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 20편
(2장 - 홍삼 (2))
정약용과 일준이의 보고를 들으니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인삼이 아편을 이겨내지 못 하지만 아편을 더 적게 복용해도 같은 효과를 내고 일부 부작용을 극복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게 정말 사실입니까?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정작 필요한 효과는 없고 이 시대의 사람들이 좋아할 효과만 가득하지 않습니까?”
“내 말이 그 말일세. 그렇다 하여도 원하던 것은 아편을 몰아내는 홍삼의 약효가 아니라 홍삼의 시세를 끌어올리는 것이 아닌가. 오히려 시세가 더 올라갈 것 같군.”
“시세가 하늘을 뚫고 치솟다 못하여 오히려 담합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효과가 좋아도 너무 좋아서 문제다. 아마 중국 대륙에서 홍삼은 모조리 서지 않는 사람의 뱃속으로 사라지고 가짜 홍삼이 판을 칠 지경이 될지도 모를 지경이다.
이렇게 효과가 좋다면 담합이 생길 것이 분명하고 홍삼 값을 후려쳐서 어떻게든 이득을 챙기려는 놈들이 생겨나리라. 나는 그저 파도를 원했을 뿐인데 해일이 밀려오는 격이다. 일준이는 내 말을 듣고 코웃음을 쳤다.
“예전에 드라마 본 적이 있는데 임상옥이라는 상인 이야기였나? 거기서 청나라 상인이 담합을 하니 홍삼을 태워버리던 사례가 있었잖아. 그냥 태워버리면 충분하지.”
“드라마이니 진실인지는 모르지만 한 번 당했으니 두 번은 안 당하지. 여기에 홍삼 밀매까지 막아버리면 살 길이 없는 청나라 상인들이 하소연을 해서 압박이 들어올지도 몰라.”
청나라가 군대를 동원하여 조선을 침략하는 것은 불가능하여도 경제적 압박만 가해도 충분하다. 이미 청나라에서 들여오는 물건이 한양 곳곳에 널려 있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 교역을 닫아버리면 피해는 조선이 더 크게 입는다. 이를 감안하여 사태를 조율하려 하는데 정약용은 오히려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럼 더욱 좋은 일이 아닌가. 영길리의 선박이 오기 전에 이 나라의 배를 동원하여 청나라까지 나아가서 먼저 거래를 하세나. 그리 하면 상대도 긴장하여 값을 낮추겠지.”
“옳은 말씀이긴 하지만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청나라 남해안 일대는 수많은 해적이 들끓고 있는데 판옥선은 기껏해야 열흘만 항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결국 작은 조운선으로 교역을 행하다가는 해적만 배불릴 것입니다.”
“해적이 넘쳐난다 하였는가? 청나라는 대체 뭘 하고 있단 말인가?”
“그야 아편에 빠져서 서로 허우적거리고 있지요. 결국 청나라와의 교역에서 손해를 조금 보는 것을 각오하고 영길리와의 교역을 실시해야 할 겁니다.”
이미 시작된 일이니 중단할 방법도 없었다. 효명세자와 풍양 조씨는 홍삼 밀매를 일제 단속하려 하고 정약용의 저서도 완성되었다. 모든 일을 운에 맡길 수 없으니 다음 대책도 필요하였다.
“다산 선생님께서는 세자저하께 말씀을 올려 서적을 인쇄하여 청나라에 풀어 주십시오. 아마 동지 무렵에는 홍삼 시세가 오르거나 담합을 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겁니다.”
“염려하지 말게나. 이럴 줄 알고 이 나라의 말로 저술한 서적과 청나라에서 쓰이는 어휘로 저술한 서적을 따로 마련해 두었다네. 아는 역관들을 통해 퍼트리면 되겠지.”
“그럼 충분하겠군요. 일준이는 조만간 방문할 영국 사람들을 위해 적당한 물건을 만들어 둬. 특허를 제출해서 돈과 명성을 얻을 거리를 만들면 될 거야.”
“조선에서 특허를 제출해도 서양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을걸. 오히려 무시하고 자기들끼리 불법으로 특허를 사용해서 이득을 챙길 거야. 찰스 굿이어 사례를 떠올려 봐.”
생각해보니 옳은 말이었다. 이 시대의 유럽에서도 특허 도둑질은 성행하였고 귀족이나 부호조차도 이런 도둑질에 눈 뜨고 코가 베이는 시대였다.
어설프게 중요한 물건, 이를테면 니트로글리세린이나 다이너마이트를 소개했다가는 본전도 찾지 못 하고 낼름 먹어치우리라. 아쉬운 일이지만 일준이의 능력을 알리는 것이 먼저이니 한 발자국 물러나야 했다.
“그럼 특허를 헐값에 팔아치워도 아깝지 않은 사소한 물건 위주로 몇 개만 골라서 만들어 봐. 유럽에 네 명성을 알려서 교수진을 초빙하면 여러 문제가 해결된다.”
“이미 몇 가지는 생각해 뒀으니 염려하지 마라. 그럼 유럽에서 온 교수들을 내 연구생으로 다룰 수 있다는 말이지? 이거 쉴 틈이 없겠는데?”
일준이가 알아서 잘 할 일이니 더 이상은 간섭할 수 없었다. 이 소식을 영국 동인도 회사에도 전해야 했으니 칩거(蟄居)한 정하상 대신 유진길 찾아가 인사를 올렸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반색하며 말을 쏟아냈다.
“얼마 전에는 세자저하께서 서학교도를 추포할 것 같은 모습을 보이셔서 황망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러한데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정황을 들으니 신자들에게는 문제가 없더군요.”
“그야 나라에 잠들어 있는 도둑들을 잡아내려 연막을 피운 것이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여기 대계(大計)를 위하여 필요한 물건이 있으니 이를 전달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책과 함께 동봉된 서신이로군요. 조만간 북경에 다녀올 예정인데 혹여나 북경에 머무르는 선교사 분들에게 보낼 물건이십니까?”
“선교사들에게 보내면 됩니다. 엄밀히 말씀드리면 이 서신은 선교사를 위한 서신이 아닌 천축에 있는 동인도 회사에 보내질 서신이지요.”
서신이 중간에 강탈당하거나 훼손당하지 않도록 다섯 개를 준비하였다. 아마 4개월 뒤인 1831년 1월 경 동인도 회사가 이 논문을 읽으리라.
그때쯤 되면 청나라에서 담합을 하건 홍삼 시세를 올려 팔던 대책을 취할 시기였다. 이후 경연을 통해 효명세자에게 서양에 대한 여러 정보를 알려주며 1830년 10월이 되었다. 마침내 조만영이 움직였다.
“세자저하께 신의 잘못을 아뢰옵나이다. 신의 가문인 풍양 조씨의 사람들이 홍삼을 청나라로 밀매하며 수많은 이문을 사사로이 챙기고 난행을 저질렀나이다.”
청나라에 동지사를 파견한 직후이며 첫 홍삼 밀매가 진행될 시기였다. 조만영은 분명 풍양 조씨의 정보를 논한다 하였지만 50개가 넘는 밀매 조직을 논하였는데 이 정보를 함께 만든 사람이 있었다.
“신 김조순 세자저하께 아뢰옵나이다. 근래에 들어 변방에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 안동 김씨의 사람도 살펴보기에 이르렀나이다. 안동 김씨의 사람들도 같은 죄를 저질렀으니 이 일을 석고대죄(席藁待罪)하기에 이르렀나이다.”
내년 중순까지 정양(靜養)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라 하였던 김조순은 허름한 의복을 입은 채 조만영과 함께 죄를 논하며 무릎을 꿇었다.
올바른 신념을 가지게 된 세도가와 정치에 미친 세도가의 조합이 태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효명세자도 김조순의 개입은 고려하지 않았는지 한참을 고민하다 명을 내렸다.
“이번 동지사의 포삼세(包蔘稅)를 근당 은자 스물다섯 냥으로 감하였음에도 응하는 자가 그리 많지 않았거늘 사사로이 밀매를 행할 생각이었구나!”
“실로 흉험한 일이오기에 신 또한 정황을 늦게 알아차렸사옵니다.”
“마침 어영청의 병졸들을 맹렬히 훈련하고 있었으니 좋은 일이로다. 이들을 의주로 보내 국경을 순시하도록 하겠다! 밀매를 일삼은 자들을 모조리 추포하라!”
계획적인 소탕 작전이었다. 50개가 넘는 밀매 경로를 통해 청나라로 향하여 소식이 끊긴 밀수업자들은 하늘을 날아다니지 않는 한 돌아오는 길에 모조리 체포될 것이 분명했다.
겨울 내내 밀매되는 물건이 홍삼이라 하였는데 남은 홍삼도 모조리 국고로 환수되어 영국에 수출될 날을 기다리리라. 이 계획적인 수사에 관료 대부분은 넋이 나간 채로 효명세자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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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정벌하고 점차 통치에 힘을 기울이는 동인도회사는 계속 쌓여가는 채무에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1813년 인도 무역 독점권이 상실되며 이 채무는 점점 더 많이 쌓여갔다.
더군다나 2년 뒤인 1833년을 기점으로 청나라에 대한 무역 독점권도 상실될 위기에 처했다. 새로운 무역 경로를 확보하기 위해 고심하는 동인도회사 벵골 지부에 머나먼 조선에서 보내진 우편이 도착하였다.
“조선은 청나라 동쪽에 있는 작은 국가라 했는데 누가 동인도회사를 알고 보냈는지 궁금해지는군. 공식 외교서한도 아닌데 윌리엄 회장님에게 보내다니?”
한지로 포장된 우편을 확인한 사원은 봉인을 풀고 내부를 확인하였다. 수상한 물건은 없고 한자로 된 서적 한 권과 이를 정리한 것이 분명한 논문이 첨부되어 있었다.
현재 동인도회사의 회장인 윌리엄 아스텔은 영국에 머물고 있으니 내용을 확인하고 이를 본국으로 배송하기 위한 확인을 거쳐야 했다. 논문을 살펴본 사원은 눈을 가늘게 뜨고 내용을 확인하였다.
“홍삼이라는 약재가 무언가 했더니 진생(Ginseng – 인삼)의 가공품이로군. 아편의 부작용에 대한 인삼의 완화작용이라? 의외로 제대로 된 논문 같은데?”
과학이나 의학적 소양은 없지만 의외로 체계를 갖춘 논문이 분명하기에 잠시 고민한 사원은 결정을 다른 이사에게 일임하기로 하였다.
이사 중 한 명인 조지 라이올 (George Lyall)의 방문을 두드리자 들어오라는 목소리가 들렸다. 간단한 보고를 올리고 서적을 건네주자 조지 라이올은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말했다.
“머나먼 조선에서 논문을 보내왔다고? 저자가 야크용 다산 정과 일······. 왜 사람의 이름이 질병(ill)인가, 닐슨 조라고 부르면 되겠군. 얼마나 중요한 내용이기에 사람을 고용해 번역했지?”
논문이 청나라에서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고용해 어설프게 번역했으리라 생각한 조지 라이올은 대수롭지 않게 논문을 덮으려 하였다. 그러나 한 항목이 그의 눈길을 자극했다.
[홍삼을 한 달 기준 3냥(약 112.5g)을 복용하였을 경우 아편에 대한 해독기능이······.]
“그레인이나 온스 혹은 파운드가 아닌 프랑스 단위계를 사용했다? 아무리 보아도 제대로 된 의학 논문이니 진위 판별을 위해 의료진이 필요하겠군.”
의사와 함께 논문을 확인한 조지 라이올은 진위 여부를 의심하였으나 의사는 내용을 읽고 감탄하였다. 이 시대의 여러 논문과 비교해 보아도 부족하지 않고 오히려 철저한 실험 결과가 첨부되어 있었다.
“저자는 분명 제대로 된 과학자나 의학자가 분명합니다. 왕립협회 회원정도는 되어야 이런 연구를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지요. 오히려 몇몇 분야에서는 배우고 싶을 지경입니다.”
“혹시나 통계자료를 조작한 것은 아니겠지? 간혹 그런 경우도 있지 않나?”
“조작하려면 아예 인원도 맞추고 실험 변인도 통제해야 하는데 그런 징후가 보이지는 않는군요. 또한 인삼은 이미 여러 서적에서 약효를 드러냈습니다.”
영국 왕립협회와 프랑스 과학원에서 저술한 서적의 사례를 들은 조지 라이올은 그러려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생각하여 보니 청나라에서 홍삼이라는 약을 귀하게 여긴다는 말이 있었고 나름 시세도 기억하고 있었다.
동인도회사의 상선들이 머무는 광주 일대에서는 홍삼 1파운드(454g)에 75파운드. 은의 30배가 넘는 시세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를 영국에 판매할 경우 중간 마진을 감안하면 은의 50배 가격으로 치솟으리라.
지나치게 비싼 가격에 흥미를 잃은 조지 라이올과 달리 의사는 흥분하여 논문의 글자 하나하나를 파악하였다. 필기체로 기록된 논문에는 엄청난 정보가 숨겨져 있었다.
“일단 필기체의 형식이 프랑스의 형식과 비슷합니다. 모든 단위계를 프랑스 단위계로 변환하였으니 약용 정과 일준 조라는 학자는 프랑스 유학을 다녀왔을지도 모르겠군요.”
“닐슨 조가 프랑스 유학을? 그럴 수도 있겠지. 내용이 그렇게 혁신적인가?”
“혁신 수준이 아닙니다. 인삼을 한 달에 4온스를 복용하면 아편의 의존성을 17%, 아편의 복용량 증가를 36% 그리고 아편으로 인한 발기부전을 44% 완화할 수 있습니다. 아편의 심각한 중독성을 극복할 수 있는 약재입니다.”
“아편의 의존성은 없으며 오로지 개인의 무분별한 탐닉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아두게.”
동인도 회사의 주력 상품 중 하나가 아편과 이를 정제한 아편 팅크였다. 노동자들의 지친 몸을 달래고 술에 섞어 마시면 취기가 몇 배로 빨리 올라오며 설사와 구토 같은 질환에도 효과가 있었다.
갓난아이부터 80세 노인까지 모두가 즐기는 아편은 일부 예민한 사람과 의사들이 의존성이 아닌 중독성으로 표현하며 부작용을 과장하여 말하였다. 공식적인 입장을 설파한 조지 라이올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였다.
“이건 판매할 가치가 넘치는 약이군. 이 논문은 분명 청나라를 통해 전달되었으니 청나라에도 이것과 같은 내용이 퍼졌을 것이라네.”
“그야 당연한 일이지요. 감히 말씀드리는데 이 논문을 증명하기 위해 인삼이라는 약재를 오십 파운드 정도 사들일 권한을 주십시오. 이를 아편의 의존성 저해를 검증하기 위해 사용할 겁니다.”
“아편의 긍정적 작용이 있듯이 부정적 작용도 있는 법이지. 그 부정적 작용 중에 과다 복용으로 인한 사망과 발기부전을 극복할 수 있지 않나. 실험은 해 봐야지.”
영국은 아편의 부작용이 그나마 적은 아편팅크(laudanum, 아편을 알코올에 녹인 약재)로 복용하였다. 동양처럼 아편을 피우는 것 보다는 부작용이 적었지만 완전히 피할 방법이 없었다.
그나마 자신의 주장과 일치하는, 이 시대 기준으로 상당히 혁신적인 주장을 한 조지 라이올을 바라본 의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다음 말은 더욱 끔찍한 이야기였다.
“홍삼과 아편을 같이 복용하면 복용량을 줄여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했지. 그러면 홍삼 약간에 아편을 같이 먹으면 복용량이 증가하지 않겠군. 옳은 말인가?”
“이론상으로는 틀린 말이 아닙니다.”
“또한 부작용 중 하나인 발기부전을 치료할 수 있다 했네. 자고로 고객의 자손들도 고객이 되기 마련이지. 지금까지 대가 끊겨서 아편을 후대에 전달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나.”
조지 라이올은 논문을 조심스럽게 정리하고 다시 나무로 만든 상자에 보관하였다. 침체되어가는 동인도 회사를 부활시킬 수 있는 위대한 논문에게 인사를 올린 조지 라이올이 신념에 찬 목소리로 말하였다.
“지속 가능한 아편 복용이 가능하다는 소리 아닌가? 적은 양의 아편을 섭취해도 같은 효과를 낸다면 부작용으로 인한 사망이 줄어들겠지. 또한 발기부전이 해소되어 생기는 자손들이 재산으로 아편을 대대손손 사들일 것이네.”
조지 라이올의 말을 들은 의사는 그 광적인 집착에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현기증을 일으켰다. 그가 쓰러지려는 순간 조지 라이올이 그의 뺨을 한 대 후려치면서 말하였다.
“똑바로 서게! 조선에서 생산되는 약인 홍삼을 전략적 목표로 설정할 것이며 이를 위하여 함선을 파견하겠네. 이런 정보를 보내왔다는 뜻은 우리와 거래를 한다는 말이 아닌가!”
“만약 팔리지 않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아무리 부유한 사람이라 하여도 금보다 비싼 홍삼을 함부로 구매하지 않을 겁니다. 잘못하면 이 회사의 명운이 위태로울 지경입니다.”
“나도 계획이 다 있으니 염려하지 말게. 청나라의 홍삼 시세를 알고 있으니 조선에서 절반 이하의 가격에 구매해서 시제품을 제외한 모든 물량을 청나라에 팔아치울 것이네.”
영국의 판매 허가 목록에 홍삼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미 아편도 판매 금지 목록에 속해 있으니 별 문제가 없었다. 어차피 기강이 무너진 청나라의 관리들은 판매가 허가되지 않은 홍삼의 출처도 묻지 않고 사들이리라.
“내 선에서 상선 한 척 정도는 보낼 수 있으니 일단 조선에 정탐을 위해 신규 상선······. 로드 암허스트 호가 좋겠군. 이런 논문을 보냈는데 설마 대놓고 거절하지는 않겠지.”
인삼의 물량이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지만 인사는 가급적 좋은 옷을 입고 정중하게 하는 것이 답이었다. 얼마 전에 취역한 신규 상선 로드 암허스트호의 선장이 이사실로 들어와 인사를 올렸다.
“이사님께서 저를 찾으셔서 부름에 응했습니다. 휴 해밀턴 린지 인사드립니다.”
“자네가 조금 먼 곳을 다녀와야 할 것 같군. 조선이라는 나라에 방문하여 홍삼이라는 약재에 대해 알아오게. 이미 헨리 엘리스와 바실 홀이 해도를 작성하였으니 그 해도를 참고하도록.”
“조선이라 하셨습니까? 그 나라는 소문을 듣기로는 어떠한 교역도 실시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아닐세. 가급적 정중하게 방문하여 여러 정황을 알아보고 내가 알려준 대로 여러 수단을 동원하여 거래를 성사시키도록 하게.”
서류에는 각종 지시사항이 기입되어 있었다. 홍삼의 구매 시세는 청나라 광주의 시세의 절반 이하 혹은 관세를 포함하여 홍삼 1파운드 당 은 15파운드 이하로 할 것 이라는 항목도 포함되었다.
북경에서 공식적으로 거래되는 인삼 시세는 1근 당 은자 100냥이었지만 동인도 회사의 구매 목표 가격은 은자 240냥이었다. 부푼 꿈을 안고 출항한 암허스트 호는 본래 역사보다 1년 빠르게 조선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