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木鷄之德(목계지덕)
끔찍한 꿈이었다. 사랑하는 제자들이 차례차례 낭떠러지로 몸을 던졌다. 이정, 현진, 서문, 그리고 좌영, 우영까지……. 잡으려고 발버둥을 쳤으나 한참을 미치지 못했다.
“안돼!”
깨어나 보니 온몸이 땀에 절어 축축했다. 두꺼운 이불을 덮고 있는데도 마치 빙고에 들어선 것처럼 으슬으슬 추웠다.
‘참으로 구차한 삶이다. 더럽고 비겁한 삶이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 성곤은 아까부터 꼼짝도 하지 않고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던 운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시뻘건 눈에는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다.
“어디까지 알고 온 게냐?”
“어디까지가 진실입니까?”
운선의 대답에 성곤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깊이 들이쉴 때마다 뼈 마디마디가 저리고 아팠다. 심맥(心脈)이 상했으니 완치는 불가능했다. 그저 숨만 붙어있는 상태. 어쩌면 적절한 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네 사부를 죽였다. 그리고 네 아비를 죽게 했다. 여기까지 들었느냐?”
“더 있습니다.”
“음…….”
성곤은 눈을 감았다. 또 뭐가 있더라? 워낙에 지은 죄가 많아서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
“려국 따위 관심 없다. 오직 딸의 복수를 위해 신교를 세운 것이다. 여기까지냐?”
“더 있습니다.”
“그럼 려국의 끝이, 나 때문인 것도 말하더냐? 내가 려국을 지탱하던 대신들을 도륙한 이야기도 하더냐?”
“…….”
운선의 꾹 다문 입술 사이로 붉은 핏방울이 떨어졌다. 정작 그는 아픈 줄도 몰랐다. 갈기갈기 찢어진 마음의 상처 때문에 육체의 통증은 잊은 지 오래였다.
“그래, 맞다. 부인하지 않겠다.”
“왜 저를 구하셨습니까? 그리 증오했으면서 어찌 살렸습니까?”
“묵안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구하지 않았다.”
다시 눈을 뜬 성곤은 운선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죄책감도 억울함도 없었다. 공허함,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퀭한 눈은 두렵기까지 했다.
“어리석은 녀석. 사람을 쉬이 믿고 그 믿음에 책임지지 않는 네놈은 네 아비를 꼭 빼닮았구나. 하여 구하지 말 걸, 후회한다.”
“사백님!”
“율천이 모든 걸 바쳤으나 구하지 못했을 때는 죽을 운명이었던 것을. 나는 무얼 바라고 네놈을 구했던가? 후회스럽다.”
“감히 사부님을 언급하지 마십시오.”
앙다문 입술 사이로 잔뜩 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몸을 태울 것 같은 분노가 용광로처럼 끓어올랐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이 마치 요괴 같았다.
“신공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는 놈이 제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고 어찌 이리 경망스러운 게냐? 그래, 잘 되었다. 내가 손 쓰지 않아도 자멸하겠구나.”
성곤은 쓰린 마음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더 독한 말을 골라 뱉어냈다. 이것이 그가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기회가 없을 테니까.
“그래도 네 녀석이 불쌍해, 일부러 답을 주지 않았더냐? 목불식정(目不識丁)! 눈앞에 있는 원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엄한 데서 헛짓거리를 하다니, 네 놈 그릇이 딱 그 수준인 게지.”
目不識丁(목불식정). 우영을 다시 만난 용문산 인근 동굴, 그리고 그 벽에 적혀 있던 글자. 운선은 덕분에 조양의 목소리를 찾아냈고 그의 이면에 숨겨진 흉측한 진면목을 알아냈다. 그런데 그걸 쓴 이가 성곤이었다니. 아니, 그 수수께끼의 정답이 성곤이었다니. 운선은 바닥에 머리를 박고 콱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디까지가 거짓입니까?”
“모두 진실이다.”
“거짓입니다.”
운선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성곤은 마치 이날을 기다려왔다는 듯이 지난 이야기를 까발렸다. 그러나 정작 진실은 아무것도 없었다. 수년간, 직접 겪으며 보아왔던 사백은 고작 복수를 위해 나라를 팔아먹을 만큼 무모하지 않았다. 제자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사형제를 속일 정도로 모질지 못했다. 성곤은 그런 사람이었다.
“창현에게 자결하라 검을 쥐여준 이가 나다. 율천을 따라 경국과 화친한 무리를 쓸어버린 이도 나다. 율천은 왕실의 핏줄을 구할 마음에 비굴하게 경국의 황제에게 엎드려 빌었다. ‘해심밀경소’를, 려국의 모든 것을 갖다 바치겠다고 약조했다. 하여 나라를 져버린 도둑놈에게 독을 먹인 이 또한 나다. 뿐인가? 너를 구할 수 있음에도 외면하였다. 오로지 창현의 자식이었기 때문에.”
“사백!”
가슴 속에서 거센 불길이 치솟는 느낌이었다. 그런데도 손 마디마디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속이 매스껍고 온몸에 피가 역류하는 것 같았다.
‘드디어…….’
운선의 낯빛을 살피던 성곤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딱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마무리였다. 이 세상 누구도 다다르지 못했던 마지막 단계에 다다르려 하고 있었다. 조금 더, 조금 더. 약해지려는 자신을 몰아세우며 그는 짙은 눈썹을 한껏 치켜떴다.
“그래, 조양 그 늙은 여우의 말이 다 맞다. 나는 려국 왕실의 재건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려국인이 려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네 존재는 우리에게 아무 의미가 없다. 그깟 쏟아내면 사라지는 피 따위가 무엇이라고 네가 필요하겠느냐? 오직 너를 통해 려국인의 분노를 결집하려는 목적으로 이용했을 뿐. 백성들은 너를 원하지 않는다. 원망하고 또 원망하지. 내 손을 붙잡고 있던 가족이 죽어 나가는 참상을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감히 한을 풀어주겠다 자신하지 마라. 너 따위는 그들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운선의 깊은 눈동자가 갈 길을 잃었다. 왕실의 핏줄임을 알았을 때, 어떤 마음이었는가? 단 한 번이라도 자만한 적이 있었던가? 부끄러움과 죄책감도 자만의 다른 이름인가? 자각하지 못했을 뿐, 특권이라 느꼈을지도 모른다. 선택권은 나에게 있다고, 하여, 주운과의 삶을 선택했던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현진도 마찬가지다. 그 아이가 억울하게 죽은 창의의 여식이었기에 이용하려 했다. 숙부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서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그 아이가 한동안 신교를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지. 모두 그런 것이다. 고귀한 대의 따위는 애초에 없다. 각자의 이기적인 바람을 잘 포장하여 대의랍시고 들이미는 것일 뿐. 너도 현진도 마찬가지 아니더냐?”
“누이는 제발 건드리지 마십시오.”
현진을 언급하자 아슬아슬하게 부여잡고 있던 자제심의 끈이 툭 하고 끊어졌다. 헤어질 때까지도 누이임을 몰랐던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하물며 그 죽음을 더럽히는 말은 절대로 듣고 싶지 않았다.
“네가 무슨 자격으로 그 아이를 누이라 부르는 게냐? 너의 숙부 창의가 어찌 죽었는 줄 아느냐? 그는 려국의 왕이 될 인물이었다. 경국과 천서국 사이에서 단 한 번도 물러서지 않았다. 강했으며 어질었다. 그런 형을, 역량도 되지 않는 네 아버지가 몰아내었다. 오직 권력에 집착한 승냥이 떼에게 휘둘려 형을 죽였다. 현진은 그렇게 죽은 창의의 딸이다. 어찌 네가 감히 누이라 부를 수 있단 말이냐?”
“아아…….”
운선은 앞이 캄캄해졌다. 자신의 잘못은 아니었으나 감당해야 하는 죄책감이었다.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 봤자 다시 제자리였다.
‘어차피 도망치지 못할 거라면 받아들이고 부딪쳐야지.’
성곤은 쓰린 마음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몰래 명치 끝을 꾹 눌렀다. 그에게 안 아픈 손가락이 있겠냐마는 유독 현진에게는 미안했다. 심지어 마지막까지도 운선을 위해, 그의 완공을 위해, 죽은 제자를 이용하고 있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허나, 악역을 자처하는 것이야말로 그의 마지막 임무였다. 그 의지만큼은 변함이 없었다.
“모든 걸 버리고 도망칠 때는 언제고 이제 와 다시 없을 아우인 척 위선 떨지 말아라. 네놈이 정녕 왕실의 핏줄이라면 현진이 아니라 려국인 모두를 위해서라도 도망쳐서는 아니 됐다. 봐라, 네 선택의 결과를! 감히 선택의 자유가 있다고 생각한 네 거만함의 결과를! 그 아비에 그 자식, 그 스승의 그 제자로구나. 율천도 그랬다. 백성을 위한다면서 그가 구한 목숨은 오직 너 하나였다. 그러나 나는 창현과 율천을 죽여 수천, 수만의 려국인을 구했다.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이냔 말이다.”
“하하.”
운선은 이제 헛웃음이 다 나왔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성곤의 입에서 줄줄 나오는 가시 돋친 악담은 줄곧 뱃속에 가라앉아있던 내면의 죄책감이었다. 애써 외면했던 진실들, 불편한 진심들이 그의 음성으로 눈앞에 형상화되었다.
‘애초에 외면할 자격도, 선택할 자격도 없었구나. 그저 그렇게 흘러갔을 뿐,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참으로 건방지고 거만했구나.’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돌덩이에 쩍하고 금이 갔다. 절대로 부서지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한 바위였건만, 성곤이 사정없이 내리친 묵직한 망치가 기적을 만들어냈다.
“이제 알겠습니다.”
울긋불긋 물들었던 그의 얼굴이 서서히 그림자를 지워냈다. 막혔던 경맥이 뚫리고 거꾸로 흐르던 피가 원래의 방향을 찾았다. 모든 것이 순리대로 돌아가기 시작하자 마음도 안정되어갔다.
“아아, 이제 알았습니다.”
두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분노할 일도 후회할 일도 막상 마주하고 나면 한낱 감정의 덩어리였다. 그나마도 대부분은 왜곡된 기억이었다. 내가 바꿀 수 있다는 자만, 선택이 달랐더라면 결과가 달라질 것이라는 오만. 선과 악을 가르는 것도, 대의를 규정짓는 것도 모두 각자의 관점인 것을.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변하지 않는 것 또한 아무것도 없었다. 가능하다고 믿는 이야말로 위선자요, 사기꾼이었다.
“이제 알았느냐? 우리 중에 그 누구도 선과 악을 판단할 수 없다. 창의도 창현도 각자의 의지로 선택했던 것, 려국의 끝을 알지 못했다. 복수로 시작한 나의 치기 어린 살생은 의도치 않게 너를 살렸다. 무릇 사람이란, 삶이란 그런 것이다.”
모든 죄책감을 펼쳐 보여준 성곤의 가르침은 운선의 가슴 깊숙이 새겨졌다. 그제야 율천이 늘 습관처럼 해주던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네 이름처럼 살아라, 운선(雲仙)아. 아무것도 바꾸려 하지 말고 순리대로 살아라.”
“스승님…….”
운선은 언제라도 성곤을 찌르기 위해 들고 있던 수월을 힘없이 떨궜다. 여전히 조양을 증오하지만 그렇다고 비난할 자격까지 주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 또한 자신의 처지에서 최고의 선(善)을 행했을 뿐, 절대적인 척도로 평가할 수 없었다.
“너에게는 은인일지 모르나 누군가에게는 악몽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흘리듯 중얼거렸던 주운의 담담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충고가 하나씩 되살아나 운선의 마음속에서 깊은 울림이 되었다.
“운선아, 너는 너의 선택을 하여라. 나는 나의 선택을 할 테니.”
성곤은 말을 마치자마자 바닥에 나뒹구는 수월을 들었다. 그리고 누가 말릴 새도 없이 가슴 속에 쑤셔 넣었다.
“아아아아악!”
운선의 처절한 비명을 들으며 성곤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그의 고단했던 여행이 끝나려 하고 있었다.
“운선아, 태을신공의 7성이 바로 수월심(水月心)이다. 그러나 모든 감정을 비워내어 만드는 마음의 평화란 인간으로서는 결코 불가능한 경지이더구나. 하여 미욱한 나는 평생 도달하지 못하였다”
입으로 울컥 선혈을 뿜어내면서도 성곤은 가르침을 멈추지 않았다.
“허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답이 있더구나. 수월심은 감정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밑바닥까지 들여다보는 것. 비워내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아는 것. 그리하여 너에게 제대로 보게 해주고 싶었단다. 그래, 바로 나의 존재가 너의 밑바닥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죽음이야말로 진정한 수월심의 경지가 아니겠느냐?”
“아아아아…….”
운선의 짓무른 눈에서는 이제 붉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감정의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서 밖으로 뱉어내듯이.
“할아버지!”
이윽고 설이의 절규와 진건의 소리 없는 울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신기하게도 운선의 마음은 차분히 내려앉았다.
“사람은 지혜와 능력이 있어 위대하니, 사람(人)의 도(道)는 천지(天地)의 도(道)를 선택하여 원만하고 그 하는 일은 서로 협력하여 태일(太一)의 세계를 만드는 데 있느니라. 그러므로 삼신(三神)께서 참마음(眞心)을 내려주셔서 사람의 성품은 삼신(三神)의 대광명(大光明)에 통해 있으니, 삼신(三神)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깨우쳐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 (弘益人間)”
염표문의 마지막 구절을 읊조리는 운선의 주변으로 은은하게 광배(光背)가 만들어졌다. 드디어 태을신공의 완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