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 14편
(2장 - 양성화(陽性化) (1))
조만영을 앞세운 풍양 조씨와 친밀해지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다산 정약용 외에는 없으니 만날 필요가 있었다. 퇴근하자마자 일준이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하니 녀석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너는 김조순이 친한 척을 하고 세자저하께서 앞에 계시니 직접적으로 공격을 안 당했지. 나는 처음 창고정리를 할 때부터 눈치를 주더니만 이제는 사사건건 간섭하더라.”
일준이도 나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일준이는 음흉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펴보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너에게도 줄 선물이 있지만 미리 시험하기 위해 녀석들을 사용할거야. 명분도 충분히 챙겨두고 시작한 일이니까 선물 잘 받을 준비나 하라고.”
“그 선물이 독은 아니겠지. 표정을 보니 며칠 동안 죽도록 고생할 물건 같은데.”
“내가 화학을 배우면서 사람에게 독을 먹일 생각을 하겠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약용의 집으로 향했다. 다음 계획을 논의하겠다고 말을 해뒀으니 정약용은 우리의 방문을 대비해 하인들을 다른 곳으로 보낸 뒤 우리를 맞이하였다.
“어서 사랑채로 들도록 하세. 그렇지 않아도 풍고(김조순의 호)와 대화를 나누었는데 조정의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네.”
표면상으로는 학문을 배우는 자리였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할 수 없는 정세에 대해 논하는 자리였다. 자리에 앉은 다음 오늘 일을 정리하여 말했다.
“세자저하께 서적을 올려 서역의 여러 문물에 대해 알려드렸습니다. 품계가 낮아 실무에 임해야 하는 이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더군요.”
“내가 여러 서적을 쓴 이유가 무엇이겠나. 외관(外官 - 지방의 관원)과 향리들의 태반은 백성을 가혹하게 착취하며 이를 제지해야 할 관료들은 현실에 대해 모르고 있지.”
“그나마 세도가에 속한 이들은 세자저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만 형조판서인 조만영은 극렬히 반대하더군요.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감을 알아차렸습니다.”
“자네가 본 바와 같이 풍양 조씨는 저런 행동을 할 만 하다네. 내가 조만간 안동 김씨에게 보낼 약재를 보게나.”
정약용이 약재 꾸러미를 보여줬는데 하나같이 최고급 약재가 분명했다. 이런 귀한 약을 입에 넣을 수 있는 사람은 이 나라에 몇 명밖에 없었다.
“김조순이 지난 한 달 동안 풍양 조씨의 속한 사람 가운데 이 할을 탄핵하였다네. 조만영이 필사적으로 이를 수습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이십만 냥 이상의 자금을 소모하였지.”
“자금을 소모하였다니요? 그 돈은 결국 호조로 귀속되는 것 아니었습니까?”
“당연히 김조순이 압박을 가하여 내수사를 비롯한 각 부처에 분할되었다네. 자네는 김조순이 홍문관에 먼저 드나든다 생각하였지만 실제로는 밤을 지새우며 각 관청을 움직였다네.”
예순이 넘은 노인이 밤을 지새우는 짓을 하다니 권력에 미친 괴물이 아닌가. 현대에도 저런 짓을 하면 갑자기 죽을 지도 몰랐다. 정약용은 나에게 신중한 표정으로 말하였다.
“그저 다리를 절룩거리는 것이 전부가 아닐세. 신장과 간이 크게 손상되어 오랫동안 정양(靜養)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할 것이네. 일전에 했던 말을 기억하는가?”
김조순이 처음 만났을 때 했던 말은 체면치레 삼아 선물을 보내라는 뜻이 아니었다.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 것을 미리 예측하여 부탁을 한 것이다.
당분간 김조순을 움직일 수 없었다. 아무리 정치적 이득을 앞세워도 김조순이 덜컥 죽어버리면 이득은커녕 연줄이 끊겨버린 신세가 되리라.
“그러하면 풍양 조씨를 상대할 때 안동 김씨의 힘을 빌리는 것은 힘든 일이겠군요. 이거 참 막막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뭐라도 대화를 나눌 방법이 있어야 하는데요.”
조만영은 우리를 싫어할 뿐 직접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 알게 모르게 압박을 가하고 정책 수립을 반대하리라. 이런 상황에서 친한 척을 해보았자 이용만 당하리라.
약점을 잡거나 충분한 이득을 챙겨주어 끌어들이는 방법 혹은 둘 다 사용하는 것이 답이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일준이는 소문을 들었는지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하였다.
“제가 일하고 있는 장흥고가 호조의 속아문(屬衙門)이 아닙니까. 장흥고에 부임하고 나서 창고를 모조리 뜯어 고쳤는데 효과가 좋아 풍저창(豊儲倉 - 국가의 물품을 관리하는 창고)도 손을 대었습니다.”
“장흥고에서 명부에만 있고 안을 맴돌다 썩어 문드러진 물건들이 수도 없이 나왔다 하였지. 곳간을 정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데 꼭 필요한 일을 하였네.”
“풍저창에서 며칠을 일하였는데 홍삼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조만간 풍양 조씨의 사람들이 홍삼을 만들어 올릴 것이라 하였지요. 인삼을 많이 기르는 것 같습니다.”
풍양 조씨가 홍삼을 대규모로 만들어 조정에 올렸다는 기록은 없다. 이 시대의 홍삼은 정기적으로 청나라에 팔아 나라의 수익을 보충하고 밀매로 팔려나가 세도가의 자금원이 되었다고 추정하고 있었다.
조선의 기록체계가 가까스로 중앙만 돌아가는 시기라 지방에 대한 세부 사항은 현대에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 하였다. 이런 상황에 일준이가 정보를 물어왔으니 바로 질문을 하였다.
“풍양 조씨에서 홍삼을 얼마나 만들어서 어떻게 올리는지는 알 수 있을까?”
“족히 일천 근은 올릴 것이라 말은 했는데 상세한 일은 모르지. 내가 괜한 말을 했나? 홍삼을 팔아서 돈을 얼마나 벌 수 있다고 그런 사소한 것을 좋다고 이야기 했지.”
“광주(광저우) 기준으로 홍삼 시세는 한 근당 은 오백 냥(18.75kg) 이상이야.”
“거짓말 하지 마. 그럼 같은 무게의 금보다 훨씬 비싼 물건이 홍삼이잖아?”
“물론 지금 판매 시세는 훨씬 싸지. 공식 무역으로 북경에서 파는 홍삼 가격은 한 근당 은 일백 냥에 포삼세(包蔘稅 - 수출하는 홍삼에 부과하는 세금)가 은자 서른 냥 정도지.”
일준이는 질린 표정을 지었고 정약용은 전성기 시절, 지금보다 2배 이상 비쌌던 홍삼 시세를 기억하는 사람이라 아쉬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한 정보를 입수했으니 현대의 정보와 대조할 필요가 있었다.
잠시 집에 다녀와 현대에 인쇄한 프린트를 몇 장 챙겨왔다. 조선 말기의 홍삼 무역과 관련된 연구 결과였는데 정약용에게 이를 보여주며 말하였다.
“이전에 자료를 보면서 의심하던 것이 있었습니다. 본래 역사에서는 홍삼 무역량이 급격히 증가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누가 물량을 만든 것인지 감을 잡지 못 하였지요.”
“어디 보세. 올해가 1830년이고 이 년 뒤인 1832년에 포삼 무역량이 삼천 근에서 팔천 근으로 갑자기 올라가는군. 더군다나 포삼세가 한 근당 은자 열두 냥 닷 푼으로 내려갔다고?”
자료에 의하면 조선의 홍삼 수출량은 1827년 3천근으로 증가하고 1829년 까지 이를 유지하였다. 그러다 1832년 갑자기 8천근으로, 1841년에는 2만근으로 폭증한다.
특히 1832년이 중요한 시기였다. 이전까지는 3천근 내외를 수출하다 갑자기 세 배의 물량을 수출한 격이다. 재배하는데 오 년이 걸리는 인삼을 세 배나 만든다면 풍년 따위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포삼세가 내려가자마자 밀매하던 인삼을 수출하였군. 아마 이 조선팔도에 많게는 일만 근 정도의 인삼이 밀매를 위하여 재배될 걸세. 그렇지 아니하면 설명할 길이 없다네.”
“그러하면 이 밀매를 자행하는 사람 중 가장 큰 손이 풍양 조씨가 아니겠습니까?”
마침내 풍양 조씨의 약점을 잡았다. 먼저 자리를 잡은 안동 김씨와 권력 다툼을 벌이는 자금원이 바로 대규모 홍삼 밀매였다.
산골 곳곳에는 풍양 조씨와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인삼을 재배하고 홍삼으로 만들어 밀매까지 마치고 수익을 배분하고 있으리라. 정약용은 이를 알아차리고 조심스럽게 말하였다.
“잘못하면 벌집을 쑤시는 일이 될 수 있지 않겠나. 풍양 조씨가 홍삼 밀매를 가장 적극적으로 행하는 가문이지만 다른 세도가도 개입하여 있을 것이 확실하네.”
“전체를 상대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홍삼을 얼마나 밀매하던 간에 이를 양성화(陽性化)하는 일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국고를 채워 두고 경제를 건실히 해야지요.”
“밀매되는 홍삼을 모조리 정규 판매로 전환한다고? 내가 경제는 잘 모르지만 수요 공급 법칙 때문에 홍삼 수출가격도 떨어질 거고 세금을 떼면 남는 돈이 없을 거야.”
정약용도 일준이도 조심스럽게 접근하는데 나에게도 생각이 있었다. 여러 정보를 취합하여 즉석에서 홍삼 수출 양성화에 관련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홍삼의 기본 가격부터 끌어 올리면 어떻겠습니까? 지금 청나라에서 홍삼이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가 아편 중독 해독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돌아서 홍삼을 사들이기 때문입니다.”
“아편이면 앵속(罌粟 - 양귀비)에서 뽑아낸 진액을 응축한 물건이 아닌가. 이것이 중독을 일으키고 홍삼이 해독한다니 말이나 되는 일인가? 조일준 자네는 이런 일을 알고는 있나?”
“관련 논문을 본 적은 있습니다. 아편의 핵심 성분인 모르핀 중독을 홍삼의 핵심 성분인 사포닌 복용으로 완화시킨다 하였지요.”
정약용이 눈을 치켜뜨며 바라보았는데 큰 효과는 없을 거다. 홍삼이 아편중독을 치료할 수 있다면 현대 병원에서도 마약 중독자에게 홍삼 추출물을 먹이겠지. 당연히 예상대로의 답변이 나왔다.
“물론 추가 연구결과가 없는 것으로 보아서는 사람에게 큰 효과가 없는 것 같습니다.”
“자네들의 시대에는 효과가 없을지 몰라도 이 시대에는 아니라네. 청나라 사람들이 아무 효과도 없는 홍삼에 매달리는 일은 없을 것이니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 것이네.”
“최소한 몸이 반응은 할 겁니다. 그러하면 아편중독을 치료하는 홍삼의 약효를 검증하여 다산 선생님 명의로 서적을 저술하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다만 이 나라에는 앵속을 많이 기르는 사람도 없고 아편에 빠져든 사람도 없으니 문제라네. 그렇다고 엄한 사람에게 아편을 먹여 중독시킬 수 없으니 난감할 뿐이지.”
하나의 해결책을 제시하면 다른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정약용도 일준이도 관련 서적을 저술하기로 하였으니 이제 실험을 위한 중독자가 필요하였다.
더군다나 풍양 조씨를 움직이기 위해서 밀매가 성행한다는 소문에 의존하면 역으로 공격당할 수도 있었다. 약점을 잡으면서 증거를 제시하여 물러날 수 없게 하고 대안을 택하게 하는 것이 답이다.
그러니 정약용에게도 일준이에게도 조금 미안한 일이지만 필요한 사람이 있었다. 둘이 어떤 방법으로 실험을 진행할지 이야기 하는 동안 마음을 정리하고 말했다.
“감히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선생님의 조카인 정하상과 면담을 할 수 있겠습니까?”
가급적 많은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데 정약용의 조카인 정하상이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정약용은 자신의 조카를 끌어들이자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상이는 지금 식솔들과 함께 도성에 머물고 있다 하였네. 듣자하니 일을 구할 방도가 없어 부경사신(赴京使臣 - 북경을 보고 오는 사신)에서 여러 차례 짐꾼으로······. 북경?”
정약용은 정하상이 북경에 한 번도 아니고 여러 차례를 오간 이유를 금방 알아차렸다. 그는 분노를 다스리려고 머리를 감싸 쥐고는 한탄하듯이 말하였다.
“생각하여 보니 북경에 여러 번 오갔다 하였네. 아직도 서학을 버리지 못하고 기어코 흉사(凶事)를 일으키려 하는군.”
“일이 잘만 진행되면 서학도 받아들여질 것이며 누구도 다치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일에 필요한 것은 신부를 영입할 때 사용할 홍삼 밀수 경로입니다.”
“이는 좋은 일일세. 경로를 알아내면 하상이도 몇 년간 가만히 있을 것이 아닌가. 조만영도 하상이를 통하여 알아낸 밀매 경로를 이야기하면 중요히 생각할 걸세.”
정약용은 한참동안 생각하고 고민하더니 며칠 이내에 답을 주겠다면서 우리를 돌려보냈다. 일준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니 녀석은 입을 비쭉 내밀고 투덜거렸다.
“십자가상을 부수는 일을 겪게 하더니 이제는 순교자이자 성인을 압박하려고?”
“우리가 움직이면 조만영에게 들킬지도 모르니 이미 정보를 입수한 사람을 통해서 알아내야지. 여기에 우리에 대한 소문을 정하상이 들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생각해보니 네 말이 맞네. 우리가 선박을 통해 몰래 조선으로 들어왔다는 소문을 듣고 움직이면 천주교 신부가 몇 년 빨리 조선으로 건너올지도 몰라.”
일준이는 신앙심을 지키느니 박해로 인해 죽을 신자들을 염려하는 녀석이라 투덜거리는 것이 전부였다. 며칠이 지나고 인정(人定 - 통행금지 종)이 울릴 무렵 하인이 문을 두드렸다.
“다산 영감께서 여러분을 뵙고자 합니다. 속히 방문하시지요.”
마침내 정하상이 방문하기로 한 날 같았다. 잠이 덜 깨 휘청거리는 일준이와 함께 정약용의 집으로 향하니 정약용은 사랑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녀석이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라 시일이 제법 오래 걸렸다네. 형수님이 말하여도 듣지 않다가 자네들을 소개할 것이라 하니 그제서 답을 하더군.”
마침내 인경이 울리기 시작했을 때 정약용의 집 뒷문을 두드린 사람이 있었다. 하인이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자 정약용은 마당에 나가 인사를 받았다.
“숙부님을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하다 뒤늦게 인사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이 친구는 역관인 유진길, 자는 용선(用善)이라 합니다. 오랜 시일동안 저와 함께하였습니다.”
나서지 않고 방 안에서 문틈으로 지켜보고 있으니 일준이가 둘의 모습을 살펴보고 말했다.
“유진길 아우구스티노, 정하상 바오로를 도와 북경에 오간 사람이야. 아마 이 시기면 북경까지 가서 세례를 받고 돌아왔을걸.”
“잘 되었군. 정보를 얻어내려면 현직 역관들의 정보도 필요했는데 나쁘지 않아.”
아마 정하상은 우리와 대화를 나누어 천주교 신부를 들여올 해로(海路)를 찾으려는 것 같았다. 정약용은 몸을 돌리자마자 표정이 굳었지만 억지로 화기애애하게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내 너희에게 소개할 사람이 있으니 방으로 들어오거라.”
정하상, 유진길과 서로 통성명을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우리에게 시선을 집중한 둘을 살펴보던 정약용은 정하상의 손을 살펴보며 측은한 듯이 말하였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구나. 북경에 사신으로 여러 차례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몸이 많이 상하였고 손발이 부르터 아직도 흔적이 남아있구나.”
“먹고 살기 위해서는 사력을 다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벌이가 제법 쏠쏠합니다.”
“아무렴, 북경에 다녀올 적에 물산을 조금만 들여와도 먹고 살기 충분하지 않더냐. 다만 네가 흉사(凶事)를 들여올 것 같구나. 이를테면 서학과 연관된 흉사이다.”
정하상이 표정 관리를 못 하고 눈가를 부들부들 떨며 정약용을 바라봤는데 정약용도 정하상을 노려보고 있었다. 정하상은 눈치를 보다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숙부님께서 영길리에서 건너온 젊은이들을 소개하여 준다 하셔서 안심하였습니다. 정녕 제 뜻을 무너트려 배교(背敎)의 길을 택하게 하실 작정이십니까?”
“나는 안심하지 못 하였다! 네 행동으로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셈이냐! 이 땅에 서역의 승려를 데려오면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사람이 죽을 것이다!”
조금 더 먼 훗날이라면 정하상도 용기를 내어 답을 할지 모르지만 시기가 이르다. 아직 교황청으로 보낸 청원의 답장도 오지 않았으니 뭐라 답도 못 하였고 침묵이 이어졌다.
한참을 노려보던 정약용은 나와 이야기해둔 대로 정하상을 설득하기 위한 말을 시작했다.
“피를 흘리지 않고 네 뜻을 이루어 줄 생각으로 부른 것이다. 나와 여기 있는 두 젊은이들은 이 나라가 서역과 통교(通交)를 맺기를 원하고 있다.”
“무어라 하셨습니까? 서역과 통교라 하셨습니까?”
“이들이 원하는 것은 평범한 일이 아니다. 통교를 하는 중에 서학을 익힌 승려들을 설득하여 이 나라의 법도와 서학의 법도가 서로 어우러지도록 만들 뜻을 가지고 있더구나.”
정하상과 유진길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렸는데 우리의 말을 도저히 믿지 못하는 눈초리였다. 그래도 이들을 설득할 필요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