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 4편
(1장 - 적응 (1))
몸이야 어느 정도 치료되었지만 이래서야 밖에서 활동할 수 있는지가 문제였다. 정약용은 안경을 벗고 눈을 손으로 주무르면서 말하였다.
“말이 다르고 살아온 방식이 다르고 나이마저도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이라네. 이 난국을 어찌 해결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군.”
“저희가 한량(閑良)으로 살아간다면 모를까 애초에 돈을 제대로 벌수도 없는 상황이 아닙니까.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앞에 세운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요.”
“믿을 수 있는 사람이야 내가 있지 않은가. 그럼 다음 문제로 넘어가지. 내가 주상전하의 마음에 들어 내의원에 부임할 방법을 모색해 보세나.”
가장 먼저 할 일은 정약용을 관직에 복귀시키고 효명세자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이를 위하여 정약용은 자신이 알고 있는 내의원의 상황을 이야기하였다.
“도제조나 제조는 병을 치유하기 전 이를 검증하는 사람들에 불과하지. 그러하니 대부분 겸직을 하여 실질적 치료는 정(正 - 내의원의 정3품 관직) 담당하게 되네.”
“검증한다 하셨으니 의원들이 치료하는 방식을 점검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선대왕의 훙서를 암살이라 생각하여 편견을 가졌을 뿐 실제로는 그러한 일이 지극히 힘들 것이네. 탕약은 도제조가 기미(氣味)를 하며 이외에도 많은 과정을 거치지.”
“혹여나 암살을 시도하려 해도 내의원에 계시기만 한다면 막아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다만 다산 선생님이 들어가는 방법이 문제입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와 마찬가지로 정약용을 내의원의 의원 자리로 넣는 방법이 문제다. 일준이가 끓였다 식힌 물을 들이켜자 정약용도 김이 올라오는 주전자로 물을 따르며 말하였다.
“자네들이 물을 항시 끓여 마시라 말하였지. 덕분에 찬 물이 그리워지지만 겨울이 되면 금방 식으니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네.”
“저희도 불편하지만 방법이 없지요. 생각해보니 일준이 네가 약을 좀 만들면 어떨까? 페니실린 같은 항생제라면 이 시대에도 획기적인 약이라 잘 팔리지 않을까?”
뛰어난 약을 팔아서 명성을 떨치면 일이 해결되니 나름 좋은 의견이 아닐까? 반면 일준이는 내 말을 듣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답했다.
“페니실린을 생산해서 다산 선생님 이름으로 팔아서 명성을 얻자고? 내가 페니실린 극소량을 만든다면 모를까 판매할 정도로 많은 양을 생산하는 일이 가능이나 하겠냐.”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일준이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그러더니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애초에 백 종류가 넘는 푸른곰팡이에서 페니실린을 만들어내는 몇 종류를 찾고, 다시 그 몇 종류를 분류 배양해서 효과가 좋은 품종을 찾는 과정이 필요해. 운이 아주 좋다면 모르겠다.”
“어느 정도 자본을 투자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내가 경험이 있고 지식도 있다면 도전해 볼 가치가 있겠지. 나는 화공과라 생명공학과 학부생보다 못 한 지식이 전부야.”
일준이가 이렇게 말 하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 아예 엄두도 안 나는 것이 분명했다. 이 외에 좋은 방법이 없을까 했는데 일준이는 내 표정을 확인하더니 슬쩍 웃으며 말했다.
“화학 합성 항생제인 설파제도 제대로 만들려면 최소 십 년 넘게 걸린다. 그래도 약을 만들려는 생각 자체에는 동의하고 마침 이 시대에 가장 잘 팔리는 약이 있어.”
“이 시대에 통하는 약이 있어? 아스피린 같은 거는 잘 팔리겠는데 혹시 아스피린이야?”
“아스피린보다 만들기 쉽고 좋은 약이지. 전에 한양 일대의 수원이 오염되었다 했지? 그럼 세균성 설사가 돌아다니는데 여기에 쓰는 정로환이라는 약 알아?”
정로환은 알고 있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이 개발한 설사약이며 훗날 명칭이 정로환으로 붙여진다. 일준이는 정로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정로환은 한방 성분으로 장을 보호하고 크레오소트유의 신경 마비작용과 살균작용을 활용해 설사를 멈추게 하는 약이야. 크레오소트유는 목초액에 함유된 물질이고. 다산 선생님이 보시기엔 어떠합니까?”
“목초액은 약효가 있으나 독성이 심하여 일 년 이상 묵혀 시큼한 곳만 따라내서 사용한다네. 이렇게 법제를 해도 독이 있어서 많이 쓰이지 않는 약재일세.”
정약용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목초액의 부작용을 말하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일준이는 아직 손톱이 덜 돋아난 손으로 가슴을 탕탕 치면서 말했다.
“충분히 가능합니다. 목초액을 만들 때에 반드시 너도밤나무나 소나무를 원료로 삼아 만들고 철저히 정제해야지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구토가 일어날 겁니다.”
“너무 위험한 일이 아닌가. 나라면 만들지 않을 걸세.”
“그래도 약효는 좋습니다. 호열자는 잡아낼 수 없더라도 어지간한 설사는 모두 잡아낼 수 있는 약이지요. 쥐와 개를 이용해 약효를 시험하고 양을 정하면 될 겁니다.”
어린 시절 정로환을 먹어본 기억은 있는데 아주 심한 증세가 아니라면 설사가 바로 멎었다. 이런 약을 정약용이 만들었다 하면 삽시간에 퍼져 명성을 떨칠 수 있겠지.
일준이가 저렇게 자신을 가지고 말하는데 나도 믿어야지 별 수가 있겠는가. 녀석은 자신감이 생겼는지 천장을 바라보며 호기롭게 말했다.
“이거 말고도 돈도 좀 벌 생각을 해보자고. 후추를 밀매하면 어떨까? 후추는 값이 비싸잖아.”
“후추를 밀매할 필요는 없네. 후추는 값이 그리 비싸지도 않고 구하기도 어렵지 않다네.”
정약용의 말을 들은 일준이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아예 정약용은 주방에서 후추를 한 줌 가져와 보여주었고 내가 부연설명을 하였다.
“조선에서 후추가 부족한 시기는 일본과의 교역이 두절된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초반까지야. 지금은 일본과 무역을 해서 후추 수백 말(1말 = 6리터) 정도는 조정에서 비축해 뒀어.”
“이러니 역사 좀 배워둘걸. 선생님께서는 혹여나 돈이 될 물건을 알고 계십니까?”
“세자저하께서 경복궁을 중건할 계획을 세우셨다더군. 다른 자재는 모두 구할 수 있지만 단청에 쓰일 안료를 청나라에서 많이 들여올 걸세. 이중 청색 안료가 가장 귀하다네.”
경복궁 중건은 미친 짓이지만 청색 안료라면 돈이 될 만한 물건 같았다. 정약용은 아주 작은 나무상자에 담은 푸른 빛 안료 세 종류를 가져왔고 부담스러운 듯이 말했다.
“각자 청화(靑華), 삼청(三靑) 그리고 이청(二靑)이라네. 청나라에서 들여오는 안료이니 한 근에 열다섯 냥이나 하는 물건이네.”
“분석을 위해 조금만 태워 봐도 되겠습니까? 아무리 봐도 광물 분말은 아닌 것 같은데?”
녀석이 안료를 수저에 올려 화로에 대고 열을 가하자 시커멓게 변해버렸다. 일준이는 이를 면밀히 살피더니 실망했는지 혀를 차면서 말했다.
“아주라이트(azurite) 분말이 푸른 안료의 정체라니. 보석을 갈아 만드는 안료이니 가격이 비쌀 만도 하군요. 현상아, 코발트블루(cobalt blue)라도 만들면 잘 팔리겠는데.”
“코발트? 코발트 이야기를 하면서 왜 나를 바라보냐?”
“너 예전에 코발트 광산에 방문한 적이 있다 하지 않았었냐? 경북 지방 답사였나?”
학부생 시절에 다녀온 광산, 경상북도 경산에 위치한 평산 코발트 광산은 일제가 한반도를 수탈한 현장이자 6.25 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이 벌어진 장소였다.
예전에 우리 대학 연구진이 유해 발굴에 참가하였고 이후 사학과 답사를 다녀오는 사람은 빠짐없이 위령제를 치른다. 내가 일준이를 빤히 바라보자 녀석은 슬쩍 웃으며 말했다.
“경산 일대에 광산이 있다 해도 이 시대에 거기에 다녀온 사람은 너 밖에 없어. 광산 입구까지 다녀왔으니 산세를 알겠지? 실패해도 좋으니까 일단 시도라도 해 봐.”
“내가 무슨 재주가 있다고 곡괭이를 놀려서 산을 뒤엎고 광맥을 캐내?”
“가능한 일이라네. 내가 아무리 폐족(廢族 - 자손이 벼슬을 살지 못하게 됨)을 당했다 하여도 쌓아놓은 재산과 인맥은 충분하지. 경산이라 하였는데 어느 고장인지 알고 있는가.”
참 오랫동안 묵혀둔 기억을 떠올리자니 머리가 아파왔다. 기억의 연쇄 속에서 경산 코발트 광산에 들린 다음 다시 차를 타고 집성촌에 들른 기억이 있었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가보면 알 것 같습니다. 대조영의 후손들이 영정을 모시고 사는 곳이 십 킬······ 이 시대의 거리로는 이십 리 정도 남쪽에 있었지요.”
“영순 태씨의 집성촌이로군. 인맥이 없지는 않으니 일대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며 인부를 고용할 자금은 있으니 아예 불가능하지는 않지. 다만······.”
정약용이 물끄러미 우리를 바라보는데 언어능력이 문제였다. 열심히 배우고 있지만 이 시대의 사람과 대화를 나누면 어색함이 단번에 드러날 수준이다.
“말이 통하지만 정확히 통하지가 않는다네. 서학의 무리로 곤욕을 치른 이 땅에 자네들이 돌아다닌다면 무슨 말이 나오겠는가. 혹여나 먼 훗날의 사람이라 논할 생각도 하지 말게.”
우리가 미래에서 건너왔다는 사실은 정약용만 알고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가지고 있는 정보만 털어내는 신세가 되고 최악은 광인(狂人)취급으로 처형당할지도 몰랐다. 정약용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자네가 청나라의 말을 배웠다면 요동에서 건너온 사람이라 하여 일이 편하겠지. 그러지 아니하고 영길리의 말만 배웠으니 이를 어찌 하면 좋겠는가.”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의 소지품을 태우지 말 걸 그랬어. 현대의 물품 중 그럴싸한 물건 몇 개만 증거로 제출해도 다른 나라에서 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잖아?”
“결국 서양과 교역을 시작해야 하는데 나중에 우리를 의심한 사람이 외국인에게 물건을 보여주면 역으로 덜미가 잡히지.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 해.”
예를 들어 우리가 사인펜을 남겨두고 서양에서 들어온 문물이라고 인정을 받았다 치자. 당연히 조정에서는 이 물건을 분석하고 기록한 다음 보관할 것이다.
서양과 교역이 시작되었을 때 조선 사람들은 사인펜에 대한 질문을 할 것이고 서양인들은 이런 물건이 없다고 답하리라. 물질적 증거가 덜미를 잡는 셈이다.
물질적 증거가 없이 말로 설득하려 하면 너무나 험난하지만 그나마 이게 답이다. 답답한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일준이가 잠시 생각하다 의견을 제시했다.
“병자호란 때 청나라로 잡혀간 조선인들이 서양까지 끌려갔는데 후손이 돌아왔다 하면 다들 이해하지 않을까?”
“지금이 1830년이니 불가능하지. 일곱 세대가 흐르는 동안 피가 섞이지 않고 온전히 글을 익혔다고? 한두 세대라면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일곱 세대는 말이 안 돼.”
병자호란 당시 조선 사람들이 청나라로 잡혀가긴 했어도 1630년대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200년 가까이 지났으니 최소 7대손 심하면 10대 후손이 돌아온 격이다.
포로들은 기껏해야 중국 안에서 생을 마쳤으리라. 그래도 일준이의 발상 자체는 나쁘지 않아서 잠시 생각을 하다 좋은 사람을 떠올렸다.
“존 앤소니, 이십사 년 전인 1805년에 영국 시민권을 획득하고 육 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사람이지. 이 사람과 우리의 인생을 엮어볼 수 있을 거야.”
“영국 시민권? 그게 말이나 돼? 방문한 것도 아니고 아예 영국으로 가서 살았다고?”
“최근에 기록을 발견하다 재조명된 사람이지. 동인도 회사 사원 출신이며 정말 영국에 무덤이 있는 사람이야. 이 사람 말고도 제법 많은 청나라 사람들이 영국을 오갔어.”
놀라운 일이지만 사실이다. 당시의 시민권 획득에 대한 기록과 이를 토대로 한 훗날의 묘사화가 남아있었으니까. 정약용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나에게 물어보았다.
“정녕 청국의 관료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 구주(歐洲 - 유럽)에 방문한 적이 있다고?”
“존 앤소니라 불리는 사람은 관료가 아닙니다. 남경 출신이며 영길리의 동인도 회사의 통역관으로 일하며 영어를 배웠으니 상인에 불과하지요.”
존 앤소니의 기록은 그리 많지 않았다. 최초의 청나라 출신 시민권 획득자이자 몇몇 청나라 출신 하인을 데려왔다던가. 그러니 아예 우리의 출신을 조작할 생각으로 말을 시작했다.
“이 사례를 통해 저희의 생애를 꾸며내 보겠습니다. 저희의 부모는 신유년(辛酉年 - 1801년)에 일어난 박해 당시 제천 인근에 있던 사람들입니다.”
“황사영이 잡혀갈 당시의 이야기인가? 당시의 일이 너무나 흉험하여 병졸을 파견하고 주변을 수색하였네. 당시 황사영의 근처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추포되어 심문을 당하였지.”
“바로 그것입니다. 당시에 사로잡힐 것을 두려워하여 도망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저희의 부모는 사력을 다하여 도주하였고······.”
1801년 박해를 두려워하여 도주한 조선인은 가까스로 청나라로 도피하였고 사기계약에 당해 남경까지 내려갔다.
여기서 존 앤소니의 지인을 통해 영국으로 이주하였고 우리를 영국 땅에서 낳은 것이다. 일준이는 이 말을 듣고 나에게 캐 묻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거짓말을 해도 영국에 중국인들이 살지 않는다면 말짱 꽝 아니야? 이 시대의 영국에 정말 청나라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있었다고?”
“앞으로 몇 년이 지나면 리버풀에 최초의 차이나타운이 생겨. 그 이전에도 광저우에서 도착한 무역선이 런던의 라임하우스(Limehouse)를 등지를 오가면서 거주지가 생겨났고.”
나폴레옹 전쟁 당시 영국 기업의 선박들이 정부에 징집되었고 이 선박들에는 청나라 선원들이 있었다. 영국 정부는 청나라 선원의 급료가 싸고 명령을 잘 듣는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이들을 부려먹었다.
이후 청나라 선원들은 무역선에 고용되어 런던까지 온 뒤 돌아가는 무역선이 올 때 까지 거주하며 잡일을 하다 돌아갔다. 이들 중 영국에 터전을 잡은 사람이 한둘 있다고 해도 누가 알겠는가.
이미 부두 근처 빈민가에는 수십 개의 청나라 노동자 거주지가 있고 조만간 영국 최초의 차이나타운이 리버풀에 생겨날 정도로 수가 늘어난다. 일준이가 여전히 눈을 굴려서 안심할 만한 이야기를 했다.
“증거를 찾을 수 없을 테니 안심해라. 서양인들이 동양인 외모를 구분 못 하기로 유명하니 중국인 노동자 사이에 조선에서 온 부부가 있었는지 알 방법이 있었겠냐.”
“시커먼 머리에 검은 눈이라면 다 똑같은 사람으로 볼 테니 들킬 염려가 없긴 하겠네. 혹시나 의심을 시작해서 기록을 확인할 때 대처할 방법은 있고?”
“거의 불가능해. 런던의 빈민에게 증언을 확보하고 동인도 회사의 선장들을 일일이 살펴봐야지. 더군다나 우리의 활동 기반은 조선이야. 의심으로 재주가 뛰어난 신하를 공격하려면 선조 수준의 의심병이 있어야겠지.”
정약용은 물론이고 일준이도 내가 꾸며낸 가상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어차피 지금 영국 빈민가는 사람이 숱하게 죽어나가니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고 잡아떼면 끝날 일이다.
존 앤소니는 실존인물입니다.
1805년의 재판 기록과 1805년 8월의 부고 기록이 있더군요.
그의 주요 업무는 동인도 회사에 고용된 인도와 중국의 노동자들에 대한 숙소 및 식료품 제공과 관리였습니다.
출처 : https://www.bbc.co.uk/radio4/factual/chinese_in_britain1.s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