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有心故造(유심고조)
서문과 현진이 스승의 부름을 받고 초옥(草屋)을 찾았을 때는 이미 운선이 황석파로 떠난 다음 날이었다. 원래 다른 이유로 두 제자를 불렀건만, 성곤은 어쩐지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장은만큼 영리한 이는 강호에 많다. 그러나 그보다 악랄한 이는 만난 적이 없었다. 그와 정면으로 맞붙는다면 운선이에게 승산이 없다. 하여, 몹시 걱정되는구나.”
대놓고 부탁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의도가 섞여 있었다. 그리고 서문은 스승의 의중을 못 알아들을 만큼 둔하지 않았다. 오히려 강요가 아니었기에 선뜻 나설 수 있었다. 그에게도 운선은 소중한 사형제였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바로 구해오겠습니다.”
가장 반가워한 이는 누가 뭐래도 윤설이었다. 운선이 길을 나선 이후,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해 눈 아래가 거뭇거뭇했다. 그녀는 무공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자신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그럼 저와 함께 가지요. 사형은 매번 일을 키우니 곁에서 잘 감시하겠습니다.”
“괜찮겠느냐?”
따라나서겠다는 현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서문의 눈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허나, 그 의도를 잘 알고 있기에 차마 거절하지는 못했다. 이들 중, 운선을 구해야 하는 이유가 가장 명확한 이가 그녀였으므로.
“황석파 내부에는 비밀 통로가 많다. 뜻밖의 상황을 만나거든 그 통로를 통해 움직여라.”
성곤은 꽤 낡은 지도 한 장을 꺼내 서문에게 건넸다. 손으로 대충 그린 듯하면서도 제법 세세하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마세풍의 그림 솜씨가 형편없었기에 망정이지 잘못 흘러 들어간다면 강호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지도 몰랐다.
“대사형, 사저,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혹시 오라버니가 다치기라도 했다면 이쪽 출입구로 데려오세요. 통로가 좁은 대신 눈에 띄지 않아 안전해요. 근처에 폐옥(廢屋)도 있으니 급한 대로 유용하게 쓸 수 있고요. 저는 그 앞에서 대기할게요.”
설이의 손가락을 따라 위치를 배우니 대강 계획이 세워졌다. 우선 해금 객잔으로 가, 여러 문파의 동향을 살피는 것이 우선이었다. 거기에서 쉬이 운선의 소식을 알게 된다면 다행이지만, 행방이 묘연하다면 황석파로 잠입할 생각이었다.
두 사람이 해금 객잔에 도착한 때는 유시(酉時)가 조금 지나서였다. 아무리 날이 꾸물꾸물해도 대낮처럼 밝았기에 일단은 지붕 위에 몸을 숨기기로 했다.
“사형이 워낙 유명하니 변장을 과하게 해도 티가 납니다.”
“나보다 네가 더 문제란다. 온갖 사내들이 관심을 가지니 정체를 숨길 수가 없구나.”
쉬운 일을 어렵게 만든다며 서로를 탓하는 와중에도 두 사람의 신경은 오직 객잔 내부에 쏠려 있었다. 혹시 손님들 사이의 대화에서 유용한 정보가 있을지 몰랐다. 하여, 청각에 모든 감각을 집중하여 주의를 기울였다.
“사형,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왜 객잔이 이리 조용할까요? 해금 객잔은 운평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 아닙니까?”
“그러게나 말이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객잔 안에서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장은의 장문 취임식은 어제 낮에 끝이 났다. 오대산검을 비롯하여 문파 대부분이 이미 하산했을 터였다. 그런데 객잔이 이리 조용하다? 손님이 없다손 치더라도 사뭇 이상한 상황이었다. 하물며 주변 골목조차 인기척이 없었다.
“설마…….”
한 식경을 더 기다린 서문은, 드디어 내부에 잠입하기로 마음먹었다. 나름 분장이랍시고 얼굴에 검댕도 군데군데 묻혀 보았다. 준비를 마친 후에는 조심스럽게 기왓장 하나를 떼어냈다. 아주 일부분이지만 객잔의 중앙이 내려다보였다.
“만약을 모르니 따라오지 말고 여기서 지켜보아라. 만약 내가 위험에 처하거든 스승님께 알려라.”
“내 알아서 할 테니 조심해요.”
말은 냉정하게 했으나 불안하기는 현진도 마찬가지였다. 서문의 실력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왠지 들여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만큼 정황이 매우 수상했다.
지붕에서 내려온 서문은 일부러 느릿느릿 걸음을 늦추며 객잔 쪽으로 향했다. 서서히 어두워지는데도 문 앞에 있는 장명등은 좀처럼 켜질 줄을 몰랐다. 객잔은 마치 폐업한 것처럼 정적이 감돌았다.
“…….”
이윽고 계단까지 오른 서문은 꽉 닫힌 문을 두드리려다 말고 멈칫했다. 아주 미약했으나 안쪽에서 신음이 들려왔다. 숨을 죽이고 더 기다리니 한 사람의 소리가 아니었다. 예감이 사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끼익!
적막을 깨고 요란한 문소리가 울렸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객잔 안은 칠흑처럼 캄캄했다. 서문은 어둠이 익숙해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서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갑자기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적에 대비하여 부채를 꽉 그러쥔 채였다.
‘누가 있다!’
비릿한 냄새, 옅은 호흡, 바스락거리는 소리. 안쪽으로 조금씩 발걸음을 옮겼다. 짐승의 울음? 헐떡임? 들어갈수록 기묘하고 불길한 소리가 점점 커졌다.
‘아무래도 이편이 더 위험하겠군.’
결국, 보이지 않는 공포를 견디지 못하고 부싯돌을 꺼내 들었다. 청각이 만들어 낸 상상력이 그의 두려움을 더 배가시킨 탓이었다. 드디어 장명등에 불을 붙였을 때, 서문은 자신도 모르게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곳에는 손님은커녕, 일하는 사람 한 명 보이지 않았다. 대신 서른 명 남짓 되는 도사들이 네 발로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구토하는 사람, 경련을 일으키는 이도 보였다. 그들은 얼마나 통증이 심한지 들고나는 사람의 존재도 알아채지 못했다.
“우웩!”
가장 극심하게 구역질을 하던 이가 결국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혼절했다. 거품을 물고 숨을 헐떡이더니 사지를 벌벌 떨었다. 서문은 잽싸게 달려가 쓰러진 도사의 어깨를 잡았다. 기도가 막히지 않도록 얼굴을 왼쪽으로 돌린 후, 사지를 주물러 댔다. 누가 보아도 중독 증상이었다.
‘해독이 쉽지 않겠구나.’
강호 경험이 많은 서문이었지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독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약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당장 고통을 덜할 방법이 있을까? 임기응변으로 생각해 낸 수는 점혈이었다.
태을신공을 이용한 점혈은 기혈을 거꾸로 운용하기에 독성을 막는 데에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예상대로 그의 손을 거친 이들은 훨씬 편안한 표정이 되었다. 곧 죽을 것처럼 온몸을 비틀던 도사들이 하나둘 발작을 멈췄다. 땀을 뻘뻘 흘리며 점혈을 마친 서문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독이 퍼지는 것을 막았으니 당분간은 견딜 수 있을 테지.’
그때, 서문의 눈에 아주 낯익은 자가 보였다. 한쪽 구석에 앉아 바쁜 숨을 몰아쉬는 중년의 사내. 그는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었는데도 신음 한 번 내뱉지 않았다.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는 선명한 이목구비, 깔끔한 성격답게 잘 손질된 검은 수염. 무엇보다 극심한 통증을 버틸 만한 내력을 가진 용문파 도사는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금왕 용송현이다.’
망설일 필요도 없었다. 서문은 서둘러 뛰어가 곧 까무러칠 것 같은 용송현의 손목을 잡았다. 미약하지만 아직 쉽게 맥이 잡혔다. 중독되자마자 내력을 끌어올려 독성이 퍼지는 속도를 늦춘 듯했다.
“용대협, 저를 알아보시겠습니까?”
용송현은 정신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힘겹게 한쪽 눈을 떴다. 비록 수년만이지만 단번의 상대가 누구인지 알아보았다. 고통으로 일그러졌던 표정이 점점 분노로 바뀌었다.
“이서문! 이……, 이……, 역시 태을신교였는가?”
바싹 마른 입술 사이에서 신소리가 새어 나왔다. 몹시 화가 났지만, 기운이 없어 도무지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었다. 그저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게 최선이었다.
서문도 상대에게 호감이 안 가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무리 적이라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용대협, 실례하겠습니다.”
서문은 오해를 무릅쓰고 그의 몸에서 네 군데의 혈을 짚었다. 일단은 독성을 막는 것이 시급했다.
“감히 마교 놈이 내 몸에 손을 대려 하는가!”
그의 손가락이 막 닿으려던 찰나, 용송현은 남은 힘을 모아 소리를 버럭 질렀다. 안 그래도 철천지원수인 태을신교에게 속절없이 당했다고 생각하니 수치스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설마 저희가 이 치사한 짓을 했다고 믿는 건 아니겠지요?”
서문은 송현의 태도에 기가 막혀 웃음을 터뜨렸다. 변명할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 누가 용문파를 공격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무작정 태을신교로 몰아가는 이 한심한 작자의 태도가 짜증이 났다.
“이대로 있으면 내상을 입습니다. 제가 안 미더워도 지금은 그냥 포기하십시오.”
깊은 한숨을 크게 내쉰 다음, 발버둥 치는 용송현의 혈을 눌렀다. 그래도 어쩌랴? 용문파는 조상원이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자신의 뿌리가 아니었던가? 차마 그 유지를 무시할 수 없어 일단은 그를 구하기로 마음먹었다.
“독성을 누그러뜨릴 수 없으나 시간은 벌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이제 어찌 된 일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
아문혈이 열려 있었으나 용송현은 수치심에 입을 꾹 다물었다. 서문의 태도를 보아 그가 독을 탄 것 같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의심을 멈출 수는 없었다. 이 일의 배후를 밝혀 얼른 해독하지 않으면 제자들의 목숨이 위험했다.
절대로 입을 떼지 않을 용송현은 포기하고, 서문은 주변을 샅샅이 살펴보았다. 식탁 위에 먹다 남은 음식이 고스란히 놓인 양을 보니, 독의 출처는 요리가 틀림없었다.
‘무색, 무취의 독은 흔치 않은데…….’
골똘히 생각해 보았으나 역시 답을 구하기 어려웠다. 적은 감쪽같이 사라졌고 흔적도 깨끗이 지웠기 때문이었다. 매우 꼼꼼하고 철두철미한 자의 소행이었다.
탁, 탁, 탁, 탁
‘누가 온다.’
아주 작은 소음이었지만 신경이 곤두서 있던 서문의 귀는 피할 수 없었다. 적어도 둘 이상의 움직임이었는데, 발소리를 봐서 그중 한 명은 상당한 고수였다.
‘목격자까지 나타나면 빼도 박도 못하고 범인이 된다. 일단 몸을 숨기고 진상을 파악해 보자.’
서문이 왼발을 크게 구르니 하중이 가벼워졌다. 그 반동으로 내력을 끌어올리자 몸이 둥실 떠올라 위층 난간 바로 위에 사뿐히 안착했다. 기척을 최대한 감추고 벽 뒤쪽으로 몸을 숨기니 때마침 검은 인영 둘이 나타났다.
“어라?”
앞서 들어온 이는 점소이 차림의 청년이었다. 손수 도사들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자못 놀란 눈치였다.
“중독을 시키라 하였는데 어째서 혈도가 찍힌 거지?”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는 청년의 뒤로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사내가 나타났다. 날카롭게 쏘아붙이는 말투로 보아하니, 그자가 이 사건의 주범인 듯했다.
“저는 분명 시키시는 대로 했습니다.”
점소이는 혹여 해코지를 당할까 봐 뒤로 물러서며 대답했다. 그는 요리에 독을 풀고 숨었으므로, 이후에 서문이 들어온 일은 전혀 몰랐다. 검은 복면의 사내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몸을 바들바들 떠는 양이 거짓을 고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군. 오히려 잘 되었다.”
몇 사람의 혈을 눌러보던 사내는 뭐가 그리 기쁜지 키득거렸다. 공포에 질린 점소이를 내버려 둔 채 천천히 용송현에게 다가갔다. 역시 혈이 눌려 있었으나 다른 제자들과 달리 의식이 선명했다. 그제야 사내는 얼굴을 가린 천을 벗었다.
“너……, 너는!”
그것이 용송현의 유언이었다. 사내의 날카로운 단검이 가슴 깊숙한 곳까지 쑥 박히자 신음조차 내지 못했다. 단지 푸른 저고리의 앞섬에서부터 붉은 자국이 조금씩 번져갈 뿐이었다.
“진정 고문주가 그를 만나는 모습을 보았나?”
사내는 숨이 완전히 끊어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조심스럽게 칼을 뽑았다. 상처가 어찌나 얇고 깊은지 가슴에 구멍이 뚫렸는데도 피가 밖으로 튀지 않았다. 칼날에 묻은 피를 시신의 옷에 아무렇게나 닦으며 점소이를 돌아보았다. 무심한 눈길이었으나 상대를 겁주기에는 충분했다.
안 그래도 사내가 두려웠던 점소이는 살인을 눈앞에서 목격하고 나자 공포심이 극에 달했다.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면 다음은 분명 자신의 차례일 터. 인제 와서 발을 빼기에는 너무 늦었으니, 오직 그의 비위를 맞추는 것만이 살길이었다.
“아……아, 네. 분명 맞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그림의 인상착의와 꼭 같은 남자가 어젯밤에 나타났습니다.”
“손님이 그리 많았는데 과연 기억이 맞겠느냐?”
사내는 의심이 꽤 많은 편인지 팔짱을 낀 채로 상대를 노려보고 있었다. 점소이는 조급한 마음에 양손을 마구 내저으며 열변을 토했다.
“제 옷을 빌려 갔는데 어찌 기억하지 못하겠습니까? 소곡주 어쩌고 하면서 두 청년에게 뭐라 뭐라 지껄이더니 저 구석에 앉았던 온통 새하얀 옷을 입은 남자한테 접근했다고요.”
그제야 사내는 믿어지는지 고개를 두어 번 끄덕였다. 더 이상의 확인은 필요 없었다. 이제 증거를 정리하면 될 뿐.
“부탁이 있다.”
“네? 또 무슨…….”
사내는 두 손에 무언가를 넣고 주먹을 쥐더니 점소이의 눈앞에 불쑥 들이밀었다. 그리고는 의아해하는 상대에게 한 손씩 열어 보였다. 왼손에는 금덩이 한 개가 있었으나 오른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제대로 해낸다면 남은 평생 풍족하게 살겠지만, 아니면 너의 앞날은 없다.”
점소이는 꽤 영민한 편이었다. 대번에 사내의 의도를 읽어내고는 금덩이를 받아쥐었다. 자신은 허투루 일하지 않는다며 호들갑을 떠는 것도 잊지 않았다.
수차례 확답을 받은 사내는 곧장 옆에 널브러져 있는 도사 한 명을 들어 올렸다. 눈대중으로 보아도 점소이와 체격이 아주 비슷했다.
퍽!
단 한 번의 출수로 도사는 그 자리에서 절명했다.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목숨이 끊어졌는지 표정이 평온했다. 사내는 재빨리 그의 겉옷을 벗겨 점소이의 발밑에 던졌다.
“이 옷을 입고 도사인 척해라. 얼마 후에 한 무리의 선자들이 도착할 것이다. 누가 묻거든, 저자를 죽인 살인마는 산수화가 그려진 부채를 든 중년 남자라고 해라.”
사내는 손가락으로 용송현의 시체를 가리켰다. 얼마나 원통했는지 눈을 부릅뜨고 죽은 모습이 보기만 해도 소름이 쪽 끼쳤다.
“네……. 네, 반드시 그리하겠습니다.”
사내는 흡족한 듯 미소를 짓더니 다시 복면을 써서 얼굴을 가렸다. 여전히 부리부리한 눈에는 살기가 가득했다.
퍽!
이번에는 점소이를 향한 출수였다. 다만 살수가 아니라 혈을 찍어 몸을 마비시킨 것이었다. 완벽한 증인을 만들기 위한 약간의 노력이었다. 소소정은 심계가 깊으니 이자 혼자만 점혈이 되어있지 않으면 의심할지도 몰랐다.
점소이가 의식을 잃은 것을 확인하자마자 사내는 객잔을 나섰다. 벌써 해가 사라져 등을 켜지 않으면 주변이 캄캄했다. 그는 마치 객잔의 주인이라도 되는 듯, 자연스럽게 품속에서 부싯돌을 꺼냈다. 장명등에 불을 붙이려는 듯했으나 생각보다 쉽지 않은지 세 번의 시도 만에 겨우 성공했다. 아마도 최근에 잘린 검지 때문인 것 같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심지가 사내의 얼굴에 크고 작은 그늘을 만들어냈다. 그의 눈에는 완벽한 초화(草畫)를 완성했다는 만족감이 가득했다.
*** 유심고조(有心故造):
남의 다리를 잡아당기거나 쓰러뜨리려고 음모를 꾀하고 일부러 일을 벌인다.