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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8화 (8/345)

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 8편

(1장 - 환약(丸藥) (2))

정약용은 내 말을 듣고 예전 일이 떠올랐는지 여기에 동의하였다.

“선대왕께서 나라를 다스릴 무렵 이양선이 왔다네. 말이 통하지 아니하여 물자를 보내 기운을 북돋게 하고 돌려보냈지. 물론 자네들과 같은 경우는 이야기가 조금 다르네만······.”

우리는 이미 조선으로 밀입국해 몇 달 동안 생활하였으니 이야기가 다르긴 하다. 정약용은 우리를 보며 슬쩍 웃은 뒤 말했다.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지만 김조순은 영민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이니 입을 조심하게.”

“그러하면 더욱 각별히 조심하겠습니다. 혹여나 책을 잡히면 될 일도 아니 되는 법이지요.”

“조일준 자네는 각별히 주의하도록 하게. 내가 한때 서학에 빠진 사람이니 혹여나 서학교도인지 의심할지도 모르네. 그러니 마음을 다스리도록 하게나.”

일준이는 속이 쓰린 표정을 지었지만 알아서 잘 대처할거다. 음력 12월 27일 한양으로 출발하게 된 우리는 어울리지도 않는 도포자락을 펄럭거리며 사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어이구 저 청년 보게. 키가 어찌나 큰지 올려보다 목이 빠질 것 같아.”

일준이는 이 시대에 거의 거인으로 불릴 만한 체격이었고 나도 부족한 체격은 아니었다. 본의 아니게 주목을 받았지만 일준이는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리 두리번거리지 말게. 나졸이 간혹 돌아다닌다 하여도 별 문제가 없을 거라네.”

정약용도 오랜 간만에 한양에 올라왔는지 김조순의 별장인 옥호정(玉壺亭)의 방향을 묻고 물어 찾아갔다.

권세가의 별장이라 하기에는 지나치게 작은 것 같았지만 이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안동 김씨의 중핵인 김조순이었다. 정약용은 헛기침을 하더니 문을 두드리며 사람을 찾았다.

“거기 있는가? 풍고 대감님께서 권하셔서 방문하였는데 계시는가?”

“다산 영감님이십니까? 뒤에 있는 청년들은 누구인지요?”

“내가 풍고 대감께 소개하고 싶은 젊은 인재들이라네.”

다른 사람의 방문은 예상하지 못 했는지 하인이 안으로 들어갔고 잠시 뒤 헐레벌떡 뛰어와 문을 열어주며 말하였다.

“어서 안으로 들도록 하시지요. 젊은이들이 방문할 줄은 꿈에도 몰랐으나 옥호정은 비좁지 않으니 상관없다 하였습니다.”

하인의 안내를 따라 방문한 정자는 사방에 창문을 달아 추운 겨울에도 거주할 수 있는 구조였다. 정자의 문이 열리며 키가 작은 노인이 우리를 맞이하였다.

“내 벗 다산이 아닌가! 근래에 들어 기이한 이야기가 들려와 꼭 만나고 싶었다네. 뒤의 청년들은 누구인가? 혹여나 새로 제자를 들였는가?”

“대감께서 저를 이리도 친하게 대하여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이들은 제자이며 제가 양자(養子)처럼 대하는 이들입니다.”

“영돈령부사 대감님을 뵙습니다.”

우리가 정약용에게 배운 대로 인사를 올리자 김조순은 우리를 빤히 살펴보았다. 정약용보다 키가 작아 160cm이 조금 안 되는 신장에 허리는 구부정하고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하지만 눈빛이 여느 사람과 달랐다.

정약용이 삶에 초탈하고 학문을 추구하는 학자의 눈빛이라면 김조순은 욕심과 신중함이 깃든 권력자의 눈빛이었다. 우리를 살펴본 김조순은 혀를 차며 말하였다.

“둘은 그렇다 치고 다산 자네가 왜 그러는가. 우리 둘 다 젊은 시절에 선대왕께서 임명한 신하이거늘! 나에게 존대(尊待) 계속 하니 거북하군.”

“알겠네, 자네가 원하는 대로 젊은 시절처럼 서로 편히 논하여 보세나.”

“이제야 말이 통하는군. 차를 준비하였으니 경치를 즐기며 이야기를 나눠 봄세.”

정자 아래에는 온돌이 있었는지 따스한 기운이 올라왔고 김조순은 상석(上席)에 앉아 정약용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옛 일이 떠올랐는지 사소한 이야기를 하였다.

“다산 자네 옛 일을 기억하는가? 내가 막 관료가 되었을 무렵에 예문관에 있으며 사사로운 글을 보다 선대왕에게 엄한 꾸지람을 들은 적이 있었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네. 자네가 서장관으로 일할 무렵이던가? 함사(緘辭 - 진술서)를 잘 작성하여 선대왕께서 크게 칭찬하셨지.”

“자네의 옛 기억이 생생한 것을 보니 노환(老患)은 아닌 것 같으니 묻겠네. 자네는 어찌하여 유황, 초석, 납 그리고 약재를 사들였는가. 내 이유를 알 길이 없어서 묻는 것일세.”

정약용의 표정에는 안도감이 맴돌았다. 경산까지 다녀와 금광을 캐낸 소문이 퍼지지 않은 것을 확인하였으니 나도 안심했고. 정약용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새로운 기물을 만들기 위하여 꼭 필요하였다네.”

“폐족이 된 자네가 새로운 기물을? 아직도 무언가 하려는 것을 보니 관직에 미련이 남았는가.”

정약용이 나를 슬쩍 돌아보았는데 이제는 우리의 이야기로 넘어갈 차례였다. 김조순의 관심사가 우리에게 쏠리자 자연스럽게 우리를 소개할 기회가 생겼다.

“이 약관의 젊은이들을 만나고 나서 미련이 생겼지.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예전에 저지른 잘못이 돌고 돌아 여기까지 오게 되었고 이들의 선친이 화를 입었네.”

“서학과 관련된 일을 말하는가? 예전에 저지른 잘못과 청년들이 무슨 관련이 있어 자네가 변모하였는지 참으로 궁금하군.”

“이야기 하자면 아주 길고 험난할 것일세.”

정약용이 물꼬를 튼 다음 우리의 가짜 인생을 말하였다. 처음에는 일준이도 나도 염려하였지만 김조순은 이야기가 다 끝날 무렵 눈가를 어루만지고 콧물을 푼 다음 말하였다.

“사연이 아주 기구하기 이를 데 없군. 내 생전 이런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네.”

“대감께서 저희가 말씀드린 것을 의심하지 않으시니 참으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떳떳하지 않았다면 내 앞에 나설 생각도 할 수 없지. 사람을 속이거나 야음을 틈타 남의 집 담장을 넘었을 것이 아닌가? 그러니 의심 할 필요도 없을 뿐일세.”

매사에 신중한 김조순도 우리의 이야기의 근거가 명확하고 행동이 올바르니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는 나와 일준이를 뚫어져라 바라보고는 말하였다.

“다만 예조판서인 희곡(希谷 - 이지연의 호)의 귀에 이 사실이 들어갔다간 자네들을 끝없이 의심할 것이네. 내가 아는 한 서학을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지.”

희곡은 아마 기해박해를 일으킨 주도자인 이지연이리라. 잠시 고민한 김조순은 일준이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말하였다.

“조일준 자네는 서역의 학문인 화학(化學)을 배웠다 하였네. 다산이 무언가를 만드는데 힘을 보탠 사람이 자네 같은데 무얼 만들었나?”

“서역의 의술을 조금 배운지라 설사를 멈추게 하는 약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어떠한 약인지 한 번 줘 보게. 내가 의서를 제법 읽어 다산보다는 못 하여도 여느 의원보다 지식이 많은 사람이야.”

정로환을 받은 김조순은 이리저리 살펴보고 알약을 쪼개 반쪽을 나에게 주었다. 기미(氣味)를 하라는 뜻이니 반쪽을 삼키자 김조순은 자신도 알약을 입에 넣더니 우물거리고 나서 말하였다.

“내가 주상전하께 올리는 탕약을 간혹 기미 하는 사람이니 약재는 제법 알고 있네. 감초는 당연히 들었고 진피와 목초액이 들어있군. 목초액을 왜 사용했는가.”

“정제한 목초액은 설사를 멈추게 하여 사람이 기력을 찾을 수 있는 시일을 벌 수 있습니다. 다만 장복(長服)이 불가하니 평상시에는 삼 일, 길어도 오 일만 복용 가능합니다.”

“옳은지는 모르지만 내 이렇게 과감한 약은 본 적이 없네. 다만 이 약을 도성에 판매하였다가는 자네들 모두 의금부로 끌려갈 것 같군.”

나도 정약용도 일준이도 김조순을 바라보았는데 김조순은 기가 차다는 듯이 말하였다.

“약효를 시험해 보았으니 자신이 있겠지. 그러나 가짜 약이 돌아다니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를테면 목초액을 잔뜩 넣은 약이면 사람이 다칠 걸세.”

“이 약은 수많은 시험을 거쳐 섬세하게 배합한 약이라네. 함부로 따라했다가는 장이 꼬이고 위가 뒤틀릴 것이니 스스로 시험하여 보고 가짜 약을 만들지 아니하겠지.”

“매점매석을 일삼아 물가를 뒤흔드는 놈들이 상대가 아닌가. 사람이 죽건 말건 가짜 약을 팔고 돈만 챙겨서 도망칠 것이네.”

정약용은 이런 예상을 하지 못 하였지만 김조순은 현실을 냉정히 파악한 것 같았다. 상황을 이해한 정약용은 짜증을 억누르는 것 같이 눈썹을 찌푸리며 답했다.

“상인들이 이토록 흉험한 짓을 할 줄은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는데.”

“그것뿐인가? 도고(都庫 - 매점매석을 주력으로 삼는 도매상)들 가운데 몇몇은 세도가와 연줄이 닿아 있네. 내가 보기엔 가짜 약이 자네의 명성을 갉아먹을 걸세.”

일준이는 고개를 푹 숙였고 정약용은 눈을 김조순을 계속 살펴보았다. 도움을 바라는 뜻이 분명하였지만 김조순은 심드렁하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여기까지라면 괜찮지만 다음이 문제야. 자네가 젊은 시절 적을 만든 것을 잊었는가? 열흘 전 형조판서에 치량(稚良 - 서능보의 자)이 임명되었으니 모든 죄가 자네에게 쏟아질 것이네.”

“치량이 형조판서가 되었다고?”

“자네가 양주에서 한가로이 있는 동안 세상이 많이 변하였네. 시기가 너무 안 좋으니 이를 어찌 하면 좋겠는가.”

정약용은 손을 바들바들 떨며 분노를 참았는데 아무래도 형조판서로 최근에 임명된 사람이 정약용과 원한관계가 분명한 것 같았다.

“다산, 자네가 관직에 다시 올라 젊은이들을 이 나라의 사람으로 만들려는 것은 알겠네. 좋은 뜻이나 상황이 좋지 않으니 이를 어찌 한단 말인가.”

“혹여나 다른 방법은 없겠는가. 내가 직접 도성에서 약을 팔기라도 하면.”

“자네 몸은 하나인데 도고는 수백 명이지. 문제가 생기면 치량이 자네에게 혐의를 덮어씌울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관직에 있다면 모를까 지금은 뭘 어찌 해 볼 방도가 없어.”

정약용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마 주변 사람 가운데 자신을 옹호할 사람을 찾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에는 희망이 없다.

그나마 가장 높은 관직에 있는 사람이 추사 김정희인데 시강원의 스승 중 한 명에 불과하다. 형조판서를 상대로 버틸 수는 있겠지만 도울 수는 없겠지.

실학자라도 끌어들일까 생각했지만 이 시기의 실학자 가운데 권력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열심히 만든 정로환을 만지작거리니 일준이의 말이 떠올랐다.

‘선생님께 산 염기 반응을 알려드렸어. 지시약으로 시험하니 금세 터득하시더라.’

‘정제한 크레오소트유를 만들지는 못한 것 같고 대략 ph4 정도의 약산성이야.’

이 시대 사람들은 절대로 생각하지 못 하는 과학적인 검증수단이 떠올랐다. 분명한 증거가 있는데 누명을 씌워도 증거를 제시하면 형조판서가 어떻게 하던 뒤엎을 수 있다.

여기에 조선은 무고죄 처벌이 강하다. 김조순의 도움으로 증거 인멸만 막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역풍이 몰아칠 것이 확실하다.

다만 김조순이 미적거리며 개입하려 하지 않으려 하였다. 그러니 김조순이 움직이도록 욕심을 채워줄 수 있는 큰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정답이라 생각하고 그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만약에 진짜 약을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는 증표를 남긴다면 어찌 하시겠습니까? 다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방법이라면 용납 하시겠습니까?”

정약용은 나를 만류하려 하였지만 김조순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나를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슬쩍 웃으면서 어린 아이를 타이르듯 말했다.

“그저 약효가 좋아서 진위를 판별한다면 내 아니 된다고 이야기를 하였는데?”

“진짜 약에는 반드시 찾아낼 수 있는 증표를 남겨둘 생각입니다. 가짜 약을 만든 이들에게 반좌(反坐 - 무고죄)죄가 살아있음을 알릴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십시오.”

사람이 언제 허점을 드러내겠는가? 위기를 모면해 빠르게 도망쳐야 할 때 가장 많은 허점을 드러낸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면 더더욱 방심하는 법이다.

형조판서가 날뛰면 벌어질 일은 뻔하다. 죄를 덮어씌우기 위해 도성의 가짜 정로환을 모조리 수거하려 들 것이다. 아예 의금부까지 가담시켜 확실하게 정약용을 무너트리려 하겠지.

이런 상황에서 김조순이 증거인멸만 막아준다면 무조건 사태를 뒤엎을 수 있다. 김조순은 내 얼굴을 뚫어져라 보더니만 뜻을 알아차리고 슬쩍 웃으며 말했다.

“전화위복도 아니고 이환위리(以患爲利 -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의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로군. 사태를 키우면 나에게도 이득이 될 수도 있기는 하겠군.”

“대감님께 드릴 말씀이 아니지만 제가 욕심을 부렸습니다. 일이 틀어지면 저희를 버리고 다산 선생님을 구명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릴 뿐입니다.”

“재주가 좋은지 욕심이 과한지 알 길이 없는 젊은이로군. 자신이 있으면 해 보게.”

도와주겠다는 말을 하지 않고 해 보라는 말만 했으니 중간 과정까지는 우리가 알아서 하라는 뜻이다. 정약용의 얼굴을 바라본 김조순은 두 손을 들고 홀가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의금부에 자네들이 하옥당하더라도 고신(拷訊 - 고문)을 당하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심리(審理)하도록 말은 할 것이네. 나머지는 알아서 하게.”

“덕분에 세상의 순리를 알게 되었으니 이 어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군.”

“보답이라? 자네가 약을 팔아 명성을 얻고 폐족 신세에서 풀려나면 보약이라도 몇 재 지어서 보내주면 좋겠군.”

옥호정에서 나온 우리 셋은 아무 말도 없이 사대문을 통과하여 남양주로 올라갔다. 한참을 올라가 주막에 방을 잡고 들어가자 정약용은 그제서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말하였다.

“풍고를 그렇게 설득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네.”

“다 생각을 하고 하였던 일입니다. 설령 일이 성공하더라도 형조판서가 다산 선생님을 핍박하면 내의원에 머물러 계실 수가 없지 않습니까.”

내가 살아오면서 적을 만든 적은 별로 없지만 적을 만들고 어중간하게 대처해서 이득을 본 적은 없었다. 일준이는 예전 일을 떠올렸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현상이는 머리가 좋고 성격도 괜찮은데 다른 사람이 해코지를 하면 사람이 변해요. 살면서 적으로 만들면 절대 안 되는 부류의 사람이죠.”

“자네 성품이 그러할 줄은 몰랐군. 그러하면 가짜 약을 구분하는 방법이 대체 무언가? 조일준 자네는 혹시나 방법을 알고 있는가?”

“저도 한참을 고민하고 알아차렸습니다. 미역취의 꽃잎이 염기성인 잿물을 만나면 색이 변했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이걸로 물들인 무언가를 넣자는 생각이겠지요. 맞지?”

일준이가 내 생각을 알아차리고 슬쩍 웃었는데 정답이니 고개를 끄덕였다. 정약용은 멍하니 우리의 모습을 보더니 더 좋은 방법을 말했다.

“더 좋은 방법이 있네. 미역취는 흔한 약초인데다 약한 비린내만 나니 목초액의 향에 덮일 걸세! 색이 흡사하고 향이 강한 치자열매로 쌀알을 물들이면 더욱 모를 거라네!”

지금 조선에 지시약이라는 개념이 어디 있겠는가. 어설프게 가짜 약을 만들던 놈들은 지시약을 통한 검증 작업을 통과하지 못한다.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이후 벌어질 일도 계획해야 했다.

“사태가 커질수록 형조판서는 다산 선생님을 철저히 짓밟으려 할 겁니다. 여기서 반좌가 적용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상전하께 이 소문이 전해질 겁니다.”

“소문을 더 키우도록 약의 값을 내리고 많이 팔아서 소문이 빠르게 퍼지게 만들면 더 좋겠군. 이리 되면 가짜를 만드는 놈들은 더욱 엉망으로 약을 만들 것이네.”

아예 정약용의 생각도 변했다. 조용히 약을 팔아 명성을 얻는 대신 가급적 사태를 크게 일으키려고 작정을 한 것 같았다. 정약용은 자신이 기억하는 형조판서의 신상명세를 말하였다.

“치량······. 자네가 알기 편하게 서능보라 하겠네. 그는 젊은 시절에는 참 빼어난 재주를 지녔다네. 다만 자신이 생각하기에 잘못 되었다고 짐작하면 끝을 보고야 마는 품성이지.”

평상시에는 잠잠해도 건수가 있으면 상대를 물고 늘어지는 성격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한 번 적으로 만들면 끝을 봐야 하는 사람이기에 정약용은 아쉬운 듯이 말했다.

“그의 팔촌인 서용보와 내가 악연이 있었으니 나를 의심하고 죄인으로 여길 것이 분명하다네. 박현상 자네는 나와 서용보의 관계에 대해 알고 있는가?”

“알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에 암행어사로 파견되셨을 때 서용보의 비리를 고발하여 그가 파직 당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 이후에는 보복이 있었다 하였습니다.”

“서용보가 관직에서 물러나기 전 까지 나의 해배(解配 - 유배에서 풀려남)를 한사코 거절하였네. 유배 기간이 거의 십 년이 늘어난 셈이로군.”

당시의 일은 정약용도 분노할 만 하였는지 주먹을 꽉 쥐고 한참동안 분노를 식혔다. 이윽고 일준이와 나를 돌아본 정약용은 가소롭다는 듯이 말하였다.

“김조순의 예측대로 서능보가 움직인다면 아마 파직 당할 것 같군. 잘못하면 이 나이에 귀양을 갈 지도 모를 일이니 내 앞길도 편해질 것이네. 그러하면 열수환을 개량해하여 어서 퍼트려보세.”

이미 완성된 정로환의 개량 작업이 진행되었다. 마침내 열흘이 지나고 정로환, 정약용의 호 중 하나를 따서 만든 열수환(洌水丸)의 판매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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