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 49편
(5장 - 귀국(2))
로널드 하트만의 웃음소리를 들은 오귀스트 마르몽은 그를 노려보았다. 반면 로널드 하트만은 웃음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끅끅 소리를 내고 말하였다.
“제가 세상을 오십 년도 살지 못 했지만 앞으로 백년을 더 살아도 볼 수 없는 광경이 아니겠습니까. 워털루 전투에서 보지 못 한 두 사람을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요.”
“이 애송이가! 네놈 따위는 내 아래에 있던 수백 명의 소위 중 한 명보다도 못해!”
“이 말을 하신 분은 어디 계십니까? 그루시는 어디에 있지? 누가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그루시가 당장 칼을 뽑고 달려들려 하였지만 마르몽이 제지하였다. 처음에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는 줄 알았는데 서로 아는 사이답게 엿을 먹이고 있었다.
“프로이센군 뒤꽁무니를 쫓아 어디론가 사라진 자네가 왜 화를 내나? 상대가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당연한 말을 했으니 화 내지 말게.”
“이 배신자가! 네놈이 제정신이냐!”
효명세자는 로널드 하트만을 내버려 둔 채 아예 멱살을 잡고 주먹을 날리며 갑판 위를 뒹구는 두 노인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나를 보면서 조용히 제안을 하였다.
“둘이 너무 늙어서 쓸 수 없다고 돌려보내고 중령을 지휘관으로 삼지 않겠나.”
“적어도 경험과 연륜이 출중한 사람이니 돌려보낼 수는 없습니다. 더군다나 늙은 몸이지만 싸우는 꼴을 보니 기력이 출중한 것 같군요.”
여섯 명이 달려들어 이들의 싸움을 가까스로 뜯어말렸고 이들을 통제하기 위해 효명세자가 엄중히 경고하였다.
“한 번만 더 서로가 싸움을 벌이면 일이 어떻게 되던 간에 불란서로 자네들을 복귀시킬 것이네. 조선에 파견될 사람이면 내 명령을 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무슨 일이 있더라도 명을 완수하겠습니다!”
“그럼 그루시에게 내릴 명이 있네. 어디론가 사라지지 말게나.”
그루시는 효명세자의 말을 듣고 격렬히 분노하려 하였지만 이미 저지른 전과가 있어 아무 할 말이 없었다. 잠시 숨을 고른 이들은 당당하게 프랑스의 지원 상세에 대해 논하였다.
“저희 프랑스는 철저한 호위를 원하여 육십 문의 화포와 이후 사십 문의 화포를 추가 지원할 예정입니다. 최신 화포인 발리(Valée) 체계에 의해 운송이 편한 중대형 화포 위주입니다.”
“또한 넉넉한 기병을 동원하기 위하여 이천 필의 준마를 준비하였습니다. 거세하지 않은 종마는 물론이요 추후 증편을 위하여 말의 관리를 위한 사람을 파견하였습니다.”
“훌륭하군. 학자들과 기술자들의 호위는 중요한 법이니 조선에서도 사람을 보태 줘야겠군.”
명목상으로는 호위이지만 실제로는 군사 고문단으로 일하겠다는 소리이다. 영국 정부도 이를 예상하고 있었지만 정작 로널드 하트만은 아직도 웃음을 참고 있었다.
아마 이들이 거둘 성과 대신 시신을 담은 관이 언제쯤 프랑스로 배송될지에 관심을 가질 것 같았다. 서로 해후를 거두는 동안 에이다가 다가와 질문을 하였다.
“오랜 간만이에요 한센! 닐슨 덕분에 그랑제콜 분원의 부교수로 임명되었어요. 정교수로 갈루아를 임명하니 제 문제가 완전히 덮어져 버리지 뭐에요?”
“마침 잘 된 일이로군요. 그나저나 결혼 준비는 잘 하셨습니까?”
“물론이지요. 듣자하니 한센도 미리 약혼을 하고 떠나온 사람이었는데 편지는 많이 주고받았나요? 이 년을 넘게 기다리다니 참 대단한 결단이 아닐 수 없네요.”
그러고 보니 나도 결혼이 예정되어 있었다. 김조순의 손녀이자 지금 열심히 조정에서 활동하고 있을 김유근의 셋째 딸이다.
만난 것은 사절단이 출발하기 직전 잠시에 불과하고 이후 한 달마다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사랑이 싹틀지는 모르겠다. 나는 에이다에게 억지로 웃으며 말하였다.
“결단이라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럼 에이다는 어째서 사랑에 눈을 떴습니까?”
“그야 닐슨의 헌신 덕분에 사랑을 한 거지요! 그렇게 헌신적이고 애정이 넘치고 제 모든 것을 염려하는 사람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요? 그럼 당신의 사랑은 어디에 있나요?”
“만······.”
만주와 요동을 비롯한 한민족의 강역이라고 답하려 했지만 에이다는 물론 효명세자도 나를 미치광이로 볼 것 같았다. 일단 ‘만’이라는 발음을 하였으니 대충 얼버무렸다.
“제가 무심코 조선의 말로 답할 뻔 했군요. 만족, 영어로는 satisfaction이 가장 중요한 것이지요. 서로 부족한 것은 채워야 하지 않습니까.”
“옳은 말이에요! 그럼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좋은 부부가 되기를 기원할게요!”
배는 천천히 나아가 양력으로 1834년 2월 2일 경 조선에 도착하였다. 음력 정월 초하루를 코앞에 둔 날이라 최소한의 필요 인력이 먼저 도성을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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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백관들은 물론이요 사절단에 포함된 유생들의 가족까지 한양에 모여서 북새통이 따로 없었다. 이미 새로운 문물에 대한 관심은 조선 전체를 뒤흔들고 있었다.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이 값이 내려간 설탕과 깔끔한 공장제 면직물과 모직물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양반들도 가벼운 서양의 안경을 쓰고 대열을 바라보았다.
다만 인원이 너무 부족한 것처럼 보였다. 우리를 안내하는 김유근은 나를 바라보며 염려하듯이 말하였다.
“서양에서 지원을 올 것이라 하였는데 그 많은 홍삼을 사들이고 삼백 명의 사람을 보냈는데 고작 아흔 명이 온 것이 전부라니. 이는 너무 실망스러운 일 같군.”
“필요한 사람만 급하게 데려온 것이고 총 인원은 일천오백 명이 넘습니다.”
“일천 오백······. 명이라 하였는가? 정신이 나갈 것 같군.”
창덕궁으로 향하며 대화를 나누었는데 순조의 계략으로 청나라는 몇 년 동안 조선에 대한 관심을 끊을 지경이라 하였다. 심지어 조선에서 보낸 사신들도 격리 수용 당한다 하였다.
청나라의 개입이 없으면 일이 잘 돌아가는 신호이다. 마침내 창덕궁에 도착하고 만남이 시작되었다. 효명세자는 앞으로 나아가 절을 올리며 순조에게 인사를 올렸다.
“아바마마께서 소자를 영길리로 보내시니 그 은혜에 감읍하여 이를 데 없사옵니다. 소자 이 년 동안 문물을 알아보았으나 배움이 부족하여 많은 것을 알아보지 못하였나이다.”
2년 4개월 만에 조선으로 돌아온 효명세자를 시작으로 우리 모두가 절을 올렸다. 순조는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는지 훌쩍거리며 눈물을 참고 이 절을 받아들이고 말했다.
“말만 들어도 영길리의 강성함을 알 수 있을 것 같구나. 궁금한 것이 있으니 내 상투를 자르고 두발을 보냈음을 알고 있다. 이제는 다시 상투를 튼 이유가 무엇이더냐.”
“조선으로 돌아왔으니 더 이상 영길리의 권세가들의 눈을 만족시킬 이유가 없었사옵니다. 하오니 다시 두발을 기르고 이전의 습속을 따를 것이옵니다.”
돌아오는 동안 머리가 자라나서 청나라 광주에 도착할 때 쯤 모두가 다시 상투를 틀었다. 모두 망건과 갓을 버리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서역의 사람들이 만족하건 말건 우리는 조선 사람이니 예전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 당연했다. 반면 순조는 효명세자를 살펴보더니 염려하는 눈초리로 말하였다.
“네가 보기에는 상투를 틀고 머리는 기르는 것이 옳더냐 아니면 서역과 같이 짧은 머리를 택하는 것이 옳더냐.”
“이 나라의 풍습과 예의에 어긋나지 않으려면 상투를 올려야 하옵니다. 다만 짧은 머리는 비누로 씻기 편하고 관리하기 편하게 되오니 장단이 있사옵니다.”
“그러하면 좋은 일이로구나. 상투를 틀지 아니하고 서역의 습속을 따라도 될 일이다.”
순조에 의해 단발령이 아닌 두발 자유에 대한 명령이 내려졌다. 이는 효명세자의 행적을 감싸는 행동이자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 첫 시도였다. 신료들이 반발하였지만 순조는 이를 단번에 억눌렀다.
“신체발부수지부모라 하였다. 이와 벼룩이 상투 안에 들끓으면 부모가 물려준 피를 미물에게 빨아 먹히는 일이 아니더냐. 단발을 하면 이를 잡아낼 수 있으니 피를 아낄 수 있겠지.”
애매한 대답을 하고 양 쪽을 모두 추켜세우면 반대하는 쪽의 입장도 애매해지기 마련이다. 순조는 더 이상의 반발을 듣지 않겠다는 듯이 명령하였다.
“그러하면 새 문물과 사람을 소개하도록 하여라. 내 알기로 병졸들을 포함하여 일천오백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몇 년 동안 머물 것이라 들었다.”
“소자가 영길리에 머물며 서양의 열국에서 온갖 사람을 들여오게 되었사옵니다. 이 사람들을 하나하나 소개해 드리겠사옵니다.”
서양에서 들어온 인재는 조선의 체계에 맞게 인사권을 담당하는 이조를 제외한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그리고 공조의 다섯 부서로 분류되었다.
먼저 호조의 고문(顧問)으로 선발된 공장장 로버트 오언과 조선의 공장을 처음으로 설립하기 위한 숙련 기술공들이 인사를 올렸다. 순조는 이들의 손을 잡아보면서 평가하였다.
“서역에서는 목탄을 태워 일으키는 힘으로 수많은 문물을 양성한다 하였네. 이미 영길리의 목면이 양목(洋木)이라 불리며 고가에 팔리고 있으니 이제 이 나라에서 만들 차례이네.”
“조선의 왕께서 저희를 굽어보시니 온 힘을 다 하여 공장을 설립하겠습니다.”
다음으로는 예조판서 이지연을 따라온 각국의 대사들과 나름 중요한 쟁점인 천주교의 대표 앵베르 범 라우렌시오 주교였다. 신부의 복장을 확인한 순조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미 서신을 통해 확인하였는데 제사에 대한 문제는 해결하였다 들었지. 서학의 포교에 대해서는 앞으로 불란서가 어떠한 태도를 보여주느냐에 따라 다르니 이를 알아두어라.”
앵베르 주교에게 일방적인 선언을 한 순조는 각국 대사들의 손을 잡고 칭찬을 하였다. 내가 저술한 서적을 통해 각국을 칭찬할 거리 정도는 익혀두어서 다행이었다.
병조에 소속된 인사는 대령 세 명에 대한 소개가 전부였다. 먼저 대표인 영국의 로널드 하트만 대령이 인사를 받았다.
“조선의 군주께 저 로널드 하트만이 인사를 드립니다. 이미 조약을 통하여 전열보병을 육성하기로 하였으니 제 책임 하에 대영제국 육군의 정수를 전달해 드릴 것입니다.”
“기골이 장대하고 눈빛이 맹렬하니 훌륭한 장수가 틀림없군. 이 나라의 병졸들은 영길리처럼 평원에서 대오를 이루어 싸우는 일에 서투니 이를 엄히 조련하라.”
다음으로는 프랑스에서 건너온 마르몽과 그루시의 차례였다. 이 둘의 자기소개를 내가 번역하여 알려주자 순조는 눈썹을 파르르 떨더니 한참을 고민하였다.
이들이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지만 기병과 포병을 육성하기 위해 필요한 인재이자 영국을 견제하기 위한 보조 지휘관이었다. 결국 순조가 결론을 내렸다.
“두 명 모두 출중한 장수이며 명성을 떨쳤다 하였네. 자고로 이런 훌륭한 장수에게는 호(號)를 내려주어야 하는 법. 지필묵을 가져와 호를 정해주도록 하겠네.”
“조선의 국왕께서 저에게 친히 별명을 지어주시니 이를 서역에 널리 퍼트리겠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그저 마음속에 담아만 두면 좋은 일이니 자랑하지는 말도록.”
오귀스트 마르몽의 호는 삼국지에서 배신을 일삼은 맹달의 자(字)인 자도(子度)로, 에마뉘엘 그루시의 호는 산으로 진격하여 몰락한 마속의 자인 유상(幼常)으로 하였다.
프랑스 출신인 둘은 조선의 왕이 별명을 지어주어서 감동한 것 같지만 진실을 아는 사람은 웃음을 참아 넘기려 하리라. 다음으로 나선 사람들은 형조의 고문들이었다.
“조선의 법률은 조만간 변혁을 일으킬 것이라 하였사옵니다. 저 레이몬드 테오도르를 비롯한 법률 고문과 변호사 일동은 조선의 기존 법률을 이치에 맞게 정돈할 것이옵니다.”
“내가 알기로 불란서의 황제였던 나팔륜의 가장 큰 업적이 법률의 제정이라 하였네. 법의 구조를 뜯어고칠 수는 없더라도 형량과 판결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효명세자가 나름 머리를 굴려서 초청한 사람들이 프랑스의 법률 고문과 변호사 서른 명이었다.
조선은 민법(民法)의 부재로 각종 송사들이 넘쳐나고 판결이 뒤죽박죽인 상황이었다. 이들은 각 지방으로 흩어져 판례를 수집하고 조선의 풍습에 맞는 새로운 민법을 만들어 내리라.
마지막으로 공조 차례였는데 일준이가 대표로 나서고 교수들과 기술자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병조에 소속된 병사들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인원인 240명이나 배정되었다.
“조일준 자네가 데려온 열두 명의 사람들은 불란서의 성균관인 그낭······. 그랑재골에서 각자 교수(敎授 - 종6품 교육자)를 담당한다 하였는데 상세히 알려줄 수 있는가?”
“주상전하께 아뢰오니 이들은 성균관에 재직하는 사람들과 달리 배움을 청하는 제자를 여럿 두어 이들 중 더욱 빼어난 이들을 휘하에 두옵니다. 여기서 성과를 거두면 새로운 교수를 임명하는 방식이옵니다.”
“어찌 보면 지방의 사학(私學)과 흡사하군. 여러 제자를 두어 출중한 제자를 수제자로 만드는 사람이 여럿 모인 것이 아닌가. 성균관의 아래에 두되 후일 새로이 체제를 정립하면 더욱 좋을 일이다.”
내 설명을 들은 프랑스 교수들이 잠시 화를 냈는데 그럴 만 하였다. 머나먼 조선에서 학문을 가르치는데 정작 조선의 기존 교육기관 휘하에 속하게 된 꼴이다.
특히 갈루아가 예전 성격을 완전히 못 버리고 앞으로 나오려 하여서 이들에게 설명을 하였다.
“아직 성과도 거두지 못 하였는데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정중하게 대접해 주어야지요. 나중에 박힌 돌에 파고들어 뽑아내면 될 일입니다.”
이후 장인들의 소개를 비롯하여 로버트 리스턴을 비롯한 의사들의 소개까지 마쳤다. 마지막으로 효명세자에게 돌아온 순조는 신중한 눈으로 효명세자를 바라보며 질문을 하였다.
“세자가 서역에서 온갖 문물을 보았으니 조만간 관청을 혁파하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것이라 하였다. 며칠을 푹 쉬고 대리청정을 재개할 것인데 무엇이 필요할 것 같더구나.”
“소자는 먼저 오 년의 시일을 들여 군사와 삼정을 비롯한 조세를 혁파할 것이옵니다. 이후 다시 오 년의 시일을 들여 법률과 물산을, 다음 십 년으로 나머지를 혁파하겠사옵니다.”
“내가 보기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구나. 그러하면 이 나라에 남는 것이 무엇이 있더냐.”
“태조대왕께서 이 나라를 세우실 적에 근본으로 삼으신 덕치이옵니다. 도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은 유지하되 시대의 흐름에 부합하도록 이를 변혁할 것이옵니다.”
동도서기(東道西器)같은 기술 도입은 기술과 사상의 괴리를 일으켜 나라가 혼란스럽게 된다. 반면 변법자강(變法自疆)처럼 모조리 변화하여도 혼란이라는 결과가 도출된다.
반면 이십 년이라는 시간 동안 도덕이라는 핵심만 남긴 채 세상이 변화한다면 홀로 남은 도덕이 어떻게 되겠는가. 순조는 신중한 표정으로 효명세자에게 당부하였다.
“네가 서역의 사상이 사악하여 멀리 하되 기술은 이로운 것이니 받아들일 줄 알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 주장하면 네 말이 옳을 것 같구나.”
“소자는 아직 경험이 부족하여 많은 것을 알지 못하옵나이다.”
“아니다, 내가 장담하건데 세상 문물을 많이 알아본 너야 말로 진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당부할 것이 있는데 부디 영길리처럼 백성들을 피폐하기 만들지 말도록 하여라.”
앞으로 어떠한 변화가 있을지 상상이라도 할 수 있는 사람은 최소한 서양에 사절단으로 다녀온 사람들이리라. 순조는 신이 입수한 정보를 통해 효명세자에게 부탁을 하였다.
“모든 혁파가 끝난 뒤에 뭇 백성들이 왕후장상이 입는 의복을 몸에 두르고 항시 배부르고 궁핍하지 않은 삶을 살게 하여라. 모든 선대왕께서는 언제나 백성을 위한 정치를 꿈꾸셨다.”
“소자가 사력을 다하여 올바른 뜻을 이룩할 것이옵나이다.”
효명세자의 답을 듣고 감동한 순조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있었다. 마침내 순조가 마음을 정리하고 효명세자에게 첫 질문을 하였다.
“네가 보기에는 혁파가 어디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 같더냐?”
“삼정의 문란을 단속하기 위한 삼정이정청(三政釐整廳)과 군문의 혼란을 정비하기 위한 군무(軍務)이정청 두 기관을 설립해야 할 것이옵니다.”
효명세자의 첫 개혁이 시작되었다. 세율과 군사를 동시에 손대려 하니 영문을 모르는 관리들이지만 효명세자는 진중하게 논의를 시작하였다.
“일전에 삼정의 문란을 다스렸음에도 아직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소이다. 굶주림에 시달리다 못한 유민들이 화전민이 되었고 영조대왕께서 만드신 균역법(均役法)도 무용지물이 되었음을 모두 알고 있을 것이오.”
기존처럼 억지로 희생양을 만들어 새로운 체계를 만드는 방식이 아니다. 삼정이정청과 군무이정청은 각기 몇 년에 걸쳐 이득을 제공하며 스스로 체제를 이행하게 만들 계획이다.
아마 5년 정도가 지나면 너나할 것 없이 새로운 세법과 공법에 따라 움직이리라. 여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핵심 인력은 교수진 중 한 명인 인산 비료의 개발자 유스투스 리비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