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15화 (15/345)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 15편

(2장 - 양성화(陽性化) (2))

설득 방법은 일준이가 알려준 천주교 역사와 이 시대의 세계사 지식이면 충분하였다. 정약용과 정하상이 숨을 돌릴 수 있게 잠시 말하지 않고 기다린 뒤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제가 서역에서 여러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이 나라에 서학의 전례가 허가되어도 다른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사람이 오가면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고 결국 화를 불러오기 마련이지요.”

정하상은 눈앞의 일만 알고 있지만 선교 허가는 새로운 문제의 시작일 뿐이다. 아직 조선은 모르고 있지만 이미 선교 활동을 빌미로 침략을 정당화하는 사례가 넘쳐났다.

대표적으로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성직자를 후원하며 식민지를 만드는 첨병(尖兵)으로 삼았다. 정하상을 설득하기 위해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사례를 이야기 하였다.

“이야기가 조금 길어질 것 같습니다만 서역의 국가들은 수백 년 전부터 신앙을 전파할 목적으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들의 뒤를 이어 병사들이 파견되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다니 말이 안 됩니다. 성도(聖徒)들은 물론이요 성직자 분들은 순수한 신앙심으로 가득하신 분들입니다. 이들이 병사를 앞세울 이유가 없습니다.”

“사람이 자리를 잡으면 욕심을 품은 사람이 오기 마련이지요. 그리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수많은 피가 흐르는 법입니다.”

새로운 종교를 전파하며 분쟁을 일으키고 분쟁을 다스릴 목적이라고 무력을 행사한다. 선교사가 얼마나 좋은 뜻을 가지고 충실한 신앙심을 가지건 간에 이득을 위해 이용당하는 격이다.

여러 사례를 들 때마다 정하상은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지금 조선의 상황과는 다르니 그래도 정하상의 뜻을 존중해 주는 식으로 설명을 마쳤다.

“이 나라에는 서학을 학문으로 배운 사람들이 믿음을 가졌기에 일어나지 않은 문제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하니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지요.”

“저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로군요. 생각하여 보니 청나라도 박해를 간혹 시행하는데 이러한 문제가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바로 보셨습니다. 이 뿌리 깊은 문제를 법도를 일치시키는 것으로 끝낼 생각은 없습니다. 다산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첫 발을 내딛은 것에 불과하고 머나먼 길이 남아 있지요.”

종교 허가로 지원을 받아내는 것은 좋으나 내정간섭까지 받아들일 생각은 없다. 이들을 경쟁시켜서 더 많은 지원을 유도해야지. 속내를 말할 필요는 없으니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제 목표는 서학으로 인하여 이 나라가 겪을 혼란을 줄이고 박해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참으로 험난한 일이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종교 하나만 생각했던 정하상 입장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멀고 험난한 과정이겠지. 그래도 서양사를 꿰고 있으니 여러 알력 관계를 고려해 보면 불가능하지는 않다.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선교단체를 택하고 이들을 잘 조절하여 첫 시작부터 좋게 가야지. 정하상은 내 계획을 이해하더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러한 일이 가능키나 합니까? 대체 얼마나 많은 노력이······.”

“저에게도 생각이 다 있습니다. 그러하니 천주교의 승려를 서역에서 들여오기 위해 찾아둔 밀수 경로를 알려주시지요. 제가 생각하는 대업(大業)에 꼭 필요한 정보입니다.”

동료들과 필사적으로 찾은 밀수 경로, 나중에 천주교 신부를 들여오는데 쓸 경로를 알려달라는 말에 정하상과 유진길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였다.

자신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알게 되었으니 한참을 고민해 보았자 답이 나오지 않으리라. 결국 정하상은 한참을 고민하다 답을 내었다.

“서로의 지식을 교환합시다. 숙부님께 서신을 보니 두 분은 서역의 상선(商船)에서 작은 배를 내려서 물길을 따라 이 땅에 닿았다 하였습니다. 이를 상세히 알려주시지요.”

정하상은 내 계획에 동의하였지만 실패를 염려하고 있었다. 내가 실패할 때를 대비하여 천주교 신부를 들여올 경로를 새로 마련하려는 것이었으니 확실한 방법을 알려주었다.

“제가 이 나라에 올 적에 영길리의 뱃사람들에게 급료를 주어 이 나라의 해안이 보이는 곳 까지 접근하고 배에서 내린 나룻배에 몸을 의지하였습니다.”

“하늘이 도운 일이군요. 쉽사리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여럿이 호응하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혹시나 정하상이 멋대로 선교사를 들여올까 염려했는데 괜한 기우(杞憂)이다. 파리 외방전교회가 선교사를 보내려면 6년 정도 걸리는데 그 동안 서양과 교역을 맺고도 남는다.

이미 일준이와 약속했으니 박해는 없게 만들 작정이다. 정하상은 마침내 자신이 알고 있는 밀수 경로, 아마 홍삼을 밀수하는데 쓰일 길을 알려주었다.

“가장 먼저 삭주(朔州) 일대에 뗏목을 타고 건너는 길이 하나 있습니다. 나머지는 제법 멀리 돌아와야 하는 길이지요.”

제법 충실한 정보이기에 아예 종이에 옮겨 적어두었다. 정하상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역관인 유진길이 있으니 마침 필요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슬쩍 물어나 보았다.

“이 말을 요긴한 데에 쓸 것이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또한 용선(用善 - 유진길의 자)께 여쭈어 보고 싶은 일이 있는데 역관으로 일하시면서 아편에 빠진 사람을 보셨습니까?”

“아편이라 하셨습니까? 청나라를 오가며 아편으로 신세를 망친 이 나라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심한 경우에는 채무를 짊어지고 청나라에서 머슴 생활을 하기도 하지요.”

조선에서는 1850년부터 아편에 대한 기록이 있지만 아편에 접촉한 사람이 이 시기에도 있으리라 짐작했고 예상이 맞았다. 어차피 궁극적인 목적은 중독 치료 실험이니 일부러 고개를 숙이며 침울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아편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는 이들을 모아 오시면 어떻겠습니까. 서역에도 아편이 퍼져 있어서 고통을 겪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를 치유하는 방법을 여럿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아편에 빠진 사람을 치료한다 하였습니까? 말이 되는 말씀을 하시지요.”

유진길이 허탈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중독의 심각성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는지 여전히 허탈한 표정으로 내 요청에 응답하였다.

“재주가 많은 분이라는 이야기는 듣긴 하였지요. 아편에 빠진 이들을 알아보겠습니다.”

“이제 이야기가 다 되었군. 하상이는 제발 처신을 주의하고 때를 기다리도록 하여라.”

정약용은 피로가 몰려왔는지 눈을 부비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더니 차를 들이켜 졸음을 쫓아내고 나에게 물어보았다.

“궁금한 것이 있다네. 청나라에 아편을 파는 영길리는 아편이 더 많이 퍼져있을 것이 아닌가. 청나라에선 아편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식솔을 노비로 파는데 영길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길거리에서 버젓이 아편을 팔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문호(文豪)는 물론이요 노동자와 평범한 여식들 심지어 갓난아이를 재우는데도 아편을 먹입니다.”

엄연한 진실이다. 가짜 인생에는 굳이 언급하지 않은 이유가 ‘상비약’ 이기 때문이다. 편의점에서 간단한 진통제를 사듯이 구멍가게에서 아편을 사는 나라가 지금의 영국이다.

정약용은 더 말 할 힘도 없는지 멍하니 천장을 보았고 일준이는 기가 찼는지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

“미친놈들 소굴 아니야? 양 조절도 없이 모르핀을 먹다 오버도스(overdose - 약물과용)로 죽어버리면 책임은 누가 지냐? 높으신 양반들 주변에는 피해자가 없나?”

“많아. 문학이나 각종 저술에도 아편의 해악에 대해 논하고 있지. 훗날 영국 총리가 되는 글래드스턴의 여동생도 아편 중독으로 지금쯤 폐인이 되어있을 거다.”

영국에서 아편은 이미 문화가 되었다. 조지 바이런은 아편을 먹어 봤다.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의 남편 퍼시 셸리도 아편을 먹었지. 설령 먹지 않은 사람도 서적에서 이들을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이 시기 낭만주의 문학은 과장을 섞으면 아편의 낭만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났다고 봐도 되리라. 잠시 생각하다 할 말을 잃은 일준이에게 질문을 했다.

“물론 공식 입장은 중독 증상 없음, 의존성 있음이라는 말이 전부야. 심지어 매일 아편 삼십 그램을 먹는 사람도 있었어. 이런 경우라면 어느 정도 수준이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아편 속에 들어 있는 모르핀 양으로 환산하면 말기 암환자가 진통을 위해 투여하는 양의 열다섯 배야. 그 사람 며칠 만에 죽었냐?”

“지금쯤이면 아편 끊고 멀쩡히 살아있는 양반이다. 토머스 퀸시라는 소설가였나?”

자신의 아편중독 경험에 대해 자서전을 쓴 사람이니 믿을 수 있는 자료가 분명하겠지. 일준이는 너무나 답답했는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내가 생각하지 못 한 의견을 제시했다.

“그럼 영국에도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자. 아예 다산 선생님이 집필한 서적을 논문 형식으로 번역해 영국에 보내면 어떨까? 제대로 된 논문을 읽으면 의문을 품는 사람이 생길거야.”

“아예 영국도 홍삼 구매국가로 만들자고? 구매는 모르겠지만 영국 무역선을 통해 광주 일대에 홍삼 중계 무역을 실시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정약용이 집필할 서적으로 홍삼 가격을 끌어올려도 한계는 명확하다. 추정하건데 한 근당 은자 150냥이 한계며 이마저도 1만근에 달하는 물량이 정식으로 수출되면 가격이 떨어지리라.

북경에서 모든 물량을 파는 우둔한 짓을 저지르느니 판매처를 분할하는 것 또한 답이다. 영국의 무역선을 통해 광주 같은 청나라 남쪽에 팔면 가격을 최소한 두 배로 올릴 수 있다.

판매처 분할로 더 큰 이득을 챙기는 조정 중신들은 영국 무역선과의 거래를 주선하고 우호적으로 나설 것이다. 물론 다른 곳에서 문제가 발생할 것이 분명했고 정약용은 이를 생각했는지 콧방귀를 뀌며 말하였다.

“소문이 퍼지면 각지의 서원에 있는 유생들이 서역과의 통상(通商)을 중단하라 할지도 모르네. 이들과 홍삼을 눈 뜨고 썩히게 생긴 권신들의 싸움이 벌어지면 볼 만 하겠군.”

이미 골수 성리학자들에게 호되게 당한 일준이는 아예 웃음을 터트렸고 나도 웃어댔다. 일을 정리한 정약용은 자신이 할 일부터 정리하여 말하였다.

“우선 아편에 빠진 이들에 대한 화두는 내가 제시할 것이네. 주상전하께 말씀을 올려 이들도 조선의 백성들이니 내 사재(私財)를 털어 치유할 것을 청해보겠네.”

“저는 논문의 형식에 맞게 다산 선생님이 치료하는 환자를 분류하고 상세를 적어나가겠습니다. 영국으로 보낼 논문을 같이 준비해 두면 더욱 좋겠군요.”

“저는 논쟁의 씨앗을 미리 뿌려놓도록 하겠습니다. 홍삼에 관련된 서적이 퍼져나갈 때 쯤 한 번에 움직이면 모든 일이 제대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홍문관에서 조용히 다음 서적을 집필하며 조만영을 비롯한 풍양 조씨가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내 기대와 다르게 조만영의 첫 목표는 일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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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고들을 단속하여 막대한 예산을 얻은 호조는 밤을 지새우다 시피 업무에 몰두하였다. 본래 차기 국구(國舅 - 왕비의 아버지)로 권력을 휘둘러야 할 조만영도 이 업무에 끼어 있었다.

한숨을 내쉬며 장계를 정리한 조만영은 이를 갈아댔다. 효명세자의 대리청정 이후 풍양 조씨를 더욱 번창시킬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얼마 전부터 일이 틀어졌다.

“이제 자금도 부족한데. 이제 두 달 뒤에 수확할 인삼에 매달려야겠군.”

열수환 사건에 직격탄을 맞은 세도가가 풍양 조씨였다. 김조순은 수많은 이들에게 혐의를 덮어 씌웠고 이를 막아내기 위해 많은 자금을 날려버렸다.

다음에는 경연(經筵)에서 박현상이라는 애송이가 불란서의 역사를 이야기하였고 세도가들이 이에 호응하였다. 급기야 호조의 자금을 융통하여 백성들을 구휼하라는 명이 내려졌다.

이 일을 되새긴 조만영은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혼자 속을 썩이다가는 울화통이 치밀어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홍문관 제학(提學)으로 부임한 동생 조인영과 말이라도 하려고 홍문관에 방문했으나 자리에 없었다. 잠시 시간을 때우려고 책을 뒤적거리니 조만영의 입장에서 원수 같은 놈과 눈이 마주쳤다.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막대한 타격을 입힌 박현상이 태연하게 글을 필사하고 있었다. 윽박지를 마음이 가득했지만 다른 사람이 보고 있으니 화를 눌러 참고 좋은 말을 하였다.

“박현상 자네의 필력이 일취월장하니 다행이로군. 홍문관 대제학께서 자네를 중히 여기시는 것 같은데 기대해 부응하니 좋은 일이야.”

“호조판서께서 저를 칭찬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더욱 정진하여 서역에서 일어난 중요한 일을 널리 알릴 마음만이 가득할 뿐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조정에서 내치고 싶었지만 함부로 손댈 수 없는 놈이었기에 속마음만 썩힐 뿐이었다. 마침내 조일영이 돌아와 조만영에게 인사를 올렸다.

“형님께서 찾아와 계실 줄은 몰랐습니다. 어인 일이신지요.”

“잠시 논할 것이 있어서 찾아왔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자꾸나.”

으슥한 행랑(行廊)에 등을 기댄 조만영은 머릿속의 잡념을 정리하였다. 이를 보고 있던  조인영은 형이 온 이유를 예상하고 말문을 열었다.

“형님께서 무엇을 염려하고 계신지 익히 알고 있습니다. 세자저하께서 보름 뒤에 어영청을 점검하시겠다고 명을 내리셨는데 이를 염려하시는군요.”

“네 말이 옳다. 지금 어영청의 상황이라면 세자저하께서 진노하실 것이 분명할 것 같구나. 화약이 십만 근 가까이 비축되어 있어야 하는데 얼마나 쓸 수 있는지 아느냐.”

“쓸 수 있는 화약은 기껏 해야 이만 근에도 미치지 못 합니다. 자칫 잘못하면 일만 근 아래일지도 모르지요. 더군다나 병장기의 상태도 끔찍할 것입니다.”

조만영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 병장기의 오 할은 녹 덩어리일 것이며 화약은 말 할 필요도 없었다. 호조에 또 막중한 일이 쏟아질 것이라 짐작한 조만영은 푸념을 늘어놓았다.

“모두 천둥벌거숭이 두 명과 다산 때문이지. 다산이야 공을 세웠으니 내가 탄핵을 할 방법도 없지만 두 젊은 녀석들은 당장에라도 내쫓고 싶어지는구나.”

“저 또한 마찬가지이지만 섣불리 손대어서는 아니 되는 법입니다. 박현상은 제 아래에 있으면서도 매사에 신중하고 언변이 밝으며 이미 풍고(김조순의 호) 대감과 연을 맺었습니다.”

“그러니 둘 사이에 끼어 들 방법이······ 있구나.”

박현상은 홍문관에 근무하고 조일준은 호조의 속아문인 장흥고에서 근무한다. 이들이 서로를 의형제로 삼았다고 말하였지만 돈과 출세 앞에선 형제 사이도 틀어지기 마련이다.

22세에 불과한 애송이가 이간질을 경험해 볼 일이 없을 것이 분명하다. 이간질을 통해 둘의 사이가 틀어지면 서로 싸우게 만들면 충분한 일이라 판단하고 말하였다.

“너는 지금부터 박현상을 우대하고 여러 일을 가르쳐 네 사람으로 끌어들이려 하여라. 나는 관원들을 시켜 조일준을 매몰차게 대할 것이니 조만간 둘의 사이가 갈라질 것 같구나.”

“옳은 말씀입니다. 둘이 한 몸처럼 움직이면 서로가 서로를 돕는 법이지만 갈라져서 한 명씩 나누어지게 되면 몰아내기가 편한 법이지요.”

몇 달이 지나면 둘 중 하나를 찍어내기 충분한 명분이 생길 것 같았다. 다음 날 조만영의 명령이 전해지고 조일준의 행동을 지적하던 관원들은 더욱 심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창고 정리를 하는 동안 열수환 제조용 기계를 점검하고 있던 조일준에게 언어적 폭력이 쏟아졌다. 이 언어적 폭력은 현대인에게 있어서 너무나 따스한 충고였다.

“박진일(振佚 - 박현상의 자)은 이미 영돈령부사 대감의 마음에 들고 홍문관 제학께서도 마음에 든다고 하셨네. 자네는 사소한 물건이나 매만지고 있으니 부끄럽지도 않은가?”

“기이하고 사특한 서역의 술수로 백성들의 뱃속에 들어갈 곡식을 헛되이 소모하지 않던가. 자네가 만든 기물의 값이 얼마인지는 아는가? 차라리 서적을 쓰도록 하게.”

평상시와 다른 충고를 들은 조일준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기껏해야 어제 일어난 일인데 하루 사이에 홍문관에서 호조까지 소문이 퍼질 리가 없었다.

조일준이 답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기자 장흥고 담당 주부(主簿)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더니 이 시대에는 험악한 말이지만 현대 기준으로는 너무나 온정이 넘치는 말을 하였다.

“이렇게 되면 후일에 무얼 하겠나. 지금이야 세자저하께서 중히 여겨 자네를 여기에 둘 뿐이지 잘못하면 선친의 묘소를 옮기고 외방에 내려가 밭을 갈아야 할지도 모르네.”

“제 재주가 부족하여 널리 쓰이지 못하게 되었으니 대단히 죄송합니다.”

“이럴 때는 송구하다는 말을 쓰는 것일세. 제사를 하여도 축문조차 읽지 못 할 것 같군.”

이 시대 기준으로는 부모에 대한 효도와 공경도 모르는 불효막심한 놈이라는 욕설을 듣게 되었지만 수많은 욕설로 단련된 조일준은 개의치 않았다.

현대에서 들은 욕설과 폭언을 생각하면 오히려 점잖은 말이었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조일준은 피식 웃으면서 얼마 전에 구한 말린 해초를 확인하고는 말하였다.

“이간질 한 번 더럽게 못 하네. 내가 대학원에서 당할 건 다 당한 사람이다 애송이들아.”

조일준의 대학원 생활을 망가트린 것이 이간질이었다. 그의 지도교수를 권력다툼에서 몰아내기 위하여 대립중인 파벌은 온갖 수단을 동원하였고 결국 성공하였다.

이런 어설픈 이간질은 당하고 싶어도 당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이들을 위한 선물을 조금 더 가공할 방법이 떠오른 조일준은 선물을 전해줄 날을 기다리며 다시금 자신의 일에 몰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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