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43화 (43/345)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 43편

(4장 - 에이다)

닷새에 걸친 박람회는 프랑스의 완벽한 승리로 막을 내렸다. 영국은 주최국의 입장에서 스페인, 포르투갈, 프로이센 그리고 러시아까지 자신들의 전시관에 들였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전체적인 입장객의 수는 3:7의 비율이 되었는데 이것도 마이클 패러데이가 힘을 쓴 덕분에 가까스로 이룩한 수치이다. 하루 온종일 마라톤 회의를 한 일준이는 지친 표정으로 돌아와서는 말했다.

“역시 영국이야. 다이너마이트가 가진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알고 삼십만 파운드에 특허권을 즉석에서 구매하더라. 아마 내후년 정도면 양산이 가능할걸?”

“고생 많았다. 그러면 조선에 배분되는 조선 발전기금의 총액은 얼마나 되지?”

“고정 기금으로 들어오는 액수가 오십이만 파운드. 여기에 아스피린을 비롯한 3개 물질에 대한 특허 비용은 고정 지출이 아니라서 나도 잘 모르겠어.”

52만 파운드면 은자 260만 냥이니 조선 정부의 2년 예산에 근접하는 수치이다. 이 돈을 그대로 가져가기도 애매하니 영국과 프랑스에서 각종 문물을 사들이는데 사용해야지.

일준이는 두통을 느껴서 관자놀이를 주무르다 아스피린을 한 알 꺼내서 삼키고는 말했다.

“생각보다 안 팔린 물건이 아스피린이었어. 개고생을 해서 페놀로 무수 아세트산을 만들고 이걸로 아스피린을 만들었는데 영국 놈들은 몇 알을 먹어보더니 다들 심드렁하더라.”

“아스피린을 굳이 안 사들였다고? 이유가 뭔데?”

“아스피린의 위험성에 대해 설명해서 그런가 봐. 출혈을 일으키는 진통제보다 혈류를 억제해서 출혈을 멎게 하는 아편이 더 쓸모 있다 하던데. 약효도 시원치 않다 하고.”

너무 무감각한 논리라서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아마 이놈의 아편 사랑을 끊으려면 아편으로 집단 사망사고가 벌어져야 하리라.

아편을 기호품으로 취급하는 프랑스에서는 아스피린과 아편을 병행하여 진통제로 사용하지만 영국은 아스피린을 거의 쓰지 않으리라. 일준이는 한참 생각하다가 말했다.

“아마 아세트아미노펜을 개발해도 평가가 그리 좋지는 못할 거야. 그러고 보니 개발은 해 놓고 아예 제시도 못 한 물건이 있는데 바로 이 녀석이다.”

“이거 빨간약 아니야? 포비돈 요오드냐?”

“그것보다 한 단계 아래인 요오드팅크야. 포비돈을 합성하려면 지금 내 실력이나 기술로는 어림도 없고 내가 늙어 죽을 때에나 시도해 볼 만 하지. 이건 프랑스에서도 안 먹히더라고.”

소독약을 왜 사용하지 않는지 고민해 보았는데 금방 답이 나왔다. 최초로 소독을 제안한 이그나스 제멜바이스도 소독 이론을 제시하였지만 병원장이 즉각 해고시켰다.

이후 정신병에 걸려 병원에 수감되고 구타를 당하다 생을 마쳤다. 이 시대에는 세균이라는 이론 자체가 통하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에 가슴을 두드리며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 실험 논문이라도 한 장 만들어야지 소독 체계를 도입시키던지 하지. 일단 조선에서는 상처 치료제로 활용하는 방법이라도 택해 보자고.”

“좋은 의견이야. 조선에서 물을 끓여 마시고 비누로 손발을 씻고 소독약까지 사용하면 영아 사망률부터 전염병 발생까지 억제할 수 있을 거야. 나중에 루이 파스퇴르를 들여와서 세균 이론이나 정립해 볼까.”

당장이라도 일준이를 앞세워 영국의 수많은 특허를 선점하고 인재를 끌어오고 싶었지만 녀석은 이틀 뒤 데이트가 예정되어 있었다.

어거스터 에이다 바이런은 예상대로 바이런의 적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멋대로 일주일 뒤 약속이 잡혔다고 신문 기사를 내었으니 여기에 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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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간의 교제(交際)라는 이 시대의 호사거리를 맞이하게 된 조일준은 담담하게 복장을 준비하였다. 양복을 새로 맞춰 입고 이발소에서 머리를 지적이고 현명한 2:8 가르마로 머리를 다듬었다.

“전에 사귀던 여자 친구는 원소기호로 유머를 하면 생명공학으로 받아쳐서 재미가 있었는데. 거짓말을 잘하는 아미노산은 라이신(Lysine)이라니 지금 생각해도 웃기네.”

연애세포가 사라지다 못해 기괴하게 뒤틀린 조일준은 전형적인 공대생의 생각으로 이번 데이트에 응하려 하였다. 그러나 할 일이 너무나도 많으니 뺨을 때리며 오이 스킨토너를 바르며 중얼거렸다.

“할 일이 태산인데 사소한 연애에 정신이 팔릴 수 없지. 처음부터 압박을 줘서 거리를 두게 한 다음 정나미가 떨어지게 만들면 단번에 끝날 일이야.”

조금 퀴퀴한 향이 느껴지는 향수까지 뿌린 조일준은 마차에 올라 에이다의 집으로 향하였다. 저택에서는 조일준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닐슨 조께서 방문하신다는 말씀을 듣고 저 드모르간이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교수님께서 저를 맞이하신다니 이거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어딘가 홀가분한 표정의 드모르간은 특유의 심한 곱슬머리를 돋보이며 조일준을 안내하였다. 마침내 만나게 된 어거스터 에이다 바이런이 인사를 올렸다.

“멋대로 약속을 잡아서 죄송해요! 하지만 일주일을 기다리는 것도 힘든 데요!”

“저도 일주일을 기다리느라 목이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그럼 정말 미적분을 할 수 있는지 서로 비교해 보시지요.”

수학 실력을 평가했지만 일이 생각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화학과 출신이어서 공식의 기본적인 이해와 적용 방법만 배운 조일준의 입장에서 이 시대의 수학은 상당히 난해하였다.

난이도는 높지 않았지만 모든 공식의 증명과 계산과정을 하나하나 풀어 써야 하니 점차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이 와중에도 에이다는 심도 높은 질문을 하였다.

“칼 프리드리히 가우스의 함수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그래프에요. 닐슨 조가 보시기엔 어떠세요? 최신 수학 이론이지만 드모르간 교수님이 가르쳐 주셨어요.”

“저야 화학을 배우면서 잠시 수학을 겉핥기식으로 익혔으니 평가까지는 할 수 없습니다.”

“겉핥기라니 겸손도 하세요! 이렇게 빨리 공식을 사용하시면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하세요?”

사소한 일에도 호들갑을 떨며 점점 더 가까이 달라붙는 에이다를 보며 조일준은 질린 표정으로 빼곡하게 적힌 답안지를 보았다. 이를 드모르간이 가져가 채점하니 그제서 인사를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에이다가 미적분의 기초를 터득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 자체가 오산이었다. 자신도 이름을 알고 있는 저명한 수학자 드모르간조차 에이다의 재능에 압도당할 수준이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밑천이 털리는 것을 넘어서서 영혼까지 수학 실력에 털릴 것이라 생각한 조일준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러자 에이다가 아편팅크를 꺼내며 말하였다.

“저도 두통이 있는데 닐슨 조도 두통이 있나 보군요? 아편팅크가 이럴 때는 가장 좋아요.”

“제가 개발한 진통제를 먹겠으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고차원적 수학으로 인한 두통을 앓은 조일준이 아스피린을 한 알 삼키고 에이다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서 낭만적인 제안을 하였다.

“저는 동물을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영애께서는 어떠한 동물이 좋으신지요?”

“말이요! 말이 달리는 것을 가장 좋아해요.”

“저 또한 말을 좋아합니다. 그러니 저와 함께 장소를 옮기시겠습니까?”

평범한 데이트라면 적당한 런던 근교로 나가 승마를 즐기며 화기애애하게 지내겠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조일준은 에이다와 거리를 두려고 데이트를 하였으니 여기서 자신의 못난 모습을 보여주려 하였다.

조일준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글러먹은 사람은 도박중독자였다. 외삼촌 중 한 명이 경마에 빠져 재산을 탕진하다 이혼까지 당한 사실을 떠올리고 마부에게 명령하였다.

“경마장으로. 가장 크고 번창한 경마장이 어디에 있지?”

당황한 마부의 표정과 경마장이라는 말을 듣고도 흥분에 가득 찬 에이다의 표정을 보며 조일준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이 태도를 보건데 마부는 흉측한 도박꾼들이 머무는 경마장을 기피하는 것이며 에이다는 멋도 모르고 흥분하고 있으리라. 여기서 도박중독자의 모습을 보여주면 에이다도 질색을 할 것이 분명했다.

런던 근교의 초원 중 하나에 경마장이 있었다. 멀리서부터 들리는 비명과 환호성에 조일준은 가급적 태연한 표정을 짓고 마차에서 내려 자신의 군자금 100파운드를 절그럭거렸다.

조일준이 내리고 에이다가 경마장에 내려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녀가 수많은 도박꾼들을 보고 겁에 질릴 것이라 예상했지만 허겁지겁 달려온 직원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바이런 남작 영애께서 오랜만에 방문하셨군요.”

“석 달은 오랜만이 아니에요. 닐슨 조가 저와 데이트를 하려고 여기에 왔으니 오늘은 조금만 걸고 적당히 할 예정이에요.”

조일준이 알기로는 평범한 도박중독자는 직원이 기피하는 대상이라 하였다. 반면 어마어마한 자금을 쏟아 붓는 말기 도박중독자만이 직원이 나와 접대를 한다고 알고 있었다.

현대처럼 커다란 건물을 만들 수 없으니 나무로 만든 임시 건물이 결승선 인근에 있었다. 얼핏 보아도 신사숙녀들이 모인 2층에 에이다가 방문하자 모두가 그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바이런 남작 영애가 오다니 오늘 배당이 올라가겠는데.”

“젊은 봉이 왔어. 더군다나 옆에 있는 사람은 닐슨 조인데 호구 잡혔나?”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감도 못 잡은 조일준은 눈을 굴리며 주변을 돌아보았고 에이다는 오늘의 경주 예정표를 보면서 자기 멋대로 계산을 시작하였다.

“골드 채리엇은 요즘 컨디션이 안 좋고, 매지션 스타는 요즘 순위 기복이 심하지. 내가 생각한 공식대로 계산하면 이번 우승은 스타 퍼플이 될 거야! 스타 퍼플에게 백 파운드!”

숙련된 공장 노동자가 1년 6개월을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이자 조일준의 군자금이 단 한 번의 경주에 투자되었다. 직원은 마권을 적어주면서 에이다에게 말하였다.

“저희가 저택으로 찾아가 자금을 받아가겠습니다. 닐슨 조는 무슨 말에 거실 겁니까?”

“어······. 매지션 스타에게 십 파운드만 걸면 적당하겠군.”

에이다가 마권을 산 말은 6위로 가까스로 들어왔고 오히려 조일준의 말이 우승하였다. 2.4배의 배당을 받은 조일준을 노려본 에이다는 다시 연필을 끄적거리며 마권을 구매하였다.

열 번의 경주가 끝나고 조일준의 100파운드는 이리저리 움직여 89파운드가 되었지만 에이다는 750파운드를 잃었다. 그녀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경마에 몰두하였다.

“제발 달려! 휠 오브 포춘! 달리라고! 거기서 왜 자빠져!”

“역시 에이다라니까! 반대로 돈을 걸면 딸 확률이 더욱 높아져!”

“오늘도 역배에 잘 거셨으니 배율 높아졌네. 정배는 잘 먹고 갑니다!”

조일준은 도박을 즐기지 않았지만 외삼촌의 사례를 듣고 기본적인 방식은 알고 있었다. 경마에는 변수가 있어서 전체 통계가 도박의 결과와 이어지지 않는다.

온갖 비참한 꼴을 당하다가 정신병원까지 다녀온 외삼촌이 떠오른 조일준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바닥에 널브러진 에이다의 손을 잡아 일으키고 말하였다.

“수학을 배워서 도박에 사용하려 하다니 이런 짓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서로의 말이 경로를 막고 뚫는 일이 빈번한데 수학 공식이 통하기나 합니까!”

“제 수학 공식은 완벽하다니까요! 여러분! 제 말이 틀린가요?”

조소(嘲笑)와 야유가 전해지지 않았지만 모두가 침묵하였다. 에이다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고 조일준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 말하였다.

“경마는 그만 둡시다. 제가 수학적으로 가장 완벽한 도박을 알고 있으니 이 도박으로 수학과 도박의 싸움을 벌이시지요. 제 제안에 응하시겠습니까?”

“알겠어요. 오늘은 여기서 끝내고 닐슨 조의 제안에 응하도록 하지요.”

이 시대의 카지노라는 개념은 없었지만 각종 저택과 클럽에서 도박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도박중독자인 에이다는 이런 클럽을 소문을 통해 알고 있었고 개중 한 곳에서 가장 수학적인 도박이 시작되었다.

“제가 제시하는 게임은 뱅 엣 욍(Vingt-et-Un) 이라는 녀석입니다. 보통 카드 여러 벌을 사용하지만 수학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게임이니 한 벌만 쓰고 약간의 규칙을 변경하겠습니다.”

뱅 엣 욍은 현대의 대중적인 카지노 게임 블랙잭의 원형이었다. 세부 규칙이 달라서 플레이어의 승률이 조금 낮은 편이지만 이 시대에도 대중적인 게임이었다.

딜러는 나름 경험을 쌓은 사람이어서 손을 곱아가며 계산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고 에이다는 한참 동안 연필로 계산하더니 승률을 대략 계산하여 말하였다.

“그냥 게임을 하면 제 승률은 49.3%정도이군요. 다만 카드를 철저히 계산하면 승률이 52%에 근접하게 될 거에요. 그럼 카드를 몇 장 사용하면 섞게 되나요?”

“카드는 스무 장부터 섞도록 하지요. 그나저나 에이다 양이 조금 흥분한 것 같은데 옆방에서 화장을 고치고 오시면 어떻겠습니까?”

“화장이 조금 무너져 내렸군요. 이런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드려서 죄송해요.”

에이다가 사라지자 졸지에 돈이 빨려나가게 된 딜러는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조일준은 다른 사람에게 들리지 않게 그에게 속삭였다.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질 거니 밑장빼기를 비롯해서 기술을 동원해 박살내버려.”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사기도박이라니! 저는 그런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이 업계에서 일하면서 그런 짓을 안 배웠다니 웃기는 소리도 다 하는군. 내가 책임지고 도박을 무효로 할 거니까 염려하지 말라고. 이번 기회에 도박 중독을 끊어버릴 거야.”

오십 파운드를 주머니에 넣어주자 딜러는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났다. 사기도박이 아닌 남작 가문의 영애가 도박에 빠진 것을 교정하는 치료과정이라 납득한 것이다.

에이다의 승리 방법은 카드 카운팅이었다. 한정된 카드가 소모된 것을 외우고 이를 다음 배팅에서 나올 카드에 대입하면 승률을 점점 더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제 반격의 시간이에요. 스테이.”

“참으로 난감하군요. 이번 판에서 가장 불리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17에서 멈춘 에이다와 달리 4, 6, 6으로 16을 받은 딜러는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현실에서는 MIT 대학생들이 가까스로 성공하였던 카드 카운팅 전략을 에이다는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었다.

딜러가 이기려면 A, 2, 3, 4, 5가 나와야 하지만 이미 14장이 소모되어 단 6장이 덱에 남아 있으니 확률이 희박했다. 그러나 딜러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덱 중간의 카드를 빼냈고 결과가 드러났다.

“마지막 카드로 5가 나왔군요. 뱅 엣 욍 완성입니다.”

“이게 말이나 돼! 이 운빨망겜을 봤나!”

“단순한 운이 아닐지도 모르지요.”

절묘한 순간마다 터지는 손기술에 에이다의 자금은 삽시간에 고갈되었다. 카드카운팅을 하였음에도 승률이 42%에 불과하였고 마침내 에이다도 이상을 알아차리고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다······. 당신이 손장난을 친 것이 분명해요! 다들 뭐 하세요! 지금 이게 말이나 되요?”

“말이 안 되는 것은 당신의 마음가짐입니다. 이미 다섯 번째 판에서 이상한 조짐을 느끼게 상대가 신호를 보냈는데 듣지도 않으셨지요.”

에이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조일준과 딜러를 노려보았지만 조일준은 능글맞은 표정으로 응수했다. 그러더니 딜러에게 가볍게 신호를 하였고 딜러는 다시 카드를 나눠주었다.

각자 다섯 장이 배분된 카드를 펼치니 에이다의 카드는 에이스 포카드, 조일준의 카드는 킹과 퀸이 섞인 풀 하우스 그리고 딜러의 카드는 스트레이트 플러시였다.

자신의 수학이 손장난으로 무너진 사실을 알아차린 에이다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조일준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카드를 꺾더니 딜러에게 돌아간 칩을 가져오면서 말하였다.

“도박은 머리를 식힐 수 있고 머리를 쓸 수도 있는 좋은 유희입니다. 다만 지나친 것은 언제나 화를 불러오는 법입니다. 저라면 다섯 번째 판에서 그만 두었을 것 같군요.”

조일준은 거둬들인 칩을 환금하여 에이다에게 돌려주었고 옷깃을 정돈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주변의 시선을 느끼고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에이다가 눈물을 흘리자 조일준은 그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말하였다.

“앞으로 도박은 여유가 생길 때만 적당히 하시고 수학으로 뭘 계산하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학문은 학문의 순수함을 지켜야 하는 법입니다.”

“명심······ 할게요.”

“앞으로 도박은 적당히 하기로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합시다. 꼭 적당히 하셔야 합니다.”

글러먹은 도박중독자를 구제해줄 마음으로 나름 배려를 한 조일준은 마차에 올라 귀가하였다. 하루 종일 일어난 일에 서로가 피곤하였는지 둘 다 두통을 앓았다.

에이다는 대수롭지 않게 마차 안의 서랍을 열어 아편팅크를 꺼내고 입 안에 떨궜다. 한 번에 15방울을 마시는 모습을 보고 조일준이 역산(逆算)을 하니 모르핀 복용량이 말기 암환자에 준할 정도로 엄청났다.

이대로 적당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었지만 그 관계도 아편 중독으로 인하여 오래 가지 못 할 것 같았다. 조일준은 잠시 입을 우물쭈물 거리다 말하였다.

“도박을 줄이기로 하였으니 다음으로 아편을 끊어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아무래도 에이다와의 인연은 오래오래 이어질 것 같았다. 조일준은 덜걱거리는 마차 안에서 자신의 발명과 아편의 위험성에 대해 논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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