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세자와 함께하는 조선 생활 - 2편
(1장 - 천기(天機) (1) [0309 11:20 수정])
혹시나 다산 정약용이 아닐까 상상하는데 다른 문제가 생각났다. 우리의 옷을 누군가가 갈아입혔지만 처음 여기에 왔을 때는 현대의 복장을 입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이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는데 상대는 내 눈빛을 살피더니만 목에 손가락을 대서 맥을 짚고는 말하였다.
“심부(心府 - 심장)가 급히 요동치는군. 잡념을 버리고 누워서 푹 쉬도록 하게.”
“자리에 눕기 전에 이렇게 저희를 극진히 치료해 주신 어르신의 존함을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이미 관직에서 물러난지 오래 되었으니 존함이라 하지 말게. 그저 다산 어르신이라고 부르면 된다네.”
호가 다산이면 정약용이 확실했다. 급격히 피로가 몰려와 뭘 해 볼 새도 없이 잠이 들었고 다시 정신을 차리니 창 밖에서 동이 트고 있었다.
하루를 내리 잔 것인지 아니면 조금 잤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사실 시간의 흐름 따위에 신경을 쓸 겨를도 없었다.
정약용은 우리가 이 나라 사람과 행색도 의복도 다른 것을 눈감아주고 있었다. 그나마 급한 불은 껐지만 앞으로의 일이 문제였다.
우리의 정체는 어떻게 숨기고 조선시대에 적응은 어떻게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해 혼자서 계속 생각하니 동이 트며 밖이 밝아져 왔고 마당에서 닭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울음소리를 들은 일준이가 몸을 뒤척이며 깨어나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마침내 나와 눈이 마주치자 녀석은 말을 더듬거리며 나에게 물어보았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몸이 다 아파 죽겠는데 병원도 아닌 것······. 아악!”
몸을 일으키려던 일준이는 비명을 억눌러 참으며 사지를 뒤틀었다. 그러더니 이불 아래에 있는 사지를 천천히 움직이고 몸에 묶인 삼베를 보고 한숨을 쉬더니 나에게 물어보았다.
“온 몸이 엉망인데 제대로 된 치료도 안 한 것 같고 여기는 병원도 아니잖아? 지금 사극이라도 찍는 중이냐? 현상아, 우리가 촬영현장에 임시로 옮겨진 거야?”
“사극이 아니고 엄연한 현실이다. 우리는 지금 조선시대에 왔어.”
일준이가 정신적 충격을 크게 받지 않도록 내 추측과 얻어낸 정보를 섞어서 말하였다. 녀석은 도저히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뭐라 중얼거리며 현실을 부정하다가 말했다.
“뭐 이딴······. 서낭당에서 기도를 드려서 벌이라도 받았나? 조선시대라고? 일단 십자가 목걸이부터 숨겨야겠어. 지금 박해 시기는 아니지?”
일준이는 손으로 가슴팍을 더듬었는데 녀석은 천주교 신자여서 박해에 대해 아는 것 같았다. 적어도 정약용이 유배를 당하고 죽을 때 까지 박해는 일어나지 않았으니 이것도 설명해줬다.
“박해 시기는 아니야. 그래도 서학이라 불리면서 멸시당하고 있으니 십자가는 어디 보관하거나 아예 녹여서 금붙이로 만들어 팔아버리고 누가 물어보면 신자가 아니라고 답해.”
“그렇게 하면 큰 문제는 없다는 소리지? 말만 안 하면 되니까 한 숨 놓았네.”
“너무 믿지는 마라. 내 석사 전공은 서양사고 동양사와 관련해서는 학부생 수준의 지식만 가진 상황이야. 솔직히 말해서 내가 앞가림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넌 정보라도 있어서 다행이지. 난 역사와는 담을 쌓은 사람이라 과학사나 약간의 천주교 역사에 대한 지식만 있을 뿐이야. 이걸 어떻게 한담?”
내가 조선시대를 살다 온 사람도 아니고 200년에 가까운 간극을 메울 정도로 적응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일준이와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 했는데 밖에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니 어느 정도 기력이 돌아온 것 같군. 들어가도 되겠나?”
일준이가 불안함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정약용을 우리를 감싸려는 의도가 있었으며 우리의 모습을 보고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니 고개를 끄덕여 신호를 보내고 답했다.
“그렇지 않아도 다산 어르신을 다시금 뵙고 싶었습니다.”
문이 열리고 정약용이 소반에 식사를 가지고 들어왔다. 그는 잠시 우리의 표정을 살펴보고 차분하게 앉아 일준이에게 말하였다.
“기골이 장대하고 용모가 수려한 젊은이 둘이 무슨 일로 산에 올라갔단 말인가. 참으로 험악한 일이었으나 목숨을 건졌으니 잘 된 일이지.”
“저희를 구명해주신 분이니 감사하다는 말씀 외에는 드릴 것이 없습니다.”
일준이는 사극에서 본 말투를 어설프게 따라해 인사를 올렸고 정약용은 이 말을 듣더니 나와 일준이를 번갈아가며 보면서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뭐라 말도 못 하고 한참동안 우리를 살펴본 정약용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자네들이 이 시대의 사람이 아닌 천기(天機 - 하늘의 비밀)를 거스르고 여기로 온 사람임을 알고 있으니 염려하지 말게. 이를 알고 주변의 사람들을 모두 물려 두었다네.”
“어떻게 아셨습니까!”
“처음에는 젊은이들이 호기롭게 산에 올랐다 변을 당한 줄 알았네. 진흙으로 범벅이 된 자네들을 내 집 마당으로 들였는데 상세히 보니 복식이 너무 다르더군.”
그러면 우리에 대한 사실이 만천하에 퍼졌단 말인가? 나도 일준이도 너무 놀라서 정약용을 바라보자 그는 소매에서 지폐 여러 장과 동전을 꺼내며 말하였다.
“다행이도 하인과 동네 청년들은 내가 치료한다 하니 아무 말 않고 물러났다네. 그리하여 나와 안사람이 자네들의 의복을 벗기고 씻겼으며 치료하였지. 그러다 이 물건을 보았다네.”
“제가 주머니에 넣어둔 지폐와 동전이 아닙니까?”
“진흙에 더러워진 자네들의 옷을 벗겨낼 때 흘러나온 물건이라네. 처음에는 언문(諺文)을 빼고 알아볼 수 없었지만 자세히 살피니 제법 많은 것을 알아냈다네.”
지폐가 세밀하여 미래 사람이라 말 하려는 건가? 이렇게 답하면 실망스러운 일이다. 내 예상과 달리 정약용은 만 원 지폐에 있는 세종의 생몰년을 짚으며 말하였다.
“서학(西學)을 익힐 적에 서방의 달력도 조금 익혔지. 이를 역산하여 보니 세종대왕께서 승하하신 경오년(庚午年)은 서력으로 천사백오십 년이 나오더군.”
“지폐에 있는 모든 인물의 생몰년을 역산하신 것입니까?”
“자네가 말 한 바와 같이 서력으로 역산한 인물의 생몰년을 기호와 대조했네. 율곡 이이의 기호는 일천오백팔십사 년, 퇴계 이황의 기호는 천오백칠십 년을 나타내지 않겠나.”
정약용은 각 지폐에 있는 연도를 역산하여 아라비아 숫자의 의미를 스스로 깨우친 것이다. 내가 아무 말을 하지 않자 정약용은 소매에서 꺼낸 동전을 가리키며 말했다.
“처음에는 난해하였으나 산관이나 상인들이 사용하던 산가지의 방식을 응용하여 숫자를 엮는 법은 알 수 있었네. 자네들이 온 시기는 동전을 통해 알 수 있었고.”
동전이야 학교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려고 조금 많이 가지고 있었다. 정약용은 개중 2017년에 만들어진 오백 원 동전을 보여주면서 말했다.
“마침내 동전에 있는 기호를 읽을 수 있었네. 일백팔십 년 뒤에야 쓰일 서력이 양각(陽刻)으로 새겨져 있었지. 자네들은 머나먼 훗날에서 천기를 거스르고 여기에 온 사람들이 분명하다네.”
정약용은 지폐와 동전의 품질에 현혹되지 않고 순수한 정보를 분석해 우리가 미래에서 온 사람이라 유추한 것이다. 정약용은 마지막으로 만 원 지폐를 가리키며 말했다.
“한국이라는 단어는 아마 삼한(三韓)의 후예임을 증명하는 한국(韓國)이라는 국호인 것 같군. 이 조선이 멸망하고 삼한의 적통을 이어받아 한국이라는 나라가 들어서게 되었군.”
“어르신을 어찌 속이겠습니까. 저희는 서력 2022년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이렇게 되었으니 먼 미래의 후손으로서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천만 다행이도 정약용은 우리가 미래의 사람인 것을 알고 도우려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나도 일준이도 다시금 인사를 올렸고 정약용은 자신의 추측이 맞아서 기분이 좋았는지 웃으며 말했다.
“주린 배를 채우도록 하게. 자네들의 속을 달래기 위해 연한 잣죽을 끓였으니 아주 조금씩 천천히 먹어야 할 것일세.”
소반 안에 담긴 잣죽은 소금으로 연한 간을 하고 거의 미음에 가까울 정도로 맑게 끓여두었다. 이를 천천히 목으로 흘려 넘기니 굶주린 몸에 힘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양 손이 죄다 망가졌는데 이건 뭐 어떻게 할 수도 없고. 현상이 너는 왼팔이 부러져서 다행이다. 나는 오른 정강이가 부러지고 오른손 골절에 왼손 손톱이 다 빠졌어.”
일준이는 손톱이 빠진 왼손으로 억지로 숟가락을 놀리는데 나도 불편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음식을 다 먹고 잠시 숨을 돌리니 다시 정약용이 들어왔다.
“이제 몸에 활력이 생겼으니 시침(施鍼)과 탕약으로 치유할 차례이네. 혹여나 궁금한 것이라도 있던가?”
“가장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이 어느 시기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서력으로는 1829년이 되겠고 음력 팔 월 스무하루(8월 21일) 이라네.”
그나마 희망이 하나 생겼다. 1829년이면 효명세자가 살아있고 순조도 살아있을 시기이다. 이 시기만 잘 넘기면 조선을 정상적인 국가로 만들고 좀 더 노려볼 만한 때이다.
이 시대의 침은 현대와 달리 매우 두툼해서 제법 아팠다. 서로 작은 못 같은 침을 맞고 인상을 찌푸렸는데 잠시 지나자 일준이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통증이 제법 가시는군요. 평생 침을 맞은 적이 없는데 이렇게 좋을 줄은 몰랐습니다.”
“평생 침을 맞지 않았다 하였나? 내가 마괴회통을 저술할 때에도 종두법(種痘法)을 서역의 의술이라 하여 귀하게 여겼다네. 결국 서역의 의술이 이 나라의 의술을 몰아내었군.”
이 시대의 의술이면 동양과 그리 큰 차이도 없지만 50년쯤 지나면 격차가 크게 벌어지지. 침을 다 맞고 탕약까지 마신 다음 정약용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본래 내가 자네들에게 관여할 생각이 없었다네. 그저 몸이 치유될 때 까지 뒷바라지를 하고 노잣돈을 조금 쥐어 줄 생각이었지. 천기를 거스르는 일을 할 기력이 없었다네.”
“다산 선생님께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심이 어떠하신지요.”
“조금의 도움이라 하였는가? 자네들을 세상에 내놓았다가는 철부지의 손에 횃불을 쥐게 하고 메마른 갈대밭으로 내보내는 것과 같은 꼴이 벌어질 걸세.”
정약용이 보아도 우리가 조선시대에 적응할 가능성이 없는 것 같았다. 이 시대에 적응하려면 억양을 비롯한 언어 문제를 극복한다고 가정해도 대학 교수는 되어야 해 볼만 한 일이리라.
지명과 기초적 상식에 대한 이해도 없으며 대화도 같은 언어라 대충 통할 뿐이지 차이가 느껴진다. 우리가 침묵으로 동의하니 정약용은 손을 파르르 떨면서 말하였다.
“내 나이가 이제 칠순이 다 되어간다네. 어차피 죽으면 흙이 될 몸이니 그 동안 자네들이 이 나라에 발을 붙이고 살도록 모든 것을 돕도록 하겠네.”
“말씀만이라도 감사드립니다.”
“다만 천기를 자네들을 통해 엿보게 되었으니 묻고 싶은 것이 있다네. 조선을 망국으로 이르게 하여 한국이 만들어지게 한 원흉이 왜(倭)인가?”
일준이도 나도 정약용을 뻔히 쳐다보았는데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아예 미래를 예지하는 수준이 아닐까? 우리의 표정을 확인한 정약용은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이 조선이 쇠락하여 망국에 이르게 될 것은 짐작하고 있었네. 다만 청나라가 우리를 집어삼켰다면 수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동화(同化)를 시키려 할 것이네.”
“그러하면 청국이 이 조선을 집어삼키지 않았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으시군요.”
“물론일세. 거대한 나라에 속하게 되면 언어부터 변하는 법이라네. 자네들이 가져온 화폐에 오로지 언문(諺文)이 사용되고 한자가 쓰이지 않으니 청나라는 아닌 것 같군.”
내가 침묵하여 동의하자 정약용은 눈썹을 찌푸리며 안경을 고쳐 쓰고 말했다.
“일전에 손암(遜菴 - 원중거의 호)께서 남긴 승사록을 본 적이 있다네. 왜국의 호족들은 예전부터 정권을 뒤엎어 나라를 지배하길 원하는 이들이라네. 이들이 정녕 정변(政變)에 성공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후손으로써 드릴 말씀이 아닙니다만 예측하신 바가 지극히 옳습니다.”
“손암께서는 이들이 여력이 남는다면 이 나라를 정벌할 마음을 품었을 것이 분명할 것이라 하였지. 그 추측이 옳았으니 참으로 흉험한 일이 벌어졌겠군.”
정약용이 이야기한 승사록은 영조 시대에 일본에 다녀온 통신사의 저서이다. 그들은 여러 이야기를 입수하고 100년 뒤 일어날 사태에 대해 예측한 것이다.
정약용은 내 표정을 확인하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계속 이야기 해 보게. 이미 천기를 들었으니 멈출 수는 없다네. 다만 너무 상세히 알아도 안 되는 법이니 내가 세상을 떠날 삼십 년 뒤의 이야기부터 하여 보게.”
정약용의 요청에 따라 1860년부터 벌어질 조선의 망국을 간략하게 이야기했다. 정약용은 처음에는 듣기만 했지만 이내 움켜쥔 손에서 피가 새어나올 정도로 분노하였다.
마침내 조선이 독립을 하여 대한민국이 성립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약용의 눈에서 눈물 한 줄기가 흘러 내렸다. 그리고는 한탄하듯이 말하였다.
“당시의 왕이 정치를 올바로 하지 못 하여 백성들이 고통을 겪었으니 망국의 길을 걸을 만 하였네. 이 조선이 사라졌지만 백성들이 왜의 손아귀에서 벗어났으니 어찌 좋은 일이 아닌가.”
정약용 입장에서는 미래에 벌어질 사건이 자신의 책임으로 여겨졌으리라. 마음을 가다듬은 정약용은 붉어진 눈으로 말했다.
“내가 목민심서를 저술할 때 이 서적이 널리 퍼져 나라를 바로잡을 것이라 기대하였지. 이런 기대에도 불구하고 더욱 수탈이 심해져 결국 망국에 이르게 될 줄은 몰랐네.”
정약용은 고종의 이야기를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병사들에게 일 년 넘게 급료를 지급하지 않다니 사람의 자격도 없다.’ 라면서 중얼거렸다. 그리고 한참을 고민하다 우리에게 물어보았다.
“그럼 물어볼 것이 있네. 자네들은 망국을 앞둔 이 나라를 그대로 둘 생각인가? 내가 몇 년이나 살아있을 지는 모르지만 사력을 다해 망국의 운명을 거스를 작정이네.”
“저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제가 역사를 배운 이상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둘 수는 없습니다.”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으니 바로 답했고 일준이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답했다.
“저는 역사를 잘 모르니 방법 또한 모릅니다. 다만 방법을 알고 있는 현상이를 도와 이 땅에 학문을 퍼트릴 의지는 가지고 있지요. 그런 점에서 네가 좀 도와줘라.”
“어차피 조선을 발전된 국가로 만들려면 학자들이 수없이 많이 필요해. 아예 네가 대학 총장자리를 해 볼 정도로 교육체계를 만들고 학자를 초빙하도록 노력해볼게.”
최소한 일본이 넘보지 못할 정도로 국력을 강화해야 하며 이 과정을 위해 일준이는 꼭 필요한 인재였다. 우리의 다짐을 들은 정약용은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하여도 나라가 혼란하였으나 세자저하께서 대리청정(代理聽政)을 하시며 나라가 점차 온전해졌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해줄 수 있겠는가.”
“세자저하께서 내년 중순에 훙서(薨逝)하십니다. 주상전하께서도 오 년 뒤에 승하하시지요.”
“이제야 알겠군. 그렇게 되면 여덟 살에 불과한 원손(元孫)께서 즉위할 것이니 세자저하 아래에서 웅크리고 있던 세도가들이 아귀다툼을 벌이며 나라를 도탄지경으로 빠트렸군.”
효명세자의 죽음을 막지 않으면 헌종이 즉위하고 헌종도 젊은 나이에 죽으며 철종이 즉위하는 망국의 흐름이 시작된다. 일준이는 정약용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 그거 예전에 세미나에서 강사에게 들은 적 있는 것 같아. 그거 암살 아닌가?”
“심환지가 선대왕(先大王 - 정조)께 올라갈 탕약에 독을 넣어 흉악한 짓을 저질렀듯이 조만간 같은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정약용이 정조 암살설을 최초로 주장한 사람이었지. 그리고 이억길 교수가 이를 부풀려 노론 음모론과 조선왕 암살 음모론을 퍼트렸고. 이미 학계에서는 논의할 가치도 없었지만 그 파장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