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 13편
(2장 - 홍문관 (2))
새벽별을 보고 출근하며 저녁별을 보고 퇴근하는 생활이지만 그렇게 피곤하지는 않았다. 한 달이 지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대학원 생활과 크게 다를 것도 없었다. 세수를 하니 고용된 머슴이 우리에게 아침 식사를 내왔다.
“나리들, 식사를 준비하였으니 어서 드시지요.”
“오늘도 밥상을 차렸으니 고생이 많군. 자네는 어서 돌아가게.”
“알겠습니다. 궐에 다녀오시는 동안 바깥을 잘 청소해 두겠습니다!”
일준이는 권투 연습은 물론이요 트레이닝까지 하였는데 아침부터 직접 장작을 패서 쌓아두기까지 하였다.
현대라면 밥을 먹으며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는데 이제는 충실하게 식사에 집중하니 저절로 여러 대화가 오갔다.
“컴퓨터도 없고 스마트폰도 없으니 인생이 점점 건전해지는 것 같아. 다른 취미활동이라도 만들어 보면 어떨까?”
“주변 사람들이 슬슬 당나귀라도 사서 승마를 배우라 하던데 내 덩치에 당나귀는 뭔 당나귀야. 서양에서 커다란 말이라도 수입해야 하나?”
“먹이가 많이 들고 관리가 귀찮겠지만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척단이 지금 만주 일대를 돌아다니고 있어. 그들이 쓰는 말을 사들이면 네 체격에도 충분할거야.”
“청나라는 대체 뭘 하고 있어서 그런 짓을 내버려 두나.”
그야 아편에 중독되어 허우적거리고 있지. 식탁을 보니 콜레라를 비롯한 수인성 전염병과 기생충의 유입을 최대한 줄이기 위한 식단이 준비되었다.
하인에게 현대의 지식을 이야기할 수 없었기에 어린 시절부터 외국에서 살아서 음식에 적응하지 못 한다고 둘러댔다. 지금도 신선한 냉이 대신 삶은 냉이무침을 먹었다.
조선시대에는 밥상에서 대화를 잘 나누지 않지만 우리끼리 있을 때는 상관이 없었다. 녀석은 자반구이를 아주 조금 뜯어먹더니 짠맛에 밥을 밀어 넣으며 말했다.
“너는 요즘 꾸준히 글을 쓰는데 나는 창고 정리부터 하고 있어서 답답하다.”
“창고 정리면 너무 사소한 일 아니야? 재주를 좀 보여줘야지.”
“당연하지만 다산 선생님이 지시한 물품을 준비 하면서 창고도 정리하는 거야. 장흥고(長興庫)는 온갖 물건이 모이는 장소이지만 관리도 제대로 안 되었거든.”
녀석은 장흥고에서 관리하는 창고를 확인하고 충격을 받았는지 입을 삐죽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연구실 기자재 정리하던 습관이 남아있어서 아예 진두지휘를 하고 있다. 나도 몸을 움직여서 창고 전체를 싹 다 밀어내고 새로 뜯어고치고 있어.”
“창고 정리가 끝나면 아예 샤워장을 만들어서 몸을 씻기고 있냐?”
“이도 닦고 있지. 인부들은 내가 유난을 떨고 있다며 말했지만 한 번 써보니 관원들도 치약을 좀 만들어 달라고 하더라고. 불소가 안 들어가는 치약이라서 만들기는 쉬웠어.”
우리가 유난히 청결하게 사는 것 같지만 현대인으로서 최소한의 위생은 지키며 살아가려 하였다. 일준이와 헤어져 홍문관으로 가장 일찍 출근해 어제 미쳐 못 베낀 글을 마무리 하려고 붓을 놀렸다.
내 자리 옆에는 새로 엮어둔 나팔륜 일대기, 내가 이야기한 나폴레옹의 인생사가 쌓여 있었다. 실력이 부족한 내가 글을 베끼는 속도보다 책으로 집필하는 속도가 빨랐다.
책에는 나폴레옹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군대에 대한 지식도 없고 사회에 대한 지식도 없으면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잠시 손목을 주무르고 있는데 문이 열리며 익숙한 사람이 들어왔다.
“박현상 자네가 먼저 와 있을 거라 생각하였네. 관원이면 마땅히 보여야 할 모습이지.”
“대제학 대감님을 뵙습니다. 이 이른 시각에 어인 일로 오셨는지요.”
“늙으면 잠이 없어진다네. 자네는 잠이 많은 한창 나이인데 참 근면하기도 하군.”
이 시간에 홍문관에 들어온 관원은 나와 김조순이 전부이다. 그는 내가 이틀 전에 제출한 나폴레옹의 이야기를 다 읽었는지 주변을 슬쩍 살펴보다 말하였다.
“참 재미있는 일도 다 있군. 그렇게 빼어나던 사람이 충실한 아내를 두고 전조(前朝 - 이전 왕국인 부르봉 왕조)의 사람을 받아들이다니. 이는 잘못된 일이라네.”
“옳은 말씀이십니다. 처를 내치고 역성혁명으로 무너진 가문의 여인과 혼사를 맺다니요.”
김조순에게 한 달 동안 필체 검사를 받으며 은근슬쩍 내용을 추가했다. 연애 소설이나 무협 소설이 생각나도록 나폴레옹의 사적인 이야기를 조금씩 집어넣어서 보내준 것이다.
처음에는 조금 눈치를 주던 김조순이지만 어느 새 내가 보내준 역사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결국 매일 새벽마다 홍문관에 들락거리며 나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다음에는 무슨 서적을 집필하여 자네의 서예 실력을 끌어 올릴지 고민을 해 보게.”
“옳으신 말씀입니다. 제가 서역에서 배운 글이 여럿 있으니 개중 몇 개를 골라냄이 마땅해 보이는군요. 잠시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다음 책은 무엇으로 하면 좋을까 고민해보았다. 조정에서도 정리하여 여러 일을 배울 수 있고 김조순의 취향도 사로잡을 수 있는 내용은 무엇인가. 내가 생각에 잠기니 김조순은 슬쩍 일어나 주변을 돌아보다 말하였다.
“내가 여기에 있으면 다른 관원들이 업무를 제대로 행하지 못 할 것 같으니 돌아가 보겠네. 내가 따로 말은 안 하였지만 조만간 좋은 일이 있을 걸세.”
조만간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 말하고 돌아간 김조순의 뒷모습을 보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김조순은 고작 몇 달 사이에 확 늙어버렸다.
“저 나이에 칼춤을 추고 정치 체계를 개편하는 짓을 했으니 몸이 금방 축나버리지. 저러다가 역사보다 빨리 죽을지도 모르겠어.”
우리를 처음 만났을 때는 똑바로 걷던 김조순은 어느 새 늙어버려 다리를 절뚝거려 지팡이를 짚고 있었다. 그 동안 자신의 수명과 권력을 맞바꾼 행동을 한 것이다.
다시 책에 집중하니 홍문관 관원들이 출근하기 시작했고 조금 더 시간이 지나니 김조순이 말 한 대로 박규수가 나를 찾아와 활짝 웃으며 말하였다.
“세자저하께서 이틀 전에 나팔륜 일대기의 첫 권을 보셨네. 이를 몇 번이고 다시 읽으시더니 닷새 뒤 열리는 경연에서 이를 주제로 논할 것이라 하더군.”
“제 서적이 정말 경연에 쓰인다는 말씀이십니까?”
“자네도 쓰인다네. 세자저하께서는 서역의 역사에 능통한 자네를 필히 참석시키라 하였네. 그러하니 배움에 매진하여 경연에 임하게.”
유교 경전을 강의하는 경연 자리에 교양서적으로 내가 집필한 나팔륜 일대기가 올라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마 김조순이 나에게 고마움을 느껴 효명세자에게 추천하였으리라.
닷새가 지나고 경연이 시작되었다. 나와 박규수를 비롯한 젊은 신하들은 구석에 앉아 있고 좌우에는 현직 판서를 비롯한 사람들이 집결하였다.
다음으로 효명세자가 들어왔다. 외모가 수려하다는 평가가 있었는데 보통 수준이 아니다. 뚜렷한 이목구비에 날렵한 얼굴선을 보면 현대에도 먹힐 만한 외모이고 이 시대에는 누가 보아도 미남이라 할 사람이었다.
“부복(俯伏)을 하지 말고 편히 앉으시오. 오늘 논할 서적은 자치통감이 아닌 나팔륜 일대기로 하였으니 지난 닷새 동안 많이 배웠을 것이라 생각하겠소.”
중후한 목소리를 들으니 현대라면 탤런트가 많은 인기를 끌 정도가 아닌가. 효명세자는 나를 잠시 살펴보더니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반남 박씨에 속하게 된 사람이 서적을 작성하였으니 박규수가 서적을 읽어 보시오.”
“나팔륜은 대대로 법무에 종사하는 호족의 자제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였고 어린 시절부터 재주를 뽐냈습니다······.”
이 서적 안에는 조선보다 체계적인 서양의 교육 체계부터 군사 체계까지 많은 정보가 담겨 있다. 대소신료들은 중간에 나오는 프랑스 혁명의 이야기를 듣고 탄식하였다.
“맹자가 말하기를 이러한 일은 걸주와 같이 포악하고 아랫사람이 탕왕과 같이 어진 사람이야 가능한 일이라 하였사옵니다. 그러하니 이는 순리에 맞는 일이옵니다.”
“하오나 역성혁명이 일어나도 예(禮)가 없으며 신의(信義)가 없기에 서로 왕을 자처하며 날뛰었사옵니다. 이는 서역에 도덕이 필요하다는 증표이옵니다.”
프랑스 혁명에 대해 비판을 하건 좋은 평가를 하건 상관은 없지만 이걸 유교의 논리로 생각하는 것은 전혀 건설적이지 않다.
효명세자는 그러할 수도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는데 대부분이 비슷한 말을 하니 실망한 눈치였다. 그러니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으려고 나에게 질문하였다.
“박현상이 보기에는 불란서에서 일어난 역성혁명의 근본이 무엇인가.”
“국가의 재정이 무너져 백성들이 과도한 세금으로 고통을 겪는 와중에도 귀족들이 사치를 부렸기 때문이라 생각하옵니다. 이를 무력으로 억누르다 결국 변을 당하였사옵니다.”
다들 삼정의 문란에 대해 알고 있으니 고개를 끄덕였고 효명세자는 그제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효명세자가 턱짓을 하자 다시 박규수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나팔륜의 군대가 오지리(오스트리아)와 나선(러시아)의 삼십만 대군을 삽시간에 격파하였습니다. 양 군의 병사가 십만 명이 넘었으나 오지리와 나선의 군대가 무너졌다 하옵니다.”
“그 웅장한 모습이 한신과 흡사할 것 같구려. 강성한 군대를 이끄는 뛰어난 장수들이 있으니 저러한 일이 가능하였겠지. 그러고 보니 병사라 하였소? 전체 군대가 아니고?”
동양과 서양은 차이가 많지만 병사를 세는 방법도 다르다. 동양은 취사나 잡무를 담당하는 보인(保人)도 군대로 산입한다. 이렇게 되면 원정 기준 10만 대군은 3만의 병사와 7만의 보인으로 구성된다.
반면 서양은 순수한 전투 병력만 기록하고 보인들은 알아서 징집하거나 아예 현지에서 고용한다. 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효명세자의 질문에 답하였다.
“서역에서는 보인을 병사로 세지 아니하고 현장에서 징집하옵니다. 그러하니 나팔륜의 나선 원정에 참가한 군인은 육십만 명, 보인은 백이십 만 명이 넘을 것입니다.”
동양식 계산법으로 따지면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에서 양 국의 군대는 300만 명에 달한다. 효명세자도 다른 관료들도 관심을 보이리라 발언 기회를 주었는데 엉뚱한 관심이었다.
“서역의 군대는 전열보병이라 하여 사람을 징집하여 조총을 쏘아댄다 하옵니다. 이를 보니 북정일기(나선정벌 당시의 기록)가 떠오르니 전혀 나아지지 않았사옵니다.”
“군문의 이치에 밝지 않으면 화약을 헛되이 쓰는 격이옵니다. 서역의 군대는 옛적에 나선의 도적을 토벌할 때처럼 기병으로 보조한 포수로 산개(散開)하여 맞서시옵소서.”
아마 나선정벌에서 어설픈 전열보병을 상대하여 이길 수 있다 판단한 것 같은데 전열보병의 숙련도는 무서울 정도로 발달해 나선정벌 당시의 어설픈 전열보병이 아니다.
책에도 기록해 두었지만 지금의 전열보병은 100보(120m)에서 오 할을 넘게 적중시키는 조선 기준 특등사수로 구성된 부대나 마찬가지였다. 효명세자는 저런 소리를 듣고 실망한 눈초리로 말하였다.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오. 황사영은 아니더라도 다른 자가 글을 보내 서역의 군대가 이 나라에 올 지도 모르는 법이지. 그러니 많은 것을 알아둬야 하는 법이 아니겠소.”
“하오나 두 젊은이가 이 나라까지 당도하는데 일 년이 걸렸다 하옵니다. 그 머나먼 곳에서 군대를 옮겨 싸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 여겨지옵니다.”
“그리 하여도 소수의 병사를 파견할 수 있지 않소. 박현상 자네는 영길리에서 살 때에 병사들이 어떻게 훈련하는지 본 적이 있는가.”
어디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막막했는데 일단 병사의 훈련수준을 이야기하면 적당하지 않을까. 병기는 묘사할 수 없지만 훈련 수준 정도야 충분히 말할 자신이 있었다.
“신이 이 나라로 돌아올 생각이 없었다면 병졸로 부임할 생각도 있었사옵니다. 영길리의 군대는 일당백의 병사이며 이들은 전투에서 물러날 줄을 모르옵니다.”
“임전무퇴야 당연한 일이 아닌가. 이들을 어떻게 훈련하는가.”
“영길리의 군대는 명령을 듣는 순간 즉각 이행하옵니다. 제식(制式)이라는 것을 배우는데 여기서 실수를 저지르면 태형으로 사람이 죽을 때 까지 매질을 하는 경우도 있사옵니다.”
제법 긴 설명이었지만 내가 영국에 살면서 평범한 사람으로 얻을 수 있는 지식을 모조리 설파하였고 효명세자는 여기서 많은 정보를 얻어냈다.
“그러하면 수천 명의 적이 침략하여도 쉽게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소. 세상일은 모르는 법이니 훈련도감과 어영청을 비롯한 군문의 상황을 점검해야 할 것 같구려.”
“하오나 저들이 청나라를 넘어서서 더욱 동쪽으로 군대를 보낼 수 없을 것이옵니다. 보급을 위하여 청나라에 머물며 강대한 청군과 마찰을 빚을 것이옵니다.”
“그렇다 하여도 군문의 상황을 점검함이 옳은 일이오. 창칼에 녹이 슬고 화포가 무너졌다면 사소한 도적떼의 침략에도 무너지는 법이 아니겠소?”
효명세자는 새 정보를 입수하면 이 정보를 기본으로 삼아 대응하자는 움직임을 보였다. 반면 나와 박규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신하들은 현실을 유지하자는 주장을 하였고. 특히 두각을 드러낸 사람이 있었다.
“도고들에게 엄벌을 내려 많은 자금을 확보하였으나 군문에 들이기에는 부족하옵니다. 세자저하께서는 정세를 파악하여 서역이 혼란해질 무렵부터 응하시옵소서.”
“호조판서의 말이 틀리지는 않으나 점검은 필요한 법이지요. 지금까지 대리청정을 수행하며 군문에 일에 관여치 아니하였는데 이제는 한 번 확인할 때가 되었습니다.”
호조판서인 조만영은 풍양 조씨의 대표자이자 효명세자의 장인어른이다. 차기 국구(國舅)가 될 사람이지만 아마 김조순이 휘두른 칼춤에 정치적 타격을 많이 입었으리라.
호조에 들어온 막대한 자금을 활용해서 이 정치적 타격을 수습해야 하는데 자금이 홀랑 빠져나가게 생긴 격이다. 이 말이 끝나기가 신료들은 효명세자에게 반발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중진이 아닌 권력다툼에서 한 발 물러난 신하들이다. 이들의 명분은 자금 부족이나 행정 부족이면 양반이고 심지어 내가 서양에서 관직에 오르지도 않았으니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래도 효명세자는 자신의 의견을 관철하였다.
“그러하면 병장기를 점검하는 선에서 끝내겠소. 나머지 자금은 각지의 구휼을 위하여 물자를 비축하는데 쓰일 것이니 익히 알아 두시오.”
전체적인 양상은 세 부류로 나뉘었다. 나와 효명세자 그리고 박규수는 철저한 대응을 원한다. 반면 조정 중진들은 명분과 자금이 있어야지 움직이고. 반면 권력에서 벗어난 이들은 한심한 말만 하였다.
“세자저하께서 권하신 것이 자치통감이 아닌 서역의 사서라 염려하였는데 읽을수록 배울 점이 드러나옵니다. 머나먼 서역은 도덕(道德)을 모르옵니다.”
결국 결론에 와서 성리학으로 원점회귀를 하려 했다. 나폴레옹은 재주가 있었지만 덕이 부족하여 아랫사람을 다루지 못한 이 시대의 항우라고. 효명세자의 위궤양을 치료하는데 이제는 내가 위궤양이 생길 지경이었다.
그나마 현실을 파악한 사람이 있었지만 한 줌에 불과한 고위 관료이고 이들은 명분이 있어야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효명세자도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지 경연을 마치며 내 품계를 올려주었다.
“박현상은 알고 있는 서역의 사건에 대하여 많은 서적을 작성하도록 하게. 얻은 교훈이 많았으니 품계를 올려 홍문관 정자(正子)에서 저작(著作)으로 두도록 하겠네.”
“세자저하께서 내리신 은혜에 감읍할 따름이옵니다.”
말이야 이렇게 했지만 품계가 오르건 말건 속이 터질 것 같았다. 글을 똑바로 쓰는 사람에서 책을 쓰는 사람이 되었지만 책을 백 권을 쓰면 뭘 하나!
그나마 상황에 민감한 고위 관료들은 효명세자의 말에 따라왔지만 나머지가 아니었다. 이들이 개혁을 추구하는 와중에 집단 상소라도 올리면 뭘 어떻게 하지도 못 하리라.
인사를 올리고 경연을 마쳤는데 조만영이 나를 슬쩍 노려보더니 한숨을 쉬고 돌아갔다. 이 원인이야 불 보듯 뻔 했다.
“미운털이 박혔네. 우리가 저지른 사건이 돌고 돌아 풍양 조씨를 공격했군.”
조만간 김조순도 죽고 차기 국구인 조만영의 풍양 조씨가 실세가 될 시기였다. 이를 고려하니 조만영과 인맥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았다. 다만 생각이야 했지만 방법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