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 29편
(3장 - 영길리 (2))
강 아래로 뚫려서 양 쪽을 연결하는 굴이라는 말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는 사절단 사람들은 서로 보내달라고 요청을 하였고 영국 관료들은 고민에 빠졌다.
결국 더러운 템스 강을 보여주고 영국의 토목기술력을 자랑하려는 결단을 내린 것 같았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마차가 아닌 말을 타고 달려오는 사람이 있었다.
“조선에서 오신 분들이 제 터널을 확인하고 싶다 하셔서 방문하였습니다. 마크 이점바드 브루넬(Marc Isambard Brunel)이 인사를 드립니다.”
설명은 설계자가 하는 것이 정답이니 설계자를 불러온 것이리라. 프랑스 억양이 묻어나는 말을 눈치 채고 번역을 프랑스어로 하였다. 프랑스 사람은 이런 일에 껌뻑 죽어나가는 법이라 효과가 좋았다.
“머나먼 나라 조선에서 이 땅 까지 오게 되었는데 강 아래에 굴을 파서 왕래하는 기술을 보게 되었으니 얼마나 호기심이 생기는지 가슴이 두근거리는구려.”
“지금 영국에 오셨으면서 프랑스의 말을······. 아무튼 좋습니다. 제가 모든 것을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동합시다!”
마차에 탑승한 사절단은 다시 창문을 열고 런던의 경치를 구경하였다. 그러나 분변이 쌓인 템스 강에 다가갈수록 구역질을 시작하였다.
마침내 터널 입구에 도착하자 가뭄과 겹친 악취가 진동하였다. 아예 악취에 익숙해진 사절단 사람들은 걸쭉한 타르 같은 템스 강의 진흙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템스 강은 수십만이나 되는 런던 시민들의 오폐수를 처리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강이지만 사람이 너무 많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요.”
“기껏해야 중랑천의 두 배가 안 되는 것 같구려. 강이라 하면 한강처럼 큰 강이어야지.”
조선 사람들의 말을 들은 마크 브루넬은 나에게 한강에 대한 설명을 듣더니 호기심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거대한 강이라면 토목공학자로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으리라.
마크 브루넬은 사절단에게 설명하기 위해 도면을 가져와 보여주었다. 그러더니 아직 완성되지 않은 터널 입구를 가리키며 설명을 시작하였다.
“저는 좀조개에게서 영감을 얻어 이 터널을 설계하였습니다. 작은 굴을 파고 안에 강철로 만든 틀을 넣습니다. 이를 천천히 확장시키고 진흙을 파내며 옆으로 확장하는 겁니다.”
“마치 쐐기를 박듯이 전진해 나가는 것 같구려. 그런데 이 굴을 완공하지 못한 이유가 있소? 이론만 들어서는 천천히 파내려 가면 될 것 아니오.”
“한 마리의 좀조개가 아닌 사람이 움직이니 문제가 생기지요. 공기가 탁해지기도 하고 간혹 분변 덩어리를 만나면 악취로 인해 공사를 중단해야 했습니다.”
그는 영국의 자존심을 위해 답하지 말아야 할 내용조차도 여과 없이 말해주었다. 이윽고 악취에 진동하는 템스 강의 정체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템스 강의 바닥에는 분변들이 굳어서 진흙처럼 뭉쳐 있습니다. 이러니 인부들에게 피부병이 생기고 후유증으로 죽는 사람도 생겼습니다.”
“분변이 진흙처럼 뭉치다니 그게 사람이 사는 곳에 흘러야 할 하천은 맞소?”
“고향인 루앙에 흐르는 센 강이 그리울 정도로 끔찍한 강이지요. 사람이 빠지면 구해내도 온 몸에 독이 올라 죽어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 제가 설명을 하지 않습니까!”
자신을 제지하려 한 관료에게 고함을 치고 삿대질을 한 마크 브루넬은 다시 옷깃을 가다듬고 헛기침을 하더니 설명을 이어갔다.
“얼마 전에 사고가 일어나 공사가 중단되었습니다만 입구는 멀쩡합니다. 문을 열면 안에 있던 악취와 유독한 공기가 새어나올 것이니 멀리 물러나 계시지요.”
터널의 입구가 열리자 몇 배는 심한 악취가 몰려와 사람들이 뒤로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이런 끔찍한 곳에 효명세자를 보낼 수 없으니 나와 마크 브루넬만 들어가기로 하였다.
“신이 굴 입구에서 무명실에 추를 매달아 안으로 늘어트리겠습니다. 무명실이 얼마나 깊게 들어가는지 확인을 하심이 마땅할 것 같습니다.”
한 발자국을 움직일 때마다 악취를 넘어서서 뇌가 마비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마크 브루넬은 웬 가루를 마스크 안에 뿌렸다.
그걸 보니 잠시 인도에 들렸을 때 입 냄새를 제거하려고 사들인 정향(丁香) 주머니가 떠올랐다. 정향을 마스크 안에 넣으니 조금 견딜 수 있었지만 그래도 뇌가 썩어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도저히 숨을 쉴 수가 없군요. 증기기관이라도 동원해서 물을 퍼내야 하지 않습니까?”
“강바닥의 진흙층이 복구될 때 까지는 안에 물을 채워 수위를 유지해야 하네. 이제부터는 숨을 크게 쉬면 폐가 다치니 숨을 참고 말을 하지 말게나.”
거의 기어가다 시피 터널 안으로 들어가 무명실을 늘어트리니 계속 말려들어갔다. 마침내 저 아래에서 퐁당 하는 소리가 들리자 무명실을 잡고 악취를 피해 도망쳤다.
마크 브루넬의 뒤를 따라 도망치다 숨을 들이켜니 부족한 산소가 채워지며 살 것 같았다. 효명세자에게 끊어지지 않은 무명실을 둘둘 감아 보여주고 말하였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이옵니다. 차라리 의금부에 하옥되어 친국을 다시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저기에는 아니 가겠사옵니다. 저하.”
“고······. 고생이 많았으나 자네 몸에 벌써 악취가 진동하는군. 무명실을 보니 적어도 삼십 보(36m)가 넘어가는 길이이니 저 굴의 바닥은 이 템스 강보다 낮은 것이 확실하군.”
“이대로 마차에 오르면 마차를 죄다 갈아치워야 할지도 모르겠사옵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할 뿐이옵니다.”
오염된 공기에 노출된 우리 둘 다 졸지에 시궁창에 빠진 몰골이 되어버렸다. 이대로 따로 돌아가야 하나 싶었는데 마크 브루넬이 나서서 제안을 하였다.
“조선의 왕자께 제가 제안을 하겠습니다. 저도 악취에 물든 옷을 버리고 새로 맞춰 입어야 하니 한센 박에게도 옷을 한 벌 지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는 내가 프랑스어를 구사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았다. 마크 브루넬은 근처에 있는 옷가게로 가서 먼저 치수를 재서 옷을 만들어 달라 하였다.
아예 옆에 있는 이발소에서 몸을 씻고 수염까지 정돈한 뒤 양복이 완성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더니 마크 브루넬은 주변 가게에서 시킨 홍차를 따라주면서 말하였다.
“소문을 듣긴 들었지. 조선의 외교관인 한센 박이 파머스턴 경이 감탄할 정도로 외교에 능숙하다고. 영어는 물론이고 프랑스어까지 알고 있다니 대단한 재주로군.”
“책으로 배우고 사람이 대화하는 것을 들었을 뿐입니다. 발음이 만족스럽지 않을 것 같은데 이렇게 칭찬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강사도 없이 배웠는데 이 정도로 능숙하게 대화를 나눈다는 말인가? 더욱 만족스러운 일이로군. 그나저나 조선의 자연은 참으로 험난한 것 같은데 이야기를 좀 해주게.”
서로의 양복이 완성되는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여름의 더위, 겨울의 추위, 장마와 태풍을 비롯한 폭우 그리고 범람하는 한강까지. 내 이야기를 들은 마크 브루넬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말하였다.
“도로를 만들려고 해도 동결심도가 너무 깊어서 기반을 6피트(1.8m)는 파내려야 할 것이며 다리를 만들려고 해도 엄청난 수류를 견뎌내야 하지 않나. 험난한 수준이 아니로군.”
“언젠가는 극복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영국에 방문한 것도 이런 자연을 극복하고 새로운 도로와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한 방법입니다.”
“내 나이가 예순이 넘지만 않았어도 조선에 가서 기술을 시험해 보고 싶었을 걸세.”
이런 공학자가 조선에 방문하면 한강 대교는 불가능해도 어지간한 토목 설계는 모두 가능하리라. 다만 그의 말 대로 나이가 문제였다.
아쉬운 마음에 막 바느질이 끝난 양복을 입으니 마크 브루넬은 잠시 생각하다 나를 보며 믿을 수 없는 말을 하였다.
“내 아들인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Isambard Kingdom Brunel)이 올해 스물여섯이라네. 자네와 마음이 잘 맞을 것 같으니 녀석을 조선에 보내면 어떻겠나?”
“자제(子弟)분을 조선에 보내다니요? 이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점바드 킹덤 부르넬의 이름은 알고 있다. 당대 최고 규모의 증기선을 만든 사람이며 철도 역사에 획을 그은 광궤(廣軌)와 여기에 쓰일 증기기관차까지 설계한 기술자이다.
조선에 들여오고 싶은 생각은 있었으나 그 몸값 때문에 나도 엄두가 안 나던 위인이다. 그러나 마크 브루넬은 고개를 저으며 말하였다.
“녀석은 지금까지 실패를 거듭했네. 템스 터널에서는 홍수를 예측하지 못 하여 사고가 났고 브리스틀의 현수교 설계는 폭동이 일어나 중단되었지. 녀석에게 조선이라는 험난한 곳을 알려주면 어떻게 되겠나?”
“그러한 분이 조선에 방문하는데 거절할 수는 없군요. 사소한 것 몇 개만 만들어도 조선의 모든 백성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맞이할 것이니 이 어찌 좋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몇 년 늦게 제안을 하면 껑충 뛰어오른 몸값 때문에 엄두도 나지 않았을 일이다. 더군다나 그는 아직 공학기술자가 아닌 건축 토목 기술자로서의 자질만 보이고 있었다.
이 재능을 조선에서 모두 개화시킨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으리라. 마크 브루넬과 함께 양복을 입은 채 밖으로 나와 마지막으로 악수를 나누며 말하였다.
“언제 돌아갈지는 모르지만 그때까지 아들의 일정을 비워두도록 하겠네. 설득이야 내가 할 것이니 염려하지 말고 녀석이 재주를 펼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두게나.”
“말씀만 들어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조선에 현수교가 생긴다면 그 아름다움에 모두가 지극히 만족하지 않겠습니까.”
이 말을 전달받은 효명세자는 나를 보며 조선에 방문할 사람들의 목록과 이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적어 넣으라 하였다. 해가 서서히 기울어 첫 날 일정이 끝났고 우리는 배정받은 숙소로 향하였다.
“사절단 여러분이 워낙 많은지라 저택 여섯 채와 주택 다섯 채를 대절하였습니다. 인원을 배분하시어 숙소로 삼으시면 되고 조선의 왕자님을 위한 저택은 따로 마련하였습니다.”
“근사하다는 말 외에는 나오지 않는구려. 높이는 인정전(仁政殿)보다 조금 낮지만 크기는 견줄 곳이 없소. 모두가 기다리고 있으니 어서 들어가 봅시다.”
어느 귀족의 저택이 분명하지만 아마 영국 의회에서 이를 빌려서 사절단이 머무를 장소로 만든 것 같았다. 시종과 하녀들이 도열하여 인사를 올리고 사람들이 안을 살피며 감탄하였다.
“눈이 부셔서 어디로 눈을 돌려야 할지 모르겠사옵니다. 중앙에 있는 계단에는 세자저하의 초상화(肖像畵)를 그려두어 매달아 두었는데 참으로 늠름한 자태이옵니다.”
동인도회사에서 전해진 외모 묘사를 통해 만들어진 초상화는 조선의 복식 고증이 조금 어긋났지만 수려한 외모를 드러내고 있었다.
모두가 초상화에 빠진 사이 나는 집안 곳곳을 찾으며 일준이가 경고한 물건들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다. 마침내 최악의 물건을 확인할 무렵 효명세자가 나를 찾았다.
“내 코는 저렇게 오뚝하지 않은데 회화를 조금 손봐야 할 것 같구려. 그나저나 박현상 자네는 어디를 그렇게 돌아다니는가? 혹여나 첩자(諜者)가 있을까 염려하였는가?”
“첩자가 아니고 암살자가 있사옵니다.”
효명세자의 침실로 배정된 방의 벽지는 휘황찬란한 녹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 시대에 가장 인기 있으며 고위층이 자주 사용하는 안료인 파리스 그린(paris green)을 사용한 것이다.
당연히 군관들이 방 안으로 달려들었고 암살자를 찾지 못 하여 눈을 돌렸다. 이들을 위해 벽지를 손으로 가리키며 설명을 하였다.
“이전에 신이 친국에서 고변하였던 일을 기억하시옵니까? 이 녹색 안료의 원료가 비상이니 여기에 계속 머무르시면 옥체에 안 좋은 일이 생길 것이옵니다.”
“이런 안료를 왜 사용한단 말인가! 벽지를 모두 뜯어내고 녹색이 들어간 물건들을 모조리 치우도록 하게!”
“이게 얼마나 비싼 안료인데요. 저희가 고생스럽게 바른 물건이니 뜯어내시면 안 됩니다!”
시종들과 하녀들이 경기를 일으켰지만 군관들을 막아낼 수 없었다. 벽지를 시작으로 창틀과 효명세자가 입어야 할 정복(正服)도 모조리 분해되어 마당에 쌓여버렸다.
다음 날 일정을 전달하려고 방문한 관리는 인부를 파견해 파리스 그린이 들어있지 않은 벽지와 물품을 새로 채워 넣었고 이로 인하여 직조공장 방문이 연기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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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조공장 방문 이전에 여러 준비를 하고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며 기다렸다. 마침내 보름이 지난 양력 4월 29일, 사절단 인원 60여 명이 직조공장에 방문할 날이 되었다.
“공장에 들어가시기 전에 이 토시와 복면을 착용해주시길 바랍니다. 잘못하면 흐늘거리는 옷자락 때문에 변고가 일어날 수 있고 공기도 안 좋으니 명심해 주시지요.”
이 시대의 공장에 대해서는 사진만 보았지만 각종 사고사례를 기억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배정된 하녀들을 시켜 사지를 감쌀 수 있는 토시를 만들어 두었는데 이를 받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옷자락 때문에 무슨 변고가 벌어진다는 말인가.”
“이 안에서 움직이는 기계들은 말보다 더 한 힘을 냅니다. 기계 귀퉁이에 옷이 끼이면 말에게 끌려 다니는 것 보다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말은 안 했지만 옷이 찢기면 그나마 다행이다. 심하면 몸이 딸려가고 증기기관에 사람이 짓뭉개지는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겠지.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고 마스크만 착용하였다.
그나마 효명세자가 나를 믿고 토시를 착용하였지만 아직 믿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마침내 우리를 맞이한 공장장은 복장을 보더니 다급히 토시를 착용하라 하였다.
“사고가 일어날지 모르니 토시를 당장 착용하시지요. 옷에 있는 각종 끈은 모두 옷 속으로 숨겨서 드러내지 않는 것이 더욱 좋습니다.”
“이 곳을 관리하는 사람 같은데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임에도 짧은 웃옷을 입고 있구려. 혹여나 옷이 찢어지기라도 하면 영길리 사람들이 뭐라 하겠소?”
효명세자의 권고대로 팔다리를 감싼 긴 토시를 착용한 사절단 사람들은 공장장의 안내로 첫 공정부터 확인하기 시작하였다.
씨앗을 빼낸 목화솜을 옮기는 작업부터 이를 방적기(紡績機)로 옮겨 실로 자아내는 과정. 자아낸 실을 다시 정렬하여 방직기(紡織機)가 천으로 만드는 과정까지 차례로 관람하였다.
본격적인 산업혁명이 일어난 영국의 직조공장은 대부분의 공정이 증기기관과 함께 돌아갔다. 기계를 통과하며 끊겨진 섬유 조각들이 마치 안개처럼 공장 안으로 치솟아 올랐다.
쉴 새 없이 증기로 움직이는 기계를 신기해하는 조선 사람들이었지만 각 기계가 말보다 힘이 세다는 말을 듣고 쉽사리 다가가지 않았다. 효명세자는 굉음 속에서도 태연히 말하였다.
“토시를 착용하지 않았으면 사고가 벌어졌을지도 모르겠군. 모든 기계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데 간혹 멈추는 기계는 왜 멈추는 거요?”
“조선의 왕자께서 하시는 말씀을 번역하신 것 같은데 잘 듣지 못하겠습니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증기기관이 가동하는 소리 그리고 간혹 윤활유가 부족한 톱니바퀴가 뿜어내는 마찰음까지. 현대인이라면 간혹 경험하였을 소음이지만 조선 사람들에게는 끔찍한 굉음처럼 느껴졌으리라.
소음 때문에 말이 통하지 않을 지경이었다. 쉴 새 없이 손을 놀리는 노동자들이 쉬는 시간은 오로지 실 공급이 끊겨 기계가 멈춘 잠깐 뿐이었고 이 시간은 다른 노동자들이 움직였다.
마침내 굉음과 분진 속에서 탈출한 우리들은 마당으로 나갔다. 공장 마당에는 석탄과 물이 공급되며 끝없이 연기와 증기를 내뿜는 증기기관이 가동되고 있었다.
“미리 마스크를 착용하셨으니 다행입니다. 아무리 공장의 환기시설을 가동해도 결국 이런 분진이 쌓여서 안 좋은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지요. 혹여나 여쭈어 볼 것이 있습니까?”
“목화에는 씨앗이 있어 기구를 사용해도 이를 뽑아내는데 힘이 들지요. 이 공장에서 사용되는 면화는 모두 씨앗이 말끔히 뽑혀 있으니 어떤 방법으로 한 것인지 궁금하군요.”
“그야 엘라이 휘트니(Eli Whitney)경의 조면기 덕분입니다. 하루에 오십 파운드(23kg)의 목화에서 씨앗을 뽑아낼 수 있지요.”
공장장이 설명을 하는 동안 종이 울리고 증기기관이 멈추고 직조공들이 공장 밖으로 밀려나왔다. 이 시대에는 별로 지키지도 않는 노동법(factory act)을 준수하는 공장을 소개하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 해도 모든 것을 숨길 수 없었다. 직조공들의 잘린 손가락과 간혹 보이는 머리 피부가 찢어진 흔적들은 이 공장에서 일어났던 사고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