 따라 지원이 변할 수도 있지. 양심보다는 실리가 우선 아닌가.”
웰즐리는 전쟁 초반까지는 조선을 제대로 지원할 생각이었다. 동인도회사를 통해 유황과 염초 등의 전쟁 필수물자와 각종 병기를 원가에 가까운 가격으로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이후 여러 변명을 하고 덤터기를 씌워 가격을 3배 정도로 부풀릴 계획이었다. 이미 청나라와의 전면전에 돌입한 조선은 자신들의 무기와 지원물품을 구매해야 하리라.
개전 직후 눈덩이처럼 불어날 차관으로 국권을 침탈당할 조선이 눈 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웰즐리는 내무부 장관인 존 러셀에게 명령을 내렸다.
“조선에게 지원할 차관 칠백 만 파운드를 미리 배정해놓게. 그 정도 차관을 먹이면 늘어나는 이자로 인해 국권을 양도할 것이 분명해.”
“여유자금이 부족하여 배정할 수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찰스 그레이 총리가 노예해방 법을 제정하고 보상금으로 천만 파운드를 쓰며 여유자금을 모조리 털어내 버리지 않았습니까?”
“어차피 조선과의 전쟁이 벌어지면 형식상의 차관을 임대하고 무기를 판매해 되돌려 받을 수 있어. 여유 자금이야 세금을 좀 올려서 미리 준비하도록 하게.”
아서 웰즐리는 영국의 국력이 동방에 닿는 것을 상상하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조선을 속국으로 만들고 지속적인 무력 압박을 실시하면 청나라도 언젠가는 영국에 굴복하리라.
러시아 제국의 견제도 고려 대상이었다. 영국의 속국이 된 조선이 가로막고 있으면 더 이상의 확장을 하지 못 하고 쇠락하리라. 잠시 생각한 웰즐리는 최악의 사태를 고려해 말하였다.
“만에 하나라도 청나라를 상대로 조선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다면 호랑이 한 마리를 길거리에 풀어놓는 셈이로군. 군인도 장정도 없는 동아시아라는 길거리에 말이야.”
“그런 일이 벌어지기야 하겠습니까? 차라리 오스만 제국과 싸우는 것이 조선에게 희망이 있을 겁니다. 인구가 삼억 명이 넘는 대제국과 싸우면 저희도 힘에 부칠 겁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기에 이 최악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이러한 영국 내각의 기대와 달리 사태는 영국에게 최악의 방향으로 흘러갔다.
조선은 이미 청나라와 일전을 벌여 승리를 거둘 힘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다른 세력이 런던 외곽에서 자라나고 있었다. 이스트엔드의 비어버린 구빈원에서 프랑스의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 연설을 시작하였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자유라는 외면 아래에 태어난 방치가 아니며 국가의 보살핌과 인간다운 삶입니다. 이미 머나먼 동방에서는 사람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루 일곱 시간의 노동! 교대제도! 그리고 귀족 부인들이 주도하는 환경 개선! 이 모든 것이 얼마 전 개혁을 실시한 국가인 조선에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권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은 공격적인 사상이 아닌 인도주의를 기반으로 자성을 추구하는 사상가들이었다. 이들은 유산계급의 자성을 촉구하며 비교적 온건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러한 온건한 목소리는 처음에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였지만 점차 피폐해가는 노동자들의 삶을 파고들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구호를 외쳤다.
“숨만 쉬어도 폐가 썩어버리는 공장에 환기구를!”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정상적인 노동시간을!”
“우리들이 먹을 수 있는 빵을! 내일을 생각할 수 있는 양식을!”
구석에서 이를 지켜보는 신사가 있었으니 윌리엄 이워트 글래드스턴이었다. 조선에서 들어온 홍삼으로 아편중독에 빠진 여동생을 치료한 그는 조선이라는 단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찰스 디킨스를 만나 조선의 영향을 받은 사상가들과 접촉하였으며 마침내 공상적 사회주의자와 접촉하였다. 새로운 사상은 젊은 의원인 그를 점차 물들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