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 16편
(2장 - 양성화(陽性化)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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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합니다. 식사를 앞두신 분은 식사를 마치고 소화가 다 된 다음 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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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상과 조일준이 조정의 관리가 되고 두 달이 지날 무렵 장흥고의 체제는 완전히 변하였다. 오늘도 새벽별을 보고 가장 먼저 출근한 조일준은 자신에게 배정된 건물에 들어가기 전 기자재를 점검 하였다.
“이놈의 인간들 또 원심분리기 축을 분리해두지 않았잖아. 가르칠 것이 한도 끝도 없네.”
각종 화학실험에 필요한 기구들이 하나둘씩 조일준의 주문으로 완성되었다. 목재 톱니바퀴로 만든 원심분리기도 기구 중 하나였다. 이를 점검하고 어제 만들어 둔 열수환 재료인 정제 목초액을 확인하고는 푸념을 하였다.
“잘못 만들었으니 오늘 또 새로 만들어야 하잖아? 필요한 기구는 어느 정도 마련해 두었는데 이걸 사용할 사람들이 문제네. 기초 과학 상식이 부족하니 이럴 수밖에 없겠지.”
할 일이 많은 사람이라 이제 르블랑 공정에 매달릴 필요가 없었다. 그러니 장흥고에 근무하는 인부 중 손재주가 뛰어난 사람을 선발하여 차근차근 가르치고 있었다.
성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정약용이야 뛰어난 두뇌를 가지고 있으며 미래의 지식임을 알고 있으니 무조건 조일준의 가르침을 받아들였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아니었다.
주입식으로 지식을 전파하였으니 아직도 문제가 많았다. 그래도 인부들에게 조일준의 평판은 아주 좋았으니 현대인의 관점으로 정중히 대한 덕분이었다.
인부들의 도움 덕분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조일준은 새로운 물건을 만들고 있었다. 어제 실험을 마치고 반응이 끝난 안료를 뒤뜰에서 찾아와 확인하였다.
“파리스 그린 제조는 성공했는데 이걸 쓸 수도 없고. 그냥 버디그리스(Verdigris, 아세트산구리)에서 만족해야 하나. 그러면 그 비싼 구리를 썼다고 아주 발작을 하겠지.”
조일준이 정리를 마치자 관원들과 인부들이 출근하였다. 조일준에게 실험을 위해 허가된 시간은 해가 중천에 올라 모두가 휴식을 취할 때가 전부였다. 수많은 물건들이 장흥고로 입고되었고 조일준도 업무에 동참했다.
“미곡 일천 석을 출고하여 선공감으로 보내라는 명이 내려졌습니다.”
“잠시만 기다려보게. 일천 석을 빼내는 일이면 시간이 조금 오래 걸릴 걸세.”
관원이 인부에게 손짓을 하자 여럿이 쏜살같이 움직였다. 이전처럼 엉성한 창고에 쌀이 보관되어 있었다면 출납(出納)이 지체되어 썩어 문드러지겠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통나무를 파내어 만든 거대한 통이 수십 개가 있었고 아래의 뚜껑을 열자 쌀이 쏟아져 내렸다. 평상시에는 쌀이 습기를 먹어서 썩는 일이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십육 번 쌀통에서 서른두 석 모두 빼냈습니다. 새로 채워 주시지요.”
“조만간 채울 것이니 염려하지 말고 똑바로 기입하도록 하게.”
부패한 조정 관원들은 물류 관리를 뭉뚱그려 기록하였다. 서류 미비를 핑계 삼아 남는 물자를 착복(着服)하는 일을 노린 것이다. 그러나 조일준의 개선 이후 기록이 우선시 되었다.
관원은 쏟아져 나오는 쌀의 양을 가늠하고는 서류에 붓을 놀려 이를 기입하였다. 본래 이 정도의 쌀은 벌레가 쏠아먹었다 하여 몰래 빼낼 수 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미두(米斗) 삼십이 석 출>
선공감에서 온 관리는 가마니가 꿰매어 지기 전에 쌀의 품질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레를 옮겼다. 장흥고의 업무는 산더미 같았고 관원은 서류를 살펴보며 인부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유둔지(油芚紙 - 기름을 먹인 포장지)는 다 만들었는가?”
“물목상세에는 이미 삼천 장이 있다 하여서 별 필요가 없다 생각하였습니다.”
함부로 훔쳐가지 못 하도록 간단한 자물쇠가 달린 서랍장이 열리니 관원의 말과 달리 유둔지가 있어야 할 곳이 비어 있었다. 이런 점에서는 작업 속도가 월등히 빨라져서 좋은 일이었다.
“자네가 물목상세를 잘못 보았군. 경술(庚戌)열의 세 번째 행부터 여섯 번째 행이 유둔지를 보관하는 곳이네. 육유둔지 일백 장 밖에 없으니 오백 장을 채워두게.”
조일준이 핍박을 당하는 이유 중 하나가 관리 체계의 개선이었다. 본래 멸실(滅失)된 물자로 분류되어 사사로이 이득을 챙길 물건이 개선작업 이후 모조리 양성화 되었다.
성과를 확인한 효명세자는 이를 여러 부처에 권장하였다. 본래 자신이 것이 되었어야 할 유둔지를 바라본 관원은 지시를 내리는 조일준을 불러 다시 핍박하였다.
“어제 내가 말 한 것은 생각해 보았는가? 다산 영감께 가르침을 받았으니 목민심서를 읽어보았을 터. 자네가 관리로서 백성들에게 가져야 할 마음가짐은 무엇인지 말해보게.”
목민심서에는 관리가 청렴하고 모범을 보여야 하며 실무에 능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이 세 가지가 없는 상대가 목민심서를 이야기하니 조일준은 웃음을 억눌러 참으며 말했다.
“백성들이 굶주리는 이유 중 하나는 지나치게 많은 미곡을 소모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다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였으니 조만간 확인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지나치게 많은 미곡을 소모하기 때문이며 방안을 모색한다? 그거 참 좋은 말이로군. 자네가 재주가 있었지 생각이 짧은 것이 문제였다네. 그 방안이 무엇인지 참으로 궁금하군.”
“제가 몸으로 시험해 보아야 하니 당장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다만 제가 이를 백성들에게 적용하기 전 많이 배우신 분들에게 알려드려 문제를 확인하고 싶습니다.”
얼핏 보면 조일준의 말은 지나친 핍박으로 인해 돌발적으로 나온 말 같았다. 이간질이 벌써부터 효과를 보였다고 생각한 관리들은 조소(嘲笑)를 숨기며 억지로 칭찬하였다.
그들의 얄팍한 지식으로는 미곡 소모를 줄이는 방법은 금주령(禁酒令)이 전부였다. 설령 다른 방법이 있어도 이를 매몰차게 대하고 깎아 내리면 충분하다. 이 기회를 만들기 위해 웃음을 숨기지 않으며 말하였다.
“자네의 말이 틀리지 않군. 그러하면 그 날이 언제인지 알 수 있겠는가? 우리 모두가 자네가 창안한 방법을 평가할 것이니 편히 생각하게.”
“열사흘 뒤인 유월 스무날(음력 6월 20일)입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는군. 잘만 하면 이번 가을을 노려 도성 전체에 자네의 방법을 퍼트려 봐도 좋을 것 같으니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도록 하게.”
음력 6월 20일은 효명세자가 어영청을 시찰하는 날이었다. 조일준의 예상대로라면 어영청을 시찰하고 분노한 효명세자가 장흥고에 사람들을 데려와 본보기 삼아 창고를 시찰할 것이 분명했다.
“어차피 장흥고에 오래 있어봤자 내 재주만 썩히지. 명분이야 충분하니 효명세자가 나에게 벌을 내릴 일도 없잖아? 도덕적으로도 법적으로도 인륜적으로도 모든 사항을 충족했어.”
도덕적으로는 목민심서의 지침을 따랐으며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였다. 인륜이야 어차피 적으로 대할 사람이니 오히려 인륜을 따르는 일이라 생각한 조일준은 인부들을 소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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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휴일은 있었다. 매월 1, 8, 15, 23일이 휴일이었으며 장흥고도 최소한의 사람만 남기고 6월 8일의 휴일을 지내고 있었다.
꿀 같은 휴일을 지낼 수 있음에도 조일준은 오늘도 출근하여 땀을 뻘뻘 흘리며 가마솥 앞에 붙어 있었다. 지시에 따라 인부들에게 먹일 약을 준비한 조일준은 웃으며 말했다.
“행운이 따로 없다니까. 대학시절 과제에서 출발해서 어떻게 찾아내야 하나 막막했는데 창고를 뜯어 고치며 이 녀석을 발견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
복용량과 효과에 대해서는 이미 몸으로 체험을 해 두었으니 이제 증인을 확보하고 근거를 마련할 차례였다. 인부들은 가마솥에서 불길한 거품을 내며 끓고 있는 해초를 보면서 말하였다.
“처음에는 미역국인줄 알았는데 보라색과 초록색이 섞여서 불길하게 끓고 있군요. 대체 무얼 실험하실 작정이십니까? 일전에는 비상(砒霜 - 비소)을 만지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다른 관원들에게 핍박을 당하는 일은 알고 있겠지? 이를 막아내기 위한 약일세.”
“당연히 알고 있습지요. 이제는 숨만 쉬어도 온갖 수단으로 심한 욕을 하니 이를 감내하시는 조 봉사(奉仕)님이 참으로 대단한 분이 아닙니까?”
“내 행동이 잘못된 탓이지. 지금까지 각종 안료를 만들고 열수환의 제조에 필요한 약을 만들고 있었지만 백성들을 편하게 하기 위한 물건은 만든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야.”
조일준이 눈을 흘기며 백성을 위한다는 말을 하니 인부들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서로를 돌아보았다. 속뜻이야 백성을 위하겠지만 이 죽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예측할 수 없었다.
가마솥 아래에 있는 장작을 빼내 불을 줄인 조일준은 나무대접에 이를 한 국자씩 떠내어 건네주었다. 모두에게 죽을 나눠준 뒤 자신도 대접을 입으로 가져가며 말하였다.
“내 장담하건데 이 해인초 죽을 마시면 자네들 모두가 삶이 변할 것이네.”
“입에 넣어도 되는 겁니까? 슬쩍 맛만 보아도 아주 역하니 몸에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반나절 정도 불편한 것이 전부라네. 다만 내 말 대로 끼니를 굶지 않았으면 많이 고통스러울 거라네. 조금 뒤에 소금을 섞은 물을 두 되 정도 마셔서 속 깊숙이 내려 보내게.”
두 시간 뒤. 조일준과 인부들은 사지를 비틀거리며 걸어 나오다 어지러움을 이기지 못 하고 하나둘씩 마당에 쓰러졌다. 소스라치게 놀란 병졸은 조일준의 몸을 잡고 흔들며 물어보았다.
“대체 뭘 하신 겁니까? 다들 괜찮으십니까?”
“아주 괜찮으니 염려하지 말게. 아무 문제가 없다네.”
“문제가 없다 하셨습니까? 정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아직도 골이 울리고 세상이 노랗게 보이는데 정말 괜찮은 것 맞습니까?”
“염려하지 말고 집에 들어가 푹 쉬고 다음 날부터 끼니를 먹는 양을 확인해 보게나.”
인부들은 며칠 뒤 부터 식사량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을 확인하였다. 처음에는 끔찍한 일을 겪고 식욕이 줄어들었다 생각했지만 속이 편안해진 것을 확인하고 조일준에게 보고를 올렸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군요. 볼록 나온 배가 줄어들고 간혹 생기던 복통도 사라졌습니다.”
“밥도 조금 덜 먹게 되었습니다. 일 할 까지는 아니지만 몇 수저가 줄어들어서 남길 지경이더군요. 그놈들이 제 뱃속에서 얼마나 많이 미곡을 빨아먹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조금 험난한 일이더라도 참고 견디니 보상이 있는 법이지. 이를 퍼트릴 생각이 드는가?”
“당연히 퍼트려야지요! 장흥고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이 해초죽을 먹어야 합니다!”
인부들 사이에서 조일준이 만든 약을 먹으면 밥을 덜 먹고 몸이 좋아진다는 소문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끔찍한 부작용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 하지 않았다.
마침내 약속한 날인 6월 20일이 되었다. 온갖 서적을 탐독하며 조일준이 만든 약을 철저히 깎아내릴 방법을 생각한 관원들은 조일준에게 다가와 웃는 얼굴로 말하였다.
“인부들 사이에서 도는 소문을 들어보니 약의 효과가 좋더군. 자네의 말 대로 어제 저녁부터 끼니를 굶었는데 대체 무슨 약이기에 이다지도 효과가 좋단 말인가?”
“그야 해초를 삶은 약입니다. 해인초라는 녀석을 구했는데 이 녀석이 속을 줄이는 효과가 있더군요. 여기에 횟배(기생충으로 인해 부푼 배)를 꺼트리는 약효도 있습니다.”
“어디 보세나. 얼핏 보기에는 미역국도 아니고 건물의 벽을 만들 때 쓰는 해초죽 같군.”
해인초는 1960년대 까지 기생충 퇴치제로 사용된 해초였다. 해인초에 함유된 카이닌산(kainic acid)은 엄밀히 말하면 신경에 작용하는 독의 일종이라 인체에도 영향을 끼쳤다.
이런 독성은 인체에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카이닌산을 복용하면 기생충의 활동을 중단시키지 않고 기생충을 고통스럽게 만들게 된다. 이로 인하여 심각한 부작용이 있었다.
“이를 공복에 드시고 속으로 넘기기 위하여 소금을 섞은 물을 두 됫박 마시면 됩니다. 다만 지금은 때가 아니니 조금 있다가 드시지요.”
효명세자가 어영청을 방문하는 시간은 사시 반각(巳時 - 오전 10시)라 하였다. 아마 시찰을 마치고 점심을 어영청에서 먹은 뒤 관원들을 데리고 여기를 방문할 것이라 예상하였다.
그러니 점심을 먹고 있을 때 해인초를 복용하게 하였다. 소문을 들어서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은 관원들은 역겨운 맛을 참으며 조일준과 함께 해인초 죽을 들이켰다.
“속이 뭔가 이상한데. 정말 이 해초죽을 먹으면 섭생이 줄어드는 것이 맞는가?”
“머리가 어지럽고 시야가 혼탁해지는 부작용이 있지만 반나절이면 사라집니다.”
조일준을 핍박하고 조만영의 명령으로 아예 이간질을 시키는 관원들도 그의 실력은 믿고 있었다. 효명세자에게 올리는 약을 만드는 사람이니 사람을 죽일 약은 만들지 않으리라.
그 믿음으로 카이닌산의 부작용인 현기증과 복통 그리고 이상하게 꿈틀거리는 속을 달래던 관원 중 하나가 결국 카이닌산의 효과를 온 몸으로 경험하였다.
“네놈이 대체 무슨 짓 우욱!”
“이럴 줄 알고 요강을 여럿 준비하였습니다. 속 시원히 게워내지 않으면 녀석들이 귀와 코로 쏟아져 나올 겁니다. 그렇게 되면 귀머거리가 될 지도 모를 일 아닙니까.”
독극물로 인하여 위협을 느낀 기생충이 택할 길은 역류(逆流)였다. 조일준이 준비한 요강에 머리를 박은 관원들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모든 것을 게워내었다.
물론 조일준도 이 행렬에 참가하였지만 그의 뱃속에는 기생충이 없었다. 가볍게 속을 게워낸 조일준이 느긋하게 치약을 묻힌 칫솔로 이를 닦을 무렵 소식이 들려왔다.
“세자저하 납시오! 모든 관원들은 의복을 정돈하여 세자저하를 맞이하시오!”
“번잡한 곳인데 그리도 격식을 찾는단 말인가. 관원들을 만나볼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
조일준의 예상대로 어영청을 순시하고 돌아온 효명세자가 찾아왔다. 이를 맞이해야 하는 관원 가운데 조일준을 제외한 관원들은 요강에 머리를 박고 쉴 새 없이 속을 게워내고 있었다.
“지금 이게 무슨······. 무슨 일인가! 장흥고에 곽란(癨亂)이 퍼졌단 말인가?”
“신 조일준 세자저하께 인사를 올리옵니다. 곽란은 아니옵고 장흥고에 계시는 관원들이 백성들의 병을 치유할 약을 드시고 약효를 확인하는 중입니다.”
“세자저하! 저 사특한 놈이 우리에게 독을 먹였습니다! 우욱!”
수십 년 동안 뱃속에서 번식한 기생충이 다시 발작하였다. 관원의 입에서 쏟아지는 흉물을 확인한 효명세자가 눈을 돌렸고 어영청의 군관들도 헛구역질을 하였다.
조일준을 체포하려고 군관들이 달려들려 했지만 효명세자가 제지하였다. 조일준은 충심(忠心)을 가지고 제도를 개편하였으니 이유도 없이 이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였다.
증언을 확보하기 위해 인부들을 부르라 하였다. 이들에게 효명세자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지난 두 달 동안 있었던 일을 고변하도록 하라. 무슨 일이 있더라도 너를 보호할 것이니 다른 사람이 없이 너와 나만 있다 생각하고 말하여라.”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었다. 이들은 식사를 먹는 양을 줄이고 횟배를 사라지게 만드는 약을 먹었고 그 약효를 온 몸으로 체험하였을 뿐이다. 그러나 증언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물자의 착복을 중단시킨 조일준을 핍박할 사람이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보름 사이에 핍박이 심해졌다는 증언이 있었다.
호조 고위 관리 중 하나가 앙심을 품어 조일준을 핍박하였고 이에 시달리던 조일준이 분노를 터트리는 대신 일을 저질렀으리라. 속을 게워낸 관원들은 조일준을 가리키며 청을 올렸다.
“저 사특한 놈을 당장 추포하시옵소서!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벌을 받지 아니하면 이 나라의 기강이 무너지는 일이옵니다!”
“그러하면 조일준이 잘못한 일이 무엇인지 고변하여 보거라. 내가 보기에는 이번 일은 여러 문제가 겹치고 겹쳐 벌어진 일이 분명하구나. 이를 테면 호조에서 명한 일이겠지.”
효명세자가 넘겨짚어서 한 말에 관원들은 모조리 입을 다물었다. 장인어른인 조만영이 이번 일과 관련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효명세자는 한참을 고민하였다.
조일준도 버릴 수 없었고 조만영은 당연히 버릴 수 없었다. 이번 사태를 적당히 덮으려 한 효명세자는 조일준을 불러 질문을 하였다.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 알 수 있겠느냐.”
“거머리는 사람의 몸에 붙어 피를 빨아 먹습니다. 회(蛔 - 기생충) 또한 흡사한 일을 하니 횟배에 시달리는 사람은 여러 병에 걸리지요. 그리하여 사람의 뱃속에서 회를 몰아내 보았습니다.”
“그러하니 인부들이 식사를 줄일 수 있었구나. 방법이 잘못 되었지만 이를 권한 것도 관원들이고 응한 것도 관원들이니 네가 잘못한 것은 없다. 다만 참으로 흉측한 일이로구나.”
요강 안에서 꿈틀거리는 기생충을 확인한 효명세자는 눈을 찌푸리며 앞으로 국수를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리고 조일준이 원하는 판결을 내렸다.
“백성들을 위한 일을 하였으니 너를 더 높은 곳으로 두어야 할 것이다. 상의원(尙衣院)의 직장(直長 - 종7품 관원) 자리를 마련할 것이니 물목을 정리하고 네가 원하는 인부와 함께 관직을 옮기도록 하여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다만 청이 있사온데 신이 창안한 해초죽을······.”
“횟배를 앓는 백성들에게 퍼트릴 것이니 염려하지 말거라. 궐로 돌아갈 것이니 속히 호조판서 조만영을 입궐시키도록 하여라.”
효명세자의 뒷모습을 본 관원이 조일준의 멱살을 잡았지만 체격이 훨씬 큰 조일준은 가볍게 멱살을 풀어버렸다. 그리고 아무런 인사도 하지 않고 방으로 돌아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