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37화 (37/345)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 37편

(4장 - 진실 (1))

이 시대의 고무는 접착제나 방수제로 사용되는 사소한 물건이며 생산량도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고무를 생산할 수 있는 나라는 얼마 전 독립한 브라질 제국이 전부였다.

가황고무의 제조법을 당장 알려준다 하여도 이 특허가 퍼지고 제조법이 유통될 때 까지 프랑스는 어떠한 이득도 거둘 수 없었다. 선물에는 선물로 답하기로 한 조일준은 주머니에서 가황고무 샘플을 몇 개 꺼내서 설명하였다.

“전하께서 조선에 선물을 보내시니 저도 몰래 만들어 둔 물건을 보여드릴 것입니다. 이 물건은 고무인데 제가 특별히 가공처리를 한 물건입니다.”

“고무? 기껏 해야 병사들이 입는 코트의 천을 붙이는데 쓰는 물건인데.”

루이필리프도 의복에 신경을 쓰는 귀족 출신이니 고무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뜨거워지면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고 영하의 온도에서는 바스러지는 쓸모없는 물질이었다.

조일준이 가황고무 조각을 촛불 가까이 들이댔고 예상과 달리 형태가 유지되어 있었다. 아예 손으로 잡을 수 없이 뜨겁게 변한 고무를 손수건으로 집고 잡아당겨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정도 고무가 식자 루이필리프는 이를 같은 방법으로 실험하였다. 심지어 내구성까지 갖추고 탄력도 기존의 생고무에 몇 배에 달할 정도였다.

“놀라워, 놀랍다 못해 경이로운 발명이로군. 닐슨 조가 보기에는 이 물건을 어디에 쓸 수 있겠는가?”

“적용할 수 있는 범위가 한도 끝도 없을 겁니다. 단단하게 배합한 고무로 마차의 바퀴를 감싸서 충격을 흡수할 수 있고 끈 대신 사용하면 자동으로 조여지는 옷을 만들지도 모르겠군요.”

“발명한 사람도 사용 방법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무궁무진한 물건이라니. 궁금한 것이 있는데 이를 왜 공표하지 않고 나와 접견한 지금에 와서 공개했단 말인가.”

“제조법이 지극히 단순해서 누구나 발명할 수 있고 마음대로 베낄 수 있어서입니다. 제조법을 공표하고 특허를 만들면 프랑스가 얻을 이득은 특허료 외에는 없습니다.”

루이필리프는 조일준의 제조법 설명을 듣고 심각한 표정으로 가황고무를 만지작거렸다. 국제 특허를 제안하여도 영국과 서유럽 일대에서만 제대로 작동될 국제 법률이었다.

그저 유황의 혼합 비율을 맞추면 되는 가황고무는 누구나 만들 수 있는 물질이다. 자신들이 특허를 발표한 순간 브라질 제국은 엄청난 양의 가황고무를 찍어내 더 큰 이득을 챙기리라.

“그러하니 미리 고무나무를 재배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고무나무에서 수액을 받아내려면 오 년, 제대로 수액을 생산하려면 십 년이 걸립니다.”

“자네의 말을 이해하였네. 우리 프랑스가 제대로 이득을 챙기려면 특허를 내놓지 않고 먼저 고무나무를 대량으로 재배해야 앞뒤가 맞는다는 말이로군.”

“그렇습니다. 고무나무를 재배하고 오 년이 지난 다음 특허를 공표하십시오. 다른 나라들이 어린 나무를 쥐어짤 때 프랑스는 고무를 대량으로 양산하고 있을 겁니다.”

루이필리프는 심각한 표정으로 가황고무를 매만지며 고뇌하였다. 프랑스가 아닌 영국이었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제안이리라.

그러나 고무나무를 대량으로 재배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본토는 불가능한 일이고 새로운 식민지를 만들려 하여도 점령과 안정화를 감안하면 너무나 머나먼 일이었다.

“자네의 발명을 프랑스의 국익으로 전환시키려면 정치적 고려가 많이 필요하겠군.”

“저는 과학자이니 정치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과학은 이념이나 사상 그리고 민족을 가리지 않고 어떠한 선입견도 없는 순수한 학문이 아닙니까.”

“얼마 전 신문 기사에서 보았던 말이로군. 자네의 선물을 더 좋은 선물로 돌려줄 것이니 염려하지 말게. 1833년 3월에 국제 박람회를 개최할 것이니 그 때 까지 수많은 물건을 만들어두도록 하게나.”

조일준이 인사를 올리고 나가자 루이필리프는 먼저 식물학자를 불러들였다. 고무를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을 확인하고 재배에 필요한 요소를 점검해야 하였다.

“요즘 홍삼이라는 물건이 유행하는데 쓴 맛과 독특한 향이 내 마음에 들었네. 고무나무를 조금 재배해서 홍삼 치클(껌)을 만들려 하는데 재배할 장소가 있는가?”

“참으로 곤란한 말씀입니다만 브라질 제국에서 수입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고무나무의 재배에는 평균기온 25도 이상의 더운 기후와 높은 습도가 필요하였다. 여기에 식물학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설파하려고 말하였다.

“고무나무는 불에 버틸 수 있지만 표피가 모조리 붕괴하면 수액을 채취할 수 없습니다. 최소한 몇 년 정도는 표피가 재생하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몇 년 정도는 표피가 재생하기를 기다린다. 그 동안 치클을 씹을 수 없겠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 루이필리프였지만 막중한 책임에 짓눌리기 시작하였다. 좋은 선물을 받았는데 어설프게 사용하면 오히려 남 좋은 일만 하는 꼴이 되었다.

답답한 마음에 식물학자를 돌려보낸 루이필리프는 한숨을 쉬며 세계지도를 바라보았다. 얼마 전 만든 알제리 식민지는 고무나무를 기를 수 없는 환경이었다.

이제 막 협상을 끝내고 1억 프랑의 배상금과 이자를 받아내야 할 옛 식민지인 아이티와 지금 점령 작업에 들어간 인도차이나 반도가 눈에 들어왔다.

당장 두 나라를 병탄하고 싶지만 고무나무 농장을 노린 공격이라도 들어오면 손해가 막심하리라. 그러다 조일준의 신문기사를 떠올린 루이필리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하였다.

“명분이야 충분하지! 조선 사람들을 지원하기로 했는데 다른 나라를 지원해도 충분하지! 식민지를 만드는 대신 협상을 통해 국토를 임대받아서 플랜테이션을 만드는 거야!”

대신들을 소집한 루이필리프는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게 연막작전을 펼쳤다. 아이티에게 배상금을 받는 것 대신 국토의 25%를 임대받는 것으로 배상금을 대신하기로 하였다.

대신들은 그의 주장을 듣고 난색을 표하였다. 특히나 난색을 표한 사람은 나폴레옹 휘하의 원수 출신이자 훗날 총리가 될 장드듀 슐트(Jean-de-Dieu Soult)이었다.

“아이티의 독립 자체는 이해할 수 있으나 그들은 민간인을 대상으로 폭행과 강간 그리고 무차별적 살인을 일삼았습니다. 이 죄를 고작 영토로 대신하다니 말이 안 됩니다.”

“슐트 경이 옳은 말을 하였습니다. 야만성을 지닌 아이티인의 목줄을 옥죄고 멍에를 씌워 그들을 노예처럼 대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백 년 동안 받아내야 하는 배상금이 우리 프랑스에게 얼마나 이득이 되겠나? 그리고 우리가 아이티의 사람들을 야만인으로 치부하여 멸시하지 않았나.”

조일준의 신문기사 여럿을 스크랩해둔 루이필리프는 이를 나눠주었다. 스스로의 우월감으로 외면하고 있던, 모든 인류는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 명백히 표시된 기사였다.

“아이티에게 1억 프랑의 배상금을 요구하는 대신 이들을 한 번이라도 사람으로서 대접할 마음을 품어보도록 하지. 어차피 저들의 배상금은 매년 수십만 프랑에 불과하지 않겠나.”

“매년 수십만 프랑도 거둘 수 없는 것이 아이티의 땅입니다. 설탕과 커피를 비롯한 작물들을 미국과 영국이 대량으로 재배하여 단가가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나도 알고 있다네. 그러니 아예 새로운 작물을 재배할 생각이니 염려하지 말게. 내 장담하는데 아이티 국토의 사 분의 일에서 거둬들이는 수익은 배상금의 몇 배에 달할 걸세.”

인격자이지만 다른 나라는 냉정하게 대하던 루이필리프의 변화한 모습을 확인한 대신들은 의심을 품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루이필리프는 이 시선을 느끼고 탁자를 내려치며 말하였다.

“염려하지 말도록 하게. 다른 누구도 아닌 닐슨 조의 발명이 연관된 일이며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어 닐슨 조 조차도 수익을 짐작할 수 없는 일이라 하였지.”

“영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이 개입할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작물의 생산이 빠르다면 개입하여도 큰 문제가 없다네. 오히려 시장이 넓어지니 상품을 판매할 저변이 넓어지는 격이지. 닐슨 조가 아닌 나를 믿어보지 않겠는가?”

루이필리프의 의견에 감화된 대신들이었지만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었다. 자신과 우호적인 관계의 문호 빅토르 위고를 데려와 백성들을 설득할 수단을 마련하였다.

“자네에게 부탁할 일이 있네. 미안한 이야기지만 조선 사람들에게 각종 설화나 동화를 듣고 이를 다시 편집하고 살을 붙여 책으로 엮어주게. 자네의 재주라면 가능한 일 같더군.”

“다른 사람이라면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습니다만 전하께서 부탁하신 일이니 명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하면 전하께서는 어떤 이야기를 주로 퍼트리실 생각입니까?”

“참회와 용서 그리고 화해와 관련된 이야기면 충분할 것 같군.”

루이필리프의 간절한 부탁을 들은 빅토르 위고가 움직였다. 그는 조선의 전래동화에 살을 붙여 여러 작품을 엮어냈고 [동방의 별]이라는 서적이 순식간에 완성되었다.

당연히 여러 편집이 들어갔다. 흥부놀부전의 제목은 두 형제 이야기가 되었으며 두 주인공 아버지의 이름은 장 첸이 되었다. 여기에 박 씨앗을 물어다 준 제비는 이웃 국가인 청나라의 부호가 되어버리는 식이었다.

저명한 문호 빅토르 위고가 동양의 설화를 집필한다는 소식에 여러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루이필리프가 책의 서두에 적은 서평은 이 모든 것을 정당화 하였다.

[빅토르 위고가 집필한 동방의 별은 이 시대에 반드시 필요한 서적이다. 머나먼 동방에도 같은 사람이 살고 있으며 관용과 용서의 마음을 품고 있다. 이는 삭막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가 보고 배워야 할 자세이다.]

루이필리프의 적극적인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이후 국제 박람회를 개최하겠다는 선언을 하여 여론의 눈을 가리고 관료들 가운데 절대 자신을 배신하지 않은 몇몇을 통해 가황고무 양산에 필요한 작업을 시작하였다.

막대한 배상금에 짓눌리던 아이티는 프랑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국토를 할양하였고 이 또한 루이필리프의 업적이 되었다. 역사의 흐름이 점차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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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준이가 프랑스에서 거의 위인 수준으로 대접받는 동안 머리가 아프고 속이 쓰려올 정도로 시달렸다. 어느 새 안개가 끼는 11월이 되었고 사절단의 변화에 내 눈 앞도 안개가 낀 것처럼 막막해졌다.

“증기기관의 도입에 성공하였으니 면포를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실로 그러하옵니다. 목탄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미국에서 아카시이라는 나무의 종자를 대량으로 수입할 예정이니 문제가 없사옵니다.”

조선 사절단은 이미 영국 정부의 수작에 반쯤 넘어가 있었다. 영국 정부에서 자신들의 치부를 숨기고 오로지 좋은 것만 보여주니 사람의 마음이 천천히 움직였다.

아무 것도 모르고 거대한 폭풍으로 다가가는 배처럼 사절단 전체가 분위기에 휩쓸렸다. 나 혼자의 힘으로는 방향을 바꿀 수 없으니 그저 거래에서 이득을 최대한 추구할 뿐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청나라 대신 상국(上國)으로 섬겨야 할 나라가 영길리 같소. 청나라는 우리 조선과 삶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영길리는 모두가 부유한 나라가 아니오.”

“실로 그러하옵니다. 박현상은 영길리의 물가가 지나치게 비싸서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다 하였지만 이는 지나친 염려이옵니다. 영길리는 상국으로 본받아야 할 나라이옵니다.”

“다만 영길리의 척관법(尺貫法)은 받아들이지 아니하는 것이 좋을 것이옵니다. 너무 난잡하고 번잡하여 아직도 머리가 혼란스러울 지경이옵니다.”

사절단 대다수가 영어 회화에 능숙해졌으니 더더욱 수작질에 넘어가기 쉬웠다. 화려한 연회로 시야를 휘어잡고 계획적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으니 점차 친영파로 변해갔다.

설령 친영파가 아니더라도 경계심을 유지하는 사람도 흔치 않았다. 그나마 사절단에서 이 수작에 넘어가지 않고 오히려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람이 임상옥이었다.

“저러면 아니 되는데. 지금은 우리가 사절단으로 대접을 받아 영길리가 호의적으로 응하는 것이지 정말로 상국으로 모시면 큰 일이 날 지도 모르네.”

“이문 앞에서는 평등함을 추구하는 나라이지만 속에는 칼날을 벼리고 있지요.”

“내 생각도 같다네. 거래에는 신의를 지키지만 속내를 알 수가 없지 않은가. 더군다나 우리를 자유롭게 풀어준 것 같지만 런던 도읍(시티 오브 런던) 내부만 활보할 수 있다니.”

거의 일주일 간격으로 연회와 새로운 기술을 보여주며 치부는 보여주지 않으려 하였다. 그나마 긍정적인 면은 학문과 기술에 대한 접근도 열려 꽉 막힌 유생들이 세상 물정을 많이 알아냈다는 사실이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받아들여 그의 위패를 만들고 절을 올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심지어 내가 추천한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론을 직접 실험하기도 하였다. 아예 당파가 생겨날 수준이었다.

“대놓고 증기기관을 돌려서 쥐어짜면 백성들이 뭐가 되겠는가. 내가 보기에는 지대를 비롯한 기본적인 생활부터 변혁시켜야 백성들이 먹고 살 길이 열린다네.”

“나는 반대일세. 백성들의 삶 이전에 대량 생산을 원동력으로 삼아 경기도 일대와 평안도를 발전시켜 수출을 해야지. 곡식이야 왜국과 청국에서 들여오도록 해야지.”

이백 명이나 되는 인원이니 관료들을 중심으로 급진 개화론, 온건 개화론 그리고 소수의 기반 우선론자가 대립하였다. 이들 모두를 포용할 방법도 모색하는 것이 마땅하리라.

긍정적인 변화와 부정적인 변화가 동시에 일어나는 사절단을 보며 부정적인 흐름을 끊어내려 하였다. 마침내 찰스 디킨스가 11월 4일 저택을 방문하였다.

무슨 일을 겪었는지 얼굴에 멍이 생기고 조금 절뚝거렸지만 그는 쾌활하게 모자를 벗고 인사를 올렸다. 그리고는 나와 함께 방 안으로 들어와 자신의 성과를 자랑하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한센 박이 말씀하신 대로 모든 일을 처리하였습니다. 일백 파운드의 자금을 거의 다 소모하였지만 그만큼 값진 일이었습니다.”

“뒷일은 제가 책임질 것이니 어서 세자저하를 설득해 주시지요.”

디킨스는 내 소개를 받고 효명세자와 대화를 나누었고 새로운 문물이자 진정한 백성의 삶이라는 말을 듣고 미소를 지었다. 이미 영국에 대해 우호적인 마음을 품고 있는 효명세자는 거리낌 없이 마차에 올랐다.

“박규수와 박현상도 함께 백성들의 삶을 보면 좋겠군. 과연 이 나라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어떤 삶을 지내고 있을지 참으로 궁금하군.”

“저 또한 궁금하였사옵니다. 이렇게 비싼 빵을 만드는 사람들이 얼마나 복록(福祿)에 겨워할지 두 눈을 뜨고 지켜보고 싶사옵니다.”

아마 밑바닥이라는 [bottom]을 바닥에서 거둬들이는 농사라 이해한 것 같았다. 큰 문제는 없으니 디킨스가 준비한 마차에 올랐고 똑같은 마차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저 안에는 라임하우스에 거주하고 있던 중국인이 비슷한 복식을 입고 몇 명 타고 있습니다. 마차 안에서는 외모를 구분할 수 없으니 영국 정부도 우리의 움직임을 모르지요.”

디킨스의 유창한 설명을 들은 효명세자는 자신이 더더욱 새로운 문물을 볼 것이라 생각해 콧노래를 부르며 안개를 뚫고 나아갔다.

이윽고 마차가 점점 진창길로 움직이며 다른 마차 두 대가 따라붙었다. 허름한 마차를 보고 의아해 하던 효명세자는 어디선가 느껴지는 악취에 코를 감싸 쥐며 말하였다.

“어디선가 두엄이라도 쌓아둔 모양이로군. 영길리의 두엄은 냄새가 조금 고약한데.”

“비료라 하셨습니까? 비료보다 더 독한 물건을 보실 지도 모르겠군요.”

이스트엔드 한복판에 도착했는지 찰스 디킨스가 고용한 사람들이 피스톨을 양 허리에 매달고 주변을 에워쌌다. 효명세자는 나와 디킨스를 바라보며 당황한 눈초리로 말하였다.

“무뢰배들 여럿이 주변을 에워싸다니. 대체 무슨 꿍꿍이인가!”

“이 세상의 밑바닥을 보시겠다고 하였으니 요청에 응한 것뿐입니다. 이 사람들이 없으면 모두 다 갈기갈기 찢겨 죽을 겁니다.”

문이 열리자 처음 보았던 오염된 템스 강 수준으로 심한 악취가 밀려왔다. 마음을 다잡은 효명세자는 마차에서 내려 주변을 바라보더니 몽롱한 눈빛으로 첫 감상을 내뱉었다.

“이런 꼴이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게 정녕 우리가 사는 세상이란 말인가.”

갓난아이의 시신을 안고 텅 빈 눈으로 동냥하는 여인을 시작으로 진흙과 오물이 범벅이 된 바닥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집이라 하여도 조선에서 볼 수 없는 허름한 판잣집이 전부였다.

진흙탕을 배경으로 서로 주먹질을 하며 사력을 다 하여 싸우는 외팔이와 절름발이. 이 뒤로는 소매치기에 실패하여 앙상한 몸으로 발길질을 두들겨 맞는 어린아이가 보였다.

“우웨에에엑!”

충격을 받은 효명세자의 반응은 격렬한 구토였다. 나도 가까스로 정신을 잡고 있었지만 박규수는 이 몰골을 보더니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우리의 복식을 확인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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