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8화 (18/345)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 18편

(2장 - 대오각성)

정약용은 잠시 숨을 고르는 것처럼 완급을 조절하며 조만영의 표정을 살폈다. 상대를 어느 정도 알고 지낸 적이 있는지 표정을 보고 이해하였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말하였다.

“이 두 청년들을 들이게 된 다음 머나먼 서역의 정세는 물론이요 이들이 잠시 머물렀던 청나라의 정세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호조판서 대감께 부탁드릴 일이 아니겠습니까.”

“혹여나 다른 나라와 교역을 행하려 하십니까? 이는 예조와 그 속아문인 사역원 등에 문의하실 것이지 어찌하여 호조와 제가 있는 풍양 조씨를 찾으시는지 저의를 알고 싶습니다.”

“호조판서의 가문인 풍양 조씨가 가장 많은 이득을 거둘 수 있기에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우선 청나라가 홍삼을 사들이는 이유가 영길리의 상인 탓임을 알고 계시는지요.”

“영길리의 상인 때문에 홍삼이 팔린다? 영문을 모르겠으니 상세히 논하여 주십시오.”

정약용은 우리에게서 들은 지식을 기반으로 아편에 대한 정보를 취합하였다. 여러 역관(譯官)들과 각종 소문들을 종합하여 조선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미 효명세자에게 청을 올렸다 하였는데 같은 말을 하였으니 통하는 것이 당연하였다. 설명을 들은 조만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하였다.

“청나라 사람들이 홍삼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습니다. 부제조께서 서적을 집필하시어 널리 퍼트리면 홍삼의 가격이 더 오를 것 같군요.”

“저 혼자라면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이 두 청년들 덕분에 제 눈이 뜨였습니다. 호조판서 대감께서 용단(勇斷)을 내리셔서 서적을 쓰는데 필요한 홍삼을 제공하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부제조께서 사용하시도록 홍삼을 선별하여 조정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일을 할 때에는 가망(可望)을 염두에 두고 손을 움직여야지 가만히 있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는 훈훈하게 이야기가 흘러갔다. 조만영은 합리적인 사람이어서 우리에 대한 분노보다는 정약용의 제안이 가져올 이득을 생각하였다.

이런 제안이 나오는데 도움을 준 우리와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것 같았다. 조만영은 나와 일준이에게 술을 한 잔씩 따라주더니 나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부제조께서 자네들과 친밀히 지내지 아니하였으면 이런 이야기를 논하지 못 하였을 걸세. 며칠 전에 나에게 이 자리를 제안할 적에는 출세를 원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로군.”

“출세야 저의 소관이 아닌 주상전하께서 품계를 내려주시는 것이며 재물에도 관심이 없습니다. 나라에서 거두는 세금이 늘어나면 녹봉도 자연스럽게 늘어나지 않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농담은 하지도 말게. 나라의 곳간을 채워 녹봉을 올리려 하다니 자네가 제정신인가? 강에 물을 부어 논까지 물을 끌어들이겠다는 소리가 아닌가.”

강에 물을 부어 논까지 수위를 끌어올리면 오답이지만 강에 제방을 설치해 농사에 쓰일 물을 모으는 것은 정답이다. 한참을 웃다 조만영에게 술을 따라주며 말하였다.

“옳은 말씀이니 강에 제방을 설치하는 것이 정답인 것 같군요. 사실 다산 선생님께서 아편에 대한 서적을 저술하신 뒤 더욱 많은 재화를 거둬들일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더 좋은 방법인데 어찌하여 나와 논하는지 저의를 알 길이 없군.”

“그야 너무나 험난한 방법이지만 확실히 이득을 챙길 수 있어서이지요. 저희가 어리지만 세상 물정을 알고 있으니 몇 년 어치 세입을 단번에 불리고도 남을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조만영의 표정을 살펴보니 더 많은 재물을 챙길 욕심보다 나를 경계하고 있음을 알아차렸지만 이미 화두를 던졌으니 물러설 방법은 없다. 미리 준비한 대로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돈을 불릴 재주는 넘쳐납니다. 조정에서 조금만 힘을 쓰고 호조판서 대감께서 조금만 힘을 보태주시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여겨집니다.”

“그 방법이 무엇인가? 가만히 보니 할 말이 많은 것 같은데 논하여 보게.”

“제가 영길리에서 건너와 청나라의 남부에 있는 광주에 도달할 무렵이었습니다. 잠시 머물며 사람을 통해 이 나라의 복식을 만들 수 있었는데 왈패(曰牌)들이 달라붙기 시작하였습니다.”

“왈패들이라 하였는가? 청나라의 항구라 하면 기강이 삼엄하였을 것인데 운이 없군.”

조선 사람들은 청나라의 상황을 모른다. 이미 청나라에는 매년 1,200톤의 아편이 유입되며 이는 20억 회를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이 아편은 청나라를 완전히 좀먹어 가고 있었다.

오죽하면 북경을 오가는 조선 사람들이 중독되었으니 광주쯤 되면 관리까지 아편에 찌들어 있을 것이 분명하였다. 상황은 그럭저럭 묘사할 수 있으니 고개를 끄덕이고 말하였다.

“왈패 네댓 명이 몽둥이를 들고 앞뒤를 막아섰습니다. 이들은 조선 사람이라는 말을 하며 위협하였고 용태(踊兌 - 조일준의 자)가 단숨에 때려 눕혔습니다.”

“몽둥이를 휘두르는 왈패 네댓 명을 단숨에 때려눕히다니 말이나 되는가?”

“용태는 영길리의 무술인 권투를 배웠는데 주먹으로 싸우는 무술을 배웠음에도 얼굴에 상처가 별로 없지 않습니까. 한 대를 맞으면 모두 혼절하여 맞을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일준이가 권투를 한창 배울 때 주먹을 휘두르면 바람소리가 났다. 심지어 자신이 사람을 주먹으로 치면 턱뼈가 골절된다며 차라리 몽둥이로 두들겨 패겠다고 했지.

조만영이 일준이를 빤히 바라보니 녀석은 주먹을 뻗어 바람소리를 냈다. 그 모습을 본 조만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단번에 이해했다. 저 덩치에 저런 힘이면 가능하다 여긴 것이다.

“이들이 왜 습격하였는지 취조하여 보았습니다. 조선의 영약인 홍삼은 한 근에 은자 오백 냥이 넘어가는 값이라 하였는데 저희들이 홍삼을 가지고 있을 거라 하였습니다.”

“한 근에 오백 냥이라고? 지금 청나라와 교역하는 홍삼 가격이 한 근에 은자 일백 냥일세.”

“청나라 안을 거치며 값이 몇 배로 오른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하니 광주까지 나아가 직접 인삼을 팔면 다섯 배에 달하는 이문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정보가 없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집어치우라면서 화를 냈을 조만영이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정약용을 통해 홍삼이 청나라에서 비싼 값에 팔리는 이유를 알았다.

북경에 공급된 홍삼은 중국 대륙을 거치며 점점 물량이 줄어들다 머나먼 남부 광저우까지 가면 저런 가격으로 팔릴 것이라 생각하리라. 그러니 준비한 폭탄의 심지에 불을 붙여버렸다.

“당시에 물어본 바가 있습니다. 대체 홍삼이 얼마나 귀한 물건이기에 금보다 귀한 값이냐고 윽박질렀는데 조선에서 일만 근을 사들여도 고작 수백 근이 내려온다 하더군요.”

“일만 근? 자네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겐가! 재작년에 판매한 홍삼이 고작 삼천 근일세! 밀매를 하여도 정도가 있지!”

조만영이 너무 놀란 나머지 밀매라는 말을 입에 담고 당황하더니 다시 침묵하였다. 홍삼 밀매에 대한 소식은 알고 있지만 정확한 총량은 모르고 있음이 분명하였다.

홍삼 밀매가 점조직 형태로 재배와 가공 그리고 밀매까지 총괄하니 조만영도 한참을 조사해야 진상을 파악하리라. 그래도 우리의 예측이 틀리지 않았는지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여 반박을 하지 않았다.

그저 침묵하며 내 의견이 말이 안 되니 논할 가치도 없다고 표현하고 있었다. 여기서 끝낼 생각은 없으니 다음 폭탄에도 불을 붙여버렸다.

“물론 양이 틀릴 수도 있지만 이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국법에 의하면 국경을 넘을 때에 삼(蔘)과 관련된 죄를 범하였으면 사형에 처한다 하였습니다.”

“이들이 고산준봉을 넘어 홍삼을 청나라에 밀매하는데 단속이 쉬운 일이 아닐세.”

“저희가 조선에 들어올 적에 육로(陸路)를 알아보았지만 너무나 험난하여 포기하고 해로로 들어왔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육로가 모두 홍삼을 밀매하는 경로 같더군요.”

정하상에게 알아낸 밀매 경로를 이야기하니 조만영은 눈가를 꿈틀거리며 반응을 하였다. 아마 자신이 편의를 봐 주는 밀매상이 인삼을 보낼 때 사용하는 경로이리라.

그래도 이 자리까지 그냥 올라온 사람은 아니었는지 조만영은 표정 관리를 하며 어떻게든 정상적인 답을 하였다.

“내 만상(灣商 - 의주 상인)은 물론이고 여기에 연관된 이들을 엄히 단속할 것이네.”

“단속하기 이전에 마지막 기회를 주시지요. 청나라에 밀매하는 홍삼을 양성화 하여 국고를 불리는 것이 어떠합니까. 이를 북경에 파는 대신 영길리 상인을 통해 광주에 파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옳은 말이기에 반대하지 않았지만 조만영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표정이 변하였다. 정약용 앞이라 욕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목소리를 내리깔고 심문하듯이 말하였다.

“본색을 드러냈군. 부제조께서 영길리의 상인이 아편을 청나라에 팔아 나라를 좀먹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였네. 그러하면 이 나라를 아편에 물들게 할 생각인가?”

“영길리의 상인이 아편을 팔게 된 것은 이문(利文)이 남는 상품이 별로 없어서입니다. 청나라에서 물자를 사들이기만 하여 손해를 보니 사특한 수를 쓰게 된 것이지요.”

청나라 입장에서 영국에서 사들일 상품은 거의 없다. 있다고 해 보았자 고가의 사치품이 전부인데 이걸로는 차를 비롯한 청나라 물건의 수출 단가를 메울 수 없다.

반면 조선 입장에서 영국 상품은 사들일 것이 넘쳐난다. 모직물은 물론이요 각종 자재와 인도에서 들여오는 초석 등 무역수지의 균형을 맞추고도 남을 수준이다. 이를 설명하니 조만영은 나와 일준이를 흘겨보며 말하였다.

“나라를 명분으로 하여 길게 돌려 말하였지만 출세가 목적이로군. 영길리와 교역을 하게 되면 역관(譯官)으로 나설 사람은 자네 둘 외에는 없는데 빠르게 출세하지 않겠나.”

“저희가 끼지 않아도 좋은 일입니다. 영길리의 상인은 중국의 말을 알고 있으니 어느 역관이라 하여도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더 이상의 이야기는 되었으니 변명은 집어치우게. 부제조께서 말씀하신 일이야 내가 믿는 분이니 응하겠지만 자네들은 눈빛만 보아도 알 것 같으니 논할 가치도 없네.”

“정녕 저희가 탐욕에 물든 흐리멍덩한 눈을 하였다 생각하십니까.”

조만영은 지지 않겠다는 듯 나를 노려보다 피식 웃으며 몸을 돌렸다. 그러더니 방문을 열고 정약용에게 나름 쓴 소리를 하겠다는 듯이 인사를 올리며 말하였다.

“탐욕에 물들어있는 눈이니 더 볼 가치도 없네. 부제조께서 젊은 놈들에게 휘둘리시면 아니 됩니다. 말씀하신 것은 언질을 드릴 것이니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내 호조판서의 젊은 시절 행적을 경세유표(經世遺表)를 저술할 적에 참고하였는데 아쉬운 일입니다”

“젊은 시절은 젊은 시절이고 이제는 저도 나이를 먹지 않았습니까. 딸린 식솔이 많은데 함부로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정약용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배웅하였고 여기서 이야기가 끝났다. 결국 설득에 실패하였으니 이제 어떻게 말문을 터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다시 김조순을 움직일까 고민했는데 일준이가 먼저 말을 하였다.

“이득을 눈앞에 보여주고 자신의 명성을 떨칠 방법도 마련해 줬는데 이를 거절해? 며칠 뒤에 만들 거울 시제품을 선물할 생각이었는데 이걸 어떻게 하나.”

“나도 설득에 실패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다산 선생님께서는 어찌하여 일을 그르치게 되었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너무나 많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라 저럴 수밖에 없다네. 젊은 시절에는 그리도 대단한 사람이 어찌하여 저런 몰골이 되었는지. 이래서 권력이 무서운 것이라네.”

정약용의 말을 들으니 조만영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풍양 조씨는 물론이고 인삼 양성화를 실시하며 생기는 알력다툼을 저울질 하였으리라.

수많은 세도가와 여기에 얽힌 인원들을 설득하거나 단속하려면 권력을 소모해야 한다. 자신의 권력과 입지가 손상되는 일을 피하려고 거절한 것이 분명하였다.

결국 내년이 되어 김조순의 몸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의 예상과 달리 모든 일이 순리대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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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이 지나 음력 7월이 되었다. 한 달 뒤에는 인삼을 수확하여 밀매할 시기가 되었음에도 조만영은 인삼의 작황을 확인하는 대신 다른 정보를 입수하였다.

평상시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던 홍삼 밀매와 관한 정보를 닥치는 대로 입수하였다. 풍양 조씨의 사람들과 상인들을 통해 입수한 정보가 그의 책상 위에 쌓여있었다.

“밀매되는 인삼이 일만 근에 달할지도 모르는군. 이걸 어떻게 감당한단 말인가.”

감당은 할 수 있었다. 먼저 자신의 문중 사람들을 설득하여 순조나 효명세자에게 잘못을 고변하고 뉘우치는 모습을 보인다면 벌을 내리지는 않을 것이다.

이후에는 여러 곳에서 몰려오는 상소와 탄핵을 견뎌내며 박현상의 주장대로 홍삼의 양성화를 시작해야 한다. 이는 옳은 일이지만 조만영은 권력을 버릴 수 없었다.

보름 동안 밤잠을 설친 조만영은 눈꺼풀이 갈라졌음을 알아차리고 손으로 더듬었다. 그러다 얼마 전 상의원에서 보내온 거울을 떠올리고 이를 살펴보며 푸념하였다.

“몰골이 말이 아니로군. 그나저나 이 거울은 못 만들어서 일그러져 있는데도 검은 빛이 없이 사람을 훤히 비추니 참 기묘한 물건이라니까.”

은 반사판 거울은 사람의 형상을 고스란히 비추었지만 유리 가공기술이 부족하여 얼굴이 일그러져 보였다.

흐리멍덩한 눈으로 거울을 살피던 조만영은 눈을 감았다 뜨며 피로로 엉망이 된 얼굴을 바라보았다. 초점을 잃은 눈동자가 비친 순간 귓전에서 벼락같은 고함이 들려왔다.

- 네놈들이 백성을 수탈하였음을 알고 있다! 눈빛만 보아도 알 것 같으니 어서 쳐라!

젊은 시절 조만영이 수없이 해왔던 말이 다시금 들려왔다. 화들짝 놀란 조만영이 들고 있던 거울을 바닥에 내동댕이치자 충격으로 거울에 금이 갔다.

조만영은 39세에 과거에 합격해 출세가 늦었지만 암행어사로 활동하며 부패를 저지른 아전을 수없이 적발하였다. 얼마나 잘 적발하는지 정약용조차 소문을 듣고 감탄하였다.

순조는 이런 의기가 넘치는 자라면 차기 국구(國舅)의 자리를 논할 수 있다며 그의 딸을 세자빈으로 간택하고 이는 출세와 권력의 기반이 되었다.

수많은 비리를 적발하고 부패한 관리를 벌하였지만 이제는 조만영 자신이 탐관오리의 흐리멍덩한 눈을 하고 있었다. 가슴을 움켜잡고 숨을 고른 조만영은 깨어진 거울을 살펴보며 푸념했다.

“만영아, 네 녀석이 젊은 시절에는 눈빛만 보아도 사람이 죄를 저질렀음을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너의 눈 안에 탐욕만 깃들어 있구나. 이 일을 어찌 하면 좋겠느냐.”

젊은 시절의 자신이 이 자리에 있다면 늘 그래왔던 것처럼 머리통부터 내려쳤으리라. 장롱에 보관해 둔 세모 방망이를 잡은 조만영은 다시 거울을 보며 말했다.

“눈에는 의기가 깃들어 있고 입으로는 자신의 이득이 아닌 이 나라의 이득을 논하는 젊은이에게 탐욕이 보인다고 말하였지. 이 실수를 만회하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겠구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한참동안 회한(悔恨)에 사로잡힌 조만영은 마음을 가다듬었다. 이미 효명세자가 아랫사람들을 관리하지 못한다며 질책하였으니 이를 계기로 삼으면 될 것 같았다.

밤을 다시 지새운 조만영은 다음 날 아침 효명세자를 찾아갔다. 이미 어영청과 훈련도감을 시찰하고 군사 훈련과 장비 개수를 계획하는 효명세자는 그의 방문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호조판서께서 어인 일로 만나보기를 청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호조에 방문하여 병장기를 만들 자금을 어찌 만들어야 할지 논하려던 차였는데 잘 되었군요.”

“병장기를 새로 벼려내고도 남을 자금이 이 나라에 지천으로 널려 있사옵니다. 세자저하께서 말씀하신 대로 아랫사람들을 닦달해 보니 답이 나오게 되었사옵니다.”

밤을 지새우며 정리한 장계를 건네받은 효명세자는 처음에는 흡족한 표정으로 장계를 확인하였지만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더니 조만영을 빤히 바라보았다.

옆에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는 사관을 통해 다른 세도가로 이야기가 새어나갈지도 몰랐다. 효명세자가 침묵하자 조만영은 고개를 숙이며 말하였다.

“이들을 모조리 색출하여 벌에 처하고 가산을 몰수하시옵소서. 제가 젊은 시절에 날뛰었던 대로 다시 세모방망이를 들고 추포할 것이니 명을 내려주시옵소서.”

“그렇게 하면 나라가 혼란해질 것이 분명합니다. 세상에 이 어찌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지 황망하기 이를데 없군요.”

“실은 더욱 많을 것입니다. 연이 닿은 사람들을 조사하여 확인해 본 것이고 나머지는 그저 추정하였을 뿐이옵니다.”

말 그대로 조선을 뒤엎을 내용이 장계 안에 담겨있었다. 박현상이 찾아낸 밀수 경로에 30개가 넘는 밀수 경로가 추가되고 인원까지 포함된 홍삼 밀매의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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