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52화 (52/345)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 52편

(5장 - 개혁 (3))

김좌근이 거의 정신이 나갈 무렵 일준이는 전신기에 사용될 전선을 만들고 있었다. 녀석은 프랑스 사람들이 보내온 수액을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있었다.

“이 녀석을 지금 발견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가황고무가 나오기 전에 시장을 열어버릴 물건이 내 눈 앞에 있다니.”

“이 수액이 뭔데 그렇게 중요하게 여기냐? 가만히 보면 고무와 비슷한 물건인데?”

“이 구타페르카(gutta-percha) 수액을 능가하는 성질을 지닌 화합물은 현대에도 존재하지 않아. 고무와 비슷한 수준이 아니고 현대 합성수지도 일부 성질만 더 뛰어난 정도다.”

일준이는 가열해 녹인 수액을 면직물에 꼼꼼히 바르고 구리 전선에 철저하게 감싼 다음 다시 수액을 덧씌웠다. 그리고는 구타페르카라는 수액에 대해 설명하였다.

“가황고무를 능가하는 탄력과 절연 및 방수성능을 지닌 최고의 물질이지. 현대에는 신경치료가 끝난 치아의 빈 신경을 메우는데 사용해. 다른 물질은 세균이 침입하니 대체품도 없고.”

“이렇게 좋은 물건이 고작 신경치료가 끝난 치아를 메우는 용도로만 쓰인다고?”

“전기가 막 태동할 무렵에 발견되어 멸종 직전까지 몰렸으니까. 지금 내가 받은 물량을 대충 계산해도 나무 수천그루에서 뽑아낸 양일걸? 결국 가황고무가 이 자리를 대체했지.”

일준이는 대서양 해저 케이블을 만드는데도 수천만 그루의 나무가 소모되었을 것이라 하였으니 그 수요를 알 수 있었다. 녀석은 전선 시험을 끝내더니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상소를 올리러 온 사람들을 상대하려고 창덕궁과 창경궁을 연결한 전신을 시연하려 했는데 더 좋은 수단이 있어. 한강 사이에 방수 전선을 설치하고 이를 통해 소식을 주고받으면 어떨까?”

아주 좋은 생각이었다. 지금은 음력 7월이라 장마가 끝났지만 이 시기부터 올라오는 태풍으로 범람하는 한강은 간혹 부교를 설치하기 힘들 정도로 물이 불어난다.

이 사이에 전신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어지간한 강 사이에 전선을 보내는 기술력을 증명하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허락해야 하는 일이니 고개를 끄덕이고 답했다.

“가능하다면 해 봐. 그나저나 네 체격이 많이 홀쭉해진 것 같은데 견딜 수는 있냐?”

“네 가지 일을 동시에 처리하니 그렇지. 새로운 화합물, 새로운 공정 도입계획 추진, 발전기를 비롯한 전기 개발 그리고 집으로 돌아간 뒤의 일인데 마지막이 가장 힘들다.”

옆방에서 조수들과 함께 수입한 계산기를 분해해 복제하고 있을 에이다를 떠올린 일준이는 한숨을 내쉬고 다시 작업에 몰두하였다. 나야 평온하게 법도에 맞게 하지만 일준이의 생활은 상상하기가 힘들었다.

이후 한 달이 지나고 한가위가 코앞으로 다가올 무렵 마침내 상소를 올리는 사람들이 도착하였다. 새로운 조세제도로 인하여 피해를 입는 서원과 향교의 거물들이 한양까지 올라온 것이다.

사실 피해도 아니고 자기들이 부당하게 챙기던 이득을 몰수당한 상황이지만 이들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나와 함께 철도 개설에 필요한 토지 보상에 대해 논하던 이점바드 브루넬은 상소를 듣더니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리고 말했다.

“조선의 말을 배워서 대충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만 우스운 일이로군요. 출근하면서 보았는데 저들이 몸에 두른 옷은 대영제국의 공장에서 만든 질 좋은 옷감이 아닙니까?”

“누가 아니라 하겠습니까. 스스로의 주장과 일치하지 않는 행동을 보이는 자들입니다.”

상소는 예전의 지부상소처럼 받아들여졌지만 한 번 당한 사람들이라 전처럼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이들은 서역과의 교역은 물론이고 각종 고문들도 돌려보내라 하였다.

- 서역의 기물은 사람의 마음을 현혹시키고 불순하게 만드는 법이오니 단속하시옵소서.

- 은자로 일천만 냥이 넘는 차관을 들였으니 만백성을 배불리 먹일 수 있을 것이옵니다!

나와 함께 토지 보상에 대해 논의하던 효명세자는 심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당장 기군망상을 적용하여 모조리 의금부에 하옥시킬까 진지하게 고민하더니 오히려 웃음을 터트렸다.

서양의 문물을 몸에 두르고 백성을 쥐어짜던 이들이 당당하게 말하니 오히려 체포하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결국 순조가 이들을 궁궐로 받아들이고 차근차근 설득하였다.

“서역의 문물 가운데 널리 쓰일 수 있는 물건을 몇 가지 마련해 보았다. 이 물건들이 정녕 쓸모가 없다면 상소를 일부 받아들일 것이니 함께 한강변으로 나서도록 하자꾸나.”

어떠한 문물이라 하여도 철저히 외면하고 쓸모가 없다고 말하려는 생각이 분명하니 당연히 호응하였다. 전신을 설치한 한강 백사장으로 나아가자 순조가 설명을 시작하였다.

“얼마 전 성균관 휘하 기관인 그랑재골의 학자들이 만든 물건이다. 이를 전신이라 하는데 먼 곳에서 서로 필담을 나눌 수 있는 기물이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기물입니다. 시계와 흡사한데 어찌 이런 모습인지······.”

처음 공개된 전신기는 쟁반에 바늘이 하나 있어서 시계와 흡사한 모습이었다. 여기에는 시간을 나타내는 숫자 대신 훈민정음의 28 낱자와 4개의 한자가 기록되어 있었다.

12시 자리에는 보(報 - 알릴 보)가, 6시 자리에는 답(答 - 대답할 답)이 그리고 3시와 6시에는 각기 불(不)과 재(再)라는 한자가 있었다. 나도 시제품을 본 것은 처음이라 일준이에게 질문을 하였다.

“모스부호를 사용하지 않고 원시적 방법을 쓴 것 같은데?”

“본래 전신을 시작할 때 먹지를 이용한 원시적인 프린터도 연결해두고 아예 모스부호를 적용할까 했는데 너무 작위적인 물건이 될 것 같아서 개발 방향을 선회했어.”

전신기라는 개념도 역사에 남을 발명인데 모스부호와 최적화된 인쇄기까지 도입하는 것은 어색한 구석이 있기는 했다.

일준이의 설명에 의하면 그랑제콜 기술자들과 최초로 발명한 전신기는 전선이 54줄이라 하였다. 알파벳 글자 26개를 보내는 전선에 접지용 선 두 가닥을 추가했다더라.

너무 비효율적이라 이진수 개념을 도입하여 한 차례 개선했다 하던가. 훈민정음의 28글자와 신호를 주고받는 과정을 위한 4개의 한자를 도입하고 선을 10개로 줄인 것이 일준이가 개발한 전신기였다.

효명세자는 기계를 확인하다 전선을 만졌다. 표면에 구타페르카 수액으로 코팅한 전선을 본 효명세자는 흡족한 표정으로 일준이와 기술자들에게 질문을 하였다.

“얼마 전에는 창덕궁의 양면을 연결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제는 한강을 건너 전신을 연결하였구나. 시험은 해 보았느냐.”

“시험은 마쳤으며 이미 이천리가 넘는 전선을 만들 준비가 끝났사옵니다.”

“그러하면 정말 강을 넘어서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을지 확인해 보아야겠구나. 소자는 남쪽 포구로 나아가 아바마마의 옥음(玉音)을 기다리겠사옵니다.”

각 서원에서 올라온 대표들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를 못 하였지만 효명세자가 배를 타고 한강 남쪽으로 향하였다. 효명세자가 도착하였다는 답이 전해지자 순조는 전신기 앞에서 버튼을 조작하기 시작하였다.

“전신이라는 물건은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장소에서 서로 담화(談話)를 주고받을 수 있는 물건이다. 우선 내가 세자에게 말을 보내볼 것이니 지켜보도록 하라.”

“신은 도무지 영문을 알 길이 없사옵니다. 한강을 사이에 두면 고함을 쳐도 말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을 것인데 이를 어떻게 하려는지 모를 일이옵니다.”

“두고 보면 알 것이다. 우선 대화를 논할 수 있게 신호를 여러 번 보내야겠지.”

보라는 한자가 기록된 버튼을 몇 번 누른 순조는 효명세자의 답을 기다렸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전선에서 신호가 전해져 3시에 멈춰있던 바늘이 6시로 여러 차례 움직였다.

“내가 대화를 논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니 세자가 이를 받아들였다는 신호를 보냈구나.”

“도무지 믿기지가 않사옵니다. 정말 세자저하께서 이 먼 거리에서 바늘을 움직이셨다는 말이옵니까?”

“이 기물이 멋대로 움직였는지 혹은 귀신이 깃든 물건인지 심히 염려되옵니다.”

“귀신이 아닌 전신이니 그리 걱정하지 말도록 하라. 혹여나 정해둔 대로 움직이게 하였을지도 모르니 세자에게 전할 말을 직접 논하면 어떻겠는가.”

순조의 말에 대표가 나서서 두보의 시 가운데 하나인 춘망(春望)의 시구를 말하였다. 순조는 버튼을 꾹꾹 눌러가며 천천히 입력하고 잠시 뒤 효명세자의 답이 전해졌다.

“바늘이 열두시로 움직였으니 받아 적을 준비를 해야겠구나. ㅅ······. 산다는 건 커다란 꿈과 같더니. 역시 세자로구나! 두보의 시에는 이백의 시로 화답을 하는 것이 좋은 일이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이옵나이다. 다음 시구! 다음 시구도 논하게 해주시옵소서!”

유생들은 넋이 나간 듯이 강 건너를 바라보았다. 모스 부호 전신기라면 신호를 멋대로 해석할 수 있다고 곡해할지도 모르지만 이 전신기는 원시적인 녀석이었다.

바늘이 가리키는 글자를 받아 적으면 글이 완성되니 오히려 이해하기 쉬운 물건이다. 한참의 대화가 끝나고 효명세자가 돌아가겠다는 말을 전하더니 잠시 뒤 강을 넘어 돌아왔다.

“아바마마와의 대화를 강을 건너서 논하니 더욱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사옵니다.”

“나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구나. 앞으로 전신이라는 물건을 요긴하게 쓸 수 있으니 전국의 역참(驛站)과 각 군현으로 퍼트리는 것이 마땅할 것 같구나.”

“주상전하께 아뢰옵나이다. 전신이라는 물건은 잡기에 불과한 물건이옵니다. 이미 역참이 있으니 재물을 아끼시고 백성들의 궁핍함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일단 조정의 정책에 반대부터 하려고 올라온 사람들이니 온갖 변명을 하였다. 이미 도량형 개선으로 부패의 소지를 줄였는데 전신이 완성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불 보듯 뻔했다.

암행어사를 파견할 필요도 없이 조정의 소식이 순식간에 한양까지 올라올 것이요 뭔가를 해 보기도 전에 대처에 무너지리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순조에게는 명분이 있었다.

“구리가 많이 들어가고 관원을 더 배정해야 하며 대화를 논하는 것이 느려 기존의 파발과 다를 것이 없다는 말이로구나. 임진년이나 병자년에 이 기물이 있다면 어떻게 되었겠느냐.”

임진년은 임진왜란이고 병자년은 병자호란이다. 유생들이 멈칫하자 순조는 전신기의 버튼을 몇 번 눌러 아주 간단한 단어를 입력하였다.

“동래 적습 십만, 의주 적습 오만이라는 여섯 글자가 몇 시진 이내에 도성에 당도하였다면 선조대왕께서 의주로 피난하시고 인조대왕께서 변고를 겪을 일이 없었을 것이다.”

“하오나 지금의 청나라는 상국으로서 이 나라를 보살피고 있사옵니다.”

“보살핀다 하였느냐? 그저 홍삼의 밀매가 줄어들었다고 병자년의 참화를 내 앞에서 논하였다. 십만 대군이 아무 전조도 없이 의주를 통하여 침습할지 누가 아는 일이더냐.”

이미 소문을 알고 있는 조정 신료는 물론이요 유생들까지 순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조공관계가 기본인 동양 외교를 기준으로 삼아도 청나라의 저 발언은 도를 넘어선 짓이다.

사실 청나라 자체가 외교력이 형편없는 나라이다. 아무리 오랑캐를 상대로 외교를 하여도 송나라나 명나라는 어느 정도 서로의 위신을 차리고 합의를 보는 외교를 택하였다.

반면 청나라는 일방적인 불평등 외교만 강요하는 형편이다. 그나마 조선을 어느 정도 배려하는 척을 하였는데 이마저도 아편으로 나라가 부패해버리며 없는 일이 되었다. 당연히 유생들은 고개를 숙여 말하였다.

“상국인 청에게 거스르면 아니 되는 법이옵나이다. 부디 나라의 일을 평안히 하시며 번국의 모범이 되어 이 나라의 습속을 온전히 건사하여 충심을 보여주시옵소서.”

“나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고 세자도 그러한 마음이 있었으나 자네들을 보니 불가한 일인 것 같군. 청은 오랑캐와 거래를 하는 일을 금하니 가장 먼저 금해야 할 사람이 여기 있구나.”

유생들이 입은 영국산 비단으로 만든 옷을 가리킨 순조는 한숨을 쉬었다. 자신들의 말이 애초에 스스로를 체포하라는 말임을 깨달은 이들은 엎드려 절을 하며 아무 말도 하지 못 하였다.

심지어 부호조차 아닌 평범한 양반가에서 서역의 시계와 거울을 사들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으니 자신들이 원흉인 것이다. 순조는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명분을 가진 청나라가 마음대로 이 나라를 침략하여 예전 일로 되돌린다며 행패를 부릴 것이 자명하지 않더냐. 이미 전화(戰火)의 싹은 움트고 있으니 나는 그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병졸을 조련할 뿐이다.”

더 이상의 이견은 없었다. 이미 서양 문물의 혜택을 입은 양반계층 모두가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지 않는 한 청나라와의 전쟁은 정해진 일이다.

조금이라도 조선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면 개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실히 체감했으리라. 순조는 납작 엎드린 이들을 일으켜 세우면서 말하였다.

“조만간 조세를 개편할 것이나 내 자네들의 충심을 익히 알고 있다. 절대 손해는 없을 것이니 염려하지 말고 새로운 제도에 적극 동참하도록 하여라.”

내년부터 새로운 조세제도를 도입하고 내후년부터 본격적인 생산량 증대가 시작될 시기였다.

이를 통해 더 많은 군대를 양성할 수 있겠지만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전열보병, 기병 그리고 포병의 양성 과정에서 예상대로의 문제가 벌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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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개혁에서 순조가 담당하는 부분은 인사권과 사법권 그리고 군권이었다. 영국과 프랑스에서 파견된 각 군사 고문들은 순조에게 훈련 방침을 질문하였고 순조는 별다른 생각 없이 간단하게 답했다.

[평범한 병졸이라면 충분한 일이 아닌가. 예산은 마음대로 줄 것이니 맹렬히 조련해보게.]

무한한 자유를 주는 것 같았지만 진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났다. 훈련도감과 어영청 양 군의 병사들을 받아들인 세 지휘관들은 조선군의 수준을 알고 심각하게 고뇌하였다.

“최소한 라이플 엽병은 무기 훈련만 시켜도 충분해서 좋은 일인데 전열보병 육성이 문제로군.”

선발된 병사들의 훈련을 마친 로널드 하트만이 막사로 돌아와 한숨을 내쉬었다. 조선군 보병의 수준을 따지자면 자신이 전쟁을 치른 미얀마와 비슷하였다.

자신들의 땅에서 지형지물을 이용한 수비와 기습작전에는 부족함이 없었지만 결국 평지에서 전열보병을 구성하려면 밑바닥부터 다시 가르쳐야 하리라.

그나마 화약 사용이 자유로우니 제식훈련이 끝나면 바로 사격훈련으로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런 로널드의 앞에 마르몽이 다가와 찻잔을 건네며 말하였다.

“고민이 많은 것 같군. 병기가 너무 구식이고 대규모 교전 경험도 없지?”

“마르몽 대령님도 같은 생각을 하셨군요. 조선군은 전문 분야인 수비에서는 제법 효과적이지만 무기를 갈아치우고 공격에 대해서도 가르쳐야 할 것 같습니다. 맞서 싸울 수 있는 군대야말로 제대로 된 군대지요.”

“나도 같은 생각일세. 제대로 된 화포로 일 년 정도 교육을 시키면 자기 앞가림은 할 수 있을 것 같군. 사실 우리야 화약을 사용해서 다행이지 가장 큰 문제는 그루시라네.”

홍차 대신 녹차에 맛을 들인 둘은 한 잔씩 차를 마시고 지금도 훈련에 매진하고 있을 그루시를 떠올렸다. 조선의 기병과 만난 날부터 정신이 나간 그루시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 개놈의 새끼들! 네놈이 정말 조선 왕의 휘하에 있는 군대란 말이냐! 다 비루먹은 망아지에 올라 뱃살을 출렁거리는 잡놈들이라니! 이 똥자루 같은 놈들!”

조선이 가장 취약한 분야가 기병이었으며 의장대(儀仗隊) 역할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런 군대를 만난 그루시는 일흔이 다 된 나이에도 목청을 높여가며 가혹한 훈련을 하였다.

“단 한 번이라도 이길 생각을 하란 말이다! 네놈들을 상대하는 자들은 유목민족 출신인 청나라이다! 이들이 단 삼백 명만 들이쳐도 모조리 몰살당할 수준이 아니냐!”

“제발 말에 오르게 해주십시오! 영감님! 제발 좀 부탁드립니다!”

“닥쳐! 네놈들이 말발굽 자리에 고인 진흙을 감로처럼 쪽쪽 빨아 마실 때 까지 훈련을 이어가겠다! 네놈들 같은 기병을 이 세상에서 본 적이 없으니 이제 구더기라 부르겠다!”

기병에게 가장 중요한 기초체력부터 철저하게 훈련시키니 이들은 하루가 지날수록 변모하였다. 눈에는 독기가 서리고 입에서는 욕설이 튀어나왔다. 물론 그루시의 기준점에는 한 없이 부족하였다.

그들의 엉덩이에 쉴 새 없이 그루시의 군홧발이 내리 찍혔지만 아직 부족하였다. 그루시는 조선의 말을 보더니 한숨을 내쉬고 새로운 말을 주문할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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